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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
1969.05.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아버님, 오늘 저녁 저희들 당신의 존전에 모였사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위신과 체면과 면목을 잃지 않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생활에 있어서 아버지께 보장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엄숙한 사명을 책임지고, 나아가 생의 노정에 있어서 아버지의 사랑과 보장을 받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지금 이 시간은 주일 저녁 예배시간이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내일은 전국 순회를 출발하는 날이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이를 준비하고, 혹 어떤 곳에서는 뜻을 위하여 모였을 줄 알고 있사오니,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흩어지고 모이고 하는 모든 것들이 당신이 뜻하시는 기반을 세우고 당신의 과업을 성취하는 데에 도움과 보탬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외로운 자리에서 눈물어린 사정을 품고 홀로 하늘의 뜻을 위해 참고 나오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정을 품고 외로운 자리에서 오직 하늘만을 붙들고 나오는 당신의 자녀들을 특별히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또한 한국을 바라보며 한국에 있는 스승을 염려하며, 각자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애쓰며 노력하고 있는 자녀들에게도 특별히 은사의 손길을 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이 길을 걸어올 때, 친히 보호해 주시고 같이해 주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같이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니다. 옛날과는 달리 이제는 때가 이르렀으므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내려 주시옵고, 그들이 머무는 곳곳마다 하늘의 직접적인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세계 40개국에 있는 성지를 저희들이 지켜야만 되겠습니다. 그 곳에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금년말까지 파송해야 할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사오니, 각 나라에 파송된 자녀들 위에 축복의 손길을 내려 주시옵소서. 또한 그 곳을 위하여 염려하고, 그 곳을 위하여 투쟁하고 기도하는 자녀들이 있사오니, 소망하는 나라 위에 혹은 가는 그 노정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그들이 준비하는 만사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에서 형통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저녁에 다시 모였사오니 저희들의 사정을 아시는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뜻 앞에 좀더 가까이 나아가 아버지의 깊은 사연과 사정을 체휼할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도 당신께서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에게는 고향이라는 것이 인상적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지만 대개 그 고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고향이 아름답고 좋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진짜 고향의 맛은 고향을 떠나 보아야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그 나라에 애국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그 나라 안에서만 살아 보아서는 잘 못 느낍니다. 외국에 가 보아서 자기 나라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자기 나라가 어떠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자기 나라에 대한 인상을 새롭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가정을 두고 볼 때도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는 자식들은 그 부모의 사랑을 잘 모릅니다. 부모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부모의 품을 떠나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향이라는 것도 본향 땅을 떠나 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있을 때 고향의 참맛을 알게 되듯
그러면 그 본향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자기 나라가 있어야 될 것이요, 자기가 사는 동네가 있어야 될 것이요, 자기가 사는 집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집이 있으면 그 집에는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나라보다도 자기의 동네보다도 더 그리운 것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다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본향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도 그 가운데에서 보다도 본향을 떠나서 생각하고 그리워 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본향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태어나서 살고 있는 고향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찾아나가야 할 본향 땅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원래 우리의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 본향은 어디일 것이냐? 아담가 해와가 살던 에덴 동산이요, 그 마을이요, 그 산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부모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인간들은 `본향!' 하면 자기들이 태어난 곳을 생각하는데, 오늘날 인류가 추구하고 그리워 하고 있는 이상적인 본향이라는 것은 너무나 헛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찾아 나가는 최고의 목적지는 어디냐? 우리는 잃어버린 본향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 본향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습니다. 그들이 슬픔 가운데서 우리를 맞아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과 행복 가운데서 우리를 맞아 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 기쁨이 일시적인 기쁨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그 본연의 곳을 우리들은 찾아가야 됩니다.
본향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냐? 집을 떠나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살고 싶은 그러한 곳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고 싶고 마음과 더불어 몸이 가고 싶은 그러한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인간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러한 본향에 갈 수 있느냐? 갈 수 없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과는 상충된 거리에서 언제나 간격을 두고 서로 서로가 밀치고 밀치며 싸우는 노정을 거쳐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그리워함과 동시에 몸도 그리워하는, 영원히 안식할 수 있고, 행복의 터전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본향을 우리는 찾아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본향을 그리워하고, 추구하고, 흠모하다가 죽어갔습니다. 또한 수많은 종교인들이나 철인들도 이 본향 땅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향 땅이 기필코 나타나야 되는것입니다.
본향에 가까운 씨족이나 민족이나 국가가 있다면 온 세계인이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 본향의 땅에 가까운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온 세계인이 그리워 할 것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백성이면 대한민국 백성으로서 그 나라도 갖고 있으면서 또한 자기의 고향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인이 그리워 할 수 있는 본향 땅이 나타나면 세계인은 자기 나라가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그 곳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 그러한 본향 땅이라면 세계인이 그 나라를 자기 나라보다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필코 본향 땅은 나타나야 됩니다.
이곳이 세계 인류가 그리는 본향이라면
그러면 수많은 인류가 바라보는 그 본향 땅은 어디일 것이냐?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본향의 나라요, 한국 땅이 세계인이 바라는 본향의 땅이라면 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극히 행복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또한 그 나라 가운데서 어떤 지점이 그런 곳이라고 하면 그 지점은 그 나라에서 제일 귀한 곳이 됩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식구들에게 말했지만, 만일 한국이 세계가 그리워하는 그런 본향의 나라라면 지금 백두산 꼭대기에 있는 땅이라도 일본 은좌(銀座)의 어떤 땅보다도 비쌀 때가 올 것입니다. 왜? 지금 전세계의 10억에 가까운 기독교 신도들이 앞으로 주님이 오시는 본향을 그리워하고 있거늘, 만일 그런 곳이 나타났다고 온 세계에 알려지면 순식간에 10억에 가까운 기독교신도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이 나라를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찾아왔다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기필코 이 한국 땅에서 자리를 잡아 행복하게 살려고 할 것입니다. 이 조그만 땅에 기독교인만 1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찾아든다고 하면 여기에는 큰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인이 그리워하는 본향의 나라라고 해도 큰일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한국이 경치가 좋고 산수가 좋은 것은 앞으로 그런 사람이 찾아 들게 되면 여기에 관광호텔을 지어서 그들을 맞이하여 좋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나라에 가 보더라도 한국처럼 아름다운 곳이 없습니다. 한국처럼 기후가 좋은 곳도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태양빛을 바라보는 상쾌한 그 기분, 그것은 어떤 나라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해가 저물어 가는 석양의 자연과 어우러진 그 풍경이라는 것은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은은하고도 풍요로운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자연적인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해도 어떤 나라에 떡 내리면 자기 나라와 비교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기준으로 놓고, `우리나라의 국민은 이러한데 이 나라의 국민은 어떤가? 또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회 제도라든가 교통수단은 이러한데…' 하고 전부다 자기 나라를 중심삼고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외국에 나가 보면 조국의 땅이 그토록 사랑스럽고 그토록 그립고 하기 때문에 조국 땅의 무한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서울에서 살 때는 남산을 보게 되더라도 아무 가치도 없게 느껴지며 또한 서울시내도 자기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막상 서울을 멀리 떠나면 떠날수록 그 남산을 은은한 가운데서 그리워하게 되고, 서울의 거리거리 골목골목들이 전부 자기를 몽땅 품어서 깃들게 할 것 같은 마음을 느끼게 되고, 조국이 이래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핏줄의 인연을 가지고 같은 땅에서 먹고 잔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렇게 생각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산을 보게 되더라도 `아하, 이 산은 우리나라의 어느 산고 비슷한데. 이 산은 우리나라의 산과 다르구나' 하고 비교하게 되면, 강을 보게 되더라도 전부다 한국에 있는 강을 중심삼고 비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뿐만 아닙니다. 세계를 여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전부다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닻은 어디에 내려질 것인가
선생님은 한국 같은 미개한 나라, 한국을 미개한 나라라고 했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직까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한 이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것을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왜 그러냐? 눈 앞에 전개되는 모든 것들이 우리나라의 것과 비교가 되어지니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이 풍만해지고 그러한 내용이 풍부해지니 자연히 관심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일등 국민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이게 뭐냐' 하는 식으로 무관심할 것입니다. 그것은 시골 사람이 서울에 오게 되면 보는 것이 전부다 관심사이지만, 서울 사람이 시골에 가게 되면 시골사람보다 비례적으로 관심이 적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 수준이 높은 어떤 나라의 국민보다도 이런 후진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났기에 세계의 모든 것을 감별하고, 속속들이 비교하여 분석할 수 있는 관심사를 누구보다도 풍부히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후진국의 국민이 아니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일등국가의 국민을 중심삼고 구원섭리를 할 것이냐, 후진국가의 국민을 중심삼고 구원섭리를 할 것이냐? 얼핏 생각하면 일등국가의 국민을 중심삼고 섭리를 하실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기 나라의 좋은 것과 자기들 스스로가 자랑하는 문화만을 생각하는 민족, 자기 나라의 형편만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지극히 제한된 것만을 생각하는 환경에 하나님은 섭리의 닻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 반면에 미개한 민족에게는 관심사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관심사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섭리의 닻을 내리려 하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높고 귀한 자리에 나타나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비참한 자리에 나타나면 일등국가의 일등국민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잘것없다고 외면해 버릴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후진국가의 국민 가운데 나타나야 많은 수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많은 수가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정한 민족 앞에 나타난다면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은 갖은 사람이 소수로 한정될 것입니다.
본향에 가더라도 무엇을 갖추고 가야
이렇게 고향이라는 것은 그 무엇인지 모르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면 자는 방이 매일 달라지는데 자다가 일어나서 물이 마시고 싶으면 자는 방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자던 곳의 수도가 있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제 자던 곳이 아니거든요. 이렇듯 다른 환경에 부딪칠 때마다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이 고향입니다. 고향의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간절한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향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류는 고향을 찾아가야 할 운명에 있는 나그네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정 붙일 줄을 모릅니다. 만일 어디에라도 정을 붙일수 있다면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와 같이 나그네와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어차피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고향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무엇, 고향에 가서 자랑할 수 있고, 남겨 놓을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것을 찾고자 노력하다가 고향에 가야 진정으로 고향의 맛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향에 대해 무관심하게 지내면 고향에 가더라도 고향의 맛을 모릅니다.
오늘날 종교라는 것은 인간들이 고향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천국을 가자, 혹은 이상세계를 가자, 극락세계를 가자고 하는데 그런 곳은 우리가 사는 이런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살 수 있는 본향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면에 있어서 종교가 본향을 추구하도록 하는 데 공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곳은 어떤 곳이냐?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곳입니다. 마음과 몸이 조금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완전무결한 곳입니다. 그 곳을 인류는 지금 추구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고향에 간다고 하더라도 반겨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공허합니다. 만일에 한국 사람의 2세가 외국에서 태어나 조국인 한국을 찾아왔는데 한국말을 모른다면 그것도 겸연쩍은 일입니다. 물론 고향에 가는 것도 좋지만 우선 고향에 있는 사람들과 말이 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반갑게 맞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를 맞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또 맞아주는 그 사람이 자기가 바라던 이상으로 맞이하여 주느냐 혹은 그 이하로 맞이하여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바라던 그 이상으로 맞이하여 준다면 조국에 대한 인상도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언제든지 외국 사람을 대할 때는 주의해야 됩니다.
그 사람들은 한국이면 한국, 또는 찾아 보고 싶은 어떤 나라를 찾아갈 때는 비행기를 타는 등 자신의 경비를 써 가면서 몇 시간을 걸려서 찾아갑니다. 그러므로 그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주어야 됩니다. 그래야 자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 딱 도착하면 먼저 무엇을 느끼게 되느냐 하면 그 나라의 국민성은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그 나라에서 자기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니는데 만일에 길을 묻든가 혹은 무엇을 사던가 할 때 사람들이 불친절하고 기분 나쁘게 대한다면, 그 나라에 대한 그들의 인상이 아주 나쁘게 기억되고 그 나라에 온 것도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친절한 사람 두 명만 대하게 되면 아주 기분 나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게 되면 반드시 자기가 찾아갔던 그 나라에 대해 좋지 못한 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자기가 고향이나 조국을 찾아가게 될 때 자기를 반겨 맞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모두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조국 땅을 찾아간다 하더라도 맞이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먼저 말이 통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자기를 반갑게 맞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본향에 누가 있어야 하느냐
오늘날 우리가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고향에는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어서 언제나 나를 이끌어 주고, 또한 내가 언제 어느 때 찾아가더라도 나를 옛날과 같이 맞아 주고,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그 어려운 사정을 동정하며 위로해 주고 나를 기쁘게 맞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본향이 그립고 좋아서 찾아가더라도 간절히 사모하던 당신의 심정은 없어지고 도리어 탄식의 조건들을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향 땅에는 반드시 맞아 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은 각각 교주를 중심삼고 믿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는 교주가 주님 같다, 혹은 부처님 같다고 하면서 자기는 죽으면 누구보다도 그 교주가 맞아 줄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수십년 믿고 정성들인 이상의 기준으로 맞아 줄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개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 주님이 자기가 바라는 만큼 대하여 주지 못할 때는 어떻게 것이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본향 땅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스스로는 갈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리를 놓고 가야 합니다. 그 다리, 즉 주님이라든가, 부처님이라든가 하는 중간 매체를 통해서 정성을 들여 가지고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본향 땅이라고 찾아들어갈 때 자기를 반겨줄 분은 누가 될 것이냐? 주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주님이 맞이하여 줄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향에 가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그리워했습니까? 내가 그리워하는 그 이상으로 부모는 나를 더 그리워하고, 내가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형제는 나를 더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다 만나면 만나자마자 하나가 되는 거지 거기에 무슨 간격이 있겠습니까? 그러데 그렇게 서로 하나될 수 있을 만큼 반갑게 맞아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 그 차이에 따라서 본향 땅을 찾아가더라도 얼마만큼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본향 땅에는 누가 계셔야 되느냐?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부모가 계셔야 되고, 형제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는 만나고 싶은 분이 있어야 합니다. 또 거기에는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은데 일순간만 봐 가지고 되겠습니까? 잠깐 만나 봐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들을 만나 보고 그들과 같이 사는 데는 영원히 영원히 같이 살더라도 싫증이 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곳이 오늘날 종교에서 지향하는 천국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화평이 되고, 행복의 요소가 되고, 사랑의 요건이 될 수있는 그런 분을 중심삼고 우리가 만나서 영원히 영원히 보고, 영원히 영원히 같이 살아도 싫증이 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의 온갖 마음이 영원히 그곳에서 그들과 주고받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본향을 찾아간다 하더라도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향을 찾아가더라도 자기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자기를 맞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리 없으면 소망을 품고 찾아갔던 마음이 슬픔의 심정으로 변하여 고향 땅을 다시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타락한 인간은 고향을 떠나 있습니다. 혹은 조국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본향땅과 나라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맞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준비해 놓은 분이 계시면 그분을 만나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그 본향 땅을 기필코 찾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여기에서부터, 땅에서부터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과 언제 어느 때에 어떻게 인연되었다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 여러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 식구들에게 본향이 되는 한국의 통일교회
선생님은 이번에 전세계를 순회하면서 외국 식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은 선생님을 대할 때 외국 사람같이 대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몇 사람 갔지만 그 사람들을 대할 때도 남의 나라 사람같이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전부다 하나님이 맺어 주신 인연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도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라도 하나님과 어떠한 인연이라도 맺으려고 애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애쓰는 것이 십년, 혹은 일생을 거쳐 가게 된다면 그들은 저 나라에 가서도 그 인연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본향이라는 곳에서는 오늘날 국경과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서로 주고받는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 주고받는 것이 거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어떠한 한계권내에 있어서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고받은 그 작용이 일년뿐만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서 영원히 이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본향을 그리워하는 우리 종교인들을 이끌고 그 본향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투쟁해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기필코 그러한 사람을 본향으로 인도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땅에서 준비를 하여 하나님께서 `네가 본향 땅을 그리워하듯이 나도 너를 그리워했다'고 하실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을 갖고 저나라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한국의 통일교회는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의 본향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일본같은 곳에서는 이곳에 오고 싶어서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식구는 선생님이 옷을 벗어 놓고 나가면 그 옷을 만지며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선생님의 옷을 다리면서 그 옷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이 옷은 선생님과 더불어 한국에 가겠지만 자신은 못 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옷에 대한 애착심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본부에 오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 그 식구가 눈물 흘리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이 본부에 볼 것이 뭐가 있어요? 세계 통일교인들의 마음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본부교회에 사실 볼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래도 요즈음은 마루라도 깔아서 조금 나아 보이기는 하구만요. 마루를 깔아서 흠이 안보이니 조금 나은 정도지 볼 게 뭐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소문을 듣고 다 압니다. 어떤 사람은 소문을 듣고서 그림까지 그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기는 와 보지도 않았으니까 와 본 사람에게 `한국의 본부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해 가지고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림을 그려서 어디에 뭐가 있고 어디에 목욕탕이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외워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갈급한 심정을 품고 그렇게 그리워하다가 그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이 본부교회에 너무도 오고 싶어서 왔는데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만일 본부교회를 찾아오지 못한 그 한을 풀기 위해, 10년 동안 지극한 정성을 들여 `이제는 간다, 이제는 나도 간다' 해 가지고 본부교회에 척 왔을 때, 10년 동안 정성들인 모든 사연을 들어주고 알아줄 수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서 짐을 풀고 정담을 나눠가며 새로운 본향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맞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찾아오는 외국식구들을 실망시키지 말라
세계의 수많은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 미국이면 미국, 일본이면 일본 식구들은 원리를 통해서 배우기를, 한국은 어차피 가 보아야 할 본국이라고 배웁니다. 그리하여 찾아오게 될 때, 제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야 물론 선생님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일 것이고, 그 다음에는 유협회장이 됩니까? 여기 있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관심이 많습니다. 이 점은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도 그렇게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 통일사상을 중심으로 본향 땅이라 하면 한국이요, 청파동에 있는 통일교회요, 여기에 있는 선생님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선생님이 여기에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외국 식구들이 지극한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리워하던 이 조국 땅을 찾아왔는데 자기들이 그리워한 사람들이 전부다 사라지고 없다면 그들은 섭섭한 심정을 품고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기둥 하나, 마룻장 하나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전부다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만일 여기에 선생님이 없고 그들이 소망했던 사람들이 없으면 전부 다 쓸쓸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며 정성 들여 나왔는데 만일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신 그 곳이 이상적인 본향이라 하기에, 그 이상의 본향을 찾아가면 우리 식구들도 있고 하나님도 계셔서 나를 환영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하나님도 안 계시고 거기 있는 사람들도 모르는 척 하면 기분 좋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우리 이념을 중심삼고 볼 때 한국은 세계 식구들의 조국의 입장이고, 또 한국의 청파동 통일교회는 본향입니다. 때문에 외국 식구들이 이곳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들이 외국에 나가서 전도를 할 때는 자기 고향의 부모를 그리워하면서 눈물짓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사진이라든가 선생님의 가족사진이라든가, 혹은 본부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을 붙들고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 것을 보고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은 본부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큰 죄를 짓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오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고,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오는 그 손님에 대해서는 주인인 주체가 없더라도 그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 이상의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는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도 일본식구들이 선생님 없는 본부교회를 왔다 갔다는 소식을 보고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선생님이 순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들도 이미 각오하고 왔었을 것입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일본에 가 있다고 하면 일본에 있는 대원들은 한국에 안 옵니다. 때문에 앞으로 이 청파동 본부교회와 세계의 통일교회가 연결되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 여러분과 외국 식구들이 절대적 인연으로 맺어져야 합니다.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에 여러분과 외국 식구들이 어떻게 절대적 인연을 맺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부에 있는 여러분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선생님 없을 때 이 본부교회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완전한 조직을 중심삼고 명령에 대하여 절대복종하는 체제를 갖추어 놓지 않고는 본향의 입장을 취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명령이라면 누구든지 다 복종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너 이 녀석, 너에게 돈이 얼마 있는 줄 아는데 그 재산 모두 뜻을 위해 써라' 하면 전부 가지고 옵니다. 이런 저런 모든 사정을 볼 때,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에 세계적인 조직과 세계적인 전통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에 있는 우리 식구들은 이곳을 그리워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품어 주고, 환희의 심정을 가지고 맞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미국 사람이 와 있지만 그 사람들은 수십 나라를 찾아 다니다가 그 발걸음이 여기에 멈춘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지나가다가 여러분의 그 모습만 봐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본부의 분위기, 본향의 분위기를 갖추어야 합니다.
본부식구들은 언제나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고향사람을 외국에서 만나면 참 반갑습니다. 구라파 같은 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길가에서 처음 만났더라도 `점심 같이 먹읍시다. 내가 저녁 사지요' 합니다. 그곳에서는 같은 동양인인 일본 사람만 만나도 반갑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본부의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반가와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서 본부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니만큼 이 본부에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하게 될 때는 그꼴이 어찌 되었든지간에 기대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특히 외국에 나가 다니는 사람들은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말을 주의해야 돼요. 그들은 선생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형편없는 사람이 갔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본부에서 왔다고 하면 선생님의 대신자라고 생각하여 극진하게 맞이하게 됩니다. 그 사람의 말이라면 무엇이라도 대령해야 할것으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백퍼센트 믿는다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믿고 나오던 그 기준은 이랬는데 통일교회 사람들은 저래야 되는구나' 하면서 바라보게 됩니다. 더욱이나 축복받은 사람들은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과 접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축복가정들을 높이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 앞에 나타난 한국 사람이 형편없다 할 때는 자기들이 지금까지 생명을 걸고 싸워나온 그 입장과 지금까지 힘들게 수고한 모든 전부를 그 한 사람의 태도, 그 한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포기해 버리는 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본부를 그리워하는 통일교회의 식구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훈련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 여러분은 언제나 주의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부의 여러분은 언제나 주의해야 된다는것입니다.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찾아오게 되면 반드시 그를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 형제가 찾아오면 그들을 대접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또 본부의 식구가 외국에 나가서 본부를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도 반드시 주어야 합니다. 행동적인 면에서나, 말하는 데 있어서나 주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본부를 그리워하던 그들의 마음에, 본향을 그리워하던 그들의 마음에 마구 서리를 퍼붓는 것이 됩니다.
그리하여 만약 본부교회에서 온 누구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원기백배해 가지고 뜻길을 가던 사람이 무력하게 탄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본향의 권위와 본향의 위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집안을 망치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집안의 식구가 외국에 나가서 자기 집을 위해 정성을 들이고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그 사람은 그 집에서 추방당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앞으로 전세계 통일교회의 본부가 될 이 청파동에 드나드는 사람의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새로운 법을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훈련을 시켜야 되겠어요. 왜냐하면 그런 훈련을 시키지 않은 연고로 이번에 우리 식구들이 외국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무용단을 따라갔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 보았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으며 생활적인 수준이 어떤가를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무용단들에게 무용하라고 했지, 본부의 무슨 소식 전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외국 식구들이 붙잡고 물어보거든요. 그러면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이렇고 저렇다고 얘기들을 합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어떤 사람 가까이에 몇 년 있었는데 어떻다고 하면서 그들이 생활하는 것과 자기가 몇 년 동안 뜻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오면서 느꼈던 것과를 비교하면서 얘기하는데, 본이 되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본부의 기준과 자기의 기준을 비교하면서 그렇게 얘기들을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청파동이 세계의 영원한 본향임을 잊지 말라
앞으로는 이 본부의 권위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본향을 보고 싶어하고, 가고 싶어하고, 살고 싶고 그리워하는 그들 앞에 보고 또 봐도 영원히 보고 싶고 또 만나고 싶고, 살고 싶은 마음을 한층 북돋워 주고 사기를 올려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전 인류를 대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면 본향의 사람이 아닙니다. 본향의 사람이 아니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보고 싶어서 찾아온 외국 사람들을 여러분은 하루 이틀 혹은 일년이라도 기쁨으로 맞이하여 이마를 맞대고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그가 나를 좋아하게 되면 내가 그와 더불어 동고동락을 하며 지내겠다는 여유 있는 심적인 준비를 해 놓지 않으면, 조국이라고 본향이라고 찾아오는 많은 외국 식구들에게 큰 상처를 줄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청파동은 오늘의 이 청파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세워지는 곳곳마다 수많은 식구들이 이 한국을 본향 땅, 조국 땅으로 사랑하여 찾아올 것이고, 더욱이나 이 청파동을 사랑하여 찾아올 것입니다. 이 곳을 찾아올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의 현재 환경이 갖추어지지 못했다고 낙심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앞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문화주택을 짓고 좋은 장소를 택하여 웅대한 자리에서 예배보는, 그런 자리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청파동 이곳을 그리워하며 찾아올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 보아도 예수님이 태어났던 자리라든가, 감람산에 가 보게 되면 수풀이 우거지고 바위덩이가 함부로 널려 있어 형편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한 가지 기분 나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유대 나라의 사람들이 그 성지를 장사밑천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식구를 만나 줄 수 있는 예수님, 또한 세계적인 본향을 고대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만나 줄 수 있는 예수님이 태어났던 땅, 그곳을 추모하기 위해 가는 것이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워서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오고 가는 모든 손님들은 좋은 기분이 아닙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오는 손님들에게 뜯어먹으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앞으로 이 통일교회가 세계의 본부가 되고, 세계가 그리워하는 본향이 되게 하려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뜯어먹으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주려고 해야 합니다. 만약 외적인 그 무엇을 받았다면 내적으로 그 무엇이라도 반드시 주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은 각별히 유의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본향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권위와 자격을 갖추어서 외국사람들 앞에 그것을 성의있게 나타내고 그들에게 언제나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특히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님, 수많은 나라 가운데서 이 한국이 앞으로 인류의 마음 가운데 깃드는 나라가 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통일이념을 두고 볼 때 10억에 가까운 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어차피 이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결국 세계 인류는 우리의 이념에 규합되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계인의 본향이 될 수 있는 이 땅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말씀을 듣고, 교육을 받고, 또한 여기에서 눈물지으며 단련받는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엄청나고 귀한 것인가를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제 이와 같은 사실이 말뿐이 아니라 저희의 눈앞에 현실로 전개될 때가 왔습니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본향을 그리워하는 부푼 마음으로 김포공항에 내려서 이곳을 찾아오게 될 때, 그들의 마음에 새로운 불길을 가하시어서, 이 본향을 위해 뼛골이 녹도록 정성들이고, 다시 떠나고 싶지 않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눈물지을 수 있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기에 있는 자녀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이곳을 왔다가 돌아가서는 이곳을 관념적으로 그리워하고 상상하는 입장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느낀 체험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실감나게 그리워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다시 찾아오겠다고 재차 결심할 수 있는 동기와 인연을 여기에서 그들 앞에 남겨 줄 줄 아는, 보태어 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본부의 식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는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선교부로부터 편지를 통하여 이곳에 문의할 일이 많을 것을 알고 있사옵고, 해외의 소식도 많이 날아들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통하여 수습할 수 없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왕래할 것이므로 앞으로 이 본부의 체제를 정비해야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옵니다. 그들이 가고 싶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이곳을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여기 본부의 식구들이 그들보다도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이 약하여, 눈물을 흘리는데 있어서나 간곡한 마음에 있어서 그들보다 절실하지 못하면, 이 본부가 세계인의 본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여기에서 눈물짓고 정성들인 것이 세계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들이는 정성과 더불어 새로운 인연이 되어 새로운 세계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오늘 이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이 사실이 엄청나고, 이 자리가 얼마나 두려운 자리인가 하는 것을 이들이 다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한국 민족을 중심으로만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자리에서 일하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행복의 터전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관념을 가져서는 안되겠습니다. 민족과 국경을 넘고 또 넘어서, 세계인을 품고, 세계인과 더불어 주고받을 수 있는 인연을 맺기 위해 마음에서 생활에서 연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준다고 해야 얼마나 주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그 몸과 마음을 다하여 찾아왔던 그 마음 이상의 새로운 그 무엇을 갖고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이 청파동,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이곳에서 찾아오는 그들의 정성을 능가할 정도의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외국에서 찾아오는 그 사람들이 이 청파동 교회에 와서 자기가 그림까지 그려가며 기억하였던 이곳을 볼 때 그들에게는 이곳이 얼마나 신비스럽고, 얼마나 반갑고, 얼마나 기쁘겠사옵니까? 그러나 그들이 이 집을 보고, 혹은 이 길을 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을 느껴서 기뻐하는 것보다 여기 있는 식구들을 보고 더 기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그들 앞에 큰 상처를 입히고 만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나 책임부서에 있는 책임자들이 이런 것을 더 깊이 느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이 통하지 않고, 생활환경이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표정과 느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이 본향 땅이 더욱 그립고, 더욱 보고 싶고, 더욱 더 살고 싶은 내정적인 인연을 느낄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될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순회를 위하여 고향을 떠나고 보니 이 청파동이 그리웠사옵고 이나라가 그리웠사옵니다. 이러한 그리움의 동기는 내가 이 나라에서 생활하고 일한 것보다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투쟁의 역사를 해 나오신 아버지의 수고의 터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더더욱 그리움에 사무쳤사옵니다. 그러한 인연을 가진 이 한국강토이기 때문에 이러한 강토임을 외국 식구들이 알면 알수록 어떤 누구보다도 더더욱 간절히 이곳을 사모할 것임을 알게 되옵니다.
스승이 걸어 나온 감옥이나 핍박받던 곳도 그들 앞에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 본부의 식구들은 그들이 그리워하는 그 이상으로 스승을 사랑하고, 그런 역사적인 모든 인연을 존중시하는 자체들이 되지 않고는 그들을 대할 수 없든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이곳에서 싸움의 터전을 닦으면서 수고해 온 역사적인 모든 사실이 오늘날 세계인들로 하여금 인정되지 못하고 전해진다면 역사적인 모든 것을 몽땅 빼앗기게 되어, 이곳이 세계인의 고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지역은 고향이 될는지 모르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고향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우리들은 그들보다 더 본부를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본부의 이 마룻장 하나를 누구보다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본부의 유리 한 장을 누구보다 더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본부로 오는 이 청파동 골짜기 골목골목을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을 찾아오는 세계인보다 더 간절한 마음을 갖고 눈물짓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걸어서, 이 자리를 찾아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그들의 간절함 이상의 간절함을 갖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본부에 출입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 저녁은 이런 사연을 확실히 아는 식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뿐인 통일교회는 지나갈 때가 왔습니다. 내용을 지닌 통일교회가 출현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말로 원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지나갈 것입니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원리에 의한 삶을 살고, 심정으로 단장한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있는 수많은 식구들이 이곳을 위해 밤새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이곳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그 간절한 울부짖음 앞에, 이 본부의 식구들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본부에 있을 자격이 없는, 권위의식만을 자랑하는 그런 자들이 될까봐 아버지께서도 염려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스스로가 그런 입장, 그런 위치, 그런 불비한 체면과 위신을 가진 부끄러운 모습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자리에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70년대를 향한 지금까지의 경륜, 한국을 위주로 하여 투쟁해 나온 역사적인 경륜의 결과가 오늘날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가 서울을 움직이고, 삼천리 반도를 움직여서 전세계의 인류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앞에 무릎을 꿇게 하여 그들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모습이 되지 못하면 언젠가는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올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저희들은 마음에 마음을 다하고 노력에 노력을 더하여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모든 준비를 다해야 할 것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전도하는 이상 전도를 해야 되겠고, 그들이 울부짖는 이상 울부짖어야 되겠습니다. 한국에서 태동된 이 말씀을 세계인이 울부짖는 이상의 가치를 갖고 울부짖지 않으면 수많은 민족이나 수많은 나라의 백성 앞에 혹은 세계의 식구들 앞에 부끄러운 자신들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본향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가치 있는가 하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본향에 살면서 아버지께서 기억할 수 있는 역사적인 가치를 천배만배 찬양하고 또한 만민 앞에 이것을 자랑할 수 있고 드러낼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슬픔의 대상으로 남아지고 또 그 본향은 본향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본향에 있는, 이 청파동 본부에 있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나 책임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더욱 신중을 기하여 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전도를 함에 있어서나 생활을 함에 있어서,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기울임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행동적으로 뜻 앞에 봉사를 해야 되겠습니다. 있는 정성을 다 모아서, 또한 기도로라도 눈물로라도 뜻에 보탬이 되는 생활을 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본부의 권위와 위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만일에 제가 없다면 누가 이 책임을 감당하고 누가 이 위신을 세워 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오늘 저녁 이런 내용을 중심삼고 우리는 다시 한번 분발하여 서울과 이 삼천리 반도에 새로운 표준을 세우고 남기신 역사적인 재료를 존중시하고 아버님의 거쳐 온 걸음걸이가 빛이 되게 단장하고, 가치 있게 높이 빛낼 수 있는 증거자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그들이 눈물흘리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눈물을 보일 수 있어야 되겠고, 그들이 통곡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통곡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들이 통곡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통곡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심정적인 통일교회가 되지 않고는 본향의 형님이 될 수 없고, 동생이 될 수 없으며, 부모가 될 수 없고, 처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들은 간곡한 심정으로 눈물짓는데 그저 구경이나 하는 사람이 되면 오늘날 본향의 모든 권위를 자신이 팔아먹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보다도 더 노력하고, 더 가치 있게 단장하고, 누구보다 간곡한 마음을 가지고 눈물로 하나되어 본향의 가치를 드러낼 수있는 자들이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난번 여러 나라를 순회할 때, 많은 식구들이 `선생님, 나를 한국에 데려가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백인도 그러했고, 흑인도 그러했고, 아시아 사람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오고 싶어하고, 그리워하며 기도하고, 눈물을 앞세워 가면서 말하는 것을 볼 때 본부는 무한히 무한히 빚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사옵니다. 또한 여기 본부 식구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지극히 두려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께서 맡겨 주시고 아버지께서 다져 주신 이 권위를 잃어버리지 말고, 그 가치를 높여 아버지 앞에 찬양의 조건, 자랑의 조건으로 고이고이 돌려 드릴 줄아는 순교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주시옵소서.
아직까지 교회의 마룻바닥에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한 자는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이 마룻바닥을 힘을 다하여 닦아 보지 못한 자는 닦아야 되겠습니다. 깨진 유리가 있으면 자신이 돈을 모아서 그 유리를 갈아 끼우겠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외국 식구들 가운데에는 스스로 자기 뼈를 갈고, 살을 에어서라도 그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터는 한국에서 닦기 시작하였지만 결실은 외국에서 거둘지 모른다는 사실을 이 민족, 이 국가가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본향의 권위와 본향의 가치를 자랑할 줄 알며 누구보다 본향을 믿고 의지하고, 자기의 사연을 털어 놓고 그 품에서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은 형님 누나들이 되고, 부모들이 되고, 삼촌, 아저씨들이 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아들딸을 아버지도 그리워하고, 세계 사람들도 그리워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모든 원칙을 새로이 알고 본부의 권위를 스스로 회복하고 준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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