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토마스 장군, 우리 곁에 우뚝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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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100주년 추념식에서 동상 제막
안중근바보장학회, 찬가 봉헌식도 가져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 실버타운에서
국내외에서 안중근 의사 100주기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3월 26일 정오 12시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실버타운
유무상통마을 마당에서 안중근 토마스 장군 순국 100주기 추념식
겸 동상, 안중근바보장학회, 찬가 봉헌식이 거행되어
안 의사의 순국의 의미를 새롭게 했다.
이날 추념식에서 식전 공연으로 동방의 울림소리
(광주시 노인종합복지회관 해달별 예술단),
오로지종합복지원 돌보미 색소폰 연주단(이종선 안나 외),
본행사에서 삼종기도는 양필현 실버타운 회장, 고형원 장학회 이사가,
타고는 화운사 주지 보우 스님이, 개식선언은 이상돈 신부가,
국민의례, 내빈소개, 동상제막은 헌화와 군악대 연주,
풍선날리기로 하면서 뜻 깊은 잔치 분위기를 보여줬다.
이어 동상축성(제사)은 김화태 신부(수원교구 평택대리구장)이 주관,
배명섭 신부(죽산본당 주임, 안성지구장)가 요한복음 12장 24~26절을
봉독하고, 분향, 헌작, 재배, 제문, 소지(제문 박철화, 제관 안형진,
좌우집사 이홍우, 이진학)를 한 후, 재단법인 안중근바보장학회
찬가봉헌-안중근 토마스 장군 찬가(방구들장 신부 작사, 강수근 신부 작곡),
추도시(이기형, 고진하 시인(목사)), 추도가-선구자(테너 박인수),
대회장 방구들장 신부(오로지법인 이사장, 대건효도병원 원장)는
인사에서 그분의 탁월한 동야평화사상과 빛나는 조국애,
뜨거운 신앙심이 조화를 이룬 위대한 성인이라며안중근
토마스 장군은 우리 한국사와 교회사를 아우르는 빛나는
애국자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그 뜻을 이어 펼쳐 나가자.
고 말했다.
추념사에서 표명렬 장군(전 육군 정훈감)은 "안 의사는 거사 직후
'나는 대한민국 참모중장이다'고 당당히 밝혔고 뤼순(旅順) 법정에서도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전쟁 중에 적장을 사살했노라'
고 외쳤다"며 "그의 의거는 투철한 군인 정신의 발로였음에도 광복된
조국이 그를 군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친일 세력들이 온통
군을 장악하고 있어 자랑스런 국군사가 실종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장군 호칭을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했다.
이어 추념사에 나선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유연채 경기도 정부부지사,
양진철 안성시장 권한대행 부시장, 이재봉 원광대 교수, 강정구
동국대 교수 등은 그를 교육자로, 서예가로, 평화사상가로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감사인사(방상만 신부(안중근바보장학회 이사장, 수언카톨릭대총장)),
감사패 증정(이재호, 박동수 조각가), 폐회사(방상숙 유무상통마을 원장)
로 마치고 늦은 점심을 함께했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조선 황해도 해주부에서 출생하여 1910년 3월 26일
일본 제국 료쥰(여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국적은 조선, 대한제국. 별칭 응칠(아명), 도마(토마스,세례명).
직업은 교육자, 군인, 독립운동가, 항일운동가, 서예가. 종교는 천주교.
배우자 김아려. 부모 안태훈, 조마리아.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1910년 3월 26일)은
대한제국의 교육가, 독립운동가, 대한의병 참모중장이다.
본관은 순흥, 고려조 명현 안향의 26대손이다.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 운동에 투신한 그는 1909년 10월 26일에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했다.
어려서 안응칠(安膺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세례명은 사도 성 토마스의 이름을 딴 토마스였다.
그래서 안중근 토마스(혹은 도마 안중근)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