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모는 삶을 <食>과 <色>이라고 말한다. 食은 생(生)을 뜻한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그날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기름이 들어가지 않은 자동차가 갈 수 없는 것같이 사람이 먹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는가. 살기 위해서 먹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이 이 음식을 제대로 먹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을 따지고 보면 "먹느냐, 사랑하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류영모는 그의 호를 <多夕>이라고 했다. 그는 저녁을 좋아하였다. 한 밤 중에 별을 바라보고 감탄하여 마지않았다. 다석이라는 한자에서 보듯이 다(多)는 저녁석(夕)자를 두 개 포개 놓은 것이다. 이 호에 저녁 석자가 세 개다. 다석 류영모는 하루에 세끼 식사를 하지 않고, 저녁에 세끼 남들이 하는 식사를 한 끼만 먹었다. 인도의 철저한 수행자들은 하루 한끼만을 그것도 아주 간소하게 먹는다고 한다. 간디가 일일 일식 하였던 사람이다. 종교 수행에 이 한끼 식사라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하다. 붓다, 소강절, 톨스토이, 더러우... 다석이 그런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가졌던 바, 이들이 일일 일식 하였던 것을 주목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기독교의 원죄를 불교에서 말하는 <貪> <瞋> <痴>처럼 생각한다. 그 중에서 첫 번째가 탐욕이다. 사람의 욕심을 식욕 색욕 물욕 명예욕 수면욕(5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식욕이다. 그러므로, 나의 욕심을 끊는다고 할 때, 첫 번째 식욕을 끊는다는 것은 수행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석은 하루에 일식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백운대를 등산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한 번 저녁 식사만 했다는 것이다. 이 일식을 철저히 단행하면서, 그는 개성이나 인천까지 걸어서 하루에 갔다. 이런 식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여 식사 때 가서 보았는데, 저녁 식탁에 잡곡밥과 배추국 그 외에 간단한 반찬으로 소식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 식사 때 하는 五觀偈를 그는 좋아하였다. 計攻多少 量彼來處, 村己德行 全缺應供, 防心離過 貪等爲宗, 正思良藥 爲療形枯, 爲成道業 應受此食-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손에 손이 많이 가고 힘에 힘도 퍽은 드러, 곱게도 지고 지며 바로도 되고 되어온 이 밥을 우리 지은 노릇으론 이에 구태어 받을 수 있사오리까. 거듭 잘못이 없게스리 걸챔부치의 마음을 막고 오직 깨나는 약으로 우리 맡은 것을 마추기까지, 몸에 이바지어 삼가 들렵니다.
자신은 매일의 식사를 자기에게 드려진 제물처럼 받고자 한다. 이렇게 식사를 하는 것은 자신도 그런 제물로 살겠다는 것이다. "밥이 하늘이다."라는 말이 있다. 쌀알 하나가 되기 위해 태양과 별과 달, 물과 바람 수많은 정성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밥상이야말로 하나님이 나에게 내려주신 자신의 몸과도 같은 것이다. 류영모는 교회의 의식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 식사를 주님이 주시는 성찬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성만찬이 따로 없고 그 식사 상이 언제나 주님의 몸인 성만찬인 것이다. 매일 같이 먹는 식사를 이렇듯 성화시켜 받고 있다는 것을 그의 영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 한 번 저녁때마다 마음의 점을 찍는 점심(點心)이 일일 일식인데, 그 밖의 모든 식사는 약육강식의 불장난과 같은 것이다. 그를 좋아해서 따랐고 그에게서 배웠던 김흥호목사는 그처럼 일식을 40년 동안 실천하고 그것이야말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요, 거룩한 길이며, 님께 드리는 예배요, 사랑이다. 일식만이 십자가요 믿음이다. 일식은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요 믿음이다."라고 고백하였다.(명상록 2권 87면)
1960년 3월 5일 <단식일기>라는 글이 있다. "5일 단식하면서 맛을 끊고 혀끝은 말하는 데만 사용한다. 밥은 먹지 않아도 물은 마셔야 한다. 그래야 노폐물이 빠지기 때문이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손에 와 닿는 물은 갈증이 날 때 냉수를 마시는 맛과 비슷하게 유쾌하다."라고 금식 소감을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