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영의 사이-코노믹스] #1. 토양 병해충 방제용 마이크로파 침투가열
류준영
토양 병해충은 이제 마이크로파로 소탕 가능! 10년 휴경 필요 없어졌다
한국전기연구원 정순신 박사팀 '마이크로파 침투가열 기술' 선보여
방제전문 주은케어팜 기술 이전 '토양가열식 병해충 방제장치' 준비 중
아스팔트-콘크리트도 가열... '블랙아이스' 제거 및 포트홀 보수도 가능
곤충은 알→애벌레→번데기→성충 단계를 밟으며 자랍니다. 비즈니스 모델도 비슷한 과정을 겪습니다. 기초·응용 연구개발→시제품 개발→기술 검증→상용화 순으로 말이죠.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그 자세한 과정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우주선이나 우주복을 만드는 재료인 ‘폴리테트라플루오르에틸렌’이 어쩌다 주방에서 쓰는 프라이팬에 응용됐는지 같은 그런 과학과 기술의 이면에 있는 얘기들 말이죠. ‘류준영의 사이-코노믹스’는 ‘잘 나가는’ 딥테크(첨단기술) 스타트업을 분석합니다. 하나의 기술이 여러 차례 탈피 과정을 지나 생활에 실제 쓰이는 제품·서비스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여드릴게요. 첫번째는 마치 전자레인지처럼 마이크로파를 이용, 땅을 가열해 병충해를 방제하는 '마이크로파 침투가열' 기술을 소개합니다. '류준영의 사이-코노믹스(Sci+conomics)에서 갓 태어난 기술의 완전변태 과정을 함께 탐험해보세요. [편집자 주]
2023년 12월 20일, 한국전기연구원 정순신 박사팀은 마이크로파를 활용해 전자레인지처럼 땅을 찌는 장치를 개발했다. / 사진제공=류준영
농업 생산량 확대의 일등공신, 마이크로파의 이유 있는 변신
2024년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기상만큼 낙관적 기대가 피어오르지만, 우리 생활 어디나 숱한 리스크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도사린다. 필자에게 가장 큰 우려되는 점을 꼽으라면 ‘이상기후’다. 2023년 12월 14일부터 사흘간 제주가족여행을 갔었는데 온도가 23도에 가까워 호텔 로비에 있는 관광객 대부분이 반팔 차림이었다. 그러다 16일 오후 들어 영하 10도 밑으로 곤두박질치는데 거의 30도에 이른 기온차는 공항과 항만, 도시를 마비시키기 충분했다.
특히, 기후변화는 각종 외래 병해충을 불러들여 작황 부진을 초래하고 있다. 필자도 작년 경기 일산에 4평 남짓한 주말농장을 운영했는데 예상치 못한 병충해로 고추 농사를 모두 망치는 등 곤욕을 치뤘다. 이뿐 아니라 사회적 불안과 공포도 야기한다. "물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살인개미' 붉은불개미의 전례없던 상륙·확산으로 방역 당국이 '초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지난 연말 해결사처럼 등장한 기술 하나가 있다. 바로 ’마이크로파‘다.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에 이어 식량도 무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정부도 식량안보를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상황에서 마이크로파는 국내외 병충해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농업 생산량을 두 배 이상 올려줄 ’효자기술‘로 떠오른다. 본래 목적과 다른 곳에서 꽃핀 기술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이크로파의 ’이유 있는 변신‘을 들여다보자.
적 전투기 탐지하던 기술로 병해충 태워죽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파는 인간 세상에서 이미 열일하고 있다. 이를테면 적 전투기를 탐지하기 위해 개발한 레이더는 마이크로파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마이크로파는 진동수가 1GHz에서 300GHz까지, 파장이 1mm에서 1미터까지인 전자기파를 일컫는다. 파장이 짧고 빛과 같이 직진·반사·굴절·간섭 따위의 성질을 지녔다.
마이크로파는 전자레인지로 응용개발되면서 생활에 편리함과 함께 막대한 경제적 이윤을 안겼다. 이뿐 아니라 통신, 텔레비전에서도 폭넓게 쓰인다. 이처럼 산업에 줄곧 이용돼온 마이크로파가 이번엔 농업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줘 주목을 이끈다.
2023년 12월 20일, 한국전기연구원 정순신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토양 병해충 방제용 마이크로파 침투가열'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간단히 말해 전자레인지처럼 땅을 찌는 장치다. 땅속 30cm 이상, 최대 100도까지 가열할 수 있다. 농작물 수확이 끝난 땅에 마이크로파로 열을 가해 땅속 병해충을 죽이는 것이다.
한국전기연구원 정순신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토양 병해충 방제용 마이크로파 침투가열' 기술의 설비 모습. / 사진제공=류준영
성주참외, 인삼... 이제 장기 휴경하지 않아도 된다
병해충은 고온에서 저항성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개미같은 곤충은 50도, 선충은 60도, 병균은 80도에서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땅은 보온성이 있어 한 번 가열하면 잘 식지 않아 병해충을 완전 사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 세계적으로 흙속 유해 병해충을 사멸시키는 마이크로파 방제 연구나 상용화 사례는 아직 없다.
이 기술이 보편화되면 가장 먼저 사라질 단어는 ‘연작장해’와 ‘휴경’이다. 연작장해는 같은 밭에 연이어 같은 작물을 심으면 수확량과 품질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토양 전염성 세균, 곰팡이, 선충 등 병해충 발생 문제가 가장 크다.
경북 성주군의 특산물인 참외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 경작지를 찾아 심어야 한다. 뿌리썩이선충 감염률이 늘어 연작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삼도 수확 후 10년간 휴경한다. 인삼에서만 발견되는 뿌리썩음병균 때문에 약 5년이 걸리는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다.
하지만 정박사팀의 연구가 농가에 보급되면 긴 휴경 없이 같은 땅에서 작물을 연속적으로 재배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정 박사팀은 방제장치 전문기업 주은케어팜과 함께 이 기술을 토대로 한 ‘토양 가열식 병해충 방제 장치’를 만들고 있다.
최문헌 주은케어팜 대표는 “밭갈이 할 때 마이크파로 한 번씩 소독해주면 그 다음해에 또 재배를 할 수 있다”며 “농업 생산성 향상과 농가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농약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농약이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생태계 파괴, 약제 저항성 증가, 잔류 독성 등의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대안 마련이 시급했다.
산업용 전자레인지에 쓸 ‘적열적소 기술’ 응용
전자레인지는 가장자리냐 중간이냐에 따라 음식의 따뜻해짐 정도가 다르기 마련이다. 전자레인지는 피가열물(음식물)을 한정된 범위 내에서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회전시키면서 데우는 방식인데, 시시각각 달라지는 온도 분포를 반영하지 못하니 가열되는 곳은 더 뜨거워지고, 그렇지 않은 곳은 계속 미지근한 현상이 발생한다.
정 박사팀의 ‘토양 병해충 방제용 마이크로파 침투가열' 기술은 그전에 개발된 ‘스마트 전자레인지’ 핵심 원천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이는 전자레인지 내 원하는 위치에 필요한 만큼의 열을 가할 수 있는 기술이다.
정 박사는 “1~2%의 주파수 조절에 따라 가열 위치를 제어하는 기술로, 사용자가 원하는 곳을 필요한 만큼만 가열할 수 있다”며 “애초 반도체, 자동차, 탄소섬유, 다이아몬드 등의 각종 생산공정에 사용되는 산업용 전자레인지에 적용할 기술이었는데 이흥식 연구관이 아이디어를 내놔 농업 분야에 적용해본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주파수 1%가 작아보이지만 이만큼 조절하면 파장 변화를 기존 대비 100배 크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이크로파 침투가열 기술은 호주 등 농업 선진국에서 일부 시도된 적이 있지만, 마이크로파의 파장을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마이크로파 공간 분포를 조절해 가열 위치를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게 된 건 세계 최초다. / 사진제공=류준영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도 가열 가능, 블랙아이스 제거 등 다양한 쓰임새 예고
농림축산검역본부 이흥식 농업연구관이 이 기술을 보고 “이렇게 바꿔 개발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해 지금의 연구결과물을 얻었다.
사실 마이크로파 침투가열 기술은 호주 등 농업 선진국에서 일부 연구가 진행중이다. 다만, 마이크로파가 쉽게 흩어지고 땅속 약 10cm 이상 깊이 침투하지 못해 잡초 제거 정도로만 활용하는 수준에 그친다.
반면, 정 박사팀은 마이크로파의 파장을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마이크로파 공간 분포를 조절해 가열 위치를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다. 연구팀이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땅속 40~50cm 가까이 온도가 올라갔고, 거기에 넣어뒀던 개미들은 전부 죽었다. 실질적으로 병해충을 살균하는 효과를 입증한 것이다.
이 기술은 향후 항만, 공항에 출몰하는 흰개미, 붉은불개미, 열대불개미 등 외래 병해충의 서식지를 바닥을 부수지 않고 박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또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도 가열할 수 있어 '겨울철 도로 위 살인자'로 불리는 블랙아이스를 제거하는 용도나, 국도, 지방도 등 주요도로 포트홀(도로파임 현상)과 균열을 보수하는 데 쓸 수 있다.
글쓴이 류준영은
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한양대학교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지디넷코리아, 이데일리를 거쳐 머니투데이에서 벤처·스터트업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자협회 선정 ‘2020년 대한민국과학기자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