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유전자 편집 치료제’를 사람에게 적용하는 임상 시험이 지난해 말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거행됐다. 임상 시험 대상은 유전병인 ‘헌터 증후군(Hunter Syndrome)’을 앓고 있는 40대의 남성이었다.
언론은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여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을 시도하는 과학자들의 도전에 주목했지만, 사람들은 희귀 증후군을 평생 갖고 살아야 했던 이 남성의 불우한 인생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유전병인 헌터 증후군 치료를 위해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치료를 받은 브라이언 머두 ⓒ 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ciencetimes.co.kr%2Fwp-content%2Fuploads%2F2018%2F02%2Fn%EC%97%B0%ED%95%A9%EB%89%B4%EC%8A%A4.jpg)
유전병인 헌터 증후군 치료를 위해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치료를 받은 브라이언 머두 ⓒ 연합뉴스
브라이언 머두(Brian Madeux)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증후군의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경증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며 눈과 귀, 그리고 여러 장기들에 문제가 나타나면서 무려 26번의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전하며 “그만큼 헌터 증후군은 고통스런 질병”이라고 밝혔다.
특정 효소의 결핍으로 뮤코다당들이 체내 축적
헌터증후군은 염색체의 유전자가 고장이 나서 선천적으로 특정한 효소를 갖고 태어나지 못하거나 부족한 상태로 태어나는 질병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뮤코다당(mucopolysaccharide)을 분해하는 효소를 갖지 못한 채 태어나기 때문에 몸속에 뮤코다당을 쌓아놓고 있다.
뮤코다당이란 아미노당을 함유하는 다당으로서, 점질다당이라고도 부른다. 생체내에서 주로 결합조직에 존재하는데, 넓은 의미로는 당단백질이나 당지질을 모두 포함한 당 성분을 가리키기도 한다.
뮤코다당은 우리 몸에 필수적인 성분이지만 일정량에 도달하면 특정 효소가 분해하여 농도를 낮춰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체내에 당이 축적되면 뇌를 비롯한 각종 장기 기능이 마비되어 불치병을 일으킨다. 현재로서는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헌터증후군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면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지연해주는 약을 평생 복용해야만 한다.
![헌터 증후군은 특정 효소의 결핍으로 뮤코다당들이 체내에 축적되는 증상이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ciencetimes.co.kr%2Fwp-content%2Fuploads%2F2018%2F02%2Fn%EC%9E%84%EC%83%81%EC%A0%81%ED%8A%B9%EC%A7%95.jpg)
헌터 증후군은 특정 효소의 결핍으로 뮤코다당들이 체내에 축적되는 증상이다 ⓒ 대한의학회
1917년 미국의 임상학자인 찰스 헌터(Charles Hunter)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어 헌터라는 이름을 얻게된 이 증후군은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분자생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최근 들어서야 특정효소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헌터 증후군은 바로 이 뮤코다당이 축적되면서 발생하는 질병 중 하나다. ‘이두로네이트 2-설파타제(iduronate-2-sulphatase)’라는 효소가 부족할 때 발생하게 되는데, 뮤코다당이 축적되면 결핍되는 효소의 종류에 따라 증후군의 증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뮤코다당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증후군은 헌터증후군을 포함하여 총 7개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제2형인 헌터 증후군을 비롯하여 △제1형 후를러(hurler)증후군 △제3형 산필리포(sanfilippo)증후군 △제4형 모르퀴오(morquio)증후군 △제5형 샤이에(scheie)증후군 △제6형 마로토-라미(maroteaux-lamy)증후군 △제7형 슬라이(sly)증후군이 이에 해당된다.
증후군 증상은 얼굴과 신체의 변형으로 나타나
헌터증후군은 영유아기에서 유년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주로 나타난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굴에 털이 많고 넓은 이마를 가진 독특한 모습을 띄고 있다. 특히 돌출된 눈은 외관상으로 볼 때 증후군에 감염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비단 얼굴 뿐만이 아니다. 성장이 늦어서 남들에 비해 키가 많이 작거나, 간 또는 비장 등이 비대해 지면서 복부가 지나치게 팽만하는 현상 등도 헌터증후군에 걸렸음을 가리키는 신체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증후군에 걸리게 되면 잦은 감기와 중이염, 또는 탈장이나 언어 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모든 질병이 다 마찬가지지만 헌터증후군도 조기에 파악할수록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아직 완치용 치료제는 탄생하지 않았지만, 진행 정도를 늦출 수 있는 수술이나 약물요법 등 여러 가지 대안은 마련되어 있는 상황이다.
골격계 기형이나 탈장 같은 증상은 수술로 교정할 수 있으며, 관절이 경직되는 증상은 물리치료로 완화시킬 수 있다. 또한 청력이 손상되는 경우라면 보청기 같은 의료기를 이용하여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헌터 증후군의 증상은 얼굴과 신체의 변형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ciencetimes.co.kr%2Fwp-content%2Fuploads%2F2018%2F02%2Fn%EC%A6%9D%EC%83%81.jpg)
헌터 증후군의 증상은 얼굴과 신체의 변형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 wikipedia
실제로 형제가 헌터증후군을 앓고 있는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 형제 중에 5세부터 치료를 시작한 형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나 신체가 변형됐지만, 생후 5개월부터 치료를 시작한 동생은 외모에 있어 일반인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개선되어 있기 때문.
이처럼 헌터증후군은 조기 진단이 중요하지만, 문제는 증후군에 걸렸음을 알려주는 감기나 중이염, 그리고 탈장 같은 증상들은 모두 영유아가 성장기에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질병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희귀질환’에 걸렸음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서는 외모의 변형이 헌터증후군을 진단할 수 있는 1차 판단기준이지만, 건강 검진에 포함되어 있는 방사선 검사를 통해 이상이 발견된다면 일단 헌터증후군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대한의학회의 관계자는 “증후군에 걸렸는지 여부를 알고자 한다면 소변검사를 통해 뮤코다당의 배설량을 측정하여 파악할 수 있다”라고 전하며 “효소 활성도를 분석하여 증후군을 일으키는 특정효소가 결핍되었는지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