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로뎀하우스
신외숙
라면을 먹기 위해 음식점에 들렀다.
창가에 난 음수대로 가는데 거울 너머로 한 떼의 중년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셋과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한명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들은 백수건달이거나 좀비족 같았다. 게다가 눈빛마저 불안해 병든 영혼임이 틀림없었다. 음식점은 편의점을 겸하고 있어 항상 손님들로 북적였다.
벽면에 메뉴표가 보였다. 김밥 2000원 라면 2500원 외에 모두 5000원대가 넘었다. 라면을 주문한 지 5분도 안 됐는데 나왔다. 김이 모락 모락 달걀과 파를 꾸미로 얹고서. 중년들은 컾라면 넷과 막걸리 한병을 들고서 바로 내 옆자리에 앉더니 의미도 알 수 없는 웃음을 나누었다. TV 화면에서 북한 핵무기의 신기능에 대한 우려 섞인 보도가 계속 진행 되고 있었다.
이어 어린이집에서 4살짜리 아이를 무지막지하게 폭행한 장면이 연속적으로 방영되었다. 그녀는 100킬로에 육박한 몸집으로 아이를 패대기치며 공포분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다른 유아들도 구석에서 무릎을 꿇은 채 벌서는 장면이 계속 포착됐다. 보육교사는 온 국민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 신상공개는 물론 인격살인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인터넷은 그녀의 신상털기는 물론이고 이전에 근무했던 어린이집에서의 근무경력까지 조사해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온 국민의 분노를 들끓게 한 그녀는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다. 컾라면에 젓가락을 넣어 휘휘 젓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저런 년들은 평생 감옥에 썩혀야 돼, 왜 하필이면 보육교사가 되어 죄없는 어린애들을 괴롭힌담.”
“형사처벌을 무겁게 때려 다시는 이 땅에 발 못 붙이게 해야 돼.”
“아니야 평생 정신병동에 가둬 놓고 못 나오게 해야 해.”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가 나무 젓갈을 반으로 쪼개더니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이게 다 중국산인데 썩지 말라고 표백제를 바른대, 그냥 먹으면 위험해 물로 씻어야 하는데 말야.”
그는 뚜껑을 열더니 라면을 그냥 입속으로 밀어넣었다.
“승호야 우리 라면 먹고 나서 어디 가서 이야기할까?”
“로뎀으로 가지 뭐, 따뜻하고 오래 앉아 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편하잖아.”
“거긴 일찍 문 닫던데 보통 6시면 끝나던데.”
“그럼 한 시간밖에 안 남았네.”
“그래도 거기밖에 없어 그냥 가자.”
합의를 보았는지 중년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컵라면 용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국물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에 벙거지를 뒤집어 쓴 중년이 여자에게 말했다.
“누님 병원에 간다더니 다녀왔수? 의사가 뭐라고 합디까?”
“가면 뭘해 돈만 내 놓으라고 하지 안 갔어.”
“하긴 약 먹으면 뭘해 자꾸 재발하는데.”
그들은 출입구 쪽을 향하다 말고 모두 내게 눈길을 돌렸다. 의아심과 미심쩍음을 잔뜩 달고서. 그들이 눈길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말하는 것 같았다. 지난여름, 로뎀에 갔을 때 그들을 볼 수 있었다. 로뎀은 강남에 있는 대형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였다. 주로 교인들을 상대로 다과를 파는데 갈 곳 없는 어중이 떠중이가 다 모여 들었다.
간혹 교인들을 상대로 한 장사치들도 몰려들었다. 여기서 장사치라 함은 신앙이라는 구실로 사기성 농후한 판매전략을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순진한 교인들은 그들의 달변과 허울 좋은 신앙 앞에 거금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교인임에 틀림없다. 꽤 많은 성경지식과 수많은 목회자의 이름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사기에 걸려드는 것은 순간이고 피해는 엄청나다. 피해를 당한 교인은 교회를 원망하기도 하고 법적대응을 시도해 보지만 곧 포기하고 만다. 먹튀라는 단어가 그들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기꾼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불신과 안티는 동반적으로 상승한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심리상담사 시험을 몇 달 앞둔 날이었다. 더위로 숨이 턱턱 막혀 집에서는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얼마나 더운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때 반짝 생각이 났다. 그래 바로 거기야. 집을 나온 나는 2호선 전철을 타고 대형 교회 카페로 갔다.
가슴을 얼릴 듯이 다가오는 에어컨 바람과 잔잔한 음악이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했다. 홀 안에 흐르는 음악은 힐링과 안정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평화가 마음속에 불안을 일시에 몰아내고 있었다. 나는 얼른 전공서적을 펼쳤다.
「우울장애에 관한 결과들 중 하나는 절망과 자살 간의 연관성이다. 다수의 연구들은 우울한 사람의 절망 수준이 높으며 이러한 절망은 자살의 위험을 높이기 쉽다고 보고 하였다. 대부분의 우울 환자는 절망과 낮은 자존감과 함께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즉 부정적인 주제의 자동적 사고로 연결되는데 부정적 피드백에 과대평가를 나타내며 인지적 과제 수행에 문제를 보인다.
반면 불안장애 환자들은 상해 또는 위험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잠재적 위협과 관련한 정보에 대한 주의가 증가되며 상황 속 위험 요인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 한다. 또 위험과 손해, 통제 불가능, 무능력과 연관이 있는 자동적 사고를 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소평가 하는 것이다. 또 신체에 자극이 왔을 때 잘못된 이해를 한다.」인지행동치료 (J.H Wright M.R. Basco M.E Thase 공저) 발췌
우울장애와 불안장애의 치유방법에는 여러가지 사례가 동원된다. 치료에 앞서 상담사는 내담자로부터 신뢰를 이끌어 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상담 도중 발생할지 모를 돌발사태에 대해서도 평정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 또한 상담 시 정확한 진단평가와 함께 내담자의 배경관찰, 치료에 대한 정보를 통합한 상세한 치료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그게 과연 정답일까. 한번 손상된 마음이 학문적 지식과 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운 또 경험이라는 스킬을 가진 상담사를 통해 완치 될 수 있을까. 하긴 소문에 의하면 인격수준이 저급한 상담사들도 치유에 있어 꽤 많은 성공빈도를 나타낸다고 한다. 축적된 기술의 노하우와 합리적인 근거와 표정연기를 통해서다.
나는 대학원을 갈 형편이 되지 않아 기관에서 상담학 공부를 한 케이스다. 전문가로서가 아닌 자가치유가 순전한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다년간 공부해 왔지만 내 마음속에는 항상 풀리지 않은 문제점이 늘 나를 당황하게 한다. 바로 완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요즘은 TV나 드라마, 인터넷마다 떠오르는 게 사이코 이야기다.
몇 년 전, 싸이코 패스 영화가 영상을 압도한 적이 있었다.
끔찍한 범죄사건 속에 가려진 정신질환자의 반사회적 행동을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이코패시(psychopathy)가 더 맞다. 사이코패시란 정신병질이 내부에 잠재돼 있다가 범행을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일종의 반사회적 성격 장애자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고, 사기행각과 피해를 일삼는다. 사회적, 가정적으로 맡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실, 정직, 신뢰와는 거리가 멀다. 사이코패시는 개인을 대상으로 할 때도 있지만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것이 대부분이기에 더 위험할 수 있다. 원인은 유전적인 요소도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나 학대, 착취, 폭력, 유기를 지속적으로 경험한 경우가 많다.
유일한 예방법이 있다면 양육 과정에서 폭력이나 착취, 학대를 경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심리학자가 말한 기억이 난다.
상담학이 발달할수록 그 사회는 불안이 팽배한 증거다.
책을 보고 있는데 중년들의 대화가 마음을 찌르며 다가왔다.
“내 동생은 S대를 나와서 모 그룹에 근무하다 지금 미국 본사에 가 있어, 조카가 이번에 MIT 공대에 입학했거든, 오빠는 작년에 모 그룹 이사로 승진했는데 퇴출 당할까봐 전전긍긍이야, 이사가 퇴출 일 순위라며?”
“그렇긴 해. 내 조카도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30대 초반에 이사가 돼서 경사났다고 좋아했더니 3년도 안 돼 짤리더군, 이유가 웃겨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어서래 기가 막혀서.”
“니 동생 사업은 잘 돼 가니?”
“말마라 만날 때마다 죽는 소리한다. 조카 녀석이 실용음악인가 뭔가 하고 싶어 하는데 기타를 사달라고 난리도 아니란다. 뭐 신디사이저라나.”
“사 주면 되지.”
“돈만 있으면 사 주지, 그게 보기보다 엄청 고가라, 사실 내 동생도 힘들어 제수씨랑 맞벌이 하는데 부모님 모셔야지 애들 키워야지, 내 빚 갚아야지. 형이 돼가지고 동생 짐이나 얹어주고 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죽자하고 고생만 하더니. 내가 죽고 싶어도 그 녀석 때문에 못 죽어 충격 받을까봐.”
“죽긴 왜 죽어? 끝까지 살아야지,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잖아.”
“너 성민이 소식 듣고 있냐? 재작년에 상처 했다며?”
“상처한 지 일 년도 안 돼 재혼했단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여자하고.”
“뭐? 그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 그럼 그 두 사람 전부터 사귄 사이 아니었어? 어째 좀 그렇다.”
“그게 뭐가 중요한데 재혼했음 잘 살길 바라면 되지, 넌 마누라 죽으면 재혼 안 할꺼냐?”
“생각 없다. 여자란 게 믿을 수 있어야지. 그보단 누가 나한테 오겠냐.”
그때 여자가 끼어들었다. 방금 전 S대 나온 남동생과 MIT 공대에 입학한 조카와 그룹 이사로 승진한 오빠 이야기를 한 당사자였다. 여자는 누가 봐도 영락없는 노파였다. 잔뜩 주름 잡힌 얼굴에 짧은 커트머리에 추물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코는 팍 주저앉았고 눈은 찢어진 단추구멍 같았다.
게다가 말할 때마다 어찌나 인상을 찡그리는지 흉물스러웠다. 참인지 가짜인지 집안은 꽤 좋은 모양이었다. 명문대 이름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그녀는 대화의 90 퍼센트를 주도했는데 들뜬 목소리로 끊임없이 주절대며 이야기했다. 대화가 끊기면 누군가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만남을 독려했다. 언뜻 보아 그들은 고향 선후배거나 학교 동문 같았다.
그들의 입가에서 새어 나오는 이름이 모두 동년배 같았으니까. 차림새나 대화 내용으로 보아 느낌은 상당히 어두웠다. 대화 도중 간간히 치료 병력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정신과 병력이었다. 정신분열증, 공황장애 우울증, 조증 불안장애란 말이 튀어나오는데 그때마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한가지 추가 되는 것이 있다면 사업실패와 이혼이었다. 그들은 모두 소외감과 피해의식, 그리고 가난과 병고를 떠안고 있었다. 옷가지는 후줄근해 땀에 절어 있었고 검은색 계통으로 마치 상가에 온 사람들 같았다. 에어컨이 나오는 반대방향으로 앉은 그들은 여름인데도 긴팔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있었다.
가끔씩 전공과목이 튀어나오는 걸로 보아 식견(識見)도 높아보였다. 사업에 실패한 뒤 재활센터에 머물고 있다는 남자는 입만 열면 IMF를 저주했다. 내 인생을 통째로 말아먹은 원수 같은 놈이라며. 그는 그때 사업실패 외에도 이혼이라는 상처와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병명까지 떠안았다.
“넌 여적 용인에 다니니?”
“지난달에 다녀왔어, 또 약을 주기에 팽개치고 나왔지.”
“그럴 걸 뭐하러 가니? 나처럼 아예 가질 말지.”
“나도 그러고 싶은데 더 심해져서 전번처럼 입원하게 될까봐.”
“입원할 돈이라도 있냐?”
“사실은 아냐.”
핸드폰으로 계속 통화 버튼을 누르던 여자가 말했다.
“승호야, 철민이는 우리 모임이 별로인가봐 내가 나오라고 하니까 시간 없댄다.”
“돈 내라고 할까봐 미리 겁먹고 그러는 거 아냐? 돈 안내도 되니까 부담 없이 나오라고 해봐.”
“나보고 여적 결혼 안 했냐 묻는 거 있지?”
“그래서?”
“그래서는, 안 했다고 했지 뭐.”
“왜 안 했는데?”
“알면서 뭘 물어, 요즘은 노숙자도 미인 아니면 쳐다도 안 본대.”
“넌 우울증 약 먹는다더니 이젠 괜찮니?”
“더했다 덜했다 그래 그게 하루아침에 낫는 병도 아니고.”
자세히 여자의 얼굴을 보니 추물도 그런 추물이 없었다. 게다가 몸매마저 형편없었다. 여자가 눈치를 챘는지 나를 향해 독 오른 눈빛으로 쏘아 보았다. 여자가 옆에 앉은 남자에게 나를 가리키더니 귀엣말을 했다.
“저 여자가 아까부터 자꾸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애, 기분 나쁘니까 나가자.”
“그냥 있어, 저러다 말겠지 뭐.”
민망한 나는 책을 덮고 밖으로 나왔다. 폭양이 내 어깨와 등뒤로 사납게 와 달라붙었다. 왜일까. 그들에게서 삶의 패잔병 같은 모습이 보였던 것은. IMF라는 괴물이 지난 지도 이십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여파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니. 하긴 그때만큼 자살자가 속출하던 시기도 없었으리라.
내 지인들(知人) 중에도 IMF라는 괴물에 발목 잡혀 살다 끝내 삶의 끈마저 놓쳐버린 경우가 여럿 있었다. 그들 뒤로 멘붕이란 단어가 생각나면서 지난날의 아픔이 뇌리 속에 떠오르다 사라졌다.
과거는 통제할 수 없는 잠재적 불안요소로 늘 현재를 통해 재현된다. 무의식 속에서 경험이라는 전제를 달고서.
그런데 어찌된 노릇일까. 그때 집안 자랑하던 여자는 어디로 사라지고 누님이라는 새로운 멤버가 나타난 것일까. 여름이 지나고 겨울로 접어들자 멤버가 교체라도 된 것일까. 식당 문을 나선 저들은 또다시 로뎀으로 발길을 옮길 것이다. 그곳에서 죽치고 앉아 시간을 때우며 이전처럼 노가리를 풀어댈 것이다.
가난과 상처를 공유한 그들은 컾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서로에게 위로를 청하는 것일 게다. 유유상종. 동병상련이라는 단어가 그들 위로 떠올랐다. 관심사가 같을수록 공감대는 높아지며 치유의 효과 또한 높아질 것이다. 그들 중년들은 교회 앞뜰에 자주 출현했으며 무료급식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식당에 나타났다.
식판을 들고서 헤픈 웃음을 날리며 음식을 가득 채웠다. 그중에서도 머리가 새하얀 승호라는 남자는 유독 음식을 탐했다. 연거푸 식판 위에 음식을 퍼담으며 정신없이 먹었다.
“승호는 사흘 굶은 것처럼 먹는다. 쟤 어제 굶었니?”
“굶긴, 전에 거식증 때문에 한동안 고생하고 나더니 저래, 보충 하겠다 그거겠지.”
“그래도 먹는 것에 비하면 날씬한 편이야, 그치?”
“그게 다 당뇨에다 혈압에다, 쟤랑 다니면 사실 좀 불안해 언제 아토시스 올지 몰라 가슴이 조마조마해.”
“당뇨? 그런 소리 없었잖아.”
“정신과 치료 받느라 까맣게 몰랐다 얼마 전에 발견된 거래.”
“나는 어제 병원 갔더니 조증 검사하라며 설문지 하고 왔어.”
“조증?”
“응, 내가 감정변화가 심하고 말이 지나치게 많잖아 그게 다 조증이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문득 지난날의 방황이 떠올랐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장래의 행로를 놓고 무능력과 방황하던……… 무능력은 예측불허라는 불안한 미래를 떠오르게 했다. 무능력보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더 문제였다. 난 무엇이든 해보지도 않고 포기했으니까. 도전의식이 부족한 나는 자포자기를 밥 먹 듯했다. 세상에 자포자기보다 더 슬픈 현실은 없었다.
자포자기는 신적의지마저 포기한 인생 최대비극 그 자체였다. 의지도 용기도 전무한 막장인생 인생이었다. 지능지수가 땅끝까지 떨어졌는지 책을 읽어도 내용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어와 문장이 제각각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신이 조각나 잠시도 집중할 수 없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정신이 산만해 잠시도 집중할 수 없는 건 정신병의 시초라고. 그런데 그의 말조차 내 귓가에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정신이 끝없이 침잠(沈潛) 속을 헤맸다. 때로 악이 출몰하기도 했고 상처라는 과거의 악몽이 현실로 나타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현실은 거의 매일같이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가난이라는 불가능과 통제가 안 되는 현실은 나를 이상론자로 만들었다. 맞닥뜨린 현실을 놓고서 나는 소설이라는 허구를 자꾸 들이댔다. 끔찍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심신이 허약한 나는 방황했다.
배부른 방종이 아닌 나약한 현실도피였다. 그때는 공황장애, 아니 멘붕직전이었는지 모른다. 자살을 시도하기엔 용기도 명분도 부족했다. 내세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었다.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를 놓고 내 안에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발밑에 시간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게 보였다.
무작정 집을 나와 전철을 탔다. 창밖으로 노란 개나리가 봄 햇살을 알리고 있었다. 진분홍 진달래와 벚꽃도 거리를 채색하고 있었다. 생명의 약동은 부활의 기쁨을 갖가지 유채색으로 밝히고 있었다. 전동차는 한강을 건너고 지하도로 진입했다. 터널을 빠져나온 전동차는 다시 지상의 시간을 뚫고 계속 전진했다.
신도시를 지났고 수목림을 지나 거대한 아파트 군단을 지났다. 그리고 또다시 허허벌판을 지나 인공호수가 넓게 펼쳐진 곳에 도착했다. 전철 역사를 나오자 빌딩 숲속에 광장이 보였다. 광장 끝 구름다리 너머 호수가 있는 쪽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곳은 꽃들의 향연이 인공호수와 함께 장관(壯觀)을 펼치고 있었다. 기세 좋게 뿜어 올리는 물줄기는 힘찬 도약의지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행진하는 젊은 연인들이 두 팔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마스크를 쓴 실버커플들이 열심히 경보(競步) 중이었다.
누군가 길을 지나며 말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천금 같은 말이 내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거대한 인공호수는 초록 나무와 꽃들의 향연과 함께 봄기운을 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파릇한 잔디 위에 앉아 음식을 먹거나 술잔을 기울였다. 한쪽에선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 햇빛을 받고 있었다.
휘일체어에 앉은 환자들은 봄 햇살을 받으며 모처럼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청명한 날씨였다. 그때 내 앞을 지나는 무리가 있었다. 검정색 외투에 벙거지를 뒤집어 쓴 중년들이었다. 처음엔 노숙자인가 싶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 들었다. 그들은 잠시 주변을 들러보더니 잔디 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들은 봄기운에 취한 듯 심상한 표정을 짓더니 힘차게 솟아오르는 물줄기에 시선을 집중했다.
“날씨 참 좋다.”
“저 꽃들도 좀 봐. 색상이 어쩌면 저리도 밝고 좋은지. 내 인생도 저런 빛깔이면 얼마나 좋을까.”
“봄꽃은 향기가 없어. 매화 빼고는 전혀 향기가 안 나.”
“라일락은 향기가 진동하잖아.”
“그건 5월쯤 피니까 봄꽃이라 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잖아.”
“그래? 난 꽃에는 다 향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봄꽃엔 없다니 금시초문인 걸.”
“배고프지 않니? 내가 매점에 가서 컾라면 좀 사올까?”
“그래 나도 배고파 얼른 사 와.”
“그럼 돈 내놔.”
“우선 니가 가진 걸로 사 와, 나중에 줄게.” “그래 그럼.”
다른 사람들은 밝은 색상의 봄옷 차림이었는데 그들만 검정색 계통의 두꺼운 외투 차림이라 지나가는 행인들이 자꾸 힐끔거렸다. 중년남녀들이 떼지어 몰려 있으니 호기심이 당기는 모양이었다. 검정테 뿔테 안경에 벙거지를 쓴 남자가 말했다.
“여기 이러고 앉아 있다가 빚쟁이 만날까 두렵다. 간신히 피해 다니며 살았는데.”
“넌 그 강박증이 문제야. 뭐든지 확률로 따져봐 가능성이 몇 퍼센트인가.”
그때 두꺼운 파커로 온몸을 감싸고 있던 여자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좀 봐.”
여자가 가리키는 곳은 벤치에서 혼자 컾라면을 먹고 있는 중년여자였다. 여자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라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그대로 입속으로 투하 중이었다. 허겁지겁 땀까지 뻘뻘 흘리며. 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속에 애잔함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그 모습을 두고 갖가지 상상이 펼쳐졌다. 노숙자? 쫓겨난 이혼녀? 정신질환자?
여인이 자리를 탈고 일어서는데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옆 모습이 사촌 여동생 미옥을 많이 닮아 있었다. 갸름한 얼굴 라인에 도톰한 입술이 게다가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까지. 미옥은 외모가 출중한 남편과 6살 4살짜리 남매를 둔 엄마였다.
열심히 맞벌이 해 집 장만도 했고 안정된 위치에 올랐는데 어느날 갑자기 옛 애인이 나타났다. 직업이 백수인 그 녀석은 미옥과 같은 대학 동기로 CC였다고 한다. 녀석은 미옥에게 들러붙어 곶감 빼듯 돈을 갈취하더니 끝내 몸과 마음까지 빼앗고 말았다. 날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요 툭하면 외박이니 남편이 눈치 채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혼하는데 위자료니 재산분할이니 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그 놈이 다 빼가고 없었으니까. 맨몸으로 쫓겨난 미옥은 가족과 직장과 애인에게도 버림받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그대로 한강에 투신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후유증을 고스란히 내가 떠안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불안장애로 사투를 경험한 내게 미옥의 죽음은 기름 위에 불을 끼얹는 격이었다. 멘붕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그 사건으로 나 역시 파혼이란 아픔을 겪었다. 결혼식 열흘을 앞두고 남자는 내게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면서 홀연히 사라졌다. 세상이 온통 암흑천지로 변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산란해 잠시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집을 나와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고 중독에 빠졌다. 시간이 원수였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에 속아 허구헌날 길바닥에 시간을 쏟아붓고 다녔다. 하루종일 저잣거리를 헤매고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멀리 다녀오기도 다반수였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컴퓨터 수강을 신청했다가 일주일도 안 돼 취소했다.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이틀 나가고 그만 두고 P C 게임에 빠져 날밤 새우기도 부지기수였다. 나중에는 봉사센터에 갔는데 오히려 위로 받고 온 적도 있었다. 내 얼굴에서 낌새를 알아차린 장애인이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답니다.”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저를 교회에 데려다 주시는 봉사자가 계신데 지금 외국에 나가셔서요, 죄송한데 저 좀 데려다 주시면 안 될까요?”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달려가 손발 노릇을 해주었다. 휘일체어를 밀고 장애인 전용택시를 불러 교회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돌아서는데 그녀가 또 붙잡았다. “예배 끝날 때까지 함께 계셔 주시면 안 될까요?” 이건 좀 지나치군.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 나는 원래부터 봉사체질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쩌다 나선 봉사였는데.
냉정하게 돌아서려는데 뭔가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를 따라 성전 안으로 발을 드밀었다. 천장에서부터 빛이 엄청난 속도로 쏟아지고 있었다. 빛이 마음속에 들어오면서 안정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호화스런 오케스트라와 음향시설에 푹신한 장의자까지 고급 일색이었다. 거기에다 영상시설까지 합쳐 그야말로 럭셔리했다.
장애인은 나더러 자리에 앉으라고 눈짓까지 했다. 곧 예배가 시작될 테니 눈을 감으라는표시였다. 기가 막혔다. 도로 뛰쳐나갈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이것도 봉사라고 생각하자. 그런데 오늘까지만이다. 눈을 감았는데 따듯한 기운이 음률과 함께 몰려오면서 스르르 졸음이 왔다. 마음이 적이 안정되면서 이내 잠속으로 추락했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마음속으로 한 문장이 다가왔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예배가 끝난 모양이었다. 그녀가 나더러 휘일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대성전 로비에는 많은 교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녀는 아는 교인들과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한 미소였다.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에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후에도 그녀는 봉사차원이라며 몇 번이나 내게 교회에 동행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상담치유사 공부 해 보시죠.”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하면 비용이 저렴하다고 했다. 공부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심리분석에 들어가면서 환자로 보이는 것이다. 성격유형을 놓고 혼자서 갑론을박 하다가 문제점은 없는지 파악에 들어갔다. 그러다 로뎀에서 중년들을 만나면서 곧바로 센서기능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중년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내가 공부했던 내용과 똑같았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을 때마다 현장실습 하고 싶은 욕구가 내부에서 빗발쳤다. 그들의 치유경력과 담당의사와 약명과 상담사의 면면까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중년들과의 인연은 기묘했다. 호수공원과 로뎀, 음식점 교회 뜰까지 심심하면 부딪쳤다.
물론 서로 아는 체 하지는 않았다. 중년들은 멤버가 자주 교체 되는 것 같았다. 같은 게 있다면 식사는 언제나 라면이었고 술은 막걸리였다. 잘 안 보이는 멤버는 알바 중이거나 일용직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급여를 받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항상 라면으로 때우는 것도 이상했다. 그것도 꼭 컾라면이었다.
어느날 나는 성전 문을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중년들의 손에 선물 보따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오늘 땡잡았네, 다음에 또 보자.”
“그래 다음엔 또 뭘 줄란가 기대된다.”
교회 집회에 참석했다가 뭔가 받은 모양이었다. 이후에도 그들의 모습은 로뎀과 음식점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말투도 순해 보였고 한번도 다투거나 언쟁을 벌이는 일도 없었다. 드라마나 연극에서 보는 사이코의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
그들은 모두 동병상련의 처지로 대화의 상대가 필요했다. 세상에 동병상련이란 말처럼 이해가 빠른 단어가 또 있을까? 상처 받을 이유도 없는 공감대 100 퍼센트의 관계. 그래서 세상에는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란 단어가 존재하는지 모른다. 승호라는 남자는 선한 인상에 학력도 높아 보였다.
“내 외조부모님은 두 분다 치매로 돌아가셨어, 엄마는 아버지가 씨앗을 보는 바람에 정신분열이 와 집안에 묶여 지내다시피 했어, 집안망신이라고 집밖에는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했거든, 그게 내 어린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거야. 엄마는 날마다 괴성을 지르고 그러면 할아버지는 입을 틀어막고, 엄마는 거의 굶어 죽다시피 했어.”
그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어둠 속에 꼭꼭 갇히는 느낌이었어, 엄마가 너무 불쌍해 이담에 죽어서 엄마를 만나며 내가 잘해 줄 거야.”
맞은편에 앉아 있던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가 말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가출했대, 나를 낳기도 전에 정신병이 들어서 유전이라고 하더군, 외할아버지도 그러셨대. 나는 그 사실을 청소년 시절에 알고는 얼마나 방황했는지 몰라, 어느날 나한테도 이상이 발생했지, 엄마와 똑같은 증상이었어.”
“나는 열심히 공부해 학부과정을 마쳤는데 어느날 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정신분열이 온 거야. 정신도 견딜 수 있는 함량이 있어 너무 큰 충격이 들어오면 정상궤도를 이탈해, 정신병이 발생하는 거지.”
“너 민철이 소식 들었니?”
“민철인 헤어진 부인과 재결합해 교회 나간다며?”
“응, 그런데 신수가 훤해졌더라 직장도 다시 얻고 이젠 약도 다 끊었대.”
“그래? 그것 참 기적이군, 우리 중에서도 가장 증세가 심했는데, 그나저나 그 부인도 대단하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벌써 도망쳤을 탠데.”
“경민이는 기도원 갔다가 실컷 두들겨 맞고 상황이 훨씬 나빠졌대. 거꾸로 매달아 놓고 때리더래.”
“아직도 그런 데가 있나?”
“지난번에 어떤 여자가 그러는데 정신병도 예방 차원에서 다스려야 한 대,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상처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거야. 마음을 나약하게 방치하면 그 틈을 타고 악마라는 놈이 들어오는 거지.” “……….”
“게다가 사랑받고 인정받겠다고 날뛰다간 더 꼼짝없이 놈의 수법에 걸려드는 거래.”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야 한 대, 마음도 강하게 연단해서 무장해야 한 대, 그런대 요즘은 왜 그렇게 사이코 패스가 많냐?”
“사이코패스가 아니고 사이코패시가 맞아.”
“마음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건대?”
“신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가 있대, 자유의지는 천사도 악마도 갖지 못한 고유 권한인데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대, 이것을 악마에게 주면 악마가 되고 천사에게 주면 천사가 되는 거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러니까 의지가 중요한 거지. 말하자면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해. 생각과 의지를 전능주께 맡기면 그 분이 우리를 주관하신대. 그래서 진정한 멘탈 갑이 되어야 한 대.”
“너 또 설교 들었구나. 통 못 알아들을 소리만 하고 있네. 그 전능주 그리스도?”
“응, 저 성전 안에 계시는 분.”
“너 또 꿈꿨구나. 아님 약발 떨어진 거 아냐?”
“아니, 지난번에 봉사하고 나오는 사람한테 들은 거야. 전능주 그분께 마음과 의지를 드려야 되는 거래.”
“또 헛소리 들은 모양이군. 드리긴 뭘 드려? 드린다고 그 분이 맡으시겠냐?”
그들은 모두 와! 웃었다. 그러자 방금 전에 말했던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은 우리의 마음을 몰라도 그 분은 아시고 위로해 주신대, 왜냐하면 그 분이 우리를 만드셨으니까. 사람이 못하는 일을 그분은 하실 수 있대,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시니까.”
“그럼 저쪽 사람들은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 하나도 없겠네.”
“쟤는 예배 몇 번 드리고 나더니 완전 세뇌 당했나봐, 그래 그런 식으로 중독되다 보면 좋아질지도 모르지.”
그들은 대화가 조금만 길어지면 저마다 피해의식을 쏟아냈다. 피해의식은 과거의 실패의 경험과 부정적 시각이 만들어낸 잘못된 인식이다. 그것을 이길 방법은 딱 한가지다. 감사와 긍정의 마인드로 밝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언젠가 피해의식에 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마음은 형체는 없지만 감정이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상처가 침입하면 반응한다. 그 반응에 따라 마음은 갖가지 양상을 나타내는데 그럴 때 나타나는 증상이 상처에 대한 방어체계다. 마음은 또다시 발생하게 될지 모를 상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사용하는데 그때 나타내는 증상이 피해의식이다.
피해의식은 기억체계를 동원 재빠르게 반응한다. 상대를 먼저 공격하거나 두려움 혹은 회피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피해의식은 과거의 경험에서 반추되는 것이므로 타협이나 이해심이 없는 게 특징이다.
그 감정의 근저는 불신이며 양상은 적대감과 분노로 나타난다. 피해의식은 모든 것을 악의로 해석하는 경향을 띈다.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과거에 반추해 악의로 결론 내린다. 설령 그것이 잘못된 판단으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현상은 매번 반복된다.
과거의 상처에 집착된 사고(思考)가 끊임없이 추측과 상상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타협이나 수정의 여지가 없다. 자연히 무리에서 이탈되며 외톨이가 된다. 대인관계에 있어 가장 상대하기 힘든 케이스다. 사람들은 피해의식에 휩싸인 사람들을 가장 꺼려한다. 진실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에 모든 판단을 맡기기 때문에 그에게는 오직 이기심과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사랑이나 인정(認定)도 통하지 않는다. 그것조차 의심하고 두려워한다. 그것이 사실로 판명난다 할지라도 다시 재해석함으로 마음이 낮아진다. 피해의식은 두려움의 형태가 분노로 나타나는 일종의 자의식 현상이다. 그 이면에는 자존심 상하고 손해본 기억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뇌에서 끊임없이 명령하는 것이다.
손해보지 말아라.
상처 입지 말아라.
대적하고 먼저 공격하라.
거절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항상 고뇌한다. 의식속에 한번 뿌리 내려진 상처는 사고(思考)를 고착화하고 갖가지 부정적 양상을 일으킨다. 모든 걸 자기 주관적으로 해석해 수많은 오해의 불씨를 나타낸다. 불신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생각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는 항상 외롭다.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에 평강이나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 손해볼까봐 늘 전전긍긍하며 사랑마저도 늘 주저한다. 그러나 그 심연(深淵) 저변에는 사랑받고자 원하는 끊임없는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누군가 그에게도 다가가야 한다. 그에게 다가가 참 사랑의 진수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두 번 갖고는 안 된다. 열 번 스무 번 거듭 거듭 보여 주어야 한
다. 피해의식의 가장 확실한 처방책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곱슬머리를 한 남자가 말했다. 그는 여간 표정이 심각한 게 아니었다.
“지금 우린 현재에 살고 있지, 그럼 현재보다 더 중요한 건 뭘까?” “그야 미래겠지.”
“그런데 왜 우린 과거에 얽매여 살아가는 걸까? 어떤 학자가 그러는데 용서만 잘해도 정신병에서 해방될 수 있대.”
“그런 소리 수천번도 더 듣는다. 세상에 용서해 줄 놈이 따로 있지, 난 내 의붓아버지만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 죽일 놈이 내 어렸을 때 서너 살 쯤이었나 나 죽으라고 물속에 처박은 적이 있었어,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여러번이었어, 그런 놈을 용서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그놈 혹시 사이코 패시 아니었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용서는 나 좋으라고 하는 거지 상대 좋으라고 하는 건 아니야, 용서하지 못하고 상대를 계속 미워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상대를 닮아 있는 걸 보게 돼, 참 아이러니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닮다니, 그러니 어쩌겠어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해야지.”
승호라는 남자가 말했다.
“미움은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든다잖아, 판단력과 분별력을 떨어뜨리고 평강을 빼앗아 가는 불안의 원인제공자, 하지만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쫓겨나가는 거래, 세상에 어둠이 강하면 강할수록 빛은 더 강한 법이거든.”
“쟤는 이제 신자 다 됐네, 그렇다고 하더군, 빛은 우리에게 자유와 평강을 준다고 목사가 그랬나.”
그때였다. 눈이 쭉 찢어지고 추물인 그녀가 나타났다.
“승호야 승호야, 나 오늘 월급 탔다. 우리 나가서 밥 먹자.”
“웬일로?” 그들은 모두 합창을 했다.
“병원비 해야지.”
“약값 안 모자라?”
그러자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가 그러는데 내일부터 병원 안 와도 된다고 그랬어, 약도 안 먹어도 된대.”
“너 또 소설 쓰는 거 아니지?”
“속고만 살았나, 내가 한턱 쏜다니까.”
그러나 그들은 말뿐 한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돈 모아 놨다가 급할 써, 성경에도 나와 있잖아, 아사왕이 풍년이 들었을 때 가뭄을 대비해서 곡식을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고.”
그러자 또다른 중년이 말했다.
“외침을 대비해 국고를 튼튼히 방비했다고도 했지.”
그 말에 모두 와! 웃었다. 승호라는 남자가 말했다.
“야! 모두 성경박사가 된 것 같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지, 내일 걱정 내일 하라. 오늘 고생 족하다.”
여자가 말했다.
“밥 한끼 산다고 내 곳간 뻥 뚫리는 거 아냐, 모두 나가자 내가 오늘 찌개백반 쏜다.”
그들은 모두 전에 갔던 음식점으로 줄지어 몰려갔다. 그녀가 하는 일은 식당 설거지나 건물 청소부였다. 중년이 되면 일자리가 평준화 된다는 말이 있다. 웬만한 일자리는 젊은 기득권층이 다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3D 업종만 남은 것이다.
그래도 베이비붐 시대를 겪은 중년들은 그나마 아쉬워 몸받쳐 시간받쳐 일을 한다. 돈 되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공사장 인부나 묘목 심는 중노동에 투입되고 여자들은 잘하면 베이비시터나 식당일 가사도우미 정도다. 그녀는 특히 외모가 떨어져 대외적인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말했다.
“그래도 몸을 움직여 돈을 버는 일만큼 보람된 일도 없다.”
“그럼, 몸 움직일 수 있을 때 한푼이라도 벌어야지.”
“그래도 대학까지 나왔는데 좀 서글픈 생각도 들어, 이럴려고 대학 나온 건 아니잖아.”
“그런 건 다 옛날 이야기잖아, 중년이 넘어서면 모든 일자리는 평균화 되는 거야.”
“거 누구더라? 유명한 영화배우가 있는데 무명시절 단돈 6만원 가지고 6개월을 버틴 적이 있었대, 굶기도 다반사였고 어떤 배우는 심지어 노숙 경험까지 있었다는 거야, 그런 시절을 겪고 나니까 지금은 멘탈갑이 된 것 같다잖아.”
“그 유명한 미국의 토크 진행자 오프리윈프리도 그랬다지.”
“그것도 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의 이야기지, 영혼이 병든 사람은 그마저 힘들어 꿈속의 이야기일 뿐이야.”
“약점에 집중하지 말고 강점을 발전시켜야 한 대, 전에 상담사가 내게 말했어,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 긍정적 사고를 해야 한다. 생각은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도전의식을 강화시켜라.”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은 치료제는 사랑이야, 바로 아가페 사랑.”
“그런데 정신병이나 유전병은 건강보험도 실버보험에서도 예외라는데.”
“유전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는 말 들어봤니?.”
“그게 뭔데?”
모두 귀가 쫑긋한 표정이었다.
“DNA의 유전형질을 변화시키는 힘은 강한 신적능력이야. 악을 선하게 만들고 강력한 치유의 능력이 임하는 바로 아가페 사랑이야.”
그들이 음식점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을 건널 때였다. 길을 지나는 중년남자가 나를 보더니 자꾸 힐끔거리는 것이었다. 언듯 보니 남자는 노숙자 같았다. 수염을 덥수룩이 기르고 때에 찌든 옷에서 악취가 풍겼다. 아마도 그들 중 하나겠지. 생각하며 길을 가는데 아무래도 낯이 익었다.
생각의 실마리가 풀리는 순간 난 경악했다. 심장이 두 동강 나는 것 같았다. 미옥의 남편 김형찬이었다. 그 역시 나를 보는 순간 긴가민가 살피다가 기억난 모양이었다. 또다시 가슴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미옥에 대한 아픔과 김형찬, 그러니까 제부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혼절한 것 같았다. 이윽고 눈치를 챘는지 남자가 사거리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다음날 나는 친척에게 걸려온 전화를 듣고 또한번 기함하는 줄 알았다. 미옥의 자살 원인은 불륜이 아닌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다는 것을.
사글세 방으로 시작해 죽을 고생 끝에 내 집 장만을 했는데 그때 이미 남편에게 애인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도 결혼 전부터 사귀던 오래된 관계였다. 남편은 아무 조건도 없이 이혼만을 원했다. 가진 모든 재산 다 줄 테니 이혼도장만 찍으라고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아니고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 인물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라며 끝까지 결혼을 반대했던 부모에게 할 말이 없었다. 세상만사 다 귀찮았던 미옥은 간단하게 죽음을 선택했다. 남편은 자식이라면 죽고 못사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남편에게 지고지순했고 남편 하나에 올인했던 참담한 결과였다. 그 모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제부는 말도 안 되는 거짓을 꾸며댔던 것이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가족들은 모두 분통을 터뜨리며 당장 김형찬을 찾아내 복수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나는 또다시 불안장애가 발생해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순간적으로 사이코패시가 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루만 미리 알았더라도…….
온갖 악의 대명사가 다 떠올랐다. 어제 바로 로뎀하우스 앞 사거리에서 그를 보지 않았던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 마음속에 비수가 시퍼렇게 떠올랐다. 내 이놈을 당장 찾아내서 …….
생각의 소용돌이가 잠시 가라앉은 뒤, 나는 얼른 CBT(인지행동치료기법)의 이론들을 떠올렸다. CBT에서는 모델의 세 분야(인지. 감정. 행동)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기법들을 사용한다. 내 안에 잘못된 인지적 오류는 무엇이 있는가. 자동적 사고를 일으키는 정보처리의 기본틀은 무엇인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대신 사이코패스 영화의 장면만 악몽처럼 떠올랐다. 악몽은 수시로 리바이벌 되면서 혼미를 거듭했다. 평안이 끼어들 잠시의 틈도 주지 않았다. 생각은 부침(浮沈)의 연속이다. 늘 현실과 무의식을 오가며 이루어지는 현재진행형 동사와 같다.
마음이 혼란을 거듭할 때마다 난 수시로 로뎀으로 달려갔다. 중년들을 보면 뭔가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엉뚱한 기대를 하며. 그러나 어느날인가부터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음식점에서도 거리에서도. 난 한동안 그들처럼 거리를 배회하다가 성전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률을 들었다.
언 가슴을 녹이는 따스한 사랑의 음성이었다. 그건 진정한 아가페의 사랑, 바로 신적의지였다. 내 자유의지가 점점 그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참지 못할 분노 있거든 주님께 맡기세요 참지 못할 슬픔 있거든 주님께 맡기세요 우리 살아 갈 길은 눈물의 골짜기 내 힘으론 참지 못해 늘 흐느끼네 이럴 때 우린 누굴 의지하나요 주님밖에 없어요 난 그 길 갈 수 없지만 주님이 대신 가요」
호렙산(山)으로 가는 도중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쉬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로뎀나무는 잎사귀가 없고 그늘이 없어 쉼과는 거리가 멀다. 이스라엘에서의 로뎀은 죽음 혹은 혹독한 고난의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왜 카페 이름이 로뎀일까. 생각하며 걷는데 누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언젠가 봉사센터에서 만난 장애인 여자였다.
반가움에 가슴이 울컥했다. 나를 신의 품으로 인도한 그녀의 해맑은 미소가 무척 궁금했었다. 그녀가 대기해 놓은 장애인 택시 오르면서 내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했던 걸까. 궁금증과 아쉬움이 또다시 가슴을 울컥하게 했다. 거리는 진분홍과 새하양, 진노랑으로 물든 봄 햇살이 잔잔하게 흩뿌리고 있었다.
그때 전에 보지 못했던 이상(理想)이 내 가슴 속에 충만히 자리잡고 있는 게 보였다.
end
첫댓글 요즘은 노숙자도 미인 아니면 쳐다도 안 본대 / 허허 그런 세상인가/가급적 목사나 종교적인 용어가 안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