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선고를 기다리는 죄없는 죄수의 심경일 것이다 . 입원을 하고부터 정희는 말이 사라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그녀는 불안해 했다
화장실을 다녀 온다든지 간호사실을 다녀 온다든지 작은 움직임에도 그녀를 최대한 안심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머니와 수연이 와서 그녀를 보고 갈때도 나는 그녀의 곁에 항상 붙어있다시피 하였다.
" 정희씨. 염려 말아요. 모든 것이 잘 될거예요 "
나는 습관처럼 주문을 걸었다.
"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께 기도해요. 두려움을 이기게 해 달라고 "
정희의 손에 에메랄드빛 낡은 묵주를 쥐어 주었다 .
우리가 서울에 온 걸 알고 나의 오랜 벗과 정희의 벗들이 방문을 하였다
그들은 정희에게 위로와 응원을 아낌없이 보내주었다 .
그것은 기적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었다
소소하고 지루하기만한 검사들은 약해진 그녀를 더욱 지치게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정희의 보호자로, 남편으로 정희의 두려움을 막아주고 지켜주었다
" 혈액검사는 너무 아프고 무서워 "
수도 없이 바늘이 그녀를 찔렀건만 매번 진저리를 칠만큼 겁에 질리곤 하였다
병원이 주는 그냥 기분 나쁜 분위기에 정희의 안색은 병실의 벽처럼 창백하게 바뀌었다 .
" 그래 고생했어요 . 이제 내일 MRI 촬영 한번만 더 하면 다시 양구로 갈 수 있어요 "
그녀는 나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
" 여보 . 닭들은 굶지 않을까 ?
그녀는 아주 근심스럽게 나를 보았다.
" 응 걔네들도 며칠 단식을 해야해요. 너무 살이 쪄서 하하 . 걱정말아요 . 형님한테 부탁해 놓고 왔어요 "
빙긋 웃으며 놀리는 나는 정희의 볼을 가볍게 간지럽혔다
그녀는 샐쪽대면서 나의 손을 꼬집었다 .
그러나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
" 오 정현씨 . 정희씨가 체력적인 것은 많이 좋아졌지만 이렇게 특이한 경우도 처음이지만 종양의 활동은 확실한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챠트에 나타나는 암세포는 없지만 그래도 의심되는 부분이 많이 나타나요 . 그렇다고 방사선치료를 할 수있는 상태도 아니구요.
확실치 않은 조직에 무조건 암치료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예요."
전신에 퍼져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미세한 조직을 일일이 검사를 할 수도 없다는 말이었다.
지금으로는 조금 더 지켜보는게 좋겠다고 닥터 최는 차분하게 설명을 하여 주었다.
일년이라는 시간을 버틸수 있었던 이유가 암세포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지만 암으로 변해서 갑자기 활동을 재개하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 아 ~ 정희의 몸속의 세포가 악성으로 변하지 않기만 바라야겠구나 '
처음부터 쉽게 생각하것도 아니고 더 정희에게 관심을 다해야겠다 생각했다
" 정현씨 . 처음 정현씨를 보고 두분이 깊이 사랑하는구나 한눈에 알수 있었어요.
뭐 느낌이랄까 ?
그런 사랑이 아직까지 정희씨의 생명을 끈을 이어주고 있었나 봐요 .
두분의 이야기는 수연이에게 들었어요 .
감동적인 사랑의 모습을 말이예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두분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어요 "
여의사는 의자에 앉아 애잔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닥터 최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울 뿐이었다
" 혹시라도 정희씨에게 이상증세가 생기면 지체없이 병원으로 오세요. 그리고 통증이 심해지면 처방된 약을 투약하세요 "
처방전에 한 품목에 동그라미를 그려넣고 설명을 해주었다
" 이건 일종의 마약이니까 통증을 제지시켜 줄 거예요 "
간절하게 바랬던 희망은 아니었지만 정희를 더 아껴주고 지켜주라는 하늘의 뜻으로 생각했다.
병원을 나오면서 그녀는 마치 지옥이라도 탈출한냥 즐거워 하였다
" 여보 , 이제 날것만 같아요 . 호호호 "
정희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로 보였다
꾀병을 부리고 그 댓가로 사탕하나를 얻어 먹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 정희씨 . 모처럼 서울에 왔는데 가보고 싶은 곳 없어요 ?"
금방 퇴원해서 지쳐있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자주 오기 어려운 기회였다.
" 나 미술관 가고 싶어 "
" 그래, 아직 고흐전이 전시하고 있을껄 . 어서 가 봅시다 .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하면서 "
정희는 언제 병실에서 곤욕을 치루던 사람일 정도로 즐거워하였다.
나는 운전대를 꺽고 힘차게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
19 .
산골로 돌아 온 후 닥터 최에게 연락이 왔다
다시 병원을 찾아 가야했지만 의사는 우리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해주었다
" 여보 , 뭐래요 ?"
정희는 얼굴을 내게 바짝 붙히고 물었다.
" 응 . 많이 좋아졌대요 . 더 나쁜 균들이 활동하지 못하게 잘먹고 편안하게 지내래요 "
" 완전히 나은건 아니구 ?"
" 항암 치료를 해도 오년이 지나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는데 당신은 아직 확실하게 진단결과가 안 나온대요 "
" 뭐 그런게 어디있어 ? . 요즘 의학이 얼마나 발달됐는데 "
" 응 그러니까 그 놈들 정체가 음성인지 아니면 숨어있는 양성 세포인지 확실하지가 않은가봐요.
지난번 수술때 암세포는 거의 제거했지만 그래도 남아 있어서 그것들도 악성세포라 생각하고 치료를 포기했거든 .만일 그것까지 일일이 제거를 하려했다면 당신의 몸이 견디지 못했을거예요 "
" 도대체 모르겠어 . 내 몸안에서 벌어지는 알 수없는 전쟁에 주인인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
" 지금은 차분하게 지내면서 나쁜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야지. "
" 무섭고 두려워 "
나는 정희의 메마른 머릿카락을 쓰다듬으며
바르르 떨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었다
" 정희. 지금까지 우리 잘 해왔잖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요. "
그녀는 나의 가슴을 더 파고 들었다 .
또 다시 겨울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었다.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산중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것뿐이다
캐온 약초를 인터넷과 약초도감을 뒤지며 구별해 낸다든지 하는 것은 어지간한 것을 빼고는 쉬운 일이 되었고 발길에 채이는 이제는 풀들의 숨소리까지 느낄 만큼 되었다
하루는 혼자 산을 오르다 미끌어지는 통에 숲이 우거진 곳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아무곳도 다치지 않았지만 내가 떨어진 주위가 산삼밭이었다 .
믿을 수 없을 상황이었지만 하늘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선물이라 생각했다.
굴러 떨어질 때의 아픔도 잊은채 한뿌리 한 뿌리 정성을 기울여 캐는 손은 크게 떨고 있었다
산삼은 큰 배낭에 가득 차고도 넘쳤다
족히 20 년은 넘어보이는 산삼이었다 .
내려 오는 길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알수 없었다
" 여보 . 여보 . 이것 좀 보세요 "
거실 바닥에 우르르 쏟아지는 삼을 보고 정희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이게 웬거예요 ?"
자초지종을 말하자 그녀는 울먹거렸다
" 당신 다친데는 없어요 ?"
" 한군데도 없어요 "
나는 손을 가로 져었다
" 이건 하늘이 당신에게 보내는 선물이예요 ."
" 그래도 난 당신이 걱정되요. 처음부터 당신이 혼자 산에를 가면 늘 불안하기만 했어요 "
" 괜찮아요 . 이젠 아주 익숙해졌거든요 "
" 혹시 당신 없으면 난 어떻게 해요 . 그러니 난 이런거 안 먹어도 좋으니 무리하기 없기예요 "
몇번이나 약조를 하고 그녀를 안심 시켰다 .
정희는 그 산삼을 먹지않고 단골 손님에게 팔고 말았다 .
적지 않은 금액을 부르고 몇가지 귀한 버섯을 덤으로 주면서 팔고 말았다.
이곳까지 단숨에 달려온 중년의 사내였다
반평생을 자신을 위해 살아온 아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하였다.
비슷한 입장의 남자였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섭섭하기 이루 말할수 없었지만 다음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직접 다려서라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
입금된 통장을 보여주며 ' 당신 옷이라도 사야겠어요 ' 하며 생긋 웃는 모습이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다 .
나는 그 돈의 일부를 그녀의 어머니께 부치고 말았다.
" 산에서 사는 놈이 무슨 양복이람 쯧쯧 "
뜯어 온 산나물은 삶아서 말리고 . 약초는 약초대로 , 열매나 산과일로 효소를 만들어 낸다든지 산골에서의 일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다행이랄까 내가 만들어 놓은 물건들은 정희가
인터넷을 통해서 판매하였다
그녀는 익숙하게 손님들을 대하고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즐겁게 하는 자신의 일은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
간혹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 ' 이 양반이 환자 맞아 ?' 하며 활기찬 그녀를 보고 조마조마했던 내안의 근심이 사라지곤 하였다
우체국으로 상품을 보내고 돌아 올때 그녀는 개선장군이 되었다.
" 여보 ~ . 이것 봐요 "
통장에 찍힌 숫자들이 토실토실 살이 붙어가면서 그녀의 마음도 희망으로 부풀어 가기만 하였다 .
" 예전에 병원에서 일할때는 정말 지겨웠어요.
이런 생활이 내게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 같았는데 자연 속에서 욕심없이 살아가게 된게 꿈만 같아요."
" 그래요 나도 이렇게 될지 생각도 못했지만 당신과 이렇게 지낼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
아내는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 사랑해요 "
나는 운전석에 앉은채로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였다 .
" 어머 . 누가 봐요 "
그러면서 아내의 손은 나의 목을 감았다.
늘 그렇듯 시장을 한바퀴 돌면서 필요한 것들을 사가지고 돌아오고 하였다 .
어느새 우리는 이미 읍내의 시장에서 금슬좋은 부부로 소문이 나고 있었다

20.
산골로 이사온지도 2 년이란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어 주는 그녀의 변화는 우리를 진정한 부부로 만들어 주었다 .
비록 아직 온전치 못한 그녀의 건강 상태였지만 우리는 자연 속에서 태초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자연은 한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의 모습처럼 변하게 하였고 숨겨졌던 그녀의 천성대로 밝고 솔직한 여인으로 되돌아 오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눈으로 덮혀 있었다 .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었다
눈길 때문에 혼자 읍내로 내려가 탁송을 시키고 올라왔다 .
자동차 타이어에 체인을 풀면서 집안을 바라보아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 여보 . 정희씨 "
그러나 집안은 정적안에 멈춰서 있었다
" 정희씨 ~~."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날카롭게 스쳤다 .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정희는 가는다란 숨결을 몰아쉬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 여 ~보 "
그녀는 겨우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 응 . 나 다녀왔어요 . 왜 그래요 ? "
세면대에서 깨끗한 수건에 차가운 물을 적셔 그녀의 이마에 올려 놓았다 .
손과 발도 차갑게 식혀 주었고, 약초 다린 물을 몇 모금 마시고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 미안해요 ."
" 그것봐 . 어젯밤 그만하라 할때 그만 하지 "
나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
" 어떻게 당신 혼자 일을 시켜요 "
아내는 애처럽게 나를 바라다 보았다.
" 앞으로는 무리하지 말아요 . 얼마나 놀랬는데 "
그러나 혹시라도 정희의 병이 재발하는것 아닌가 가슴은 쿵쿵 뛰고 있었다.
갑자기 주문이 밀려서 이틀째 쉬지않고 무리하게 배송작업에 매달린 여파가 그녀에게
밀어 닥친 것이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
" 다시는 . 다시는 . 아 . 바보같으니 "
아내에게 일을 시키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방을 나왔다.
골방의 촛불이 어둠 속에서 곧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버지를 여읜 어린 시절부터 삶은 그녀에게 고된 가시밭길이었고 . 사랑이라고 믿었던 남자에게 받은 깊은 상처에 헤어나지 못했던 절망과 나락의 날들과
여성의 상징. 어머니사랑의 원천인 가슴을
모두 내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죽음 앞에서 떨고있는 여자.
그 여인이 제 아내입니다 .
이제 삶의 작은 기쁨 하나 겨우 찾아 조심스럽게 촛불을 켰는데 . 죽음의 그림자 장막처럼 드리워진 이 어둠을 이길수 있기만 바랄뿐인데 .
하느님 .
두려운 시간들을 조금만 뒤로 미루어 주소서.
당신의 축복
꽃닢 한 점으로 다가와 사랑의 시간 안에서 오래 머무르게 하소서.
나는 안다 .
그분이 하시는 일들은 그 뜻을 알기에 인간의 생각으로는 부족하기만 하다는 것을 .....
정희가 먼저 떠난다해도 그 순간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이 나의 길임을 .
21 .
늦은 여름 하늘엔 별들이 조용히 떠 있었다
아내는 잠들지 못하고 있다 .
지난 겨울, 그 일이 있고난 후 다시
여름이 시작되면서 아내는 힘에 겨워 하였다
처음에는 피로한 모습을 감추려 하는 것도 몰랐다 .
살구꽃이 다 떨어지고 햇살이 이마의 땀방울을 송글송글 맺게 하던 초여름부터
아내는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때도 있었다.
" 여보, 괜찮아요 ?"
나의 근심스러운 표정을 보고는 정희는 힘없이 머리를 저었다 .
체온은 뜨겁지 않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자동차에 며칠 묵을 옷과 필요한 여행물품을 챙겨 가방에 담았다 .
급히 끓인 죽으로 요기를 시키고 오그려 누워있는 아내를 안았다
아내의 맥박이 가느다랗게 전해져왔다
" 어디 가려구 ?"
" 응 . 서울 "
" 가지마 . 나 곧 일어날거 같아 "
" 아냐 . 지금 아니면 안될 것 같아"
" 여보 !"
아내는 마른 가지같은 손이 나의 얼굴로 향했다
" 여보 . 나 마지막 부탁이 있어요 "
숨소리보다 더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 나 여기서 있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
꺼져가는 눈빛은 남자의 가슴을 흔들고 있었다
" 다시는 서울로 가자는 말을 하지 말아요 .
제발 ..... "
진통제의 힘으로 겨우겨우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지친 아내의 얼굴을 정현은 굳은채 지켜보고 있었다.
약 기운인지 퍼지면서 아내는 깊은 잠에 빠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아궁이의 장작불이 잦아들 때쯤 다시 밖으로 나갔다.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 하였다
늦여름의 밤은 게으른 모습으로 산등성이를 넘어왔다
어느새 아내는 깨어 거실의 의자에 몸을 묻고 있었다
" 그래. 염려 말아요 .다시는 병원에 데려가지 않을거예요 "
생명을 연장하고 고통을 차단시켜주는 약 한 보따리를 받아오는 댓가는 심신이 모두 짓밟히는 지루하고 진이 송두리째 빠지는 힘겨운 일이었다.
아내는 한결 안정된 모습으로 저녁을 맛나게 먹어주었다
곰국 한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마치 칭찬이라도 받고 싶다는듯 밝게 웃었다
" 오우 . 잘 했어요 .정희 학생 "
아내는 그 한마디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어둠이 내리고 산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안락의자에 두툼한 요를 깔았다
" 아니야 . 여보 ! 나 걷고 싶어 . 흙을 밟아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
아내에게 긴팔옷을 입히고 우리는 개울물이
쉼없이 소리치는 개울가로 내려 갔다.
" 어머 . 이것 보세요 . 올해는 반디불이 유난히 많은 것 같아요"
산뽕나무 우거진 숲사이로 반딧불이가 어지럽게 날아 다니고 있었다.
어둠이 짙을수록 반딧불이의 불빛은 강열하게 자신을 태우듯 밝히고 있었다.
아내는 휘청거리는 몸을 나의 몸에 의지하였다
팔을 둘러 겨드랑이 사이로 끼어주었다
밋밋한 가슴이 손에 닫았다.
아내는 이제 움츠리지도 않는다
나는 보속의 흔적같은 평평하고 흉터 가득한
가슴을 계속 쓰다듬었다
" 정말 이곳에 오기를 잘했어요. 지금 내 몸이 마구 살아나는것 같아요 .파랗게 돋아나는 싱싱한 나뭇닢처럼 말이예요 "
" 나도 그래요 . 병실의 벽이나 천장을 이곳처럼 황토흙으로 바꾸고 나무도 심어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
" 맞어요. 나도 그생각을 했어요 . 거기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시시때때로 바뀌는
작은 개울도 내구요 "
" 응 . 정말 병이 모두 나은것 같으네요 . 여기를 그대로 옮겨 놓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하하 "
우리는 키작은 폭포 아래 작은 호수까지 걸었다
산바람이 가끔씩 피부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호수에 던져둔 그물 어항을 건졌다.
안에는 몇마리의 물고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정현은 물고기를 풀어 주었다.
" 여보 . 이제 들어가요 "
아내를 업었다 .
천사같은 아내는 가벼웠다
내 목을 꼭 감은 아내의 내 등을 파고 들었다
몇해나 묵은 낙엽들이 밟히며 바스락거렸다.
아내는 나의 등에 업혀 두둥실 하늘을 날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보일 수 없었다.
작은 새보다 더 가벼운 아내의 무게였다.
약봉투를 찢어서 아내에게 먹였다
얼굴을 찡그리며 약을 삼켰다.
그 모습이 귀여워 정현은 아내의 이마에 키스를 하였다.
" 참 . 당신 기도하고 잘거죠 ? 나도 같이 해요 "
" 그래요 ."
아내를 침대에 누이고 아내의 손을 맞잡았다
늦게 뜬 달이 환하게 마당을 지나 불을 끈 방안의 창가를 넘어오고 있었다.
아내는 잠깐의 산책조차 힘에 부쳤는지 이내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내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고르게 방안에 퍼졌다
거실의 컴퓨터를 켰다.
보름 가까이 쉬고 있는 홈페이지에 고객들이 보내온 쾌유를 빌어주는 격려의 글들이 줄을 이었다.
이년 가까이 정성껏 믿음으로 대해준 고객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아내가 나아질 때까지 홈페이지를
닫을 수 밖에 없음을 고하였다
그들은 고객이 아닌 형제 자매 그리고 벗들이었다
진심 고마운 마음을 어찌 다 전할 수 있을까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나니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아내의 블러그를 열었다
틈틈이 올려 놓은 글들을 살펴 보았다
이곳으로 온 후 산골 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적어 온 수필이었다
아니 수필이기 보다 시로 쓴 일기였다.
삶에 대한 조용한 열망과 감사.
자연 속에서 느낀 경외와 삶을 영위하게 해준 감사와 기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노동의 즐거움 . 이곳 사람들과의 따듯하고 정다운 일들을 그녀의 성품대로 차분하게 그려 놓았다.
남편이 되어버린 정현에 대한 진솔한 사랑.
어머니와 딸 . 그리고 용서를 청해야 할 아들에게 대한 편지와 자신의 아픔을 피맺힌 지난날의 고백도 있었다
한 편 한 편 프린터기로 인쇄를 했다.
이제 주제에 맞게 편집을 하면 될것 같았다
짧은 여름밤이 물러가고 상큼한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피곤이 몰려 왔다
장작 몇개를 던져 넣고 아내가 잠든 침대로 들어갔다
아내는 잠결에도 나의 품을 파고 들었다.
23 .
" 당신은 나의 어떤 면이 좋았어요 ?"
" 간단히 말할게요 . 정희씨의 영혼이 맑아 보였어요. 그래서 가까이 하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 "
" 그게 다예요"
" 첫번째 데이트 신청할때 기억해요 ?
뮤지칼인가 티켓을 예매하고 난 후 당신에게 거절 당했을때 말이예요 "
" 호호 그랬나요 ?"
" 얼마나 놀랐는지 ! 의견도 안 묻고 일방적으로 하는 것에 실망했다고 카톡이며 전화까지 차단 시킨다는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바로 통화를 했지요 ."
" 호호 그랬었나요 ? 기억이 안나요 호호호"
정희는 전혀 그럴 뜻이 없었다고 했다.
아내는 언젠가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끄집어 내었다.
다만 이어지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녀가
이혼을 하게 된 회한스러운 지난날의 이야기였다.
남편의 배신은 정희의 삶을 모조리 황폐하게 만들었다.
결혼 전부터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모든 것이 싫었다 . 희망이란것이 철저히 짖밣히고 살아있는 자체가 자신의 자존심마저 뭉개버리는 것 같았다
결국 이혼의 길을 택했다.
아빠를 안 따라가겠다고 울부짓던 아들을 보냈다.
배다른 형제들 틈에서 어떤 고통과 외로움을 당했을까 ?
결국 수연이의 손을 잡아 끌고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이미 대출을 받아 교묘하게 빼돌린 후라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모친의 도움으로 작은 점포를 내고 화장품을 팔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가게마저 털고 나올땐 그녀의 손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몸으로 때울 수 밖에 없었다
동생네로 옮긴 어머니를 따라 들어 갈 수는 없었다.
택할 수 있었던 직업은 큰 병원의 간병인이었다 .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었고 또 그만큼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수연이를 맡아 주었다.
한달에 한두번 딸을 만났다.
그리고 한푼 두푼 빚을 갚았다
삶에 대한 희망은 포기한지 오래였다
다만 모친과 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의무적인 행동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병원에서 만난 엘리를 통해서 한달에 한번씩 잃어버린 꿈의 흔적이나 뒤지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거기서 만난 사람.
이만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임을 그녀는 처음부터 알아 보았다.
하지만 그 사랑을 받아 드릴 수는 없었다
희망이라든지 삶의 설계라든지 하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
칠흑같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마음의 상처는 눈을 뜨면 그녀를 혼돈의 회오리 속으로 몰아갔었다.
약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눈을 감고 잠이들면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랬다
영원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였다
우울하고 눅눅한 나의 삶에 이 남자를 받아드릴수 없었다
나로 인해 남자가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랬다.
여자에게는 그것이 남자에게 줄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라 생각했다.
" 여보 . 나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어요 ?"
" 무슨 부탁인데요 "
" 으음 ~ 만일 내가 죽게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 가세요. 그리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
아내의 눈빛은 이 세상 어느 보석보다 맑게 빛나고 있었다
" 여보 . 당신이 그리 된다면 그때에도 우리는 함께 할거예요 "
여자는 고개를 조용히 가로져었다
" 60이 되도록 살아 왔지만 지금처럼 행복해 본 적이 없어요.
처음, 당신 만나고 세상에 이런 바보같은 남자도 있었나 싶었어요 .
내게는 벅차고 미안한 사람이었어요.
아무것도 줄 수가 없어서 더 달아나고 싶었어요
나로 인해 불행해질 것 같아서요"
" 아니 , 당신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당신은 내게 큰 기쁨이예요 ."
" 당신에게 그 기쁨을 더 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사랑은 집착도 아니지만 인연이 바람처럼 사라지면 그 바람이 주는 의미도 알아야 해요.
부탁해요 . 내가 먼저 가면 당신은 당신의 길을 찾아가 주길 바래요 ."
" 아직 우리 삶은 끝나지도 않았고 오랫동안 함께 할 거예요 "
" 아니요 . 난 나의 운명을 알고 있어요.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예요.
지난 번 퇴원 하는 날 당신의 눈은 떨리고 있었어요
지금껏 우리는 마음으로 대화하며 살았잖아요
차라리 말로 했다면 난 슬퍼했을 거예요.
당신이 그렇게 가슴으로 보내 준 메시지가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주었어요.
그것은 한치도 거짓이 없는 순수한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담담해졌어요.
수연이에게도 모든 것을 말해 주었어요
이곳에 와서 내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말이예요.
다만 가는 길이 두려울지 몰라요 .
내가 어떤 고통 속에서 가더라도 당신은 끝까지 지켜줄 것을 믿어요.
그래서 행복해요 .
마지막 순간까지 배웅해 줄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며 가슴벅찬 행복인지 몰라요
정말 고마워요 .
사랑해요 . 여보 "
그녀의 가슴에서 샘처럼 솟는 사랑의 말은
보석처럼 빛나며 얼굴을 뜨겁게 적시고 있었다.
" 여보 . 난 당신의 길에 함께 할거예요 .
두려워 말아요 . 나에겐 오직 당신 뿐인걸요 "
머나먼 길 떠나온 사람처럼
마치 배웅나온 것 처럼
다시 돌아 올 것 같은 그대
사라질 때까지 보네
한번만 더 안아 보고 싶었지
내 가슴이 익숙한 그대
안녕이라 하지 않은 이유
그댄 알고 있나요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어요
모든 것을 지금 그대로
갑자기 그대 돌아온대도
전혀 낯설지 않도록
언제 어디라도 내겐 좋아요
혹시 나를 찾아 준다면
내가 지쳐 변하지 않기를
내 자신에게 부탁해
아무도 날 말리지 않을 거예요
잊지 못할걸 알기에
그냥 기다리며 살아 가도록
내내 꿈꾸듯 살도록
그대 혹시 다른 사람 만나면
내가 알수 없게 해주길
그대 행복 빌어주길
나의 처량한 모습 두려워
다시 돌아올 것 같은
그대 사라질 때까지 보네
배웅 / 최경록. 박상돈
https://youtu.be/udBEaXh1DJE

" 고마워요. 어디가 끝인지는 몰라도 당신을 믿고 따라 갈 거예요 "
" 그래요 같이 가요 "
" 바보 . "
24 .
남자는 산에 올라가는 일을 그만 두었다
아침에 산을 오르면 해질녘이나 되어야 돌아오는 긴 시간을 지켜주어야 할 아내의 곁을 한시라도 비울 수는 없었다.
기력이 쇠잔해 질대로 쇠잔해 진 사람 곁을 떨어질 수 없었다
비록 기를 써서 추스리고 걷고 움직인다 하여도 예전만 못한 모습이 확연하였다
정현은 그녀의 등뒤에서 아련한 이별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런것이 사람의 육감이랄까 ?
이미 자신의 상태를 예감하고 있는 아내를 볼 때마다 메어지는 마음이지만 드러낼수도 없었다
아내는 가끔 자신의 방에서 무언가 하고
나를 불러 잔일을 도와달라 하였다
스물스물 옥죄며 다가오는 고통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햇살이 어깨위를 따듯하게 뿌려주고 있었다
" 오늘 날이 너무 좋은데 읍내 마실이라도 다녀올까 ? "
아내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떡이었다.
아내는 먼저 성당을 찾았다
둘은 아무런 말없이 제대 뒤에 걸린 십자가만 바라 보았다
장날이 아니어서 그런지 장터는 한산했다
아내는 전처럼 읍내 장을 돌아보지 못했다
흥미롭게 물어보거나 골동품이라도 발견하면 눈빛을 빛내며 한참을 만져보고 상인이 귀찮을 정도로 묻곤 하던 그녀였다 .
문방구에 몇 권의 벌려놓은 신간들의 제목도 모두 확인을 하고 나에게 " 저건 어떤 책이지 ? .인터넷 검색을 해봐야겠어요 " 하며 종알거리던 모습도 없었다
음식점 골목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장을 벗어나 한참을 걷다가 아내가 말했다
" 여보 . 나 메밀전병이 먹고 싶어. 왜 그거 신김치 썰어 넣은거 있잖아 "
우리는 메밀 전병을 봉투에 담아 오면서 양지 두근과 눈여겨 보았던 마른 생선 몇 마리를 샀다.
" 뭐라도 먹었어야 했는데 ....."
" 아침 먹은게 내려가지 않았나 봐요 "
차안에서 아내는 불편한지 담요를 두르고 등을 돌려 누웠다
돌아 오는 길에는 산꼭대기부터 불긋불긋 단풍이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아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시간이 끝나감을 알고 있었다
해줄 수 있는것은 그녀의 뜻대로 내가 움직여주는 것 뿐이었다.
밤이되면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기 시작하였다
진통제 주사를 놓는 나도 그 고통 속으로 함께 잠기고 있었다.
사실 나의 고통은 아내에게 비하면 아무런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한바탕 질흑같은 병마의 날카로운 손톱이 흟고 지나가면 아내는 벌판같은 침대에서 폭우에 날개꺽인 새처럼 기진맥진한채로 널부러져 있었다 .
어느날은 진통제조차도 아내의 고통을 막아주지 못했다.
물 적신 가제 손수건을 메마른 아내의 입술 사이에 밀어넣어 주지 않았다면 아내의 입술과 치아는 모두 망가졌을 것이다 .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들고 창밖으로 한풀 꺽인 초가을 햇살이 더듬거리면 그때야 남자는 아내의 손을 잡고 새벽기도를 드리다
쪼그린채로 잠이 들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아내가 아끼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화기와 작은 손지갑 . 그리고 습작 노트와 돋보기안경.
화장대 위에도 몇가지의 화장품병들이 아주 잘 정돈된채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수연에게 전화를 했다
수연은 내 전화에 놀랐는지 울먹이기부터 했다
어머니를 뵈러 오라하고 급히 전화기를 내렸다
25.
아내는 침상에서 일어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한낮에야 겨우 남자의 몸을 빌어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할 수 있었다.
가을 햇살은 아내의 메마르고 핏기없는 얼굴을
애처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짧은 한낮의 마당에서 아내는 먼 마을쪽만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씻겨 주었다.
양치를 하는 일도 힘겨워하는 그녀였다.
곱게 머리도 빗겨주었다 .
해질녘이면 마른 쑥을 끓여서 아내의 발을 씻겨주고 바싹 말라버린 아내의 종아리를 쑥물로 어루만져 주었다.
" 여보 . 쑥내가 너무 좋다 "
" 그렇지 ?. 내일은 당귀랑 민들레도 같이 끓여볼까 ?"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내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아내는 표정마저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어둠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괴롭히는 병마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나는 알고 있다.
아내가 그 처절한 아픔을 철저하게 참고 감추고 있음을 나는 밤마다 알 수 있었다
잠들기 전에 아내에게 마우스피스를 끼어 주었다.
아내는 사양하지 않았다
말라버린 눈물샘에서 다이아몬드같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숨소리가 점점 가빠진다
밤이면 어둠을 따라서 통증은 아내를 짓밣고 핧퀴고 영혼까지 찢어놓고 새벽과 함께 사라진다
내가 할수있는 일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고통을 모두 내게로 돌려 받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되기를 기도뿐이었다
아무리 사랑의 힘이 크다한들
아내에게 고통을 이겨낼 힘을 달라고, 쓰러지지 않토록 간원을 드렸다.
아침 나절,
수연으로부터 서울을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다.
아내는 담담하게 그들을 맞을 것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너무 잘 알기에.
산골의 가을은 일찍 찾아온다.
온산이 붉게 물들더니 언제 그랬듯 잎들은 벌써 바스락 소리를 내며 진저리를 친다 .
수연과 모친 그리고 식구들이 다녀가고 모친만이 남아 아내와 함께 일상을 함께했다
" 나쁜 새끼 , 너 나 살려준고 했잖아 "
단말마같은 쇳소리를 내며 허약한 손의 힘으로 나를 붙잡던 밤이었다
그 고통에서 구해낼 수없는 나 자신의 유한한 사랑이 부끄러웠다
" 그래 . 미안해 "
" 나쁜 새끼 ....."
아내를 품에 안고 오열하는 밤이 이어졌다
모친은 아내를 위해 작은 정성을 지었다
그녀가 어릴적부터 길들여왔던 엄마의 밥이라던지 소소한 반찬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몇 술 뜨지도 못했다
밤의 고통은 낮의 탈진으로 눈마저 감은채 지쳐 짧고 가느다란 숨만 몰아 쉴 뿐이었다
" 여보 . 나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을거야
세상에서 느꼈던 짧은 행복들을 추억으로 곱게 담아서 가고 싶어 .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한 까닭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커다란 당신의 사랑 안에서 있기 때문이야 "
아내의 집안 식구들이 오기 전에 아내는 나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였다
" 정말 당신을 알고 몇 해 .
진정 행복이 어떤건지 알게 되었어.
커다란 행복부터 소소한 기쁨까지 지난 사년이란 시간이 정말 나에게는 꿈만 같았어 "
아내의 작은 입술이 타고 있었다
차갑게 식힌 하얀 손수건으로 아내의 입술을 적셔 주었다 .
" 때로는 나로 인해 당신이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지나 하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어
지금도 그렇고 .....
당신 사랑 그 모든 것 . 다 안고 가니 슬퍼하지말고 힘들어 하지 말아요
그렇게 해 주어야 내가 가는 길도 편할거에요
정말 고마웠고 즐거웠어요
마지막 부탁이예요
나와의 인연 . 나와의 사랑은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잊어 버려요."
모진 가을비가 내렸다
굵은 빗줄기가 지붕을 두리리고 멀리 검은 하늘엔 천둥이 비명을 질렀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곧 겨울로 들어 설것이다
" 여보 . ...
커텐 좀 열어줘요.... "
깜빡 졸았나 보다
아내의 작은 음성에 눈을 떳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아침의 햇살이 밝아 오고 있었다
햇볕은 마당을 돌아 거실의 넓은 창가를 넘실거리고 있었다
" 나 ... 거실로 .... 데려다 줘요 ..... "
아내를 안고 그녀가 좋아하던 안락의자로 편안하게 뉘어 주었다
" 이제 겨울이 오려나 봐 "
화단의 자귀나무 잎새와 말라버린 고투리가 바람에 떨고 있었다
" 저 자귀나무 꽃말이 뭔줄 알아요 ?"
" ....... "
아내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바람을 따라 갔다
잡고 있던 아내의 마른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겨울 하늘은 잿빛으로 세상을 덥고 있다
한 남자가 서성이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하나
촛점잃은 시선 끝에는
그가 찾아야 할 그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남자를 보았다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
ㅡ 감사합니다 .
무려 일년이 넘게 탈고하지 못했던 졸문을 이제서야 끝맺음을 합니다
사랑은 바보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자만이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교문리 우거에서 峨嵯. 정 주연 이냐시오
( 필명 : 오분전 )
2020. 8. 30 .
첫댓글 그가 찾는것은 그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소설이라 하기엔 너무
리얼합니다.
오랫만에 진정성있는
따뜻한 참글을 읽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을 보며 다시금 닫았던 마음의 문을 살포시 열어 봐야하나?! 그갈등에 깊어가는 겨울밤 잠을 설칩니다.
작가님의 열정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이 있어 요몇일이 즐거웠네요
그래도 참사랑 속에서 갔다고 생각하니 한편 편안함도 있고요
정현에 대한 궁금증은 새로운 여운으로 남겨 둘게요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입장에서 교대로 묘사되는 서술
속마음을 다 들여다 볼정도의 세심한 심리묘사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사랑의 힘
그녀를 보낸후의 쓸쓸함과 무상함
또다시는 그누구를 사랑할수 없을거 같은 메마른 가슴
살아남은 혼자... 살아있으니 어떤 아픔이 있어도 살아가야 하는 차가운 현실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명작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1편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