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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인도네시아 롬복의 트라왕간 섬. 1월에 휴가로 인도네시아에 다녀왔습니다. 12월에 로마 출장이 잡혔었는데, 겨울에 안 그래도 추워 죽겠는데, 같은 겨울에다가 비까지 많이 오는 이태리로 출장이 잡힌 것이 우울해서, 출장 끝나면 놀러가려고 자카르타행 비행기표를 사뒀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필리핀보다 남쪽인 휴양지는 안 가봤었거든요. 그래서 모르고 덥썩 뱅기 표를 사뒀었는데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1월이 우기라고..... 그러네요. 우기라고....
전에 사이공에 우기일 때(7월) 갔다가 식중독 걸려서 3, 4 일만에 4키로 빠진 적이 있었는데,
네팔도 비 많이 오는 계절에 갔다가 바이러스 감염되어서 한 달이나 고생했었는데...
인도네시아도 우기랍니다.
그래서 사진들이 좀 어두컴컴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아직 배 아픈 중입니다.
(청결 레벨이 높은 북유럽이나 한국, 이런 데서 동남아시아 우기일 때 놀러가서 오래 있으면 이런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크게 아픈 건 아니고요, 그냥 배가 약간 아프고, 열이 약간 나는 정도?? 일상생활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만 기분은 안 좋지요)
대신, 동남아에 우기에 가면 좋은 점도 있어요.
좀 덜 탄다는 거.
먼저 자카르타에서 곧바로 롬복으로 가서, 거기서 한 일주일 쉬었습니다. 가서 편하게 놀고, 술이나 한 잔씩 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국가인 것은 알거든요. 이슬람교가 국교가 아닌 것도 알고요. 그래서 터키처럼 생각했었는데
근데 터키하고는 영판 다르더라는 겁니다. 술 파는 데가 없어요. 물론 레스토랑에서는 팔지만, 호텔도 좋은 데 아니면 술이 없고요, 다른 물가에 비해 비교적 비싸기도 하고....
그래서, 술 없는, 몸에 좋은 휴가를 보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휴가인데요,
하루는 일찍 일어나 해변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이 두 줄로 앉아서 뭘 땡기고 있더라고요. 뭐지? 뭐지? 설마 그물?? 이러면서 가까이 갔습니다.
그물이 맞습니다. 이 그물 땡기는 작업에는 마을 아이들까지 총동원되었더랬습니다. 저도 좀 땡기다가 그물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방해된다 하여서 이제 사진만 찍는 중, 여기서부터는 무작정 당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필요하대요.
다 같이 빙 둘러서서 그물을 돌리는데요, 그러면 그물이 펴집니다. 그런데, 고생한 것에 비해 수확이 적네요. 해파리가 반이었고, 작은 물고기들이 많았습니다. 큰 놈들은 요리를 하고요, 작은 놈들은 피쉬소스 만드는 데에 씁니다.
롬복은 발리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입니다. 윤식당 시즌 1에서 보았던 트라왕간 섬이 바로 롬복 섬에 딸려 있는 아주 작은 섬인데요, 섬을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에는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방송에서는 아마도 발리를 기준으로 해서 그 위치를 설명했었던 것 같은데, 롬복 섬은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랬던 듯합니다.
롬복 섬은 아주 큽니다. 공항도 따로 있고요, 저희는 셍기기 비치에 호텔을 잡았었는데, 공항에서 셍기기 비치까지는 차로 서너 시간쯤 걸립니다. 셍기기에서 다시 버스로 한 시간쯤 가면 배 타는 곳이 나오고, 거기서 배로 한 시간쯤 가면 작은 섬 세 개가 나옵니다. 그 중 가장 큰 섬이 길리 트라왕간이고, 거기가 바로 윤식당 촬영지입니다.
롬복에서는 논 것 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일이 없었으므로 생략
그 다음에 저희는 비행기로 수라바야라는 도시로 갑니다. 자바 섬에 있습니다. 수라바야는 별로 볼 것이 없고요, 수라바야를 가는 이유는 바로 브로모 화산으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가는 경로는 좀 복잡합니다.
저희는 롬복에서 갔는데, 보통은 자카르타 - 수라바야 - 프로볼링고 - 세모로 라왕 - 브로모
이런 복잡한 순서를 거쳐서 가게 됩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은데요, 수라바야에서부터는 한국인 정도가 아니라 동아시아 사람은 저희밖에 없음.
저는 브로모와 이젠 화산을 한 번 더 가라고 하면 절대 안 간다고 버틸 생각인데요,
너무 고생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우기에 가서 그런 것이고, 건기에 가게 되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요.
그리고, 산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가볼 만한 곳이기도 합니다. 지구상에서 화산을 이렇게 정확히 볼 수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는 듯합니다. 제가 모든 화산을 다 가 본 것은 아니지만, 갔던 화산마다 모두 다 그 투어를 실패했었거든요.
2009 년, 칠레 푸콘 화산 - 기후 악화로 실패
2011 년, 아이슬란드 화산 투어 -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실패(항공기 자체가 한동안 안 떴었어요)
2011 년, 시칠리아 에트나 화산 - 기후 악화로 실패
2013 년, 시칠리아 에트나 화산 - 역시 기후 악화로 실패
2017 년 베수비오 화산 - 기후 악화로 실패
그런데....
저기 모든 화산들이 전부 다 조심성 많은 나라들에 속해 있는지라...
물론, 그때 기후들이 어마어마하기도 했었습니다. 까딱하면 눈보라에 사람도 날아갈 수 있을 정도. 그러니 당연히 길은 눈에 파묻혔고, 도중에 내려올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번 인도네시아에서는 성공한 듯합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시즈오카 현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다행히 일본은 안 가도 될 듯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쓸데없는 오기였던 것 같긴 하지만요 ㅎㅎ
암튼, 이 글의 목적은 자바 섬의 이젠(Ijen) 화산을 알리는 데에도 있습니다.
저희는 수라바야에서 버스를 타고 프로볼링고라는 곳으로 갑니다. 꽤 오래 걸립니다. 이럴 거면 그냥 프로볼링고에 공항을 만들든지, 아니면 직행 버스를 만들어도 될 듯한데요, 그런 불평을 할 때는 제가 인도네시아 1인당 국민소득이 몇천 불은 되는 줄 알고 있었을 때입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까 900불이 좀 넘네요. 교통이 불편할 만도 합니다.
그런데, 자카르타를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900불이 좀 넘는다는 사실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나요? 아마도 도농간, 개인간의 소득 편차가 아주 심한 모양입니다. 저는 진짜로, 인도네시아가 베트남보다 잘 사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제 일행이 베트남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처럼 잘 살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라며...(중국은 안 되어도, 베트남은 될 거라고 전망한다네요. 중국은 떠안은 문제들이 너무 많고 커서요. 확실히 베트남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욕구가 크긴 하죠.) 하여튼 그런 나라라며, 제가 무식하다고 엄청 구박했었습니다. 하여간 베트남은 다르대요.
여러분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생을 해서, 브로모 산에 도착했습니다. 타격이 될 정도로 충격적인 숙소와, 숙소에서 일하는 분들의 상식밖의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진짜 경치는 무척 좋았습니다.
한데, 저희가 브로모 산에 갔을 때에는 내내 비가 왔어요. 비가 안 왔으면 훨씬 더 좋은 경치를 멀리까지 잘 볼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저는 또 가고 싶지는 않다는 거.... 그만큼 숙소가 힘들었거든요.
우기인데다가, 산속이라... 침대를 만져보면 그냥 물이 배겨 나옵니다. 저희가 한 시간 동안이나 난리를 쳐서, 직원이 매우 느리게 움직이며 침대 시트를 갈아줬는데요, 저녁 먹고 돌아오니까 말짱 도루묵으로, 그냥 젖은 옷 입고 자는 것 같은 느낌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혹시 흥미가 생겨서 가시려거든, 반드시 건기에 가세요. 우기는 정말 어쩔 수가 없습니다. 건기는 식중독 염려도 없고요.
숙소입니다. 사진은 뭐 되게 분위기 있어 보이네요. 장국영 주연의 아비정전 같은 홍콩 영화에 나오는.... 그런 집 같기도 하고요.
처음에 저희한테 줬던 방은 진짜 들어가기가 꺼림칙할 정도로 젖은 방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여기서는 못 자겠다 하고, 직원한테 난리도 치고, 저희 맘대로 열쇠를 가져다가 이방 저방 열어보고, 그나마 좀 나아 보이는 방에 짐을 풀었는데요,
그 다음날, 마을 사정을 보니까 저희는 너무나도 못되게 굴었던 것이었더라고요.
물론, 이 마을에는 이것보다 나은 숙소가 하나 더 있긴 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이미 발리에서 온 단체 관광객으로 방이 하나도 없었고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것보다도 훨씬 더 못한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새벽 세 시에 가이드가 저희를 깨웁니다.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게 하기 위해서인데요, 비가 와도 상관없이 그냥 깨웁니다.
보통 비 오면 그런 일정은 취소될 텐데요,
일정이 취소되면 환불을 해줘야 할까봐서 비가 오거나 말거나 그냥 진행합니다.
여행객 대부분은 유럽에서 온 사람들인데, 유럽 사람들은 자연 현상 때문에 취소되는 것에는, 심지어 비행기 결항이라도, 환불을 안 해준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비와서 일정 취소하고, 환불 안 해줘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전망대에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일출은 커녕 아무 것도 본 것이 없고요,
그 다음에는 분화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막 같이 생겼는데, 저것은 모래가 아니고 화산재입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불교인지 힌두교인지의 사원이고요, 사람들은 저의 일행입니다. 네덜란드 사람 한 명(삼성에서 일한답니다), 프랑스 사람 두 명, 미국인 한 명입니다.
이렇게, 용암이 흘러내린 자국들을 지나서....
어느 지점에 가면 갑자기 이런 계단이 나옵니다. 중간에 쉬는 참도 없이 그냥 쭉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드디어 나타난 분화구.
저는 높은 데를 무서워해서 올라간 자리의 난간에만 딱 기대어 있었는데요, 일행들 말이 한 바퀴 돌다 보면 이 반대편으로 유황 연기가 올라오는 것도 보인대요.
사진은 입체가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사진에서 보는 분화구를 보면 얼마 안 깊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거의 낭떠러지처럼 70도 이상의 각도로 저~~~ 아래 깊이까지 파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요. 실제로 보면 무섭습니다.
내려가는 길. 위 사진의 분화구가 이 정도 경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사진은 계단이 있어서 얼마나 경사가 급한가를 짐작할 수 있네요.
그리고, 다음 날
저희는 이젠 화산으로 갑니다. 차로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는데요, 인원 수 맞추느라 이리저리 갈아 태우고, 기다리고, 해서 실제로는 열 시간쯤 걸려서 왔습니다.
브로모에서 내려왔을 때가 아침 여덟 시쯤인데요, 이젠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여섯 시쯤입니다. 중간에 점심도 먹고 해서요.
저희가 묵었던 곳은 아라비카 홈스테이라는 곳인데, 이젠을 들르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가는 숙소입니다.
규모는 브로모의 숙소보다 컸지만, 자는 방은 거기나 여기나....
그나마 브로모에서 한 번 겪었다고, 좀 마음의 여유가 생겼더랬습니다.
가져간 베드버그 죽이는 스프레이 한 통을 다 쓰고 잤습니다.
스프레이 뿌릴 때에, 이미 죽은 베드버그를 발견해서 무척 마음이 불편했었는데요,
그래서 후일을 생각하지 않고 스프레이 한 통을 다 쓴 것입니다. 이젠의 다음 행선지는 족자카르타인데, 거기 숙소는 5성 호텔로 했었거든요.
다행히, 베드버그는 더 나오지 않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벌레들한테 몇 군데 물렸습니다. 습한 날씨에, 침대에서 물린 거니까 뭐 벼룩이나 빈대나 그런 것들이었겠지요.
숙소에서는 밤 열두 시쯤에 저희를 깨웁니다. 그리고 한 시쯤 걸려서 이젠 화산 입구에 도착합니다. 그 다음부터 화산 등산이 시작됩니다. 중간중간에 유황 냄새를 맡을 수가 있는데요, 일정한 지점까지 가면 가스마스크를 대여해 주는 데가 있어서, 가이드가 사람 수대로 마스크를 가져다가 직접 씌워 줍니다. 마스크를 쓰고 나면 숨 쉬는 데에 좀 힘이 들고요, 안 그래도 습한데, 더 습해집니다.
이젠 투어의 목적은 블루 파이어라는 것을 보는 것과, 칼데라 호를 보는 것입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에, 저는 그 블루 파이어라는 것이 동굴 같은 데에 있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 동굴이 산 속에 있어서 많이 걷는 건 줄 알았는데요,
어느 지점에 이르면 가스 마스크를 쓴 후에, 산의 능선을 따라 걷습니다. 그러면 얼마 안 가서 다시 내려가는 길이 나옵니다.
이런 길....
시간은 새벽 세 시나 네 시쯤 되어서 캄캄하고요, 바로 발밑 외에는 주변은 잘 안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손전등 불빛으로, 내려가는 길이 거의 직각에 가깝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난간도 없고, 다른 안전 장치도 없어요. 낮에 갔으면 저는 못 갔을 듯합니다. 블루 파이어라는 게 낮에는 안 보이기 때문에 밤에 가는 것도 있지만요, 그럴 거면 전날 오후에 내려가서 있다가 어두워지면 그것을 보고 난 후에, 깜깜할 때 올라와도 될 것 같죠. 올라가는 것은 내려가는 것보다 덜 무서우니까요. 그러나, 내려갈 때에 이 길 주변을 보게 되면 진짜 무서워서 못 내려갈 것 같습니다.
이게 바로 그 블루 파이어라는 건데요, 저는 이제쯤이면 제가 분화구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행들은 도로 나올 때까지 거기가 분화구 안이라는 것을 몰랐다네요??
제 카메라가 후져서, 사진은 저렇게밖에 안 나왔지만요, 엄청 좋은 카메라 장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 분화구 안의 사진은 다 제가 찍은 것보다 못 나왔습니다. 제 핸드폰 카메라에 저조도 촬영 기능이 있거든요. 약간 좋은 디카로 찍은 것보다 제가 찍은 게 더 잘 나왔어요.
저는 더 가까이는 가지 못해서, 사진 속의 불길은 작아 보이는데요, 실제로는 수 십 미터는 치솟는 불길입니다. 한 번 불길이 치솟을 때마다 사람들이 우와~~~ 하고 소리를 질러요. 그리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엄청난 유황 연기가 무리를 휩쓸고 지나갑니다.
저때 입었던 모든 옷에서 아직도 유황 냄새가 작렬하고요, 벌써 몇 번 세탁했거든요? 그리고 지니고 있었던 모든 금속(금 빼고)은 전부 다 색깔이 시커멓게 변해버렸습니다. 저는 유독 은을 좋아해서, 가지고 있던 묵주도 은이었는데 그것도 까맣고 반들반들하게 변했어요. 좀 당황스럽긴 했습니다만, 화산의 기념으로 도리어 맘에 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ㅎㅎ
저는 저기에 쭈그리고 앉아서 유황 연기를 온 몸에 뒤집어 쓰고, 연기가 심할 때에는 가스 마스크도 소용이 없는데요, 하여간 뒤집어 쓰고, 저 불길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거이 바로 지옥이구나.... 착하게 살아야겠다.
그런데 제 친구 한 명은 저 때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내가 이걸 보려고 내 돈 내고, 쌩고생 해가면서 젖은 침대에서 자고, 밤 열두 시에 일어나서 네 시간이나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왜 그랬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네요.
올라오는 길은 내려가는 길보다 수월했습니다. 분화구 안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제가 제일 빨리 올라왔어요. 내려갈 땐 한 시간 넘게 걸렸었는데, 올라올 때에는 20분. 제가 운동 좀 해서... ㅎㅎ
다 올라오자마자 찍은 사진이고요, 사진의 왼쪽 가운데쯤에 보면 나무들 같은 게 보이는데, 그게 제 뒤를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입니다. 그게 끊겨 보이는 지점에서부터 직각이다시피 해서 내려가는 길이 있어요.
능선. 화산의 마그마로 생성된 산이라 마치 흘러내리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요.
저 형광 주황색 반바지는 제 일행 중 한 명입니다. 런던에서 온 토마스~
빼빼 말랐는데요, 몸이 가볍고, 원래도 하이킹을 좋아했다고 해서 그런지, 아주 날아다녔습니다. 영국 사람답지 않게 사고방식도 많이 트였고, 아무 거나 잘 먹고요. 참 재밌고 훌륭한 청년이었지요.
일행 중 다른 한 명은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요, 이젠 가는 길에 버스에서 그가 말하길...
"내 친구 중에 이젠 화산에 다녀온 애가 말해주는데, 자기가 여태 가 본 하이킹 중에서 가장 위험한 하이킹이라고 그러더라고. 근데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 흠... 인터레스팅!"
이런 허세를 부려대더니....
겁 없는 사람답게 내려갈 때에는 토마스하고 경쟁이 붙어서 휘적휘적 내려가더니 올라올 때에는 헉헉대며.... 그랬지요. ㅎㅎㅎ
사실은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아요. 한국은 산이 많아서 돌산에서 내려가는 법쯤은 누구나 잘 알잖아요. 어떤 돌을 밟으면 되고, 어떤 돌을 밟으면 굴러 떨어지는 지도 금방 알죠.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이 없는 나라에 살아서 그런 거 잘 모릅니다. 더치 친구들하고 산에 가다 보면 그렇게 탄탄하던 애들이 종종 등산로에서 잘못된 스팟에 발을 디뎌서 데굴데굴 굴러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저 네덜란드 사람이 도시락으로 달걀을 먹다가
"난 유럽 밖에 나와서 달걀 같은 거 먹을 때는 좀 불안해..."
이런 말을 했었거든요. 그 말 했다가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이 바보야, 여기 달걀이 훨씬 좋은 거야. 닭 키우는 거 못 봤냐? 방사하잖아. 닭고기도 훨씬 맛있어! 맛이 진하다고! 뭐든지 먹을 건 더 맛있어! 얘네들은 채소도 많이 먹고... 어쩌구 저쩌구..." << 한국인, 미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ㅎㅎㅎㅎ
이러고 떠드는 바람에 네덜란드 사람은 금세 기가 죽기도.... ㅎㅎㅎ 한국인, 미국인, 독일인은 그렇다쳐도...
프랑스인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죠. 유럽 사람들한테는요.
북유럽 사람들은 희한한 게,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다른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낮더라고요. 왜 그런지....
이제 좀 밝아져서 사진이 비교적 선명하네요. 조기 끝에, 아직도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시죠. 제가 저기를 내려갔다는 겁니다.
일행들은 이제서야 우리가 분화구에 내려갔었던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 인해 다들 넋이 빠져서 멍하니 있다가요,
한 30분이나 멍하니 있다가 비로소 바로 옆의 칼데라 호를 발견하게 됩니다.
실제로 보면 되게 커요. 전 사진의 오른편에 보면 땅이 경사져 있는데, 바로 그 아래가 칼데라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으니, 저희가 얼마나 넋이 빠져 있었는지 아시겠지요.
저 연기가 바로 유황 연기고요, 사진을 찍었을 때는 유황 연기가 좀 덜 날릴 때입니다. 바람이 이쪽으로 불면 시야 전체가 다 연기로 가려집니다. 그리고... 아직도 마스크 쓰고 있는 중입니다.
이 전 사진에 보면 수레 같은 것을 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유황을 캐는 광부들입니다.
원래 이 이젠 분화구는 관광지는 아니었고요, 마이너들이 유황을 캐는 장소였습니다. 저희가 내려간 곳이 바로 유황 캐는 곳이기도 합니다. 푸른 불꽃은 그 유황 가스가 한꺼번에 분출할 때에 붙는 것이고요. 광부들은 유황을 캐다가는 조각을 해서 기념품으로 팔기도 하고, 그대로 도매상에 넘기기도 하고요, 공장에 가져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유황을 개인적으로 채굴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런 건 국가의 소유이니까요. 그러나 여기서는 아무나 가서 캐도 됩니다. 저 손수레를 끌고 올라올 때에는 관광객을 태우기도 하고요(올라가는 게 가팔라서 좀 힘듭니다), 내려갈 때에는 저기에 캐낸 유황을 싣고 갑니다. 저 수레가 바로 이젠 화산의 택시입니다.
원래는 관광지가 아니고, 유황을 캐는 곳이었는데, 그 중 한 마이너가 관광객 한 명을 데리고 내려간 적이 있대요. 그 관광객이 한 번 내려간 후에, 그게 엄청나게 광고가 되어서 지금은 아주 유명한 관광 코스가 되었습니다. 가이드들도 원래는 광부였던 사람들 중에 영어를 약간 할 줄 알고 사교적인 사람들이 가이드가 된 거라고 하네요.
올라올 때에는 깜깜해서 몰랐는데, 이젠 화산은 경치도 아주 아름답습니다.
인도네시아 있는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왔었는데요,
천만다행히, 이젠 화산에 갔을 때에는 비가 안 왔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안 와서 진짜 다행이었지요.
제 생각에는 아마 비가 와도 투어는 진행했을 것 같은데, 그랬으면 훨씬 더 힘들고 위험하기도 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저희처럼 우기 말고, 건기에 가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경치도 더 좋을 것 같고, 위험 부담도 크게 줄어들겠죠. 숙소의 침대도 말라 있을 테고요.
그러나, 브로모와 이젠 화산 투어는 현지 사람들(가이드나 드라이버 말고, 현지 여행사에서)이 약간 거짓말을 하고요, 시스템도 잘 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바가지를 쓸 가능성이 있고, 교통편이 지루하고 불편해질 수가 있어요. 혹시 이 글을 보시고 가겠다는 결심이 서신 분이 계시면 먼저 저한테 쪽지로라도 자세히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저 화산들을 가게 되면 바가지도 안 쓰고, 교통도 그나마 편하게, 그나마 괜찮은 숙소에서 묵으면서 더 잘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노하우를 전수하고도 싶은데요, 그러나 절대로 제가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아요. 다시 가기에는 저는 너무 나이가 많아요. 그런 고생을 또 할 나이는 아닌 듯합니다 ㅎㅎㅎㅎ
그치만 산 타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이 이후에는 족자카르타로 가서 보로부두르와 프람바난 사원을 보는 것 외에는 그냥 호텔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놀기만 했습니다.
화산의 숙소가 너무 힘들어서... 에어컨 딸리고 보송보송한 침구(사실은 그렇게 보송보송하지는 않았음. 우기라 비교적 습했는데도, 상대적으로 엄청 바삭바삭할 정도로 보송보송하게 느껴진 거였습니다)가 있는 방에 있다는 게 천국 같더라고요.
족자카르타는 한국 분들도 많이 여행하는 지역이니까 그냥 넘어가도록 하고요,
다음 여행지는 다시 유럽으로 잡혔네요. 이태리하고 프랑스, 그리고 아이슬란드입니다.
저한테는 유럽이 좋죠, 익숙하고, 편하게, 은행 계좌도 있어서 환전할 필요도 없고.....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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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기이긴해도~~힐링,제대로 하고오신여행이네여!!
길지만 잼나게 읽고 내로왔어여~
그네들의 실생활도 살짝 들여다보고.....숙소때메 화나신것도 보고,,웃고,ㅎㅎ
기후때메 못하신것도 많지만~~볼거리가 원체 많은 나라로 알려진곳이라~~일정이 만만치가 않아보여요~~
담 유럽여행도 일케 자세히 세세히 좀 올려주셔요~~대리만족이라도 하게여,,ㅎ
유럽쪽 여행한지가 오래되서~~~감각이 다 무뎌졌어요......................ㅎ
덕분에 저는 공짜로 편하게 구경 잘 했습니다.
우기 건기 참고도 잘 하겠습니다.
전혀 모르는 생소한 곳을 이렇게나 실감나게 보여주시고 적어주셔서
마치 chest님과 일정 내내 같이 동행을 한 후에 보송보송한 침대에 누워 추억을 하는 느낌입니다
정말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분이시군요
근무하시는 회사의 업무가 여행이신 듯..몹시 부러운 마음도 들기도 하고
정말 세계 곳곳을 여행자답게 유랑하시는 분의 진솔한 여행기를 대하며
길었던 여행일정 만큼이나 긴 이야기들을 참으로 실감나게 풀어주신 님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런 류의 여행기는 보석처럼 빛난다는..^^*
인도네시아 여행이라니 부럽습니다 저도 꼭 가보고싶네요 나중에 갈 때 참고해야겠어요~
멋진 여행을 하시는 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