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32183611 이지현 소설 제출합니다.

[이지현]

247.hwp

24/7

32183611 이지현

   목요일 아침 지하철 안은 조용했다. 출근을 하거나 학교에 가거나 어쨌든 무슨 이유로 지하철에 올라탄 사람들은 잰 걸음으로 자신이 설 공간을 찾아 움직였다. 막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인데도 모두 지쳐 있었다. 나는 적당한 위치에 손잡이를 잡고 섰다. 내 앞에 앉은 남자는 휴대폰으로 예능 프로그램 클립 영상을 보고 있었다. 화면 하단의 자막이 바뀔 때마다 그는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다가도 입술을 말아 소리 죽여 웃었다. 나는 남자를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주위를 훑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졸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금방 내릴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주머니를 뒤적여 이어폰을 꺼냈다. 장시간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귀가 욱신거리는 느낌이었지만 제자리에 선 채로 두 시간여를 보내는 동안 할 별다른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출퇴근 시간도 근무시간으로 쳐 월급을 받아야 한다는 주희 씨의 절규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다음 역을 알리는 전광판을 올려다보니 열차는 이제 수원을 지나고 있었다.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지난 달 발매된 밴드그룹의 수록곡이 재생됐다. 지겹도록 익숙한 아침이었다.

   역에서 나와 회사까지 걸어가는 길에 이어폰 한쪽의 고무마개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주머니와 가방에도 없는 걸 보니 지하철 안에서 빠진 듯했다. 집에 여분이 있는지 확실치 않아 지금 이 자리에서 찾겠다는 심정으로 한 건물 앞에 멈춰 서 크로스백을 마구 헤집었다. 그러다 셔츠 자락이 말려 올라간 모양이었다. 건물로 들어가려던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덥석 내 옷매무새를 만져 주었다. 젊은 아가씨가 왜 이리 조심성이 없어, 사람들 나다니는 길거리에서. 나는 내가 셔츠 안에 나시를 받쳐 입었고, 이른 아침 출근에 바쁜 사람들이 남에게 관심 따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갑작스러운 아주머니의 충고에 낯이 달아올랐다. 아주머니는 처음 보는 내 팔을 서슴없이 잡아끌며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비상식적인 부류의 일들에 대해 언성을 높였다. 결론은 매사 더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하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이며 아주머니를 지나쳤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총 십 층까지 있는 건물 팔 층에 자리했다. 계단이 있긴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삼사 층만 가더라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출근시간대가 되면 엘리베이터는 각 층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내부가 넓지도 않아서 가끔 택배를 배송하거나 시설물을 옮기는 일이 겹치면 일부는 다음 운행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덩그러니 복도에 남아 층수가 바뀌는 것을 지켜봤다. 불투명하고 단단한 문 너머로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 숫자가 바뀌지 않고 멈춰있을 때는 계단을 오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팔 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일은 쉽지 않았으므로 이내 포기하곤 했다. 아침부터 진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가만히 서서 정면을 바라보면 엘리베이터 문에 조금은 흐릿하고 투박한 내 모습이 비쳤다. 윤곽이 희미해져 어렴풋한 형태만 남은 모습이었다. 초점 잃은 네 눈동자가 마주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기도 전에 팀장이 직원들을 집중시켰다. 다음 주부터 연휴가 시작되고 오늘내일 거래처와 미팅이 있어 자신은 자리를 비우니 일을 미리 끝내두라고 말했다. 팀장은 말을 마치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지금 외근을 나가는 건가 싶어 자리를 보니 가방과 외투는 남겨둔 채였다. 노트북 업데이트로 시간이 지연되는 동안 책상을 정리했다. 책상에 아무렇게나 쌓인 이면지를 버리고 지난 업무에 관한 메모지를 떼다가 보니 아직 넘기지 않은 달력이 지난 달 페이지에 멈춰있었다. 나는 책상에 달력을 두 개씩 뒀다. 하나는 회사 일정이 적힌 달력, 하나는 내 개인 일정을 적는 달력이었다. 하나에 적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일정을 보다 그 뒤에 있는 업무 내용을 보게 되면 마음 편히 주말을 보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달력을 뒤집어놓고 거기에 프린트된 알록달록한 그림을 보며 기분 전환하는 효과도 있었다. 달력은 회사에 둘 수 있는 유일한 개인 공간인 셈이었다.

   노트북 업데이트를 마치고 어제부터 작성하던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회사 메신저 창이 연달아 떴다. 주희 씨가 배가 고프다는 말과 함께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읽음 표시가 사라지자 주희 씨는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애써 눈을 피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같은 보고서를 며칠째 붙잡고 있는데도 통 진전이 없었다. 내일까지는 마쳐야 연휴에 과제를 떠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집중하다 보니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갔다. 아직 열두 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매시간 삼 분씩 빠르게 가는 사무실 시계를 기준으로 열한 시 오십육 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문서를 저장하고 의자에 등을 기대자 주희 씨의 시선이 따라왔다. 나는 주희 씨와 눈을 마주친 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회사 근처에는 식당이 많지 않았다. 큰길 건너 걸어가다 보면 번화가가 나왔지만 매번 점심을 먹으러 거기까지 갈 수는 없으니 대충 비슷한 메뉴로 때울 때가 많았다. 주희 씨는 아침부터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위에 일식집도 양식 레스토랑도 없어서 아쉬운 대로 회사 맞은편 건물에 있는 김밥집에 들어갔다. 손님이 적고 가격대가 낮아 평소에도 종종 가던 곳이었다. 며칠 전에도 퇴근하고 이곳에서 간단한 끼니를 해결했다. 주희 씨는 돈가스 김밥을, 나는 우동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가게에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앳된 얼굴을 한 아르바이트생이 물과 밑반찬을 가져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시끄러운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주희 씨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가게 사장이 몰입해 보고 있는 건 종합편성채널이었다. 정치인이며 문화평론가들이 나와 각자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잔뜩 흥분한 토론 참여자들의 발언이 논리적으로 들리지도 않았을뿐더러 밥을 먹으며 그런 광경을 보기엔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정장을 차려입은 익숙한 얼굴들이 언성을 높여 떠들어댔다. 우동 국물을 삼키며 돌아보니 사장은 이미 토론에 빠져 한 마디 한 마디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저기요, 소리가 너무 큰데 좀 줄여주세요. 주희 씨가 말했다. 아, 예… 아니 저기서 왜 저런 쓸데없는 소릴 해, 하기를. 사장은 주희 씨의 외침에 흘긋 돌아본 후 리모컨을 손에 쥐고 다시 방송에 집중했다. 주희 씨는 반쯤 남은 김밥을 집다 말고 텔레비전을 올려다봤다. 볼륨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사장과 주희 씨를 번갈아 보며 젓가락질을 했다. 면이 자꾸만 젓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과열된 토론 분위기를 뚫고 울리는 풍경 소리와 함께 손님 한 명이 들어왔다. 근처 회사에서 온 듯한 남자 손님이었다. 그는 주문을 앞두고 전화통화를 했다. 일행이 있는 모양이었다. 사장은 남자를 지켜보다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의자를 정리하고 포스기 뒤로 들어갔다. 남자 손님은 사장과 우리를 곁눈질하더니 텔레비전 앞으로 가 리모컨을 쥐었다.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드라마 재방송과 짜깁기 된 뉴스가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그는 몇 차례 채널을 오가다 정규방송에서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을 틀었다. 사장은 화면을 잠시 쳐다보다가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청객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르바이트생은 남자 손님이 있는 테이블을 행주로 닦고 밑반찬을 가져다주었다. 그가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쯤 주희 씨와 나는 계산을 하고 김밥집을 나왔다. 주희 씨는 김밥에 든 돈가스가 눅눅해 맛이 없었다며 웃었다.

   회사에 돌아오니 팀장은 외근을 나가고 없었다. 점심을 일찍 먹은 직원들은 휴게실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팀장이 사무실 중앙을 지키고 앉아 있을 때는 사적인 대화 몇 마디 나누기 어려웠다. 회식을 하는 게 아니고서는 다 같이 밥을 먹을 일도 없고, 모여 앉아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수빈 씨만 해도 가끔 업무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고 인사를 나누는 것 외에는 교류가 없었다. 퇴근 후엔 다들 집으로 돌아가기 바빠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 우리 부서만 단합이 안 되는 것 같다던 투정이 당장 내일 점심에 팀원 회식을 잡자는 말로 이어졌다. 팀장님 안 계실 때 오랜만에 맛있는 점심 먹는 거죠, 좀 늦어도 상관없잖아요? 수빈 씨의 말에 직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주희 씨는 목소리를 높여 대화를 이끌어갔다. 대부분 회사에 대한 험담이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주희 씨가 나를 쳐다보면 마주 보고 웃어주었다.

   주희 씨와 처음부터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작년 신입사원 공채로 입사했는데 주희 씨는 그보다 몇 달 전에 회사와 연계된 인턴십을 마치고 기획부 팀장의 눈에 띄어 회사에 들어온 상태였다. 정작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는 편집부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회사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교육하는 임무를 받았다. 사회초년생에게 몇 달 차이란 별 게 아닌듯해도 큰 벽이었다. 게다가 주희 씨는 각종 아르바이트와 면접 경험도 나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주희 씨가 가르쳐주는 일의 절반 이상에서 버벅거렸다. 사실상 그렇게 어려운 업무가 아니었음에도 잔뜩 긴장한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복사를 하거나 문서파일을 옮기는 간단한 일을 할 때도 주희 씨의 확인이 없으면 혼자서는 진행하지 못했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서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에게 급기야 주희 씨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 씨는 인턴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왜 이렇게 매번 얼이 빠져 있는 거예요.

   가르쳐도 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런 말을 듣게 된 나로서는 황당했다. 인턴을 하기 싫어 안 한 것도 아니고 첫 직장에서 하는 첫 근무인데 긴장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얼이 빠졌다고? 그렇게 말할 만큼 우리가 가까운 사이였던가? 선배나 상사를 제쳐두고 비슷한 또래의 신입에게 교육을 받는 게 내심 부끄러웠던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복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애꿎은 이면지에 스테이플러 심을 박아대며 분풀이를 했다. 이 감정이 부족한 스스로에 대한 질타인지 주희 씨를 향한 원망인지 알 수 없었다. 이후 일을 할 때마다 눈치 보던 것을 그만두고 그냥 어떻게든 지르기로 했다. 어차피 실수할 건데, 라는 생각까지 닿고 나니 차라리 빨리 잘못하고 빨리 수습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내가 말없이 자료들을 뽑아놓으면 주희 씨는 별다른 첨언도 없이 이건 잘못됐네요, 하고 고쳐주었다. 나는 일을 계속 배우며 문서를 한 방향으로 깔끔히 정리하는 법, 엑셀 파일에서 자주 쓰는 단축키 같은 것을 알게 됐다. 사소하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희 씨는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솔직하게 말하는 성격이었다. 갑자기 직원 한 명이 나가면서 일손이 부족해진 기획부에서 부서 이동을 권하자 이미 편집부에 익숙해져서 옮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거나, 회식 다음 날 팀장에게 어제 그 식당은 다시 안 가는 게 좋겠다고 인상을 찌푸리는 식이었다. 주희 씨는 나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부터 감정의 지속성까지. 늘 생각이 많은 나와는 달리 주희 씨는 한 번 지나간 일은 다시 생각하지 않았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느꼈고 그렇기에 더욱 가까워졌다. 점심을 함께 먹고 사내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일상이 되었다.

   평소 같으면 외근 후 바로 집으로 퇴근했을 팀장이 다섯 시가 넘어 회사로 돌아왔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는지 표정이 어두웠다. 사무실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팀장은 서랍을 뒤져 초코바 하나를 꺼내더니 자리에 앉아 우적우적 씹어댔다. 휴게실에 차나 비스킷 같은 간단한 먹을거리가 비치되어 있는데도 그는 항상 개인 서랍에 간식을 넣어두었다. 대개 초콜릿이나 캐러멜 같은 종류였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 후, 퇴근 직전이나 가끔은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도 그런 것들을 꺼내 먹었다. 단 음식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어딘가 전투적으로 초코바를 먹고 있는 팀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가 마지막 한 입을 밀어 넣는 것을 보고 시선을 돌렸다.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일 있을 회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외근을 나가지 않게 되어 시간이 늦춰졌다고 했다. 예정됐던 미팅이 다음 주에 다시 잡힐지 어떨지 몰라 두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낮은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그는 직원들의 얼굴을 한 번씩 보고는 의자를 끌어당겨 다시 자리에 앉았다. 팀장의 얼굴을 반쯤 가린 파티션 너머로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팀장이 돌아온 후 한층 무거워진 분위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일이 풀리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와서 한 일이라고는 문서파일을 정리하고 팀장에게 돌려받은 보고서를 다시 고쳐 쓰는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중간에서 막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었다. 팀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 복사실에서 나오던 주희 씨가 내 등 뒤에 섰다. 나는 괜히 검사 맡는 기분이 들어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딴청을 피웠다. 이걸 아직도 하고 있어요? 월요일에 다 끝냈잖아요. 살짝 고개를 돌리자 주희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퇴짜 맞았어요. 엊그제부터 새로 쓰고 있는데 잘 안 되네요. 주희 씨는 고개를 숙여 내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어차피 한 번 낸 거니까 간단하게 본문만 수정해요. 오래 걸리잖아요. 가까워진 주희 씨의 몸을 피해 어깨를 틀었다. 네… 그래도 형식은 대충 맞춰야죠.

   안 맞춰도 된다니까요. 언제 이걸 다 하고 있어요. 내일까지 내야 하는데. 하나 씨 안 그래도 작업 속도 느리잖아요. 주희 씨의 말끝에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이어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키며 수정할 부분을 지적했다. 여기 고쳐요. 저번에 회의했던 내용이랑도 안 맞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뒤로는 주희 씨에게 가로막힌 채로 완전히 몸을 돌리지도 못하고 주희 씨의 블라우스 자락만 바라봤다. 설명을 이어갈 때마다 소맷자락이 나풀거렸다.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설명을 끝내고 알죠, 라고 덧붙이는 주희 씨에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나 씨처럼 하니까 오래 걸리는 거예요. 이제 얼른 해봐요. 주희 씨가 의자 손잡이를 툭툭 건드렸다. 복도에서 들어오던 팀장이 주희 씨를 불렀다. 하나 씨 일 가르쳐주고 있었어? 잠깐만 나와봐요, 내일 회의 때문에. 주희 씨는 잘 하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복도로 나갔다.

   삼십여 분이 지나 팀장과 주희 씨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팀장은 주희 씨에게 서류를 넘기고 자리로 향했다. 이제 나에게 신경쓰지 않길 바랐지만 주희 씨는 내가 있는 쪽으로 반 바퀴를 돌아와 다시 말을 걸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했어요?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있어요. 전 바꾸는 게 더 어려워요. 내 말에 주희 씨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 방식의 문제에 대해 꼬집었다. 주희 씨, 제가 알아서 할게요. 바쁜데 일 보세요. 팀장이 내 책상을 흘긋거렸다. 주희 씨는 잠시 서서 나를 바라보더니 그래요, 하고 가버렸다. 주희 씨의 말대로 나는 일 처리가 늦고 원칙주의자 성향이기 때문에 남은 내용을 쓰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팀장이 말없이 퇴근하고, 다른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인사를 할 때까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오기였다. 내 자리를 제외한 사무실의 모든 불이 꺼진 후에야 나는 일을 마무리하고 짐을 챙겼다.

   큰길을 따라 역을 향해 걸었다. 저녁이 되어 쌀쌀해진 바람이 뺨을 스쳤다. 사거리를 지나면 길이 꽤 복잡해져 지도를 보지 않고는 목적지를 찾기 어려웠다. 한 블록 건너 하나씩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와 비슷한 모양의 간판들 때문에 한참을 걸어도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나도 자주 헤매곤 했다. 문득 첫 출근날이 떠올랐다. 역에서 나와 사거리를 몇 바퀴째 돌면서 누구라도 좋으니 나를 회사로 데려가 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잔뜩 긴장해 지도를 거꾸로 보며 시간이 흐르는 것에 불안해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회사 건물 로비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명찰에 적힌 회사 마크를 보고 안심했던 날. 사월 초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땀을 흘리냐는 팀장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의 나는 뭐가 그리 절실했을까. 지금은 아침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출근한다. 사월에 보았던 길가의 벚꽃 나무도 이제는 다 져버렸고 더 이상 길을 헤매지도 않는다.

   친구들이 하나둘 취직에 성공하는 걸 지켜보면서 작게라도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절의 난 절박했다. 집에서 두 시간 가까이 출퇴근해야 하고 기존에 생각하던 업무가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기력한 팀장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럴듯한 태도는 간절함에서 나온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더 적극적이고 친절한 자세를 유지한다. 지금 나에게 주희 씨는 어떻게든 매달려야 할 존재가 아니다. 주희 씨는 내 사수가 아니라 같은 팀의 동료이고 이제 함께 밥을 먹으며 농담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가까워진 주희 씨에게 이기심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나의 서투름은 열등감으로 변질되었다. 악의 없는 말에 의미부여를 하고 내 감정을 주희 씨의 탓으로 돌렸다. 고작 일 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 사이 주희 씨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도.

   대로변과 이어진 길은 화려했다. 저녁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붐비고 네온사인이 번쩍거렸다. 아마 몇 시간이 지나도 이 소란스러운 공기는 여전할 것이다. 술에 취한 이들이 큰 목소리로 떠들며 비틀거리고, 골목마다 담배 연기가 굴뚝처럼 피어나는 길은 밤마다 변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풍경을 동경했었다. 다음날을 걱정하면서도 촉박하지 않은 사람들 틈에 내가 끼어 있기를. 아침마다 피곤한 얼굴로 눈을 뜨지만, 다시 주말을 기다리며 반복되는 일주일을 살아갈 평범한 하루를 꿈꿨다. 막상 그런 날들 속에서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한참 걸어 역에 도착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끝없는 계단을 내려다봤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없이 오르내리는 계단이었다. 매일 같은 계단을 지나면서도 나는 이 계단이 몇 칸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잠시 서 있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한 칸 한 칸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지난 사일 동안 오간, 내일도 지나게 될 일상 속으로.

[진희상]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 통쾌했습니다. 참고 살아야 할 것이 많은 시대에 꽤나 위로가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손다솜]

담담함 어투가 매력있는 소설이었습니다. 화자가 관찰하는 부분의 묘사가 많아서 다소 설명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사건없이 이어지지만 주희 씨와 화자 간의 관계가 잘 드러나는 것이 장점이라고 느꼈고, 화자에 대한 정보나 특징이 조금 더 추가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긴 소설 쓰시느라 무척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상준]

큰 사건을 만들어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현대인의 모습이 관찰을 통해 고스란히 담겨서 공감하기 쉬웠습니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캐릭터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쓰시느라 힘들었을텐데 고생하셨어요. 잘 읽었습니다.

[14 김민성]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의 나이 설정과 시대 배경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도를 거꾸로 봤다는 부분에서, 젊은 사람이라면 종이 지도를 사용할 것인가. 그게 아니라 휴대폰으로 지도를 봤다면 거꾸로 보기 힘들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소 과장된 상황 연출이라 느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함철주]

갈등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24/7이라는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의미 처럼 하루하루 지루하게만 이어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잘 묘사하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러한 점 때문에 전반적으로 작품이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아 아쉬웠습니다.
작푼 잘 읽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유진]

회사원들의 생사를 위해 지루하지만 견뎌내야 하는 반복되는 삶을 잘 드러내신 것 같습니다. 주제를 선명히 내보이기 위해 주인공과 주희의 일과를 아주 세세히 설명하시는데 소소한 재미거리도 조금씩 넣어주셔서 큰 서사는 없었음에도 잘 읽혔습니다. 마지막 문단이 특히 주제를 제일 많이 드러내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유심히 읽었는데 묘사도 잘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잘 읽었습니다.

[목정희]

주희씨와 나는 성격도 많이 다르고, 직급에는 차이가 없어도 주희씨쪽이 나보다 직장 선배인데, 어떻게 두 사람이 친해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걸 알아도, 한쪽에서 친해지려는 노력을 한다거나 결정적인 사건 또는 계기가 있는 게 아닌이상 친해지기 어렵지 않을까요... 좀 더 구체적인 서술이 있다면 술술 잘 읽어나갔을 것 같습니다. 무려 두시간의 통근을 오가는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사정도 궁금합니다. 사건과 독백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나의 경제사정, 가정사정, 사내갈등, 그로인해 스스로 느끼는 생각이 좀더 심화되면 좋을 것 같아요. 문장력이 좋아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18장연지]

상황 묘사와 인물 성격 묘사를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회사라는 공간 속에서 인물이 느끼는
감정도 잘 전달이 되었습니다. 제목도 인상깊었습니다.
소설 내에 사건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주희씨와 나 사이의 갈등을 고조시킬만한(? 사건이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설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18 이지연]

소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문장이 깔끔하고 묘사가 좋아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단조로운 이야기인데 문장력이 좋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인상깊었고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제목도 잘 지으신 것 같습니당 소설 쓰시느라 고생하셨어용

[15 이민지]

문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고 평이하게 읽히는 느낌이었습니다. 글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에게 설명만 듣는 느낌이 들어서 같은 독백도 표현방식을 다르게 처리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다경]

담담한 주인공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소설에서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관찰하며 쓰인 문장들도 현대의 무기력을 잘 보여준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다만 소설에 큰 사건이 없어 관찰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사건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조금 더 구체적인 상황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면 더 좋은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소설쓰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조현빈]

소설 잘 읽었습니다. 설명과 묘사가 잘 되어 주인공의 하루를 엿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딱 그 정도였습니다. 주인공의 하루만 있을 뿐, 다른 건 없어 아쉬웠습니다. 주인공이 어떤 부분에서 불쾌함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는지 잘 드러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느끼는 불쾌감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큰 사건이 없어 그저 하루를 설명하는 것 같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소설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윤선영]

잔잔하게 일상을 잘 그리는 소설 같습니다. 중간중간 표현과 묘사가 세밀해서 직접 하루를 보낸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직장인은 아니지만... 통학하는 학생으로 동감이 되는 소설이네요... 다만, 사건이 너무 없어서 소설이 루즈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특이한 사건을 하나라도 추가한다면 더 좋은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소설 쓰시느라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문소진]

소설 잘 읽었습니다. 문장이 깔끔하고 인물의 상황과 심리가 잘 묘사되어있어 잘 읽혀졌습니다. 다만 소설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듯 말듯하지만 결국 평이하게 마무리되는 듯하여 아쉬웠습니다. 인물에서도 친하게 지내던 주희와 갑자기 약간의 갈등을 겪는 이유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드러내도 될 것같아요. 수고하셨습니다!

[류지호]

문장을 쓰는 능력이 굉장히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상황이나 내면 묘사가 정교해서 좋았습니다. 완성도 높은 글이라고 생각하지만 화자에 대해서 조금 더 서술된다면 보다 짜임새 있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소설 잘 읽었습니다.

[김민경]

섬세한 묘사와 담담한 문체가 인상 깊었습니다. 작품의 제목이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엇보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깊이 와닿았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중심 사건이 생기면 보다 풍부한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17이아영]

소설 잘 읽었습니다. 디테일이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주제가 중심이 되어서 그냥 일어난 일을 쓰는 게 아닌 소설이 되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종인]

소설 잘 읽었습니다. 잔잔한 문체와 중간중간 나오는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설정을 세부적으로 잘하시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사건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화자의 지루한 일상이 그대로 제게 건네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소설 말미에서는 다소 지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주인공과 주희 사이에 어떠한 사건이나 갈등이 발생하고 그것을 절정으로 끌고 가는 것이 독자들이 소설 속으로 이입하게 되고 재밌게 느끼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산하]

문장이 깔끔하고 간결해서 문장 자체가 주는 느낌을 오롯이 볼 수 있었습니다. ‘나’가 느끼는 감정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하나의 굵은 내면심리 하나만으로 이러한 분량의 글을 쓰신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독자 또한 ‘나’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니 다소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더 상징물을 사용해서 내용을 환기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소설 잘 읽었습니다.

[유승희]

소설 잘 읽었습니다. 문체와 묘사가 들어간 문장들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인물의 상황과 묘사가 잘 되어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면서 쉽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결말이 평이하게 마무리되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화자에 대한 설명이나 정보가 좀 더 추가된다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소설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