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요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교회를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언제나 하늘나라의 열쇠에 대해서 생각이 머무릅니다. 하늘나라가 왜 자물쇠가 필요하고, 열쇠가 필요한지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곡식을 담아두는 창고처럼 작은 공간도 아닐 것이고, 서울의 궁궐이 있는 곳처럼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쳐 있는 곳도 아닐 것이고, 이 세상보다도 더 크고 우주 공간 보다도 더 큰 공간일 것이기 때문에 큰 대문과 열쇠를 가진 베드로 사도가 있다는 말은 괜히 만들어 낸 말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서 알아듣기로는 하늘나라는 아무리 크고 넓은 공간이라고 하여도 입구에는 큰 대문이 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이 그 통과증명서를 베드로 사도에게 보여 주어야 하며, 그 통과증명서를 본 베드로 사도가 열쇠로 천국 문을 열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영화나 소설처럼 막연하게 해 본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문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분별도 없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면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은 아주 크고 육중할 것이고 그 문에는 아주 많은 작은 문들이 수도 없이 많이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죄가 없이 깨끗한 사람들은 훨훨 날아서 아주 높은 곳에 달린 작은 문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작은 죄로 몸은 무거워졌지만 선행을 쌓아서 공적이 있는 사람들은 조금 낮은 곳에 위치한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를 받을 것입니다. 일생을 길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힘들게 산 사람들은 십자가를 내려놓고 그 십자가를 가지고 장대높이뛰기를 하듯이 아주 높은 곳의 문으로 가볍게 올라 갈 것 같습니다. 아주 낮은 곳에 위치한 작은 문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많은 죄로 얼룩져 있으면서도 용서를 받으면서 적은 선행으로 겨우 천국에 턱걸이를 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각 사람들의 입장에서 상벌이 분명한 작은 문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는 아주 큰 문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늘나라의 문에 이렇게 차등을 두는 이유는 하늘나라에도 분명히 차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 때도 하늘나라와 같이 차등이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도 분명 차등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라는 속담과 같이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하느님나라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옥에도 차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아주 무거운 벌을 받는 지옥이 있고, 가벼운 벌을 받는 죄인들은 가벼운 지옥에 빠질 것이라는 차등을 하늘나라에도 적용해야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평을 하늘나라에 똑 같이 적용하고 싶은 인간의 얄팍한 심성을 하느님께서도 나무라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의 열쇠도 아주 다양하고 각색으로 준비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 혼자서 언제나 외롭게 천국 문 앞에서 벌을 서시듯 지키고 계실 것 같지도 않습니다. 천국 문 앞에서는 자율적이며 자동적으로 개폐되는 문이 장착되어 있어 죄질과 죄의 양에 따라서 죄 형량이 아주 엄격하게 구분되고 그 구분된 판결에 의해서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자동화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자동으로 암호화되어 있는 암호는 각자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아주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던 암호를 선택 받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천국문의 암호인지 아마 전혀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지의 암호를 이미 암호화해서 가지고 계실 것이고, 교회를 통해서 오래 전부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수련시키셨을 것입니다. 그 암호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지혜도 이미 주셨을 것입니다.
그 암호는 교회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모르고 있는 그 암호의 비밀은 하늘나라의 정문에 도착했을 때 풀릴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맺은 것이 무엇이고, 푼 것이 무엇인지도 그 때 완전히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열쇠의 비밀도 그 때 풀릴 것입니다. 이미 늦었다고 후회하고, 땅을 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내가 그 방법을 교회에서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지키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일 시도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매일 시도도 해 봤고, 매일 결심도 했던 암호해독의 길을 천국 문 앞에 와서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턱걸이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연옥의 문으로 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아주 가볍게 아주 높은 문으로 새털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연마한 그 암호로 어렵지 않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마련할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지만 절대 빈손이 아닐 것입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처럼 결단을 내리고 칼날 같은 의지를 내세워 복음 선교도 열심히 하고 주님의 사도로서의 역할도 성실히 수행하였으니 세상에서부터 교회라는 반석에서 살았고, 베드로 사도의 열쇠도 받았을 것입니다.
‘교회를 산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물론 처음 듣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를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이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사는 것이지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공동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것이지 다니는 장소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은 함께 같이 사는 것이지 다니는 장소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산다는 것은 하느님을 모두의 중심에 모시고 함께 나누며 모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저승의 세력이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암호를 만들을 수 있고, 좁은 하늘나라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통로를 아주 넓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살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공동체에서 벗어나 진실로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어가는 공동체가 되어가야 합니다. 그 교회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반석으로 삼아 세우신 교회이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을 수 있는 교회입니다. 마지못해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형식적인 교회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그 잔치에 참여해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살아있는 공동체인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를 만드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6-8.17-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축일6월 29일 성 바오로 (Paul)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 연도 : +64/67년경
같은 이름 : 바울로,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베냐민 지파에 속한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인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회심하기 전까지는 사울(Saul)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천막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첫 순교자 스테파누스(Stephanus, 12월 26일) 부제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사도 9,1-22).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다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했고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을 만났으나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박해자였던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사도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계속해서 그를 없애려고 하자 타르수스(Tarsus)로 가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 그를 찾아온 성 바르나바를 따라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교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사도 11,25-26).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성 바오로는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하게 되었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파견을 받고 성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Cyprus), 페르게,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리카오니아 지방의 이코니온과 리스트라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첫 선교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와 성 야고보(Jacobus)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한층 더 진보된 단계를 맞이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는 제2차 선교 여행을 계획했다(49-52년). 제1차 선교 여행 중에 세운 교회 공동체를 재차 방문하고자 했는데, 요한 마르코(Joannes Marcus)를 동반하려는 성 바르나바와 의견 차이가 생겨 서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성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났고, 성 바오로는 성 실라스(Silas, 7월 13일)와 함께 시리아와 킬리키아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녔다(사도 15장). 성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가서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리피(Philippi), 테살로니카(Thessalonica), 베레아(Berea)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Athenae)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스’에서의 설교로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그 후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온 그는 다시 제3차 선교 여행을 계획했으나(53-58년),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했고, 에페수스(Ephesus)에서는 데메트리오스라는 은장이와의 사건으로 유명했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성 야고보를 만나 보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 유다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사도 21,27-36).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 과정과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설명하고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심문을 받은 그는 황제에게 상소하여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을 따라 로마(Roma)까지 가서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며 비교적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고 한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사도 성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를 써서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성 바오로의 공식 축일은 성 베드로와 함께 6월 29일이고, 1월 25일은 그의 회심(개종)을 기념하는 축일로 지낸다.♧
축일6월 29일 성 베드로 (Peter)
신분 : 사도, 순교자, 교황
활동 연도 : +64년경
같은 이름 :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에르, 피에트로, 피터
갈릴래아 지방 티베리아 호수(갈릴래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인 벳사이다 출신의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 시몬이라 불리며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그는 동생인 성 안드레아(Andreas, 11월 30일)와 함께 고기를 잡다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하며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물을 버리고 바로 따라나섰다. 요한복음은 세례자 성 요한(6월 24일)의 제자였던 성 안드레아의 인도로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갔고, 예수님으로부터 ‘케파(Kefa)’, 즉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고 전한다(1,35-42).
그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베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적과 카파르나움에서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활에 늘 가까이서 함께했다. 예수님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갔을 때 베드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물음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고백했다. 이에 주님께서는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교회는 사도 성 베드로가 예수님께 수위권을 받은 첫 번째 교황이 되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성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함께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시자 대사제의 관저까지 몰래 따라갔다가 사람들의 질문에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가 참회한 사실도 있다(루카 22,54-62).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셨을 때, 성 베드로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19)라고 당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사도 성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신자들의 으뜸으로서 초대교회를 이끌며 배신자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였으며, 오순절 설교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성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해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사도 12,1-19),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다른 민족들도 복음 말씀을 듣고 은총으로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사도 15,7-11).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사도 성 베드로는 로마(Roma)로 가서 그곳의 초대 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벌어진 64년경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똑바로 매달릴 자격조차 없는 죄인이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오늘날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그의 무덤 위에 건립되었던 성전 터에 세워졌다. 순교 직전에 성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려다가 아피아 가도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과 마주쳤다고 한다. 성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양 떼를 버리고 도망친 로마로 간다.”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발현을 체험한 성 베드로는 곧바로 로마로 돌아가 용감하게 순교했다고 한다. 교회 미술에서 사도 성 베드로는 배, 열쇠, 닭 등 전통적 상징들과 함께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사도 성 바오로(Paulus)와 함께 기념하는 6월 29일 축일 외에도, 2월 22일을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 지내고 있다. 이날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 베드로 사도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베드로 (Peter), 바오로 (Paul)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