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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롤 압박을 감안해서 글을 세부분으로 나눴습니다^^;; 미리 편집해서 올리지 못해 혼선이 있었네요^^;;
** 1. 방초정~거연정, 2. 학사루-일두고택, 3. 촉석루-무기연당
약간은 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계춘(季春) 볕 좋았던 끝 봄,
김천에서 함양거쳐 함안까지 이틀동안,
경남 서부의 풍경좋은 누정을 돌아다녔습니다...
마음 맞는 벗들과 함꼐 다녔던 이틀동안 행복했습니다^^
마침 볕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 봄치고는 심지어 약간 덥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허락되어 이틀 내내 좋은 답사가 되었네요^^
이번 답사에서 원래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엉겁결에 낭독했던 한시의 추억이 개인적으로는 각별했네요^^;;
잠깐 브리핑 후, 향기로운 풀이 돋은 방초정 연못을 둘러보며, 그 어느 늦은 봄날의 비극을 곱씹어봅니다...
방초정 자료집에 수록했던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1815~1900) 선생의 '방초정에 걸려 있는 시판에 차운하여 시를 짓다(芳艸亭次板上韻)' 라는 시입니다...
芳草名亭麗景新 。 滿庭芳草憶前人 。
방초정 그 풍경이 다시금 아름다와, 뜰 가득 돋은 풀을 보니 옛 사람 생각나네.
至今一室團和氣 。 認是當年子諒春 。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온통 화목한데, 살펴보니 그 해 봄의 일을 헤아리겠네.
길지않은 답사의 다음 행선지는 합천 농산정입니다.
의외로 산 하나를 꿀떡! 넘어서야 이 멋진 홍류동 계속의 농산정을 겨우겨우 볼 수 있습니다...
농산정, 예전의 독서당에서, 지금의 번듯한 기와 누정은 아니었겠지만, 초가집에 걸터않은 최치원이 읊었슴직한 시 하나가 귀에 계속 걸려 낭송했었습니다. @@
우렁차게 귀를 가득메우던 계곡 물소리와 함께, 한심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최치원의 심정도 헤아려보기도 했네요..
題伽倻山讀書堂
가야산 독서당에 제하다
狂奔疊石吼重巒 。 人語難分咫尺間 。
첩첩이 바위에 미친 듯 부딪고 겹겹이 산 속을 포효하니, 옆 사람 말소리도 들리지 않아,
常恐是非聲到耳 。 故敎流水盡籠山 。
세상의 시빗거리 귀에 닿을까 늘 두려웠더니, 부러 물을 흘려보내 온통 산을 에워쌌구나.
훗날 가야산 해인사를 들렀던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선생은 이 터에 머물렀던 최치원 선생과 시를 떠올리며 감상을 읊었습니다.
憶孤雲
고운(孤雲)을 떠올리며
林間冠屢去茫茫。誰識儒仙本不亡。
숲 속에 갓과 신을 두고 헛헛히 떠났으니, 누가 알까, 본디 선생은 죽지 않은 것을.
流水籠山吟已遠。風雲猶護讀書堂。
그 옛날 '물을 흘려 산을 에워쌌구나' 시를 읊었음에, 바람, 구름은 여지껏 독서당을 돌보네.
당대의 문호였던 점필재 김종직의 시심 속에 최치원은 여전히 싯귀로 선명했던가 봅니다...
題詩石用孤雲韻
고운 선생의 시에서 운을 따와 시석에 제하다.
淸詩光燄射蒼巒 。墨漬餘痕闕泐間 。
불꽃 같은 맑은 싯귀 푸른 봉우리 비추는데,
새긴 돌 틈 먹 자욱은 흔적만이 남았네.
世上但云尸解去 。那知馬鬣在空山 。
신선되어 떠났다 온 세상이 수근거리지만,
산 속 이렇게 무덤 있는 줄은 알지 못하네.
농산정과 점심 식당, 고바우식당은 지척입니다.
바쁘게 길을 재촉해서 들른 해인사 초입 상가단지의 터줏대감답게, 맛난 비빔밥을 맛볼 수 있게 되어 감사~
이 산골에 걸맞게 작은 장농 문에는 또 멋들어진 한시가 베풀어져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여, 답사 후 찾아봤더니, 이유원(李裕元, 1814-1888) 선생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제29권 춘명일사(春明逸史)에 채록한 향악부(鄕樂府) 한 편 중 일부를 장롱에 새겼네요^^;;
향악부(鄕樂府)
此詩登於鄕樂。高低淸濁自合調律。必是解音響者所作。而錦江之上有月峯。余五十年前聽於湖南。後遍於八路。
이 시는 향악(鄕樂)에 올려졌었는데, 고저(高低)와 청탁(淸濁)이 음률에 부합하여, 필시 음조를 잘 아는 자가 지었음에 틀림없다. 금강(錦江) 가에는 실제로 월봉(月峯)이 있으며, 내가 50년 전에 호남에서 들었는데, 이후 팔도(八道)에 두루 퍼졌다.
십 년들여 마련한 누옥 몇 칸, 금강가 월봉 앞이라네.
十載經營屋數椽 。錦江之上月峯前 。
이슬 젖은 복숭아꽃으로 붉게 물들인 물 위, 회오리 바람에 버드나무꽃 하얗게 뒤덮힌 배.
桃花浥露紅浮水 。柳絮飄風白滿船 。
오솔길 스님 돌아오는 산 그림자 밖엔, 안개 속 강가 모래톱엔 빗소리에 졸고 있는 백로.
石逕歸僧山影外 。煙沙眠鷺雨聲邊 。
혹여 여길 마힐(摩詰)이 노닐었다면, 분명 그 해엔 망천도(輞川圖)를 얻지 못했으리.
若令摩詰遊於此 。不必當年畫輞川 。
맛난 점심 이후, 또 산넘고 물건너 거창 요수정으로 향합니다. 주차장의 위치를 두고, 약간의 혼선이 있었지만, 무사히 요수정 앞에서 합류하던 찰나, 마침 요수정에서는 마치 이백년전에서나 베풀어졌을 법한 국악의 향연이 @@ 무척이나 행운이었던가 싶네요^^;;
'수승대에서 즐기는 정원문화' - 딱 우리 답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맞춤 공연이었네요!!! 마치 우리가 맞춰 섭외했어도 이렇게 했을 듯한 국악 공연을, 어떻게 우리 맘을 알았을지, '거창국악협회' 주관의 상설 공연이 마침 또 답사일 기준 오늘부터 시작되었었네요~~ ㅎㅎㅎ
그 날은 잘 몰랐지만, 프로그램은 총 네곡, 천년만세, 산조, 남도굿거리, 민요연곡 이렇게 가야금과 해금 연주로 베풀어졌었다고 하네요^^;; 까막귀라~
퇴계 이황(1501-1570)은 '寄題搜勝臺'에서 수승대와 요수정의 경치를 다음과 같이 읇었습니다. 1543년 퇴계 이황은 안의 영송마을에 사는 장인을 뵈러 와 설을 쇠었는데, 그 기회에 요수 신권(1501-1573) 선생이 머물던 수송대(愁送臺)가 절경이라 하여 꼭 들르고 싶어 하였는데, 빼어난 풍광과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는지, 수승대(搜勝臺)라고 바꾸자 했다고 하네요.. 정작 왕명을 받잡는 통에 여기를 들르지는 못하고 시 한편을 남겼습니다.
搜勝名新換。逢春景益佳。 遠林花欲動。陰壑雪猶埋。
'수승(搜勝)'이라 새 이름이 되어, 봄맞이 경치 더욱 더 아름답네. 저만치 숲 속엔 꽃망울 터지려는데, 그늘진 이 골짜기 눈에 뎦혔네.
未寓搜尋眼。唯增想像懷。 他年一尊酒。巨筆寫雲崖。
여기 같이 할 안목 여적 못 찾으니, 떠오를수록 회한만 더 더해지네. 언제 술 한 동이 두고 큰 붓 들고 구름 속 절벽 그려보리라.
이 시에 신권은 다음과 같이 화답하며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搜勝臺奉和退溪韻
수승대에서 퇴계선생 운에 화답하여
爲掃臺邊路 。遮望華駕臨 。詩來人不至 。無意獨登臨 。
바위 옆 길 쓸어낸 것은 반가운 가마 보이지 않을 하였음에,
시는 받았되 사람이 아니 오니, 무심히 홀로 올라 보네.
林壑皆增采 。臺名肇錫佳 。勝日樽前値 。愁雲筆底埋 。
골짜기 우거진 녹음은 짙어가는데, 비로소 바위에 아름다운 이름지었네.
화창한 날 술독 앞에 놓고, 시름겨운 구름은 붓 끝에 감추었네.
深荷珍重敎 。殊絶恨望懷 。行塵遙莫追 。獨倚老林崖 。
진중한 가르침은 무거운 짐이 되고, 품은 그리움에 끊어질 듯 한스럽네.
속세에 헤매느라 멀리 쫓지도 못하니, 벼랑 위 노송에 홀로 기대어 있네.
이름 따윈 무심했을 바위의 의중은 온데간데 없이 수백년간 수승대니, 수송대니 두 집안이 아웅다웅했다는 일화도 잠깐 접어두고, 지금 우리는 퇴계와 요수 선생이 만났다면 그 만남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봅니다...
참고로 '요수정'이란 이름은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의 한 구절인, "智者藥水仁者藥山(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라는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농월정 들어가는 길은 어느덪 더위가 조금씩 꺾여가던 오후였습니다.
울산 작천정 앞에 베풀어졌던 눈부신 너럭바위 위를 거닐 생각하면 발길이 절로 빨라집니다^^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 1571-1639) 선생에게 농월정은 호란에 더럽혀진 조선 선비의 기개를 온전히 숨길 수 있는 적지였을지도 모르겠네요.
題弄月亭
농월정에서 제하며
路傍誰識別區幽 。山若盤回水若留 。
길 옆, 누구도 모를 그윽한 별세계. 산은 소반인 듯, 휘도는 냇물을 머금은 듯.
暎砌池塘澄更滿 。撲窓嵐翠捲還浮 。
섬돌 비친 연못은 맑은 기운 가득하구나. 창 두드리는 산바람에 물총새 휘돌아 앉았네.
兒飢不慍饘糊口 。客至寧嫌屋打頭 。
굶주린 아이는 죽으로 허기를 달래고, 손님 들이다 머리 찧어도 괘념치 않는다네.
莫道散人無事業 。晩專邱壑亦風流 。
한가한 이라 하릴없다 말하지 말게나, 늙으막 이 골짜기 뿐이라도, 이 또한 풍류라네.
구한말의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선생은 느즈막히 들른 농월정의 절경에, 여길 머물렀을 선배의 시상에 화창하여 시를 남겼다고 하네요.. 여기 싯귀를 찾아 같이 읊어봅니다.
弄月亭用原韻
농월정에서 원운으로 읊다
玄圃瑤池逈且幽 。巨靈移向此間留 。
우거진 밭에 옥빛 연못, 멀고도 그윽한데, 강의 신령이 이 계곡으로 와 머물렀네
洪濤碾過氷紈滑 。亂瀑瀠回雪乳浮 。
큰 물결 맷돌로 간 듯 어름 비단마냥 매끄러우니, 폭포수같이 어지러이 휘도니 눈발이 떠있는 듯하니,
狂叫可堪同拍手 。苦吟時復爲搔頭 。
미친 듯 외치다가 함께 박수도 쳐보고, 시를 읊다 막히면 때때로 머리를 긁적이곤 한다네.
也知弄月吹簫侶 。合是當年第一流 。
벗이 있어 달을 희롱하며 퉁소를 부니, 이거야말로 올해 제일가는 풍류로다.
화림동의 많은 누정을 다 둘러볼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우리 팀은 농월정과 거연정을 대표격으로 맛만 보기로 했었습니다. 농월정을 지질학과 학생들과 같이 노닐고 난 후, 우리는^^ 거연정으로 향했습니다.
거연(居然)이란 이름은 주자(朱熹, 1130-1200)의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12수' 중 첫 수 정사( 精舍)의 한 구절 ‘居然我泉石’에서 따왔습니다...
이를테면 이 화림동계곡은 시상에서는 무이구곡인 셈이네요..
朱熹 - 武夷精舍雜詠
주희 - 무이정사잡영
精舍
정사
琴書四十年,幾作山中客。一日茅棟成,居然我泉石。
거문고와 책과 함께 40년여, 몇 번이나 산 속을 머물렀던가.
어느 날 띠 집 하나 지으니, 내 자연 속에 고요히 머무른다네.
仁智堂
인지당
我慚仁知心,偶自愛山水。蒼崖無古今,碧澗日千里。
인지(仁知)를 헤아리지 못해 부끄러우나, 우연희도 절로 산수(山水)를 아끼게 되었다네.
푸르른 절벽은 고금(古今)에 그대로인데, 파란 강물은 하루에 천리를 가네.
隱求齋
은구재
晨窗林影開,夜枕山泉響。隱去復何求,無言道心長。
새벽에는 창에 걸린 숲 그림자, 간 밤엔 베갯머리에 울리는 샘물 소리.
은거(隱去)에 또 무얼 도모할까 ? 말없이 도심(道心)만 깊어가네.
止宿寮
지숙료
故人肯相尋,共寄一茅宇。山水為留行,無勞具雞黍。
서로 찾던 벗이 있어, 같이 띠 집에 머물렀네.
산수에 머무르다 갔는데, 소소하게 닭잡고 기장밥 내왔다네.
石門塢
석문오
朝開雲氣擁,暮掩薜蘿深。自笑晨門者,那知孔氏心。
아침에는 구름이 에워싸고, 저녁에는 무성한 담쟁이 덩쿨이 감싸네.
새벽 문에 기대어 홀로 웃는 자여, 공자의 마음이야 어찌 알겠는가 ?
觀善齋
관선재
負笈何方來,今朝此同席。日用無馀功,相看俱努力。
책보따리 지고 어디서 왔는지, 오늘 아침 이렇게 자리를 함꼐 하네.
날마다 남김없이 공부에 매진하니, 서로 다독이며 힘써 정진할 뿐이라네.
寒棲館
한서관
竹間彼何人,抱甕靡遺力。遙夜更不眠,焚香坐看壁。
대 숲 사이 저이는 누구인가, 껴앉은 항아리 기울이며 잔을 따르는구나.
긴긴 밤새 잠 못 이루니, 향 사르며 앉아 벽만 바라보네.
晚對亭
만대정
倚筇南山巔,卻立有晚對。蒼峭矗寒空,落日明影翠。
지팡이 짚고 오른 남산 마루, 저 멀리 만대봉(晩對峰)이 솟아 있구나.
차디찬 푸른 하늘 속 가파르게 치솟으니, 저녁 노을 밝게 비춰 푸르르구나.
鐵笛亭
철적정
何人轟鐵笛,噴薄兩崖開。千載留馀響,猶疑笙鶴來。
어떤 이 철적(鐵笛)을 불어대니, 옅게 뿜어나와 절벽 양쪽으로 퍼지네.
천년을 울려 소리가 남았으니, 오히려 선학(仙鶴)이 날아오는 듯하네.
釣磯
조기
削成蒼石棱,倒影寒潭碧。永日靜垂竿,茲心竟誰識。
깍아지른 푸른 암벽 치솟으니, 푸른 그림자는 찬 연못에 비스듬히 비치네.
하염없이 낚시 드리우자니, 누가 이 마음을 알아줄까.
茶灶
다조
仙翁遺石灶,宛在水中央。飲罷方舟去,茶煙裊細香。
신선이 남겨놓은 돌 아궁이, 물 가운데 완연하구나.
다회를 파하고 배 돌려 가려니, 은은한 향내 품은 차 연기가 몽글거리네.
漁艇
어정
出載長煙重,歸裝片月輕。千巖猿鶴友,愁絕棹歌聲。
갈때는 짙은 연기 뿜으며 나아가더니, 올적엔 가벼이 조각달 실었네.
수많은 바위엔 원숭이, 학들이 벗하고, 뱃노래 소리에 근심 덜어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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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보았습니다.
잘라서 2~3개의 후기로 올려주시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