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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深川)에서 외 9편
김석환
뒷굽을 들고 뒷굽을 들고
벌판 내달려온 바람은
이별이 되어 흩어지고
안테나 높이 세우고
뿌리만 깊어지는 미루나무
미루나무 뿌리털 적시며 흐르는 여울물소리는
지병을 다리다 가신 어머님 잠으로 깊어져
말없음표……
심천(深川)이 되었다
처마 끝이 낮은 강촌
울타리에 널어놓은 옥양목 홑이불에
강 안개 곱게 서리는 삼경
강가에 우거진 갈대숲에서
귀또리 또리또리 서툰 발성으로
어머님 생전의 베틀가 익혀 가는
여기는 영동군 심천면 심천리
친구여 네 꿉꿉한 신발을 벗고
이 냇가에 서 보렴
홀연히 귀가 열려
어릴 적 잔뼈를 굵혀 주던 사투리 들리고
네 마음의 사금을 일어 가는
물소리 여울져 오겠네
원목 저목장(原木 貯木場)
목재공장 뒤 바닷물에 잠긴
원목들의 잠
아름으로 커 오르던 열대의 꿈을 버리고
속 깊은 바다의 가슴앓이를
원목들도 앓고 있다
저들은 왜 아직도
목재공장 예리한 톱날에
고운 목질이 켜지기를 마다하고
바닷물의 농도 진한 소금기에 절고 있나
무명 시인의 미발표 시행처럼
줄줄이 누워서 기다리는
저 오랜 침묵을
갈매기 몇 마리 입 맞추다 갈 뿐
바다는 철저히 원목들을 끌어안고
몸살을 출렁거린다
원목들은 밤늦도록 깨어 뒤척인다
당신들의 시학
원고지를 마주하면
어머니 호미질 하신다
올려다보아야 불볕뿐인 하늘 밑
운명보다 가파른 황토 비탈밭
돌을 추려내고 잡초를 뽑고
소금기 따가운 땀방울 묻어 넣고
밭두렁에 잠든 내 어린 날
곤한 꿈 성급히 묻어 넣고
놀라 깬 산꿩 울음 다져 넣고
북을 주던 이랑이랑마다
환히 피던 들깨꽃 목화꽃 향기
원고지를 마주하면
아버지 목쉰 고함소리 들린다
이랴이랴 써레질 서둘러
지번도 없는 천수답 다랭이마다
비좁은 하늘 모셔놓고
그 만길 허공 속에 거꾸로 잠긴
당신의 그림자 한 점 구름 다져 넣고
풀벌레 풍악 소리마저 다져 넣고
가을이면 등뼈 휘도록 볏단을 짊으시는
아버지 콧노래 소리
Aristoteles Eliot는 커녕
낫 놓고 ㄱ 자도 모르는
어두운 당신들의 시학
서울 민들레 2
뿌리가 질겨서
아니 잎새가 연해서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봄베이의 최후를 덮던
용암보다 더 뜨거운 피치가
용암보다 더 무거운 시멘트가
흙을 덮을 때
먼지처럼
바람처럼
불려 쓸리던 민들레 꽃씨
아직도 이 흙 속에
이차돈의 하얀 피가
논개의 맑은 피가 흐를지도 몰라
보도블록 새새로 뿌리 내리고
취객이나 기웃거리다 간 외진
담벼락 밑에 홀로 살면서
여린 꽃대를 피워 올리는가
미운 꽃 민들레야
참나무의 영가
아직 불러야 할 노래가 남은 자들은
산을 내려가지 않고 있다
도봉산기도원 울타리 너머
산비탈에 무릎 꿇은 참나무들
스스로 눈물을 떨구어
제 상처를 다스리는 무모한 처방
한 치 새순을 돋우기 위해
한 켜 나이테를 보듬기 위해
삼백예순 밤 깨어 별을 헤아리는
오랜 불면증, 끝에 열리는 하늘
새벽마다 해가 저절로 돋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두고
어둠이 빛을 삼키는 약육강식의 밤
십자가도 새벽종도 없는 유형의 터에서
눕지도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무릎이 썩어 가는 절명의 혼들
참나무, 상한 허리에 기대어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고
등뼈 속으로 스며드는
이 따스함이여
돌고래
박수를 보내 주세요 힘차게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이 알몸
넘겨다보아야 겹겹 능선뿐인
외진 산골, 열 평의 바다
꼬리를 치고 물구나무를 서고
웃음을 보내 주세요 정답게
살 부빌 이웃 하나 없는 낯선 이역
온몸으로 달려 보아야
완강히 조여 오는 시멘트벽뿐
조련사 호각 소리 뼈 속을 찌르는데
깊어지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공을 쏘아 올리고
훌라후프를 돌리는 어릿광대
때 묻은 지폐 한 장에
두 손을 흔들고 비비다 보면
한낮 햇살에도 이는 이 어지럼증
귀 기울여도 고요만 가득한
이 허위의 바다 속으로
살 한 점을 얻기 위해
훌쩍 굴레를 넘다 보면
고향도 까마득히 잊혀 가고
춤은 점점 익숙해져요 온전히
나를 길들여 주세요
어느 클라리넷 주자의 오후
어느 구멍을 열면
장미꽃 향기를 피울 수 있나
어느 구멍을 닫으면
장미나무 뿌리에 닿을 수 있나
창 밖 공원 한구석에
낮에도 꺼지지 않은 보안등
정신분열증 환자 고흐의 자화상처럼
일그러져 있다
허공을 더듬는 손가락 마디마디
새가 되어 날아간다
어머니 새벽마다 두레박줄 내리던
그 샘물에 잠긴 구름
헤집고 있다
내일은 날이 흐리고 천둥치다
폭설이 내린다는데
남은 숨을 몰아
비브라토로 오르내리는
목질(木質)의 옥타브
* 클라리넷은 원래 장미나무 뿌리로 만든 목관악기인데 요즈음은 흑단목 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기도 한다.
밥이 법(法)이다
달이 뜨지 않는 달동네
창문마다 3등성 등불이 곱네
발목 저린 가로수
서둘러 어둠 속으로 숨네
하루치의 영수증과
거슬러 받은 동전 몇 닢
딸랑거리는 안주머니, 늘 허기진
짐승이 되어, 밥
앞에 머리를 숙이네
우주의 중심은 어디?
식탁 한가운데 오른 밥
천수답에 잠긴 하늘에서 건져 올린 달
어머니 물 항아리에서 건진 별
거울보다 더 환하게, 아프게
눈을 찌르는 무색무취의 빛
고가도로를 과속으로 달려와, 밥
앞에 무릎을 꿇네
뜨겁게 서려오는 하얀 김
얼굴 붉어지네
밥이 무거운 법(法)이네
어둠에게
길을 재촉하다가 짐짓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면 오래된 늪처럼 질척거리는, 한 움큼 꺼내자마자 손금만 남기고 손가락 사이를 빠져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지하도 곳곳에 잠복해 있다가 앞을 가로막는, 귀가하면 어느새 먼저 안방에 도착하여 기다리는 오랜 친구야, 난 네 얼굴을 모른다. 늘 뒷모습만 보여주며 화장실까지 앞장서는, 잠자리에 누우면 이불 속까지 따라와 함께 누워 잠드는, 승용차 안으로 내 등을 밀어 넣는, 백미러 속에 고여 있다 빤히 나를 노려보는 적군아, 네 질긴 근성을 이길 수 없다. 늘 허기진 내 뱃속으로 몰려들어 대장균처럼 빠르게 번식하는, 원색을 모두 숨기고 빛을 빛이게 하는, 나를 살찌우고 체온을 지켜 주는 기름진 일용할 양식아, 자다가 손을 뻗으면 늘 가까이에서 마주잡는 피할 길 없는 네 손,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너의 먼 고향으로 언젠가는 나를! 이끌고 갈
칭다오(靑島) 여담·5
─말을 버리고, 소맥도(小麥島)에서
칭다오대학교 외국인 숙소에
함께 머물고 있던 원어민 강사들
한국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독일
모국어를 모두 버리고 좁은 길을
함께 걸어가 소맥도 주민이 되었다
절벽 위에서 파도 소리 엿듣다
아득한 수평선만 바라볼 뿐
어선들이 돌아와 부두 가득
먼 이방의 언어들을 부리는 동안
우리는 입과 귀를 닫은 채
해풍에 부표처럼 출렁거렸다
허공을 맴도는 갈매기 떼
희미한 울음소리만 들었다
한라산 호텔 마당 파라솔 아래서
맥주 잔 가득 웃음을 따라 주고
별빛을 섞어 마셨네 말을 버리자
비로소 말잔치 시작되었다
* 소맥도(小麥島): 청도시 해안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섬인데 현재는 좁은 길로 연결되어 있다.
김석환 연보
1953년
충북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에서 농부인 경주김씨 동제(부)님과 청주한씨 순애(모)의 2남 4녀 중 장남으로 출생.
1966년
왕복 4십 리를 오가던 초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으로 유학하여 대전중학교에 입학. 중학교 다니는 동안 문예반에서 시조시인이신 유동삼 선생님으로부터 시조와 시 창작을 지도 받음.
1969년
대전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전고등학교에 입학. 한모문학동인회에 가입하여 조남익 선생님과 안명호 선생님으로부터 시 창작 지도를 받음. 박재화, 이덕주, 송세헌, 이달, 박상용 선배님들을 비롯한 동료 및 후배 동인들과 매주 만나 시합평회를 열고, 『석란』이란 동인지를 발간하고 문학의 밤을 열면서 시인의 꿈을 키움.
197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일생을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청주교육대학에 입학. 두어 달 후 휴학을 한 후 세상을 등지고 마을 뒷산 너머 산에 토굴을 파고 들어가 2년 가까이 독거 생활을 함.
1974년
고향마을에 비로소 전기가 들어옴.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는 꿈을 다시 굳히고 하산하여 청주교육대학에 복학, 재학 중에 문우들과 문학 모임을 갖고 문집을 발간하고 시화전, 시낭송회 등을 열며 시인으로서의 꿈을 다짐. 콘드라베이스 주자로 현악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어 유신 치하에서 대학생활을 해야 하는 우울을 달래기도 하였음. 대학생성경읽기회(UBF)에 나가 성경 공부를 하고 각종 신앙수련회에 참가하며 신앙생활을 하였음.
1976년
졸업을 하고 2년 가까이 대학생성경읽기회와 인연을 이어가며 성경공부를 하고 시를 읽고 쓰며 시단을 넘보기도 하였음. 한 선배의 권유로 1년 동안 모 대학 법학과에서 법학 공부를 하며 문학의 길을 잠시 벗어나기도 했음.
1978년
법관이 돼보겠다는 허영을 깨고 문학 공부를 정식으로 해보겠다고 한남대학교 야간 국어교육과에 편입을 하였음. 편입한 지 한 달 후인 4월 1일에 고향 심천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심천과 대전을 오가며 주경야독을 시작함. 그해 11월에 어머니께서 유행성출혈열로 갑자기 작고하시고 아버지께서는 그 충격으로 병에 시달리어 졸지에 청년 가장이 됨. 이장희, 변재열 시인을 비롯한 급우들과 하숙집에 모여 시 합평회를 갖고 시화전을 열기도 하며 시 창작을 계속하며, 대전 교외에 살던 한성기 시인 댁을 찾아가 작품을 보여드리기도 함.
1980년
대학 졸업을 앞둔 10월에 직장 동료인 옥천육씨 수남과 결혼하여 학교 앞에서 사글세를 얻어 신혼생활을 시작함. 어릴 때 출석하던 각계장로교회의 집사가 되어 중고등부를 지도하며 신앙생활을 함.
1981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고 7월에 첫 아이 기학이 태어남. 글짓기를 지도하여 많은 수상자를 낸 공로를 인정받아 10월에 읍내에 있는 영동초등학교로 영전. 영동문인협회 회원들과 회지를 내고 시화전 및 시낭송회를 열며 교제함. 충남북에 거주하는 시인들이 한성기 시인을 고문으로 모시고 모인 백지 동인에 가입하여 상경하기 전까지 정기 모임을 갖고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함.
1982년
뇌졸중으로 병석에 누워있던 아버님께서 첫 아이 돌 날 작고함. 11월에 딸 매렴이 태어남.
1983년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마치고 문중의 종손이 설립한 심천중학교로 근무지를 옮김.
1984년
서울 강서구에 있는 화곡고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기며 가족을 두고 혼자 서울살이를 시작함. 그해 2학기에 명지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낮에 근무를 하고 밤에는 강의를 받으며 다시 주경야독을 시작함.
1986년
6월에 『시문학』 지로 추천을 받아 등단하고, 8월에는 홍문표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석사논문 「청록집 연구」를 써서 석사학위를 받으며 대학원을 졸업함.
1987년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가 서울로 근무지를 옮기며 가족들이 다시 함께 모여 살기 시작하고, 그동안 써온 시를 모아 9월에 첫 시집 『심천에서』를 발간함.
1988년
9월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모교 교수님들은 물론 이상보, 정한모, 성백인, 남광우 등으로부터 훌륭한 강의를 받으며 국어의 우수함과 한국문학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깊이 배움. 특히 시적 감동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에 관심을 갖고 문학의 이론을 섭렵하고 연구를 하며 시를 발표함.
1990년
대학원 공부에 전념하고 박사논문 준비를 하기 위해 화곡고등학교에서 퇴직하고 명지대, 청주대, 상지대, 청주교육대 등에 출강함. 지도교수님인 홍문표 박사님께서 『창조문학』을 창간하자 그때부터 3년 동안 편집장으로서 발간 일을 도와드림.
1993년
박사논문 「정지용 시의 기호학적 연구」로 학위를 받으며 모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함. 현재까지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게 주로 시 창작론과 비평이론을 강의하며 각종 문예지에 시와 비평문을 발표하고 기호학적 이론을 원용하여 여러 학회지에 윤동주, 서정주, 김춘수, 신경림 시인 등 대표적인 한국 현대시인들의 시세계를 연구한 논문을 20여 편 게재함.
1995년
두 번째 시집 『서울 민들레』(푸른숲) 발간.
1996년
연말에 주소를 강서구에서 도봉구 창동으로 옮김.
1999년
세 번째 시집 『참나무의 영가』(도서출판 도움이) 발간.
2004년
문예진흥원으로부터 발간 지원비를 받아 네 번째 시집 『어느 클라리넷 주자의 오후』를 발간. 이 무렵 신경림, 정희성, 구중서 시인을 비롯한 도봉산 자락에 사는 시인들 10여 명이 ‘4호선’이란 이름 아래 간간이 모임을 가짐. 시낭송회인 <우이시> 회원으로 도봉도서관에서 매월 열리는 시낭송회에 참가.
2005년
연구년을 맞이하여 1년 동안 중국 산동성 청도시에 있는 청도대학교 한국어과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머무르며 한국어를 가르치며 연구와 시 창작에 전념함.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 및 조선족 시인들과 격주로 시 창작 모임을 가짐.
2010년
편집위원장으로 있던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회장이 됨.
2011년
재직 이후에 10년 가까이 학내 각종 부속기관장 및 교수협의회 회장직을 맡던 것을 마감하고 연구와 창작에 매진한 결과 우수한 연구 업적을 쌓은 학내의 교수에게 주어지는 학술상을 받음. 다섯 번째 시집 『어둠의 얼굴』(푸른사상) 발간.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2년 · 상반기 제6호
김석환
충북 영동 출생. 1981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어느 클라리넷 주자의 오후』, 『어둠의 얼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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