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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산행&해외여행 스크랩 여행사진 동유럽,발칸여행 7일차:지상낙원"드브로브니크"
산신령(최순조) 추천 0 조회 692 17.06.01 18:1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누가 : 기아자동차광주산악회 회원 22명,서울팀 8명


 언제 : 2017.04.27일(목) 04시30분 경정비주차장 출발


             2017년04월27(목)~05월09일(화) 11박13일


 디 : 동유럽5개국(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체코,헝가리)+발칸2개국(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여행사 : 참좋은 여행사


♣ 경  비 : 여행사 경비 279만원,현지 옵션 230유로(28만원),현지가이드비(14만원),인천공항 왕복차량비(인당54,000원)


                =3,264,000원    


 ♣ 일  정 : 오늘은 7일차(05월03일(수))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를 가는날입니다.


                드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울만큼 크로아티아의 핵심 관광지이고,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보존가치가 높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과거 보스니아와의 내전으로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었지만,드브로브니크 시민들과 학자,지식인들이 온몸으로


                나서서 도시의 파괴를 몸소막아 그래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수 있었지않나 생각합니다.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드브로브니크 시내의 붉은지붕들의 황홀한 모습과 도심속으로 들어와 플라차거리,


                드브로브니크대성당,스폰자궁전,프란체스코 수도원등 수백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유적들을 둘러보고 성곽을 따라


                걷는 성곽투어는 전망대가 따로 없이 드브로브니크의 구석구석을 느끼는 최고의 역사 탐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람선을 타고 드브로브니크 해안을 한바퀴 돌아보는 선상투어도 빼놓을수없는 아드리아의 멋진 추억이


                되었습니다.




여행 동선





발칸반도 지도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 위치 지도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열어 봅니다.


저녁에 좀늦게까지 놀다가 잠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어서그런지 새벽일찍 깨어버려,창밖을 열고

멋진 일출이 기대가 되면 카메라를 메고 밖으로 나갈 요량이었는데,

호텔위치가 해안가이기는 하지만,약간 남향이었고

일출도 별로여서 그냥 짐정리를 하고

식당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7일차 이번 여행의 백미중 하나인 크로아티아의 보석이라는 드브로브니크를

여행하는 무척 기대가 되는 하루입니다.


스마트폰 사진의 대가이신 한선생님도 일찍이 나와서 주변 풍경을

담느라 분주 하시네요.




보스니아 검문소를 통과 합니다.


크로아티아를 둘로 나눈 도시 ‘네움’

스플리트를 지나 두브로브니크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면 두 번의 국경 출입문관리소를 만나게 되는데, 두 국경 사이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Neum)이라는 도시가 자리하고 있다.


 1984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대통령이었던 

티토 대통령이 네움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넘겨 주었고,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하면서 

네움은 크로아티아를 두 개로 나눠 버린 큰 장벽이 되고 말았다.


 현재까지도 크로아티아에서는 네움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네움을 크로아티아에 주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바다와 인접해 있는 도시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네움이 크로아티아로 되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첫 번째 출입문관리소를 지나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땅이고, 두 번째 출입문관리소를 통과하면 

다시 크로아티아로 들어서게 된다. 


여권 검사를 두 번 하니 여권은 꼭 몸에 지니고, 꺼내기 쉬운 곳에 두는 것이 좋다.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경













 "지상낙원을 볼려거든 드브로브니크로 가라."라는 말로 칭송했던 아일랜드 극작가 버나드쇼의 말처럼

얼마나 대단한 도시이길래 그런 극찬을 했는지 궁금하여 계속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차창 넘어를 바라봅니다.


항에 커다란 크루즈선 한척이 정박해 있네요.




도심에 들어보자 커다란 성곽이 나바론요새처럼

단단하게 다가 옵니다.




도심에 내리자 마자 우리나라 승합차와 비슷한 차량을 타고 스르지산전망대로 향합니다.


드브로브니크를 한눈에 바라볼수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케이블카로도 올라갈수있지만,

저희는 미리 준비해놓은 차량으로 한 10여분 타고 올라가면

전망대에 다다를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자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드브로브니크를 감상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네요.



지상낙원 드브로브니크의 멋진 모습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두브로브니크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작은 숲(dubrava)"을 뜻한다.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릴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크로아티아 여행의 핵심 포인트이다. 


중세 시대에는 아드리아 해에서 중요한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성장했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다 

1358년 라구사(Lagusa)라는 도시 국가로 탈바꿈한다. 


라구사 공화국은 인근의 강대국 사이에서 해상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적절한 균형을 지키는 외교 정책을 통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1667년 대지진으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고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1808년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난 후에는 

크로아티아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를 침공한 세르비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포격을 가해 도시의 건물 상당수가 파괴되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 세계의 학자들이 인간 방패가 되어 두브로브니크를 지켰으며 전쟁 후 

유네스코 등의 지원을 통해 대부분의 유적들이  복원되었다.




우리도 많은 시간을 주지않아 도착하자마자 포인트에 앉자 

인증샷 남기기에 여념이 없네요.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지상에서 천국을 찾으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라고 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두브로브니크를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일컬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해안 최남단에 위치한

아드리아해의 대표적인 휴양도시 이다.













다들 멋진포즈로 추억을 담아 봅니다.








나는야 자유부인~~ㅎ
























잠시 사진을 찍은후 또다시 차량을 타고 스르지산 전망대가 있는

정상부로 와서 팀장님의 설명을 다시 듣습니다.


보스니아와의 수많은 전쟁에서 이곳을 지켜내고자 많은 지식인,학자,시민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정상에는 보스니아와의 전쟁때 희생된 희생자들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네요.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어울려 드브로브니크성의 주황색 건물지붕이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조금 있다가 성내를 걸어볼건데 보기만 해도 가슴떨리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건너편섬은 로크롬섬


나중에 유람선을 타고 한바퀴 돌아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는 관광객들도 많이 보입니다.
































박팀장님이 조금 높은곳에 올라가 단체 사진을 찍어 줍니다.


지상낙원이라고 불리우는곳에서 이런 멋진 사진을 찍을수 있다는것도

큰 행복이자 축복이네요.


환호성을 지르는 기아팀들




















이곳에서도 아카시아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아카시아꽃 향기에 꽃보다 누님팀들이 무척 즐거워 합니다.

처음 함께하는 여행이지만 다들 잘어울려 다니니 마음이 한결 편해 지네요.








스르지전망대에서의 황홀한 전망을 뒤로 하고 이제는 직접 드브로브니크성 구시가지로 들어가

시내투어로 들어갑니다.


프란체스코수도원,드브로브니크대성당,플라차거리,헥터궁전,성블라이세성당등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명품 문화재들을 구경하고 약 01시간에 걸쳐서 성곽을 돌아 나오는

성곽돌기 체험입니다.







[Travel Tip] 두브로브니크에서 숙소 고르기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안 숙소는 대부분 아파트먼트로 운영되고 있으며, 2박 이상부터 예약 가능한 곳들이 

많기 때문에 숙소 예약 시 참고하자.

 대형 호텔이나 리조트, 중 · 소형 호텔은 구시가를 벗어나 버스 터미널과 페리 터미널이 있는 

그루즈 지구와 바빈쿠크 지역에 몰려 있다.


 인기 있는 숙소는 1년 전부터 예약이 끝나기 때문에 서둘러 예약하는 것이 좋고, 

극성수기는 숙박 요금이 2배 이상 오른다. 

겨울철에는 운영하지 않는 숙소가 많다. 




필레게이트


구시가지 서쪽으로 들어가는 관문역할을 한다.




다양한 요트들이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어서

휴양도시임을 실감합니다.










구시가지 성벽입구에 구시가지 지도및 두시구획,전쟁때 포격을 맞는 자리등 상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팀장님이 설명을 해주십니다.


어디가 어딘지는 잘모르겠지만 일단 설명은 듣고 갑니다.




구시가지 전도




동그랗고 세모로 표기된 지점은 세르비아의 포탄이 떨어졌거나,폭격으로 파괴된 지점을

표기한거라 합니다.

수많은 포격으로 도시의 30%가 파괴 되었는데, 그걸 수년에 걸쳐서 내전후 

전부다 복구를 하였다고 하네요.



역사이야기


♣ 드브로브니크의 아픈 상처 ♣



요즘 핫한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중세시대에 온 듯한 주황색 지붕으로 덥힌 성안의 모습과 코발트 빛 아드리아 해의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가 '진정한 낙원을 찾으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했을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운이곳은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 중의 하나다.


국내 모 케이블방송의 '꽃보다 누나'에서 소개되면서 한국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지상낙원과 같은 이곳이 불과 몇십년 전만해도 포탄이 빗발치던 전쟁터였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발칸반도의 강국이던 유고슬라비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 6개국이 합쳐져 세워졌다. 


이름 그대로 남슬라브 민족의 연방국가가 세워진 것이다. 

소련편도 미국편도 아닌 스위스와 같은 중립국 성격을 띠면서 유고는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뤄낸다.


 1960년대에 이미 미국과 무비자 협정을 맺을 정도다. 

당시 세계 4대 군수물자 수출국가이며 전투기 제작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1990년대 내전이 발발한다.  
"처음엔 민족주의 때문에, 다음에는 종교 때문에, 다음은 내 땅을 되찾겠다고, 

나중에는 아무도 이유를 모른 채 그냥 싸웠다" 

가장 먼저 반기를 든 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였다. 

유고연방국가에서 탈퇴하며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를 세르비아정부군이 무력을 앞세워 침공한다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 정부군의 막강한 화력에 무너지며 두브로브니크도 풍전등화의 상황을 맞이했다.


고대로마시대부터 번성한 도시국가로 중세시대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던 

이곳을 지키기 위해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은 물론 유럽의 지식인들까지 목숨을 건 대항에 나섰다. 


이들은 도시 해안에 배를 띄우고 '우리를 먼저 폭파하라'고 외치며 인간띠로 도시를 지켜낸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포격은 이어졌지만 세계의 비난여론에 떠밀려 더는 공격하지 못했다.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다.

 그는 서방세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998년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를 무참히 학살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학살자로 악명을 떨쳤고,인종 학살혐의로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 넘겨져 2006년 감옥에서 사망했다. 


크로아티아의 보석 두브로브니크는 그렇게 지켜졌고,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당시 드브로브니크의 시민들과 유럽의 지식인들의 목숨을 건 인간띠 운동이 지금의 아름다운 드르보브니크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차 거리


드브로브니크성내의 중심도로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항상 북적거리는 대표적인 메인도로입니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있는데,관광객들이 하도 많이 다녀서

반들반들 합니다.


담배꽁초 하나 없는게 따로 청소를 하지않을 정도로 깨끗해

무척 부러운 도시입니다.








스폰자궁

(Sponza Palace)




구시가지의 스트라둔(Stradun) 거리 끝에 있다.



 1516~1522년 해상무역 중심 도시국가 라구사공화국(Ragusa Republic)의 모든 무역을 취급하는 세관으로 지었다

. 당시 드브로브니크에 지배적이었던 후기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로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치(Paskoje Mili?evi?)가 건설을 맡았다.

커다란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으며 우아한 아케이드, 기다란 고딕 양식의 창문 등이 특징이다.

중앙홀은 예전에 많은 무역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이용되었고 한쪽 부속건물에는 14세기 국립조폐국이 들어섰으며

그밖에도 은행·귀중품창고·무기고 등이 있었다.


현관과 건물의 조각장식은 안드리지치(Andriji?) 형제가 담당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도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며 1667년의 대지진에도 손상을 입지 않은 채 본모습이 보존되어 있다.

16세기 말에 라구사공화국 중앙문화센터로 바뀌었다.


현재 매년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의 개막식이 열리며 중앙홀은 미술관으로 이용된다.



 스폰자궁 [Sponza Palace] (두산백과)








스폰자 궁전


1층은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어진 6개의 기둥과 회랑이 있다.

2층은 후기 고딕양식의 창문과 크로아티아 국기가 걸려있고,3층 가운데는 드브로브니크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17C 대지진때 훼손되지않은 건축물중 하나이다.




종탑








건강센터실의 세남자들 입니다.




마린 드르작 동상






이분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하여 코만 반질반질..


여자들이 코큰남자들을 좋아한다는 이유가 따로 있다던디..ㅎ




우선생님 내외도 코를 만지며 건강과 행운을 빌어 봅니다.




거대한 돔 형식의 지붕을 가진 성모승천 대성당(Cathedral of the Virgin Mary)
















성 블라이세 성당 (출처-http://www.dickschmitt.com/travels/Croatia/Dubrovnik/churches/index.html)



성 블라이세 성당



두브로브닉에서 가장 사랑 받는 성당이다.


 처음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건물이 지진으로 무너지자 18세기(1715년)에 베니스에 있는 

성 마우리티우스(St. Mauritius) 성당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이 새로 만든 건물에서 과거의 유물은 불과 몇 개 밖에 없다. 

그 흔적들 중에서 가장 흥미있는 것은 왼손에 지진 이전의 두브로브닉 시가지 모형을

 들고있는 성 블라이세 (St. Blaise) 조각이다.


 이 동상은 현재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 중 하나이다. 

은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은 1706년 5월 24일 밤 화재로 인해 파괴된 성당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당시 금, 은, 쇠로 된 것들은 녹아 없어졌지만 이 동상은 아무런 해가 없었다.

 

그 뒤 동상은 성 니콜라스 성당에 보관되었다가 1715년 성당이 완전 복구되자 의회의 명령에 따라 

다시 원래 자리인 성 블라이세 성당으로 돌아갔다.


  이 아르메니아에서 온 순교자이자 성인은 12세기부터 이 도시의 전통 속에 살아 남아 있다.

 그리고 이곳의 역사책과 전해지는 여러 기록에도 남아있다. 

이곳 이야기에 의하면 "성 블라이세"는 대략 10세기에 이 도시를 구한 것 같다. 


당시 베니스의 큰 배가 이곳 근처에 닻을 내리고 물을 새로 공급 받아서 항해를 더해야 

된다는 핑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사람들은 친절하게 베니스배에 다가갔다. 


그러나 교활한 적군은 밤에 잠입해서 두브로브니크를 공격을 할 목적으로 도시의 방어 시스템과 이곳 저곳을 정탐 하였다.

 그들의 계획은 탄로 났고 ‘성 블라이세’는 이 사악한 음모를 ‘성 스테판 대성당’ 목사(당시 대표자)에게 알렸다. 

그런 시기 적절한 사전 경고 때문에 도시를 보호 할 수 있었다.


 시 의회는 '성 블라이세'가 야음을 틈타서 방문한 것을 도시 사람들에게 자세히 알리기 위해서 

지금의 수상격인 스테판 대성당 목사를 불렀다. 


목사는, 자기 앞에 나타난 블라이세는 "긴 수염을 한 노인이었으며, 주교의 관을 쓰고 주교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feast day    (출처-http://www.justdubrovnik.com/2014/01/saint-blaise-dubrovniks-guardian/15771/)


매년 02월03일 성블라이세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모습



수 백년이 지나오는 동안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은 이 성인의 머리와 목구멍으로부터 꺼낸 

약간의 뼈와 오른손과 왼손을 보관하고 있었다.


 성 블라이세 몸을 분리해서 가지고 다니는 이 엄청 무시무시한 행위는 고대 그리이스에서 신의 사지를 

절단하는 의식을 이어온 일종의 미신이다.


 이것은 성인을 축복하는 행위이며 다른 의도는 없는 것으로 해석 되고 있다.

 그러나 성인의 축일 날 행동은 옛날과 똑 같은 방법으로 사지가 분리된 성인을 들고 

다니는데 마치 일종의 거리 공연을 하는 것 같다.




성 블라이세 동상


두보로브닉 구시가지엔 성 블라이세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공화국이었을 때 도심엔 많은 교회가 있었고, 거기엔 이 도시 수호 성인인 성 블라이세 동상이 가득 했었다.

 도시의 마스코트인 성 블라이세 동상은 구 시청 홀에 안치되어 있으며 공화국을 상징하는 기에는 

성 블리이세의 약자인 SB를 새겨 놓았다.


 그리고 이 성인의 동상 모습은 공화국 문장인 봉인함에도 사용했었고,18세기까지 주조한 동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18세기에 공화국이 위기를 맞았을 때 동전에 더 이상 성인을 넣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책엔 다음과 같이 위트 있는 구절은 넣었다.


 “성인은 풍만한 여성으로 다시 나타났으며 

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자유를 나타내는 것이다” 성 블라이세 성인을 기념하기 시작한 이후로 

매년 2월 3일은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두브로브닉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오래 전에 구속된, 죄가 약한 범죄자들은 

성인 축일 1주일 전과 부활절 다음에 모두 풀어주었다. 


그리고 올림픽 관습과 비슷하게 도시로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도 축제가 끝날 때까지 들어 올 수 있었다


사진은 왼손에 지진 이전의 두브로브닉 시가지 모형을 들고있는 성 블라이세 (St. Blaise) 동상이다.




옷맵시가 잘 어울리는 기호선사모님




성블라이세 성당 내부에 잠시 들어와 봅니다.

이번 여행에서 수많은 성당을 보고 들어와 보지만,성당마다 개성이 있고 훌륭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벽화,조형물들이 많이 있어서 박물관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다시 광장으로 나옵니다.




▶루자광장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광장입니다.

지금은 성수기가 아닌데 여름철 성수기때는 관광객들이 꽉 들어차서

사람들이 떠밀려간다고 하네요.


지금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적 거립니다.




다름팀이 미리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어서 우리는 옆에서 팀장님이 설명해준

내용을 수신기를 통해 듣고 있습니다.


수많은 역사적인 내용을 들었지만,지금에 와서 기억할수 있는것은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나이 탓이겠지요.ㅎ




중세 최고의 기사로 꼽히는 롤랑동상앞에서 열심히 설명하시는 외국가이드








좌우 건축물 구조가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사진이 잘 나오는 구조입니다.




오노프리오 분수대




앵무새를 가져다놓고 사진도 찍고 그러네요.

아마도 돈을 얼마내야 하겠지요.




심총무님이 앵무새를 팔에 앉혀보고..




잘생긴 앵무새들








이제 성곽투어에 나섭니다.


상당히 높게 지은 성곽인지라 한참을 올라가야 하네요.

하체가 부실하신분들은 숨이 헐떡 거립니다.




성곽에서 바라본 오노프리오 분수대


분수대도 예술작품처럼 멋진 모습입니다.

20여KM에 이르는 수로를 만들어 물어 끌어다가 이곳 분수에 물을

조달한다는데,하나의 분수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크로아티아인들의 예술혼이 부럽기만 합니다.




필레 게이트쪽 성벽 위에서 스트라둔 대로를 내려다본 모습








성곽에서 바라본 모습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좀 덥기는 하여도 간간히 시원한 바람도 불어와 성곽을 둘러볼만 하네요.

천천히 둘러보면 약 02시간정도 소요되는데,항상 바쁜 우리팀은 한시간에

끝내야 합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크로아티아 국기




















버나드 쇼 “지상에서 천국을 찾으려거든 두브로브니크를 가라” 



두브로브니크에선 누구나 사색에 빠지나 보다.


19세기 영국의 최고 극작가이자 소설가, 비평가인 버나드 쇼(Shaw. George Bernard)는

 ‘I knew if I stayed around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는 명언을 남겼다.


 국내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잘못 해석된 채 알려진 버나드 쇼가 남긴 자신의 묘비명이다.

 "오래 살다보니 이런 일(죽음)이 생길 줄 알았다"고 번역하는 게 원의에 더 가깝다.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지만 막상 눈앞의 현실로 닥치면 이내 당황하며

지난 시간들을 후회할 것이란 점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버나드 쇼 역시 생전에 "지상에서 천국을 찾으려거든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도 자주 찾았다는 두브로브니크 이곳에서 버나드 쇼 역시

자신의 인생역정을 반추하며 묘비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비난 버나드 쇼 뿐 아니라 두브로브니크에는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사색하고

반추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로브리예나체 요새와 보카르요새


과거 전쟁의 포성이 들리는듯 합니다.







이곳은 바다가 인접해 있어서 카약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입니다.


시원한 바다를 가르며 한번 타보고 싶네요.




절벽위에 튼튼하게 지어진 성곽모습




아까 보았던 스지르산을 바라 봅니다.








로브리예나체 요새




아직도 곳곳에는 전쟁의 상처가 남아 그때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것 같습니다.

지금도 조금씩 복원해 나가는중이랍니다.








카약을 즐기시는 크로아티아인들




한폭의 풍경화 같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보트들이 물살을 가르며

관광객들을 즐겁게 합니다.




검색중에 부자카페 라는곳이 자주 나오던데 저곳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절벽위 끝내주는 조망처에 있는 카페인데,이곳 드브로브니크의 명소이고, 꽃보다 누나팀들이

거쳐간곳이라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곳이라 하네요.


우리도 사전에 정보를 알고 갔으면 짬내서 한번 들러볼건데

아쉽습니다.


"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돈많은 사람이 아니라 크로아티아어로 "구멍"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가실분들은 꼭한번 들러 보시길..







브로브니크 부자카페


절벽에서 레몬맥주를 마시고 있는 이미연씨 모습



 




부자카페 위치





부자카페 위치도



부자 카페




우선생님이 포를 한방 쏘실려는지 포즈를 취합니다.








성곽투어를 마치고 나오면 다음일정을 유람선투어 입니다.


저곳 선착장에서 배를타고 바로앞에 있는 섬을 둘러보는 일정인데,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드브로브니크를 바라보는 맛은 또다른 운치를 느끼게 했네요.




우리나라 항구처럼 어선들은 거의 없고 유람선뿐들이라 생선 비린네는 나지않아 무척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항구입니다.








뜻밖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회사 동료인데 이번 동유럽여행을 같은날 비행기를 타고 독일 프랑크프르트에 같이 내렸는데,여행일정은

우리와는 정반대로 가는 일정입니다.


운이 좋으면 한번 만나자고 했는데, 7일차 이곳 드브로브니크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참 세상 좁네요.ㅎ








다같이 함께 인증샷




다시 짬이나서 중세 최고의 기사인 알롱드기사 동상 아래에서..




광장에서 만나기로한 시간이 조금남아 조그만 전통시장을 둘러 봅니다.

큰 시장은 아니고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이나

잡화 시장같습니다.












선착장서 유람선을 타고 선상투어에 나섭니다. 

배로 섬을 한바퀴 돌면서 섬을 둘러보는 투어인데,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맥주도 한잔먹고 즐거운 시간였습니다.




꽃보다 누나팀이 촬영시 묵었다는 숙소입니다.

빨래가 걸려있는집에서 촬영팀이 묵었다고 하네요.













항구에 정박하지는 못하고 좀 멀리 떨어져있는 크루즈선








배에 오르자마자 유람선 직원인듯한 사람이 와서 시원한 병맥주를 한잔씩

따라 줍니다.




자..여행을 위하여..건  배


여행은 이런맛에 하는거겠지요.








구시가에서 남동쪽으로 약 700m 떨어진 로크룸섬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국립공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항구에서 30분 단위로 배가 출발하며, 배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40Kn정도면 왕복이 가능하고, 마지막 배편은 오후 6시입니다.


섬 해안가로는 누드비취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이곳에는 누드비치도 있습니다.


남녀 할 것 없이 벌거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옷을 벗지 않아도 상관없지만,사진을 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저멀리 옷을벋고 누드를 즐기시는 사람들이 몇명 보이는 멀어서

남자인지,여자인지 잘 구분도 않가고 줌으로 댕겨도

별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담에 올때는 망원경이라도 가져 와야겠네요.ㅎ




정박중인 크르즈배


꽤나 큰것이 여행객 몇천명은 실을것 같은 크기의 배입니다.

저런배가 한두척 들어오면 드브로브니크 도심 전체가 마비가 될정도라 하네요.












아자마라 크르즈선








해안가 곳곳에는 파도와 풍랑에 대비하여 튼튼하게 돌로 지어진

별장과 호텔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바쁘게 오전을 돌았더니 배가 촐출합니다.


이곳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오는지역이라 스파게티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우리 메뉴도 당근 스파게티가 나오네요.


싱싱한 해산물 스파게티입니다.





일찍오셔서 근사한곳에 먼저 자리를 잡고 계시는 우선생님과 종현형님 내외


동작이 빨라야 한디..ㅎ




우리도 어쩔수없이 안쪽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이태리식 정통 해물스파게티입니다.

카메라가 초점이 맞지 않았는지 사진이 흐릿하네요.












식사후 또다시 플라차거리로 가서 마지막 드브로브니크의

속살을 느끼며 단체인증샷을 남겨 보네요.


언제나 또다시 지상낙원 드브로브니크를 올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서울팀도 인증샷




반대 방향으로 다시한번 인증샷..












드브로브니크의 투어를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숙소가 있는 사베니크로 향합니다.

남으로 내려온만큼 다시 북으로 올라가야하는데 약 04시간을 넘게

올라가야 합니다.


아드리아해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지역인지라 지중해를 넘나드는

크루즈선들이 이곳 드브로브니크는 꼭 거쳐가는곳중의

하나라 합니다.









마지막 남은 외인을 가위,바위,보를 해서

나도 하나 탔습니다.


약간의 복은 있는 모양입니다.ㅎ








숙소를 가기위해 잠시 들른 길가 노점상에 싱싱한 과일들이

많이 있네요.


우리나라 감귤과 비슷한 과일입니다.

심총무님이 잔돈을 탈탈 털어서 우리 입을 즐겁게 해주네요.




길가에 심어져 있는 체리




7일차 밤을 보낼 숙소인 시베니크 올림피아호텔에 장장 04시간여를 차를 달려

도착 했습니다.


이제 숙달이 됐는지 3~4시간의 차타는 시간은 별로 지루하게 생각하지않고,

그려려니하고 즐기려고 합니다.




호텔로비에서 방키를 전달받고..





오늘 저녁 메뉴입니다.


고기,버섯,생선요리,감자튀김,오이등 다채롭게 적당히 가져와

맛있게 먹어 봅니다.




이제는 익숙한듯 여유롭게 식사들을 하시네요.




호텔 숙소에서 바라본 호텔 올림피아


지금은 성수기가 아니라 본관 방들이 많이 비어있는듯 하고, 우리는 별관으로 와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여행객들이 많은지 호텔앞으로 또다른 호텔이 들어서고 있네요.




붉은 노을이 멋져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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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낙원을 볼려거든 드브로브니크로 가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이일랜드 극작가 버나드쇼의 말이 

아니더라도 아드리아의 진주 드브로브니크는 아름답고 멋진 도시였습니다.


보스니아와의 내전을 겪어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 그때의 아픔을

이야기하였지만,수백년을 이어온 문화와 예술,천혜의 절경은

전쟁의 아픔을 아름답게 승화시켜서 지금은 지상낙원이

부럽지 않은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나중에 또다시 이곳에 올수가 있다면 이곳에서 1박하면서 좀더 여유있게 드브로브니크를 둘러보고,

달마시안 언덕과 부자카페등 오늘 보지못한 곳을 천천히 음미해가며

여행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동유럽,발칸여행 7일차 끝~



~산  신  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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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6.03 18:46

    첫댓글 중세시대의 숨결을 느낄수가 있었으며
    여기가 왜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고 싶은곳으로
    매년 1~2위로 선정되는지 수긍이되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점차 얼굴이 햇빛에 그을려 가고 있습니다.
    주황색지붕과 아이보리색 벽면 그리고 푸른바다.....
    다음에 한번 여유있게 들려보고 싶은 곳이였습니다.
    가이드 설명중 놓쳤던 부분까지 세세하게
    올려놔서 이번 여행을 되세김질하게 해줍니다.

  • 작성자 17.06.05 12:55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여행지 1위인지는 몰라도,나에게 있어서 가본 여행지중
    1.2위는 다툴것같은 드브로브니크였습니다.
    오렵게 찾아간곳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을것 같네요.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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