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나는 집안에 있는 아이들 물건을 뭉텅 덜어냈다. 물론 아주 좋은 것으로 아이들 동의 아래. 요즘은 학용품이 흔해서 아이들이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하나 없어지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학습지 회사나 학원 같은 곳에서 흔하게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또 이렇게 저렇게 상품이나 선물로 받고 하면서 생기는 학용품들이 집집마다 조금씩은 남아도는 형편이리라 짐작한다.
우리 집엔 소미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생긴 새 학용품을 모아두는 큼직한 상자가 있다. 이 공책에 조금, 저 공책에 조금 찍찍 그어놓고 그려놓고는 더 쓰지 않고 굴러다니는 많은 공책들이 너무 아까워서 생각해낸 것인데 거긴 별 게 다 있다. 꺼내놓고 쓰는 크레파스가 세 개인데 이 상자엔 손도 대지 않은 크레파스도 두 개나 있다. 이런 걸 보면 나 초등학교 시절 ‘왕자파스 12색' 하나 사면 부러질까 없어질까 전전긍긍 아껴 쓰던 때가 생각난다. 나는 상자를 높이 올려두고 아이들이 학용품을 다 써서 떨어진 후에나 그 상자에 있는 것을 꺼내주는데, 여전히 소비하는 양은 턱없이 더디다.
그런데 언니네 수녀원의 해외선교지인 아프리카 잠비아로 ‘사랑의 박스’가 곧 출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큰 컨테이너에 일년에 한번 거기서 필요한 물품을 모아 보내는데 이번엔 6월 18일에 컨테이너를 실은 배가 출발한단다. 나는 잠비아후원회 사무실의 레오노라 수녀님께 필요한 물품에 대해 상세히 들었다. 유치원 개원에 이어 올 가을엔 수녀님들이 초등학교를 문 여는데 500여 명의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학용품들이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새것도 좋고 쓰던 것이라도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하셨다. 학교에 청소하러 갔다가 교실바닥에 우우 떨어진 연필이며 지우개가 생각났고, 교실 뒤쪽에 버려져서 모은 연필들이 한통이나 모아져서 주인을 기다리던 게 생각났다. 우리는 얼마나 풍족하고 넘치는 환경에 살고 있나… 이 500여 명의 아이들 중엔 에이즈로 부모를 모두 잃은 아이들도 아주 많다.
나는 일단 우리 집 학용품 상자에서 공책과 연필, 크레파스, 지우개, 가위, 풀, 자 같은 걸 쓸 것만 조금 두고 3분의 2 이상 덜어냈다. 그리고 거기 어린이들이 책가방으로 쓸 수 있는 이런저런 보조가방이나 신발주머니, 피아노 가방, 부직포 가방, 유치원가방들도 안 쓰는 것만 꺼냈는데도 꽤 많았다. 다시 인형바구니에 가서 사람인형, 동물인형을 할 것 없이 아이들이 애착을 가지는 몇 개만 남기고 비닐봉지에 꽉꽉 눌러 담았다.
두개씩 있는 멜로디언과 리듬악기 세트도 하나씩 덜어냈다. 아이들에게 이 물건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지도를 보며 설명해주고, 이렇게 너희들이 많이 쓰지 않고 묵히는 이 물건들이 거기 친구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게 요긴하게 쓰일지도 설명했더니, 소미소은이는 아까워하지 않고 선뜻 다 내주었다. 나는 두 아이에게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학용품이나 악기, 가방 같은 거 엄마가 버리겠다고 하면 너희 달라고 해라, 아프리카 친구들에게 보낸다고 말해라 하고 일러놓았다.
부대행사 때 받거나 결혼이나 회갑 같은 잔칫집에서 받은 수건 채 쓰지 못하고 모아진 것이 꽤 되는데 그것도 서너 개만 빼고는 거의 내놓고 비누선물세트에서 나온 비누들도 많지 않아도 반은 덜어냈다. 이런 건 어찌어찌 한 두개씩 생기니 이거 덜어 보낸다고 내 쓸 것 없을까 싶었다. 오히려 이런 좋은 것들을 성큼 덜어내니 마음이 더 가볍고 개운하고 즐거웠다. 무소유의 기쁨까지는 아니라도 소(少)소유의 기쁨 정도는 되겠다.
오늘은 우체국에 다녀왔다. 아침부터 일주일 동안 이웃들에게 광고하여 받은 옷이며 신발, 학용품 들을 살피고 손봤다. 단추 떨어진 옷은 달고 끈 떨어진 것은 꿰맸다. 중고품이라도 쓸만해야 하지 않겠나. 아이들 가방을 아파트 이웃들에게서 꽤 많이 모아준 친구, 전역하는 남편의 전투복과 군화(질기기 때문에 어른들 작업복으로 최고 좋다고 수녀님이 그러셨다)를 내준 이웃, 모두 고맙다. 차에 가득 싣고 집을 나서다가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곳 한쪽에 헌 군복수거함이 따로 있는데 거길 뒤져서 군복 네 벌과 군화 한 켤레를 끝으로 챙겼다. 우체국택배로 수녀원에 부치고 나니 뜨거운 햇볕이 정오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까지 아깝다 생각하면서도 나 역시 물건을 많이도 버렸다. 아이들 옷이나 신발은 작아지면 다른 아이들에게 물려주었고, 정말 멀쩡하고 쓸만한 것은 필요한 분 있으면 가져가시라고 메모 붙여서 내놓곤 했지만, 그렇지도 못할 때는 정말 죄스런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조금 더 빨리 ‘사랑의 박스’ 소식을 알았더라면 더 많은 물품을 모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더니, 수녀언니와 레오노라 수녀님은 아쉬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컨테이너는 1년에 한번 뜨긴 하지만 이러한 기증물품은 수녀원에서 연중 내내 기부 받아 차곡차곡 모아놓는다고 했다. 이곳을 후원하는 가수 인순이가 8월 31일에 방배동 성당에서 자선콘서트를 하는데, 그게 성황리에 잘 끝나면 가을 이전에 한 차례 더 컨테이너가 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수녀원 앞으로 물품을 보내주기만 하면, 꼭 잠비아 사람들에게 전해져 정말 요긴하게 잘 쓸 수 있다고 한다. 성당이나 공공장소에 기부함을 놓아서 모으는 방법도 있는데, 사람들이 정말 너무하게도 쓸 수 없는 물건을 쓰레기 처리하듯 갖다놓는 통에 나중에 그거 버리느라 일손이 더 많이 필요해서 그 방법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컨테이너가 도착하는 날은 온 마을이 잔칫날이라고 한다. 너도 나도 한 가지씩 얻은 물건을 들고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워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린이 유치원복을 입은 흑인어린이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돈암유치원’이라고 쓴 운동복을 입은 어린이, 계급장이 채 떨어지지 않은 헌 군복을 입은 아저씨, 부직포 가방 하나도 낡을 대로 낡아 더 이상 쓰기 어려워질 때까지 아껴쓰고 열심히 들고 다닌다는 어린이, 한글로 뭐라뭐라 쓰인 티셔츠 글씨를 보고 뭐라고 쓴 거냐고 호기심 어리게 묻기도 한다는 사람들, 쓸 수 없게 낡아져도 절대로 못 버린다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니 물건을 모으고 부치는 일이 재미있고 신이 났다. 자기 집에선 버릴 물건인데 아주 소중하고 요긴하게 쓸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것이라 하니 사람들의 호응도 좋다. 그래서 이 참에 글 끝에 큼직하게 광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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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잠비아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물품을 보내주십시오.
새것, 중고품 가리지 않습니다.
아직도 쓸 만하다 하는 것이면 연중 내내 환영합니다.
대강 평소 가장 요긴하고 긴급하고 절실한 품목을 아래에 적습니다.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
1. 공책, 지우개, 연필, 볼펜 같은 필기도구 같은 학용품 일절. (네모칸 공책과 한문공책만 제외)
2. 악기류 (피리, 리듬악기, 기타, 하모니카, 멜로디언 등)
3. 미술도구 일절(물감, 붓, 파레트, 크레파스, 색연필, 색종이, 가위, 풀 등)
4. 장난감 (봉제인형이나 동물인형류. 그 밖의 장난감. 고장 나지 않고 온전한 것)
5. 책가방으로 쓸 수 있는 그 모든 가방(보조가방, 신발주머니, 부직포 가방, 피아노가방, 유치원가방, 책가방, 작은 배낭 등)
6. 신발 (운동화, 초등생용 하얀 실내화, 샌들 등)
7. 옷 일체 (긴소매도 좋다. 안 입는 원복이나 운동복도 좋다.)
8. 모자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챙 있는 모든 모자)
9. 책 (영어로 된 그림책, 동화책, 지도책)
10. 축구공, 농구공, 배드민턴 같은 가벼운 운동기구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과 기타 생필품>
1. 옷 일체(긴소매 짧은 소매 모두 좋다. 군복이나 츄리닝류 대환영)
2. 모자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챙 있는 모든 모자), 가방류, 신발류.
3. 성탄트리
4. 수건 (쓰던 것도 좋다) 세수비누, 세탁비누 등
5. 컴퓨터, 복사기 같은 통신기기나 소형카세트, 카메라 같은 가전제품류(고장 나지 않은 것으로 바로 연결해서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보내실 곳: 강원도 원주시 단계동 776-24 프란치스꼬 전교봉사 수녀회
우편번호 220-937 전화 033) 743-9781
(포장 상자에 “아프리카 기증 물품”이라고 쓰시면 됩니다)
* 문의하실 곳: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번지 가톨릭회관 4층 426호
아프리카 잠비아 선교후원회
전화 02)773-0796~7
* 덧붙여 드리는 말씀: 잠비아의 기후는 뜨겁고 건조하지만 그늘은 선선하다 합니다. 일교차도 심하고 어떤 시기는 비도 많이 오고 서늘해서 추울 때도 있다고 합니다. 긴소매 옷도 약간 두터운 옷도 필요한 날씨가 있다 하니 그런 것도 좋겠습니다. 암튼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생활필수품은 거의 된다 하니까 고장나거나 너무 헐지 않은 온전한 것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거 보내도 되나?...하고 긴가민가 하신 게 있으시면, 저기 후원회 사무실로 전화주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씨 많이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아프리카 어린이를 많이 돕기 바란다. 참고로 나도 돕고 있다.
올~~
어떻게 도와? 먼데...
안 도와주어야지 &^^& ㅡㅡ;; ㅡㅋㅋ
뻥이야~
이거 누가 쓴거야? 은지, 니가 쓴거야., 아니겠지??????????
퍼온것 같앵... !!!@_@
도와주고 싶은뎅..ㅡㅡ; 할수가 없어성..
-ㅁ-;
ㅇ ㅓ 이거 내가 어릴때 글짓기로 낸건데;; 왜여기있어
야 거짓말 하지 마라 이거 내가 펀 거 거든
거짓말 즐이거든..
사실은 내가 훔쳐서 수정해서 냈더니 더 대박 나더라 니꺼 보다 ㅋㅋㅋ
우리 엄마 아는 분이 쓴 글인데..우리 엄마도 물품 보낸다고 모으고 있어. 맨 아래에 보내는 주소로 보내면 수녀회에서 모아 두었다가 아프리카로 보낸데..
이 글을 보니까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없어서 못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은지가 이걸 퍼다가 올려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 곳으로 구호물자를 주는 사람을 보기는 햇지만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잇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엇다. 나도 안쓰는 학용품이 잇으면 여기로 보내서 도와
주어야 겟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