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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생각 스크랩 어양동(익산향토지 제 3권)
유병영 추천 0 조회 211 10.06.19 13:2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익산문화원에서 발행한 익산향토지 제3권(2007)중 필자가 조사하여 정리한 부분입니다.

 

 

제2편 어양동

 

제1장 어양동의 연혁과 현황

 

제1절 어양동의 연혁

 

어양동은 원래 조선시대에는 익산군 두천면 소속의 31개 동리에 속한 곳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천면 지역과 지석면 지역은 병합되면서 팔봉면이 되었는데 어곶, 궁동, 양지리는 송정리의 일부와 동일면의 신량리, 용비리를 더하여 어양리가 되었다. 이때 어양리는 팔봉면에 속하지 않고 북일면에 속하게 된다.

1999년에 익산군에 편입된 전주군 소속의 옛 옥야폐현 지역의 5개면은 1914년에 부ㆍ군ㆍ현의 통폐합이 이루어지면서 2월에 남일면과 동일면이 합하여 익산면이 되고, 남이면과 서일면이 합하여 오산면이 되었으나, 북일면은 그대로 북일면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사라지는 두천면의 어곶, 궁동, 양지리가 어양리라는 명칭으로 팔봉면에 속하지 않고 북일면에 속하게 [1928년 북일면 현황도]

된 것이다.

그리고 3월에는 용안군, 함열군, 여산군이 익산군으로 통합되게 된다. 1917년에 간행된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 朝鮮全圖府郡面里洞名稱一覽)》을 보면 1914년 당시의 북일면은 모두 9개리로 이루어졌는데 그 지역은 다음과 같다.

 

1. 어양리 : 양지리, 어곶리, 궁동, 신양리, 용비리, 송정리 각 일부

2. 영등리 : 동영등리, 서영등리, 신성리, 약촌, 청복리, 궁동, 송내동 각 일부

3. 남중리 : 송내동, 장교동, 남중리, 후신리 각 일부

4. 신 리 : 소영등리, 송내동, 신리, 모인리 각 일부

5. 현영리 : 서두리, 동산리, 현영리, 내장리, 상시리, 만석리 각 일부

6. 만석리 : 만석리, 하시리, 상시리 각 일부

7. 모인리 : 도교리, 외장리, 수곡리, 모인리, 신리 각 일부

8. 고현리 : 항가리, 묵동, 요동, 고현리, 동문리, 옥호리, 매교리, 수곡리, 남중리,남당리, 학곤리 각 일부

9. 신룡리 : 신곶리, 내곶리, 계룡리, 오룡리, 석상리, 석하리, 현영리, 신리, 모인리 각 일부

 

익산군의 군청 소재지인 익산면이 1917년에는 지정면(중심면)이 되면서 9월에는 북일면의 남중리와 고현리를 편입시키고 거리가 먼 석탄리와 대장촌리는 분리하여 춘포면에, 신흥리와 금강리는 북일면에, 목천리는 오산면에 각각 편입시켰다. 따라서 남중리와 고현리는 일찍이 90년 전에 이미 익산면에 속하게 되어 1931년에 익산면이 이리읍이 되면서 1933년 12월 1일 정제(町制)시행으로 남중정과 고현정이 되고, 1947년 이리부로 승격함에 따라 남중동과 고현동이 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북일면은 어양리, 영등리, 신리, 현영리, 만석리, 모인리, 신룡리, 금강리, 신흥리로 유지되다가 1947년 11월에는 모인리가 고현동에 합병되었다. 그러다가 원광대학교가 소재하여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 북일면 전 지역이 대통령령 제 7161호(1974년 5월 25일 공포)에 의해 1974년 7월 1일에 이리시에 편입됨에 따라 북일면은 시지역이 되고 북일동이 되었다. 이때 각 리의 명칭이 법정동이 되어 금강동과 신흥동은 행정동 신흥동이 되고, 신동, 영등동, 어양동의 3개 법정동을 행정동으로는 북일동이라 하고 만석동, 현영동, 신용동 등의 3개동을 합하여 행정동으로는 계문동이라 하였다가 그 후 이리시 조례 1238호(1989년 12월 22일 공포)에 의해 1990년 1월 1일 북일동이 영등동과 어양동만 북일동으로 하고 신동은 독립하여 분동되었다. 1996년 7월 10일에는 익산시 조례 제204호(1996년 6월 29일 공포)에 의해 급격히 인구가 늘어난 북일동을 영등동과 어양동으로 분동하였다. 1998년 2월 2일에는 익산시 조례 251호(1997년 10월 20일 공포)로 영등동, 어양동을 관할구역 조정으로 산업도로 북쪽을 어양동, 남쪽을 영등동으로 행정운영동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그 해 10월 9일에는 구조조정에 따른 통폐합이 이루어져 영등동과 어양동을 통합하여 행정동명을 영등동으로 하고 계문동과 신동을 통합하여 행정동명을 신동이라 하였다. 그리고 2003년 3월 1일에는 익산시 조례 662호(2003년 2월 4일 공포)로 영등동을 관할구역 조정으로 산업도로 남쪽일원을 영등1동, 산업도로 북쪽 일원을 영등2동, 어양동 일원을 어양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양동은 원래는 두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경에는 북일면의 어양리로서 북쪽으로는 두천면의 양지리, 어곶리, 궁동이 있고, 남쪽으로는 동일면의 신량리, 용비리를 더하고 동쪽으로는 송정리 일부를 더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어양리라는 명칭은 어곶과 양지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어양리라고 하였다.

제2절 어양동의 자연환경

 

익산은 전라북도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동부는 완주군과, 남부는 만경강을 경계로 김제시와, 서부는 군산시와, 북부는 금강을 경계로 하여 충남의 부여군 및 논산시과 접하고 있다. 지세는 동부지역은 험준한 천호산이 가로막고 있으며 서부는 금강이 흐르고, 남부는 용화산과 미륵산에서 그 지류가 발원하고 있는 만경강상류의 준평원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지질구조를 보면 동부산간지대는 선캄브리아기의 화강암질 편마암이나 편마암으로 구성된 변성복합체, 화산암류 등의 풍화에 강한 암석들이 분포하는데 반하여 산간의 분지와 서부평야지대 등의 기반암은 대부분 풍화되기 쉬운 중생대 쥬라기의 화강암류로 이루어져 있다.

익산의 동쪽인 여산과 금마일원은 노령산맥의 줄기가 뻗어 있어 비교적 산지로 구성되어 있지만 서쪽은 용안에서 성당면, 함라면, 서수면을 지나 임피면, 개정면, 옥산면으로 이어지는 함라산(241m)줄기와 몇 개의 대표적인 구릉지를 제외하면 해발 30m이하의 낮은 구릉과 비옥한 평야가 펼쳐지고 있는 곳이다.

익산시 중심부의 전체적인 지형으로는 미륵산에서 남서부로 내린 지맥이 만경강 본류와 탑천 유역, 그리고 송학동 및 오산리와 영만리의 해발 10 ~ 30m 구릉지를 제외한 지역이 충적토로 형성된 저지대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구릉지로는 배산(98m), 장자산(45.8m), 수도산(40m), 고봉산(45m), 팔봉산(68m), 지네산(67.8m)등을 제외하면 대체로 해발 30m이하로서 풍화층이 두텁고 토양은 적색을 띤다.

어양동 일대의 지형을 보면 동으로는 노령산맥의 줄기가 흘러 여산면, 왕궁면, 낭산면, 금마면을 스쳐 지나고 있으며 북으로는 금강이 서쪽을 끼고 돌며 비옥하고 평탄한 해발 30m 이하의 평야지역을 이루고 있다. 북쪽의 모습을 보면 임상동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을 흐르는 사수(만경강)의 탑천이 허리다리(요교)에서 갈라져 북으로는 기양천이 삼기면의 기산리까지 뻗어나가고 남으로는 팔봉천(망동천)이 금마면의 미륵초등학교 앞까지 뻗어나가 있는데 임상동과는 팔봉천을 경계로 한다. 이곳 평야는 충적평야인데 동부산간지대의 풍화산물이 만경강에 의하여 운반되어 쌓인 제4기의 충적층으로 되어 있다.

어양동은 영등동과 부송동의 사이에 길고 좁다랗게 위치한다. 따라서 어양동은 영등동과 마찬가지로 북동쪽의 미륵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의 줄기를 따라 낮은 구릉이 형성되어 있고 구릉의 하단은 논으로 경작되고 있는 저습지가 펼쳐져 있다. 이런 지형조건으로 구릉부에는 어곶, 궁동, 팔성, 혜교 등 소규모의 자연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밭으로 개간되어 경작물이 재배되고 있어 경작지 조성을 위하여 상당량의 절토작업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양동 지역도 1970년대의 야산개발사업으로 거의 대부분 밭으로 개간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먼저 영등1동 지역과 함께 도시화되어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무왕로 북부지역도 영등2동 지역과 함께 급속히 개발되어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다만 어곶마을 만큼은 아직도 구릉상에 그대로 남아있어 자연마을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나 궁동, 혜교, 팔성마을 등은 도시개발로 인하여 극히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흔적이 없게 되었다.

어양동은 1914년 이후 역사적으로 익산군 북일면 소속이었던 시골지역이었다가 1974년 이리시에 편입되어 비로소 시 지역이 된 곳이다. 따라서 그 범위가 비교적 넓은데다가 1980년대 이후 영등동과 함께 개발됨에 따라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하여 오늘날 최고의 신흥 발전지역의 핵심부가 되었다.

어양동의 위치를 살펴보면 크게는 삼성동과 영등동, 그리고 신흥동에 둘러 싸인 모습이다. 동으로는 부송동이 그리고 서로는 영등1동과 영등2동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형국이다. 남쪽에는 신흥동이 있다. 어양동의 모양은 가장 북쪽의 어곶마을은 아직도 농촌지역이지만 나머지 지역은 도심지역으로 좁고 길게 내려오다가 부천초등학교 아래로는 다시 넓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지형은 대체로 보석2로까지는 낮은 곳이나 익산문화원을 거쳐 팔봉동으로 향하는 선화로는 상당한 높이로 구릉의 등성이에 해당한다.

 

제3절 어양동의 현황과 모습

 

1. 행정구역 및 인구

행정구역

세대수

인구수

법정동

자연

마을

아파트

1

33

182

1

16

8,125

23,596

11,559

12,037

 

2. 면적 및 토지이용 현황

임야

대지

기타

2.11

0.33

0.34

0.11

1.33

0.10

 

3. 주요 기관 및 시설

공공기관

금융기관

학교

병ㆍ의원

종교기관

경노당

복지시설

7

3

4

25

34

14

5

 

4. 자연마을별 인구현황

마 을 명

세 대 수

상 주 인 구

비 고

어곶

73

204

 

73

204

 

 

5. 어양동 지역의 모습

 

1974년 7월 1일에 북일면이 이리시에 편입됨에 따라 북일면은 시지역이 되고 북일동이 되었다. 이때 각 리의 명칭이 법정동이 되고 신동, 영등동, 어양동의 3개 법정동을 행정동으로는 북일동이라 하여 비로소 어양동이 탄생하게 된다.

어양동의 모양새는 마치 찌부러지고 제멋대로 생긴 철제 아령모습이랄까? 남북으로 기다란 모습을 띠는데 농촌지역인 북부의 어곶마을은 둥그스름하고 시내로 들어오면서는 영등2동과 부송동에 치여 좁아졌다가 무왕1로 아래로 내려와서는 다시 넓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어 모양새는 그리 안정감을 주지는 못한다고 하겠다.

어양동 지역의 발전은 제1산업단지의 조성에서 비롯되었다. 1974년에 조성된 제1산업단지는 대부분 신흥동에 속하지만 어양동에도 여러 공장이 입주하게 되고 이때 이리에서 버스를 타고 금마로 나가는 길에 선화로가 개통되면서 영등1동과 어양동이 개발되고 발전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산업단지 조성시기에는 외환은행 사거리는 수출자유지역의 중심지로 당시 이리시의 미래가 걸린 희망과 기쁨의 거리였다.

당시의 이리는 전북 교통의 요지이며 군산항의 배후도시이고 풍부한 공업용수원(만경강)이 있으면서도 다른 도시에 비하여 지방공단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부진했다. 1973년 5월 공업장려지구로 지정받고, 같은 해 10월부터 수출자유지역(29만 평) 조성작업이 본격화하여 1974년 12월에 완공하였다. 그 후 1976년 1월에 수출자유지역의 일부를 해제, 수출산업공단으로 전환 ? 지정되었고 단지의 규모도 조정되어 총부지 43만 1000평을 조성, 이를 수출자유지역(9만 6000평),·수출산업공단(31

만 5000평), 귀금속단지(2만 평)로 나누어 분양하였다.

바로 이 외환은행 사거리가 이리수출지역의 센터였던 것이나 30년 세월이 흘러 아직도 (주)한국고덴시를 비롯한 많은 회사들이 여전히 입주하여 발전하고는 있으나 이제는 옛날의 그 생동감 넘치던 거리는 아니다. 귀금속 단지는 대폭 축소되고 귀금속 보석 판매센터도 시민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이리수출공단본부 건물]

2002년 어양동 공단지역 오른편에 건설된 중앙체육공원은 이곳의 모습을 일거에 변모시키기에 충분하였을 뿐 아니라 우리 시민들에게 우리도 드넓고 아름다운 공원을 가졌다는 크나큰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중앙체육공원안에는 청소년 수련관이 있고 바로 그 이웃에 익산 문화원이 들어섰으며 과거의 직업훈련원은 이제 어엿한 한국폴리텍 익산 캠퍼스가 되었다. 영등1동의 중심지인 약촌 오거리에서 출발하는 보석2로는 30여 년 간 하나1로 즉 쌍용아파트까지만 이어져 있었으나 2006년에 익산최대의 LG자이아파트가 입주함에 따라 4차선도로가 말끔하게 부송동까지 이어지게 됨으로써 LG자이아파트 일대가 아주 크게 변하고 있다. 더욱이 터질목에서 옛 농수로를 따라 오동길과 팔성뒷길이 각각 2차선과 4차선의 포장도로가 되었으며 이곳에 어양동 사무소가 좁은 골목에서 벗어나 의젓하게 자리 잡았다.

익산에서는 가장 거주공간이 좁고 가장 오래된 서민아파트로 유명한 어양주공아파트는 1977년 11월의 이리역 폭발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인 6월에 승인되었는데 당시에는 이제 막 건설된 제1공단의 끝이면서 아직 개발이 안된 영등리의 시골에 아파트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흔히 폭발사고 직후 지어진 모현아파트를 익산의 아파트의 효시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어양주공아파트가 모현아파트보다 더 먼저 추진되었다. 모현아파트가 사고로 재해민을 입주시키기 위해 서둘러 공사가 진행되었으므로 모현아파트는 78년말에 준공되었으나 어양아파트는 조금 늦어 1979년 8월말에 준공되었다. 모현주공아파트와 함께 익산시에서 지은 지가 30여년이 다되어가는 어양주공아파트는 낡고 퇴색되어서 모현주공보다도 훨씬 더 보기에 흉할 뿐 만 아니라 어쩌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하루빨리 재건축이 이루어져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의 주민들이지만 좀더 공간이 넓고 깨끗한 주거환경이 주어지기를 기대한다. 더구나 바로 뒤편에 대규모 LG자이아파트가 들어섰기에 오늘날의 빈부의 양극화 현상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듯한 보습이다.

이곳 보석2로 남쪽으로 부천중학교가 건설되고 있고 2008학년도엔 신입생을 모집하게 된다. 이리시 외곽 밭과 야산지대였던 이곳 어양동에 무왕1로 북부에 있는 영등중에 이어 또 하나의 중학교가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하나 1로의 오른편에는 어양주공아파트와 나란히 어양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도시 공원화사업이 시작된 이후 시내곳곳에는 작은 소공원들이 아주 많이 조성되어 있지마는 인공 [어양주공과 LG자이]

으로 조성된 공원중에서는 시내에서는 영등공원 다음으로 가장 큰 규모이다.

91년경에 이곳 어양동 지역에 가장 맨 먼저 들어선 맨션아파트가 어양현대아파트인데 92년 어양현대아파트 앞에 영등중학교가 들어서서 만 11년 동안 경영되다가 2003년 3월에 학교부지와 건물을 개교하는 익산초등학교에 물려주고 영등중학교는 무왕로 이북의 하나2로 오른편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익산초등학교는 2003년 3월에 12학급으로 개교하였는데 이 일대주민들의 체육공원역할도 하는 듯 조기축구 회원들을 비롯한 주민들의 발걸음이 잦다.

대처 오늘날 익산시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사거리가 어디냐고 물으면 전자랜드 사거리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으리라고 여겨진다. 이곳이야말로 영등동과 부송동의 한가운데 끼어있는 익산 최대의 중심사거리이기 때문이다.

이 전자랜드 사거리의 남쪽으로 하나1로를 사이에 두고 왼편에는 부영아파트 자리에 혜교 마을이 있었고 오른편으로는 어양주공5차아파트 지역에 팔성마을이 있었다. 그리고 사거리는 일명 팔성다리가 있었던 곳이다. 그러고 보면 전자랜드 사거리를 중심으로 주변에 있던 마을은 부송동의 작천, 어양동의 궁동과 혜교와 팔성이었고 이곳 사람들은 약촌을 지나 시내로 들어왔다고 한다.

무왕1로 북부에는 궁동마을이 있었다. 1990년대 말에 하나 2로가 뚫리면서 이곳이 개발되고 대체로 2001년까지 택지가 분양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대규모의 주공임대아파트가 건설되었는데 주공 7단지와 6단지가 1999년 말과 2000년 봄에 입주하였다. 2001년 9월에는 어양초등학교가 개교하고 2002년에는 광주지방노동청 익산지사가, 2003년에는 영등중학교와 주공8 ? 9단지가, 그리고 2004년에는 근로복지공단 익산지사가 들어서면서 오늘의 모습이 이루어졌다.

영생감리교회 뒤편 까치샘아파트 옆쪽에 작년까지만 해도 일부 남아있던 옛 궁동마을의 흔적이 이젠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 그 자리엔 304세대의 고급아파트인 《수목토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는 중이다.

익산의 신흥개발지역의 상징인 영등동과 어양동을 가르는 하나2로는 8차선의 익산 최대의 간선도로가 되었고 좌우에는 빌딩들이 늘어나고 있다. 2006년에 삼기까지 도로가 완성되었으므로 익산 발전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화지역의 하나2로 맨 북쪽 끝자락에는 한국전력공사 영등변전소가 있다. 변전소 뒤로는 부평로와 연결하게 되어있는 마한로가 아직 건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변전소 바로 뒤에서 끊긴 상태이다. 그 북쪽으로 어곶마을 까지는 논이지만 하나2로 주변은 대형음식점과 원불교당이 건축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도로주변만큼은 곧 상가들이 들어찰 듯 하다.

[하나 2로] 어양동의 자연마을들은 혜교, 팔성에 이어 2007년에는 궁동마저도 사라지고 이젠 농촌지역에 어곶만 남아있게 되었다.

어곶은 옆 마을인 부송동의 송정, 부평마을과 함께 나란히 붙어 이어지는데 이를 싸잡아 ?느릇?이라고 부른다. 이곳의 지형이 낮은 들 쪽으로 늘어진 모양이기에 ?늘곶?이 변하여 ?늘읏?이 되고 ?느릇?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이 늘곶의 끝자락은 하나2로가 꿰뚫어 동강이가 났다. 수년전 만 하여도 어곶 사람들은 발로 걷든지 차로 가든지 늘곶의 끝자락을 지나 동영과 곡영을 거쳐 신성을 지나 시내로 들어 왔지만 이젠 그 길은 한산한 외곽길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쉬엄쉬엄 걸어도 10분이면 시내에 진입한다.

 

제4절 어양동의 주요기관

 

1. 행정기관

 

(1)어양동사무소

1996년 7월 10일에는 익산시 조례 제204호(1996년.6.29일 공포)에 의해 급격히 인구가 늘어난 북일동을 영등동과 어양동으로 분동하였다. 이때 처음으로 행정동 어양동이 탄생하였고 어양동 사무소가 개설되었다. 1998년 2월 2일에는 익산시 조례 251호(1997. 10. 20공포)로 영등동, 어양동을 관할구역 조정으로 산업도로 북쪽을 어양동, 남쪽을 영등동으로 행정운영동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그 해 10월 9일에는 구조조정에 따른 통폐합이 이루어져 영등동과 어양동을 통합하여 행정동명을 영등동으로 함에 따라 행정동 어양동이 없어졌다가 2003년 3월 1일에는 익산시 조례 662호(2003. 2. 4공포)로 영등동을 관할구역 조정으로 산업도로 남쪽일원을 영등1동, 산업도로 북쪽 일원을 영등2동, 어양동 일원을 어양동으로 분동하므로서 행정동 어양동이 다시 살아났으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처음의 어양동사무소는 익산초등학교 앞에 있다가 2006년 11월에 어양공원 옆에 신 청사를 완성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어양동은 영등동과 부송동의 가운데에 위치한 신흥발전지역으로 2만 3천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8차선인 하나1로와 하나2로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어

 

[구 어양등 사무소자리] [현 어양등 사무소]

 

도로를 중심으로 크게 모습이 변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LG자이아파트, 주공6,7,8단지 등 대형아파트가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법정동이 오직 어양동 하나인 작은 동이지만 29개 읍ㆍ면ㆍ동중 인구는 5번째인 동이다. 33개통 182반으로 조직되어 있고 자연마을은 원래 궁동, 혜교, 팔성, 어곶 등이 있었으나 어곶 마을만 자연마을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세 마을은 도심속에 묻혀 사라졌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12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2)익산경찰서 부송지구대

예전에는 오랫동안 시ㆍ군마다 경찰서가 있고 그 아래 동에는 파출소가, 그리고 면에는 지서가 있는 모습이었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2003년 8월에 경찰조직의 전면적인 개편이 있게 되어 익산시 전체에 시내권을 중심으로 6개의 지구대와 시내에서 먼 농촌지역에는 경찰서 직속의 5개의 파출소를 두게 되었다.

현재 익산경찰서 산하 조직은 다음과 같다.

지 구 대 명

소 속 치 안 센 타

중앙지구대

남중치안센타, 모현치안센타

부송지구대

팔봉치안센타, 신흥치안센타, 춘포치안센타

평화지구대

마동치안센타, 동산치안센타, 목천치안센타

신동지구대

영등치안센타

함열지구대

성당치안센타, 낭산치안센타

황등지구대

삼기치안센타

경찰서 직속

파출소

용안파출소, 망성파츨소, 금마파출소, 왕궁파출소, 여산파출소

 

대체로 예전 파출소장은 경위로, 지서장은 경사가 임명되었으나 현재는 지구대장

은 경감, 파출소장은 경위로 임명되고 있다. 문을 닫은 시내의 구 파출소들은 치안센타로 명명되어 낮에는 민원담당관이 파견되어 근무하고 밤에는 비우는 곳이 되어 경찰이 가까이 있지 않으니 은근히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부송지구대는 어양동 621-1번지 구 어양파출소에 자리 잡고 있다. 관할구역은 부송동, 팔봉동, 신흥동, 영등1동(7통-15통, 25통-41통), 춘포면이며 관할구역의 인구는 2,700세대에 81,932명이나 된다. 이 지역의 특성은 도시권과 농촌권이 공존하고 있는 지역으로 어양, 부송, 신흥지역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 및 상가 밀집지역이 형성되어 있으며, 팔 [부송지구대] 봉, 신흥 지역은 1ㆍ2공단 등 300여개의 업체가 입주 가동 중에 있고, 춘포, 팔봉 지역은 대부분 농업지역이며, 대중운집시설은 팔봉 공설운동장, 실내체육관, 공원묘지, 팔봉 컨트리클럽, CGV 등이다.

 

(3)중앙체육공원

우리 익산시는 호남평야의 중심지에 발달한 도시로 앞으로는 논이요, 뒤로는 야트막한 야산이 펼쳐져서 기껏 산이라고 해보았자 도심주변에는 배산과 소라산과 수도산이다. 그중 오직 배산 만큼은 비교적 시내에서 가깝고 이름도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으며 공원의 모습을 조금은 띠고 있었다고 하지만,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아 어른들의 운동하는 장소로 이용될뿐 시민들이 친근감을 느끼기 힘든 곳이었다.

2002년에 어양동에 세워진 중앙체육공원의 탄생은 우리 익산시민에게는 참으로 크나큰 감동과 기쁨을 준 사건이다. 전주에는 다가공원과 덕진공원, 어린이 공원 등이 있고 군산에는 월명공원이 있 [중앙체육공원 전경] 는데 우리 익산에는 공원다운 공원하나 없던 차에 비로소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공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휴일은 물론 평일의 오후에도 시민들이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최고의 장소가 되어 있고 2006년에 완성된 배산체육공원과 함께 시민의 건강과 휴식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따라서 중앙체육공원의 조성은 조한용 시장의 최대의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익산중앙체육공원은 부지 116,096㎥에 주요시설로는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7,140㎥), 테니스장(8,198㎥), 다목적구장(풋살 경기장과 농구장 2,392㎥), 인공폭포, 대형 연못 등이 있다.

우리 익산시가 주최하는 지역축제로 4대축제가 있는데 익산 서동축제, 익산 천만송이 국화축제, 전국 돌 문화축제, 보석축제가 그것이다. 금년 2007년부터는 4대 축제를 동시에 개최하였는데 그중 가장 상징적인 대표적 축제행사인 익산서동축제와 천만송이 국화축제가 이곳 중앙체육공에서 열렸기에 소개하기로 한다.

 

■익산서동축제

익산은 서동요를 통해 사랑을 얻고 마침내 무왕으로 등극해서 삼국통일의 웅지를 펼치려했던 서동의 탄생지이다. 또한 마한의 도읍지이자 백제말기의 수도 혹은 별도였으므로 마한과 백제시대의 문화유산이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천년고도이다. 익산서동축제는 1968년 마한민속제전으로 금마를 중심으로 개최된 유서깊은 전통 민속 축제이며 익산시 탄생을 계기로 확대되어 열리고 있는 익산시의 가장 대표적인 축제이기도 하다. 익산서동축제는 국경을 초월한 서동과 선화공주의 세기적인 사랑을 기념하고 백제 30대왕인 무왕이 등극하여 삼국통일의 웅지를 펼치려했던 서동과 익산시의 문화유산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서동축제 추진위원회에서 주관하고 주최하며 4일 동안 열리는 서동축제는 다음과 같이 다채로운 행사(2007년)로 진행된다.

 

주제

제목

내용

비고

1. 서동요 즐기기

S-POP Festival

국내최초로 전래음악을 현대화시키는 창작가요제

신선하고 창의적인 즐거움

일본 요사코이 축제교류공연

일본 요사코이 축제팀

익산 어머니 서동요 부르기

익산 주민들의 서동요 부르기

자매도시초청 교류공연

일본 분고오노시 마츠오카쿠라 공연

2. 서동

이야기 즐기기

익산서동축제 전체행사장

서동스토리로 구성

다양한 지역문화를 누리는 즐거움

서동 스토리 텔링관

서동의 일생을 상징

서동 열전

서동의 일대기를 구성한 창극

서동 선발대회

서동선발 콘테스트

서동 선화 행차

서동과 선화의 행차 퍼포먼스

무왕제례

축제 성공 기원 무왕제례

3. 신화ㆍ설화 즐기기

세계 설화관

설화 테마파크존, 사랑신화존

과거와 미래의 만남을 체험하는 즐거움

전래동화

무서운 이야기, 신화 이야기, 재미 있는 이야기

축제 상징탑

축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탑

4. 지역 문화 즐기기

천만송이 국화축제

국화작품전시

찾아보고 먹는 즐거움

마 음식 맛보기

마 음식 전시 및 개발

지역문화공연

이리 농악, 기세배, 풍물경연

익산문화 상품전시체험

돌 및 보석 가격인하 판매

5. 참여해서 즐기기

서동 짝사랑

서동 짝사랑 UCC 공모전

상금타고 상품타는 실속있는 즐거움

익산유적지 탐방

서동 및 백제 유적지 탐방

시민 열린 음악회

청소년 및 예술인들의 열린 무대

■익산 천만송이 국화 축제

국화축제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농업기술연구센터가 주관하는 천만송이 국화축제는 ?아름다운 만남, 사랑의 속삭임?이라는 주제로 개최되고 있다. 2007년10월 25일부터 31일까지 7일간 개최된 행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 사 명

내 용

개막행사

개막 테이프 커팅, 50M 국화떡 만들기

전시행사

공원 및 주요도심 국화 테마 전시

경연행사

시민국화작품 콘테스트, 국화상품 전시회

체험행사

국화상품, 음식, 보석, 민속놀이, 전통테마마을 체험

국화판매, 농ㆍ특산물판매, 홍보행사

국화, 익산 주요 브랜드, 탑 라이스 홍보

기타 문화행사

농경사진전, 농기구 전시, 국화품종 전시, 동물농장, 가을 음악회, 난타공연, 풍물공연, 행운권 추첨

 

■제10회 전국 돌 문화 축제

옛부터 우리 익산은 황등 화강암으로 알려져 왔다. 따라서 석공 아사달의 후예들의 찬란한 석조문화예술이 발전하며 그 전통을 지켜 내려온 돌의 고장 익산에서 우리의 생활속에서 늘 함께 해온 돌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애정을 제고하고 석조문화예술의 신비로움을 시민들이 몸소 체험함으로써 우리 지역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나아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의 육성발전을 위해 돌 문화축제가 개최되어 왔다. 또한 석재인들의 화합과 석재산업 발전을 도모하자는 뜻도 함께 한 돌 문화 축제는 제10회를 맞이하였으며 작년도까지는 문화원 앞뜰에서 개최되었으나 금년부터는 네 개의 축제가 통합 개최되면서 장소를 배산체육공원으로 옮겼다. 어양동과는 다른 모현동에서 개최되기 시작하였으나 익산의 축제를 소개하는 의미로 돌 문화 축제도 소개하고자 한다.

익산 돌 문화 축제는 전국돌문화축제 제전위원회가 주관하며 2007년에는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개최되었으며 그 행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 사 명

내 용

공연행사

풍물놀이, 특공무술 시범, 향제줄풍류

상설전시행사

석조각ㆍ공예품 전시회, 돌문화보존회 회원전, 석조문화재 사진전

참여형 콘테스트

돌조각 경연대회, 돌탑쌓기 경연대회

상설체험행사

연날리기, 탁본체험, 도자기체험, 지압돌 위 걷기. 전통놀이 체험

부대행사

KBS전국노래자랑 예선, 먹거리 장터

석재산업 판매행사

품목별 20% 할인 판매 행사

※보석대축제는 영등1동 익산귀금속보석판매센터에서 소개함.

 

(4)익산시청소년 수련관

익산시 청소년수련관은 어양동 54-6번지 중앙체육공원안에 있다. 익산시는 청소년수련관은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익산YMCA에 운영을 위탁하였으며 이에 《운영법인 익산YMCA》에서 2005년 8월부터 수련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청소년을 위한 시설들이 여러 곳에 있기는 하였으나 이 수련관의 준공으로 우리 익산도 바야흐로 본격적인 청소년의 문화시설을 이용한 청소년 문화활동이 다양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운영목표

1. 청소년 문화예술의 특성화, 전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2. 공익우선의 다양한 청소년 욕구충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 청소년 참여와 체험위주의 수련활동을 활성화한다.

4. 청소년과 시민 이용에 따른 개방과 기회균등을 원칙으로 한다.

5. 지역사회 청소년활동의 네트워크를 거점화한다.

 

■운영방침

1. 청소년을 위한 공익시설에 역점을 둔다.

2. 청소년 단체와 연대하여 청소년 육성에 기여한다.

3.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국제화, 정보화, 시대의 주도적 능력 배양과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청소년들의 참여를 확대시킨다.

4. 청소년들의 자생, 자율적 참여기회를 확대하고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적극 지원하여 청소년들의 건강한 삶을 정착시킨다.

5.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비영리 경영의 노하우를 적극 반영하고 열린 경영기법을 통하여 조직과 운영의 경직성을 탈피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6. 다양한 청소년문제에 대하여 지역의 복합적 커뮤니티센터로서 기능을 확대한다.

 

■청소년수련관의 시설 현황

층 별

시 설 내 용

1층

안내데스크, 열린 쉼터, 동아리1ㆍ2실, 전통 체험실, 스튜디오, 미디어 제작실, 음악실, 노래방, 시청각 교육실

2층

헬스장, 세미나실, 댄스실, 상담실, 정보검색실, 사무실, 관장실

3층

다목적실, 조명실, 하늘공원

 

■활동내용

활 동 주 제

활 동 내 용

함라산 숲 생태학교 운영

숲 생태 체험을 통해 생명과 평화의 소중함 체험

문화 탐사학교 운영

박물관, 축제, 해양문화, 역사 문화 탐사

동아리 활동

98개 동아리가 등록하여 활동

보호관찰 청소년을 위한 활동

400여 보호관찰 청소년을 위한 결연, 수련회, 동아리 활동

청소년 보호활동

유해환경 감시단 운영

방송아카데미

프로그램 기획 및 제작능력 수련과 참여 기회제공

청소년 자원지도자 활동

다양한 영역의 자원지도자 양성, 기회제공

또래상담, 미술치료

각 학교별 청소년 또래상담 동아리 양성 및 전문적인 미술 치료 활동

굶주리는 청소년 없는 익산 만들기

굶주리는 어린이 ? 청소년 없는 익산 만들기 운동 전개

건강한 체력, 활기찬 생활

체력증진 운동 시설 마련

놀이 체육 아카데미

다양한 놀이문화 보급

학교 연계사업

성당초등학교 영상미디어 도서실 개설

 

2. 교육기관

 

(1)익산어양초등학교

어양동의 하나2로 동편의 주공 6차와 7차 사이 어양동 692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어양초등학교는 2001년 9월 1일에 개교였다. 현재 총 34학급으로 1157명(남학생 586명, 여학생 571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고 모두 52명의 교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교훈은 『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동이 바르며 개성있는 어린이』로 정하고 추구하는 교육목표는 다음과 같다.

기본방향

교육목표

도덕인

예절과 질서를 지키며 민주시민의식을 갖춘 어린이

자주인

자기 주도적으로 계획을 실천하는 어린이

실력인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탐구할 수 있는 어린이

건강인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심미인

아름다움을 알고 가꾸는 어린이

(2)익산초등학교

이곳 영등동 일대에서는 91년경에 가장 먼저 들어선 맨션아파트가 어양현대아파트인데 92년 어양현대아파트 앞에 영등중학교가 들어서서 만 11년 동안 경영되다가 2003년 3월에 학교부지와 건물을 개교하는 익산초등학교에 물려주고 영등중학교는 무왕로 이북의 하나2로 오른편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익산초등학교는 2003년 3월에 12학급으로 개교하게 된다. 현재 총 32학급으로 1081명(남학생 548명, 여학생 533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고 모두 52명의 교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교훈은 『자율ㆍ도덕ㆍ창의』이며 교목은 소나무, 교화는 목련, 교조는 비둘기이며 추구하는 교육의 기본방향은 다음과 같다.

학교 경영 의지

자율과 책임, 민주적 경영, 창의적 경영, 합리적 경영, 교육의 본질 추구

학교장 경영관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를 기른다.

사랑과 수범으로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사가 되도록 지원한다.

푸른 꿈을 키워가는 쾌적하고 즐거운 학교를 가꾸고자 한다.

학교 경영 지표

푸른 꿈을 키워가는 쾌적하고 즐거운 학교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사랑과 수범으로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사

(3)이리영등중학교

이리영등중학교의 위치는 어양동 622-1번지인데 학교명은 영등중학교인 것은 이 학교가 같은 어양동이기는 하지만 무왕로 남쪽(현재 익산초등학교 자리)에서 개교할 때 학교명을 개발지역의 대명사격인 ?영등?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작 2004년에 개교한 어양중학교는 오히려 부송동에 짓게 되었다. 최근 가장 번영하는 8차선 하나2로 오른편에 보이는 영등중학교는 익산의 신도시 영등동에 가장 먼저 세워진 학교이므로 영등동의 개발과 역사를 같이 한다. 1992년 3월에 무려 27학급으로 개교한 학교로서 현재는 총 30학급으로 1088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고 모두 62명의 교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교훈은 『진실된 행동, 창의적 사고, 진취적 기상』이다. 지 ㆍ 덕 ㆍ 체가 조화된 창의적이고 실력 있는 영등인 육성이라는 교육이념의 실현을 위해 학생은 바르게 실천하는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학생, 생각하고 탐구하는 학생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고, 부단한 자기연찬을 통해 신뢰와 존경을 받으며, 자율과 책임을 다하는 선생님의 모습으로 사랑이 넘치는 즐겁고 신나는 학교, 보내고 싶고 가고 싶은 학교, 진취적이고 활기찬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교육지표와 교육목표는 다음과 같다.

교육지표

지ㆍ덕ㆍ체가 조화된 창의적이고 실력있는 영등인 육성

도덕인

Ⅰ. 더불어 살아가는 고운 심성과 바른 가치관을 갖춘 인간을 기른다.

개성인

Ⅱ. 개성과 특기를 계발ㆍ신장하여 창의성을 기른다.

미래인

Ⅲ. 정보화, 세계화에 대비한 미래의 역량을 배양한다.

탐구인

Ⅳ.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해 탐구 능력을 신장한다.

건강인

Ⅴ. 강인한 체력과 심미적 정서 생활 태도를 기른다.

 

(4)한국폴리텍 제5대학 익산캠퍼스

어양동 16번지에 위치한 한국폴리텍 제5대학 익산캠퍼스는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술인 양성교육기관이다. 우리 익산에 공단이 생기면서 개교한 학교로 우리에게는 직업훈련원 또는 직업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한국폴리텍대학은 제1대학부터 제7대학까지 20개의 대학과 기타 3개의 대학 등 모두 23개의 대학이 있고, 우리 전라북도에는 3개의 학교가 있어 모두 한국폴리텍 제5대학 소속으로 2년제의 고창대학과 김제대학이 있고 익산은 1년제 익산캠퍼스라 불린다.

 

■과정 및 학과와 모집인원

과 정

학 과

컴퓨터

응용기계

컴퓨터응용기계(60), CNC 선반(30), 머시닝 센터(30)

산업설비

자동차 용접(30), 특수 용접(30), 에너지 설비(30), 열ㆍ냉동 설비(30)

전기제어

전기기기(30), 전기계측제어(30)

귀금속공예

귀금속 공예(30), 보석가공(30)

 

■교육목표 : 창의적이고 경쟁력 있는 유능한 전문인 양성

 

■교육방침

○올바른 직업윤리 및 국가관 학립

○지식정보화사회에 부응한 신지식인 양성

○현장 적응력 제고를 위한 실기위주의 기술배양

○수요자 중심의 다양한 프로그램

○평생 직업능력 개발 체제 구축

 

■수용인원 : 300명

 

■지원자격 : 취업을 원하는 15세 이상의 남ㆍ여

과정

구분

지원자격

기능사 양성

1년(주간)

일반선발

일반인

우선선발

국가보훈대상자,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 장애인

기타선발

인문계고교 3학년 진급예정자로 고교장 추천

 

■입학특전

○교육비 전액 무료(실습비, 교재, 기숙사비)

○교육훈련수당 월 5만원 ~ 25만원 지급

○재학기간 중 군 입영 및 예비군 훈련 연기가능

○수료 후 전원 취업알선 및 사후지도

○국가기술자격증 기능사 필기시험 면제

 

3. 공공기관 및 기업체 기타

 

(1)익산문화원

□설립목적

익산문화원에서는 지역문화 전승보존과 지역문화 발굴육성은 물론 32만 익산시민과 함께 익산문화를 향유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펼쳐 나가고 있는 곳이다.

익산문화원은 1990년에 처음 창립되었고 지방문화원 진흥법에 의거 문화체육부장관의 허가를 1994년 9월 12일 제217호로 받아 (구)익산군 함열읍 남당리 산 57-21번지에 설립인가 되었다가 1995년 5월 1일 익산군과 이리시가 익산시로 통합한 후 익산문화원으로 그 명칭과 체제를 계승하고 더욱 조직과 활동을 확대 발전시키면서 지역사회 문화의 개발 및 향토문화진흥을 목적으로 아래 사업을 수행키로 결의, 조

직된 비영리 사단 법인체이다. 초창기 익산문화원을 이끄신 초대 이인호 원장의 뒤를 이어 현 김복현 원장을 중심으로 더욱 활발하고 다양한 향토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요업무

ㆍ첫째 : 지역 고유문화의 개발, 보급, 보존, 전승 및 선양

ㆍ둘째 : 향토사의 조사 연구 및 사료의 수집 및 보급

ㆍ셋째 : 지역문화행사의 개최 : 지역문화행사의 개최

ㆍ넷째 : 문화에 대한 자료의 수집, 보존 및 보급

ㆍ다섯째 : 지역전통문화의 국내· 외 교류

ㆍ여섯째 : 지역문화에 관한 사회교육 활동

ㆍ일곱째 : 지역환경 보존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문화 활동

ㆍ여덟째 : 기타 지역문화발전에 기여 할 수 있는 사업 등입니다

 

□연혁

1990. 08. 21 창립

1991. 01. 17 익산문화원 설립 문화부 허가

1991. 03. 29 사단법인 등록

1991. 04. 26 개원 (대표자 이인호) - 익산군과 이리시의 통합전

1991. 06. 19 문화부 장관 지정 시범 문화원(제91-6호)

1992. 05. 05 제주도 전북도민회와 자매결연

1994. 09. 12 문화체육부 장관 설립인가(제217호)

1994. 09. 30 문화체육부 장관 지정 시범문화원 (제95-4호)

1995. 05. 10 익산군과 이리시 통합 --익산시 출범, 초대 이인호 원장 취임

1998. 08. 27 경주문화원과 자매결연

1999. 02. 13 청사 신축 이전(전북 익산시 어양동 산94번지)

1999. 07. 01 이인호 2대 원장 취임

2003. 02. 01 문화관광부 지정 문화학교 운영 신규지정

2003. 07. 01 김복현 3대 원장 취임

2007. 07. 01 김복현 4대 원장 취임

 

□문화원에서 발행한 책자

1. 익산 인물지도(도서)

2. 살아있는 익산문화, 고도익산(VTR테입), 익산메아리(카세트테이프)

3. 고도익산(화보) 1995년 5월 발행

4. 익산농악(도서) 1995년 12월 발행

5. 웅포용왕제와 기싸움놀이 조사보고서(도서) 1996년 12월 발행

6. 고도익산순례(도서) 1997년 2월 발행

7. 성포별신제 조사보고서(도서) 1997년 2월 발행

8. 익산 목발의 노래와 삼기농요(도서) 1997년 12월 발행

9. 익산의 사지와 전통사찰(도서), 익산의 만가(도서) 1998년 12월 발행

10.전북지역의 문화유산을 찾아서(도서) 1998년 8월 발행

11.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서) 1999년 12월 발행

12.익산의 석조미술 돌 다루기(도서)1999년 12월 발행

13.익산의 문화재 대관(도서) 1999년 12월 발행

14.익산의 전래 지명고(도서) 2000년 12월 발행

15.가람 이병기 선생(도서) 2001년 12월 발행

16.익산의 금석문(도서) 2001년 12월 발행

17.익산의 누정· 서원· 사원(도서) 2002년 12월 발행

18.익산의 역사문헌자료 Ⅰ (도서) 2003년 12월 발행

19.익산의 역사문헌자료 Ⅱ (도서) 2004년 12월 발행

20.익산향토지Ⅰ(도서) 2005년 12월 발행

21.익산향토지Ⅱ(도서) 2006년 12월 발행

 

□2007 주요행사

ㆍ익산의 역사와 문화 발간

ㆍ익산 향토지Ⅲ(도서) 발간

ㆍ제10회 초·중·고 농악경연대회

ㆍ제27회 전북 시·군 농악경연대회

ㆍ제4회 서동풍물경연대회

ㆍ제9회 성포별신제

ㆍ제7기 문화대학

ㆍ제5기 문화학교

ㆍ향토문화답사

ㆍ무왕제례

ㆍ주당방아 찧기

 

(3)광주지방노동청 익산지청

어양동 626번지 하나2로에 자리하고 있는 익산지청은 익산시와 김제시 전역을 관장구역으로 하며 실업자 취업지원(취업알선),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 근로조건의 보호 및 산업안전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균형 있는 지역경제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오랫동안 『마동 노동청』이라고 시민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던 2차선 골목길의 노동청 이리사무소는 이젠 익산시의 발전에 따라 어양동 8차선 대로에 광주지방노동청 익산지청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익산종합고용지원센타, 근로감독과, 산업안전과, 관리과로 부서를 나누어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며 그 연혁은 다음과 같다.

1974. 10. 16 노동청 이리사무소 개소

1987. 12. 09 이리지방노동사무소로 명칭변경

1992. 02. 13 1급지 사무소로 승격

1995. 07. 13 익산지방노동사무소로 명칭변경

1998. 08. 01 익산인력은행 개소

1998. 11. 26 익산일일취업센터 개소, 익산남부고용안정센터 개소

1999. 02. 10 김제고용안정센터 개소

2002. 11. 04 어양동 신청사로 이전

2004. 07. 01 각 고용안정센터가 종합고용안정센터로 통합 운영

2006. 03. 02 각 광주지방노동청 익산지청으로 명칭변경

 

(2)근로복지공단 익산지사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의 사무상 재해와 보험시설 등 근로자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거하여 설립된 특수법인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1994년 12월 22일 법률 제4826호로 전면 개정되면서 근로복지공사가 폐지되고 근로복지공단이 신설되었다. 노동부장관은 필요한 범위에서 공단의 업무를 지도·감독한다. 근로복지공단의 주요업무는

①보험가입자 및 수급권자에 관한 기록의 관리·유지

②보험료 기타 이 법에 의한 징수금의 징수

③보험급여의 결정 및 지급

④보험급여에 관한 심사청구의 심리·결정

⑤고용보험료의 징수와 관련하여 노동부장관이 위탁하는 업무

⑥산업재해보상보험시설의 설치· 운영

⑦근로자의 복지증진을 위한 사업

⑧기타 정부로부터 위탁받은 사업 등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⑥ 또는 ⑧ 의 사업에 출자(出資)하거나 출연(出捐)할 수 있고 보험시설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얻어 비영리법인(非營利法人)을 설립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단은 당해 비영리법인의 업무에 관하여 지도· 감독한다.

우리 전라북도에는 전주와 익산 그리고 군산에 지사가 설치되어 있고 그중 익산지사는 본래 인화동에 위치하였으나 2004년에 그 자리에는 장애인 복지회관이 건립되고 복지공단 이리지사는 현재의 어양동 하나2로 46번지(어양동 626-1번지)로 이주하여 자리하고 있으며 익산과 김제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익산지사는 납부지원 1부, 납부지원팀, 보상부, 행정복지팀, 고객상담팀으로 이루어져 있다.

 

(3)한국전력공사 영등변전소

하나2로에서 현재까지 도시화되어 있는 곳은 영등중학교 뒤편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영등변전소까지이다. 변전소 뒤편으로 마한로가 이어져서 부송동지역 방향으로 팔봉공원 뒤편까지 계획되어 있지만 아직 개설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익산에는 송학동에는 1964년에 건설된 전통 있는 이리변전소가 있고, 그 외에 공단지역을 관할하는 무인변전소인 팔봉변전소가 1989년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발전하는 영등동 지역을 위해 1996년에 영등변전소가 설치되었으며 이 역시 무인 변전소이기에 근무하는 직원은 없다.

 

(4)익산농협 부송지점

부송지점이라고 명명되어 있으나 위치는 어양동 633-1번지 하나1로의 고려정형외과 뒤편에 있다. 농협은 중앙농협과 단위농협으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부송지점은 단위농협인 익산농협의 지점에 속한다. 익산농협은 1972년 10월에 설립되었는데 이리시의 확장에 힘입어 그 관할구역이 넓어지고 사업부문도 확대되어 왔다.

익산농협의 관할 구역은 통합이전의 이리시 전 지역과 춘포면 일원으로 인화동의

동익산역 앞에 E-마트와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익산농협 본점이 있고 그 아래 8개의 지점과 1개의 지소가 있다. 이외에도 하나로마트 등 3개의 마트와 미곡종합처리장, 농기계서비스센타, 1개의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부송지점은 1997년에 우남콤비타운 앞에 설치되었으나 2002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지점장을 비롯한 8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5)익산ㆍ군산축협 어양지점

축협은 본래 축산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설립되어 축산농가 진흥사업을 수행하던 특수법인이며 1981년 축산업 진흥,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다. 주요업무는 축산농가 지도, 구매사업, 유통사료 가공, 가축개량과 금융사업이다.

축산업협동조합법(1980.12.15. 법률 제3276호)에 의거, 양축가(養畜家)의 협동조직을 육성하고, 축산업 진흥과 그 구성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을 통해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자 1981년 1월 발족한 특수법인이다.

1980년 말까지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산하조직으로 있다가, 이후 시· 군 단위의 양축가들로 구성된 지역별 축산업협동조합, 특정 축종(畜種) 양축가들로 구성된 업종별 축산업협동조합, 그리고 이들을 회원으로 하는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로 구성되었다.

1996년 3월 지역별 조합수 146개, 업종별 조합수 45개가 있었고, 중앙회 본부는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다.

주요사업으로는, 축산 기술 향상과 경영합리화를 위한 생산지도· 생활개선· 교육향상·문화향상 등 지도사업과 우량축종, 양질의 배합사료, 목초 종자, 축산기자재 등과 관련된 구매사업을 들 수 있으며, 면 단위로 비법인 축산계(畜産契)를 조직해 지역조합과 조합원 사이의 교량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또 축산물유통 및 사료가공사업을 통한 조합원의 편익 도모, 가축개량사업, 각종 예금수신 및 양축자금 대출, 내국환 업무, 국가·공공단체 및 금융기관의 업무대리 등 금융사업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러나 2000년 7월 1일, 축산업협동조합, 인삼협동조합중앙회와 함께 농협중앙회로 통합되었다.

익산ㆍ군산축협 어양지점은 어양동 597-1번지 쌍용아파트 왼편 구 동사무소 앞에 있다. 2000년에 농협과 통합되어 크게는 농협중앙회의 관리 하에 있으며 금융관련 모든 업무는 단위농협과 같다.

 

(6)이리신협 어양동지점

주거지역ㆍ단체ㆍ직장ㆍ종교 등의 유대관계를 근거로 조직된 신용협동기구의 하나이다. 현재 한국의 신용협동기구는 추진주체에 따라 ①한국신용협동조합연합회 산하의 <신용협동조합> ②마을금고연합회 산하의 <마을금고> ③농업협동조합과 수산업협동조합의 계통조직인 <단위조합>과 어업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상호금융>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들은 구성원에게 경제적인 여· 수신을 행하여 조합원 상호간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비영리적 신용협동조직이다. 한국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은 1960년 5월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28명으로 조직된 성가신용협동조합(聖家信用協同組合)이다.

6.25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미국의 구호물자에 의존하는 사회적 혼란기였다. 따라서 저축을 하거나 누구에게 돈을 빌려주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는 1960년 5월 1일, 부산에서 메리놀 병원 직원과 천주교 교우 27명을 조합원으로 성가신협을 설립했다. 우리나라 신협의 시초이다. 장대익 신부는 같은 해 6월, 서울에서 가톨릭 교인을 대상으로 중앙신협을 설립해 한국 신협의 확산에 불을 당겼다.

그 뒤 1964년 4월 55개의 신용협동조합이 한국신용협동조합연합회를 창설하였고, 이 연합회는 그 해 5월 국제신용협동조합연합회에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1989년 신용협동조합중앙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1972년 8월<신용협동조합법>이 제정됨에 따라 한국의 신용협동조합은 설립·출자·대출한도, 이자율, 예탁금 등 여러 사항에 대하여 규제를 받게 되었다. 1960년 당시 총자산 규모가 8만 7000원에서 1990년 3조 5976억 원으로, 2003년에는 19조 19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조합수는 1960년 3개에서 1990년에 1315개였고 2007년 현재는 1015개 이다.

익산시에는 신용협동조합 중앙회 산하에 20개의 신용협동조합이 있으며 이리신협 어양동지점은 어양동 650-31번지에 있는데 그 위치는 전자랜드 앞이다.

 

(7)한국고덴시(주)

현재 익산공단은 신흥동의 거의 대부분 지역과 어양동 및 영등1동의 남쪽 일부분에 걸쳐 있는 제1공단과 팔봉동과 용제동에 걸쳐 개발된 제2공단이 있다. 어양동 및 영등1동의 가장 남부지역으로 동서로는 선화로와 보석2로 사이, 남북으로는 약촌오거리와 신흥공원사이에는 여러 기업체가 들어있는데 대부분은 한국고덴시(주)의 공장들이다.

한국고덴시(주)는 자본금 2,450만원으로 어양동 513-5번지에 1980년 주식회사 한국광전자연구소로 설립되었다.

1988년에는 한국광전자 연구소 부설 중앙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현재 제6공장까지 준공되며 발전하고 있다.

한국고덴시(주)는 1972년 일본 교토를 시작으로 1980년 한국 익산, 1992년 중국 심양을 생산과 기술의 거점으로 한, 30여년의 역사를 통해 강화된 3국체제로 세계적인 광반도체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프린터, 복사기, 보안기기, 로봇, 정보통신기기, 산업자동화기기 분야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의 역할로 활약하고 있는 한국고덴시(주)의 상품은 리모컨 수신모듈, 포토커플러, 포토 인터럽터 등을 비롯하여, 광파이버 전송 모듈, 광 저장 장치용 포토IC, 광 데이터 양방향 전송모듈, 하이브리드, LED프린터 헤드, 복합형 모듈 및 유닛 등 광 반도체웨이퍼에서 소자, 모듈, 유닛까지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다.

한국고덴시(주)는 기존시장에서 제1의 기업으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통해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현재 750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는 익산의 소중한 기업이다. 한국고덴시(주)의 기업이념은 아래와 같다.

친환경적인 기업

자연과 과학문명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기업으로의 성장을 추구한다.

건강한 기업

고객 및 주주가 신뢰할 수 있고 안심할 수 있는 건강한 기업으로 의 성장을 도모한다.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고 성숙되는 기업으로서의 성장을 추구한다.

이외에도 어양동에 속하는 제1산업단지에는 (주)신성실크, (주)모드테크, (주)태창관등, (주)아펙스 그리파이트 등의 회사가 있다.

 

제2장 어양동의 전통마을

 

팔성(八星)은 흔히 팔성다리라고도 한다. 터진목 밑의 수로가 생기면서 기존의 사창리 밖으로 새로 조성된 뜸이다. 대아리 저수지와 경천저수지의 물을 허릿다리 호수(요교호)로 보내기 위하여 1913년에 터질목에 터널을 개통시키고 그 수로를 건너는 다리를 놓았는데 이때 일하는 사람 8명이 제각각 성(姓)이 다른지라 그것을 인연으로 해서 다리이름 [아직 남아있는 양지동 마을] 도 팔성다리라고 하고 옆에 있는 마을도 그렇게 이름지어 불렀다. 따라서 1914년 이전에는 마을이름이나 다리이름이나 ?팔성?이라는 명칭은 없었던 것이다. 안동네는 개발이전까지 사창리라 하였고 팔성다리가 있는 뜸은 팔성다리 그리고 제일 아래쪽에 있던 뜸은 양지동인데 조선시대에는 양지동(陽池洞)이 마을 명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17년에 간행된 「조선전도 부군면리동명칭일람」에는 양지리가 나오고 1919년에 간행된 지형도에도 양지동이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다리를 놓은 이후로는 양지동이나 사창리 대신 팔성다리가 대표적인 마을명이 되어 버렸다. 1980년경에는 30여 호가 살았다고 하는데 이젠 사창리와 팔성다리는 흔적이 없으나 놀랍게도 어양동사무소 앞의 부천초등학교 담벼락아래 대여섯 호의 양지동 마을이 보존되어 있고 텃밭도 가꾸며 가축도 키우고 있다. 양지동(陽地洞)의 명칭은 양지쪽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양지동 마을도 머지않아 조만간에 개발될 듯싶고 그 모습이 사라질 것이다. 본디 어양리라는 명칭은 어곶과 양지동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라 하였으니 마을의 중심은 틀림없이 양지동 이었을것으로 보인다.

궁동(弓洞)은 활처럼 굽어진 구릉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 잡은 데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오막촌 이라고도 하였는데 오막은 우묵하다의 사투리이다. 1980년경에는 20여 호가 살았다고 하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몇 집이 남았었으나 [궁동마을 터]

2007년도에 완전히 사라지고 궁동마을자리에는 고급아파트인《수목토》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2008년에 분양된다고 한다.

어곶(於串) 흔히 늘읏이라 부르는데 지형이 낮은 능성줄기가 들 쪽으로 늘어져 나왔기 때문에 ?늘어져 나온 곳?즉 고기꾸미같이 갸름하게 길게 뻗어 나온 곳이란 말이 줄어져서 ?늘곶?이 되었고, 이것이 다시?늘곳?이 되고 ㄱ음이 탈락되어 ?늘읏?이 되어 ?느릇?으로 변하였다. 즉, 옆 마을인 부평과 송정마을은 어곶과 함께 붙어 이어지는데 이를 [어곶마을] 싸잡아 ?느릇?이라고 부른다. 마을이름에 ?곶?자가 붙은 경우는 마을지형이 같은 임상동의 몽곶(몽함)마을도 있는데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은 단순히 마을이 산등성이의 끝자락에 위치해서만은 아니며 옛날 대규모의 황등제가 있었을때나 또는 황등제가 제 구실을 못하여 사수(만경강)의 조수가 밀려올 때면 마치 바다의 돌출부 말단에 자리한 마을형국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새터는 어곶마을의 한 뜸으로 1937년 허릿다리 호수(황등호)가 개답되고 난 다음에 생겨난 마을이라고 한다. 팔성부락과 궁동마을이 도심에 묻혀 사라진데 반해서 어곶마을 까지는 아직 개발이 미치지 않아 자연마을이 그대로 살아 있다. 현재 73세대 20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제3장 어양동의 문화유적과 유물

제4장 명승지

 

제5장 민속과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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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6.19 14:53

    첫댓글 우리가 살던 남중동 함 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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