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여행기
이 순 자
과천에서 15년 동안 함께했던 청솔회 모임에서 해외여행을 추진하던 중 시간이 짧게 갈 수 있는 베트남을 여행지로 정하였다.
모두 직업을 갖고 있고, 긴 시간을 비울 수 없는 관계로 3박 5일이라는 짧은 여행지를 선택 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상품을 북부베트남으로 정하니 하노이와 땀꼼, 하롱베이가 되었다.
청솔회 회원들은 과천에서 부동산을 하는 여성들의 모임이다.
회원10명은 남편의 내조와 자녀들의 교육을 확실히 하며 바쁘게 사는 여성들이다.
회원들을 소개 한다면
얼마 전 관절수술로 낭군님의 지극한 보호를 받고 계신 김숙희 형님
왕년의 여왕으로 예나 지금이나 젊게 사시는 김명자형님
과천의 효녀로 역시 자식들의 지극한 효도를 받고 계신 이재순 형님
군 입대 앞둔 아들보다 먼저 여행간다고 안스러워 하던 남현순아우
과천을 떠나서도 열심히 출근하며 남편과 자녀들의 보살핌에 극진한 김이자아우
바쁜 시간 속에 시간 낼 수 없는 회원들을 위해 새로 여권도 내주며 여행을 진행하였던
총무 오미경아우
과천의 스타, 과천의 젊은 언니, 명가수 임재실아우
몸이 약해 여행지에서 회원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병원에서 약을 받아서 동행한 이용자아우
보길도의 효부로 운동선수 아들을 둔 이승연아우
그리고 과천에 81년에 이사와 과천사람이 다 되었으나, 얼마 전 평촌으로 이사 간 회장 이순자 본인
이렇게 10명의 회원들은 마치 소녀시절 수학여행을 가는 분위기로 여행을 준비하였다.
베트남 알아보기
1. 지형
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있는 나라로 정식 명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 nam)이다. 한문 명칭은 월남(越南). 옛날에는 안남(安南)이라고도 하였다. 면적은 329.560㎢. 인구는81,098,416명(2002). 북서쪽에서 남동쪽까지 최대길이는 약 1370㎞이고 동서간의 최대너비는 북쪽에서 550㎞, 남쪽에서 340㎞ 정도이다. 동쪽과 남쪽은 통킹만·남중국해에 면해 있고, 서쪽은 라오스·캄보디아·타이, 북쪽은 중국과 접하고 있다. 수도는 하노이이다.
베트남은 중서부를 통과하며 남북으로 뻗은 안남산맥, 북부의 홍강 삼각주, 남부의 메콩강 삼각주, 동부의 해안평야 등 지형상 4부분으로 나뉜다.
2.역사
베트남의 역사는 BC 200년 무렵 베트남어를 쓰는 민족언어 집단이 남베트(Nam Viet, 南越)라는 독립왕국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베트남은 오랜 지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중국에 1000년, 프랑스에100년, 일본에 5년 그리고 베트남전쟁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로부터 스스로 독립하였고 미국을 이긴 유일한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중국지배 1000년
BC 111년 중국의 전한(前漢)에 점령- 939년 吳權(오권)이 중국군을 격파함으로써 북부지역이 약 1000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프랑스에 100년
18세기 말엽 레왕조에 이어 구엔왕조를 세운 구엔푹안[阮福映(완복영)]이 농민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프랑스인의 힘에 의존하면서부터 점차적으로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일본에 5년
제 2 차세계대전중인 1941년 일본군이 베트남으로 진주해서 45년 일본군이 퇴각함
베트남전 20년
7년 동안 프랑스는 독립을 반대하였고 호치민이 프랑스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제 1 차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에서 베트남이 승리하면서 끝났다. 같은 해 1954년7월 21일에 체결된 제네바협정에 따라 베트남은 북위 17˚를 경계로 소련이 지원하는 북부와 미국이 지원하는 남부로 임시분할되었으나 북베트남의 게릴라 활동과 연계된 남베트남 내 친공산주의자들의 반란에 미국이 개입하게 됨으로써 제 2 차 인도차이나전쟁 곧 베트남전쟁(1955∼75)이 일어났다.
미국은 64년 통킹만사건을 계기로 65년 북베트남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이래 75년 4월 공산군에 사이공이 함락될 때까지 남베트남 정부를 지원하였다. 69년 파리평화회담, 73년 베트남평화협정의 체결을 거쳐 미국은 철군을 시작했으나 전투는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75년 3월 북베트남의 대대적인 공세에 남베트남은 그 해 4월 무조건 항복하였다.
이에 따라 남베트남공화국 임시혁명정부가 남베트남의 정권을 장악하자, 75년 11월 남북통일에 관한 정치협의회가 열렸다. 이 협의회의 결정으로 76년 4월 총선거를 실시한 뒤 남북이 통합하여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성립하였다.
통일 후 외국원조의 단절, 낙후성, 심각한 전쟁 후유증, 미국과 서방의 제재 및 봉쇄 정책, 이웃 강대국과의 관계악화, 캄보디아 크메르 정권의 침공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제, 사회, 정치 운용에 관한 개혁을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경제분야는 국가의 통제와 시장기능을 복합적으로 받아들인 혼합경제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 경제체제로의 전환에 따라 많은 혼란을 겪었으나 현재는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1995년 7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가입과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라는 2가지 과제를 실현하였다. 96년 1월부터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에 참가하고, 98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에 가입하는 등 경제면에서도 국제사회에 급속히 통합되었다.
한국과는 1992년 12월 22일에 한·베트남 수교가 이루어 졌으며, 1993년에는 호치민시에 총영사관이 개설되었다
민족
다민족국가로 베트남인이 전체인구의 90%를 차지한다. 대표적 소수민족은 북부의 중국인, 몽족, 타이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 눙족, 타이(토)족 등과 남부의 고산족·크메르족·찬족 등이다. 대나무·목재·벽돌 등으로 지면에다 직접 집을 세우고, 여자는 아오자이라는 민족의상을 입는다. 소수민족은 화전농경을 하며 가축도 사육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과는 달리, 과거 1000년 동안에 걸쳐서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공용어는 베트남어이고 프랑스어·중국어·영어·크메르어도 사용된다. 사상은 유교 철학의 비중이 크며 주요 종교는 불교와 도교이다. 그리스도교(가톨릭), 이슬람교, 호아하오교, 카오다이교 신자도 있다.
장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먼저 생전의 이름을 좋은 이름으로 바꾼다.
지붕에 올라가 생전에 썼던 이름을 3번 부른다.
염을 하고 관을 쓰는데 시신의 얼굴이 보이는 부분은 뚜껑을 한다.
장례 첫날은 조문객을 받지 않는다.
입관 후부터 조문객을 받는다.
조의금 봉투에 망자와의 관계와 친분을 쓴다.
악단이 망자에게 고하고 음악을 연주하면 향3개를 분향한다.
상복은 직계만 흰색 상복을 입는다.
시신이 나갈 때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이 관의 뒤를 쫒고.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이 관의 앞을 간다.
음악은 시끄럽다. 마지막 가시는 길이 즐겁기를 바란다.
3년간 가묘를 만든다.
3년 후 시신을 수습하여 납골당에 모신다.
재산
80~90%가 국가 땅이고 10·20%만 국민에게 분활 하였다.
재산상속은 자유롭다.
농사는 주로 여자가 짓는다. 전쟁의 역사가 여성의 노동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고,
현대에도 여성들이 직장을 다니고, 빈둥거리며 오토바이를 활주하는 남자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주택
주택의 형태는 좁은 면적의 땅을 활용하느라 앞면이 좁고, 뒤쪽으로 긴 장방형을 이룬다.
1층은 주로 점포나 창고로 사용하고, 2층부터 주택으로 사용한다.
집 앞에는 연못을 파는데 이 연못은 진흙으로 되어 있어 정화시설로도 사용하며 물고기나 오리를 키운다.
베트남의 상징적 동물은 거북이고, 국화는 연꽃이다
하노이 공항
현재의 하노이는 서기 1010년 리(Ly)왕조의 초대왕인 리공온이 수도로 선정해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수도의 공식 명칭이 탕롱(승천하는 용이라는 의미)으로 정해졌다. 그러다가 1802년에 왕위에 오른 느웬 아인은 일족의 기반인 중부 베트남의 후에를 왕도로 정함으로써 탕롱이 하노이로 개명되어 오늘날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1945년에 설립된 호치민의 베트남 민주공화국은 다시 하노이를 수도로 결정했다
하노이 공항은 우리의 제주공항과 비슷하다. 그 이유는 하노이 공항을 지을 때 제주공항의 자문을 받아 지었다고 한다.
1975년 수교가 단절되었다가 1992년 재수교 되었다.
거리에는 중앙선이 없고 신호가 오토바이 위주로 낮게 달려있다.
관공서의 출근기간은 오전 6시, 퇴근시간은 오후 4시 반, 그리고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다.
산이 없는 평야지대로 빗물을 받아 호수를 만들어 집수효과와 공원효과를 거두고 있다.
여행1일째 날 (4월14일)
우리는 2005년 4월14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19시40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부 모두 복잡한 일들은 다 잊고 여행만을 즐기기로 하였다.
하노이 노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간 20시 30분, 시차가 2시간 빠르니 하노이까지 5시간 걸린 것이다.
공항은 생각보다 작았다. 우리는 숙소인 Thangloi Hotel로 향했다.
호텔 앞의 대우 자동차
여행 2일째 날 (4월15일)
아침식사는 베트남식의 요리로 뷔페식이었다. 특이한 것은 풍부한 열대과일이 많았는데 달고 맛있었다.
식사 후 우리는 호텔을 둘러보았다.
호텔은 홋또이 호수위에 떠있는 호텔은 습하였지만 운치가 있었다.
1. 땀꼽
2. 호안 키엠(환검호) 호수
환검호는 하노이 중심가에 자리 잡은 둘레 3~4km 정도의 호수이다. 이 호수에 환검호란 이름이 붙은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에서 유래한다. 15세기 여 왕조를 세운 레로이는 호수의 신에게 받은 검으로 명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베트남을 지켰는데 그 뒤 검을 돌려주기 위해 호수로 찾아 갔는데 호수 밑에서 거북이 올라와 검을 물고 돌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환검호 북쪽으로는 시장이 형성돼 있으며, 남쪽으로는 프랑스식 아름다운 건물들이 들어 찬 외교 공관가를 이룬다. 이 호수를 끼고 나 있는 길에는 항상 오토바이와 시클로, 자전거가 붐비고 하노이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는 곳이다. 호수가운데 떠있는 응옥손 섬에는 1865년에 세워진 옥산 사당이 있다.
옥산사당에는 1968년 호수에서 잡힌 2m에 250kg이나 되는 거북이 박제되어 있다고 하는데, 공사 중 이라 관람하지 못하고 돌아 나와야 했다.
여행 3일째 날 (4월16일)
1. 호치민묘소
1969년 사망한 호치민의 묘소는 베트남 국회의사당과 공산당본부 건물의 건너편 광대한 바딘광장 위에 위치한다. 다낭에서 운반해온 대리석으로 지은 웅장한 건물안에 레닌인나 스탈린처럼 호치민의 유해가 유리관 안에 안치되어 있다.
이 묘소에 들어갈 때는 외국인들조차 묘소 200m 전방에서 차를 내려 걸어 들어와야 하며 묘역 내에서는 절대로 입을 열어서는 안되며, 슬리퍼, 반바지 차림으로는 관람이 불가능하다. 카메라나 가방을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어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두 줄로 줄을 맞추어서 입구로 들어서면 엄숙한 근위병과 절제된 실내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묘소 안에서는 경건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호치민의 시신은 검소한 갈색 셔츠를 입고 두 손을 모아 가슴 위에 포갠 채 평화스러운 표정으로 누워 있다.
호지민이 존경한 사람 중 한분이 정약용성생으로 목민관이 지켜야 할 도리를 쓴 목민심서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묘는 36개의 검정대리석으로 연꽃모양을 상징하였으며 광장앞 잔디는 126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1975년 당시 국교를 맺었던 국가의 숫자를 의미한다.
호치민의 이름은 호아저씨라는 뜻의 박호였는데 죽은 후 호치민으로 불리었다.
베트남의 민족적 영웅이면서 사망하기 전까지 소박하고 서민적 생활을 했기에 사후에도 더욱 존경받고 있다. 그의 기일인 9월2일(1969년)이 되면 전국에서 참배객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2. 주석궁(프랑스령 본부건물)
1954년 전투에서 승리한 호치민은 이 건물을 청소부, 정원사, 운전기사들이 사용하게 하고 자신은
그전에 청소부, 정원사, 운전기사들이 살았던 옆의 허름한 건물에서 검소하게 살았다.
현제 이곳은 회의장, 연회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3. 호치민생가
호치민이 살던 2층으로 된 베트남 전통집이 있고 앞의 호수에는 잉어가 있다. 호치민의 유일한 취미는 비단잉어 키우기, 정원 가꾸기였다고 한다. 호수 앞에는 펜나무(인목)와 연리지가 있다.
4. 일주사(한기둥사원)
호치민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일주사는 李왕조의 태종때인 1049년에 지어진 하노이를 대표하는 고찰이다.
한 개의 기둥위에 불당이 올려진 모습 때문에 一柱寺(일주사)라고 불린다.
태종이 연꽃위에서 아이를 안은 관음보살을 꿈에 보고 아이를 얻었다고 해서 관음보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절을 지었다고 한다. 현지인 참배객들이 많이 찾는다.
5. 호치민 박물관 (Bao Tang Ho Chi Minh)
90년 5월 19일, 호치민 탄생 100년이 되는 날에 개관했다. 호치민의 묘 옆에 있는 하얗고 멋있는 건물로 내부장식은 참신하면서 예술적이다. 구소련의 원조를 받아 레닌 박물관의 전문가가 설계와 내부장식을 담당했다고 한다. 호치민 생가의 모형, 애용품, 편지, 혁명과 관계되는 것이 전시되고 있으며, 민족의 독립과 통일에 관련 된 것들과 세계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상영되고 있다.
6. 문묘(文廟)
공자의 묘이다. 11세기에 세워진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다. 특히 그 안에 있는 규문각(奎文閣)은 하노이 상징물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규문각은 유생들이 시낭송하는 것을 참관하는 곳으로 하노이의 대표적 건물로 10만동짜리 지폐의 뒷면 그림이다.
19세기 원조(院朝)시대에 만든 이 규문각에는 82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들 비석은 모두 다른 얼굴을 한 거북 위에 세워져 있고 15~18세기의 300년 동안 2년에 한번씩 행한 과거시험의 합격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석은 200여개가 있었는데 현재 40여개가 복원되어 있다
만세사표-강희제가 쓴 현판으로 “만세상의 스승을 따르라”는 뜻으로 실물은 드불박물관에 있다.
7. 민속학 박물관
다민족국가인 베트남의 특성을 살려 각 민족의 주택을 지어 전시하였고, 전시관에서는 그들의 생활을 볼 수 있었다.
여행 네째날 (4월16일)
1. 하롱베이 국립공원(Halong Bay National Park)
아시아 4대유산중( 장가계,하롱베이,금강산,계림)하나이고 유네스코 세게문화유산에 등재된 하롱베이는
프랑스 식민시대 베트남 여인과 프랑스인 장교사이의 슬픈 사랑을 그린 영화 "인도차이나"와 로빈 윌리엄스의 "굿모닝 베트남"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곳이다. 하노이의 동쪽이 위치한 하롱베이 국립공원은 그 미려한 장관으로 유명하다.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180km떨어진 쾅닌성에 있고, 넓이는 1,553㎢로서 그 일대에 약 1천개의 섬이 산재해있다. 크고 작은 섬이 무려 1,600여 개나 된다. 이 숫자는 이름이 있는 섬만을 합친 것이고 이름 없는 섬까지 더하면 그 숫자가 약 3천여개나 된다.
하롱베이와 용머리 유람선. 하롱베이를 떠다니는 유람선의 뱃머리는 용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하롱(Halong, 下龍)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용(龍)이 바다로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무리의 용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했고,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 내뱉은 보석들이 섬이 되었다고 한다. 깊고 푸른 바다에 솟아있는 기기묘묘한 모습의 바위와 석굴들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우리 모두를 환호하게 하였다.
이 국립공원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일어난 전쟁과 반란은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의 보존 노력은 도만카씨(Mr. Do Manh Kha)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는 복무 중에도 동료들의 도움으로 많은 문화재를 수집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은 이 국립공원 안에 박물관을 지었고, 베트남 전쟁 중인 196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32년 후 1994년에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되었다.
천사의 동굴(원숭이 동굴)1956년 프랑스의 지질학자가 발견하였으나 천혜의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보고하지 않았는데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논문을 역 추적하여 찾아내었다.
띠똡섬-호치민의 러시아 친구의 이름을 붙인 섬으로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주변이 매우 아름답다.
2. 수상인형극
수상인형극은 그 기원을 10세기 델타의 홍강(Red river)에 둔 독특한 예술이다. 이 지역의 농부들은 주변자연 환경에서 찾을 수 있는 자연재료를 이용해 이 예술의 행태를 바꾸어 갔다. 옛날에는 수확을 끝낸 후의 연못과 논둑이 이 즉흥쇼의 주 무대였다. 이러한 예술형태는 북부베트남의 고유한 형태이며, 궁중예술로 발전되었다가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베트남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인형극이다.
오늘날에는 수상인형극은 물이 고인 무대가 있는 곳에서 극이 행하여진다. 인형을 조정하는 배우들은 무대 뒤에서 긴 대나무 막대와 수면 아래 숨겨진 끈으로 인형을 조종한다. 꼭두각시 인형은 나무로 조각되고, 전통 베트남 오케스트라가 배경음악을 연주해주고, 우리나라의 창(昌)처럼 북베트남에 기원을 둔 전통오페라 체오(Cheo) 가수가 꼭두각시의 얘기를 하는 행동에 맞춰서 노래를 한다.
이러한 소극의 주제는 시골생활이며, 베트남 민요가 짙게 묻어난다. 소극에서는 시골의 일상생활과 조부모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베트남의 민화들을 그려낸다. 작물을 수확하는 얘기들, 고기를 잡는 얘기들, 온갖 축제에 대한 얘기들이 주요 하이라이트이다. 전설과 역사 또한 이 단막극을 통해 등장한다. 특히 일상생활을 그린 많은 소극들은 우리나라의 탈춤처럼 풍자와 위트를 연출한다.
우리는 시내에 마련된 사방 7~8정도의 인공연못에서 하는 공연을 보았는데, 총 1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각 단막극은 3~5분정도 공연되었다.
인형들의 동작은 현란하였는데, 몇 사람만의 동작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제 1부-독주, 베트남 민속 악기 합주
제 2부
1. 깃발 퍼레이드
2. 인형극 소개
3. 불을 뿜는 네 마리의 용
4. 피리부는 소년
5. 농부들의 모내기, 밭갈이
6. 개구리 낚시
7. 여우잡기, 오리 가두기
8. 낚시
9. 장원 급제
10. 중국의 사자춤과 비슷
11. 봉황춤
12. 레러이 왕과 그에 얽힌 환검호의 전설
13. 물위에서 노는 소녀
14. 배 경주
15. 유니콘이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
16. 선녀춤
17. 용, 외각수, 거북이, 봉황춤
3박 5일의 짧은 여행 일정에서 일행들은 한 사람도 낙오 없이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많은 것들을 얻고서 돌아 왔다.
첫댓글 선생님 행복한 모습이 보기 좋아요. 아 하농베이 가고 싶다.너무나 아름다운 사진이예요.
너무 잘 봤습니다 꼭 내가 갔다온것 처럼....
가고 싶던 하롱베이, 왜 그 곳에 다녀온 분들이 하롱베이에 꼭 가보라는지 샘 사진을 보니 알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