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나는 아이가 짜준 여행 계획에 맞춰서 부산 여행을 했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을숙도를 가고 싶어서였다. ktx를 타고 가는 여행은 풍경을 즐기며 지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고 또 빨리 달려서 시간 단축이 되어서 좋다. 새벽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어젯밤에 챙겨 놓은 짐을 메고서 서울역으로 향했다. 모처럼 일찍 일어나 아무도 가지 않은 새벽길을 걷는 기분은 상쾌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기운이 생기는 그런 느낌을 주었다. 오래간만에 서울역에 갔더니 부지런한 사람들은 다 이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꼭두새벽부터 어디를 가는 사람들이 저리도 많이 붐비고 있는지 참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플랫폼을 따라 내려가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라 전광판을 뚫어지게 확인하고 8번 홈으로 내려갔다. 곧 열차가 들어온다는 방송이 나오고 가까운 곳에서 경적이 울렸다. 열차표를 확인한 사람들은 각자의 승차 문을 찾아서 잘도 입실했다. 좌석에 자리를 잡은 나는 딸과 떠나는 오붓한 여행길이 무탈하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를 하느님께 맡기고 즐기기로 했다. 딸은 알까? 내 마음이 너와 함께여서 더 행복 하다는 것을….
쉴 새 없이 지나가는 풍경들이 점점 부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옛날 같으면 묻고 물어서 길을 찾아 가지만 요즘은 네이버에 검색만 하면 다 알려 주니 여행길이 두렵지 않다. 딸아이가 예약한 호텔을 찾아가는 것도 부산역에서 을숙도를 찾아가는 것도 지하철이 있어 여간 편한 것이 아니었다. 4시간 이상을 달려왔더니 그새 배가 고프고 또 부산에 왔으니 밀면을 먹어야 한다는 딸의 말에 우리는 어중간한 아점을 역 근처 식당에서 밀면으로 해결했다. 냉면보다는 더 굵고 쫀득하고 고소한 맛이 났다.
어쨌든 식사도 했으니 목적지인 을숙도를 가야 한다. 지하철로 내려가 을숙도로 가는 전철을 탔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그곳에 가면 철새를 만날 수 있을까? 부푼 가슴으로 유람선을 타러 갔다. 낙동강 바람에 머리카락 휘날리며 달려가는 기분 상쾌한데 강에는 철새 한 마리보이지 않았다. 고작 저 강 언덕에 왜가리 한 마리 노닐고 있을 뿐이었다. 낙동강의 발원지는 태백시 황지연못에서 시작했다는데 그 길이가 낙동강 하구까지 천 삼백 리라고 한다. 깊고 넓은 강에 철새들이 떼지어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 많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길이 없었고 실망한 마음은 감출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사연은 에코 센터에 와서 소책자를 보고 풀렸다. 하굿둑을 건설하고 쓰레기 매립장을 조성하고 2차 매립장이 또 생기고 을숙도대교까지 준공되면서 철새들은 보금자리를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철새들이 떠난 후에야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깨닫고 생태공원의 조성과 인공습지를 만들어 철새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창공을 나는 철새 떼의 무리는 보지 못했지만, 점점 을숙도로 돌아올 새들을 생각하니 희망이 보였다. 이번 여행에는 에코 센터에서 박재 된 을숙도의 다양한 조류들을 본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낙동강을 끼고 맥도 생태공원, 대저 생태공원, 화명 생태공원, 을숙도 철새와 생태공원이 있었는데 하루에 다 돌기란 무리였다. 겨울에 오면 철새를 볼 것이고 봄에 오면 화려하게 피어난 벚꽃 잔치를 보겠지. 우리는 부산지역의 관광지를 더 둘러보기 위해서 아쉬운 을숙도의 여행을 마무리해야 했다.
딸은 낙동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을숙도 생태공원을 거닐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냥 나무를 보고 꽃을 보고 을숙도의 과거의 흔적들을 보고 사진을 찍고 엄마와 숲을 거닐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을 얼마나 오래도록 기억해 줄까?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거 같은데 말이다.
저 멀리 강 건너가 화명동이라는데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저기 어디쯤 살고 있겠지. 비록 SNS에서 알게 된 사람이지만 바로 코앞에 왔으니 안부라도 물어야겠다. 전화기를 꺼내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버튼을 눌렀다. 화가님은 점심 식사로 피자를 주문해서 들고 계셨다. 요즘은 외국 문화가 많이 들어 와서 나이 드신 분들도 외국 음식을 잘도 드신다. 가까운 곳에 왔으면 다녀가라고 하셨지만 나도 일정이 있어서 다음을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또다시 이곳에 올 수 있기를 빌며 낙동강 푸른 물결을 뒤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