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 여행
낙엽도 점점 퇴색해 우수수 하늘 비행을 하며 떨어지는 어느 늦가을 날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새벽에 비가 온 뒤라 바닥은 축축하게 젖었으나 하늘은 맑고 막바지 가을의 따스한 기운이 전국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안개도 대지를 낮게 드리우며 천천히 승천할 준비를 하는 듯하다. 승객들도 다들 여유를 갖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섬 여행을 준비하는지 소곤소곤 대화하기 바쁘다.
통영을 지나 삼덕항에서 카페리호를 기다린 끝에 오전 10시에 차는 가운데로 향하고 사람들은 가장자리에서 차곡차곡 대열을 지어 배 위로 오른다. 배 3층에 올라가자 태양은 이미 하늘 높이 떠서 이글이글 타오르며 온화한 미소로 탑승객들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이곳은 최남단이라 그런지 따뜻한 봄날 여행을 떠난 듯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와 잔잔한 파도가 금빛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배가 넓은 바다를 향해 천천히 달려가자 그동안 숨어있던 크고 작은 섬들이 하하 호호 나타나 우리들을 즐겁게 해 준다. 소나무들은 섬 높은 곳에서 단체로 몰려와 해풍에 가지를 좌우로 흔들며 제 멋대로 춤을 추고, 물고기들도 떼로 우르르 몰려와 관광선을 따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듯하다. 갑판 위에서는 각자 준비한 음식을 펼쳐놓고 싱글벙글 맥주와 음료수를 마시면 갈매기들이 나타나 축하를 해 주는지 요란스럽게 날개를 흔들고 있다. 카메라는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빛이 나고 멋진 섬들이 자주 살갑게 비쳐온다.
1시간 후 욕지도가 커다랗게 배 앞머리에 자리 잡자 사람들은 배에서 내려 섬으로 올라가자 승객을 기다리는 작은 버스가 다가온다. 배낭을 메고 일행들과 시내를 벗어나 밭 기슭로 올라간다. 풀숲으로 들어서자 노란 꽃이 핀 ‘도깨비바늘’이 바지를 찌르며 사정없이 달라붙는다. 바늘은 떼어도 떼어도 짖궂게 다시 달라붙는다. 이곳은 난대성 기후라 그런지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서리가 오지 않아 풀들이 죽지 않고 새파랗게 살아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욕지도는 고구마 주생산지답게 산허리에 붉은 황토밭이 폭 넓게 자리 잡아 고구마를 캔 뒤 버려진 순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아직도 안 캔 고구마도 있어 알찬 뿌리가 빨갛게 토실토실 드러나 식욕을 북돋운다. 산 위쪽에서 일행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아늑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가지 집들과 흰 파도가 곱게 부서지는 푸른 바다를 찬찬히 감상해 본다. 비가 적게 와 수돗물이 부족한지 산등성이 밑 계곡에 위치한 상수도를 확장하느라 굴착기는 공사에 바쁘고 깨끗한 저수지에는 물이 가득 담겨 출렁 거린다. 산봉우리를 가기 위해 비탈진 길을 올라가려니 숨이 점점 가빠오고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마치 10월 초 날씨처럼 더워서 하늘을 보니 해는 중천에 떠 있고 짊어진 배낭은 점점 무거워 삼다수를 꺼내 홀짝홀짝 마시니 더위가 주춤주춤 물러선다. 산에는 난대성 기후에서만 볼 수 있는 활엽수 나무들이 까만 열매를 잔뜩 매달고 오밀조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나무들은 푸른 잎사귀를 넓게 벌리며 따뜻한 계절을 마음껏 누리는 것 같아 추위에 떨며 낙엽을 모두 떨어뜨리는 육지의 나무들이 문득 가엾어졌다.
한참 후 천왕봉 대기암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층층 계단을 올라간다. 따스한 햇살이 온 몸을 감싸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푸르른 녹엽들이 산하를 풍성하게 꾸며준다. 산 정상인 전망대에 오르자 가물가물 머언 바다에는 고등어를 잡으려는 고깃배들이 한가롭게 조업을 하느라 바쁘고 군데군데 놓인 오두막집들이 평화롭게 자연 속에 어울려 빛이 난다. 파랑 바다를 배경으로 일행들과 온갖 자태로 스마트폰 속에서 번쩍번쩍 빛이 나며 깔깔깔 웃어댄다. 온갖 화사한 얼굴들이 자연 속에 피어나며 풍요로운 가을을 호사스럽게 누리고 있다. 봉우리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자 모노레일이 들어서는 너른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에 가자 모두들 배가 고파 배급 받은 도시락을 펼쳐 놓는다. 산나물이며 김치, 버섯, 도라지, 고구마 등등 정성 드려 가지고 온 반찬 향기가 여기저기서 폴폴 피어오른다. 힘들게 천왕산 비탈을 올라와 그런지 멧밥이 꿀맛처럼 맛있다. 식사를 하며 여러 반찬을 두루두루 먹 듯 나누는 말 속에도 각 고장의 사투리가 튀어나와 더 재미있게 알콩달콩 이야기가 산으로 바다로 자꾸만 메아리쳐 흘러간다. 이곳도 산마루라 옆에는 전망대가 있어 가보니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욕지면의 여러 부속 섬들이 올망졸망 덩치를 자랑하며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연화도와 우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우거진 숲이 멀리서도 잘 보인다. 산허리로 쭉 뻗은 모노레일 철길도 한 번 타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최근 사고로 잠시 멈춰있다.
바위가 듬성듬성 깔린 벼랑길을 조심조심 내려가자 바다가 철석거리며 나타나고 곳곳에는 3개의 출렁다리가 멋있게 대기하고 있다. 동료들과 계단을 내려가 출렁다리로 걸어가자 다리가 흔들리며 요란스럽게 출렁출렁 춤을 춘다. 무섭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 다리와 함께 춤추며 건너려니 곁에는 높다란 양쪽 절벽이 나타나고 가운데는 오묘한 바위섬이 위치해 아슬아슬 운치를 더해준다. 다리를 지나 한 참을 더 걷자 욕지도의 유명한 비렁길이 나타나고 해변 가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쫙 깔려있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오밀조밀 자리를 잡고 파아란 바다와 조화를 잘 이룬 곳곳에는 포말이 하얗게하얗게 부서져 멋진 모습이 계속 연출된다. 관광객들이 바위 끝에서 폼을 잡으면 카메라는 연속해서 찰칵거리고 해안은 부드러운 햇살이 평화롭게 여운을 남기며 퍼져 나간다.
얼마 후 4시간 여정을 마치고 해변에서 산을 타고 올라와 시내로 가기위해 산마루에 가운데로 쭉 뻗어 있는 큰 길로 들어섰다. 작은 버스가 손님을 기다리며 서 있고 먼 산 밑 시내 집들이 반갑게 아슴아슴 다가온다. 오늘 등산을 주로 같이한 한 여자 산악인과 높은 산에 있는 신작로를 걸으며 알큼달큼 대화를 시작한다. 마음이 맞아 이야기를 자주 나누려니 피로도 차츰 풀리는 것 같다. 이젠 늦가을 짧은 해도 기력을 다했는지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 산길을 내려와 항구가 있는 시내로 와 간단하게 일행들과 저녁을 먹고 오후 5시가 되자 아침에 왔던 그 배가 다시와 승선을 한다. 날이 저물었는지 아침 보다 승객이 꽤 줄어 우리 일행이 대부분이라 너무 한가하다. 배는 우렁찬 고동을 울리며 통영을 향해 천천히 달려가자 먼 하늘은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어 간다. 우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잔잔한 파도를 타고 귀가를 준비하며 하루 여행을 조용히 마무리 한다.
첫댓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날이 저물었는지 아침 보다 승객이 꽤 줄어 우리 일행이 대부분이라 너무 한가하다. 배는 우렁찬 고동을 울리며 통영을 향해 천천히 달려가자 먼 하늘은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어 간다. 우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잔잔한 파도를 타고 귀가를 준비하며 하루 여행을 조용히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