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대전광역시민 여러분! 국내외 네티즌 여러분! 대전광역시 소방본부의 홈페이지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전광역시는 급격한 첨단 산업화와 정보화로 국가발전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산업구조의 복잡화 , 건축물의 고도ㆍ심층화 등 소방환경의 변화에 따른 신속하고 안전한 소방활동을 위하여 첨단진압장비 및 인명구조장비를 확보하여 출동체제 확립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소방안전의 욕구증대와 봉사소방의 서비스향상을 위하여 전소방공무원은 열과 성을 다해 150만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앞장서고 있으며, 봉사하는 선진소방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 홈페이지가 소방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널리 활용 하시길 기대합니다.
분야별 재난상황 신고접수 , 출동지령, 유관기관 통보 및 지휘통제, 무선페이징(1,850대), 지하공동구 감시시스템, 유관기관통보 전용회선 운용
재난상황 처리과정
재난구조종합상황실
재난위치, 대상물 명칭, 신고자성명, 전화번호 등
출동지령
화재
대형화재시 전차량 출동 총력 대응
기타 화재시 관할, 인접 직할 119안전센터 (3개대)
산불
관할 119안전센터 및 본서 지휘차 출동
시청, 구청 등 관련 부서 통보
가스사고
현장지휘소, 응급의료소 설치
유관기관, 단체 통보
기타
교통사고
수난사고
환경오염사고 등
대전의 상징 대전의 꽃
백목련은 화사한 봄날 잎이 나기 전에 탐스런 순백의 꽃을 피우는 꽃 중의 여왕으로 우아하고 품격 높은 시민정신을 상징하고 있으며,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목련과의 낙엽교목
낙엽활엽교목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관상용으로 정원이나 사원(寺院)에서 식재한다. 이른 봄날 여기저기 구름같이 피어 있는 백목련의 꽃은 봄을 알리는 천사의 날개 같은 꽃이다. 나무껍질은 잿빛을 띤 하양이며 어린 가지와 겨울눈에 털이 난다. 줄기는 곧게 서고 가지를 많이 낸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거나 긴 타원형이며 길이는10∼15cm이다.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잎자루가 있다.
3∼4월에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피기 때문에 일명 춘화(春花)라고도 한다. 꽃 지름은 12∼15cm이며 3개의 꽃받침과 6개의 꽃잎은 모양이 비슷하고 육질이며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다. 수술은 여러 개가 나선 모양으로 붙는다. 열매는 골돌과로서 원기둥 모양이며 8∼9월에 익고 길이 8∼12cm로 갈색이다. 번식은 접붙이기나 종자로 한다.
이 식물은 우리나라 고유의 식물이 아니고 중국에서 들어온 식물로 알려지고 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20여년 전만 해도 이 식물의 분포는 전국적이 아니었다. 대체로 남부지역에서 자라나던 것이 순박함과 동양적인 인상을 풍기는 그 자태로해서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됨으로써 누구나 다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
백목련
학 명
Magnolia denudata
과 명
미나리아재비목 목련과
이 명
목란(木蘭), 옥란(玉蘭), 목필(木筆), 영춘화(迎春化), 신이(辛夷)
분 포
외래식물(중국 원산)
크 기
높이 약 15m
대전의 상징 대전의 나무
겉씨식물 구과목 소나무과의 상록침엽 교목
소나무는 높이 35m, 지름 1.8m 정도로 수피(樹皮)는 적갈색 또는 흑갈색이나 밑으로 갈수록 검어지며, 겨울눈[冬芽]은 적갈색이다. 바늘잎은 2개씩 뭉쳐나고 길이 8∼9cm, 나비 1.5mm로 2장씩 잎집[葉]에 모여 달리며, 잎집[葉]은 2년이 지나서 떨어진다.
꽃은 5월에 피고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따로따로 핀다. 이때 수꽃은 새가지의 밑부분에 달리며 노란색으로 길이 1cm의 타원형이고 암꽃은 새가지의 끝부분에 달리며 자주색으로 길이 6mm의 달걀 모양이다.
구과(毬果)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 4.5cm, 지름 3cm이며 열매조각은 70∼100개이고 다음해 9∼10월에 노란빛을 띤 갈색으로 익는다.
종자는 길이 5∼6mm, 나비 3mm의 타원형으로 검은 갈색이며 날개는 연한 갈색 바탕에 검은 갈색 줄이 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다양한 품종이 발견되는데 그 쓰임새도 다양하다. 꽃가루는 5월에 모아 날것으로 먹거나 꿀과 찹쌀가루에 섞어 과자로 만들거나 술에 넣어 송화주를 빚어 마신다. 나무 속껍질은 송피떡을 만들어 먹거나 날것으로 먹으며, 새순은 껍질을 벗겨 날것으로 먹는다. 씨는 껍질을 벗긴 뒤 밥에 넣어 먹거나 볶아서 차로 마시기도 한다. 잎은 대추와 함께 날것으로 먹거나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기도 하는데, 건위제로 알려져 있다. 잎 말린 것을 송엽(松葉), 꽃가루 말린 것을 송화(松花), 송진을 긁어 모아 말린 것을 송지(松脂)라고 하는데, 한방에서 송엽은 각기병과 소화불량의 치료제나 강장제로, 송화는 이질의 치료제로, 송지는 지혈제로 쓰인다. 송진은 반창고나 고약의 원료로 이용하며 목재는 건축재나 가구재로 쓰인다.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로 믿어 마을 어귀에 세우는 장승의 재료로도 쓰였으며, 잎과 함께 땔감으로도 쓰인다. 요즈음에는 분재용 나무로도 쓰이고 있다.
소나무는 양지식물로, 다른 나무들이 자라기 힘든 메마른 곳에서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또한 사시사철 푸르른 잎을 지니며, 강인한 인상을 주는 줄기 때문에 대나무와 함께 송죽지절(松竹之節 : 변하지 않는 절개)을 상징하거나 송교지수(松喬之壽 : 인품이 뛰어나고 오래 사는 사람)를 가리키기도 한다.
소나무
학 명
Pinus densiflora Siebold et Zuccarini
과 명
구과목 소나무과
이 명
육송(陸松)·적송(赤松)·여송(女松)·솔나무·소오리나무·솔·암솔
분 포
한국, 중국 북동부, 우수리, 일본
서 식
표고 1, 600m 이하, 수평적으로는 북구의 고원지대를 제외한 전국에 야생
크 기
높이 35m, 지름 1.8m
번 식
실생(實生), 접목(接木)
대전의 상징 대전의 새
대전의 상징인 까치는 텃새의 일종으로 “아침에 까치가 와서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 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길조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다. 까치는 15세기의 문헌에 ‘가치’로 표기되었으며, 한자어로는 작(鵲)이라 하는데 이 외에 희작(喜鵲)·신녀(神女)라고도불린다.
까치는 둥지를 중심으로 한 곳에서 사철을 사는 텃새로서, 우리나라 전역(제주도와 울릉도 등의 섬지역에는 살지않았으나 최근 '섬지역 까치 보내기 운동'을 통해서 까치가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을 비롯하여, 유라시아대륙 중위도 지대의 전역, 북아프리카·북아메리카의 서부 등지에 분포한다.
까치는 암수 모두 같은 빛깔로 날개 길이 19∼22cm 정도로 까마귀보다는조금 작지만, 꽁지가 길어서 26cm에 이른다. 어깨·배·허리는 백색이고 머리에서 등까지는 금속광택이 있는 흑색이며, 꼬리는 쐐기꼬리이다.
까치는 촌락 가까운 큰 나무 위에 마른 가지를 모아 둥지를 짓고 사는데, 측면에 출입구가 있는 둥지는 지름 1m쯤의 구형(球形)이며, 봄에는 이 둥지에 암갈색의 반점이 있는 담녹색의 알을 5~6개 낳는다. 까치는 잡식성으로서 쥐 따위의 작은 동물이나 곤충과 나무열매·곡물·감자·고구마 등을먹으며 임목의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이다.
까치
학 명
Pica pica serica
과 명
참새목 까마귀과
이 명
작(鵲)·희작(喜鵲)·신녀(神女)
서식
도시의 공원, 들판, 무리생활, 시골의 인가 주변, 야산
분포
우리나라 전역, 유라시아대륙 중위도 지대의 전역, 북아프리카, 북아메리카의 서부 등지
몸길이
약 48cm
날개길이
19∼22 cm
대전의 상징 상징마크
상징마크는 대전광역시의 이미지를 대표하고 집약하는 시각적 표상으로 CI 시스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이다.
바탕의 초록 꽃잎 형태는 밭, 터전, 무궁화 꽃잎등을 상징하고 형태는 대전의 큰 "大"자와 역동적으로 뻗어가는 발전의 이미지를 나타내며, 쾌적한 삶의 터전인 대전지역이 국토, 교통, 행정, 과학, 문화, 유통의 중심지로 힘차게 도약하고 빛을 발하고자 하는 대전시민의 꿈과 이상을 표현하였다.
칼라시스템
:: 정식사용색
::바탕색과 상징마크와의 명도대비
:: 대전은색
:: 대전청색과 대전은색의 대비
:: 대전금색
:: 기본흑색과 대전금색의 대비
상징마크의 정식사용색은 대전초록(TC Greenc: PT GreenC)으로 하며 바탕색은 기존 백색을 사용함을 원칙으로 한다.
금색, 은색등 메탈컬러를 사용할 경우 외에는 가능한한 음화로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단색을 사용할 경우 난색계열의 색상은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바탕색과 상징마크는 최소한 명도차가 20%이상이 유지되도록 하여 이미지 전달이 분명하도록 해야한다.
대전의 상징 로고타입
대전광역시 로고타입은 심볼마크와 더불어 대전광역시의 시각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중요한 기본요소이다. 대전광역시의 로고타입은 심볼마크와 이상적으로 조화될 수 있도록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 세밀히 연구하여 디자인된 요소로 행정기관의 신뢰감, 안정감과 산뜻하면서도 간결하여 시각적으로 읽기 쉽도록 디자인하였으며, 영문과 한문의 로고타입도 한글로고 타입과 동일한 이미지를 갖도록 디자인되었다.
칼라시스템
법인명
대전광역시의 로고타입은 특별한 경우외에는 한글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심볼마크와 분리하여 사용할수 있다.
로고타입은 규정집 각 항목별 규정에 따라서 정확하게 사용하여야 하며 임의로 변경해서는 안된다.
로고타입의 활용은 규정집 재생자료편의 원고를 사진제판 복제방식이나 슬라이드필름에 의한 투사복제방식을 이용하거나 특별한 경우 로고타입 그리드 시스템을 이용하여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대전의 상징 캐릭터
한꿈이
꿈의 도시 대전에서 태어나 한빛탑을 지키고 있는 어린왕자 '한꿈이'는 '과학과 미래'라는 대전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전체적인 형상은 새천년의 선두에서 서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헤쳐나갈 대전시민의 용기를 담았고 청명한 자연환경을 시각화 하였다. 헤드폰과 악세사리는 네트웍 시대를 상징하고 그 중심에 대전시민이 있음을 의미한다.
꿈돌이
대전엑스포 '93 공식마스코트인 '꿈돌이'는 과학기술, 산업의 발전을 통한 인류의 평화와 공존공영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젊은이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우주 아기요정의 모습을 하고 있다.
It's 는 삶이 재미있고 풍요로운 도시 - Interesting 전통과 다양한 문화의 도시- Tradition & Culture 과학의 도시, 미래의 도시- Science & Technology
의 이니셜이기도 하며, 첨단과학기술의 중심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대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지리, 인문, 경제, 사회, 문화적 자산을 'Variety of Daejeon'이라는 기본 Concept으로 개발하였다. 브랜드 슬로건의 워드마크는 자연스럽고 활기찬 서체로 열린도시, 다양성의 도시, 미래의 도시 이미지를 재미있고 세련된 감각으로 표현했다.
이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친근하고 즐거운 장소로 세계인에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다양한 색상적용을 통해 만개한 꽃들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으로 감성적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자연 친화적 전원도시, 풍요로운 문화도시, 내일을 열어가는 미래도시라는 이미지를 감성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전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분지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남쪽에서 산지가 현저히 발달해 있는데 동쪽 방면은 동구 식장산에서부터 고봉산, 함각산, 개머리산, 계족산 등의 줄기가 이어지며, 서북쪽으로는 금병산, 우산봉, 도덕봉, 백운봉 등 계룡산을 중심으로하여 형성된 산계가 논산시 두마면까지 이어지고 있고, 남쪽으로는 보문산이 주봉이 되어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산지 사이를 유등천이나 대전천과 갑천이 흐르면서 북쪽의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그 주변에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처럼 강과 그 주변에 구릉성 산지를 기반으로 대전지방의 사람들은 선사시대부터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삶을 이어왔다.
우리나라의 구석기문화는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을 통하여 약 27만년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전지방의 역사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오를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바로 이웃한 공주 석장리 유적이다. 이 유적의 발굴 결과 12개의 문화층을 포함하고 있다. 그중 6층과 12층 에서 채집한 숯을 분석한 결과 30.690±3.000BP. 20.830±880BP의 절대연대가 나와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이로 해서 가까운 금강유역에 인간이 살았던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대전에서는 2곳에서 유적의 징후가 나왔다.
대전지방의 구석기 유적은 구즉동의 오봉산 남쪽경사면 해발 60m되는 곳과 둔산동 유적이다. 이들 유적의 조사로 적어도 중기 구석기시대 말이나 후기 구석기 초기까지는 대전의 역사를 올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유적에서는 인공의 흔적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거나 유적의 성격이 확실하지 않은 약점은 있으나 지질시대로 3기 홍적세에 형성된 지층이 발견된다는 사실은 그 시대에 인간이 대전에 살았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는 현상이다.
기원전 1만년 경은 홍적세가 끝나고 충적세로 진입하는 시기이고, 세계적인 추세로 보면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중석기 시대를 거쳐 신석기시대로 진입하는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천년경 이전으로 소급된다. 신석기시대에는 인간의 거주가 주로 물과 관계있는 냇가나 강가, 호숫가, 바닷가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례적으로 대전과 같은 내륙 지방에서 적지 않은 거주 흔적이 발견되어 주목된다. 둔산동의 유적은 신석기시대 후기(기원전2000∼1000)에 속하는 유적으로 농경과 고기잡이로 생활을 꾸려 나갔던 것을 알게 해준다. 문화 계통으로 보면 서해안 신석기 유적의 전통을 강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유물의 손잡이 꼭지라든가 일부 무늬 내는 솜씨를 보면 한반도의 동북계통과도 연관이 있어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기원전 1000년경이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무문토기문화가 시작된다. 이 무문토기 문화인들이 청동기를 사용하게 되어 청동기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청동기시대에 오면 좀 더 문화현상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시기가 되면 대전지방에서는 전시대에 비하여 자료 가 훨씬 많아지고 그 내용도 풍부해져 비교적 자세히 그 문화양상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이 시기의 유적으로는 집자리를 비롯해서 고인돌, 석관묘 유적이 있다.
대전지방의 청동기 유적으로는 둔산동 유적, 충남대 정문 서쪽의 궁동 유적, 괴정동(현 내동) 유적, 탄방동 세등선원 부지의 탄방동 유적, 유성구 원내동의 유적, 문화동 까치고개의 유적, 대청댐 수몰지역의 사성동 유적, 보문산 산정의 보문산 유적 등 그 문화유적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 많은 유적 가운데 특히 괴정동(현 내동)의 청동기는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단계의 한국식청동단검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며 그 문화수준도 대단히 높은 단계이다. 이것은 충남지방, 나아가 대전지방이 청동기시대에는 청동기문화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청동기에 보이는 여러 현상은 이 단계의 문화가 요녕지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므로 선사시대에 충남의 서해안과 요녕지방 사이에는 어느 정도 빈번한 교류가 있어 이 통로를 통해 청동기문화가 들어왔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팽이형 토기문화의 집자리도 발견되어 북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내려오는 문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청동기시대와 백제시대를 잇는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으로 오정동과 구성동에서 원삼국시대 움집터, 송촌동과 대화동의 토광묘 유물 등이 발견되고 있으나 확실한 문화 양상은 앞으로 연구에 의하여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대전지방은 행정구역의 변천이 여러 번 있었다. 대체로 백제 때에는 우술군, 신라 때에는 비풍군, 고려 때에는 회덕현·유성현·진잠현에 속한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공주목하의 회덕현·진잠현으로 큰 변동없이 계속되어오다 고종 32년(1895) 지방행정 제도의 개편으로 회덕군·진잠군 지역이 되었다.
그후 1914년 3월 1일 회덕군·진잠군과 공주군의 일부가 합쳐져 대전군이 신설되었고, 종래의 회덕군과 회남면 지역(현재 인동, 원동, 중동, 정동, 삼성동)을 중심으로 대전면이 신설되어 이 지역이 현재 대전광역시의 모체가 되었다.
그후 대전면에서 대전읍, 대전부가 되었다가 1949년 8월 15일 대전시가 되었고, 1989년 1월 1일 대덕군 전역을 편입하면서 대전직할시가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대전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623 ~ 1695 ( 인조원년 ~ 숙종 21년 ), 호 무수옹(無愁翁) 만회 권득기의 손자이며 탄옹 권시의 장남으로 동춘당 송준길의 문하에서 공부함.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을 버리고 무수동에 은거함.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거제도로 귀양가서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침.
권시
1604 ~ 1672(선조 37년 ~ 현종 13년), 호 탄옹(炭翁) 만회 권득기의 다섯째 아들. 벼슬길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당시 시대를 풍미했던 주자(朱子)일변도의 성리학적 틀에서 벗어나 우주론(宇宙論), 예학(禮學), 경세론(經世論)등에 조예가 깊음.
권유(權惟)
1625 ~ 1684(인조 3 년 ~ 숙종 10년), 호 여옹(旅翁) 우암 송시열의 사위이며 전의 현감, 공주 진관 병마 절제 도위 등을 역임하였고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도총관에 추증됨.
권이진 (權以鎭)
1668 ~ 1734(현종9년 ~ 영조10년), 호 유회당(有懷堂) 여옹 권유의 셋째 아들. 문과에 급제한 후 병조참판, 호조판서, 우참찬, 평안감사 등을 역임함. 우암 송시열, 명재윤증의 학문적 영향을 받았고, 실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성호 이익의 묘지명을 찬하였음.
김경여 (金慶餘)
1596 ~ 1653(선조 29년 ~ 효종 4년), 호 송애(松崖)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정랑, 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하였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함.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과 형제처럼 지냈으며, 사후 좌찬성에 추증됨.
김만중 (金萬重)
1635 ~ 1720(인조 13년 ~ 숙종 46년), 호 서포(西浦) 사계 김장생의 증손자이며 창주 김익겸의 아들로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공부함. 서포만필, 구운몽 등을 저술하였고 국문학상 뛰어난 업적을 남김.
김반 (金槃)
1580 ~ 1640(선조 13년 ~ 인조18년), 호 허주(虛舟) 사계 김장생의 셋째 아들. 이괄의 난 때 공주에서 인조를 호종하였고 사간원 정언, 이조정랑, 대사간, 병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됨.
김여온 (金汝溫)
? ~ 1592 ( ? ~ 선조 25년), 호 석은(石隱) 임진왜란 때 의병에 참여하여 금산 전투에서 중봉 조헌과 함께 순국함.
김옥균 (金玉均)
1851 ~ 1894(철종 2년 ~ 고종31년), 호 고부(古符) 동구 이사동 외가에서 출생. 박규수, 오경석등과 함께 개화당을 조직하고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며 개화운동을 전개함.
김익희 (金益熙)
1610 ~ 1656(광해군 2년 ~ 효종 7년), 호 창주(滄洲) 허주 김반의 둘째 아들. 병자호란 때 독전어사를 지냈으며, 대사간, 강원감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음.
김정 (金淨)
1486 ~ 1520(성종 17년 ~ 중종 15년), 호 충암(沖庵) 이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정암 조광조와 함께 혁신 정치를 건의함. 향약의 보급에 앞장섰으며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유배 후 사사(賜死)됨.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간(文簡)임.
김집 (金集)
1574 ~ 1656(선조 7년 ~ 효종 7년), 호 신독재(愼獨齋) 사계 김장생의 둘째 아들. 부여 현감 등을 잠시 지냈으나 그 후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연산에서 강학과 저술에 힘씀. 인조 때의 산림(山林)으로 기호주자학. 호서사림 대표적 인물임. ※ 산림(山林) : 학식과 덕망을 갖추고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선비로 당시 사회 정치 여론을 형성함
김태원 (金泰源)
1900 ~ 1951 , 호 심산(心山) 동구 홍도동에서 출생. 1922년 양승우 등과 함께 벽창의용단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하였고, 한국독립당 조직부장을 역임함. 1963년 건국공로훈장 국민장 추서.
가. 수리적 위치 경도·위도상의 위치를 말하는 수리적 위치는 절대적 위치라고도 하며 기후 상으로는 계절이 뚜렷하고 기온이 온화한 중위도 온대 계절풍 기후대에 속하고 있으며, 대전의 수리적 위치는 다음과 같다.
나. 지리적 위치 대전은 남한의 중앙부에 위치하므로 중도라고도 일컬으며, 영남과 호남으로 통하는 삼남의 관문으로서, 수도 서울까지는 167.3km, 부산까지는 294km, 광주까지는 169km의 거리에 있다. 대전은 또한 경부·호남고속도로, 국도가 분기하고 있어 실로 우리나라 교통의 요지이다.
다. 면적
2008년 12월 현재 대전광역시의 면적은 539.78km2이고, 인구는 1,495,048명이다. 그러므로 대전시는 우리나라 6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중 면적,인구 모두 5번째 도시가 된다. 또 대전시의 구별면적을 보면 유성구가 제일 넓고, 다음이 동구, 그 다음이 서구, 대덕구, 중구의 순이다.
대전의 행정구역은 대전부가 1949년 대전시로 개칭된 때 35.7km2이었고, 1963년에 대덕군 유천면 전 지역과 산내면·회덕면 일부가 편입되어 88.21km이었으며, 1983년에는 대덕군 회덕면·유성읍 전역과 구즉면·탄동면·기성면·진잠면 일부가 편입 203.80km2의 면적에 2구 60개 행정동으로 시세가 확대되었다.
행정구역현황
(2008. 12. 31 현재)
행정구역현황
구 분
면 적
법정동
행정동
통
반
동 구
136.61
45
16
366
1,939
중 구
62.13
26
17
398
2,279
서 구
95.39
28
23
774
4,455
유성구
177.25
53
8
463
2,452
대덕구
68.47
26
12
342
1,789
계
539.85km2
178동
76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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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大田)은 우리말인 한밭이 한자화된 이름이다. 본래는 한밭으로 부르던 이름이 조선 초기에 이르러 한자인 대전(大田)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밭이란 이름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한밭의 한은 크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의 대(大)로 번역하고, 밭은 한자로 전(田)을 사용하여 대전(大田)이 되었다. 따라서 한밭은 큰 밭, 즉 넓은 들판이라는 뜻이다.
대전(大田)이란 이름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국내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동국여지승람1)』이다. 공주의 자연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 ‘대전천은 유성 동쪽 25리2) 지점에 있다.’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대전이란 이름은 500여 년 전 조선 초기에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전(大田)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3)에 군·면을 합치면서 대전리가 대전면으로, 1931년에는 대전읍으로,1935년에는 대전부로 되었다. 1949년에는 대한민국의 대전시로, 1989년에는 대전직할시로, 1995년에는 대전광역시로 발전하였다. 과학과 교육·행정의 중심도시로서 성장하고 있는 대전의 각 지명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1. 동국여지승람 : 조선 시대의 인문지리에 관한 책
2. 리 :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로서 1리는 약 393m에 해당함
3. 일제강점기 :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1910년부터 나라를 다시 되찾은 1945년까지 35년 동안
대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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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첨단과학의 요람 대덕연구단지의 원천기술과 고급 두뇌를 보유하고 있는 연구개발의 핵심도시입니다.
행정
정부대전청사, 교육사령부, 군수사령부가 입지하고 있고, 3군 본부가 인접한 국가 행정의 중추도시입니다.
교통
철도, 고속도로, 국도 등 광역교통망을 구비하고 있어 2시간 이내에 전국 주요 도시에 접근할 수 있는 국가 대동맥의 허브도시입니다.
문화
여러 고장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모여 살며 나눔과 배려의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가는 다양성과 포용의 도시입니다.
대덕연구개발 특구가 세계적인 혁신 클러스터로 발전합니다.
2005년 7월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출범으로 연구개발성과의 사업화가 진전되고, 산,학,연 협력체계가 구축됩니다.
지식정보화 시대 대한민국 미래 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첨단산업이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중부권 중심시대를 이끌어 가는 선도도시가 됩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충청지역은 대전, 천안, 청주, 행복도시가 연계된 인구 300만 규모의 연합도시권을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대전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균형발전 전략의 상징적인 도시로 대한민국 미래의 키워드 중부권 중심시대를 이끌어 갑니다.
대전은 대덕연구개발특구와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두 가지 국가혁신과제가 만나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대덕연구개발특구 육성 - IT,BT,RT 등 첨단산업 활성화 추진 - 입주기업 세제혜택 등 지원 강화 -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유치
충청권 공동번영 추구 - 충청권 경제협의회 구성 - 상생적 경제통합(첨단기술+산업용지) - 중장기적인 충청권 경제통합 추진
미래형 산업단지 100만평 조성 - 첨단기업을 중심으로 외부기업 유치 - 새로운 일자리 1만개 창출로 고용안정 - 지역의 취약한 제조업 기반 확충
행정중심복합도시권 연계 강화 - 광역 도시발전계획 수립 - 광역교통망, 도시인프라 확대 - 기능적 연계 도모(문화, 교육 등)
원도심 U-턴 프로젝트 - 원도심지역의 뉴타운식 개발 - 새로운 랜드마크 명품건축물 건립 - 특색 있는 테마거리 조성⇒상권 회복
무지개 프로젝트 - 저소득층 밀집지역에 시정역량 집중 - 생활여건개선 등 7대 분야 업그레이드 - 도시균형발전과 사회복지 동시 추구
캠퍼스타운 조성 - 원도심 대학가 주변 활성화 - 대학문화를 바탕으로 지역 명소화 - 지역경제에 긍정적 파급효과 유도
동서 교육격차 해소 - 교육재정 지원 및 협력사업 추진 - 도시 불균형 원인의 근본적인 대처 -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목고 신설
대전의 모습
걸어서 10분이면 녹색 휴식공간을 만날 수 있는 대전
발 담그고 쉴 수 있는 도시하천이 흐르는 대전
어디로든 편리하게 교통흐름이 기분 좋은 대전
걸으면 행복하고, 자전거 타기에 즐거운 대전
3000만 그루 나무심기 - 2020년까지 도시 전체를 녹지공원화 - 범시민적 푸른 대전 가꾸기 추진 - 2010년까지 녹지율 65%달성(현61.9%)
3대 하천 생태복원화 - 4계절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 만들기 - 친수성 여가,편의공간 확충 - 3대 하천 지천(샛강) 살리기 병행추진
시민공원 조성 - 유휴지를 활용한 시민휴식공간 확충 - 중촌동 철도변 녹지,문화공원화 - 유성 갑천 시민의 숲 조성
쓰레기 감량화 및 자원화 - 일반,음식물 쓰레기 수거체계 개선 - 재활용품 순환체계(수집-활용) 개선 - 폐기물자원 집적화시설 건립
광역교통체계의 구축 - 행정중심복합도시, 청주공항 연계 - 도시철도 1호선 연장 및 도로망 확충 - 충청권 대중교통통합서비스 모색
도시교통문화의 혁신 - 중앙로 대중교통 전용지구 지정 - 자전거타기 좋은 도시 조성 - 사람중심의 교통문화 확산
대중교통체계의 혁신 - 가칭 ‘대중교통공사’ 설립 - 시내버스, 택시 경영구조 효율화 - 대중교통수단간 연계 강화
미래교통수단의 혁신 - 자기부상열차 실용화 시범노선 유치 - 관련 분야의 산업적 기반 조성 - 관광자원 등 지역경제 파급효과 유도
대전의 모습
아이 낳고 기르기에 편안한 대전
사회적 약자가 외롭지 않고, 희망을 갖게 해주는 대전
시민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문화도시 대전
머물고 싶은 관광자원이 매력적인 대전
실질적인 장애인 자활 지원 - 장애인재활전문병원 유치 건립(2010) - 장애아동 재활지원센터 확대 설치 - 장애인 복지공장 건립)
행복실버 3대 과제 추진 - 안정: 노인일자리 창출, 노인수당 지원 - 건강: 건강진단, 노인수발제 기반 조성 - 여가: 노인시설 보강, 노인상담사업 등
복지의 사회적 책임 강화 - 신개념 문화,복지 연계서비스 모색 - 서구 기성동 공용복지회관 시범 건립 - 지역공동체 협력의 복지네트워크 구축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 확대 - 여성의 취업교육 및 일자리 확대 - 영유아 및 아동보육 지원 - 사회참여를 위한 여성단체 활성화
갑천 첨단과학,문화,관광벨트 조성 - 엑스포공원~갑천~둔산대공원 연계 - 문화예술, 관광,레저시설 네트워크화 - 대전의 관광명소 및 랜드마크로 개발
지역발전의 공동체문화 창조 - 기관마케팅 활성화 - 지역 유관기관,단체와의 교류 확대 - 시민 자율의 자원봉사 정착
대전문화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 - 학교공간의 지역공동체 센터화 - 시민들의 문화활동 지원 강화 - 생활체육 저변확대를 위한 기반 조성
대전의 브랜드 가치 제고 - 컨벤션 활성화를 통한 파급효과 도모 - IAC(국제우주회의)2009 등 국,내외 - 다양한 행사,회의 유치
첫댓글 좋은자료네요~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할게요~~^^
아..^^ 근데 좀 복잡하죠 ㅋㅋ 암튼 화이팅!! 이번에 부산사격장 화재관련 질문이 아무래도 예상이 되네요~ 잘 답변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