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앞서 어디서 이런 배우들을 발굴하는지가 의문이다. 마녀의 김다미가 이런 느낌이었거든.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에 앞서 스크린을 뚫고나올 것 같은 당돌함에 흠씬 두들겨맞은 느낌? 이것도 하나의 연대기라 해야 할까? 프랑스 영화 [니키타]의 안느 빠릴로가 어떤 의미에선 김다미와 김혜준의 조상님 아닐까.
[친구]란 영화를 찍었던 삼일극장을 내가 어떤 영화에 혹해서 갔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친구]를 찍기 훨씬 전으로 기억하는데 동시개봉관 삼일은 그날따라 두 편 모두 기대 이상으로 빼어난 영화를 상영하여 나를 매료시켰다. 3류 극장이니 티켓 가격도 저렴했는데 영화까지 미쳤으니 그날은 횡재한 날이 분명하다.
거기서 발굴해낸 기막힌 영화가 [니키타]! 뤽베송의 [니키타]. 조금의 기대도 없이 봤던 영화가 너무 대박이어서 가슴 벅찼던 날. [니키타]는 내겐 불멸의 영화다.
친구들과 방탕한 삶을 사는 마약쟁이 10대 소녀 니키타, 역시나 친구들과 휩쓸려다니다 여러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하지만 그녀만의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단초가 되었을까, 형량 대신 졸지에 비밀 정보기관의 킬러로 키워지게 된다.
스토리야 지금은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이런 내러티브의 언더커버적(?) 시효는 바로 니키타라 생각하면 된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건 아닌데 영화의 포맷 자체에 미혹된 나머지 이후 전 세계가 약속한 것처럼 리메이크 작을 내놓는다. 미국에선 [니나]로 나왔고 홍콩도 역시 제목은 잊었지만 아류 작을 만들어 극장에 걸렸다. 나는 어지간하면 각 나라의 리메이크 작들을 다 찾아서 봤다. 당시 한국은 만들었는지 안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니키타의 흔적은 곳곳에서 표류 중인 것은 분명하다.
최근 들어 김옥빈이 나왔던 [악녀]가 [니키타]의 분신이다. 치맛자락 찍 찢으며 창문 틈으로 총구 들이대는 신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니 [악녀]는 [니키타]의 손녀 뻘이라 보면 정확하다. 이런 시퀀스들은 바로 [니키타]가 원조니까.
이후 홍콩에서는 성룡 유덕화 홍금보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좀더 세련되게 다듬어 [화소도]란 영화로 개봉되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뤽베송이란 네임밸류는 [레옹] 이전과 후로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 이름이 없을 때 내놓은 영화가 [니키타]지만 이미 그는 흥행관 별 상관 없는 [그랑부르]란 영화로 어지간히 찬사를 받고 있는 연출력이 뛰어난 시네아스트로 대접은 받고 있었다.
안느 빠릴로는 내가 볼 땐 연기가 아니라 [니키타] 그 자체였다. 마약에 찌든 삶을 사는 여자, 당장 내일 어떻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막장 10대 소녀,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았기에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서도 감정 이입이 없는 킬러 그 자체!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남자와의 연애 시퀀스도 남달랐다. 어쩜 저리도 인간이 발칙할까!
말과 행동 그리고 애정표현이나 베드신도 남자 앞에서 원색적이었고 당돌했다. 연기란 게 저런 게 아닐까! 물자체 그 자체로 육화되는 것. 원본과 복사본을 구분할 수 없는 것! 난 그녀의 영화를 더 찾았으나 더이상 볼 수 없었다. [니키타] 외엔 이렇다 할 출연작도 히트작도 없었으니까. 뤽베송, 알고보면 여성편력으로 유명하다. 안느와도 부부였던 적이 있고 이후 자신이 발굴하여 영화를 찍었던 여러 배우들과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던 걸로 유명하다.
뤽베송 얘길 꺼낸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액션 느와르로 입문하는 문! 그 자체! 대한민국 액션느와르는 뤽베송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뤽베송 영화의 총격씬 특징 중 하나는 밀폐된 공간에서의 스릴과 서스펜스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고어적이고 느와르한 피튀김. 그리고 실내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비정한 활극. (뭐 그렇다고 이런 류의 액션이 뤽베송 만의 시효라거나 전유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이미 한소희의 [마이네임] 때도 이와 유사한 시퀀스가 나온다.
오랫동안 못 본 딸과 아버지와의 만남이 몇 인치짜리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과 사로 갈리는 장면.
그리고 [레옹]에서도 문과 문 회랑 그리고 천장도 유용하게 쓰인다. 마틸다는 몇 인치짜리 문 하나를 두고 죽음의 문턱에서 기사회생한다.
한국 드라마/영화의 뚜렷한 특장점이라면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재현에도 있다. 물론 연출가나 드라마에 따라 다르지만 상당한 인정받는 한국 드라마/영화에서 심지어 이 드라마까지도 뛰어난 재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보듯 피 철갑하는 늑대들 CG도, 화려한 액션씬도 그렇거니와 흉내나 시늉이 아니라 마치 실지인 것처럼 보여준다는 것.
그리고 주조연을 비롯 심지어 단역까지도 연기를 허투루 하는 배우를 쓰지 않는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쇼핑몰], 비록 몇 편 못 봤지만 대단히 잘 만든 느와르한 액션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액션들을 요즘은 시간만 주면 그냥 뚝딱 하고 찍어내는 느낌이 들정도로 잘 만든다. 한국 영화드라마는 헐리우드 외엔 적수가 없는 것 같다.
첫댓글 삼일, 삼성, 보림극장이 생각나네..
그랑부르 니키타 레옹 제5원소 택시 등등
이사람의 영화에는 배경음악이 기가 차게 어울림.
"서울의 봄" 방금 보았네..
엔딩 후의 음악이 감동이네..
안 보았으면 추천함.~
내가 아가 그런걸 보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