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자연이 있고 인간이 존재하는 세상에는 예술이 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인 것이고 예술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배워서 갈고 닦아 만들어낸 창작물이다. 산이나 강 바다 그리고 해와 달이 자연이라면 음악, 미술 문학 등은 예술이다. 들꽃과 하늘을 나는 새가 자연이듯이 조각과 건축 또한 예술이다.
자연과 예술은 사물이라는 형체를 통해 인간의 눈과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릴케의 장미가 자연사물이라면 로댕의 조각품은 예술사물이다. 장미는 자연사물대로 조각과 건축은 예술사물대로 인간을 가르치고, 인간과 대화하고 또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인다.
인간은 자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끊임없이 예술활동을 한다. 예술활동을 한다는 말은 배우고 익혀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만든 것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활동의 첫 번째 단계는 말 배우기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 있는 것과 만들어진 것도 구분할 줄 알고 사고하는 방법도 배운다. 사고를 하는 동시에 무엇인가 만드는 법을 배운다. 인공으로 배운 언어가 자연언어가 되고 자연언어 속에 언어를 만들어 쓸 줄도 안다. 자연언어는 쉽게 말한다면 일상어이고 인공언어는 상황에 따라서 만들어 쓰는 말이다.
예술활동은 실용적인 면과 미학적인 측면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실용적인 측면을 인간들은 기술이라고 하고 미적인 측면을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예술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의 대표적인 예가 건축이다. 건축은 실용과 미적인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 예술이다. 실용적인 측면만을 고려할 때를 기술이라고 하지만, 기술이라고만 설명하기엔 무엇인가 부족하다. 예술이라고만 하기에도 부족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번에 두 가지 면을 강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술이냐 예술이냐를 무조건 따질 것이 아니라 어느 건축을 보고 기술이라고 하고 어느 건축이 예술인가를 조용히 생각해 보는 것이 더 현명하다. 베르사유 궁전은 기술이라고 하기보다는 예술이라고 하는 편이 낳다. 최신식 설비를 갖춘 서울 한 복판의 건물은 예술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기술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없고 속이 편하다. 베르사유 궁전은 처음부터 예술이었을까? 서울 한 복판에 서 있는 최신식 건물은 기술로만 이루어진 사물일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오래된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은 이집트의 무덤들이었다. 그들은 무덤을 “죽은 사람들의 집”으로 건축했다. 무덤 속에서 죽은 왕의 시체는 시녀와 종들을 거느리고 왕비와 같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의 집으로 지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공간이었다. 건축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러한 생각은 서양 건축의 기본이 되었다. 인공언어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자연언어가 되듯이 기술로 만들어 놓은 건축이 인간을 가르치고, 인간과 대화를 하고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살아 숨쉬는 자연사물이 되는 것이다.
건축은 언어이고 또한 감정이다. 언어와 감정이 그러하듯이 건축 또한 한 시대를 대변한다. 하나의 건축이 양식과 문예사조를 형성하며 한 시대를 대변할 때 인간들은 특히 그 건축물을 보고 예술이라고 한다. 예술사물을 남긴 인간은 유한하지만 예술사물은 영원하다. 건축이 살아지지 않고 영원한 것은 기술이 이미 누구에게나 당연한 예술사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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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독일 마인츠 구텐베르크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 철학, 독일민속학을 공부했음. 구텐베르크 대학교에서 독일 바로크 문학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한후 독일 망명문학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음.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강의중. 관심분야로는 독일 시의 이론과 역사, 수사학과 독일시학, 독일 바로크문학, 독일 망명문학, 동서독 분단시대의 문학이 있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