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 김다위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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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가정부흥회 (1/2)
행복한 결혼의 기초를 회복하라
창 1:27-28, 마 5:3
본 교회 기초 양육교재의 제목이 “당신은 행복하십니까?”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결혼 생활은, 여러분의 가정은 정말 행복하십니까?
UN에서 발간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 (World Happiness Report)가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 경제 대국이 되었는데요, 과연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보고서 대상 국가 137개국에서 한국은 중간에서 약간 상위인 57위를 차지했습니다.
38개 OECD국가 중에서는 상위가 아니라 하위에서 4번째입니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지요.
더 문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인들이 느끼는 행복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행복의 조건으로 보는 것일까요?
몇 년 전에 대한민국 국민 약 5,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행복과 삶의 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조건 1순위는 바로 “좋은 배우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 2순위였습니다. 행복한 가정과 건강이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최근 MZ세대는 3명 중 1명만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답변이 충격적입니다. 미혼남성들이 답변한 가장 많은 이유는
“결혼한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금 20, 30대 청년들이 본 결혼한 사람들은 기성세대입니다. 부모세대입니다.
그들이 본 부모님들의 결혼이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는 겁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결혼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혼한 이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MZ세대의 말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결혼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행복한 가정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신 결혼
결혼의 시작은 창세기에 나옵니다.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27절입니다.
[창 1: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창조 과정을 창세기 2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보셨습니다.
이미 당시에 수많은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동물들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심지어 아담을 위해 또 다른 남자를 만들어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물도 아니고 동성인
남자도 아닌 여자를 만드십니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겁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십니다. 23절 보세요.
[창 2:23]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히브리어가 잇쉬와 잇샤입니다. 두 단어의 어근은 동일합니다(알레프-눈-쉰).
이 잇쉬와 잇샤의 어원의 의미는 “약하다, 부서지기 쉽다”는 겁니다.
또한 어원이 같다는 것은, 남편과 아내는 곧 하나다, 한 몸이다, 근원이 같다는 뜻입니다.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이라고 했으므로 너와 나는 같은 존재라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 결혼 주례를 하다보면 특송을 듣게 되는데, 제가 가장 많이 듣는 곡은 “잇쉬가 잇샤에게”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제목인 잇쉬가 잇샤에게는 바로 창세기 2장 23절에서 나온 겁니다. 이런 가사입니다.
그대를 사랑하겠소 딴 여잔 보지 않겠소
수많은 여자 중에 당신이 내 아내라서
너무나 행복하오
당신을 존중하겠소 딴 남잔 보지 않겠소
그 많은 남자 중에 당신이 내게 와줘서
너무나 감사하오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아름답게 창조하셨어요. 그 다음에, 28절에,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창 1:27-28a] ...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28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God blessed them)...
하나님은 부부가 된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놓치곤 합니다.
여러분, 복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삶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의 임재라는 면에서 영적이고 신령한 복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복은 생육과 번성이라는 육체적 생명의 충만함을 포함합니다.
성경적인 복은 영적이면서 현실적입니다. 주기도문에서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거든요. 복은 영적이면서도 현실적이며 일상적입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다고 했지요?
[요 10: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
생명을 얻고 넘치고 풍성한 생명, 주 안에서 충만함을 누리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병에 들린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영혼만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신을 포함한 총체적인 구원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복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의 모든 삶에 함께 임재하였기에 그들에게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들이 하는 모든 영역에 번성하고 형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 복을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결혼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창세기 1장 31절입니다.
[창 1:31]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에는 세상의 피조물을 포함하여 남자와 여자, 그리고 결혼, 그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습니다. 개정판 번역에는 “심히 좋았더라.”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많은 가정들이 하나님이 주신 행복한 결혼의 복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결혼을 향한 복이 사라진 이유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했던 가정의 모습은 불과 창세기 3장에 가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며 좋아했던 신혼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대신, 상대방을 비난하고 당신 책임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갈등관계로 전락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설계하신 행복한 결혼의 기초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기에 하나님이 만드신 원리와 기초를 따르지 아니하면,
결혼 생활은 결코 유지될 수 없고 유지된다고 할지라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행복한 결혼의 기초가 되고 매뉴얼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결혼을 세우지 아니하면,
결혼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휘발유 자동차가 문제없이 오래도록 달리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뭘까요?
간단합니다. 옥수수유도 아니고 올리브유도 아니고 경유도 아니고, 휘발유를 넣으면 됩니다.
물론 엔진오일도 갈고 브레이크 패드도 갈고, 정기적으로 철저하게 점검해야지요.
그러나 이 기본 중의 기본은 바로 휘발유 차량에는 휘발유만 넣는 것입니다.
이 조건을 어기면, 그 차는 달릴 수가 없고, 결국 엔진도 망가집니다.
예전에 민솔이가 더 어렸을 때 레고 스타워즈 비행기를 만든 때가 있었습니다.
작은 비행기였는데, 거기에는 레고 조립 설명서가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도 졸업하고 대학원도 졸업했으니 설명서 없이 레고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만들 수는 있지요. 그러나 레고 박스에 그려진 그 모습은 아닐 겁니다.
차라리 6살짜리 민솔이가 설명서가 있으니 저보다 더 잘 조립할 수 있었습니다.
장난감조차도 설명서 없이는 박스에 설계된 디자인 그대로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가 결혼이라는 집을 그렇게 짓습니다. 하나님의 복된 결혼에 대한 기초도 모른 채
결혼이라는 집을 지으려 하다가 무너집니다. 행복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결코 복된 결혼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위에 결혼이라는 집을 지어야 합니다.
물론 믿는 가정에도 비가 오고 홍수도 나고 바람도 부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말씀의 반석 위에 세우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 7:24-27] 24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5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7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만일 여러분들의 결혼과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면 마귀의 공격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가정에도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요.
마귀의 공격이 있어요. 그러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귀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겁니다.
근본 원인은 행복한 결혼의 기초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신의 마음대로 결혼이라는 집을 지으려던 가정들이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연이 아니에요. 말씀에 나온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을 거부한다면, 결혼제도는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건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아내는 사라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자녀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도 자녀를 낳지 못하자,
사라가 남편에게 여종 하갈을 보냅니다. 이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호통쳤지요?
“우리가 부부인데 이게 무슨 짓이오? 게다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기다려야 하지 않겠소?” 막 이렇게 호통쳤지요? 아닙니다.
[창 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하갈의 몸을 빌려서,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따랐다.
아내의 말에 “아멘” 그대로 순종하더라.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아닙니까?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매 “그도 먹은지라”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가족의 불화입니다. 하갈이 임신하자 여주인 사라를 깔보기 시작한 겁니다.
불화만 온 것이 아니라, 사라의 이 계획으로 인해 사라 자신의 잉태도 늦어졌습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이후, 13년간 아브라함에 대한 역사기록은 없습니다.
그 기간만큼 약속은 지연된 겁니다.
갈등, 불화, 다툼, 약속의 지연,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많은 가정들이 복된 결혼을 누리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처럼 독립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마치 그들이 서로 노력하면 유지될 수 있는 상호 합의 관계 정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단지 사회적 관계도 아니고 법적 관계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마 19:4-6] 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것과, 5 그리고 그가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서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것을, 너희는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6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의미는 결혼은 영적인 관계라는 뜻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결혼을 그저 종이에 쓰인 상호 간의 법적 관계로만 여겼습니다.
당시에 남편이 아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아내에게 문제가 있으면 이혼증서를 써서 헤어지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것이 합법적이죠? 물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지 못했느냐? 너희가 결혼에 대한 설계도 말씀을 모르는구나?
결혼은 상호 간의 합의도 아니고 단지 법적 관계도 아니며, 영적인 관계임을 모르는구나?
두 사람을 하나님이 묶어 주신 것, 결혼의 본질은 영적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결혼의 본질이자 행복한 결혼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이 결혼을 창조하실 때 복을 주셨어요.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은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혼돈하고 공허하던 곳에 빛과 질서를 가져온 그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리고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불어넣어진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그저 과일 하나 먹겠다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어깁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 없이 우리의 힘으로 결혼을 지탱하겠다고 하자,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두려움이요 분열과 비난, 정죄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령, 하나님을 소멸치 말라고 했습니다.
[살전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은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기본적으로는 "불을 끄지 말라"는 뜻입니다.
영어 표현에는 마치 소화기로 불을 끈다, 물을 부어 불을 끈다라는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 질식시켜 꺼지게 하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은 성령의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혼 생활에서 성령의 능력이 사라지고
결혼 생활에서 성령의 감동과 활동과 역사가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둘을 하나 되게 하신 그 성령의 능력과 감동과 활동과 역사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부부 관계는 차갑게 식어 버립니다. 부부 관계가 차갑게 식고 멀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 부부 가운데 역사할 수 없도록 소멸된 결과입니다.
아니 어쩌면, 시작부터 모래 위에 결혼이라는 집을 지은 결과입니다.
가정에서 언제 성령이 마치 불이 꺼진 것처럼 소멸되나요?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불순종할 때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을 때입니다.
선악과 사건의 본질은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부부 중 어느 한 명이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될 때, 하와처럼,
그 가정의 성령의 불은 서서히 꺼져갑니다.
그렇기에 한 명이라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 우리가 어느덧 우리 결혼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했구나.”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말씀을 믿지 않으며,
우리의 결혼 생활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과 그분의 임재를 인정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행복한 결혼, 복된 결혼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무너진, 행복한 결혼의 기초를 회복하고자 주님이 오셨어요.
예수님께서 전하신 공식적인 첫 설교는 공교롭게도 복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입니다. 5장 3절을 읽어볼까요?
[마 5: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당시, 예수님은 무너진 사회에 오셨습니다. 여전히 나라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까 나온 대로 아내를 대하는 남성들의 불의한 태도 때문에 결혼 제도는 거의 붕괴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오셔서 그 사회와 가정에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을 회복시키고
기쁨의 충만함을 되찾아 주려고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어떻게 하면 완전히 축복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삶에서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행복하고 복된 결혼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3절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나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 없이는 내 영혼이, 우리 가정이 텅 빈 인생임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를 묘사할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비유 중 하나는 주님은 양을 기르는 목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양이라 부르십니다. 양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철저하게 목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자에게 의존하는 양은 삽니다.
저희 집에도 어린 양 한 분이 계십니다. 길치입니다. 신기하게도 열이면 아홉,
가야할 방향과 반대로 갑니다. 그런데도 꼭 앞서 가는 양을 보며 왜 주님이 우리를 양이라고 불렀는지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저에게는 이 길 잃은 어린 양을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
다윗이 고백합니다. 나는 양이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그분이 인도하십니다. 3절에,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는 것은 다시 살린다는 겁니다. 히브리어 슈브라는 이 단어는 원래의 지으시고 창조하신 모습대로 회복시키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흥(revival)이라는 말도 revive. 다시 살린다, 여기서 나온 단어이지요. 다시 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죽어가던 가정을 살릴 수 있는 분,
약속하신 행복한 결혼을 소생시킬 수 있는 분도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축복보다는 저주가 더 많았다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 꼭 기억하시고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복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갈 3:13-14]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는 모두 저주를 받은 자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4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를 창세기의 축복으로,
구약의 완전한 축복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사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의 축복이 이방인에게도 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서 저주를
거두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창 24: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그의 인생을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이었고 예수님은 그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이 바로 지금 여기서 그들의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천국은 먼 미래의 것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로 인해 아직 완전하지는 않아도 이미 와 있습니다.
작년 행복플러스에 참여하신 부부 중에 큰 위기 상황 가운데 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고 행복했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이 깨어질 위기에 처하고,
사업도 무너지고, 3번의 유산을 겪는 모든 과정을 겪게 된 겁니다.
그리고 2년간 서로 헤어져 지내게 되는 아픔도 겪습니다.
사실 남편은 회사 때문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상황을 열어주셔서 부부가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이 가정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하나님이 남편과 아내에게 알려주셨어요.
남편은 결혼은 그저 세상에서 말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라고, 사회적 계약과 같은 것이라고 여긴 것이었습니다. 결혼이 영적인 관계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더 나아가 아내와 자신이 한 몸임을 알지 못했던 겁니다. 부부가 이렇게 고백했어요.
“가정에게 일어난 모든 위기와 아픔이 하나님 안에서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며 고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아픔의 시간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가정으로 세우시기 위한 훈련의 시간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는 믿음 위에, 말씀 위에 바로 세운 가정으로 주님께 존귀하게 쓰일 그 날을 기대합니다.
앞으로 많은 시련과 시험이 있을지라도 오늘 두 손 맞잡은 손과 이 마음을 기억하며
사랑하며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헤어져 살던 기간, 세 번의 유산의 아픔,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가정에 회복을 주셨습니다.
올해 첫 생명을 주셨어요. 부부가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이죠.
심령이 가난하여 매주 신실하게 예배하며 주님만 의지하는 가정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한 결혼의 기초를 회복하십시오.
심령이 가난한 자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음성만을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가정은 위기를 만날지라도 무너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