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이 미사는,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믿음과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를 당신 곁으로 불러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릅시다.
본기도
주님,
저희를 한결같이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보살피시니
저희가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사랑하게 하소서.
제1독서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 욥기의 말씀입니다.38,1.8-11
1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
8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그것이 모태에서 솟구쳐 나올 때,
9 내가 구름을 그 옷으로, 먹구름을 그 포대기로 삼을 때,
10 내가 그 위에다 경계를 긋고 빗장과 대문을 세우며
11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할 때에 말이다.”
제2독서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5,14-17
형제 여러분,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리스도와 동행하면 벌어지는 일
오늘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입니다. 이건 예수님의 말씀이고 명령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평생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는 일을 해 왔습니다. 너무 쉽게 본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거센 폭풍이 닥치자 겁을 먹습니다. 그제야 겸손해져서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파도를 가라앉히시고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내가 가자고 했지, 너희가 가려고 한 것이니?”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내 일인데 왜 너희 일처럼 걱정하고 두려워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수 저쪽으로 가자고 하신 말씀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면 이러한 일을 계속 겪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일을 통해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독서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라고 하는 말씀과 같습니다.
저도 『하.사.시.』를 읽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라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상황은 제자들과 같았습니다. 나의 일이 되지 않았을 때는 사제가 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제가 되기 전에는 어떤 사제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되려다 보니 걱정과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풍랑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거였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내 안의 주님을 깨웁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는 매일매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체를 통해서는 내가 하느님의 모든 것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제가 되어 느끼는 것은 내가 사제가 되는 과정에서 주님께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주님의 뜻을 따를 때는 주님께서 “내 일인데 네가 왜 걱정하니? 그렇게도 믿음이 없니?”라고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한 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일어납니다. 한 번에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유학하러 갈 때도 그랬고 교구청이나 본당에 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시키는 일은 그 이전에는 쉽게 보이지만, 막상 하려면 어렵습니다. 이런 과정이 자주 반복될수록 이젠 갈등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만큼 조금씩 겸손해지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됩니다. 점점 예수님의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싶거든 이 원리를 역이용하면 됩니다. 먼저 나에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 길을 선택해서 갑니다. 그러며 주님께서 맡겨주셨으니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서주십니다. 이때 내 안에 그저 주무시는 주님이 아닌 능력자로서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로라 윌킨슨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올림픽 다이빙 10m 플랫폼 여자부에서 미국에 36년 만에 금메달을 안겨준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올림픽 출전 3개월 전에 오른쪽 발뼈 부상으로 7주간 병원에 누워있어야만 했습니다. 코치는 올림픽 출전 불가를 선언했지만, 그녀는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였습니다. 중국이 16년 동안 강세가 이어지는 여자 다이빙 종목이었습니다. 총 5차전에서 2차까지 5위였습니다. 선두와 60점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3차전에 최고 점수를 얻어 순식간에 선두와 격차를 줄인 대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카메라는 그녀에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다이빙대에서 서서 도약 직전까지 계속 무언가 중얼거렸습니다. 그녀가 중얼거린 것은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4,13)”였습니다.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대역전의 비결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녀는 울먹이며 “저에게 능력 주시는 분이 이 일을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사.시.』 7권 228장에서 예수님은 “착한 소원은 하느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런 소원들을 일으키시는 것은 그 소원들이 실현되기를 원하신다는 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라고 하시며 당신을 드러내려 하십니다.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 참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엘리노어 루스벨트 전 영부인은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평범한 사람들은 사건을, 속 좁은 사람들은 사람을 주제로 이야기합니다.”
큰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많은 이가 사람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도 소위 ‘뒷담화’를 통해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뒷담화는 아이디어를 일으키는 말도 아니고, 일에 대한 말도 아닌 속 좁은 사람의 말일 뿐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속 좁은 사람이 많은가를 깨닫습니다. 저 역시도 친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종종 속 좁은 사람이 됩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제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또 사랑받는 것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속 좁은 사람의 길을 향하곤 합니다.
이제는 아이디어를 주제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 말할 때도 인정, 칭찬, 사랑을 담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지길 원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속 좁은 모습이 아닌, 위대한 모습을 갖춘 우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주님의 마음을 다시금 새겨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의 실천은 우리의 속 좁음을 사라지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질 수 있는 우리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줍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처럼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저어 가다가 풍랑으로 죽을 지경이 이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맘 편안히 주무시고 계시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이제까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놀라운 기적을 직접 보고 체험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만 가지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에, 그리고 자기들의 죽음에만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집니다. 이렇게 제자들을 구해주십니다. 그리고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며 꾸짖으십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져야 하는데, 제자들처럼 사건만 또 사람만을 바라보면서 평범하고 속 좁은 사람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춘 사람은 하느님의 일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을 충실하게 실천하게 됩니다. 망설임이 있을 수도 없고, 또 두려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일을 하는 기쁨 안에서 지금을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의 유일한 한계는 우리 스스로 마음으로 설정한 것들이다(나폴레온 힐).
사진설명: 젊은이들이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게 꽃을 피워내는 과정을 꽃봉오리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 성김대건성당의 스테인글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