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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3일 분당: 흐림, 강릉: 맑음)
오랫만에 산에 대해 다시 입문하는 기분이다.
매일 아침 산과 들을 걷곤하였지만 산악회에 가입하여 많은 사람과 함께 산에 임한다고 생각하니
예전에 산에 다닐때의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새벽4시56분에 눈이 떠져 목욕재계와 아침 식사를 하고 집에서 나오니 매우 상쾌하다.
일요일이면 집사람이 늦게가지 쉴수 있는데 바쁘게 해서 미안하게 생각된다.
여러가지 과일과 반찬등을 준비하느냐 힘들었을 것이다.
집을 나와 이른 아침에 야탑역 부근의 BYC건물에 당도하니 벌써 몇사람이 나와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모두 반갑게 맞이하여준다.
꽤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같은 느낌을 받은것 같다.
내가 이번 산행이 처음이라고 하니 약간 머쓱해 한다.
나의 외모에서 처음이 아닌 느낌을 받은 것 같다.
버스에 타니 아주 쾌적한 느낌을 받았다.
조용히 편안하게 음악과 TV영상물을 보면서 잠깐식 졸기도 하며 여유로윤 휴식을 즐긴다.
오랫만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집을 접하니 시인의 탁월한 시구에 감탄하고 시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음을 느낀다.
유명한 시인들도 인구에 회자할 정도의 시구를 남긴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특히, 국화옆에서란 시에서처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 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을 피울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겐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란 시에서처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봄부터 소쩍새도 울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부짖었 듯이 자연의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흘러가야만 비로소 노오란 국화꽃을 피울수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오르고 있는 이 산들은 태초에 인류가 생성되기 전부터 생성된 것으로서 수억겁의 자연의 변화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우리는 한껏 이 지상에 백여년도 생존해 있지 못하지만 이 산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생명체를 이 지상에 수없이 태어나게 함과 동시에 멸하게도 한다.
오늘 강릉옥계 피래산을 종주한다.
무려 시간이 7시간10분 예정이라고 하니 자못 기대되고 잘 해낼수 있을지 걱정된다.
내가 어렸을때 많은 추억을 간직한 피래산 계곡에서 있었던 일들......
동네의 창규 아버지의 목이버섯(후르내기) 채취중 도졌던 정신병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었던 일들이 있었던 곳.....
그때 창규아버지를 찾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깊고 깊은 피래산을 헤메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나도 이제는 그 사람의 나이와 같게 되었으니 세월은 참으로 유수같다고나 할까?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며 오늘 하루 산행에 임한다.
10시20분경 부터 오아시스모텔 부근에서 산행시작
산행시작 부터 가파르게 이어지는 능선을 향해 오른다.
산행시 주의할점은 처음 출발시 완급조절을 잘해야 한다.
일기예보상 강릉지역의 최고 온도가 거의20도까지 올라간다고 하였는데 기상청을 못 미더워 조금 두꺼운 바지를 입엇더니 벌써 땀이 찬다.
해발 229미터인 외솔봉에 올라서 동해 바다쪽을 보니 정동진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폭의 그림 같이 보이며 썬크루즈호텔의 웅장한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동해안의 명물인 썬크루즈 !
특히 친구가 이것을 만들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정동진이 갑자기 유명하게 된 것은 모래시계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이 곳을 찾게 되므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앞으로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고 나면 이곳은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다.
특히 요즘의 드라마 한류는 정동진의 모래시계가 원조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덧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해발 383미터의 기마봉에 이르게 된다.
말의 안장 모습과 흡사해서 기마봉으로 불리는 것같다.(옥계 금진쪽에서 보면 그렇게 보임)
기마봉에는 남다른 전설이 있다.
"옛적에 건남마을(금진3리)에 기골이 장대한 어린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출생 3일만에 애가 없어져 온 집안을 뒤져 찾아보니 집 선반에 덩그러니 올라가서 웃고 있었다고 한다.
옛부터 장수가 태어나면 역적이 된다는 말로 부모는 전전긍긍하다가 애가 잠잘 때 그만 죽이고 말았다고 한다. 애가 죽고 3일만에 봉우리에서 말이 솟아 올라와 3일내내 주인을 찾아 울부짖다 인근 바다인 가마소에 빠져져 죽었다고 한다.일제시대까지 기우제인 망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전설이 피래산을 주산으로 하여 연결된 옥계 낙풍리에 는 장군봉과 말무덤이 있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가팔라지는 능선 들 .....
모두들 쉬엄쉬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고 있다.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면 동해안 전경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강산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이곳에 오를 수 잇는 것이 아닌가?
기마봉을 지나 천천히 내려오니 밤재(범재)에 도달하게 된다.
밤재도 많은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옛날부터 구전되어오는 전설은 이곳을 지나가려면 호랑이와 우물정자 비슷한 장기를 둔후 이기면 이곳을 통과 할 수 잇지만 지면 잡아 먹힌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곳을 지날때 여러 사람이 모여 이곳을 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범재가 밤재로 이름이 바뀌어 불러지게 되었으며,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호랑이가 두었다는 장기가 있었다고 한다.
밤재를 지나 피래산을 향해 오르막을 쉼없이 올라가야한다. 피래산은 토산(흙산)이라 경사가 그리 가파르지 않으면서 완만하게 경사가 있어 인내심을 많이 요구하는 산이다.
오르던중 식사하기 적당한 곳에서 (12:40분경), 집에서 각자 싸가지고 온 맛있는 진수성찬을 즐겼다.
특히 이곳에서 막걸리 한잔은 감로수 같은 맛을 느꼈다.
식사하자마자 모두들 산행을 약속이나 한듯 오르기 시작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굴참나무와 잘 뻗은 소나무들의 전경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중학교 다닐때 약 40년전 이곳에 큰 산불이 나 모든 산야가 잿더미로 변한 것 같았으나 지금은 화마의 상흔을 찾아보기 힘들게 수목들이 울울창창하게 자라고 있다.
피래산에는 예전에 몇채의 민가가 있었으나, 박정희 대통령시절 산림녹화사업의 일환으로 모든 화전민들은 화전을 정리하고 산아래 마을로 내려오게 하였다.
그때 이곳에 살던 할머니 한분이 나는 이곳에서 생을 마치겠다하여 혼자 이 피래산에서 여생을 마친후 이곳에 영원히 영면해 있다.
이 피래산은 나 개인적인 면에서는 많은 추억과 아픔을 겪었던 곳이다.
어렸을 때 이곳까지 와서 소 꼴을 베었으며, 봄이면 목이버섯(당시 명 후르래기), 여름.가을이면 버섯채취와 도토리줍기 등 많은 애환이 있었다.
어떤 때는 도토리를 줍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나는데 마치 머리위로 총알이 날아가는 것 같아 혼비백산하여 줍던 도토리를 모두 버리고 도망친 기억도 있다.
이런 피래산었지만 정작 이곳을 한번도 종주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종주하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피래산을 오르는데 정상 조금 못미쳐 몇개의 고총이 보였다. 대략3개 정도......
그런데 모두 과룡처에 묻혀 있어 자손이 절손되었는지 고총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올라오면서 산세를 보니 너무나 장엄하고 일자문성 양쪽부분에 혹이 있는 고축사가 있기에 무언가 남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바로 능선 밑에 대명당(명혈)이 그대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명산에 명당(명혈)이 없는데.....
피래산 에서 뻗은 맥이 내려오면서 바로 밑에 하나의 대명당을 만든후 그 여기를 정동진과 옥계 금진과 낙풍쪽으로 기운을 보낸다.
토산인 피래산의 기운이 왕성하여 옥계와 정동진은 앞으로 한반도에 있어 중요한 역활을 하게 될 것이다.
옥계에는 한라시멘트. 포스코같은 산업시설이 들어 섰으며 다른 산업시설도 들어오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영풍)
정동진은 관광지로서 세계에서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피래산 바로 전 능선에는 남성의 신물이 우람하게 뻗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웃음과 재미를 주고 있으며 그 동안 힘들었던 고단한 육체의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 역활를 하고 잇는것 같다.
피래산 정상(754미터)은 일반 산봉우리와 다르게 단지 나무에 피래산 574미터로 푯말만 붙어 있다. 너무나 단조로운 느낌이 든다. 토산의 묘미는 펑퍼짐하지만 한국 여인상의 대표인 어머니같이 자애롭고 인정많으며 그 끈기는 끝이 없는 무한한 힘을 지녔다는 것이다.
피래산을 내려와서 청학산쪽을 향해오른다. 말 그대로 푸른 학이 날개를 쫙악 펴고 알을 품으러고 하는 형태의 산인 것이다. 이 청학산 역시 토산으로 완만하고 펑퍼짐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굴참나무와 싸리나무들의 단풍은 석양의 햇빛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 같다.
등산로 주변에 붉은 줄로 금기식으로 쭉쳐서 들어가지 마라는 표시를 해 놓았는데, 이 지역에 남다른 임산물이 채취되는 모양이다.
청학산 방향으로 어느 정도 올라가서 군막사가 잇었던 지하벙커가 있었다.
이곳에 예전에 소대병력의 군인이 주든하고 있었던 같다.
이곳이 간첩이 침투하기 좋은 루트이기 때문에 길목을 막고 잇었던 것이다.
1996년 안인 앞바다의 북한의 잠수정 침투로 많은 인명과 한국의 경제적 손실에 엄청나게 타격을 주었으며 특히 영동지방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의 손실을 입혔다.
당시 송이 버섯 채위하던 주민의 피살등.....
간첩들은 이 피래산쪽으로 도피하였었다.
또한 이 지역은 지난 1950년 6월25일 새벽녁에 남침한 북한은 휴전선을 넘음과 동시에 옥계 금진앞바다로 공격했던 것이다.
그래서 동해안을 지키던 국군 8사단 병력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대관령을 넘어서 후퇴하는 한국사에서 안타까운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 현대사에서 수많은 애환을 간직한 이 곳 "피래산"은 번영의 길로 기억되는 곳으로 인식될수 있기를 바란다.
청학산을 내려와 임곡2리 마을회관에 도착하면서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소요시간은 10시20분출발 하여 16시 15분경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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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의 고향산을 등정했구먼 ㆍ좋은글 잘 읽고 갑네다
고마우이 !
가까이 있으면서 잘 안가게 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