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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스크랩 포도나무와 가지
저예요 추천 0 조회 379 08.07.10 00: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포도나무와 가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5-6절)


죄인을 의롭게 만드는 세례라는 특수한 처리방법은 기독교의 유일하고 독보적인 비밀이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말씀,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되어 다시 태어나야만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된 인간을 부정하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관점이다. 이건 인간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휴머니즘의 원수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하면 그렇다. 하나님이 ‘너는 안 돼’ 하시면 안 되는 것이고, ‘너 살았다’ 하시면 살았고, ‘너 깨끗하게 되었어’ 하시면 깨끗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머리카락 하나도 덧붙이지 않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범죄함을 위해 죽으시고 우리의 의를 위해 살아나셨고 그 분이 내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되신 그 사실을 믿으면 의롭게 된다.(롬4:25) 깨끗하게 된다. 어떤 방법으로 깨끗하게 하셨는지 설명해 달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분의 말씀이니 그대로 믿어야 하고 또 믿어진다. 작정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섭리를 설명하는 롬10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다가 와서 그 입에 있고 마음에 있다. 그 말씀을 듣는 과정에 자신도 모르게 믿고 시인(是認)이 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믿어지는 믿음의 말씀이다.(롬10:8) 따라서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와 같이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는 세례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중국의 내지 선교를 한 유명한 허드슨 테일러의 간증에 의하면 영적으로 매우 곤고할 때에 영국에서 온 그의 누이의 편지에 ‘오빠는 가지이므로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있기만 하세요.’라는 내용을 보고 잠시 잃어버린 영성을 다시 회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듣다보면 깨끗한 심령으로 그 분 안에 머무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해진다. 그리고 그 분의 마음과 생각과 뜻에 점점 동화되어 간다. 나무와 가지의 조직이 같아져 간다는 뜻이다. 그 분의 영과 생명의 진액이 우리의 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 없다. 자신의 의지가 없다. 오히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붙들고 주님을 사모하는 일 밖에 할일이 없다. 성령의 내부수리를 거쳐 꿈틀거리는 권능이 나타난다. 드디어 밖으로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만약 이것이 안 되면 마른가지이다. 모양만 있고 생명력이 없다. 생명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죽은 자는 더럽다. 싫증이 난다. 죽은 시체를 사랑하는 것은 고통이다. 차라리 나는 나를 살려주세요. 하기만 해도 좋으련만...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들의 모습이다. 반쪽짜리의 복음을 들고 연습된 종교적인 의식에 익숙할 뿐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행함을 만들 수 없는 표면적인 신자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무늬뿐이다. 이런 사람들을 지옥 불과 같은 사람들의 혀들이 태우려고 아우성을 친다.(약3:6) 어쩜 작금의 네티즌들의 교회 비방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지 있지 않는 열매 없는 마른 나뭇가지들을 향한 성토인지도 모른다.


카페 이름 : 쓰리엘월드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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