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젊은 수사님들과 청년들의 친목모임이 있었다
운영진도 있었고 매년 한차례 연회보도 작성했다
수사님은 마리아회소속과 예수회소속이신 분이셨다
그분들이 각각 봉고차를 몰고 오셨다
경기도 끝자락의 어느 작은 성당에 토요일 진을 쳤다 현리성당이다
간단한 음식과 팝콘기계러 만든 팦콘을 나누워먹으면서 강당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그다음날 주일, 일찍 미사를 하지 않은채
춘천으로 행했다
춘천에서 소양강의 배타는곳까지 갔으나배는타지 않고
그곳에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금은 춘천 서울간은 고속도로가 있었지만
그때에는국도였다 오는중간에 차를 대고 여러사람들이 간단한
레크레이션을 하였다
그리고 경춘국도를 다닐다보니 어두워져서
그들은 주일 미사를할 걱정을 하였는데
다행히도 서울 변두리에 저녁늦게 미사를 하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미사를드렸다
그곳의 보좌신부님이 마침 우리회원과 친척관계였고
그날은 그 분당에서벼룩시장이 열리고 먹걸이 장터가 열렸다
신부님은 우리보고 마음껏 먹으라고하셨다
그이후에 그 본당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신부님과 간단한 퀴즈를
푸는등 여러가지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 성당은 연세대학에 있는길에서 조금 떨어진 재래시장이
있는 연희본당이었다
그당시에도 이미 청년들은 자기네들이 속한 성당에는 잘 다니지 않았다
다들 본당에서는 관심밖의 일이이 때문이다
저는 그일이 있는 후에 청년성서모임에서 봉사자 교육을 받은후에
여러본당에 파견나가서 주로 청년들을 지도하였다
집에서 전철로 1시간 남짓한 거리였다
경험이 없어서 아주 열성적으로 준비했지만 그당시에는그다지
청년들이 호의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들어일이지만 그들은 많은 영향을 받은것 같았다
저는 그곳에서 창세기와 마르코의 6개월과정을 몇군데
본당에서 지도하였다. 주로 천주교회에 하는 방식인
성서본문을 읽고 찰고지의 문제를푸는양식이었다
이런것들을 본당에서 자체적으로 헤쳐나가면 좋을것인데
그곳 청년들이 부탁해서 교구에서 저와 같은 사람을 파견시키는 것
같았다
한분이 마리아회 수사님이셔서 그분이 속한 수도회시설과
또다른 한분인 예수회수사님이 계시는서강대학교의 시설을 이용했다
그런 이유인지 성모의 밤행사 마리아회수도회 마당에서 하는 것을 참석하고
부활성야는 서강대학내의 성당에서 함께 했다
그곳에서 마련된 음식이나 서강대학구내식당에서 식사를 제공받았다
우리는 서울주변에 있는 보좌신부님이 계시는 본당에서
모임을 갖기도 하였고 그곳 행사도 참여하였다
그때가 1990년대였는데
그때는 본당에서 청년들이 적지 않았는데도 본당은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요즈음 말하자만 그들을 일을 시킬때에는 성인으로 여기다가 그들에게 권한을
맡길때에는 아이취급을 했던 것이다
그때 주로 청년들은 보좌신부님이 담당하셨는데
보좌신부님은 주로 1~2년만에 다른곳으로 가시기에 그신부님에개는
아무런 결정권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지도신부님은 이런일로 자신이 준비하는 여러좋은일들을 다
주임신부님이 받아주시지 않는다고 하시면 요번에는 단한가지를
받아들여주셨는데 아마도 그것도 젊은자신이 귀죽이지 않기에 그랬다고
여긴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때에 따라서 본당에 매번오시는본당신부의사목색깔에 맞추느라고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이는 애번 하느님이 우리를 단련시키려는 것임을
마음속으로 다집해 보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경험도낮고 하기에 모든 판단이 느리고 잘 정리하기도 어렵지만
그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들어준다면
아마도 그들은 훨씬 용기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부님은 말씀하십니다
'청년들이 봉사할 시간이 없거나 능력이 없어서 같이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속샘은 아마도 이에 시간을 낼 만큼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는다는것이다 '
그들에게 필요하는 것은 들어주는 일이라는것이다
남의 이야기를들어주는경청이라는 말이 요번 시노드에 새로 나오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서울사노드에서도 같은 단어가 쓰여졌다고한다
청년들입장에서 어른들이 기본적인 문제를해결하기보다는
청년들의 문제만을자꾸 지적한다는 것인데..
조금만 배려한다면 청년들이 본당에 머물게 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청년지도자를 양성을 통해서 본당내에 인맥이 형성되리라 여겨진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