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제의 화학예찬: 화학적 맥가이버
- 장홍제 광운대학교 화학과 교수
어릴 적 TV에서 가끔 방영되던 외화 중 <맥가이버(MacGyver)*>라는 자극적인 소재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첩보원인 맥가이버가 상황마다 임기응변을 통해 주위 도구나 물질을 조합해 놀라운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과학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어린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차량 라디에이터 누출을 해결하기 위해 달걀흰자를 넣어 응고시켜 냉각수 유출을 막는 것이나, 달콤한 초콜릿을 강산화 반응시켜 끈적한 잔류물을 형성해 누출을 막는 모습, 그리고 가장 유명한 녹슨 철과 알루미늄 가루로 테르밋(thermite) 반응을 일으켜 자물쇠를 녹여내는 모습 등이 기억난다. 이들은 화학반응에 의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적당한 물질과 도구만 주어진다면 화학자는 세상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맥가이버: 맥가이버는 미국 ABC 방송국에서 1985년 9월 29일부터 1992년 5월 21일까지 방영한 미국 드라마로 우리나라에도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
요소수 부족 사태
많은 물품을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특성상 예기치 못한 공급 문제와 뒤따르는 품귀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종종 있다. 그중 비교적 최근 일들로 일본을 통한 초고순도 플루오린화 수소산(불산, HF)의 무역 문제, 그리고 2021년의 요소수 대란이 기억난다. 특히 요소수는 단순히 32~40%의 요소(urea)를 물에 녹이는 간단한 물질인데, 공급 문제가 촉발한 결과는 예상보다 컸다. 요소수를 주입해야만 정상적인 운행이 가능한 경유 차량의 주행이 어려워졌으며, 사실상 택배를 비롯한 물류체계의 핵심이던 경유 운송차의 주행 불가로 결국에는 사회적인 공급체계 혼선으로 이어졌었다.
그렇다고 해서 요소가 합성하기 어려운 물질이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제조법의 원리는 너무나 간단하며 단점 하나 없는 완벽한 체계라 할 수도 있다. 요소는 화학을 모르는 누구라도 살아오며 들어본 적이 있을 이산화탄소(CO2)와 암모니아(NH3)만으로 만들 수 있다. 이산화탄소는 화석연료의 사용이나 공장 배기가스, 심지어 생명체의 호흡에서 끝없이 만들어지는 지구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다. 암모니아는 농업에서 필요한 비료의 핵심이며, 원재료가 간단한 것에 비해 쓸모가 크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친환경적인 요소 생산을 위한 설비마저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수익이 높지 않은 이유로 공정 라인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수입에 의존도가 컸기 때문에 국내 공급이 중지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요소의 쓰임새는 다양하지만, 앞서 이야기하던 경유 차량에서의 필요를 따지자면 유해 배기가스를 무해한 화학종으로 변환시키기 위한 보조제 정도다. 휘발유 차량은 보편적인 백금(Pt), 팔라듐(Pd), 그리고 로듐(Rh)의 3원 촉매 변환기만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질소 산화물 배출량이 매우 높은 경유는 완전한 처리가 불가능하다. 결국 요소수를 투여해 차량 기관 내에서 암모니아를 발생시키고(암모니아를 바로 사용하는 것은 유독성과 낮은 용해도로 권장되지 않는다), 이로부터 질소 산화물의 환원 반응을 이끌어낸다.
요소 생산 공장 : 인간의 소변
요소의 생산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재미 삼아 흡사 영화에서처럼 뜬금없는 방식으로 요소 확보를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소변’이다. 우리는 음식물을 통해 단백질이나 아미노산과 같이 질소 화합물을 섭취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배출 또한 중요해진다. 암모니아 형태로 물에 배출하는 어류나, 낮은 수분 섭취량을 고려해 끈적한 요산(uric acid)으로 배출하는 조류, 파충류와 달리,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는 요소로 배출한다. 얼마나 많은 수분 섭취가 가능하며, 또 배출하기 용이한가에 따라 질소 폐기물의 형태는 달라진다. 사람의 소변 1리터에는 무려 30.3 g의 요소가 함유되어 있으니 비상시 경유 차량 운행을 위해서 추출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순수한 물질보다 두세 가지 이상의 물질이 뒤섞인 혼합물(mixture)이 대부분이다. 끓여 액체를 증발시키거나 거르고, 냉각시켜 석출시키거나 자석을 이용하는 등 혼합물의 분리는 교육 과정 중 필수적으로 배우는 분야다. 하지만 소변을 단순히 끓이거나 차갑게 식힌다고 요소가 분리되진 않는다. 100 mL의 증류수에 무려 54.5 g이나 용해될 만큼 잘 녹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간단히 질산이나 염산과 같은 강산을 약간씩 추가하면 해결된다. 하나의 양성자(H+)가 달라붙은 요소는 더 이상 처음과 같은 용해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반짝이는 결정 형태로 석출되기 시작한다. 최대한 높은 농도로 농축한 소변에 산을 넣고 거름종이나 헝겊으로 한 차례 걸러내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불순물이 함유되어 있지만 그럭저럭 충분한 양의 요소를 얻을 수 있다. 비상시에 대한 것이니 약간의 악취는 감내하자.
요소수가 없는 조난 상황에서 산성 물질이 없을 것은 당연한데,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맥가이버의 교훈을 떠올리자. 요소 추출에는 사용되지 않지만, 황산이 필요하다면[황산을 사용하면 요소 대신 설팜산(sulfamic acid)이 생성된다] 차량의 배터리를 살짝 열어 납-산 전지에서 얻을 수 있다. 염산을 얻고 싶다면 조금 전 뽑아낸 황산을 소금과 반응시켜 발생하는 염화 수소 기체를 물에 불어넣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며, 질산이라면 다양한 질산염과 염산, 그리고 구리 조각을 뒤섞는 것으로부터 얻어진다.
그야말로 불가능은 없다
화학의 재미는 역시나 설계와 제어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 작은 탄소 화합물 하나로부터 항생제나 비타민, 심지어 첨단 신소재인 그래핀마저 직접 합성할 수 있으며, 언제든 역반응이라는 원리와 촉매, 그리고 온도나 농도, 압력 등의 조건 변화를 통해 처음 물질로 돌아갈 수 있다. 단지 효율적인가,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가, 위험하거나 어렵지는 않은가의 차이일 뿐,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목재가 불에 타서 재로 변하는 등의 비가역(irreversible)적이고 극단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말이다.
굳이 알 필요 없고 할 이유도 없지만 극단적인 몇 가지 경우만 재미 삼아 소개하자면, 역시나 가장 유명한 것은 감기약을 이용해 필로폰(philopon)을 합성하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관련된 특정한 화학물질이 사용된 감기약의 판매에 제약이 발생하기도 할 정도의 커다란 사건이었으며, 그 과정이 생각보다 너무나 쉽고 간단했다.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의 합성에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있는 시작 물질을 고민해본다면, 작은 레고 블록들도 이론상 가능하다. 3D 프린팅의 재료로도 사용되는 플라스틱 물질인 아크릴로나이트릴-뷰타다이엔-스타이렌(ABS)은 레고의 재료이기도 하다. 해중합한 후 분별 증류해 스타이렌을 분리해낸다면, 이로부터 에폭시화와 몇 단계의 화학반응으로 메스암페타민의 합성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기술적으로 가능함을 알지만 굳이 시도해 증명할 정도의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화학자들이어서 다행이다. 잠재적 마약류 제조 원재료로 플라스틱의 유통에 규제가 생기는 미래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페인트 시너로 체리 착향료 벤즈알데하이드를 만들어내거나 사용한 장갑으로 핫 소스를 만드는 등 무엇이든 가능하다. 이쯤이면 화학을 현대의 연금술이라 해도 역사적으로나 형태적으로나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