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 김다위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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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14)
사무엘처럼, 중보의 사명을 멈추지 말라
삼상 12:1-25 (봉독: 17-25)
2024. 6. 16.(주일) 1~4부.
지난주까지 말씀함께 본문이 ‘전도서’였습니다.
주초에 저희 초등학교 5학년 막내가 어린이 예수동행일기 본문인 전도서를 묵상하고 그날 있었던 사건을 일기로 쓴 부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날 묵상 본문은 전도서 9장 18절이었습니다.
“[전 9:18, 쉬운성경] 지혜는 무기보다 낫지만, 한 사람의 죄인이 다수의 행복을 파괴하고 만다.”
막내가 그날 일기를 짧게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참 신기하게도 아침에 이 말씀을 읽고 학교에 갔다. 오늘 체육시간에 내가 지혜롭게 생각해서 체육 시간에 경기를 이길 계획을 짰는데 내가 친구들에게 이 계획대로 잘 될 거라고 말하자마자 우리 팀이 압도적으로 졌다 ㅠㅠ 그래서 내가 그 (아침에 읽은) 그 죄인임을 깨닫고 잘못한 죄를 주님께 회개하고 앞으로 그러면 안 되겠다고 회개하였다. 오늘 예수님은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직접 알려주신 것 같다.”
여러분, 초등학생도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면, 그 어리석은 계획이 다수의 행복을 파괴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짜낸 지혜를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지혜란, 바로 하나님이라는 왕으로는 충분치 못하여, 인간 왕을 구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사무엘상 12장 본문은 보통, 사무엘의 고별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아직 사무엘은 완전히 은퇴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직책을 사울에게 넘긴다는 점에서 은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무엘은 완전히 사역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9장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오히려 사무엘은 자신의 사역을 새롭게 재정의합니다. 앞으로는 기도와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것이죠.
바로 오늘 본문에서 사무엘은 공식적으로 백성들을 다스렸던 직분을 사울에게 이양합니다.
그러면서 지난날에 대한 역사를 회고하는데, 그중에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하나님이 왕인데도 불구하고 왕을 요구하며 그 사람 왕을 의지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큰 죄라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이러한 영적 흐름은 출애굽 이후부터 지속되었던 패턴이었음을 지적합니다.
애굽의 종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셔서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주셨고 가나안 땅에 정착시켜주셨습니다.
문제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그들이 주 하나님을 잊어버린 겁니다. 9절입니다.
[삼상 12:9] 그런데도 백성은 주 그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조상들을 블레셋 사람과 모압 왕과 하솔 왕 야빈의 군사령관인 시스라에게 넘기시고, 우리 조상들을 쳐서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블레셋이나 모압 왕, 하솔 왕과 같은 주변 국가들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들이 지금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주 하나님을 잊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쳐서 정복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다시 한 번 하나님께 회개하며 호소하지요. 10절입니다.
[삼상 12:10] 조상들은 주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으면서 '우리는 주님을 버리고, 바알 신들과 아스다롯 여신들을 섬기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만을 섬기겠습니다' 하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간구를 들으시고 기드온과 입다와 사무엘을 보내어 건져주시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겠지요? 아닙니다.
그들이 범한 죄는 바로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 왕을 구한 죄입니다. 주님으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삼상 12:12] 그런데도 암몬 왕 나하스가 우리를 치러 오자, 주 하나님이 우리의 왕인데도, 그것을 보았을 때에 당신들은, '안 되겠습니다. 우리를 다스릴 왕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주님으로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어떻게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될 수 있나요?
믿음이 약해지고 결국 하나님을 잊게 되는 영적인 망각 때문입니다.
이 사사기 시대는 4단계의 영적 사이클이 있었습니다. 4단계 모두 S로 시작하는데요.
1단계는 Sin, ‘죄’입니다.
백성들이 죄를 짓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과 같은 우상들을 섬깁니다.
2단계는 Suffering ‘고통’입니다.
이 고통은 죄로 인한 고통이요 고난입니다. 주변 나라가 강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범죄하였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민족들에게 침략을 당하고 그들의 종이 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가가 식민지가 되거나 기업이 부도나거나, M&A로 인수 합병되는 겁니다. 인수 합병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하나의 기업이 사라진다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인수 합병을 말합니다.
3단계는 Supplication ‘간구’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단계입니다.
4단계는 Salvation ‘구원’, 구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평화를 되찾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영적 네 단계의 사이클입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사이클이 반복되지 않게 하거나 늦추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 사이클이 반복되는 이유는 바로 4단계 구원Salvation과 1단계 죄Sin 사이에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망각 때문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화로운 시기가 도래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제1차, 2차 대각성 운동의 역사를 보면, 부흥이 일어났던 도시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언제 부흥이 있었냐는 듯이 차갑게 식어 버립니다. 믿음이 약해지고 심지어 병이 듭니다.
“하나님으로는 안 되겠어. 하나님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심지어) 하나님 없어도 돼.”
이것이 약해진 믿음, 병든 믿음입니다. 성경에 병든 믿음에 대한 표현은 없지만, 로마서 4장 19절 보세요.
[롬 4:19] 그는 나이가 백 세가 되어서,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또한 사라의 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sick, diseased) 않았습니다.
여기서 약해지지 않았다는 단어가 ἀσθενέω 아스세네오 인데, 원래 의미는 ‘병들다 sick, diseased’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들어 몸도 약해지니 본래는 믿음이 약해지고 병들만도 한데, 병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믿음이 약해지고 믿음에 병이 듭니다. 결국 주님을 잊습니다.
질병에도 증상이 있듯이 영적인 망각과 병들어가는 믿음에도 전조 증상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의 시간들이 점차 줄어듭니다.
새벽기도나 아침기도, 정오기도, 저녁기도가 점차 사라집니다.
또한 성경을 읽던 습관들이 이제는 일주일에 두세 번으로 줄어들거나 불규칙하게 바뀌어 갑니다.
또한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다가 한 달에 한두 번으로 바뀝니다.
혹은 정기적으로 참석은 하는데 뭔가 조금씩 갈망이 사라집니다. 열정이 흐려집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만나면 전도하거나 간증하던 자였는데, 어느덧 간증이 아니라
세속적인 성공과 부에만 몰두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합니다.
예전에는 구제와 나눔에 적극적이었는데, 이제는 사랑이 식고 인색합니다.
그러다가 어느덧 주님을 잊어버리게 돼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돌이켜 보세요.
교통사고로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일, 심각한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일,
우리의 자녀가 어린 시절에 호흡기 문제로, 피부 문제로, 언어, 학습 장애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건강하게 자란 일... 다 저희 가정에 있었던 일입니다. 돌아보면 어느 순간도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몇 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나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분명 감사와 찬양을 하던 입술이, 이제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입술로 바뀌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성전에 달려가 기도하고, 저녁마다 금식하고, 1일 금식, 3일 금식, 이런 식으로 금식하며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만 힘든 일이 나타나면 해결방법이 없나 하고 내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하거나, 의지할만한 사람을 찾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이 모두 영적 기억상실증, 믿음이 약해지는 전조 증상들입니다.
만일 이러한 증상들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고 있다면, 지금 4단계 사이클에서 1단계 죄로 넘어가고 있거나,
아니면 벌써 1단계 죄로 넘어가고 2단계 고난이 터지기 일보 직전임을 아셔야 합니다.
사무엘은 사사기 시대의 이러한 영적 망각의 역사를 주목하면서,
사실 왕정제도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왕정 제도가 세워진다고 해도, 왕과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만을 섬긴다면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14절입니다.
[삼상 12:14] 만일 당신들이 주님을 두려워하여 그분만을 섬기며, 그분에게 순종하여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으며, 당신들이나 당신들을 다스리는 왕이 다 같이 주 하나님을 따라 산다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사울 왕과 백성들이 다 같이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믿고 경외하며 순종한다면,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왕정제도를 폐지하지 않으시고 나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을 세우셔서 왕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가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떠나는 그 연약하고 병든 믿음이 더 큰 문제라는 겁니다.
필립켈러라는 사람이 쓴 책 중에 "양과 목자"라는 책에 보면 자기가 키우던 암양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양은 건강하고 털 또한 훌륭했습니다. 새끼도 쉽게 잘 낳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뚜렷한 단점이 있었습니다. 어떠한 풀밭을 가든 늘 다른 해안가를 서성거리며 기웃거리는 특성이 있었답니다.
저편에 다른 풀이 더 좋지 않을까?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 필립켈러가 그 양 이름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어정뱅이 마나님"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선한목자를 놔두고, 어정쩡하게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양. 그 양이 쳐다보고 있는 저편에 뭐가 있는가? 그곳의 풀은 황폐하고 메말라 형편없었다는 거예요. 양이 알 리가 없지요. 이 “어정뱅이 마나님”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이전에, 이미 모세를 통해 나를 잊지 말라고 경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신 8:11-14] 11 "오늘 ...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12 당신들이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거기에서 살지라도, 13 또 ... 은과 금이 많아져서 당신들의 재산이 늘어날지라도, 14 혹시라도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당신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은 잊을까봐 경고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잊는 것은 단지 물건 잃어버리는 것과 달라요.
하나님을 잊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잊으면 우상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어떤 분이 이런 고백을 하셨어요.
“예수님, 결국은 돌아 돌아 주님께 다시 왔습니다. 저는 세상의 즐거움만을 쫓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공허해지고 허전해지는 갈급한 제 마음 아시고, 제 영혼을 채워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죄투성이고 어리석은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지길 원합니다. 다른 것 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따르고 예수님만 생각하게 도와주세요!”
그가 주님께 다시 돌아왔다는 말은 그는 본래 하나님을 알던 자였다는 뜻이죠.
그러다가 그는 주님을 어느 때부터인가 잊기 시작한 겁니다. 분명히 전조 증상이 있었을 겁니다.
본인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입니다.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이 더 좋아서. 하나님을 떠난 겁니다.
그것들이 자신의 영혼을 채워줄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공허한 거짓 신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분의 고백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백입니다.
주님이 아닌 다른 공허한 우상에, 명예에, 성공의 덫에 빠져 사는 이들이 우리 아닙니까?
지금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고 믿음이 약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부이신 하나님을 두고, 다른 왕을 요구한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그들의 죄를 드러내며 회개를 요청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왜 전부인지 그 근거로, 추수 때인 건기에 갑자기 천둥과 비가 내립니다. 농사짓는 이들에게 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은 건기 때라도 비를 내리시는 분, 날씨와 생업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통해 보여주신 겁니다. 바알이 비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때 사람들이 주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들의 죄를 고백하지요.
[삼상 12: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간청하였다. "종들을 생각하시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셔서, 우리가 죽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했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돌아서면, 우리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죽이려하는 분이 아닙니다.
자녀가 잘되라고 부모가 훈계하는 것처럼, 우리를 살리시려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보다 더 기뻐하고, 더 의지하는 대상이 있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자,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요청에 사무엘이 그들을 격려하며, 약속의 말씀을 전합니다. 22절입니다.
[삼상 12:22] 주님께서는 당신들을 기꺼이 자기의 백성으로 삼아 도와주시기로 하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자기의 귀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기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무엘의 가장 중요한 사명, 중보기도
그리고 사무엘은 은퇴 이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사명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그것은 바로 중보 기도입니다. 물론 사무엘은 지금까지도 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기도로 태어난 사람이고, 기도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은퇴한 이후에는 기도와 가르치는 사역에만 집중하겠다고 결단합니다. 23절입니다.
[삼상 12:23] 나는 당신들이 잘 되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일을 그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들이 가장 선하고 가장 바른길로 가도록 가르치겠습니다.
여기서 사무엘의 중보기도 대상은 누구인가요? 현 세대도 포함되지만, 바로 ‘다음 세대’입니다.
이미 자신과 함께 나이든 세대는 인생을 거의 다 살았습니다.
지금 사무엘이 기도하겠다고 하는 이 대상은 이제 앞으로 사울과 함께 나라를 지탱할 다음 세대입니다.
왜 사무엘이 기도하는 일을 그치는 것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영적 사이클 때문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사이클이 한 세대 안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고 다음 세대로 이어졌을 때 주로 영적 망각이 발생합니다.
즉 부모 세대는 하나님을 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몸으로 배웠지만, 다음 세대는 모릅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세대를 보내다가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세대’가 됩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서 1단계 죄가 다시 시작되는 겁니다.
이 반복되는 사이클의 문제의 핵심에는 바로 신앙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는 부분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무엘은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세대, 전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겠다는 겁니다. 이 기도를 쉬게 되면 이들이 하나님을 잊고 범죄할 것이므로,
기도를 쉬는 것은 곧 하나님께 죄라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서 백성들이 가장 선하고 가장 바른 길로 가도록 기도하며 가르치겠다는 사무엘은
더 나은 사무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바른 길로 돌아가도록,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배신자, 변절자라고 욕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범죄할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눅 22:31-32] 31 "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밀처럼 너희를 체질하려고 너희를 손아귀에 넣기를 요구하였다 32 그러나 나는 네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꺾이지 않는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기도입니다. (중.꺾.기)
꺾이지 않는 믿음, 병들지 않는 믿음은 꺾이지 않는 중보 기도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세 번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향한 중보기도를 꺾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베드로는 커다란 실패 이후에 다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바로 주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꺾이지 않는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히 7:25]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끊임없는 중보기도를 통해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무엘처럼, 누군가를 위해, 배우자를 위해, 자녀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중보의 사명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미국에 있을 때 한 가정의 딸이 대학에 가더니 처음에는 교회를 다니다가 상처를 받고 교회를
안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쏟아놓기 시작했어요.
그 부모님이 얼마나 낙심했는지 모릅니다. 학교는 남들이 다 부러워할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만
믿음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 어머니가 본래 새벽기도를 나오셨지만 그때 이후로는 거의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기도하러 나오셨어요. 또한, 금요성령집회마다 오셔서 기도하셨어요.
그리고 저와 아내에게 얼마나 기도 부탁을 하셨는지 몰라요. 사실 담임자 입장에서 새벽기도 오시면 작은 교회다보니, 누가 오셨는지 늘 보이니까 아무래도 더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저의 주일 말씀 원고를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하셔서, 어머니가 그 딸이 보든 말든 무조건 매주 딸에게 보내셨어요. 그렇게 3년 넘게 하신 것 같아요. 그러던 중, 2021년에 저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 소식이 들려왔어요.
딸의 믿음이 회복되었다는 겁니다.어느 날 딸이 돌아오더니 그러더래요.
"엄마, 나 다시 교회 나가요. 나 친구들하고 같이 모여서 성경 읽고 성경 공부도 해요."
그렇게 학기를 마치고 돌아온 딸과 너무나 기뻐 가정예배를 함께 드렸다고 합니다. 놀라운 주님의 역사입니다.어떻게 된 거죠? 저는 압니다. 그 엄마가, 아빠가 그 딸을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그러나 그 기도는 그저 부모님의 기도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선한목자 되신 주님의 중보기도였습니다.
기도가 안 되고 낙심되나요? 주님으로 충분하지 못합니까?
그때 사무엘이 이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삼상 12:24] 당신들은 주님만을 두려워하며, 마음을 다 바쳐서 진실하게 그분만을 섬기십시오. 주님께서 당신들을 생각하시고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하셨는가(what great things he has done for you)를 기억하십시오.
기도가 안 될 때면, 하나님께서 과거에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는지를 떠올려보세요. 기억해보세요.
그러면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으신 그 주님께서 과거에 나에게 구원과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하시리라는 믿음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중보의 사명을 멈추지 마십시오.
지난주에 우연히 한 여자 권사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몇 주 전 아들을 군대에 보내신 겁니다. 아들이 훈련소에 입소하게 된 날, 함께 가셨대요.
보통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 있잖아요. 아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안내 방송에 들어오라고 해서 다시 인사할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들이 가더니 조교의 안내에 따라
“부모님께 경례, “충성!”” 그러더니 부모님은 가시라고 하더랍니다.
이 어머니가 아들과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가라고 하니 마음이 다급해진 겁니다.
그래서 아들을 찾으려고 하는데 못 찾았어요. 아들이 키가 큰데 웬걸 다 키가 크니까, 찾지 못하셨대요.
엄마가 아들에게 가려고 하는데 조교들이 “부모님들은 이제 돌아가셔야 합니다. 못 들어가십니다.”
순간, 아들과 어머니가 갈라진 겁니다. 아들은 내게 못 오고, 나는 아들에게 못 가고.
그런데 문득, 이 상황이 되자 무슨 생각이 났느냐면,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서는 것이 이것이겠구나” 싶더랍니다. 왜요? 아들이 믿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 내 아들이 이 상태로 죽으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구나.
아, 내 아들이 믿음이 없이 살다가 죽으면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겠구나.” 이 생각이 드니까,
이 권사님이 아들을 위해 군 생활 기간 많은 기도 제목이 있겠지만,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오직 하나,
“오 주님, 제 아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예수님 믿고 구원받게 해주세요!”
오직 이 기도 외에는 하지 않게 되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짧은 순간, 주님께서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알려주셨는데 중보기도의 사명을 멈추거나 쉬면 이것은 큰 죄악이지요. 결국 아들을 찾지 못하고 헤어질 때, 그 아들과 같은 훈련생들 무리에게
“아들아 사랑해! 잘 다녀와!” 외쳤답니다.
나중에 아들에게 문자가 왔대요.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도 못했네요...”
여러분, 어머니 입장에서 아들이 믿음이 별로 없고 하나님 없이 산다고 “너 지옥가라! 넌 끝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지요. 부모는 자녀를 절대 포기하지 못합니다.
정확히 이것이 영적 부모인 사무엘의 심정입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가 가장 슬플 때 가장 많이 기도했듯이, 사무엘도 백성들의 죄로 가장 슬플 때 가장 많이,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비록 자식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제쳐두고 왕을 구하는 큰 죄를 범하여 가슴이 찢어지지만,
“나는 너희를 위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 중보기도 사명을 멈추는 죄를 짓지 않겠다!
나는 기도로 태어났고 지금까지 기도로 살았으며, 은퇴 이후에도 기도를 쉬지 않겠다!”
사무엘의 이름의 뜻이 ”하나님이 들으셨다“입니다. 기도는 그의 삶이고, 그의 삶은 기도였습니다.
몇 주 뒤에, 아들로부터 연락이 왔대요.
”엄마, 저, 군대에 있는 교회에 나가고 있어요... 교회가 재미있어요.“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가요? 물론 교회 나간다고 구원은 아니지만, 구원으로 가는 시작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겁니다. 그리고 주님은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에 귀 기울이십니다. 그러므로 중보의 사명을 멈추지 마세요.
그리고 주님은 항상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순간에도 낙심하지 마세요. 왕을 구하는 큰 죄를 범했어도, 회개하십시오.
우리가 영적 망각에 빠졌어도, 우리가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가면,
주님은 우리의 죄를 잊으시고 병든 믿음을 치유하십니다.
[히 8:10, 12] 10 ...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2 내가 그들의 불의함을 긍휼히 여기겠고, 더 이상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이것이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를 근거로 언제나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처럼, 중보의 사명을 멈추지 마십시오.
깨어 항상 기도할 때, 연약하고 병든 믿음이 치유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더 나은 사무엘이신 예수님께서 항상 여러분들을 위해 중보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주님은 결코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