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문: 그런데 외적인 물로 씻음은 죄 그 자체를 씻을 수 있습니까?
답: 안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만이 우리를 우리의 모든 죄에서 정결케 하십니다.
-Est'ne ergo externus Baptismus aquae, ipsa peccatorum ablutio?
-Non est: Nam solus sanguis Iesu Christi purgat nos ab omni peccato.
(참고성경구절)
렘 2:22; 요일 1:7; 요일 5:6
(해설)
제 72문은 우리 눈에 보이는 ‘표징’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물은 표징(表徵)이고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은 실재(實在)라는 말이다. 만일 물질인 물에만 가치를 지나치게 부여하면 범신론이나 유물론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를테면, 로마 카톨릭의 사제가 뿌리는 성수(聖水)를 신적인 그 무엇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여기면 그 물 자체를 중요하게 취급하고 미신에 빠지게 된다.
1. 물의 의미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세례의 능력과 작용이 물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베드로전서 3:21에서도 물세례 자체가 강조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을 강조한다.
“(벧전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o} kai; hJma'" ajntivtupon nu'n swv/zei bavptisma, ouj sarko;" ajpovqesi" rJuvpou, ajlla; suneidhvsew" ajgaqh'" ejperwvthma eij" qeovn, di j ajnastavsew" jIhsou' cristou',). 이것을 직역하면,
“그것은(물세례) 이제 모형적으로 너희들을 구원하는데 곧 세례이다. 이 세례 (그 자체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선한 양심을 청구하는 것이다”이다
우리는 여기서 세례와 더불어 인간의 관심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세례란 이전에는 이 세상으로 마음이 향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방향이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게 되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세례 하나님
나
2. 불가시적인 차원의 사건
땅에 속한 물질은, 하늘에 속하고 영적인 어떤 무엇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즉 단순히 물을 뿌리고 세례식을 거행했다고 거기에 구원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믿음이 개입해야 되는 것이다. 구스내시나 루디아, 고넬료, 빌립보 간수 등은 물로 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예수를 믿었다.
미신에 빠진 교회는 물질 그 자체에 비중을 크게 두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녀들로 하여금 입시(入試)의 성공을 위해 부적(符籍)을 달고 다니는 것도 물질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시험을 칠 때, 미역국을 먹지 않는 것이나, 학교 정문에 엿을 붙이는 것도 이런 사고방식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의 구원과 형통함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관계를 잘 유지함에 있음을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성령이 오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파괴된 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3.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함
만일 물 그 자체가 구원하는 능력을 지닌다면, 믿음 없이 형식적으로도 세례를 받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에 카톨릭 특히 예수회 선교단체들은 군대를 동원하여 인디안들에게 강제로 세례를 주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물로 세례를 베풀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여기고 로마 카톨릭 교세가 확장된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유물론적 사고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세례를 베풀 때 불가시적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간과(看過)하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군에서 이루어지는 합동 세례식을 거행할 때, 많은 주의가 요망된다.
4. 피와 성령
성경은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정결케 한다고 증거한다. 우리는 여기서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그리고 ‘성령’ 사이의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이 이루어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붙잡도록 하시는 이는 성령이다.
“(요일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5. 칭의와 성화
위의 내용은 결국 칭의와 성화로 요약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재판관이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무죄로 언도케 하는 칭의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성령의 역사는 우리를 새롭게 하는 성화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것이다. 즉 믿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은 성령의 사역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6. 설교착상
한국 교인들은 범신론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원을 범신론적으로 이해하는데 익숙하다. 이런 사고방식을 깨뜨리는 설교는 “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 사이의 관계를 잘 설명하는 시각으로 설교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즉 내 속에 보약과 같은 어떤 물질적이고 신적인 것이 들어와서 구원을 받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연합을 통해 그렇게 됨을 가르쳐서 성도로 하여금 항상 그의 눈길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