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波動과의 交感
기공자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들이 파동적 세계의 실체와 기(氣)라는 것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러나 기공 수련을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해보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이 장의 내용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기공이란 무엇이며 그것의 수련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올바른 방향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기공 수련의 단계와 방법은 나라별로 또 기공 단체의 유파별로 상이한 부분이 있고 실제적인 수련법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유파, 어떤 계통의 기공이나 명상을 하더라도 기공의 본질이 파동적 세계와의 교감인 이상 이 장의 내용은 근본적인 토대를 이루게 해줄 것이다. 만약에 우주 전체에 정보를 해득할 수 있는 의식이 없다면 만물이 만들어낸 모든 정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광대한 공간에 아무리 많은 천체가 있고 무수한 별들이 빛을 내고 있다 하여도 보이고 만져지고 소리가 들리는 입자적인 실체가 아닐 것이다. 의식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순간 우주의 입자적인 존재성은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별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소리를 듣고 서로 만져보고 상대를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별들을 구성하는 철이나 암석들이 서로를 상대로서 인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보는 해석하는 상대의 존재를 전제로 한 상대성의 개념이다. 정보를 받아 해석하는 상대가 없을 때는 정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의 탄생 이후에 최초의 의식이 최초의 별에서 탄생하여 파동의 정보를 빛과 소리와 촉감과 맛과 냄새라는 형태로 인식하기 전의 세계는 정보가 없는 세계였다. 때문에 그때의 세계는 입자적이고 물리적인 실체의 세계라기보다는 오로지 파동적인 세계였을 뿐이다. 우주는 단순한 파동의 물결 그 자체였다. 입자적인 세계는 이 파동으로부터 생겨난 의식이라는 것의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 의식이 없으면 세계는 없다. - 우리가 의식체로서 외부 세계를 파동이 아닌 감각적 정보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에 의해 포착되고 인지되는 입자적 세계의 등뒤로 파동적 세계는 숨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의 이면에 가려진 더욱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세계를 잊어버린 것이다. 이 세계를 다시 인식의 범주 속에 찾아오는 방법은 두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인 우리의 의식 속에 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파동 속에 그 열쇠가 들어있다. 기공의 수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동공(動功)과 정공(靜功)이 그것인데 중국의 태극권이나 법륜공 등은 동공을 중심으로 하는 수련이다. 반면에 불교의 참선이나 TM, 환단 시대의 삼법 수행은 정공에 들어간다. 양생과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동공은 이 책의 주제와 관계가 없는 것이므로 거론치 아니하며 파동적인 세계와의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정공을 위주로 하여 논지를 전개하려 한다. 단전은 몸의 기운을 집중시키기에 가장 좋은 곳이어서 흔히 선택되는 지점이다. 손은 원래 외부 세계의 감각을 받아들여서 의식에 전해주는 습관에 젖은 탓에 자기 자신의 기운에 대해서는 오히려 장님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감각에 예민하게 작용하면 외부의 감각에 대한 지각 능력이 방해를 받기 때문에 손이 자기의 파동에 둔감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지 모르겠다. 그래서 손이란 예민한 감각 기관의 능력을 이용하고자 하면 자기의 기운보다도 외부 세계의 파동이 더욱 쉽다. 기공의 수련을 계속한 후에는 파동의 감각이 소리나 맛, 냄새와 같은 오감의 정보에 못지 않게 뚜렷하고 확실한 것으로 인식될 만큼 예민하게 살아남을 알게된다. 하지만 처음으로 파동 감각을 접해보려는 사람에게 기가 주는 느낌은 너무나 미약한 신호와 같아서 감지하기가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기가 어떤 느낌으로 어떻게 언제 느껴질지를 알 수가 없어서 자기의 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도 별다른 감각을 못 느끼기겠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은 훌륭한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것인데 이 때의 이점은 올바른 자세와 호흡법 그리고 상념의 방향 등의 실제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과 함께 기의 외부 투사가 가능한 선생이 전해주는 파동은 대단히 강력한 것이어서 기감이 막힌 정도가 심한 사람도 쉽게 감각을 체험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선생이 없이 혼자서 기공을 하는 경우 몇 개월 몇 년을 해도 기의 파동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수가 있지만 선생과 함께 수련을 하면 빠른 시간 내에 기의 체험을 하게 된다. 기감이 좋은 경우에는 선생과 만난 첫날에 바로 기를 체감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 아니라 기공에서는 백문(百聞)이 불여일감(不如一感)이다. 자기가 기파동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명상 자체가 지겨운 고역일 수가 있고, 의심과 불안을 떨치기 어렵다. 의심이란 과연 기라는 것이 그렇게 느껴질까에 대한 의구심이고 불안이란 나는 결국 그것을 못느끼고 마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다.
한번 기를 확실하게 체감하고 나면 기파동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버리게 된다. 교회를 십 년 동안 습관적으로 다녀도 잘 안되던 신앙이 한번 예수를 영접하는 영적 체험을 하고 나면 바로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은 자기가 체험한 사실에 대해서는 강고한 믿음을 갖는다. 또 어떤 감각이 느껴질 때에 그것이 기의 파동인지 생각이 불러온 착각인지 애매하다는 것이 초보자들의 가장 크게 느끼는 애로점이다. 이것은 수련자의 신체 파동과 투사된 기의 파동이 비슷한 주파수대일 때 파동의 보태기 간섭으로 지나치게 크게 증폭되는 경우이거나 수련자가 선천적으로 신기(神氣)가 발달한 사람인 경우 잠재되어 있던 신기가 기의 힘에 반응하여 역동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의 신기는 주로 화기(火氣)를 투사할 때 잘 반응한다. 기공을 배운 사람 중에 기 파동을 오행에 맞게 구별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투사하는 기의 성격을 자신이 잘 모르므로 상대가 일으키는 명현 현상에 당황하거나 오히려 이것을 공력의 척도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와 조화되지 못하는 기를 투사하는 것은 투사자의 잘못이다. 특히 질병의 치유를 위한 기의 투사일 때는 명현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강진동의 주파수는 금기 사항이다. 어떤 물질의 파동을 손이나 머리로 느껴보고 그것이 오행상 어디에 속하는 파동인지를 구분해서 알아볼 때까지는 몇 개월에서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오행의 파동에 대한 구별 감각을 키워나가는 자체가 바로 공력을 높여나가는 과정이다. 파동에 대한 예민함과 정확한 구별 능력의 수준과 기의 공력은 비례한다. 여기서의 집중은 다른 것의 생각을 일체 하지 않고 오직 손의 감각만을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가지 일에만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어서 아무리 손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도 다른 생각들이 일어난다. 그런 생각들을 올라오는 대로 열심히 물리치면서 손만을 의식하고 한참을 있다가는 '아무 것도 못 느끼겠는데요'하고 말해 버린다. 맹인이 점자책을 읽는 것은 의식의 집중으로 하는 일이다. 점자의 요철은 입자적인 감촉의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주의를 손가락 끝의 촉감에 집중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의식 속에 글자체로서 인식되어 진다. 이것은 손가락 끝의 감각 세포의 압력차가 신경의 전위차로 변한 것이 두뇌 속에서 특정 주파수로 변환되는 생리적인 처리의 산물이다. 하지만 물체의 표면 질감이 아닌 물질 자체의 파동은 피부 감각 세포의 압점이 지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파동과 상대 물질의 파동이 만날 때 만들어지는 변조 파동의 감지이다. 이런 파동은 아원자 수준의 미립자 파동이어서 신경 세포나 신경 전달 물질보다 더욱 근원적인 파동이어서 인체의 정보 체계가 감지하고 나를 수 없는 차원의 것이다. 오히려 의식이 그런 정보의 처리에 힘을 쏟으면 쏟을수록 더욱 감지가 어려워지는 성질이 있다. 때문에 의식의 집중으로 기를 느끼려고 하는 노력은 별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오감의 정보를 처리하는 의식을 휴식상태로 두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이 변화의 폭은 그리 크지 않아서 우리는 자신의 고유성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기를 느낀다는 것은 상대의 파동에 의해서 나의 파동이 변조되어 바뀌는 주파수와 진폭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라 하면 가장 정확한 설명이다. 평소에 이런 파동의 변화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의식이 오감이 전해주는 정보의 처리에 매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식의 활동은 활발할수록 우리의 몸에서 자기의 파동을 강하게 내고 그것이 주위의 파동에 대해서 강력한 방해파로서 구름층을 형성한다. 마치 적의 레이더 전파를 더 강력한 전파로서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자기 파동의 기운은 주변의 파동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해로운 파동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함께 하는 것이다. 즉 생명체의 몸은 주위의 파동 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파동의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잠을 잘 때는 의식이 약화되면서 파동적 침입에 대해서 약간의 무방비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잠잘 때 영계나 우주적인 파동과의 교감이 수월해지고 그것이 꿈으로서 의식에 재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공 명상을 할 때 오감의 정보를 처리하는 일을 쉬게 함으로서 파동 신호의 처리에만 의식을 할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식 체계는 견고한 습관적 상태인 오감 의식에서 전혀 생소한 파동 의식 상태로 전환되고 이것은 무척 신비스러운 체험으로 다가온다.
오감에 의한 정보로 세계를 인식하던 우리는 갑자기 빛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감촉도 아닌 전혀 새로운 정보의 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아주 기묘한 상태이다. 의식이 일상적이고 습관화된 처리를 해주지 않는 상태이므로 우리는 마치 꿈속의 것 같은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상태의 체험을 우리는 흔히 무아의 경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손에서 어떤 감각을 느껴야겠다'는 조바심이나 손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감각의 변화를 해석해서 '이건가 저건가' 헤아리는 마음은 모두 의식을 물질 감각의 세계에 깨어있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의식이 그런 감각에 눈을 뜨고 있으면 기 파동은 오감에 가려지고 만다. 그래서 오히려 손에서 무엇을 느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무념의 상태로 두게 되면 어느 순간 손이 이전에는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이상한 감각에 쌓여있음을 문득 알게 되는 것이다. 자세를 바르고 편하게 갖추고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편히 하며, 생각을 가라 앉혀서 고요한 상태로 두는 것은 의식을 한군데에 집중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않기 위함이다. 의식이 어느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하고 멍한 상태에 두면 몸과 의식은 파동으로 변하게 된다. 파동화된 몸과 의식은 주위의 파동과 공조하면서 변조를 일으키고 그때의 변조된 상태가 멍하게 비어있는 의식의 커텐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전해져 오는 것이다. 한동안 기공 명상에 잠겨있으면 처음에는 손끝에 파동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손 전체를 감싸는 것을 알게 되고 점차 손의 물체감이 희미해져 간다. 다시 말하면 손의 형상을 의식하지 못하게 되고 손이 있는 자리에는 뭉친 공기의 압력이 만들어내는 기운만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기공 명상을 하다 보면 자기의 양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암만 생각해봐도 감각으로는 알 수가 없는 때가 있다.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것 같기도 하고 허리 양옆으로 던져놓았던 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손과 팔에 감각이 없으므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뜨고 손을 내려다보면 그제서야 내 손이 어떻게 놓여져 있는가를 알게 된다. 그런 경험은 대단히 놀랍고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 순간의 내 손은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파동적 존재이다. 아니 파동 그 자체로 변해있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입자적인 세계의 물리적인 존재로서의 자기는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면 그의 육신은 여전히 이 세계에 눈을 감고 앉아있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이것은 관찰자의 의식이 그의 육신을 물리적인 존재로서 감지하고 있는 상일 뿐이지 파동에 휩싸인 채 눈을 감고 앉아있는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현상이다. 명상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물론 자기는 원래의 그 자리에 변함없는 입자적 존재로 되돌아온다. 의식이 자기를 다시 오감으로서 인식하기 때문이다. TM이나 불선(佛禪)과 같은 일반 명상에서도 이런 삼매경을 체험할 수 있는데 기공과의 차이점은 명상의 각 단계에서 파동의 감각이 생기지 않는 점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연못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초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어떤 명상을 하던지 간에 육신의 형상감을 잃게 되고 몸의 감각을 자각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때의 육신은 입자적인 존재에서 파동적인 존재로 변해가면서 의식이 만들어놓은 외부 세계와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때가 자각으로는 몸의 형상감이 희미해지고 사지의 감각이 마비되어 가는 것으로 오게 된다. 몸의 형상이 사라져 가는 느낌은 자신이 파동으로서 주위의 파동과 혼재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명상 중에 자기와 우주가 하나로 합일되는 과정을 밟게되는 것이다. 합일이라는 것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며 자기와 외부 세계와의 경계를 갖는 입자 존재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자신이 파동으로 변함으로서만이 역시 파동적인 세계인 우주 의식에 스며들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파동화의 감각은 일반 명상의 경우에 그렇게 뚜렷하지 않고 체험적인 느낌도 대단히 주관적이며 명확하지가 않다. 불교에서는 언어 밖의 경지라 해서 설명조차를 하지 않으려 하고 다른 명상법에서도 이것을 무어라고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기공을 동반하지 않는 수행은 기감을 수련하지 않기 때문에 파동화의 감각이 기공 수련자만큼 뚜렷하지를 못하고 그 원리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설명 자체가 곤란한 것이다. 그리고 1단계인 '집중(다라나)'에서부터 집중하는 상념의 지향점이 기공과 다른 것이다. 기공 수련의 경우 이 집중은 자기가 교감하고자 하는 대상 물질이나 우주의 기운으로 명확하게 설정이 된다. 그리고 선택한 대상 기운의 파동과 자신의 파동이 어울려 가는 과정과 변화를 2단계인 '명상(디야나)'의 수준이 깊어 가는 과정을 따라 지속적으로 자각하고 관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마하리쉬는 TM의 강의에서 '완전한 정신적 정지상태와 하나의 생각의 극히 희미한 충동 사이의 경계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에서 내가 의식의 가느다란 끈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삼매경(사마디)'은 이 '희미한 경계선마저 지워 버린 상태'이며 '가느다란 끈조차도 놓아 버린 경지'이다.
↑입자적 존재에서 파동적 존재로 변함에 따라 자신이 우주와 혼재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와 자기의 외부를 구분해주는 경계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자신과 외부 세계와의 경계가 없어지면 자신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전체 속의 일부가 되고 자신이 곧 그 전체가 된다. 입자적 세계의 특성에서 벗어남으로서 파동으로서 언제라도 우주와의 합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우주라는 전체의 일부이며 각자가 곧 전체이기 때문에 개체와 개체 사이의 합일은 개체와 전체 사이의 합일과 똑같이 가능하다. 기공을 수련하는 단계는 우주와의 합일에 앞서 눈앞의 대상들과의 합일을 먼저 체험하고 그 다음으로는 멀리 있는 존재와의 합일을 겪어 보고 마지막으로 우주 의식과의 합일로 전진하는 과정이다.
나무의 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나중에는 내 몸 전체가 나무의 기운에 휩싸이게 되면 나와 나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곧 나무요 나무가 바로 나임을 부정할 수가 없게 된다. 그때의 나는 나무의 상태를 내 몸처럼 알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도끼로 찍어 놓아 수액이 흐르는 그 자리에 나무가 느끼는 통증을 내가 알 수 있다. 땅 속 깊이 퍼져 들어간 뿌리로부터 땅의 기운이 빨아올려져 수 십 미터의 나무 꼭대기로 밀려 올라가는 기운을 내가 그대로 체험하게 된다.
오대산을 연상하면서 산의 기운을 받으면 내가 어디에 있던지 간에 오대산의 기운이 나의 몸을 채운다. 내가 오대산으로 변해 가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내가 바로 산이고 산이 곧 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북두칠성의 기운을 내가 느낄 때는 내가 바로 밤하늘로 올라가 북두칠성이 되는 것이다. 내가 우주의 심층적인 기운을 받아 그 속에 몰입되면 그것이 바로 우주와 내가 하나인 순간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일체동근(一體同根), 여아일체(與我一體), 유무일문(有無一門), 천인합일(天人合一)이 결코 철학적인 수사만은 아니다.
파탄잘리의 요가는 이러한 초능력에 대해서 더욱 세분하여 설명하였고 부처님의 시대에나 오늘날이나 세계의 여러 곳에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늘 있어왔다. 이러한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개체가 전체로부터 가져오는 힘이다.우주 의식과의 합일 상태에서 깨달은 지혜와 그 순간 공유하게된 우주적 능력이 입자적인 세계로 넘어오는 문지방을 건널 때 같이 넘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능력은 '사마디'의 차원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성격과 차원도 여러 가지이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 체험은 개인의 내면적인 영역이므로 논외로 치더라도 투시능력(透視能力)이나 유체이탈(遺體離脫) 또는 텔레파시, 예지능력(豫智能力), 염력진찰(念力診察), 질병치유(疾病治癒), 전생기억(前生記憶), 공중부양(空中浮揚), 공간이동(空間移動), 물질화능력(物質化能力), 신체재생(身體再生) 등으로 개인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초능력이나 신비능력을 얻기 위해서 기공 수련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결코 권장할 일이 못된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공력의 척도로 삼아 과시를 위한 시범을 하는 것도 수련자의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9. 波動의 힘
파동은 독립적으로는 만물의 고유성을 결정하는 본질이며 상대적으로는 정보이다. 오행의 형태로서 각각 다른 성격의 기운이며 상생하고 상극하는 관계와 음양의 조화가 작용해서 세계에 질서장을 드러낸다. 질서장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응하고 순환하면서 진화, 발전해 간다. 질서장 내에서 파동은 정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힘으로 작용한다. 힘으로서의 파동은 물리적인 힘인 충격이나 열이 아니라 자신의 파동 에너지로서 상대의 파동에너지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파동과 파동은 간섭현상에 의해서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되고 두 가지 파동이 하나로 섞이면 새로운 파형과 진폭을 가진 변조파가 된다. 두 파동의 힘이 비슷한 경우에는 새로 만들어진 파동은 두 가지 파동의 본래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파동일 것이다. 한편 상당히 강력한 파동에 상대적으로 미약한 파동들이 부딪혀 공조하게 된다면 작은 변화가 생기겠지만 강력한 파동은 원래의 고유한 형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두 파동은 서로 간섭을 일으켜 순수한 금의 파동이나 순수한 구리의 파동과는 약간 달라진 파동이다. 금이나 구리의 분자는 섞인 다음에도 여전히 금의 분자와 구리의 분자로서 고유한 결합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탄소의 분자가 결합된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구성 분자로 볼 때는 같은 물질이지만 결합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파동이 달라진다.
물질적 존재나 정신적인 힘의 파동이 어떤 느낌으로 우리의 감각에 전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파동적 세계와의 교감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인가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원리에 대한 설명을 할 차례이다.1장 '의심할만한 세계'에서 일견 견고해 보이는 물리적인 세계의 실체는 그것의 파동이 만들어내는 다섯 가지 형태의 정보를 우리의 의식이 해석하고 재조립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파동적인 세계와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의식체가 아닌 파동체로 바꾸어야 한다. 세계를 물리적인 실체로 받아들이는 것은 의식의 작용이기 때문에 의식의 조작된 정보가 만드는 허상을 실체로 보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만들어낸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식이 더 이상 오감으로 정보를 받아들여 세계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입자적인 세계는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그 세계가 파동의 물결 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지는 것을 체험해본 사람이라야 만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입자적인 세계(왼쪽)와 파동적인 세계(오른쪽). 파동적인 세계에서는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는 거대한 파동의 바다일 뿐이다.
정공은 어떤 유파나 종교의 것을 막론하고 바른 자세, 조용한 호흡 그리고 편안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는 것으로 시작이 되는데 이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서 명상에 잠긴다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것은 바로 입자적 세계라는 환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의식을 약화시켜서 파동에 몸을 맡기기 위한 작업이다. 이때 의식을 집중하는 것은 오감으로부터의 정보를 처리하는 일을 중지하고 파동의 감각을 느끼는데 의식의 힘을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기공의 수련을 해본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겠지만 의식은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가 없다. 오감이 보내오는 입자적 세계의 정보를 처리하던가 아니면 파동적 세계의 기운을 감지하고 해석하던가 둘 중의 하나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해보려고 하면 의식은 양쪽이 모두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준다. 수련의 초기 단계에서는 생각을 한 가지에 몰두하게 만드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양쪽의 작업에 의식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게 된다. 명상 중에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나 몸의 감각으로부터 방해를 받고 떠오르는 잡념 때문에 의식의 집중이 쉽지 않은 상태가 그런 것이다.
이때 의식을 집중해서 교감해볼 수 있는 파동은 크게 두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자기의 육신이 가진 파동을 스스로 느껴보는 것이다. 이것을 느낄 수 있으려면 자기 몸의 기운을 특정한 부위로 모아서 파동력을 한껏 높이지 않으면 쉽게 감각으로 오지를 않는다.
모든 사물의 파동은 우리가 의식을 손의 감각에 집중함으로서 느낄 수가 있다. 다만 이 파동의 감각은 입자적 세계의 감각과는 성격도 다르고 그것이 수용되고 해석되는 과정도 다르며, 오감의 정보에 습관적으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감지가 잘 안 되는 수가 많다.
- 기를 감각으로 느껴보는 체험은 기공 수련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이다. 아무리 책을 보고 강의를 들어도 직접 느껴보지 못하면 실감이 안되고 결코 기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나나를 한번도 안 먹어 본 사람에게 아무리 그 맛을 설명해도 결국 바나나란 과일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에서 오행의 파동이 어떤 감각으로 느껴지는가를 소상히 설명한 이유는 그것을 설명으로나마 듣고서 명상을 해야 기감을 보다 쉽고 빨리 감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파동의 감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으면 설사 손이나 머리에 파동의 감각이 와도 그것을 손의 저림이나 맥박이 뛰는 맥동감과 같은 생리적 감각과 혼동하기 쉬워서 놓쳐버리는 것이다.
기 파동을 느껴보려면 오행의 파동 감각에 대한 설명을 염두에 두고 표에 나와있는 오행 물질을 하나 정해서 손위에 올려놓거나 머리 위에 올리고 의식을 집중해보면 된다. 금방 되는 사람도 있고 몇 달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기공 수련에 대한 책을 사서 보면서 독학을 했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는데 이런 경우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몇 개월에서 몇 년씩 걸린 사람이 많았고 오랜 기간 수련을 했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기맹(氣盲)인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내가 주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험해 본 것을 바탕으로 말하면 보통 사람 10명 중 2명은 특별한 수련기간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기 파동을 감각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기공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투사를 할 경우에는 기의 성격이나 형태를 신중히 고르지 않으면 초보자들이 명현 현상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 명현 현상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수련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경련을 하거나 호흡곤란을 일으키거나 이상한 자세를 연속적으로 취하거나 몸을 마구 움직이는 등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기 파동의 감각을 손이나 머리로 느껴보는 것은 파동적인 세계와의 교감을 하는 첫걸음이다. 이 관문을 통과했다 해서 바로 저쪽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는 꾸준한 수련을 통해서 파동에 대한 수신 능력과 감도를 높여나가야 한다. 처음에 어떤 기를 느꼈다 하더라도 대개의 경우 그 감각은 애매하고 불확실해서 목기인지 토기인지 금기인지의 구별이 안 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기감을 발달시켜나간 후라야 우리 몸의 파동 센스가 예민하고 정확해져가기 시작한다.
기공 수련을 처음 하는 사람에게 기를 투사해주면서 어떤 감각이 오는지 느껴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손에 정신을 집중한다. 온 신경을 손에서 전해져 올 어떤 감각을 느껴보기 위해서 최대한 집중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식이 손의 감각을 느끼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으로 우리가 손에 전해지는 파동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이냐고 묻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기공이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이 된다.
우리가 의식을 하던 못하던 관계없이 우리의 몸은 주위의 모든 사물과 파동의 교감을 하고 있다. 물질의 파동은 우리 몸의 파동과 닿는 순간 서로 간섭과 함께 변조를 일으킨다. 그래서 여러 파동이 서로 섞인 결과 새로운 형태의 변조파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파동의 환경에 놓이게 됨으로 언제나 주위의 파동에 변조되어 조금씩 파동이 바뀐다. 자신의 건강이나 감정의 변화에 의해서도 파동은 바뀐다.
명상을 통해서 의식의 활동을 저수준으로 낮추고 오감의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을 쉬게 하면 대번에 우리의 몸은 파동체로 돌아가서 주위의 모든 파동들과 섞이면서 간섭을 일으키고 복잡한 변조 과정을 일으킨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은 말단부에서부터 변조된 파동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나중에는 파동의 변조가 온몸을 휘감게 된다.이것이 기공 명상에서 입정(入靜)이라 하는 단계이다. 의식이 인체에 대한 방어를 포기하고 휴식에 들어가면 우리 몸은 바로 파동화 현상을 일으킨다. 입자적 존재로부터 파동적 존재로 변하는 것이다. 그때의 신체에서 느끼는 감각이 바로 기감이다.
- 우리의 몸은 하나의 물질로서 파동을 내고 주위의 물질과 간섭을 일으키지만 의식도 역시 하나의 파동으로 주위와 반응한다. 생명체는 육신의 물질적 파동과 의식의 정신적 파동의 합성체이다. 정신적 파동은 오감과는 별도로 물질적 파동을 감지하는데 보통의 사람은 두 가지 영역의 처리가 동시적이지 못하다. 오감을 처리할 때는 파동의 처리가 약해지고 파동을 수신할 때는 오감의 수신이 둔해지는 것이다.
처음 기를 느껴보려고 손에다 주의를 집중하는 것은 습관적인 물질 감각에 대한 희망이다. 그래서 주의를 집중하면 할 수록 기 파동의 느낌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기감이 약하다던가 근기가 약하다던가 하는 지레짐작을 하게 되고 그런 체념과 의구심이 들수록 기는 더욱 더 느껴지지 않는 악순환에 빠지기가 쉽다. 역설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기의 파동은 느끼려고 하는 생각을 지웠을 때 가장 잘 느껴지는 것이다.
기공의 요체는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강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다. 기의 파동을 의식으로 바라보려고 해서는 안되고 의식 자체가 파동이 되어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다.그 과정에서 오감 의식 상태와는 다른 형태의 인식을 하게 된다. 기의 파동은 그렇게 온다.
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머리도 형상감을 잃어버리고 어깨 위에 머리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게 된다. 의식은 두뇌에서 하는 것인데 어깨 위에 머리를 못 느낀다면 머리가 없어졌다는 그 느낌은 어디로 감지하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대단히 답변하기 난해한 문제 중 하나이다. 자기의 머리가 파동으로 변해서 없어졌는데 나는 무엇으로 머리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자신이 파동으로 변할 때 의식의 위치를 두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음으로서 가능하다. 두뇌 속에 의식이라는 것이 깨어있으면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한 두뇌는 파동으로 변해서 사라질 수가 없다. 의식이 방해물이 되는 것이다.
의식을 완전히 지워버리면 좋겠는데 그렇게 했을 경우에는 파동을 느끼는 감각이나 어떤 특정한 기운과의 교감을 선택하는 의지의 행사 또는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한 자각조차도 불가능해지고 만다. 그야말로 자기 자신의 전부가 입자적인 세계로부터 파동적 세계로 완전히 넘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있을 때의 수련자는 말 그대로 파동 그 자체이다.
이렇게 문지방을 넘어서 저쪽 세계로 가버리는 일은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2천년 전 인도에서 살았던 수행자인 피탄잘리는 요가 수행의 원리를 설명한 《요가수트라》를 남겼는데, 여기서 그는 의식 수행의 단계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 번 째 단계는 집중인데 이것을 '다라나'라고 하며, 두 번째 단계는 명상으로서 '디야나'라고 하고 마지막 단계를 삼매경인 '사마디'라고 구분했다. '사마디'를 현대의 TM(초월명상)에서는 '초월의식'이라고 한다. 나는 피탄잘리의 3단계 구분은 오늘날의 기공수련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기를 느껴보라'고 하면 누구나가 눈을 감고 손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은 바로 '다라나'이다. '다라나'를 일정 시간 계속 고요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바로 '디야나'이며 오감을 완전히 끊고 완전히 의식을 비운 상태에서 이루어진 완전한 파동 상태의 몰입이 바로 '사마디'이다.
- 합일이란 개체와 전체와의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개체와 개체사이에도 가능하다.
우리가 한 그루의 나무를 대하고 그 나무의 기운을 파동으로 느껴보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자면 나무와 내가 하나로 합일하는 과정이다. 나무의 기운을 느낀다는 것은 나무의 파동과 나의 파동이 일대일로 만나 변조를 일으키는 것이며 그것은 나의 파동 일부가 나무의 것과 공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공적 명상은 오늘날 급조된 것이 아니라 수 천년 전부터 가르쳐지고 행해진 것이지마는 불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도교에서도 요가에서도 실천적인 전승은 끊어지고 문헌적이고 사념적인 유산만이 전해졌다. 불교에서는 곧잘 삼매경에 드시고 했던 부처님께서 얻게 되신 여러 가지 초능력을 말하고 있고, 부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수행에 정진하면 누구나가 얻게되는 것이라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 역시 병자를 치유하고 물위를 걷고 빵을 만들어내는 물질화의 능력을 보이셨고 '너희도 가능하다'하여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다는 성경의 기록이 전해진다.
집중의 훈련 단계와 명상의 수련 차원 그리고 삼매경의 경지에서 각각 얻을 수 있는 능력들이 있다. 그리고 개인의 지적 수준이나 선천적인 근기, 성격과 상념의 방향, 타고난 체력과 체질, 신앙적인 바탕 등의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이런 능력들은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우주와 합일의 체험을 했다고 해서 전지전능한 우주적인 능력의 소유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그런 차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영성과 내면적 근기에 따른 극히 일부분의 것이며 전 우주에 담겨있는 정보 중 물리적인 세계에서 오감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지혜와 지식의 극히 일부분만을 우리는 이 세계로 가져올 수 있다. 위대한 성인들이나 성자들 중에는 엄청난 부분을 자기의 것으로 만든 분들이 있고 우주의식과 근접한 경지에 다다른 분들이 있음도 안다. 그러나 무슨 일이던지 목표가 지나치게 거대하면 얻는 게 적다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파동의 힘이란 상대에 부딪히는 물리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상대의 파동에 간섭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이다. 금과 구리를 서로 녹인 후에 서로 섞어서 구리와 금의 합성물을 만들면 이 합금은 금도 아니고 구리도 아닌 제 3의 물질이 된 것이 아니라 금과 구리가 함께 있는 혼합물이 된다. 이 합금에서는 금의 파동도 나오고 구리의 파동도 나온다.
흑연의 더미 속에 작은 다이아몬드를 하나 넣어놓는다고 해서 다이아몬드의 파동이 흑연의 것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이아몬드를 넣어놓은 흑연의 더미에서 나오는 파동은 다이아몬드의 파동이 섞인 것이어서 흑연 더미만의 것과는 조금 달라진다. 구성 물질의 분자적인 결합이 만드는 고유한 파동은 분자의 결합의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변하지 않으며 그것은 물질로부터 잠시의 간격도 없이 지속적으로 발산된다. 그러나 화학적 변화를 이루어 분자의 결합 구조가 달라지면 새로운 물질로서의 변조된 파동이 물성을 나타내게 된다.
파동의 형태가 다른 여러 가지 물질이 한 장소에 있을 때나 보다 강하게 뭉쳐서 어떤 물체를 이룰 때는 물체의 파동은 구성 물질의 파동을 전부 합친 파동이며 전체적으로는 여러 파동이 서로 간섭을 일으킨 결과로 변조된 파동이다. 우리가 나무나 돌 같은 광물에서 느끼는 파동은 이와 같은 혼합파이다. 우리의 몸에서 내는 파동도 마찬가지로 모든 신체의 구성물질이 내는 혼합파이다. 혼합된 구성 물질의 성분비가 바뀌면 파동이 바뀌듯이 우리 몸도 수시로 파동이 변화한다. 간장의 상태가 안 좋을 때와 위장에 탈이 났을 때도 몸 전체의 파동은 이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고유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만 미세한 변화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질서장 내에서 여러 파동들은 상대에게 간섭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이 간섭력을 우리가 의식으로 감지할 때 일종의 힘으로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목기를 느낄 때 머리 둘레의 기압이 높아져서 압박하는 듯한 느낌이 그렇다. 실제로 그 순간의 머리 주위의 기압 변화를 정밀한 기기로 측정해보면 기압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머리를 누르는 힘으로서 감지되는 이유는 의식의 파동에 목기 파동이 가하는 간섭력이 감각기에서 압박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즉 목기의 느낌이란 목기 때문에 우리 신체의 특정 부위와 의식의 파동이 변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감각적 해석인 것이다.
생명체와 같은 유기적인 조직체 내에서는 각 조직의 파동은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이것은 감각적으로는 흐르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연쇄적인 파동의 도미노 현상이다. 전선을 타고 전기가 흐르는 것도 실제로는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각 전자들이 밀려서 조금씩 위치를 바꾸는 것과 같다. 물에 돌을 던졌을 때 일어나는 물결도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물이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간의 기운이 몸에 전달되는 것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간의 파동이 연쇄적으로 간섭현상을 일으켜 그 파문이 경락을 통해 몸 전체에 퍼져나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런 파동의 간섭현상에 따른 변조로서 신체의 각 장부와 기관은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 파동의 정보는 신경계와는 달리 온 몸의 세포 하나 하나에 신체의 상태를 즉시적으로 정확하게 전달한다. 이 파문의 도미노가 어느 지점에서 정지하게 되면 정보의 흐름이 둔화되고 신체의 기운은 정체되어 생명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런 파문의 전달력이 바로 기의 힘이다.
또한 하나의 기운은 오행의 상생상극 관계에 따라 질서장 내의 다른 기운에 영향을 주거나 받게 된다. 간의 목기가 약해지면 목생화(木生火)의 관계에 따라 목기로부터 생하는 화기가 덩달아 약해지고 화기의 장부인 심장과 소장에 병이 오는 것이다. 만약 목기가 지나치게 강할 경우에는 목극토(木克土)의 원리에 의해 목기에 제압을 당하는 토기가 위축되어 토기의 장부인 위장과 비장이 고장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오행의 상생상극은 모든 질서장 내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생명체는 특히 두 가지 기운에 의해 생명력이 유지되고 있다. 화기와 수기가 그것이다. 우리가 우주의 별들에서 생명체의 유무를 확인할 때에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바로 물의 존재 여부이고 두 번째가 적당한 온도의 여부이다. 온도는 화기이고 물은 바로 수기이다. 생명이란 오행의 파동 중에서 화기와 수기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기적이다.
각 신체 기관의 오행상 질서와 음양의 조화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근원적인 생명력의 강약은 바로 화기와 수기의 강약과 상호 조화에 있다. 자연 상태에서 불의 기운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기운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흐르게 만드는 역류의 힘이 바로 생명력이다.
화기는 태양의 열이고 물은 땅 속에 있다. 태양의 열을 위로부터 받아서 뿌리가 있는 아래로 보내고 땅 속의 물을 흡수해서 위로 올리는 것이 식물의 생명력의 본질이다. 식물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모두 이와 같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불의 힘을 위에서 받아서 아래로 내려보내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을 반대로 위로 끌어올리는 힘으로 생명은 지탱되고 있고 이 힘을 잃으면 그것이 죽음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파동의 힘이란 물리적인 파워와 달라서 이와 같은 성격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나무가 땅 속의 수기를 위로 올려보내는 기운은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가 없는 힘이다. 태양열을 잎이 받아서 그 에너지를 땅 속 깊이 묻힌 뿌리로 내려보내는 힘도 역시 물리적인 측정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몸에서 화기를 만들어내는 곳은 바로 심장이다. 때문에 심장은 혈에 화기를 실어 온몸으로 보내는데 심장의 박동이 피를 밀어내는 힘과 온 몸의 혈관이 갖고 있는 저항력의 합을 계산해보면 몸에 피가 도는 것은 도저히 성립되지 않는 일이다. 심장의 물리적인 분출력은 좁디좁은 혈관들을 팽창시키면서 피를 밀어내기에는 택도 없이 약한 힘이다.
그런데도 피가 탈없이 몸의 구석구석을 도는 것은 혈행이 단순한 혈액의 순환이 아니라 화기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화기의 파동에 혈관들 전부가 반응을 하는 것이다. 파동의 힘은 물리적인 힘보다 더욱 근원적인 힘이다. 반면에 몸의 수기가 저장되는 곳은 바로 방광이란 저수지이다.
이곳의 수기는 심장의 화기와는 반대로 몸의 윗 부분으로 올라간다. 심장의 화기와 방광의 수기가 서로 만나는 곳이 바로 단전이다. 불은 물을 만나면 수증기로 변한다. 심장의 화기와 방광의 수기는 단전에서 만나 수증기와 같은 상태가 되어 온몸에 공급된다. 만약에 수기가 부족하면 화기의 일부가 수증기가 아니라 불꽃의 상태로 남아 위로 올라간다. 이것이 화가 치미는 상태이다. 수기가 충분히 증발시키지 못한 화기는 머리를 침범하게 되고 두뇌가 화기에 상하면 정신병이 되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정신병을 심장에서 비롯된 증상으로 본다.
미친 사람들이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 것은 심장의 화기가 만드는 감정이 웃음이기 때문이다. 화기가 치밀어 돌은 사람은 웃음을 참지 못하게 된다. 지나친 화기는 화생토(火生土)의 상생관계로 토기를 과하게 만들어 위장을 지나치게 활발하게 만들어 계속 먹게 만들고 토기의 감정인 우울과 고뇌에 빠지게 한다. 반면에 화극금(火克金)의 상극관계에 있는 금기의 장부인 폐와 대장에 해를 입히기 때문에 화기가 몸의 금기를 상하게 하는데 이르면 증세가 슬픔과 비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울증이다. 정신병이란 화기가 지나치거나 수기가 부족한 관계로 화기가 불꽃 그대로 머리로 올라간 결과 신체 장부의 오행의 질서가 무너진 때문에 생긴다.
반대로 수기가 너무 강하면 수극화(水克火)의 상극 작용으로 불을 완전히 꺼버리고 만다. 심장이 약해져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반면에 수생목(水生木)의 상생으로 목기를 일으켜서 간과 담의 기능이 항진되어 목기의 감정인 두려움과 공포증을 일으킨다. 이런 상태에서는 피해의식과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어 지나치게 겁을 내거나 아니면 두려움에 대한 방어기전으로서 걸핏하면 화를 내는 성격으로 변한다. 동시에 화기가 약해서 혈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여 수족이 저리고 몸에 부기가 있게 된다.
화기를 내리고 수기를 위로 올리는 힘의 균형이야말로 건강한 생명력의 근원이다. 파동으로서의 기가 힘일 때의 작용에 대한 설명을 해왔다. 물리적인 힘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파동은 강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파문처럼 파동만이 전해지는 것이며 도미노의 원리로 계속 다음 파동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이해하기 바란다. 파동의 힘은 바로 다음 파동을 일으키는 영향력이며 다른 파동에 미치는 간섭력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파동을 변화시키는 힘인 것이다.
이런 파동의 힘이 강해서 어떤 물질의 파동을 바꾸어 놓는 경우 물성 자체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화학적 변화라는 것이 파동적 측면에서 보면 바로 그런 예이다. 물성이 바뀌면 파동이 바뀌지만 거꾸로 파동이 바뀌어도 물성이 바뀐다. 기공 치료가 가능한 원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체가 병이 드는 것은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 원인이 음식이던, 나쁜 공기이던, 병원체이던, 외부에서 들어온 독소이던 생물학적으로 보면 화학적 작용에 의해서 인체의 조직이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체에 병이 들면 건강했을 때와는 몸의 파동이 다르다. 건강체와 병체는 기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화학적 작용을 다르게 가해서 건강을 되찾을 수도 있다. 약을 먹거나 식이요법을 하거나 방사선을 쪼이거나 수술을 해서 환부를 도려내거나 하는 방법들이다.
그런데 순서를 바꾸어서 병든 몸의 파동을 건강한 몸의 파동으로 바꾸어 버리면 몸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가가 궁금하다. 이런 역순은 반대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일어난다. 몸이 변하면 기가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가 바뀌면 몸이 변한다는 것이다. 기공 치료는 병든 인체의 파동에 건강한 파동을 투사해서 인체의 파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파동을 바꾸어 놓는 것만으로 몸의 생리학적인 질서가 변하게 되고 병이 낫는 것이다.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주사를 맞은 것도 아니고 먹거리가 바뀐 것도 아닌데 단지 몸의 파동을 다른 파동의 힘으로 변조시킨 것만으로 병이 낫는 것이다. 파동이 바뀌면 물질의 성질이 바뀐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방사선 치료는 일종의 기계적인 기공 치료나 마찬가지이다. 방사선의 파동을 이용해서 신체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계적인 파동보다도 훨씬 안전하고 확실한 것이 기공 치료라 할 수 있다. 물론 방사선 기계와 달리 기공사는 공력이 다르고 투사하는 기운도 달라서 개인적인 편차가 크고 임상적인 보증이 어렵다는 결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파동을 바꾸어서 물성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면 구리를 놓고 기를 넣어서 금으로 바꿀 수 있지 않겠느냐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짓을 해본 적도 없고 구리를 금으로 바꿀 만큼 엄청난 파동의 힘을 동원할 능력이 없다. 물질들은 자기 고유성을 유지하려는 강한 힘이 있다. 그리고 자기 성질을 지키려고 하는 고집은 물질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것은 어떤 물질에 기를 주입해보면 알 수가 있다. 옥 같은 것은 특히 자기 고집이 강해서 다른 기를 좀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에 유리나 세라믹과 같은 물질은 자기 고유의 파동이 약하면서 다른 형태의 파동과 공존하는 친화력이 강하다. 금이나 구리도 혼재성과 공존성이 좋은 물질이다. 그래서 유리나 세라믹, 금이나 구리같은 물질에는 다른 파동을 주입하면 자기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파동을 속에 저장하고 간직한다. 이런 성질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 기 제품들이다.
기공 능력자는 고집이 강하지 않은 유리나 금속에 기를 주입해서 자장을 시킴으로서 그 물질이 자기의 고유한 파동과 함께 새 파동을 지속적으로 발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방사선을 쪼인 물질이 계속해서 방사선을 방출하는 방사성물질로 변하는 것과 같다. 금속에 전기로 자력을 넣으면 전기를 공급하지 않아도 자력이 계속 유지되는 것도 같은 원리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의 힘으로 쇠붙이를 영구자석으로 만드는 것처럼 기 파동을 주입해서 파동의 발산체로 바꾸는 일은 쉽게 가능하다. 그러나 쇠에 전기를 아무리 강하게 흘려도 쇠가 다른 물질로 변하지는 않듯이 기공 능력으로 구리를 금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일은 쉽지 않은 것이다.
미립자들이 원자 속에서 서로 결합하고 있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는 그것이 깨어질 때 내는 원자탄의 위력을 상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자들이 분자 내에서 결합하고 있는 힘은 이보다는 약하지만 그러나 엄청난 힘으로 뭉쳐있다. 이것을 바꿀 정도의 기를 구사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있다고 대답한다. 인간이 기라는 파동을 투사할 수 있는 힘은 물질의 아원자 상태의 구성을 바꿀 정도로 강력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도의 힘을 행사하는 능력자들은 예상외로 드물지 않은 것이다.
기공의 수련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가서 파동적 세계와 교감하면서 우주 전체의 힘을 자기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인간은 그런 엄청나고 거대한 힘의 극히 일부분만을 가져올 수 있으며, 그것도 사람에 따라서 아주 특별한 성격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주위의 기공능력자들이나 몇몇 TM의 교사들 또는 요가나 소수의 성직자들에게 나타나는 능력을 보면 투시력이 있는 사람, 공중부양이 가능한 사람, 예지력이 생긴 사람, 유체이탈을 하는 사람, 물질화의 신비한 능력이 있는 사람 등 여러 가지이다. 그런데 어떤 한사람이 이런 갖가지 능력을 다 가진 경우는 드문 것을 보면 우주의 힘을 쓰는 인간의 능력은 극히 부분적으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능력이 어떤 물질을 변화시키는 한가지로 집중되어 나타난다면 구리를 금으로 바꾸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몸 속에서 새로운 기관이나 없던 뼈조차도 만들어 낸 사례가 많다. 인도의 어떤 성자는 허공에서 원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한다. 사티야 사이 바바(Sathya Sai Baba)란 이 사람의 능력이 결코 눈속임이나 마술이 아니라는 것은 그를 만나본 수많은 과학자들이 인정한 바이다.
결론적으로 파동이 갖는 힘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어떤 물질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다른 물질의 파동에 작용해서 그것을 다른 형태와 성격을 가진 파동으로 변화시키는 힘인 것이다. 물리적 힘이 어떤 것을 입자적인 질량으로서 밀거나 당기는 힘인 반면에 파동의 힘은 변화시키는 힘이다. 물성 자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고 질서를 바꿀 수도 있다.
파동의 강약은 진동의 세기가 아니라 간섭력의 정도이다. 그리고 진동의 강약과 간섭력은 반비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기의 세계에서는 강진보다는 약진이 약진보다는 미진이 더욱 강하다. 우주의 가장 심층적이고 근원적인 힘은 진공에 가까운 극초미진의 파동이다. 그러나 이런 고요한 파동의 힘은 우주의 폭발력을 오히려 압도하는 것이다.
10. 波動 感覺의 訓練
- 파동적 세계와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파동의 감각 - 기감각(氣感覺)을 계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약간의 수련과 반복적인 숙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가장 좋은 것은 늘 파동의 감각을 일상화하고 생활화하여 기감이란 제6의 감각을 언제나 사용하는 생활인이 되는 것이다. 기감을 깨우고 예민하게 만드는 훈련은 명상과 비슷한 것이기도 하지만 파동과의 교감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일반 명상과는 다르고 현대 한국 기공의 일반적인 정공(靜功)과도 차이가 있다. 하나는 내기의 단련을 이룬 후에 외기와 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기의 충일(充溢)을 통하여 내기를 키우는 것이다. 한국 기공은 일반적으로 전자를 많이 택하고 있다. 그래서 수련법으로는 내단술(內丹術)이 중심이 되고 있다. 내단술은 단경(丹經)의 왕으로 불린 중국의 위백양이 발견한 단전을 중심으로 하는 호흡법과 운기법을 말한다. 이것을 흔히 단전호흡(丹田呼吸)이로 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인체를 하나의 발전기(發電機)로 보고 단전(丹田)을 전기를 저장하는 축전지(蓄電池)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호흡을 통해서 기운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몸에서 진기(眞氣)를 끌어내는 호흡과 기운을 단전에 담는 축기(縮氣)와 단전에 저장된 기를 온 몸에 순환시키는 운기(運氣)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의식을 집중하여 호흡을 크게 하면서 횟수는 줄이는 것으로 이때 평소보다 횡경막의 상하 운동폭이 커짐에 따라 복압(腹壓)이 높아져서 하부 신체의 혈액을 심장으로 되돌리는 힘을 크게 해서 혈행을 좋게 함과 동시에 복력(腹力)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식을 단전에 집중하는 것은 또 하나의 의식인 복뇌(腹腦)를 만들게 된다. 복뇌란 두뇌 속의 의식과는 별도로 기운을 관장하는 의식이 새로이 만들어진 것으로 수련이 향상되면 언제나 단전에 자리잡게 되어 인체의 중심을 만든다. 이런 의식을 단전에 만드는 것 지식 제륜법(止息 臍輪法)이라 하고 발바닥 가운데에 두는 것을 지식 족심법(止息足心法)이라 한다. 최근 중국에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법륜공(法輪功)은 바로 제륜법(止息臍輪法)의 계승발전으로 보여진다. 연단의 과정이 지나면 단을 기경팔맥(奇經八脈)을 통하여 순환시켜 인체의 모든 곳으로 움직여 보내는 통관(通關)의 수련으로 들어간다. 통관이 자유자재로 되면 신체가 변화되어 정체(情體)를 이룬다 하여 환신(換身)이라 하기도 한다. 그 다음의 경지가 통관으로 만든 정체(情體)를 육신에서 자유로이 출입시키는 경지를 말하는 출신(出身)이 된다. 유체이탈(遺體離脫)이나 분신(分身)의 능력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단전에 축기할 기를 응집하기 위한 호흡법으로 조식법(調息法)이 있다. 들숨으로 기운을 받고 날숨으로 몸의 사기(邪氣)를 토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호흡으로 받아들인 기운을 의식에 실어 단전으로 보내게 된다. 이때 기운의 주 공급원은 호흡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기운을 보다 강하게 흡입하고 사기의 배출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들숨과 날숨의 시간이 평소 호흡보다 길어진다. 들숨과 날숨에서 횡경막의 팽창과 수축의 정도가 한계치에 이를 정도의 깊은 호흡을 하게되는 경우도 있으며 1분당 호흡수를 최대한 억제하여 적은 회수의 호흡일수록 공력이 높은 척도로 보기도 한다. 단전 호흡은 기공에 있어서 역사가 오래 되고 또 운기와 축기를 하는 훌륭한 방법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선생의 지도가 없이 독학을 하거나 잘못 배우게 될 경우에는 무리한 호흡에서 오는 횡경막의 과도한 긴장이 호흡계통에 지장을 줄 위험성이 있다. 무리한 단전 호흡의 부작용은 수련계 내에서도 지적되어 온 문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단전 호흡은 수련자의 체력이나 체질 그리고 건강 상태에 따라 신중하게 해야 하고 초보 수련자일 경우에는 무리한 시도는 삼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래서 단전 호흡을 선생이 없이 책으로 읽은 내용만 가지고 하거나 독학으로 수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면이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파동감각의 훈련을 위한 방법으로 앞서 설명했던 두 가지 방향 중 '외기와 교감하여 충일함에 도달한 후에 내기를 단련하는' 방법을 위주로 하여 설명하려 한다. 이 방법은 여기서 설명하는 대로 혼자서 하더라도 부작용의 염려를 할 필요가 없는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수련이라는 것이 억지스럽거나 고통을 수반하거나 부자연스러워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내단술보다는 오히려 나은 수련법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이다. 정의한 대로 '파동 감각의 훈련'이다. 이것이 기공에 있어서의 핵심이고 근본적인 토대인 동시에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기공의 수련에서 목적하는 바의 대부분을 이룰 수 있다. 내단술보다는 훨씬 빠르고 쉽게 엄청난 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능력을 갖게 해줄 것이다. 당신이 우주와 하나임을 확인시켜 줄 것이고 우주와 합일된 순간의 체험을 하게 해 줄 것이다. 나와 남이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 모든 사람에 대한 공경과 사랑의 이유를 갖게 해 줄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신이 가능하게 될 것이고 자기와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고 질병에 대한 해결책을 갖게 해 줄 것이다. 전 우주의 힘이 당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음을 알고 안심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힘 중에서 어떤 것을 얼마나 가져올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일에 어떻게 쓸지는 당신의 문제이다. 다만 그것을 비뚤어진 마음으로 옳지 못한 일에 사용할 때에는 우주는 더 이상 당신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1) 자세 우리가 흔히 양반 다리라고 해서 양쪽 다리를 안쪽으로 교차시켜 앉는 자세가 하나인데 한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양반다리로 앉는 것이 습관이다. 두 번째는 반가부좌라는 방법이 있다. 그림에 보듯이 한쪽 발을 다른 쪽 허벅지의 안쪽에 대고 반대편 발을 들어올려서 이쪽 다리의 허벅지 위쪽에 올리는 것이다. 이때 양쪽 무릎이 바닥에 붙듯이 내려와야 한다. 수련을 처음 하게 되면 이 자세에서 보통 두 무릎이 위로 뜨게 되는데 공력이 세질 수록 자연히 무릎이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앉았을 때 무릎이 뜬 정도를 보면 수련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은 결가부좌라는 것인데 절의 불상을 보면 부처님은 언제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스님들이 참선할 때도 똑같은 방법으로 앉는다. 이것은 두 다리를 완전히 엮어서 앉는 것인데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자세일 수 있다. 세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편하게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 있는 순서를 매긴다면 첫 번째가 가부좌이고 두 번째가 반가부좌, 마지막이 양반 다리다. 부처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으신 이유는 그 자세가 제일 편하고 또 오래 앉아있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척추를 똑바로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결가부좌를 처음 해본 사람은 끔찍한 고통에 이런 자세로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행이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숙달이 되면 가부좌야말로 가장 편한 자세이다. 그 다음으로 편하고 자세를 곧게 유지해주는 것이 반가부좌이다. 양반다리는 습관이 된 자세여서 편하기는 하지만 등을 똑바로 세워 자세를 바로 하려고 하면 중심을 잡기가 힘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허리를 펴고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다. 허리에 무리가 가서 쳐지기 마련이다. 수련을 하다 보면 한가지 신기한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십분 이십 분만 앉아 있다가 일어서도 다리에 쥐가 내리고 감각이 없고 하던 것이 반가부좌나 결가부좌를 하고 한시간 두 시간을 앉아 있다가 일어서도 다리에 쥐가 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앉아 있는 시간과 공력은 어떤 면에서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기공이나 명상의 첫걸음은 오래 앉아있기다. 가만히 오래 앉아 있는 훈련이야말로 정공의 첫걸음이고 이게 되면 반은 된 것이다. 이 세 가지 앉는 방법 중에서 가부좌가 가능한 사람은 그것이 제일 좋고 힘든 사람은 반가부좌라도 무방하다. 억지로 고통을 참으면서 결가부좌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한국인이면 반가부좌는 누구나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자세이다. 그렇게 앉았으면 다음으로는 등을 곧바로 펴고 척추와 골반까지 무게 중심이 수직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머리는 귀가 바닥과 수직을 이루도록 한다. 턱을 약간 당기고 고개를 조금만 앞으로 기울이는 듯이 하면 귀가 똑바로 서는 자세가 된다. 이런 좌선이나 명상을 습관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새 힘을 조금도 넣지 앉고도 등허리를 똑바로 세워서 아주 편하게 앉아있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만 되어도 수련한 보람은 있는 것이다. 바른 자세로 똑바로 앉는 습관만 가진다 해도 대단히 소중한 것을 얻은 것이니까 말이다.
2) 호흡법 그러니까 평소에 하고 있는 그대로의 호흡이 자기 몸에 가장 적합한 것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수련시에도 호흡에는 별다른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자기가 쉬어서 가장 편안하다고 생각되는 호흡이면 그게 가장 좋은 호흡이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온몸의 긴장을 풀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면 호흡은 자동적으로 편해진다. 그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만 하면 호흡법은 더 말할 것이 없다.
3) 상념 우리 주위의 모든 물건들이 다 고유한 파동을 우리에게 보내오고 있긴 하지만 어떤 것은 파동의 형태가 불분명한 것도 있고 혼합파동(混合波動)이어서 구분이 쉽지 않은 것도 있고 또 파동이 너무 작은 것이어서 감지가 어려운 것도 있다. 그래서 수련을 처음 하는 사람은 가장 파동의 힘이 강력해서 기감이 다소 어둡다해도 쉽게 느낄 수 있고, 또 오행의 파동 형태가 뚜렷해서 구분하기가 용이한 대상을 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건에 맞는 대상으로 권하고 싶은 것은 산과 태양계의 행성들이다. 산과 행성을 오행 별로 조합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이 표를 보고 자기가 느껴보고 싶은 오행의 기운을 골라보는 것이다.
만약에 목기(木氣)로 정했다면 이런 상념을 가지면 된다. "나는 지금 가야산의 양지 바른 풀밭 위에 앉아 있으며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하고 나는 지금 몸과 마음이 아주 편안하다. 내 머리 위에는 목성이 빛나고 있고, 내가 앉은 가야산의 기운이 밑에서 올라오고 머리 위에서는 목성의 기운이 나에게 쏟아지고 있다." 이때 당신이 가야산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도 관계없고 목성이 어떻게 생긴 별이며 어디쯤 있는 별인지 알 필요도 없다. 누누히 말했다시피 우리 의식은 우주 의식과 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인 것이어서 우주 의식 속에는 우주가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상념 속에서 '가야산' 또는 '목성'이라는 생각을 하기만 하면 우주 정보는 즉각 가야산과 목성이 무엇인지 알아차린다. 가야산을 물질적 존재로서 내 눈앞에 옮겨 올 수는 없고 목성을 내 손에 쥐어볼 수는 없지만 가야산의 파동과 목성의 파동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나의 의식 파동과 연결되어 진다. 그것은 바로 내가 나의 기운을 받는 것이며 내가 나를 느끼는 것이다. 기공 수련 중에 가야산의 기운을 받겠다는 상념을 가질 때에 가야산의 기운이 빛과 같이 나에게로 �하고 달려오는 것이 아니고 목성의 기운이 별빛처럼 우주 공간을 달려서 나에게 쏟아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내 속에 그것이 있기 때문에, 아니 내가 바로 부르려고 하는 대상인 그것이기 때문에 부를 필요조차 없고 찾을 이유마저 없는 것이다. 단지 상념이 그것을 떠올리고 의식으로 그것을 느끼려고 하는 순간 그것의 파동으로 내 몸이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감각이 기로서 체감되는 것이다. 내 몸은 나의 상념에 대해서 귀가 어둡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조그맣게 말한다 해서 못 알아듣고 큰 소리로 외치거나 울부짖어야 알아듣거나 하지 않는다. 상념 속에서 가야산과 목성을 떠올린 순간 이미 그것들의 파동은 나와 함께 있게된다. 그리고 가야산과 목성의 파동이 불려온 것은 내가 '이제 그만'이라고 생각할 때까지는 유효하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4) 명상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느냐? 그냥 멍하게 있으면 된다. 가능하다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머리가 텅 비어서 멍한 상태에 두는 것이 제일 좋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어려워서 다른 생각이 떠오를 것 같으면 그때마다 가야산 꼭대기의 양지바른 풀밭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즉 다른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라는 것이지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다. 제일 좋은 것은 아무 생각도 없이 앉아있는 것이다. 해보면 알겠지만 이게 사실 제일 어렵다. 어떤 생각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보다 아무 것에도 의식을 집중하지 않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의식이 오감에 신경을 쓰면 파동적 감각은 느끼기가 어려워진다. 때문에 손바닥에서 전해져올 감각에 신경을 쏟고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파동이 오게되면 굳이 느끼려고 하지 않아도 손이 파동으로 변해 가면서 저절로 느낌이 오게 된다. 이걸 느껴 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정신을 손에 집중하면 할수록 손에서는 아무런 감각도 오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의식을 조용히 무념의 상태로 두고 손바닥은 잊어버려야 한다. 사람에 따라서 걸리는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5분에서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문득 자기 손이 이상해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묘한 기분이 손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주 약한 전기가 손에 꽉 차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무거운 공기가 손을 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손 주변의 기압이 높아진 것 같은 압박감 같기도 하고 손바닥의 신경들이 하나하나 살아나면서 반짝거리는 것 같기도 한 느낌들이 하나이거나 또는 여러 감각이 복합된 것으로 온다.
목, 화, 토, 금, 수중의 어느 기운을 불렀느냐에 따라서도 감각이 다르다. 앞서 설명한 오행 기운의 감각을 떠올리면서 손에서 전해지는 감각을 느껴보면 거의 같을 것이다. 상념이 가야산과 목성을 불렀는데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파동은 금기나 화기인 경우는 절대로 없다. 우주 의식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5)기감의 발달 혼자서 하는 첫 번째 명상에서 바로 이런 기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10명중의 두 사람 정도이다. 그러나 매일 30분 정도씩 한다면 10일 이내에 여섯 명은 감각적으로 기 파동을 체험한다. 이 체감의 벽만 넘으면 기공의 다음 단계는 아주 순탄하다. 기 파동이 어떤 것인지를 감각으로 느끼게 되면 그 다음은 연습에 달려있고 얼마나 습관화시키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처음 기라는 것을 감지했다 하더라도 금기의 감각인지 목기의 것인지, 화기의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초기에는 기의 감각이 완전하게 계발되어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파동감을 느끼는데 만도 만족하고 싶을 정도이지 오행으로 정확하게 구분할 만큼 예민한 감각은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매일 목화토금수, 삼초,골기의 기운을 차례로 느껴보고 감각의 차이를 음미해 나가면 그때마다 기 감각이 계속 좋아져 가서 오행의 구분이 될 뿐만 아니라 주위의 물건들을 아무거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눈만 감으면 기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식사 때 풋고추가 식탁에 올라와 있으면 그것을 손에 올려놓고 느끼면 바로 화기이다. 복숭아가 있으면 손에 올려 본다. 그것은 토기다. 부엌에 양파가 있거든 느껴본다. 바로 수기다. 우리의 손이 어느새 또 하나의 눈으로 변해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머리에서 느끼는 기 파동이다. 파동의 감각을 자주 느낄수록 머리의 신경이 살아나고 사용되지 않던 뇌 세포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손에서 느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머리의 기감은 몸 전체에 변화를 가져온다. 머리는 인체의 총 사령탑이며 나무로 치면 뿌리와 같은 것이다. 머리가 깨어나면 몸 전체가 깨어난 것이고 머리가 변하면 몸이 변하게 된다 . 사무실에서 집에 있는 아내와 통화를 했는데 아내의 몸이 아프다고 하면, 내가 사무실에서 나의 아내에게 기를 보내줄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아내라는 타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아내라는 통합체적인 의식 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내가 몸에 칠성의 기운을 받은 다음에 '나는 내 아내다'라는 상념을 가지고 '내 아픈 어깨에 기운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집에 있는 아내의 어깨에 칠성의 기운이 관통하게 된다. 이건 결코 마술이 아닌 엄연한 파동적 세계의 법칙이다. 아내가 나와는 다른 생명체이고 독립되어 있는 개별적 존재라면 나의 의식이 아내의 육신에 작용할 수 있는 어떤 이유도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기공을 통해서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화를 할 필요조차도 없이 나는 멀리 있는 가족들의 상태를 파동의 교감으로 알 수가 있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학교에 가 있는 내 아이들의 지금 기분이 어떤지, 몸 상태는 괜찮은지 다 체크를 해볼 수 있다. '내가 큰 아이다'라고 생각하면 맏이의 파동이 그대로 나의 파동이 된다. 나는 맏이와 하나가 된 나의 몸을 들여다보고 그 아이의 몸을 파악해볼 수가 있는 것이다. 우주의 전일성(全一性)은 과학자의 전자현미경이나 허블망원경이나 인공 위성의 카메라보다도 우리의 파동 감각으로서 더 쉽게 확인할 수가 있다. 자신의 체험에 대한 확신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 논문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누구나가 똑같이 확인할 수 있는 체험은 과학적인 검증과 실험적인 확인이 되지 않았더라도 사실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사과가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사실은 뉴튼이 만유인력을 발견하기 전에도 의심받지 않았던 법칙이었다. 중력이 발견된 것은 사실의 정당성에 아무런 권위도 더 보태주지 못하였다.
6) 차원의 향상 오행의 기에 대한 구분이 용이해지고 주변의 사물들과 태양계 행성들의 기운이 쉽게 감지되면 다음에 할 일은 파동의 영역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태양계 다음으로는 북두칠성이 있다. 북두칠성의 각 별이 발산하는 기운의 형태는 앞에서 그림으로 보여드린 대로이다. 상념으로 '북두칠성의 몇 번 별'을 부르면 그 별의 파동이 태양계의 것과 같이 손과 머리에 감지된다. 같은 화기의 파동이지만 태양계의 화성에서 느끼는 것과 북두칠성의 1번에서 느끼는 감각은 확실히 다르다. 처음 수련하는 사람들은 태양계 행성들의 파동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잘 모른다. 파동의 힘을 감각이 둔한 탓에 10분지 1도 채 못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수련을 계속해서 기감이 밝아지게 되면 별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놀라게 된다.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적인 힘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온 몸이 눈부신 파동에 휩싸여 정신이 없을 정도가 된다. 그런데 그런 태양계 행성의 기운조차도 북두칠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파동의 성격은 행성들보다 훨씬 은근하고 섬세하게 오지만 그 부드러움에 실려오는 힘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부처나 예수나 공자, 노자와 같은 성인들의 파동을 만날 수 있다. 보다 높이 보다 아름다운 곳까지 올라가셨던 분들의 파동일수록 더욱 감지하기 어려운 희미한 흔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초극미진의 파동이야말로 죽은 자를 살리신 바로 그 기운이고 사바중생을 모두 구제하신 그런 기운이다.
7)파동 감각의 완성 문득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않고 의식을 편하게 놓아버린 상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런 것은 말로나 글로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명상 - 어떤 종류의 것이던지 - 을 일상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런 깨달음이 오게 된다. '아! 이런 것이구나. 스승님들이나 성인들이 가르치려 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하고 알게 되는 것이다. 파동으로 변화되어 갈수록 형상감은 의식에서 희미해져서 나중에는 자기 몸을 자기가 자각할 수가 없게 된다. 가부좌를 튼 다리가 무게에 눌려 아픈 감각이나 저리는 것도 사라지고 자기 팔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고 입이 열려있는지 닫혀있는 지도 모르게 된다. 몸이 중력 때문에 바닥에 눌려져 있는 무게도 느낄 수가 없다. 그냥 몸 전체가 하나의 구름과 같은 파동에 쌓여있는 것이다. 의식은 이런 것을 꿈속처럼 아련하게 감지하게 된다. 그때는 몸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므로 공중으로 떠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로 그 순간 자신은 명상을 하기 위해 앉아 있던 그 자리의 존재가 아니다. 이미 우주의 까마득한 궁창의 허공에 떠있는 존재이다.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도 알 수가 없다. 상하좌우가 모두 똑같이 끝없는 궁창이다. 이때에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의 신비적 체험을 하게 된다. 우주의 빛이 자기에게 쏟아져 내려오는 체험을 하기도 하고 북두칠성의 기운이 정수리의 백회를 창처럼 뚫고 몸속으로 꽂혀오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공중으로 부양하는 체험도 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있겠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는 이미 공중에 떠있는 상태이다. 어느 쪽이 실체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의 시각이 허상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어떤 사람의 몸이 환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 사람의 어디가 아픈지 좋지 않은 장기의 상태가 해부도를 보는 것처럼 환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다. 명상을 끝낸 후 당사자에게 말해 보면 정확한 진단이라는 것을 알고 서로 놀라게 된다. 이런 투시력을 갖게된 사람은 드물지 않게 보아왔다. 어떤 사람은 이때 환상처럼 보았던 일이 며칠 후에 실제로 일어난 것을 겪고 스스로 충격을 받기도 한다. 자기가 손을 움직이면 방안의 기운이 따라서 움직인다. 바로 기 능력자가 된 것이다. 기공사라 말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물론 10년이 걸린 사람도 있고 20년이 걸린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기를 움직이는 능력이 아니라 영성의 계발과 인격의 완성이다. 파동 감각의 완성은 있어도 수련의 완성은 없는 것이다. 기공 수련의 목적은 투시력도 치유력도 예언력도 아닌 바로 자신의 완성에 있다. 11. 波動의 利用 1) 생활 속의 기 특히 의학에 있어서 이 양자의 영향이란 거의 절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의학(東醫學)에 있어서 만고불변의 진리요 영원한 경전이랄 수 있는 《황제내경》은 음양오행설이 아니면 존립활 수 없는 체계이며 동의사들에게는 신성불가침의 진리나 마찬가지이다. 황제는 바로 의학의 신인 것이다. 그런데 《황제내경》의 두 가지 축이랄 수 있는 기와 음양오행은 오늘날까지도 미신으로 취급을 받고 있고 한의사들이나 한의학 박사들까지도 동의학은 과학이라기 보다도 종교에 가깝다는 고백을 할 정도이다. 국내의 한의대에서 통하는 불문율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생님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은 한의학의 금기사항이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선생이 대답을 해줄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생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가르치고 있고 학생도 모르는 대로 넘어가는 것이 한의학이다. 그런 학문에서 '왜?'라던지 '어떻게?'라는 질문은 모두에게 기피되는 금기일 수밖에 없다. 28맥이 도대체 어떤 감각으로 짚어지는 맥인지를 물어보는 것은 목사님에게 천국이 어떤 곳인지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목사님인들 안 가본 천국을 어떻게 알 것이며 한의대 교수라 해서 짚어보지 않은 28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수 백년 전의 명의(名醫)가 썼던 처방에 '어떤 약재가 왜 들어갔느냐'고 묻는 것은 '예수님이 어떻게 물위를 걸었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같은 질문이다. 그걸 교수님이 알아, 목사님이 알아, 아무도 모른다. '쌍화탕은 보양약(補陽藥)인데 대표적인 보양재(補陽材)인 인삼이 왜 안 들어갑니까?'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유는 달마밖에 모른다'는 것이 한의학이다. 어떤 면에서 한의학이란 '묻지마 학문'이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한의학의 토대인 음양오행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양오행설이 증명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기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와 음양오행은 일란성 쌍둥이이며 자전거의 두 바퀴다.
기 없는 음양오행은 있을 수 없고 음양오행설이 없이는 기도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기가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법칙이 바로 음양오행이다. 이것은 양자와 양자이론과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동양의 정신 세계는 양자를 발견하지 못한 양자이론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무리 그것이 정교하고 경험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해도 결국은 가설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기가 입증되면 음양오행설도 과학이 될 것이고 기가 발견되지 않으면 음양오행은 다시 천년이 흘러도 미신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바로 기와 음양오행설에 의한 세계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기가 바로 오행의 다섯 가지 형태의 파동이며 그것은 누구나가 똑같이 같은 감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을 밝힘으로서 음양오행설의 과학적 토대는 마련되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과학적이고 물리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소위 과학적인 입증이라는 것도 결국은 인간의 오감으로 확인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다. 입자가속기나 천체망원경이나 전파분석장치의 최종 결과를 보는 것은 결국 인간의 눈이다. 눈이 본 것을 두뇌가 파동으로서 인식하여 판독하는 것이다. 파동의 감각적 체험이란 기계 장비가 감지한 내용을 그래프나 숫자로 읽는 것보다는 한 단계 더 근원적인 판독인 것이다. 바로 인간의 파동과 의식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어떤 과학적 실험의 결과란 한 사람이 본 것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똑 같은 조건의 실험을 수없이 반복한 결과를 많은 사람이 보았을 때 비로소 인정되는 것이다. 즉 과학적 실험의 결과란 '반대자가 없이 많은 사람의 동의와 인정을 받은 현상'이라는 뜻이다. 한의학의 처방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의 동의와 인정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반대자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삼의 약리와 효능을 한의학에서는 보기(補氣)와 보양(補陽)으로 보지만 서구식의 생약 성분 분석 결과 인삼의 약리 작용이 설사약(泄瀉藥)으로 나온 것이다. 인삼은 보기보양재가 아니라 설사약이라는 반대 주장이 있고 그것이 근거를 가지고 있는 반대인 한 인삼의 보기보양 효능은 과학적인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자가 없는 동의와 인정'의 조건은 관측자 모두에게 똑같은 결과를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기와 음양오행은 어떠한가? 과학적 실험의 결과에 준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 파동의 오행별 성격은 누가 느끼더라도 모두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토성의 기운을 부르더라도 전해져 오는 감각은 모두 동일하다. 새벽에 부르던 한낮에 부르던 남자가 부르던 여자가 부르던 한국에서 부르던 미국에서 부르던 앞서 설명한 대로 기감을 깨우는 간단한 훈련만 한다면 모두가 같은 감각으로 느끼게 된다. 수백 명 아니라 수천 명이 하더라도 하나의 예외도 없는 것임을 단언할 수 있는 일이다. 양자 이론조차도 실제로 수 천명이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극소수의 과학자들만이 목격자이다.
우리는 그들의 목격담을 반박하거나 반론할 능력이 없으므로 믿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 파동은 우리 모두 누구나가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북두칠성이 국자 모양으로 생겼다는 것은 논쟁할 이유가 없다. 밤에 옥상에 올라가서 밤하늘을 쳐다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기와 음양오행도 그렇게 확인된다. 앉아서 눈만 감으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더 이상 미신이 아닌 것이다. 비과학적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눈감고 앉아 있어본 후에는 누구도 반론하지 않을 일은 바로 과학적 사실인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믿지 못할 우스운 처방들이 많이 존재한다. 한의대생들이 흔히 하는 농담 중에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효능을 가진 약재'라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몇십 년 동안 탕약을 달일 때 휘젓던 주걱이라는 것이다. 그 주걱을 달이면 환상적인 보약이 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스개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가 파동으로서 물성을 바꾼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결코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그 주걱으로 저었던 수많은 약재들의 기운이 주걱의 파동과 간섭을 한 결과로 주걱의 파동은 온갖 약재의 파동이 모두 혼합된 지상 최고의 기운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또 상사병에 걸린 총각한테 사모하는 여인이 쓰는 빨래방망이를 달여 먹이면 깨끗이 낫는다는 민간 처방이 실재로 있었다. 이게 미신인가? 우습기만 한 어리석은 촌극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빨래방망이가 무엇인가? 여인네가 매일같이 손에 쥐고 빨래를 두들기는데 쓰는 물건이다. 빨래를 두들기는 것은 대단히 힘이 필요한 동작이고 손아귀에 힘껏 쥐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여인의 기 파동은 오랜 세월 동안 빨래방망이의 파동에 혼재 되었을 것이고 빨래방망이에는 분명히 여인의 기운이 스며있다. 그것을 삶은 물을 먹음으로서 자기가 사모하는 여인의 기운을 몸 속에 담게 되면 자연히 파동적 이끌림의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우리는 물질만이 아니라 형상이나 색깔까지도 오행의 기운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물건의 모양은 모양 자체가 만들어내는 기운이 있다. 빨래방망이같은 형상은 양기를 드러낸다. 반대로 신발 같은 것은 음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여자가 쓰는 빨래방망이는 음중지양(陰中之陽)의 물건이다. 상사병에는 음중지양의 약재로 처방을 했다는 점에서 빨래방망이 이상 가는 약재가 없을 것은 쉽게 짐작이 되는 일이다. 아이를 갖지 못한 부인들이 남근석(男根石)에 치성을 드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 생각 없는 바위 앞에서 절을 한다고 미신이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남근석은 그 모양에서 양기를 강하게 발산하는 물건이다. 그리고 크기가 있는 만큼 파동의 힘도 강하다. 또 어떤 산모가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는데 산도가 좁아서 아이가 쉽게 나오지를 못했다. 의사가 제왕절개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해서 수술실로 실려 가는 중이었는데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두 발목을 꼭 붙잡고는 '우리 며느리 자궁은 코끼리 자궁이다!'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 순간 아이가 쑥하고 빠져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이야기도 기를 모르면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산부인과의 의사와 간호원들은 시어머니가 소리친 '코끼리 자궁' 때문에 안 나오던 아이가 콩 튀듯이 나왔다고는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코끼리 자궁과 산모의 자궁 사이에는 과학적인 어떤 인과관계도 성립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동적 세계의 측면에서는 코끼리 자궁과 며느리의 자궁은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두 가지는 하나인 것이다. 비록 기공을 하지 않은 할머니였을지라도 아이를 낳기 위해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운 마음에서 코끼리 자궁의 힘이라도 빌려야겠다고 생각한 소박하고 절박한 시어머니의 상념은 그대로 코끼리 자궁의 기운을 며느리 자궁의 파동에 연결 시켰을 것이다. 그 순간 며느리의 자궁은 바로 코끼리의 자궁인 것이다. 그 커다란 코끼리의 자궁에서 조그만 사람의 아기가 나오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었을까? 한의학을 보면 왼통 믿기 어려운 일들이다. 마술인지 무속인지 초능력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옛날의 명의란 사람들의 진료하는 과정을 보면 의사라기보다 초능력을 가진 슈퍼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녀간의 내외가 엄격하고 반상의 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에는 의원이라 해도 양반집 부녀자의 손목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진맥을 할 때는 환자의 손목에 가느다란 실을 매어서 그 실 끝을 문 밖에서 의원이 잡고 진맥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초능력 슈퍼 의사들은 실만 잡고도 정확한 진단을 했다는 것이다. 직접 손목을 안 잡고는 진맥을 못하는 의사는 양반 집을 드나들 자격이 없었다. 오늘날 환자의 손목에 맨 실만 쥐고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는 한의사가 몇이나 있을 것인가? 옛날에는 보편적인 능력이던 것이 오늘날에는 초능력이 되어 버렸다. 실에 의한 진맥이 가능했던 것은 손의 감각에 의한 진단이 아니라 바로 파동에 의한 염력 진찰이었을 것이다. 실은 맥박의 전달이 아니라 기를 교감하는 연결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진맥을 한다는 명분과 신뢰를 주기 위한 모양상 실을 쥐고 있기는 했겠지만 사실 그런 의사들은 실을 쥐고 있을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환자의 기광(氣光)으로 내면의 환부를 살펴본다는 의수 내경(意守 內景)은 옛날의 명의들에게는 일반적인 진단법이었던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여름이면 대나무로 발을 치고 대나무 돗자리를 대청마루에 깔고 죽부인을 안고 낮잠을 즐기던 것도 기를 모르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난이나 대나무처럼 잎을 단 채로 겨울을 나는 식물들은 모두 냉기(冷氣)를 좋아하는 식물들이고 자신도 냉기를 낸다. 그래서 대나무 발이나 돗자리는 시원한 것이고 겨울에는 결코 쓰지 않는 물건이다. 그런데는 요즘에 와서는 대나무로 만든 시트 등받이를 운전석에 사철 걸어놓고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한 겨울만 지나도 냉기가 뼈에 침투해서 냉골증이 되는데도 기감이 너무나 어두워진 탓에 그 뼈가 시릴 정도의 냉기조차도 자각을 못할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떤 술집을 가보니 내부 장식을 대나무로 도배를 하다시피 해 놓았다. 여름에 갔을 때는 대단히 시원해서 이 집주인이 참 슬기롭구나 생각했는데 겨울에 가봐도 인테리어를 바꾸지 않은 그대로였다. 아무리 히터를 틀어대도 술 집 안이 여전히 추운 이유를 주인은 알 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동란 때 중공군은 50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다고 하는데 그 중 60퍼센트가 전투가 아니라 겨울에 난 동상에 의한 피해였다. 중공군이 개입한 첫 해를 제외하면 동계피복은 유엔군에 비해서 그다지 열악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그토록 심한 동상 피해를 입은 데 대해서는 유엔군 측도 비상한 관심을 가졌던 문제이지만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 그들 중 대부분이 기후가 온화한 남부 지방 출신이었던 것을 이유로 추측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공측의 통계를 보면 동사자의 비율은 출신 지역과는 별 무관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기를 모르고서는 알 수가 없는 문제이다. 바로 중공군이 주된 야전식량으로 사용했던 보리를 갈아 만든 미시가루가 원인이다. 보리는 씨앗이 땅 속에서 겨울을 나고 이른봄에 싹이 피는 대표적인 냉기 식품이다. 그래서 보리는 봄에 수확해서 더운 여름에 먹는 곡물인데 다른 식량의 공급이 불가능했던 중공군은 사시사철 보리 가루를 주식으로 삼았다. 한 겨울에 보리를 먹었으니 얼어죽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쌀은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수확해서 겨울에 먹는 열기 식품이다. 그래서 보리밥은 뜨거운 물에 말아먹어도 속이 시원하고 쌀밥은 찬물에 말아먹어도 속에 열을 공급한다. 현대인들이 옛날에는 없었던 여러 가지 병을 앓는 이유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생활 속에서 기를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잃어버린 데에 있다. 스텐레스가 현대인들의 식기로 많이 쓰이면서부터 사람들의 몸이 많이 허약해지게 된 것도 대표적인 사례로 들만하다. 놋쇠나 구리 그릇들은 열기의 금속들이다. 하지만 스텐레스는 냉기가 무척 강하게 발산되는 금속이다. 여름에 냉면을 스텐레스 주발에 담아내는 것은 일리가 있다. 시원함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식장이나 식당에서 설렁탕이나 갈비탕이 스텐레스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스텐레스 그릇의 냉기가 고기와 국물에 배여서 뜨거운 국물을 먹어도 속이 추워지는 것이다. 돈을 주고 냉기를 사서 먹고 냉병이 드는 생활을 하는 것이 현대인이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데도 대부분이 골병 환자들인 것이다. 물성으로서의 파동 기운은 물리적인 열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스텐레스는 불 속에 집어넣어 달구면 달굴수록 파동으로서의 냉기는 더욱 심하게 나온다. 물질의 파동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더욱 강해지는 성질이 있어서 냉기 물질은 온도가 뜨거울수록 더욱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다. 구리는 냉장고에 들어있어도 여전히 열기가 나온다. 동물들 가운데 심장이 가장 튼튼한 것은 말이다. 말이 그렇게 힘차게 뛸 수 있는 이유는 엄청나게 강한 심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말의 심장은 동물들 중에서 대표적인 화기의 장기(臟器)다. 위장이 제일 튼튼하고 소화력이 강한 동물 중에는 물소를 꼽을 수 있다. 간이 제일 좋은 동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상어다. 상어는 체중의 5분지 1이 간이라고 한다. 간에서 소비하는 엄청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서 상어는 한시도 쉬지 않고 헤엄을 쳐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동물이다. 상어의 간에서 축출한 것이 바로 스쿠알렌이다. 허파의 기능이 뛰어난 동물은 어떤 것일까? 모래 바람이 심한 사막에서 문제없이 숨을 쉬는 낙타가 가장 폐의 기능이 뛰어나다. 신장은 코끼리의 것을 따라갈 동물이 없다. 그 커다란 덩치와 엄청나게 마셔대는 물을 전부 걸러서 여과하는 능력을 과시한다. 눈은 어떤 동물이 좋을까? 수 킬로미터 상공에서 지상을 뛰어가는 생쥐를 한눈에 알아보고 덮치는 것이 독수리다. 눈은 새들이 가장 좋다. 만약에 인간의 두뇌에 말의 심장을 가지고, 낙타의 허파에 상어의 간과 물소의 위장과 코끼리의 신장을 갖고 독수리의 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6백만 불의 사나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장자(藏子)가 말한 웅경조신(熊經鳥伸)의 실현인 것이다. 장자는 말하기를 '짐승들은 저마다 자연의 법리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병이 적고 천수를 누린다'고 했거니와 우리는 기공 수련을 통해서 6백만 불은커녕 단 한푼도 들이지 않고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 만약에 과식을 해서 속이 더부룩하다면 '내 위장은 물소 밥통이다'라고 속으로 세 번만 생각해 보라. 금새 위가 쑤욱 커지는 느낌이 들면서 속이 편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소화제를 왜 먹었을까 억울한 생각이 들것이다. 간이 안 좋은 사람은 매일 여러 번씩 '내 간은 상어 간이다'라는 상념을 가지면 간의 기능이 부쩍 좋아진다. 그런 상념은 모두 파동의 교감을 가져온다. 기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생활 자체가 기공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2) 기공 치료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동의학과 양의학의 분리조차도 제대로 입법화되어 있지 않고 수많은 탄원과 진정에도 불구하고 침구사의 독립도 불가능한 상태이며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는 수지침도 치료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 볼 때 기공 치료가 합법적이고 공인된 대체의학으로 자리잡는 것은 요원한 일로 여겨진다.
한의학의 진단과 치료라는 것은 전부가 사실상의 기공 치료라고 말한다 해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탕재는 식물과 동물 등 자연물의 기운을 쓰는 것이고 침술도 침술사의 기운을 사용하는 치료이다. 질병의 예후와 증상에 대한 진단도 기에 의한 진단이다. 그러함에도 기공 치료를 의술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서 우리 나라의 동의학을 반신불수로 만들고 전통 의학의 발전을 근원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위정자들의 단견과 관료들의 태만에는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또한 기공계 내부적으로도 공신력과 권위에 뒷받침된 기공사의 배출 제도와 기공 치료에 대한 이론적이고 임상적인 체계가 확립되어 있지를 않아서 21세기에는 기의 이용에 있어서 우리 나라가 오히려 구미보다도 낙후되는 비극적인 사태가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체로 인간은 기 속에서 살고 있으며 기는 체내에도 있다. 천지로부터 만물에 이르기까지 기에 의지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적당히 행기하여 양생을 터득함으로써 외부로부터 병이 침입할 수 없게 만든다. 《지리편(至理篇)》』 후한(後漢) 삼국시대에 의성(醫聖)이라고 불리웠던 화타(華陀)는 기심치병(欺心治病)이라해서 오늘날의 의학용어로는 플래시보 효과라고 하는 심리요법까지도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기심(欺心)이란 마음을 속인다는 뜻이며 '마음을 속이면 몸도 속는다'는 것을 이용한 치료법이었다. 플래시보 효과라는 것도 일종의 기 치료라 할 수 있다. 설탕물을 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약이라고 환자가 믿고 먹는 경우에 정말로 효과가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환자의 믿음(착각)이 자기의 병에 대한 대항 기운을 끌어낸 결과이다. 마음은 기를 움직이고 기는 병을 물리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일면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기공 치료는 약이나 침술에 못지 않은 깊고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고 한의학의 본질에 가까운 치료법이라 하더라도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누가 어떤 기를 어떤 환자에게 어떤 방법으로 전기(傳氣)하느냐 하는 방법에서 오는 문제이다. 우리의 몸을 하나의 요리로 가정해서 된장찌개를 끓인다고 하자. 몸의 기운이 부족한 것은 양념이 빠진 요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소금이나 간장, 설탕, 고춧가루와 같은 것이 부족해서 나야 할 맛이 안 나는 상태이다. 이럴 때 요리를 하는 주부는 이웃에서 필요한 양념만을 빌려오면 된다. 소금이면 소금, 설탕이면 설탕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빌려와서 어느 정도 넣어서 간을 맞추느냐는 주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요리에 부족한 양념들이 말하자면 오행의 기운이다. 설탕이 부족한 것은 토기(土氣)가 부족한 것에, 소금이 부족한 것은 수기(水氣)가 부족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이웃에서 소금이나 설탕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김치찌개를 준다면 이건 주부가 만들려고 하는 된장찌개와는 다른 맛의 다른 음식이다. 만약에 이웃의 김치찌개를 냄비 채로 만들고 있던 된장찌개에 엎어서 잡탕을 만들면 이 요리는 김치찌개도 아니고 된장찌개도 아닌 이상한 음식이 될 것이다. 기공사의 내기는 이웃집에서 만들어놓은 김치찌개와 같다. 짜고 매운 양념들이 들어 있다고는 해도 된장찌개에 맞추어 넣어진 상태가 아닌 것이다. 기공사의 기운에도 오행의 기운이 다 들어있겠지만 그것은 소금이나 설탕처럼 원기(元氣) 상태의 순수한 오행 기운이 아니라 기공사의 몸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기공사 고유의 파동인 것이다. 이것은 이웃집의 김치찌개에 이미 들어간 소금이나 고춧가루와 마찬가지다. 기공 치료는 만들어진 요리를 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요리를 할 사람이 필요로 하는 양념을 조미료 상태로 빌려주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조미료가 바로 목기(木氣), 화기(火氣), 토기(土氣), 금기(金氣), 수기(水氣), 삼초(三焦), 골기(骨氣)라는 일곱 가지 원기(元氣)이다. 인체란 이 일곱 가지 조미료를 원료로 해서 만들어지는 요리와 같은 것이고 음양의 기운이란 일곱 가지의 조미료를 섞어 요리를 만드는 주부의 손맛과 같은 것이다. 조미료만 있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주부에게 다된 요리를 냄비 채로 주는 것과 같은 기공 치료를 하는 것을 드물지 않게 볼 수가 있다. 물론 배가 고플 때야 남이 만든 요리라도 도움이 되겠으나 진정 원하는 것은 자기에게 맞는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기공 치료에 사용하는 기는 기공사 자신의 기운이 아니라 우주의 기운인 외기(外氣)를 필요한 오행에 맞추는 것이라야 하겠다. 이때의 외기는 기공사의 공력에 따라 태양계의 것일 수도 있고 북두칠성의 것일 수도 있고 아주 높은 경지의 기공자여서 그것을 초월한 우주의 진기(眞氣)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것은 기공 치료의 올바른 의미와 방법을 몰라서 아까운 자기의 기운을 남에게 퍼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단전(丹田)이란 연마와 훈련을 통하여 아무리 용량과 충전효율을 높인다 해도 결국 한계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큰 바테리라도 계속 소모하면 방전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공 치료를 할 때의 기공사는 자신이 전기를 공급하는 바테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주라는 엄청나고 거대한 기운이 충만한 바테리를 환자에게 연결해주는 전선(電線)이 되어야 자신과 환자에게 모두 이로운 기공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공 치료는 기공사 자신이 지치기는커녕 하면 할수록 자신도 우주의 기운에 충전이 되어 내기가 더욱 강해지는 효과를 얻게 된다. 다시 말하면 기공 치료로 자신의 기운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기운도 더욱더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기공 치료를 하는 기공사의 모습을 보면 어떤 성격의 기공을 하는지 알 수가 있다. 눈을 질끈 감고 체내의 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거나 손을 어지럽게 움직이거나 환자의 몸을 치거나 하는 것은 모두 내기를 사용하는 것이며 기공사가 의식을 집중하는 정도가 심할수록 그것은 강진동의 파동을 이끌어낸다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우주의 진기를 전해줄 때는 그런 용씀이 필요치 않다. 파동의 전달은 시공을 초월하는 것임을 말했던 바와 같이 우주 기운의 전달은 구태여 환자의 몸에 손을 댈 필요도 없이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주고받는 의식의 교감만 가진다면 그것은 쉽게 이루어진다. 기공의 경지에 따라서 손이라는 입자적인 매개체(또는 발산체)를 통해서만 전기(傳氣)가 가능한 기공자도 물론 있고, 환자의 입장에서도 몸에 손을 대거나 손이 가까이 보이면 심리적으로 그곳에서 기운이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치료에 도움이 되는 면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공의 완숙한 경지에 다다르면 환자의 몸에 손을 얹거나 안 얹거나 가까이 앉아 있거나 말리 떨어져 있거나 전기(傳氣)에는 별 상관이 없게 된다. 그저 환자를 앞에 두고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기를 전해줄 수가 있고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물론 가능하다. 대중 강의를 할 때는 강의를 하면서도 청중들에게 원하는 대로 기운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아직 파동의 측정과 계량이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아서 이런 제품들의 기운이 어떤 성격으로 얼마나 나오는지 검증이 곤란한 관계로 간혹 피해를 입는 경우도 보게 된다. 그러나 기공의 수련이 어려운 환자들인 경우 제대로 된 기 제품의 도움을 받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오행의 기운이 입체적으로 배합된 기공 제품이 제대로 검증되고 공인되어 현대인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의료기기로 자리잡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마지막 세 번째가 기공사로부터 기공 치료를 받는 것이다. 셋 중 가장 바람직한 것은 물론 첫 번째의 방법이다.
3) 산업자원으로서의 기 선천 시대의 유산이나 삼국 시대와 고려조를 거친 불교의 융성, 그리고 조선시대 유학의 발전과 수준 그리고 근세에 들어선 이후 기독교의 불가사의한 부흥은 모두 우리 민족의 영적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원효, 사명, 서산과 같은 고승들이 줄을 이었으며 근세에는 수운(水雲 : 최제우, 동학의 창시자)과 환단(桓檀) 이래로 진인선사(眞人禪師)들의 출현이 끊임없었던 한반도는 신선의 나라요, 도인의 땅이었다. 도맥(道脈)과 선법(仙統)이 끊긴지 오래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피 속에 살아 숨쉬는 선능력(仙能力)과 도향심(道向心)은 면면하여 변함이 없다. 이제 21세기는 동양의 시대이며 우리 민족의 중흥기가 될 것이다 . 12. 氣功과 陰陽五行說의 發展 기공의 역사와 발전 과정 1 정기는 육신의 힘이며 마음이란 육신의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이기 때문에 커다란 차이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심(心)과 신(神)이던 정(精)과 신(神)이던 육신적인 힘과 영적인 힘을 서로 이어주는 기운으로서 기를 보았던 것은 같은 개념이다. 육신과 정신을 함께 갈고 닦는 성명쌍수(性命雙修)는《삼일신고》의 가르침임과 동시에 도교(道敎)와 신선술의 근본 이념으로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 동의학의 신이며 중국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黃帝) 역시 동이족의 사람이라는 옛 기록에 따른다면 우리와 중국은 기공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물론 이 조식이 오늘날 흔히 하는 단전 호흡과 같은 것인지 만트라식 호흡법에 가까운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금촉(禁觸)이란 접촉을 금한다는 것이니 음심(淫心)이나 탐욕(貪慾)의 대상이 될 만한 것들을 멀리하는 금욕(禁慾)의 계율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옛 기록에 환웅이 계셨다고 하는 서자부(庶子部)가 삼법의 수련과 환역(桓易) 등을 공부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지만 역시 자세한 것을 알 길이 없다. 몇몇 기공단체에서 옛 기록을 근거로 하여 삼법 수행의 맥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가 전해지지 않으므로 선인(先人)들의 가르침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 지는 의문스럽다. 다만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수행과 명상과 기공이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틀림없다. 명상과 호흡 그리고 금욕이 모든 수행의 근본이다. 그것은 바로 음양오행설이고 이것과 결합된 수행 문화였다. 유불선은 한국과 중국인의 옷이요 음양오행설은 몸 그 자체였다. 두 나라의 기공 수련의 역사는 음양오행설과 황제 의학(黃帝醫學)을 떼 놓고는 설명되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음양오행설의 발전 과정은 기공과 동의학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는 뒷장에서 상세히 서술키로 한다) 황제한테 학문과 의술을 가르친 이는 기록에 의하면 세 사람이다 서왕모(西王母)라고 하는 티베트의 산 속에 살았다고 하는 전설상의 여인에게서 치우 천황과의 전쟁에 이길 수 있는 비책을 배웠으며, 서왕모가 황제에게 보낸 소녀(素女)란 여인으로부터 의술을 배우고, 당시에 1,200세였다고 하는 상고 시대의 선인(仙人)인 광성자(廣成子)로부터 신선술(神仙術)을 전해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니까 황제는 서왕모로부터 학문을, 소녀에게서 의술을, 광성자에게서 선법(仙法)을 배운 셈이다. 훗날 황제는 소녀에게서 배운 의술을《황제내경》이라는 불후의 의학서로 남기고 우화등선(羽化登仙)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자들은 현재 전해지는《황제내경》을 4천5백년 전의 사람인 황제가 저술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문자의 쓰임새나 표현법이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것이므로 당시의 누군가가 의학서를 지으면서 전설상의 의학의 신인 황제의 이름을 갖다 붙인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황제내경》이 씌어진 시기는 춘추전국시대이며 이 시기는 노자의 자연사상과 더불어 도교의 철학적 바탕이 형성되던 시기이다. 『소문(素問)』과『영추(靈樞)』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각각이 81편이고 총 16만 자가 넘는 이 방대한 저서가 기에 대한 최고(最古)의 원전임은 틀림이 없다. 같은 시기에 나온 노자의《도덕경》도 기라는 것에 언급을 하고 있고 보다 뒤에 나온《장자(莊子)》에는 좀더 구체적인 기공법이 나온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 체계인 도가(道家) 학설은 원래 종교적인 색채가 없었으나 불로장생의 신선을 꿈꾸는 도교에서 노장의 사상을 자기들의 지주로 삼기 시작하면서 무위자연(無爲自然), 명리무시(名利無視)의 도덕이 복(福)과 녹(祿)과 수(壽)를 종교적 이상으로 추구하는 도교의 경전으로 변해버렸다. 이런 도교의 양생술이 하나의 기공 수련법으로 이론이 완성된 것은 위백양으로부터이다. 인체의 진기가 모여있는 장소를 처음 발견한 위백양은《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라는 저서에서 이것을 단전(丹田)이라 이름 붙였고 상, 중, 하의 세 단전이 있다고 설명했다. 단전에 기운을 모으고 이 기운을 인체의 곳곳에 운행을 시킴으로서 양생이 가능하다고 한 것이 위백양의 내단학설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 도가 기공의 핵심인 내단술(內丹術)이다. 반면에 불로장생의 영약을 제조할 수 있고 그런 것을 먹음으로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영단(靈丹)을 추구한 것이 외단학(外丹學)이다. 진시황(秦始皇)이 불로장생의 영약(靈藥)을 구하러 천하에 사람을 보냈던 것도 외단의 술법을 믿은 탓이었다. 중세 유럽의 연금술처럼 외단은 한때 큰 유행을 이루었고 화약의 발명도 외단의 연구 중에 약품을 잘못 섞은 실수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 뒤를 이어 이름이 등장하는 고대의 명의가 바로 편작(扁鵲)이다. 선법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호흡수를 헤아리는 수식법(數息法)을 제창한 것은 편작이었다고 전한다. 자신의 호흡을 헤아려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것을 조식입정(調息入靜)이라 하고 이렇게 호흡을 조절하여 잡념이 없는 경지를 청허(淸虛)라 하였다. 그 때문에 성명쌍수(性命雙修), 천인합일(天人合一), 환허합도(還虛合道)를 이상으로 하여 복(福), 록(綠), 수(壽)를 추구하는 도교(道敎)가 노자의《도덕경(道德經)》과 《장자(莊子》를 자기들의 경전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황제내경》은 변함없는 신봉의 대상이었고 '음양오행설(陰陽五行設)'은 신성 불가침한 교리였다. 그래서 도교의 도사(道士)들이 대부분 의사(醫師)이기도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선도(仙道)는 기공과 의술이 분리되지 못한 채 발전의 궤를 같이 하게 되었다. 손책이 우길을 잡아다가 화형을 시키려고 나뭇단을 쌓고 불을 지르니 비가 내려 불이 꺼지고 말았으므로 손책이 직접 칼을 뽑아 우길을 죽였다고 한다. 적벽(赤壁)에서 조조를 화공(火攻)할 때 공명이 부렸다는 호풍(呼風)과 우길의 환우(喚雨)하는 술법은 한 스승에게서 배운 동문(同門)의 학(學)이다. 공명과 우길을 키운 천기진인과 막역한 사이였다는 또 한사람의 선인이 수수선은(首水仙隱)인데 그의 제자가 의성(醫聖)이라 일컬어지는 화타(華陀)이다. 화타가 조조에게 미움을 사서 죽을 때 그의 일생의 의술과 선법을 기록한 청낭서(靑囊書)을 옥리(獄吏)에게 전했는데 옥리의 마누라가 불에 태워버려 후대에 전해지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화타가 곰과 호랑이, 원숭이, 노루 그리고 학의 다섯 가지 동물이 하는 동작과 몸놀림을 보고 창안했다는 기공 도인술(氣功 導引術)인 오금희(五禽羲)는 동공(動功)의 효시가 되었고 훗날 송대(宋代)의 장삼봉(張三 )이 창안한 태극권(太極券)으로 이어졌다. 공명, 우길, 화타와 같은 삼국시대에 태식(胎息)과 태식(胎食)이란 수행법을 익혀 백 세가 되어서도 오십 세로밖에 안보였다는 왕진(王眞)이 있었는데 그가 했다는 태식(胎息)은 일종의 단전 호흡이었으며 태식(胎食)은 명상 중에 입에 고이는 침을 삼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역시 도사인 도홍경(陶弘景)이 육조(六朝) 이전의 양생 경험을 종합 취재하여《양성연명록(養性延命錄)》과《도인양생도(導引養生圖》란 두권의 저서에 담았으며 육자결 호흡법(六字訣呼吸法)이란 수행법을 세우기도 하였다. 정령위는 도술을 배워 한걸음에 백 리를 내달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새'라고 불렀다고 한다. 친구였던 함박우는 그의 재주가 너무도 부러운 나머지 자기도 선법을 익히리라 결심하고 깊은 산에 들어가 수련을 했는데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벌써 천년이란 세월이 지나간 후였다고 하며, 자기가 선망했던 정령위가 이미 죽고 없는 것을 알고 난 함박우가 이를 한탄하여 지은 시가 전해져 온다. 有鳥有鳥丁令威(유조유조 정령위) 새야 새야 정령위야 한편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전해진 도교는 풍류도(風流道)라는 자생적인 독특한 기풍을 이루었으며 고구려의 도교와 신라 국선(國仙)의 맥은 고려 시대에까지 이어졌다. 불교가 번창했던 고려에서도 국가적인 장려를 받았던 도교는 조선시대에 와서는 성리학의 위세에 눌려 공식적인 명맥이 끊어졌고 기공 문화는 불교사(佛敎史)의 한 부분으로서 도선과 묘청, 사명과 서산 등 고승들의 행적으로 남게되고, 삼신각이나 칠성전 등의 형태로 불교 문화 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있다조선조에 일부 지식계층 사이에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도교는 단학(丹學)이라고 불려졌는데 이들의 사가(私家)에 남겨진 문헌으로서 선도에 대한 당대의 학문적 연구의 성과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실천적인 수련법은 아쉽게도 남아서 전해지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도 양평의 현감이었던 정북창(鄭北窓) 선생은 42세 되던 해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백일승천(白日昇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의 저서《일사유사(逸士遺事)》에는 조생(曺生)이란 선인의 일이 나온다. 조생은 여러 세대가 바뀌는 동안에도 조금도 늙지 않고 변함없는 얼굴이었다고 하며 호산(壺山) 조희룡(趙熙龍)이란 사람이 조생을 신기하게 여겨『조 신선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지금 70세가 된 어떤 노인이 어린 아이 시절에 조생을 만나 나이를 물으니 60살이라 했는데 지금 다시 물어도 역시 60살이라 하며 조금도 늙지 않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 장삼봉과 비슷한 시대의 사람인 장자양(張紫陽)도 선가(仙家)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송(宋)나라 제6대 신종(神宗) 황제때 사람인 장자양은 금액환단법(金液還丹法)이라는 선도의 비법을 수련해서 양신(陽神)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출신법(出身法)에 능통했다고 한다. 도교에서 여자로서 지극한 경지에 오른 사람을 선고(仙姑)라고 하는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자 신선인 손불이(孫不二)가 그런 사람이다. 손불이는 금나라 세종(世宗)의 대정(大定) 22년 12월 19일에 우화등선(羽化登仙)했다고 하며《손불이여단시(孫不二女丹詩)》라는 기공서(氣功書)를 저서로 남겼다. 중국 내단의 수련법은 원명 시대로 이어져 도교 유파 중 가장 세력이 컸던 전진교(全眞敎)의 도사들을 통하여 전승되었고, 장삼봉의 태극권에서 비롯된 외기공은 무당산(武堂山)과 화산(華山)을 중심으로 여러 무술의 유파들을 만들면서 발전되어 왔다. 90년대에 들어서서 리홍지의 법륜공(法輪功)이 중국 대륙에 열풍을 몰고 왔다. 현대 중국 기공의 특징은 내단술에서 발전한 정공(靜功)이 아니라 오히려 화타의 오금희와 장삼봉의 태극권에 뿌리를 둔 동공(動功)에 역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살펴본 바와 같이 단학의 수련과 연구가 내밀하게만 이루어졌던 조선시대 5백년의 공백으로 말미암아 실천적인 방법의 전승이 끊기었던 점이 한국 기공의 가장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현대 한국 기공을 보면 유파별로 수련의 이론과 방법에서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동공의 경우 중국의 태극권이나 서양의 현대식 체조에서 자세와 동작을 모방한 것도 많고, 호흡법과 명상의 이론은 인도 요가나 티베트 명상의 영향을 받은 점도 보인다.
운기행공에서는 중국의 내단술(內丹術)이 참조되어 한국적 단전 호흡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국 기공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아직 속단하기가 이른 감이 있다. 환단 시대의 수련법에 어느 유파의 것이 가장 근접하며 어떤 기공이 가장 한국적 전통의 맥을 이은 것인가도 가늠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음양오행설의 발전 과정 2 문화란 인간의 의식이 사물로 전이되어 나타난 것이며, 그 표상의 근본은 언어이다. 음양오행설이란 학설도 인간의 사유가 언어로 표상된 하나의 체계이며 문화인데, 이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발전되어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애매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경에 쓰이고 있는 음과 양은 오늘날의 음양과는 그 뜻이 사뭇 다르다. 양(陽)은 해가 땅위에 솟아오르면 집집마다 깃발을 내걸어 하루를 시작하므로 만들어진 글자라 하는데, 가로획이 땅이며 아래의 물(勿)은 깃발의 모양이라고 본다. 또는 가로획 아래의 부분이 땅에 비치는 햇살의 표현이라고 풀이한 해석도 있다. 양은 《시경》과《서경》에서는 따뜻함, 밝음, 큰 것, 방위(북쪽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남쪽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함) 등으로 사용되어 하나의 뜻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음이란 글자는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는 모습에서 나온 글자인데, 상형과 같이 해가 가려진 그늘, 추움, 어두움, 혹은 얼음이라는 명사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 시기의 문헌에서는 훗날의 음양의 개념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하(夏)나라가 유호씨를 정벌할 때 '유호씨는 오행을 업신여기고 삼정(三政)을 태만히 했으므로 정벌했다'고 되어있다. 이 때의 오행은 오늘날 오행설의 의미와는 다를 것이다. 고대 인도의 사대(四大)처럼 자연을 이루는 기본적인 다섯 가지 요소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1. 오행 : (五行-수화목금토) 오행은 구주의 첫 번째에 나오며 아홉 가지의 근본이 되어 있다. 《홍범》의 내용으로 보면 오행의 개념이 하나라 시대인 우왕(禹王)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지만《홍범》은 후대의 전국시대에 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어쨌건《홍범》을 오행설의 기원으로 보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홍범》에 나오는 오행의 개념은 '상도(常道)'이다. 무엇이 상도를 이루는 것인가 하면 '물의 다스림'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즉 고대 중국인들은 치수를 상도의 으뜸으로 보았던 것이다. 물을 잘 다스리는데서 오행의 순조로운 질서가 유지되고 그에서 천하의 상도가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고대의 오행이론에서는 수(水)가 제일 먼저 나온다. 수화목금토의 순서이다. 구주에 대하여 설명한 《홍범》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오행(五行)의 대목이다. "오행의 첫 번째는 수(水)이고, 두 번째는 화(火)이며, 세 번째는 목(木)이고, 네 번째는 금(金)이고, 다섯 번째는 토(土)이다. 수는 아래로 젖어들고, 화는 위로 타오르며, 목은 휘어지거나 곧은 것이고, 금은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고, 토는 곡식을 생산할 수 있다. 아래로 젖어드는 수는 짠맛을 내고, 위로 타오르는 불은 쓴맛을 내며, 휘어지거나 곧은 목은 신맛을 띠고, 마음대로 구부러지는 금은 매운 맛을 내고, 곡식을 생산해내는 토는 단맛을 띤다."
오행에 대한 맛의 배정은 오늘까지도《홍범》의 기술에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물을 오행에 배정하는 논리는 대개 이와 비슷한 맥락의 것들이다. 그러나《홍범》의 오행을 오늘날의 음양오행설과 같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홍범》의 오행에는 아직 서로 상응하는 기운으로서의 개념이 없는 것이다. 세상을 이루고있는 기본적인 물질 요소를 오재(五材)로 본 고대의 관념이 조금 더 구체화된 정도이다. 오행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서주(西周) 시대이며 오행설이 학문의 주류로 크게 유행하는 것은 전국시대 후기에서 한대(漢代)에 이르는 시기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은의 주왕이 달기를 총애하여 크게 탕음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으므로 주나라의 무왕이 천벌을 대신 행한다는 명분으로 궐기하여 은을 멸하게 된다. 은은 황화의 하류유역에서 그 발상지로 보이는 대규모의 유적이 발굴되어 존재가 증명된 왕조이다. 은허가 발굴된 것은 1923년부터 35년에 이르는 시기였는데 이 발굴로 해서 종래의 중국사는 근본적인 수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의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 채색 도기(彩色陶器)라는 것으로서 중국의 고대문화를 통칭해서 채도 문화(彩陶文化)라고 해왔던 것이다. 채색 도기의 발굴지를 따라서 점을 찍어 이어보면 감숙성에서 시작되어 점차 황하 부근으로 동남쪽 방향을 그리면서 남하해서 산서성 중부와 하남성 서북부, 협서성 북부와 낙양 일대에 이르고 있다. 이 채도 문화는 이란을 경유해서 바빌론, 메소포타미아와 동부 유럽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 이 성자애에서는 견고한 토성을 쌓은 흔적과 함께 대량의 유물들이 나왔는데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산동과 하북 등 중국의 동북부 지방 외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세 발 달린 솥(三足鼎)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세 발 달린 솥은 동이족만의 고유한 것인 바 성자애의 유적과 딱 5년의 시차를 두고 발견된 은나라의 수도라고 하는 은허(殷墟)의 유적을 비교해 보면 중국 최초의 문명이요, 인류 4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황화 문명의 유적인 은허에서 발굴된 것은 성자애의 흑도문화(黑陶文化)였다. 즉 은허는 동이족의 흑도 문화를 전수 받은 문화였던 것이다. 특히 은허에서 발굴된 1,100기가 넘은 인골의 인종학적 특성을 연구한 북경 협화 의과 대학의 교수였던 블랙 교수(Prof. Black)의 연구 결과 은허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그 치아와 턱뼈의 구조로 볼 때 한족(漢族)이나 중국 남방의 묘족(苗族)이 아니라 한국 사람과 똑같은 동북방 아세아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은허에서는 그 유물의 하층이 없었지만 성자애의 경우에는 약 1천년의 시차를 가지는 하층에서 채색 도기의 유물들이 나옴으로서 성자애의 흑도 문화인이 그 전에 중국 동북부에 살았던 채도문화인을 정복했던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 흑도 문화인은 누구였을까? 바로 동이족이라 부르는 한민족의 조상들이었다. 은의 문명이 동북으로 거슬러 올라온 것이 아니라 동이족의 문화가 남으로 전파된 것이며 하, 상, 은의 시대에 동이족의 지배가 황화 유역에 미쳤다는 증거이다. 은의 수도라고 추정되는 안양(安陽)과 산동 지역의 성자애 유적은 발굴 시기로 보면 성자애 유적이 1930년, 은허가 1935년으로 성자애 유적의 발굴 5년 후에 은허가 발견된 셈이다. 그러나 양 유적지의 연대는 1천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성자애는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고 은허는 청동기 시대의 것이어서 성자애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대량의 청동제 유물이 은허에서 나왔다. 이 신석기 시대의 성자애와 청동기 시대의 은허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신석기 시대인 성자애에서 개, 소, 말, 돼지, 양의 동물뼈가 출 토되어 당시에 이미 이런 동물들이 가축으로 사육되었으며 동물들의 뼈를 점을 치는데 사용한 흔적이 있다. 이 동물뼈를 이용한 점괘의 형상이 점차로 발전해서 청동기 시대인 은나라 때 우리가 귀갑복사(龜甲卜辭)라 부르는 갑골문자로 계승 발전된 것임을 보여준다. 은허에서 나온 신탁에 사용된 거북의 등 껍질이 약 3만점 이상 나왔는데 그것에서 확인 가능한 한자의 원형이 약 2,700자에 달한다.(현재 사용되는 한자는 약 35,000자) 그런데 이 귀갑문에 쓰여진 원형 한자의 원 형태가 성자애의 동물뼈 점괘에서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자의 첫 원형은 신석기 시대 흑도 문화의 주인공인 동이족이 신탁을 위해 동물 뼈로 점을 치던 부호였으며 동이족이 남하해서 황하 유역에 도착해 하, 상, 은 시대를 거치는 동안 다듬어지고 수가 많아져서 한자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한자는 한족의 발명품이 아니라 바로 동이족의 발명품이 되는 셈이다. 성자애와 은허의 유적이 발굴되어 수십 년에 걸친 조사와 연구가 행해진 오늘날 중국과 서양의 역사학계는 중국문명의 서방 기원론(西方起源論)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확고한 중국사학의 주류는 중국문명의 자가 발원론(自家發源論)이며 그 발원지는 산동 지방이고 항하 유역에서 발전한 것으로 본다. 은허에서 발굴된 인골(人骨)로서 은나라 사람들의 계통이 오늘날 중국인의 것이 아니고 동이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부터 중국사가들은 은 문화의 주인공을 한족이라고 우기지 않고 '은인(殷人)'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은인'의 뜻을 '외이(外夷)'라고 설명한다. 동북방의 문화가 해안을 따라 남하해서 황하의 하류 유역에 은나라를 세웠으므로 은나라는 본질적으로 해안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나라는 서쪽의 내륙에 있던 나라였다. 원래는 보다 북쪽에 있었지만 흉노족의 세력에 밀려 기산 아래로 옮겨왔다고 기록에 전해지는 것이다. 기산 아래에서 농경민족으로 터를 잡은 주는 원래 세력이 미약한 부족이었으나 점차로 힘을 키운 끝에 마침내 동쪽의 은나라를 멸하게 된다. 이때 주무왕을 도와 공을 세우는 이가 강태공이라 부르는 여상(呂尙)이다. 태공망은 본시 주나라 사람이 아니었다. 은 문명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동북의 산동 지방 사람이다. 그래서 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에 여러 제후들에게 봉국을 나누어줄 때 태공망에게 준 것이 그의 고향인 제나라였다. 그런 점에서 산동 지방의 제나라가 주 시대에 가장 은의 문화에 가까웠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주가 전형적인 내륙문화의 특성을 보이는 반면에 제나라는 해양문화였다. 오늘날 기공수련의 뿌리가 되는 선도(仙道), 신선술(神仙術)의 시원이랄 수 있는 황노학(黃老學)이 제나라에서 발흥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오행설의 시조인 추연(騶衍)도 역시 제나라 사람이었다. 주나라와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와 같은 내륙국의 문화는 인문에 치우친 것이었다. 왕도라든지, 덕이라든지, 천도라든지 하는 개념이 학문의 기반이었다. 반면에 동북지방의 제와 연은 내륙문화에서 보이지 않는 이공(理工)적인 학문이 발전하였다. 과학, 자연, 지리, 의술과 같은 자연과학적 학문이 유행했던 것이다. 음양오행설과 도가의 학문은 모두 자연에 바탕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공맹과 같은 내륙국의 학자들은 이런 추자의 학 문을 괴기하고 허탄한 것이라고 무시했지만 반면에 추연은 이들의 학문을 역시 멸시하고 있었다. 각 시대 길흉의 징조들과 그 법칙을 기록하고는 그것을 유추하여 천지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에까지 적용하곤 하였는데 아리송하여 고증, 탐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먼저 중국의 명산대천과 통속, 금수, 물과 뭍에서 번식하는 것들, 진기한 사물들을 나열하고서는 그것을 유추하여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해외의 일들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리고는 천지가 갈라진 이래로 오덕이 전이함에 따라 통치에는 각각 올바른 제도가 있으며, 그 부응하는 것도 그와 같다고 하였다. 그는 유자들이 말하는 중국이라는 것이 천하의 81분의 1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의하면 중국은 '적현신주(赤縣神州)'라고 하며 적현신주 속에는 또 구주(九州)가 있는데 그것이 우왕이 정리한 이른바 '구주'이다. 그러나 그것을 천하의 한 주로 셈할 수는 없다. 중국 바깥에는 적현신주와 같은 것이 아홉 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구주이다. 또 각 주 사이는 작은 바다로 둘러싸여 사람과 금수가 서로 교통할 수 없으며, 하나의 구역 안에 들어 있는 것이 한 주가 된다. 이와 같은 것이 아홉 개가 있으며, 큰바다가 그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것이 천지의 경계이다. 추연의 학설은 모두 이런 따위였다.』 첫째는 추연의 학설이 '당대를 서술하고 황제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부분이다. 오늘날 동의학은 '황제(黃帝)'를 빼고는 성립될 수가 없다. 동의학을 빼고 기와 수련문화를 논할 수도 없다. 황제내경은 3천년 동안 동양의학의 바이블이었다. 그리고 황제내경의 의술 은 철두철미하게 음양오행의 이론에 바탕한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내륙문화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중국인들의 시조로 공인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갑골문이나 금문, 육경의 어느 곳에도 황제에 대한 기록이 없다. 뿐만 아니라 공자나 맹자 순자 역시 황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사기》의《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 사마천의 기록을 보면,"당시의 제자백가들이 황제를 말하지만 신빙성이 없어서 학문하는 이들은 그에 관해 말하기를 꺼려했다"고 되어 있다. 이 황제가 실존하는 역사상의 인물로서 살아있던 곳은 주나라의 동북변방이라 할 수 있던 제나라였다. 제의 위왕은 "멀리는 황제(黃帝)를 조술(祖述)하고 가까이는 환공(桓公 : 齊桓公)과 문공(文公 : 晉文公)의 패업을 계승한다"고 말했다. 주나라 학문의 주류는 요순에서 출발하지만 제나 연과 같은 동북 해안의 나라들은 황제로부터 시작하는 차이를 보이고 있었고 오히려 이런 나라들에서는 요와 순을 말하지 않았다.《사기》의《역서》에, "황제는 오행을 건립하고, 소식(消와 息은 곧 陰과 陽이다)을 일으켰으며 제와 연나라 지방 방사들의 개산조(開山祖)이자 신선이 된 첫 번째 인물이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황제는 내륙이 아니라 동이족의 활동무대였던 산동 지방의 전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의학의 토대가 되는《황제내경》역시 제나라의 황노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때 동의학은 한족의 산물이 아니라 동이족의 유산이라고 함이 옳지 않을까? 두 번째로 추연의 학설 중에 눈 여겨 봐야할 부분이 '각 시대 길흉의 징조들과 그 법칙을 기록하고는 그것을 유추하여 천지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에까지 적용하곤 하였다'는 것이다. '천지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의 일'같은 것은 유자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공자는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 또는 "삶의 일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은 뒤의 일을 알겠는가?"하면서 덕을 숭상하고 실질에 힘쓰며 인사를 중시하였을 뿐, 천지의 시작이라든가, 사후의 일이라든가 또는 천문과 지리 등의 자연과학에는 무관심하였다. 추자가 말한 '천지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의 일'이 바로 무극과 태극의 개념으로 나타나게 되는 음양의 이론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세 번째 주목되는 것은 중국을 세상의 81분지 1로 본 추연의 지리개념이다.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은 것을 보았다'고 했던 공자의 말처럼 당시의 중국은 그리 큰 천하가 아니었다. 양자강 이남의 초(楚)나라만 해도 변방에 속했다. 당시의 중국을 지금 세계의 넓이에 비교하면 80분지 1이란 그리 크게 틀리지 않은 수치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리적 상식인 오대양 육대주와 추연의 구주는 서로 상이하지만 고대에 저런 정도의 지리에 대한 개념을 가졌던 것은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추연은 인문학자라기보다는 자연과학자에 가까웠다. 이런 추연의 학문이 나온 것은 해양문화의 영향과 함께 제나라의 정치적 상황과도 밀접한 것이었다. 당시에 제나라는 관중(管仲)의 도움을 받은 제환공이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처음으로 천하의 맹주가 되었을 만큼 현인을 존중하고 인재를 등용하려 했던 나라였다. 관중은 제환공의 일개 배신(陪臣)의 위치였음에도 열국의 군주들보다 부유하였다고《사기》에 적고 있다. 제나라가 천하 각국의 현인, 재사들을 모아서 학문과 토론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든 기관을 직하라 했고 이곳의 학자들을 '직하학사'라 불렀다. 맹자와 순자 그리고 장자까지도 직하에서 공부하였고 순자는 직하의 좨주(祭酒 : 직하학사의 우두머리)를 세 번이나 역임하였다. 성시 때의 직하는 수천 명의 학사들이 운집하였다고 한다. 근대의 학술 아카데미와 같은 곳이었고 조선 세종 시대의 집현전이 이 직하를 본뜬 것이었다. 직하학사의 한사람이었던 추연은 그 학설의 진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당대의 대우는 공자를 훨씬 능가했던 것으로 보인다.《사기》는 추연과 공자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추연이 양나라에 도착하였을 때에 혜왕(惠王)은 교외에서 영접하여 귀빈을 대하는 예를 베풀었다. 조나라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평원군(平原君)이 곁에서 걸었고, 자리의 먼지를 털어 주었다. 연나라에 갔을 때에는 소왕(昭王)이 길을 쓸면서 앞서서 걸었고, 제자가 되어서 수업을 받기를 청하였다. 또 소왕은 갈석궁(碣石宮)을 지어 주었으며, 몸소 그리로 가서 추연에게 사사하였다. 그 때 추연은《주운(主運)》을 지어 주었다. 그가 제후에게 유력하면서 받은 존경이 이와 같았으니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배를 곯고 맹자가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곤란을 당한 것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겠는가?』 공자와 맹자가 열국의 제후나 왕들로부터 환대를 받지 못했던 반면에 추연은 연나라의 왕사(王師)로 초빙될 만큼 당대의 인정을 받았다. 그 점에 대해서 사마천은, 『위나라의 영공이 진법(陣法)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으며, 양나라의 혜왕이 조나라를 칠 것을 도모하였을 때 맹자는 주나라의 태왕이 빈( ) 땅으로 물러간 일을 이야기하였다. 이것에 어찌 세속에 영합하고 제후들에게 구차하게 부합하기만 하려는 뜻이 있겠는가?』라고 말하여, 추연의 입신과 출세가 마치 세속에 영합한 데에 있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기》의 다른 부분에서는, 『이윤은 솥을 지는 요리사로서 탕왕을 격려하여 왕도를 이루게 하였고, 백리해(百里奚)는 수레 밑에서 소를 먹이다가 목공(穆公)을 도와 패업을 이루게 하였다. 먼저 상대의 비위를 맞추다가 나중에 그들을 대도로 인도하였다. 추연은 비록 그 말이 상궤를 벗어났다고는 하나 어쩌면 이윤이나 백리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하였고, 다른 부분에서는 "추연의 학설이 주장하는 바는 결국 인의(仁義)에 있다"고 하였다. 『‥‥‥그 후에 전국(戰國)이 쟁패하여 나라를 강대히 하고 적을 사로잡기에 골몰할 때에는 위급한 곳을 구원하고 분란을 풀기에 바빴을 따름이니 어찌 이것을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는가. 이 때 오직 추연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오덕이 전이되는 법칙을 명찰하고 소식을 구분하는 학설을 퍼뜨려 제후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진나라가 육국을 멸하게 됨에 따라 군비만 극히 번잡하게 되었고, 또 진나라가 천하의 패왕 자리에 앉아 있던 날이 짧았기 때문에 겨를도 없었다.
그래도 진나라는 자못 오행상승설을 미루어 스스로 수덕(水德)의 서조(瑞兆)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황하의 이름을 바꾸어 덕수(德水)라고 하였으며, 음력 시월을 정월로 삼고, 색은 흑색을 숭상하였다. 그러나 역법에 관한 일들은 그 진수를 볼 수 없었다. 한나라가 흥함에‥‥‥ 이때 천하가 비로소 정해져서 바야흐로 기강이 크게 자리잡았으나 한 고조나 그의 부인 여태후(呂太后)가 모두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진나라의 책력과 복색을 정하였다.』 춘추시대에 왕의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역(歷)을 세우는 것이었다. 역법은 바로 사람의 생활과 민생에 직결되는 것이었다. 역법이 무너진다는 것은 오늘날로 보면 달력(카렌다)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주나라가 쇠미해지자 역법을 세우고 바로잡을 역할을 할 중심이 없어지게 되었다. 진나라를 비롯한 육국은 전국시대의 패권 다툼과 생존에 급급해있었으므로 역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이 때에 새로운 역법의 이치를 들고 나온 것이 추연이었다. 그리고 추연의 학설을 받아들인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에 오덕종시설에 따라 진나라를 수덕(水德)의 나라로 정하고 물의 색깔인 흑(黑)을 나라의 색으로 정하기도 했지만 정작 추연의 역법은 시행하지 못했고, 훗날 진을 이어받은 한나라도 추연의 역법은 시행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을《역서》가 지적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에서 볼 때 추연의 학문은 허탄한 것만이 아니라 그 요체는 역법이 아니었을까 한다. 역법을 세우기 위해서는 천문과 기상을 비롯한 자연과학적 지식이 필수적인 만큼 추연의 학설은 과학적인 것이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진의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 유명한 분서갱유를 통해 모든 책을 불태우고 학문을 말살할 때에도 추연의 오덕종시설만은 존중하여 보존하였다. 《한서》의《율력지》편을 보면 그 때문에 "그믐이나 초하루에 달이 보이고, 상현달이나 하현달이어야 할 때 달이 둥글거나 보름달에 달이 일그러지는 등 틀린 것이 많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말하자면 달력이 맞지를 않았던 것이다.《사기》는 그것을 진나라와 한나라가 추연의 학설 중 역법을 시행할 겨를이 없었던 때문으로 적고 있다. 추연의 역법은 당대에 최고의 수준이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역법이 천문과 기상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런 자연과학에 있어서의 추연의 지식은 대단히 깊이 있는 것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추연의 오덕종시설은 아마도 천문의 관찰에서 얻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의 사람들은 아직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과 같은 태양계 외곽의 행성은 몰랐던 것으로 보이지만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오행성은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 오행성의 기운과 그 이전의 오재를 결합하여 나온 것이 오덕종시설이 아닌가 생각된다. 추연에서부터 오행은 재료의 개념에서 상호 작용하는 기운의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추연 이전의 오행은 자연 속에서 인간이 이용하는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의 재료라는 의미가 강했다. 그러나 추연의 오행은 구체적인 사물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자연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원소의 개념으로 바뀐다. 즉 다섯 가지의 기가 되는 것이다. 이 수화목금토라는 오기(五氣)가 낳는 작용이 곧 추연이 말하는 오덕(五德)이다. 추연은 오덕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불은 물을 이기지 못하므로 물이 불을 따라 일어나고, 물은 흙을 이기지 못하므로 토는 수를 따라 일어나며, 흙은 나무를 이기지 못하므로 목이 토를 따라 일어나고 나무는 쇠를 이기지 못하므로 금이 목을 따라 일어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오행의 작용은 반드시 이기는 것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누르고 그 다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덕의 전이(轉移)라고 하는데 이것이 후대에 오행의 상극(相剋)이란 개념이 되었다. 이 상극의 개념을 발전시켜 한 대의 유향(劉向)이 상생(相生)을 발견하였다. 추연은 이러한 오덕을 각 왕조에 결부시켜서 새로운 왕조의 탄생은 반드시 이 오덕의 전이에 따라서 일어난다고 말하였다. 은주 시대의 천명이라는 개념이 오덕의 전이라는 자연법칙으로 대체된 것이다. 과거의 천명사상에 비해서 오덕전이설은 상대적으로 기계적이고 자연적인 것이다. 왕조의 교체가 기계적인 순환론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추연의 학설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하나의 왕조가 쇠락하여 천하가 어지럽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면 새로운 질서를 바라는 사람이 많아지며, 새 왕조의 창업을 꿈꾸는 자들에게 이 학설은 하나의 정치적인 종교가 되었다. 그래서 진시황은 추연의 오덕전이설을 맹종하였고 진의 뒤를 이은 한나라까지 이어져 한대는 오행의 전성시대가 되었다. 『내가 선대부(先大夫) 자산(子産)에게서 들으니 '예는 하늘의 일정한 도이고 땅의 의로움이어서 백성들이 실로 본받는 바이다. 하늘의 밝음을 본받고 땅의 성품을 따라서 육기를 낳고 오행을 사용하는데 기(氣)는 오미(五味 : 신맛·짠맛·매운맛·쓴맛·단맛)가 되고, 색으로 발하여서는 오색(五色 : 청색·황색·적색·백색·흑색)이 되며 소리로 나타나서는 오성(五聲 : 궁·상·각·치·우)이 된다. 그것이 지나치면 혼란하게 되니 백성들이 그 성품을 잃는다'는 말을 들었다』 여불위는 자기의 집에 천하의 학자, 논객들을 기거하게 하고 학문을 연구하도록 했는데 여불위의 문객들이 연구한 것을 집대성한 책이 바로 《여씨춘추 십이기(十二紀)》이다.《여씨춘추》가 완성된 후에 여불위는 자기나라 전체에 "이 책의 내용 중 한 글자라도 고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겠다"는 방을 써 붙였을 만큼 여불위 문객들의 자부심이 배어있는 일대 걸작이다. 오행, 천문, 율력, 풍습과 정치적 사상을 하나의 체계로 조직해낸 집단적 저작물이다. 《여씨춘추》는 당시에 원용할 수 있는 모든 자료, 서적, 고전이 총 망라되어 연계되었다. 이 책에서부터는 음양과 오행이 결합되고 오행의 분배가 더욱 세밀하게 이루어짐을 볼 수 있고 이 학설은 그대로《예기(禮記)》와 《회남자(淮南子)》에 계승되었다. 원문의 일부를 살펴보면 이와 같다. 『초봄의 달은 ‥‥‥그것에 해당하는 날은 갑을(甲乙)이고, 그것의 제왕은 태호(太 )이며, 그 것의 신(神)은 구망(句芒)이고, 그것의 벌레는 비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의 소리는 각(角)이고‥‥‥그것의 맛은 시고, 그것의 냄새는 누린내이고, 그것의 제사는 문에다 지내고, 제사할 때에는 비장(脾臟)을 앞에다 둔다. ‥‥‥천자는 청양(靑陽 : 明堂)의 왼쪽 방에 거한다. 푸른 준마를 타고, 푸른 깃발을 내걸고, 푸른 옷을 입고, 푸른 옥을 차며, 보리와 양을 먹는다‥‥‥』 사시(四時 : 4계절)를 오행에 배분하여 봄을 목(木), 여름을 화(火), 가을은 금(金), 겨울은 수(水)라고 정하고 남는 토(土)는 오곡이 익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 두었다. 신화시대에 오관의 직책에 있었던 사람으로 기록에 남아있는 이는 소호씨의 네 아우들과 전욱씨의 아들, 그리고 공공씨(共工氏)의 아들이다. 소호씨의 네 아우들이 구망과 욕수와 현명의 직을 맡았고, 전욱씨의 아들인 이( )가 축융을, 공공씨의 아들인 구룡(句龍)이 후토의 직을 맡았다고 한다. 이 중 구룡이 사신(社神 : 토지의 신)이 되었고 직신(稷神 : 곡식의 신)이 된 열산씨(列山氏)의 아들 주(柱)와 함께 사직(社稷)으로 받들어졌다. '종묘사직(宗廟社稷)'의 사직은 이와 같이 토지와 곡식의 신을 의미한다. 이처럼 '수화목금토'라는 오재(五材)의 개념은 중국의 신화시대에까지 이를 만큼 오래된 것이다. 이런 오재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우주자연의 기운으로 해석되고 그 변화의 법칙이 세밀해지는 것은 추연의 오덕종시설부터이며 추연의 영향을 받은 직하학사들과 여불위의 문객들이었고, 그 곳에서 나온 저작들이《춘추좌씨전》과《여씨춘추》,《황제내경》그리고 한 대 최고의 유학자라 불리웠던 동중서가 찬한《춘추번로》등이다. 이와 같이 음양오행설이 유가의 주류가 되어버린 전국시대 말기에는 벌써 오행의 기운이 인간세상의 정치적 변동과 전쟁의 승패에도 영향을 미치는 실제적인 법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춘추좌씨전》의 《소공 31년》에는 채묵이 조간자에게 6년 후에 벌어질 오나라와 초나라의 전쟁의 결과를 예언하면서 초나라는 화(火)이고 오나라는 금(金)인데 쇠가 불을 이기지 못하므로 오나라는 초나라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같은 책《애공(哀公) 9년》에는 진(晉)나라의 조앙이 송나라와의 전쟁과 제나라의 침입을 받은 정나라를 구원하는 일로 점을 치니, 『‥‥‥조앙의 이름은 수(水)에 속하는 이름이며 송나라 왕의 성인 자(子)도 수(水)에 속한 성씨여서 서로 필적하므로 송나라와의 싸움은 이롭지 못하며, 제나라는 불을 제사하는 염제(炎帝)의 후예인 강(姜)씨이므로 제나라를 공벌(攻罰)하는 것은 이롭다』는 점괘가 나왔다고 한다. 수(水)가 화(火)로 나아가는 형세라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에 대한 예측에도 오행의 상극 개념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공 수련으로 단련할 수 있는 기운은 외기(外氣 ; Cosmic Energy)와 내기(內氣 ; Bio Energy)의 두 가지가 있다. 지금까지 설명해 온 태양계나 북두칠성의 기운 등은 대표적인 외기이다. 이 책의 목적을 파동의 교감을 통한 세계의 이해에 두었으므로 외기 위주의 설명으로 흐른 면이 있음이 사실이다. 기공 수련을 목적으로 한다면 두 가지 방향의 설명이 되었을 것이다.
내단술의 우선적인 목표는 정(情)을 충실히 하고 기(氣)를 응집하며 신(神)을 밝게 하여 단(丹)을 만드는 것이다. 단이란 정기신(精氣神)의 총체적인 결정체이다. 단을 만느는 것을 연단(煙丹)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단을 굽는다는 것이다. 굽는 불의 힘은 바로 의식이다. 그래서 내단술은 의식의 강화된 힘으로 정기신(精氣神)을 구워 단을 제련해내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의수 단전(意守丹田)이라 한다.
다음의 경지가 바로 우주와의 합일, 즉 도교의 최종 목적지인 환허합도(還虛合道)의 경지가 된다. 이런 내단술은 고도로 집중된 의식의 힘을 동원하여 이루어진다.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여야 하고 운기시에는 기운의 흐름에 정신을 모아야 한다. 의식을 휴지상태로 낮추는 명상과는 반대로 의식의 강화를 요구한다.
노자의《도덕경(道德經)》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수행의 근본이 바로 이것이다. 흐르는 물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야말로 최상의 수행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이 장에서 설명할 파동 감각의 훈련 방법은 어떤 나라나 특정 유파의 고유한 기공법이 아니라 지금까지 설명해 온 파동적 세계와의 교감을 위한 실제적인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어떤 유파, 어떤 형태의 기공을 하는 사람이거나 또는 전문적인 기공 수련을 하지 않는 보통의 사람에게도 모두 적용이 가능한 기공 수련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면 되겠다. 즉 한 유파의 고유한 기공법도 아니고 특정한 기공의 교본도 아니다.
몸을 바로 하여 바닥에 앉는 자세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입안의 상태다. 입술은 가볍게 닫되 입술 속에서 이빨은 약간 힘없이 열어놓고 혀끝을 입천장에 가볍게 댄다. 이렇게 하면 혀가 두개부의 기운을 턱과 그 아래로 연결해주는 교량의 역할을 해서 아래 위 기의 흐름에 도움이 된다.
두 손은 그림에서 보듯이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양쪽 무릎 위에 가만히 올려놓고 눈을 감는다. 이것으로서 자세에 대한 안내는 끝이다.
그 다음 할 일은 온몸의 힘을 하나 남김없이 빼는 것이다. 몸에 한군데라도 힘이 들어가거나 긴장된 곳이 있으면 그곳의 긴장감이 의식의 긴장으로 이어져 명상에 지장을 주는 원인이 되므로 몸 전체에 걸쳐 힘이란 힘은 완전히 빼고 착 가라앉은 기분이 되도록 한다. 이때 힘을 넣어서 똑바로 세워놓은 등허리가 힘을 빼면 퉁 내려앉으면서 굽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등허리는 똑바로 펴야 한다. 척추에 힘을 빼고 어떻게 세워둘 수 있느냐고 항변할 지도 모르지만 그게 가능해져야 한다.
일단 가부좌나 반가부좌로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 있어야 하고 또 똑바른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몸의 긴장을 완전히 풀 수 있으면 수련의 반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숨을 쉬는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가르쳐줄 필요가 전혀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숨쉬는 방법이다. 호흡은 그 사람의 건강상태와 체질에 따라 인체가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알아서 쉬고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공력이 높아진 다음에는 조식법이나 만트라식과 같은 전문적인 호흡법의 수련이 필요해 지겠지만 여기서는 몰라도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자세를 바로 하여 앉았고, 몸의 힘을 빼고 긴장도 풀었고, 호흡도 편해졌다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연히 생각을 할 차례이다. 앉아서 눈을 감고 할 수 있는 일이 생각하는 일 외에는 달리 있을 것이 없다.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면 좋을까가 문제다.
여기서 우리가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감고 앉은 목적을 상기해보자. 파동의 감각을 체험해보자는 것이 목적이며 기감(氣感)을 깨워서 파동적 세계와 교감하고 우주 전체와의 합일됨을 느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제일 느껴보기 쉬운 파동을 가진 대상을 하나 정해서 상념 속에서 그것의 파동을 불러보면 되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아직까지도 이 말이 실감나게 들리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믿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의심은 일단 접어두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그대로 해보기를 권한다.
앞에서 '자신이 가야산 위에 앉아 있고 머리 위에 목성이 있다'는 상념을 가지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보통 사람들의 상념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다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상념의 방향은 '나는 가야산이며 내가 바로 목성이다. 나의 기운을 손과 머리에서 느껴보겠다'는 것이다. 가야산과 목성의 기운을 내가 느끼는 것은 나라는 인간이 가야산이라는 산의 기운을 느끼고 목성이라는 별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북두칠성의 예를 들어보자. 북두칠성은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운 별의 거리가 100광년 정도이고 먼 것은 200광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일곱 개의 별이다. 지금 내가 북두칠성의 기운을 부르고 그것이 광속으로 나에게로 달려온다면 나는 그것을 빨라도 100년이 지난 후라야 받게 될 것이다. 물론 100년 후에 내가 살아있다면 말이다. 이것은 어불성설이며 파동의 교감은 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부르지 않아도, 찾기 전에도 이미 나는 가야산이며 목성이며 북두칠성이며 우주 그 자체이다. 때문에 파동으로서 나는 온 우주와 항시 닿아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어떤 대상의 것이던지 파동은 부르면 즉시 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념'은 한번 방향을 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가야산과 목성을 마음속으로 연상하였으면 그것으로 우주는 이미 알아들은 것이다. 혹시라도 가야산이나 목성이 듣지 못했을까봐 계속 염불하듯이 '가야산, 목성'을 되풀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때에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자기가 부른 대상의 파동이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바닥으로 느껴질 거라고 설명을 하면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기 손에 신경을 쓴다. 의식이 계속 손바닥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을 멍한 상태로 두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의 감각이란 것에 집중하게 만든다.
손의 기감이 깨어나게 되면 그 다음은 머리의 감각을 깨울 차례이다. 이것은 쉽게 되는 일이다. 손에 파동의 감각이 오면 '이 기운을 머리로 보낸다'고 상념 속에서 한번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순간 머리 부근에 이상한 기운이 확 올라오는 것을 알 것이다.
손에 감지된 파동의 기운이 단지 '머리'하고 생각하는 순간 머리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파동은 의식의 명령을 즉각 수행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것이다. 몸의 어디에서 느껴진 파동이던 그것은 의식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가 있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우주 속의 모든 범주 내에서는 파동의 이동이 가능하다. 나의 가족이나 친지들 또는 이웃 사람이나, 눈앞에 있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이나, 한국에 있는 사람이나 미국에 있는 사람이나 간에 내가 그를 나라고 생각하면 파동적 차원에서는 하나의 몸이다. 그래서 내 의식이 원하기만 하면 어떤 파동이던지 그에게로 보낼 수 있다.
기로서 확인할 수 있는 세계의 전일성(全一性과)과 비국소적(非局所的)인 통합성은 소수의 사람만이 체험 가능한 신비적 영역이나 특수한 능력을 전제로 요구하는 비범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력의 존재처럼 분명하고 확실한 세계의 법칙인 것이다.
그토록 강력한 기운들인데도 우리가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의 감각이 둔한 채로 지내왔는가를 말해준다. 만약 칠성의 기운을 쉽게 감지할 수가 없다면 그건 바로 자기의 감각이 무디고 어두운 탓이므로 태양계의 기운을 상대로 좀더 수련을 하면 된다.
어느 날부터 북두칠성 기운과의 교감이 되게 되면 당신의 파동과 상념의 차원은 대단히 높아진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때에 당신 자신의 변화를 한번 돌아 보라. 품성과 성격이 수련하기 전에 비해서 상당히 달라졌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북두칠성의 기운과 교감해서 그 파동을 감지할 수 있다는 자체가 영성과 의식이 그만큼 밝아진 증거이며 그것은 성격이나 성품의 변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보다 온유하고 부드러운 덕이 자신의 내부에 쌓였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북두칠성을 넘어 먼 우주의 은하계로 파동의 안테나를 돌려 보라. 안드로메다나 시리우스 성좌나 밤하늘에 보이는 많은 별자리들을 파동으로서 탐색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은 천문학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은하계를 벗어나서 우주의 까마득한 중심부에까지 상념의 나래를 펴보면 그곳에서 울려나오는 태초의 소리, 그 심원하고 아득한 우주의 파동을 만나게 될 것이다.
교감할 수 있는 파동의 차원을 한 단계씩 높여나가는 동안에 접했던 고귀한 파동들과의 만남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것은 내부에 쌓여서 공력이라는 것을 이루게 된다. 명상도 보다 심층적이고 초월적인 단계에 이르게 된다.
기 수련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자기가 완전한 파동체가 되어버린 것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물질적 존재인 몸의 파동화는 의식의 각성에 반비례한다. 의식이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깊이 가라앉을수록 몸은 조금씩 파동으로 변해간다.
그런 능력은 처음에는 일시적이다가 수련이 반복되어 같은 경지에 여러 번 몰입하게 되면 일상적인 능력이 되기도 한다. 이 때쯤이면 또 한가지 놀라운 일이 생긴다. 자신의 기운이 다른 사람의 질병을 낫게 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마음을 편히 하고 상념을 갖고 등등 꽤 복잡한 내면적인 준비와 절차를 거쳐 명상에 들어간지 한참의 시간이 걸려야 파동의 감각이 오던 것이 나중에는 사전 준비나 절차가 전혀 필요 없이 명상을 하지 않아도 눈을 뜨고도 우주적인 기운을 언제나 몸에 감고 다니게 된다. 그냥 마음속으로 '기!'하면 벌써 손에 기운이 올라온다. 그것을 밀어내면 밀려나간다.
기(氣)는 전기(電氣)가 발명되기 수 천년 전부터 오늘날의 전기보다 더욱 생활에 밀접하게 이용되어 온 것이다. 적어도 동양에 있어서는 기와 음양오행을 빼고는 문화, 학문, 의학, 건축, 예술을 막론하고 인간 생활의 어느 것도 성립되지 않을 정도이다.
기를 다시 찾는 것은 건강을 되찾는 것이다. 옛날에 인기가 있었던 텔레비전의 외화 중에 '6백만 불의 사나이'라는 것이 있었다. 사고로 크게 다친 남자의 팔다리와 눈을 6백만 불 어치의 기계장치로 바꾸어서 무적의 사나이로 활약하게 만든다는 공상적 이야기였다. 그런데 우리는 기를 이용함으로서 누구나 '6백만 불의 사나이'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생활 속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기와 음양오행의 모습에 대해서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선입관을 갖기 쉽다. 그러나 그것들이야말로 파동적 세계의 법칙을 알고 살았던 선조들의 지혜로운 모습임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는 이제 기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또 우주의 기운을 우리의 것으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진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공 치료란 기공사(氣功士)가 환자의 몸에 기를 투사하여 질병을 치유하는 것인데, 중국과 미국 등 몇몇 나라에서는 대체의학(代替醫學)의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고, 특히 중국에서는 기공 치료도 질병에 대한 전문화가 이루어져 암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항암기공(抗癌氣功)이 기공의 한 분야로 독립되어 있기도 하다.
기공을 병의 치료에 이용한 것은 약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양진(兩晉) 남북조 시대의 도사(導師)이며 의사였던 갈홍(葛洪)이 남긴 《포박자(捕朴子)》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복약(服藥)도 장생(長生)의 기본이 되지만 거기에 기를 운행시키는 행기법(行氣法)이 병용되면 신속한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약을 먹지 않더라도 행기법만으로 그 요령을 터득할 수만 있다면 능히 수백 세를 살 수 있다.
『양생의 진수를 잘 파악하여 행기하고 조석으로 도인(導引)하여 영양과 위기(衛氣)가 움직이게 된다면 능히 병에 걸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잡응편(雜應篇)》』
『애초부터 도인법을 시행한다면 질병이 완치되고 조화롭지 못한 기가 서로 통하여 움직임으로써 체내의 중요한 부위에 기가 원할하게 흐르게 된다. 《 거혹권( 惑卷)》』
또 도홍경(陶弘景)이 남긴《양성연명록(養性延命錄)》에는, 『만일 행기하여 백병(百病)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그 통증을 느끼는 부위가 어디에 있던 바로 그 부위에 마음을 두라. 머리가 아프면 의식을 머리에 집중하고, 발에 퉁증이 있으면 정신을 발에 집중하여 기를 이끌어 그 곳에 이르도록 함으로써 통소(痛所)를 공격토록 한다』 고 쓰고 있다.
약이나 침술에 의존하지 않고 단지 기를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에게 기를 전하여 치료하는 '전기 치료법(傳氣治療法)은 화타와 편작의 시대에 이미 통용되고 있었다.
위의《포박자》나《양성연명록》의 내용은 자기 운공(自己運功)을 통해 스스로 치료를 하는 것이지만 접장전기(接掌傳氣 ; 손바닥을 대고 기를 전해주는 것)와 같이 기의 투사로 타인을 치료했던 기록도 남아서 전하고 있다.
한때 세간에서 보기 힘들었던 기공 치료는 1954년에 중국의 유귀진이란 인물이 '당산기공요양원(唐山氣功療養院)을 설립한 것을 전기로 부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내에도 자생적인 기공 단체들이 내부적으로 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교 수립 후에 중국 출신의 기공사들이 주로 국내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공사 자격증도 중국에서 받은 것이라야 인정을 받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우선 기공사가 투사하는 기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첫 째는 기공사 자신의 내기(內氣 ; Bio Energy)이고 다른 하나는 외기(外氣 ; Cosmic Energy)이다. 현대 기공 치료의 대부분은 유감스럽게도 내기에 의한 치료가 주를 이루고 있다. 즉 기공사 자신의 기운을 환자에게 주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공사들의 대부분이 내단술 계통의 기공을 한 사람들이고 외기를 오행에 따라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어서 환자와 질병에 맞는 기운을 선별해서 주는 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비유를 들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행의 원기는 몸 속에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인체의 파동과 조율을 하면서 자기한테 맞는 기운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그러나 남의 몸에 한번 맞추어진 내기(內氣)는 환자의 인체 파동과 맞지 않을 수가 있고, 오히려 해가 되는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단술로 연마한 내기를 환자에게 주게 되면 기공사 자신도 기운이 쇠하게 되고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30분 정도의 기공 치료를 하고도 안색이 창백해지고 피로를 보이는 기공사들도 볼 수 있다.
기를 건강에 이용하는 것은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자기 스스로 기공을 수련해서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외단(外丹)에 의지하는 것이다. 외단이란 약이나 먹거리 또는 기를 방사하는 물질을 말한다. 근자에 유행하고 있는 황토나 게르마늄이나 옥이나 자기침대, 맥반석 같은 것을 포함해서 흔히 에너지 제품, 바이오 제품, 기 제품 등으로 불리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는 기공사가 유리나 세라믹 구리 등에 기운을 집어넣어서 만드는 기공 제품들도 있다.
우리 나라는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자원빈국(資源貧國)에 들어간다. 그러나 기(氣)라는 것은 중국과 더불어 그것을 이용해온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선천적인 자질로서 가지고 있는 기공의 능력 면에서는 세계 제일의 민족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번 세기에 인류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요인으로 꼽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터넷(Internet)'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의 혁명이며, 또 하나는 생명의 기원과 비밀을 과학적으로 풀어줄 '유전공학(遺傳工學)'의 발달이다. 마지막 하나가 바로 기(氣)로 상징되는 '신과학(新科學)'이다. 나는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인류 혁명의 요인은 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미래는 입자적이고 물리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파동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지금 그 길목에 서 있는 것이다.
기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수련이나 치료술만이 아니라 인류 사회에 또 한번의 산업혁명을 가져올 무한정한 자원으로서 사용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미 미국, 서독을 비롯한 산업 선진국들은 다투다시피 기의 연구에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하고 있으며 매년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기가 산업 자원 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마지막 에너지 자원일 수 있다는 자각을 하게된 때문이다. 바로 그렇다. 기는 바로 에너지이며 자원이다. 인류의 네 번째 불인 것이다.
기를 우리가 잘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농사의 혁명을 불러올 수 있고, 축산과 식품, 의류공업 등 모든 산업 전반에 걸쳐 이용되지 못할 분야가 없는 것이다. 기공 농법(氣功農法), 기공 축산(氣功畜産), 기공 발효(氣功醱酵), 기공 의료(氣功醫療), 기공 생산(氣功生産)과 같은 말은 과거 산업 시대의 대량생산이나 분업이란 말처럼 흔히 들릴 것이다. 기 섬유(氣纖維), 기 식품(氣食品), 기 음료(氣飮料), 기 금속(氣金屬), 기 광물(氣 鑛物), 기 세라믹 등이 프라스틱이나 나일론처럼 일상 생활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기는 무한한 자원이며,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이며,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물질이며, 채굴에 비용이 들지 않는 보물인 것이다. 기라는 자원의 최대 보유국은 기술 선진국이나 영토를 크게 가진 나라가 아니라 신선 같은 밝은 심성과 수련문화를 가진 민족이 될 것이다. 누구이겠는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21세기는 한민족 영광의 시대가 될 것이다.
기(氣)라는 것이 언제 발견되었으며 그것을 수련하는 호흡과 운기, 행공의 법칙을 누가 언제 세웠는지는 분명치가 않다. 문헌적으로 보면《황제내경(黃帝內徑)》에서부터 기라는 글자가 오늘날의 의미로 쓰이고 있고, 우리 나라의 경우 옛 환단 시대의 가르침이라는《삼일신고(三一神誥)》에 기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되어 있다.《삼일신고》는 인간을 심기신(心氣神)의 세 가지 요소의 총화로 보고 있는데《황제내경》은 정기신(精氣神)을 사용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환인과 환웅 시절부터 단군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은 삼법(三法)이라는 수행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이 그것인데 상세한 설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글 뜻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지감(止感)이란 느낌을 중지한다는 것이니 의식을 이완시키는 오늘날의 명상법이 아니었나 싶다. 조식(調息)은 말 그대로 호흡을 고른다는 것이니 호흡법으로 생각되어 진다
동양의 정신 문화라는 거대한 탁자를 떠받치고 있는 네 다리는 한국과 중국과 인도와 티베트로 볼 수 있다. 네 나라의 정신사상계에 공통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불교이며 한국과 중국은 유교와 도교의 유산을 공유한 바 있지만 유불선(儒彿仙)을 모두 포괄하고 영향력에 있어서 그 셋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하나의 사상 체계로 통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도와 티베트는 불교 이전에 이미 성자 크리슈나가 있었고《우파니샤드》,《바가받기타》,《브라마 수트라》등의 유산이 있었다. 불교와 브라만교와 요가와 명상수행이 교묘하게 혼재된 인도와 티베트는 고유한 수행법을 갖고 있으며 근세에 구루뎁과 마하리쉬로 이어져 인도식 명상이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중국과 한국의 경우를 보면, 유불선의 씨앗이 우리 민족으로부터 발아한 것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여러 증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이 전승된 곳은 중국이며 선도(仙道) 역시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겨 버린 감을 지울 수 없다. 동이족이 세운 하은(夏殷)의 환역(桓易)과 문자는 최초의 한족(漢族) 국가인 주나라에 이어져 주역(周易)과 한자(漢字)로 둔갑하여 고스란히 중국의 것이 되어 버렸고 역시 동이족의 주무대였던 산동 지방에서 싹튼 황노학(黃老學-황제와 노장의 학문) 마저도 중국의 문화로서 전승되어 버렸다. 동이족의 정신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황노학이 황제 의학(黃帝醫學)과 도교(道敎)라는 것으로서 고구려에 역수입되기에 이른 것이다.
황제(黃帝)는 고대에 아시아 전역을 지배하고 있던 동이족의 국가인 신시 배달국(神市倍達國)의 14대 군왕인 치우 천황(蚩尤天皇)에게 반역하여 여러 차례 싸운 끝에 한족(漢族)의 무리와 함께 지나(支那)를 독립시킨 인물이라고 우리의 옛 사서(史書)에는 적혀 있고, 중국 측의 전설로는 천지개벽 이후에 하늘을 3만6천5백 개의 기둥으로 떠받쳐 하늘과 땅을 만든 여와씨(女蝸氏)와 남매지간이며 팔괘(八卦)와 문자(文字)를 만든 복희씨(伏羲氏)가 세상을 처음 만든 뒤에 염제(炎帝) 신농(神農)이 농사법을 가르쳤으며 다시 수백 년 뒤에 나타나 의술(醫術)을 가르치고 동이족의 치우와 전쟁을 해서 그를 사로잡아 죽이고 중국을 세운 이가 황제라고 한다.
이와 같이 중국의 기공은 크게 외단과 내단으로 나눌 수 있고 내단은 다시 동공과 정공으로 구분된다. 외단은 동의학의 본초학(本草學)으로 발전의 맥이 이어졌고 내단은 도교의 도사들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전수되었다.
어쨌거나 황제는 동양에서 의학의 신이며, 환인과 환웅을 빼고는 선도선법(先道仙法)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다. 광성자와 황제의 뒤를 이어 1,100살을 살았다는 자하선인(紫霞仙人)과 980살을 살았다는 팽조(彭祖) 같은 신인(神人)들이 역시 전설의 시대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은 전설과 기담(奇談)이 뒤섞인 선도와 의술의 시작에서부터 비조(鼻祖)라 할 수 있는 황제가 기(氣)를 우주 만물의 본체로 보고 인체를 소우주로 두어 의술의 요체로서 기를 말함으로서 그 후의 기공과 의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일란성 쌍둥이로서의 운명을 걸어오게 된 것이다.
전국시대에 노자 사상이 황제와 결합되고 최초의 선도 수행법인 장자가 이에 더해지면서 중국의 동북부 지방에서 일어난 황노학(黃老學)은 진(秦), 한(漢) 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어 기와 음양오행설이 학문의 주류를 이루었다. 후한(後漢) 시대에 와서 천기진인(天機眞人)이란 선인(仙人)이 나와 제갈공명(諸葛孔明)과 우길(于吉)이란 뛰어난 제자를 가르쳤다. 공명은 유현덕의 군사(軍師)로 들어가 촉(蜀)의 재상이 되어 한 왕실의 부흥을 위해 애쓰다가 죽었으며 우길은 오(吳)나라의 왕이 되는 손권의 형인 손책에게 시기와 의심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만다.
후한시대와 양진(兩晉) 남북조 시대를 거쳐 도교는 중국 민중의 호응 속에 광범위한 세력을 갖게 되었는데 이 시대의 유명한 도사로는《포박자(抱朴子)》를 쓴 의학자 갈홍(葛洪)과 왕숙화(王叔和), 왕빙(王氷), 남북조 시대의 도홍경(陶弘景) 등이 있다. 특히 갈홍은 화타의 도인 기공을 정리하고 의술과 신선의 도를 실천한 인물로서 포박자는 그의 도호(道號)인 동시에 저서의 제목이다.
기공의 역사와 발전 과정 2
화타의 도인 양생법의 집대성과 총정리는 수(隨)나라 때의 의사 소원방(巢元方)에서 이루어지데 그는 그때까지의 모든 도인법과 토납법(吐納法)을 망라하여《제병원후론(諸病源侯論)》이란 뛰어난 의학서에 담았다. 이어 당(唐)나라의 손사막(孫思邈)은《비급천금방(備急千金方)》이란 저서에서 여러 조식법의 이론을 완성하는 업적을 남겼다.
이렇게 수많은 도사와 명의, 학자들이 줄지어 배출되는 가운데 전성기를 맞은 중국의 도교는 수(隨)나라 때에 고구려에 도사들을 보내어 이를 전하게 된다. 환단의 가르침이 황제를 거쳐 중국에서 뿌리를 내린 다음에 이 땅에 다시 역수입되기에 이른 것이다. 고구려에 들어온 도교는 국가의 장려와 보호 속에 곧 번창하였고 기록에 남은 고구려의 선인으로는 정령위(丁令威)와 함박우라는 사람이 있다.
作仙千載今來歸(작선천재 금래귀) 천년만에 오늘 내가 돌아와 보니
城郭如古人民非(성곽여고 인민비) 성곽은 예와 다름없건만 사람은 같지가 않으니
何不學仙塚 (하불학선 총류류) 어찌 선도를 아니 배워 무덤만 총총하단 말이냐
이러한 한국 선도의 맥은 동학을 창시한 수운(水雲)의 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선도가 종교로서가 아니라 기공 수련의 형태로서 대중 앞에 출현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몇몇 현대 한국 기공의 창시자들이 노력한 결과 최근 이삼십 년 사이에 수련 문화의 대중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민간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도교와 의학의 양쪽에서 선도의 맥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당(唐)나라 시대에는 종리권(鍾離權)이란 신선(神仙)이 있어서 수백 살을 살았다고 하는데 측천무후(則天武后) 시대의 유명한 선인인 여동빈의 스승이다. 여동빈은 나중에 중인환시(衆人環視) 속에 백일 승천하였던 사람이다. 훗날 송(宋), 원(元), 청(淸)의 여러 시대에 다시 출현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중국 도가(道家)의 선인들 중에는 여동빈 말고도 후대에 다시 나타난 사람이 여럿 있는데 태극권을 창시한 장삼봉도 죽은 다음에 원말청초(元末淸初)에 다시 나타나 이함허(李涵虛)라는 유명한 선인에게 선도를 가르쳤다고 한다.
근세에 있었던 일로는 도교의 도사인 항원길(黃元吉)이 청나라 광서제(光緖帝) 10년(1883년)에 도장경(道藏經)을 봉독하는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6백세의 나이로 우화등선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 선도의 한 유파인 청성파(靑城派)의 조사(祖師)인 이팔백(李八百)은 8백살의 나이로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전하는 데 진위는 확인할 길이 없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54년에 '당산기공요양원'을 설립한 유귀진이란 인물이 전래의 양생법과 기공을 집대성하고 정리하여 현대 중국 기공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그후 문화대혁명의 암흑기를 거쳐 곽림(郭林)의 항암기공(抗癌氣功)이 70년대 후반에 나왔고
음양의 개념과 오행의 법칙이 처음부터 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음양과 오행의 결합시기와 과정에 대해서도 학자들간에 이론(異論)이 존재한다. 우선 문헌적으로 음양과 오행의 기원을 살펴보면 음(陰)이란 글자와 양(陽)이란 글자는《시경(詩經)》과《서경(書經)》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 있어서 문자의 역사는 은나라의 유적에서 나온 갑골문(胛骨文)에서 시작되어 공자가 '옛 글을 보니...'하고 말할 때의 문자인 은(殷)시대의 전경들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시경》과《서경》인데 물론 이 책들은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후에 복원되는 과정에서 많은 가필과 개작이 있었으므로 원전과는 내용이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어쨌건 오행(五行)이란 말이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상서(尙書)》의《감서(甘誓)》편이다.
《감서》의 다음으로 오행이 나오는 책은《서경》의 한편인《홍범(洪範)》이다.《홍범》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한 다음에 은나라의 귀족이었던 기자(箕子)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천도를 묻고 기자가 답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때 기자가 무왕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요체로서 전해준 것이 하늘이 우왕에게 내려주었다는 대법(大法)인 '홍범구주(洪範九疇)'였다고 한다.
《홍범》은 아홉 가지 조목으로 되어 있어서 구주라고 하는데 그 구주의 첫 번째가 바로 오행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조목으로 삼아서 구주 중에 유일하게 오행만이 용처(用處)가 없다. 구주는 다음과 같다.
2. 공경히 행하는데 : 오사(五事-태도와 말하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
3. 농사에 쓰는 : 팔정(八政)
4. 협력하는데 쓰는 : 오기(五紀-세(歲),일(日),월(月),성신(星辰),역수(歷數))
5. 인극을 세우는 : 황극(皇極)
6. 치도를 세우는 : 삼덕(三德)
7. 의혹을 분별하는 : 계의(啓意)
8. 생각하는데 : 서징(瑞徵-비오는 것, 맑은 것, 따뜻한 것, 추운 것, 바람 부는 것)
9. 선을 권하는 : 오복(五福), 악을 벌하는 : 육극(六剋)
《홍범》의 본문에 『옛날에 곤( )이 둑을 막아 홍수를 다스리려고 하므로 오행이 어지러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상제가 노하여 홍범구주를 주지 않으므로 상도가 베풀어지지 않았다. 곤이 죽은 이후에 우왕이 그의 사업을 대신하니 하늘이 우왕에게 홍범구주를 주셨으며 이때부터 상도가 다시 베풀어지게 되었다』는 대목이 있다.
이에서 볼 때 아마 곤이란 왕은 치수(治水)를 우격다짐으로 무리하게 하지 않았나 싶고 반면에 우왕은 현명하고 합리적인 홍수대책을 편 것으로 보인다. 오행설의 기원이《홍범》이고 홍범구주의 근본을 오행이라고 볼 때 오행은 바로 '상도를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홍범》에는 오행을 근본으로 삼아 첫 번째 조목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나머지 여덟 가지의 조목은 다섯으로 나누지 않았다.
《홍범》에서 다섯으로 나눈 것은 오행(五行), 오사(五事), 오기(五紀), 오복(五福), 서징(瑞徵)의 다섯 가지이고 팔정(八政), 삼덕(三德), 황극(皇極), 육극(六剋) 등은 다섯이 아닌 수로 이루어진 것이다.《홍범》당시만 해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다섯으로 나누어 오행에 집어넣는다는 관념은 희박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런 오행배정이 유행했던 것은 훗날의 진한시대이다.
오행에 다섯 가지의 맛을 각기 대응시킨 당시의 논리는《상서정의(尙書正義)》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물의 정의는 본래 단 것이지만 오랫동안 땅 속에 젖어들어 있으면 변하여 소금이 된다. 소금의 맛은 짜다. 불의 성질은 위로 타오르는 것인데 물건을 태우면 탄내가 난다. 탄내는 쓴 기운이다.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그 맛은 대개 시다. 쇠가 불에 녹을 때는 비릿한 냄새가 난다. 그 맛이 매운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매운 맛의 기운이 금이다. 단 맛은 모든 곡식에서 나온다. 곡식은 땅이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맛이 토의 맛이 된다.』
체계화된 학설로서의 오행설을 처음 주창한 사람은 전국시대의 추연(騶衍)이다. 추자(騶子)라고도 부르는 이 사람이 주장한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에서부터 오행설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추자의 오덕종시설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당시의 학계와 문화 사조를 일람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공자와 추자가 살았던 춘추전국 시대의 학문과 문화의 판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덕종시설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분포의 연대순으로 볼 때 채도문화는 중앙아시아에서 발원된 것이며 천산 남쪽의 교통로를 통해서 중국의 중부와 남부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채도 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3000 년-4000년경으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서방에서 전래된 문화이다.
음양오행설의 발전 과정 2
사기(史記)》의 기록에 황제가 치우에게 패하였을 때 서역 땅의 천모(天母)로부터 지남거(指南車)와 비책(秘策)을 전해 받은 후에 싸워 이겼다는 그 서방문화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기원전 3000년경 신석기 시대의 중국은 미개한 땅이었고 그 서쪽의 파미르고원 일대의 중앙 아시아가 더 발달한 문명지였던 것이다. 서방으로부터 전래된 채도 문화를 받아들인 중국이 하, 상, 은나라를 거치면서 고대국가를 이루어 독자적인 문명권을 형성하였고 이 문명이 동북으로 전해졌다는 것이 역사학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은허의 발굴 작업의 결과로 아시아의 상고사는 전혀 다른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된 채도문화의 위층을 덮어씌운 또 다른 문화가 대규모로 발견된 것이다. 그러니까 채도 문화와 대략 1천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후기 문화층이 발견된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흑색도기문화라 한다. 이 흑도 문화는 고고학적 흐름을 추적해 볼 때 그 발원지가 중국의 동북부 지방임이 증명되었다. 이것이 가장 대규모로 발굴되어 흑도 문화의 발원지로 밝혀진 곳이 바로 산동성 제남의 동남방인 성자애(城子崖)란 곳이다.
《염철론》에 기록하기를, "추연은 후세의 유가와 묵가들이 천지의 광활함과 밝고 넓은 도를 알지 못하고 일면만을 들어 모든 것을 말하려고 하며, 한 곳에 집착하면서도 세상 모두를 알려고 하는 것을 근심하였다. 그는 그것을 마치 수준기가 없으면서 높낮이를 알려고 하고, 규구(規矩)가 없으면서도 방원(方圓)을 알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일로 보았다"고 하였다.
추연은《추자(騶子) 49편》과《추자종시(騶子終始) 56편》등 10만 자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고 하는데 후대에 전해지지는 않고,《한서 예문지》와《사기 맹자순경열전》등에 단편적으로 그의 학설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맹자순경열전》은 추연과 오덕종시설에 관한 글이 절반을 넘는다. 같은 책에서 말하기를『추연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점점 더 음란, 사치해져서 덕을 숭상하지 않고,《시경 대아편》에서처럼 자신을 먼저 깨끗이 하여 일반 백성들을 감화시키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음양의 소식을 깊이 관찰하여 괴이하고 우활한 학설을 만들어내고《종시(終始)》,《대성(大聖)》등 십여만언의 저작을 저술하였다. 그 말은 심오하고 원대하여 이해할 수 없었으나 반드시 먼저 작은 사물에서 징험하고 그 결론을 유추, 확대하여 무한한 곳까지 도달하였다. 먼저 당대를 서술하고 황제(黃帝)의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학자들이 모두 서술한 것으로서 대개 시대에 따른 성쇠의 변화를 중시하는 것이었다.
추연과 그의 학설에 대한 사마천의 논조는 비판적이다. 사마천에게는 추연의 학설이 허황되고 근거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추연의 학설에서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을 포착할 수가 있다.
천하의 덕망있는 재사들을 모아서 대우하던 풍조는 제선왕(齊宣王) 대에 극성하였는데, 추연을 상대부(上大夫)로 삼아 저택과 노복을 하사하고 학문을 가르치게 한 것도 제선왕이었다. 같은 시기에 추연과 함께 나라에서 저택을 하사 받으며 학문을 한 이는 순우곤(淳于 ), 전병(田騈), 접여(接予), 신도(愼到), 환연(環淵) 등 76명에 달했다. 특히 환연은 초나라 사람인 노자의 제자로 황제학(黃帝學)과 노자의 장생술을 접목한 황노학이 제나라에서 태동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음양오행설의 발전 과정 3
추연의 저작들이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학설을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사기》를 비롯한 여러 문헌의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추연의 학설은 당시의 왕과 제후들의 큰 관심을 끌었으며 정치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사기》의 《역서》에는 또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진나라는 화기(火氣)의 나라였던 주나라를 물의 나라인 진나라가 대신한다는 뜻으로 수(水)를 숭상하여 황하의 이름까지 덕수(德水)로 바꾸었을 정도로 오덕종시설을 국정에 반영한 첫 번째 나라였다.
그런 진나라였지만 정작 천하 통일 후의 번잡함으로 말미암아 추연의 역법은 시행하지를 못하였고, 그 때문에 한나라 대에 가서도 중국의 역법은 정확한 것이 못되었다. 어쩔 수 없이 진나라의 책력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추연의 시대까지에는 아직 음양과 오행이 결합되지 않았다. 음양 사상과 오행 학설이 서로 결합되는 것은 전국시대 말에서 진초(秦初)에 이르는 시기의《춘추좌씨전》과《여씨춘추》부터이다.
《춘추좌씨전》의《소공(召公)》25년에 정나라의 자태숙(子太叔)이 진(晉)나라의 조간자(趙簡子)가 예(禮)에 대해 질문한 것에 답을 한 대목이 있다.
※자산은 공자의 선배이므로 공자 이전에도 오행설이 있었다는 근거가 될만한 대목이다.
《여씨춘추》는 진시황의 생부(生父)라고도 하는 여불위의 집에 모인 학자들이 만든 책이다. 여불위는 진시황이 진왕 정으로 아직 어릴 때에 진나라의 정사를 도맡았던 정치인이며 진시황을 사실상 키운 사람이기도 하다.
《여씨춘추》에서는 이미 오행을 일상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단순한 학문적 이론이 아니라 역과 함께 일상생활의 기준이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봄은 목(木)이고 오행상 목의 색은 청색이므로 천자의 거하는 방과 타는 말과 깃발과 옷과 옥의 색깔을 모두 푸른색으로 한다는 것이다.
《여씨춘추》로 미루어볼 때 주말진초(周末秦初)에는 오행이 상당히 분화되어 사시와 오방(五方 : 동·서·남·북·중앙)을 기본으로 하여 벌레까지도 털 있는 것과 깃털 있는 것, 껍질 있는 것과 껍질 없는 것, 그리고 비늘 있는 것의 다섯 가지 오행으로 분류하고 있다. 곡식도 메기장·찰기장·벼·보리·콩을 오곡(五穀)으로 나누었고, 가축은 말·소·양·개·돼지로 오축(五畜)으로 삼았으며, 심장·간장·폐장·비장·신장을 인체의 오장(五臟)으로 역시 오행에 대응시켰고 태호 복희(太 伏羲)와 염제 신농(炎帝神農)·황제 헌원(黃帝軒轅)·소호(小昊)·전욱( 頊)을 오제(五帝)로 삼았으며, 구망(句芒)·축융(祝融)·후토(后土)·욕수( 收)·현명(玄冥)을 다섯 신(神)으로 삼았다. 십간과 십이지지도 각각 오행의 하나에 대응시켰음은 물론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사리를 다섯 가지 종류로 나누어서 오행에 편입시키는 것이 당시의 사조였다.
위의 오제(五帝)는 중국의 신화시대에 나오는 삼황오제의 오제이다. 다섯 종류의 신은 《춘추좌씨전》의《소공 29년》의 채묵(蔡墨)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신의 이름이 아니라 신화 시대의 관직 이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춘추시대 이전의 관직이 수화목금토의 오행에 따른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목(木)의 관리 중 우두머리인 목정(木正)을 구망이라 하고 불의 관리인 화정(火正)을 축융이라 하고, 금정(金正)을 욕수, 수정(水正)을 현명, 토정(土正)을 후토라 하였는데 이들 오관(五官)이 대대로 귀한 귀신으로 제사를 받게되어 춘추시대에 이르러는 다섯의 신으로 변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연의 오덕종시설에 이어 오행의 상극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 것에는《백호통의(白虎通義)》가 있다. 책의《오행》편을 보면, "많은 것은 적은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수는 화를 이긴다. 정밀한 것은 견고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화는 금을 이긴다. 강한 것은 유약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금은 목을 이긴다. 뭉친 것은 흩어진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목은 토를 이긴다. 실한 것은 허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토는 수를 이긴다"라고 설명한다.
이에서 유추해볼 때 오행은, 물을 많으나 허한 것으로, 불을 정밀하지만 적은 것으로, 쇠를 강하고 견고한 것, 나무를 뭉쳐있지만 유약한 것으로, 흙을 실하지만 흩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물을 두 가지 성격을 아울러 가진 것으로 보고 이 두 가지 성격의 장단점에 따라 서로 상극하는 관계를 도출해낸 것이다. 때문에 '많으나 허한' 성격의 물성(物性)을 지닌 대표적인 사물로서 수(水)를 꼽은 것이고 '적지만 정밀한' 물성의 대표로 불(火)을 꼽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화목금토의 오행은 그러한 다섯 가지 이중적인 장단점을 대표하는 이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행의 토(土)를 흙이라고는 명사로만 파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흙'이 아니라 '실하지만 흩어져 있는' 성격의 기운이며 그 대표성을 지닌 이름이 토(土)인 것이다. 금(金)도 마찬가지로 쇠붙이를 뜻하는 물질의 이름이 아니라 '강하고 견고한' 성격의 기운이며 그 기운의 이름을 금(金)이라 하는 것이다. 오행이론에 대한 많은 의구심과 반론은 수화목금토를 각기 물과 불과 나무와 금속과 흙이란 명사로 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목(木)은 나무가 아니라 '뭉쳐져 있으나 유약한' 성격의 기운이다.
서로를 이기는 오행의 상극 관계에서 진일보하여 서로 돕고 낳는 상생(相生) 관계를 처음으로 설명한 것은 한대(漢代)의 유학자 동중서가 쓴《춘추번로》이다. 동중서는 맹자가 말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덕(四德)에 신(信)을 더하여 오상(五常)으로 삼고 이것을 수화목금토의 오행과 결합시킨 인물이다.《한서》의《오행지》에는 그를 가리켜 "처음으로 음양을 추론하여 유자(儒子)의 으뜸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춘추번로》의《오행지의(五行之義)》를 보면, "나무를 비벼서 불을 얻으니 불은 나무에서 나온다(木生火). 불이 사물을 태우면 재가 되니 흙은 불에서 나온다(火生土). 쇠는 흙 속에 감추어져 있으니 쇠는 흙에서 나온다(土生金). 쇠가 녹으면 쇳물이 되니 물은 쇠에서 나온다(金生水). 나무는 물을 먹고 자라므로 나무는 물에서 나온다(水生木)."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적인 감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풀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불을 기름이나 가스 등 여러 가지 재료를 통해 얻지만 고대에는 모두 나무를 통해서만 얻었으므로 불이 나무에서 나온다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불이 사물을 태운 재가 흙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구라는 행성에 토양이 형성된 과정을 보면 모든 흙은 원래 불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본시 지구라는 행성은 뜨거운 불덩이였고 선사시대 화산 활동의 결과로 토해진 불들이 굳은 것이 돌이고 그 돌이 풍화된 것이 흙이라고 할 때 흙이 불에서 나온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합치되는 이야기이다.
금속은 흙 속에 있고 그것을 채광 제련하여 얻는 것이므로 쇠가 흙에서 나온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맞는 이야기이다. 쇠를 녹인 쇳물과 물을 연결시킨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자연수는 모두 광물질이 녹아있다. 달리 말하면 금속 성분이 녹아있는 것이 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무가 흙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결국 그 이유는 물을 얻고자 함이다. 나무가 흙에서 나오지 왜 물에서 나오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오행에서의 목(木)은 넓은 의미에서의 식물성을 뜻한다. 흙이 없는 곳에도 나무는 살 수 있으나(수생식물) 물이 없는 나무는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토생목(土生木)보다는 수생목(水生木)이 이치에 맞는다.
이러한 오행의 상생론과 함께 동중서는 오행을 음양에 결합시킴으로서 비로소 음양설과 오행설이 하나가 된 '음양오행설'이 태동되었다. 같은 책《오행상생》에서 동중서는 "천지의 기는 합해지면 하나가 되고, 나누어지면 음양이 되고, 쪼개져서는 사시가 되고, 나열되어서는 오행이 된다"고 하였다.
《십지(十指)》편에서는 "수는 겨울이 되고, 토는 늦여름이 되고, 금은 가을이 되고, 화는 여름이 되고, 목은 봄이 된다"고 하여 계절을 오행에 분배하였으며 그 이유를 같은 책《천변재인(天辨在人)》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를, " 화수목금토는 각기 주관하는 바를 받들어서 음양과 어울리며, 서로 힘을 합하여 공을 함께 한다. ‥‥‥그러므로 소양(小陽)은 목에 따라 일어나서 여름의 생장을 도우며‥‥‥"라고 하여 봄을 소양(小陽), 여름을 태양(太陽), 가을을 소음(小陰), 겨울을 태음(太陰)으로 나누고 늦여름을 태양과 소음의 어울림으로 보았다. 동중서의 이론에 따르면 봄이란 계절은 소양이면서 오행상으로는 목이 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여름은 태양이면서 오행상으로는 화가 된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기운에 있어서 음양과 오행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 두 가지 기운은 힘을 합하고 공을 함께 하는 것이라 하였다. 여기서부터 음양오행설은 대단히 복잡한 체계를 가진 학설로 바뀌게 된다. 오행상 금에 해당하는 사물도 각기 음양으로 나뉘기 때문에 오행이 열로 나뉘어 지게 되고 음양도 세분하면 사상(四象 : 태양·소양·태음·소음)으로 나뉘는 것이어서 오행에 4를 곱한 스무 가지로 구분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분류가 천인감응설과 함께 동의학의 토대가 되고 그것이《황제내경》으로 집대성되었다. 음양과 오행이 결합되면서 비로소 인체가 하나의 소우주로서 설명이 가능해졌고 오장(五臟)과 오부(五腑)가 있어서 각기 오행에 해당하면서 장은 음의 장기가 되고 부는 양의 장기로 배치될 수 있게 되었다.
동중서는 음양과 오행을 통해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보다 구체화시켰으며 그에 입각하여 천인감응설을 주장하였다.
같은 책《인부천수(人副天數)》편에서는, "천지의 표징과 음양의 복사본은 항상 인간의 몸에서 나타난다. 인간의 몸은 하늘과 같다. 수(數)가 서로 어울리기 때문에 명(命)이 서로 연결된다. 하늘이 일년을 운영하는 수가 인간의 몸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큰 뼈대는 12이니 달수와 같고, 작은 뼈의 개수는 모두 366개이니 이는 날수와 같다. 몸 안에는 오장이 있고 오부가 있으니 음양과 오행에 따른 것이다‥‥‥
인간이 행하는 데에는 윤리가 있으니 천지를 본뜬 것이다."라고 하였다. 앞의《천변재인》에서도 말하기를 "봄, 여름의 양(陽)과 가을, 겨울의 음(陰)은 비단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다"
하였고, 같은 책《음양의(陰陽義)》에서는 "하늘에도 희로(喜怒)의 기가 있고 애락(愛樂)의 마음이 있으니 인간과 서로 부합한다. 같은 종류끼리 서로 합해지니 하늘과 인간은 하나이다"라고 하였으며,
《동류상동(同類相動)》편에서는 "하늘에는 음양이 있고, 사람에게도 음양이 있다. 천지의 음기가 일어나면 사람의 음기도 그에 응하여 일어난다"고 하여 동중서로부터 천인합일의 사상이 처음으로 주창되었다.
인체는 하나의 소우주이며, 하늘의 기운에 인간이 감응한다는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은 이후 2천년 동안 동양의 정치와 학문과 과학과 의술을 지배한 사상이 되었다. 수많은 학파와 다양한 학설이 쏟아져 나왔지만 동양의 모든 문화의 저변은 음양오행과 천인합일이란 두 가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