기분좋은 변화
요즘 지하철을 타다보면 안전 스크린도어라는 것이 있다.
플랫폼에 들어오는 전철을 향해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방지하는 목적과
실수로 철로에 떨어져 참변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장치이다.
철로와 플랫폼이 격리되니 안전도 안전이지만 공간도 쾌적해서 좋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동안 쳐다보게 되는 조그마한 공간도 가만 나두지 못하는 사회는
언젠가부터 이 스크린도어 벽을 광고로 도배해 놓았다.
그중 눈에 띄는 광고가 있다. 모 통신회사의 광고인데 그 회사가 주는 혜택이 너무 뛰어나 다른 전화가 쫒아 올 수 없어 좌절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표현한 것이 스크린도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달려들어 오는 전철에 뛰어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한편에 있고
다른 쪽에는 기분 좋은 변화란 문구가 자리잡고 있다.
누군가의 기분 좋은 변화가 다른 쪽에는 삶을 포기해야 할 지경으로 내몰 정도로 그들이 주는 혜택이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지금 사회의 양극화나 한미자유무역협정등이 생각난다.
기분 좋은 변화가 모두를 같이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좌절과 절망을 딛고 서는 변화라면 사회 전체로 보아서 과연 기분 좋은 변화일까 하는 것이다.
대추리 농민들을 폭력으로 내쫒고 건설되는 미군기지나 한국의 농업을 뿌리째 뽑아버릴 것이 뻔한 한미 무역자유협정등이 누구를 위한 기분 좋은 변화인지 궁금해진다.
광고에서야 소비자에게 기분 좋은 변화가 일어난다는 암시가 있지만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모두에게 기분 좋은 변화가 될 것이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누군가가 좌절해서 철로에 목숨을 던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질 않겠냐는 것이다.
여러 계층과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제외하고 제거해가는 정책처럼 느껴진다면 광고판의 전화기처럼 누군가는 또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칠레와의 협정이 당시 생각했던 우려와는 달리 양쪽 모두에게 상생하는 효과를 주었다면 미국과의 협정도 그렇게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렇지만 협정과정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체결후의 변화가 서로에게 기분 좋은 변화이기 보다는 미국 거대 자본과 일부 국내 자본에게만 기분 좋은 변화처럼 보이니 바라보는 기분은 심히 우울하다.
멕시코와 미국의 협정체결후 일어난 변화가 우리에겐 타산지석의 시금석이 될 텐데 그것을 보더라도 장밋빛 전망보다는 짙은 회색의 우울함이 더 짙다.
지금의 염려가 단지 무식의 소치이길 바랄 뿐이다. 협상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협상에 임하는 정부 당국자의 가슴속에 대한민국의 서민들이 조금이라도 자리하고 있길 바랄 뿐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제2의 소파가 안 되길 바라고 또 다른 경술국치가 되질 않길 바랄뿐이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