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 (주)도시와 사람은 현재 강남 서초구 서초동 서리풀 공원 주변에 있는 롯데빌리지를 재건축할 예정인 '더 미켈란 아파트' 99평형의 분양가를 최고 28억4천8백만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1992년 서울 동시분양이 시작된 이래 최고 분양가이다.” (프레시안 2003년 5월 27일자)
분양가 평당 3000천만원 시대의 도래……! 저는 아직 부동산 가격에 대한 감도 없고 회사 근처 원룸에 살고 있는 처지여서 천정부지로 솟는 부동산 가격에 일희일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기사를 읽으면 기분이 이상해 집니다. 몇 년 전에 무슨 일로 충주의 아파트 시가를 알아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시내에 있는 30평 정도의 아파트 가격이 7000천만원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강남에선 그 돈으로 아파트 3평도 못 사는군요!
부동산 세제의 순환사(循環史)-세금 가지고 장난 치나
8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관련 세제의 변천사를 쭉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투기가 일어나면 토지초과이득세를 물리느니 개발부담금을 물리느니 하는 식으로 한 2년 정도 투기억제책을 쓰다가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 3년 정도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다가는 경기가 침체되면 한 3년 정도 각종 부동산 관련 비과세ㆍ감면 제도를 도입하는데 그러면 2~3년 내에 어김없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합니다.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들이야 투기억제책을 쓸 때는 가만히 있다가 가격 폭등 초기, 아직 비과세ㆍ감면의 혜택이 남아 있을 때 부동산을 팔아서 이익을 보면 그만이겠지만,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서 집이라도 한 칸 마련하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짜증나는 순환구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보유세 강화—상식적인 주장인데 왜 안 되고 있나
그래서 예전부터 잘 나오던 말이 부동산을 팔고 살 때만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할 것이 아니라 부동산을 보유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일정 수준의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투기가 이렇게 성행하는 나라이니 부동산의 보유비용을 높여서 부동산에 투기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정말 집이나 땅이 필요한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꼭 투기 방지 목적이 아니더라도 선진국에서 대체로 부동산 시가의 1% 정도를 부동산에 대한 보유세로 납부하도록 하는 것을 감안하면 보유세 강화는 그리 무리한 주장은 아니랍니다. 최소한 ‘세금 때문에 부동산 투기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선 안 되겠죠.
지금도 부동산 보유세가 없는 것은 아니예요. 지방세법에는 종합토지세와 재산세라는 것이 있어서 토지가액 및 건물가액에 대해 매년 일정율의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고 있어요. 문제는 이런 세금이 부동산의 실제 시가에 대해 매겨지는 것도 아닌 데다가 지역별로 아주 불공평하게 산정되고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시죠?
부동산 보유세 산출시 시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과세표준, 줄여서 과표라고 하는 것은 쉽게 이야기해서 세금을 산출하기 위한 기준금액입니다. 어떤 세목이든 세액을 계산하려면 과표에 세율을 곱하면 됩니다.
종합토지세 과표는 실제 토지의 시가와는 큰 차이가 있어요. 행정자치부에서는 매년 전국의 토지에 대해 개별공시지가라는 것을 발표하는데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이것이 시가의 50~80%에 달하는 가액입니다. 종합토지세를 구하려면 이 개별공시지가에 각 구청장이나 군수가 정하는 적용비율이라는 것을 곱해서 과표를 구한 후에 여기 다시 세율을 곱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적용비율이라는 것이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2001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 32.4% 밖에 안 됩니다. 종합토지세는 (개별공시지가) * (적용비율) * (세율)로 계산되는데 개별공시지가가 시가의 50~80% 수준, 적용비율이 25%~45% 수준이어서 시가의 13%~36% 정도 되는 금액에 세율을 곱해서 세금을 매기고 있는 겁니다.
재산세는 문제가 더 심각해요. 건물분 재산세는 아예 그 건물의 시가가 아닌 건축비를 기준으로 부과된답니다. 그 기준금액을 지방세 과세시가표준액이라고 하죠. 우리나라처럼 지역간 부동산 가격차가 심한 나라에서 지방세 과세시가표준액이라는 것은 아예 시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낮은 가액이랍니다. 양도소득세나 상속증여세 산정을 위해 국세청에서 아파트 등에 대해 나름대로 시가를 조사해 국세청 기준시가라는 것을 산정하고 있는데도 지방세에선 그 기준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똑같은 재산인데 시세 4억원 짜리 강남 아파트의 재산세, 토지세는 10만원도 안 되고 1,700만원짜리 중형차의 연간 자동차세는 40만원이니 정말 이상한 과세체계이지요? 부동산에 대한 세금끼리 비교를 해 보아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예요. 거래세인 취득세나 등록세가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지방세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부동산 관련분만 따져도 30%가 넘는데 보유세인 재산세나 종합토지세의 비중은 10% 수준에 머물러 있답니다. 그게 90년이나 2000년이나 변화가 통 없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부동산 관련 지방세를 납부해야 할 것 같은데 부동산을 얼마 가졌든 거래를 많이 한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도록 되어 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부동산 보유세는 지역별 불균형이 심각하다
제가 매주마다 드리는 말씀이 있죠. 세금은 전국민이 일관된 기준에 따라 공평하게 납부하도록 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부동산 보유세는 시가에 못 미치는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이 산정될 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시가가 세금에 반영되는 비율도 가지각색이라서 더 문제예요. 2002년 9월에 건설교통부가 조사ㆍ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똑 같은 시가 3억 4천만원 짜리 아파트에 대한 재산세가 강남에선 7만 5천원, 노원에선 41만 3천원, 분당에선 7만 3천원, 평촌 18만 2천원, 수지 28만 5천원으로 지역에 따라 최고 5.6배나 차이가 납니다. 안 그래도 교육 문화 의료 등 강남이 국내 어느 지역보다도 제반 주거환경이 좋은데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보유한 재산에 비해 세금까지 적게 낸다면 공평하지 못한 일이겠지요.
이 문제 역시 수 차례 제기된 바 있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어요. 노무현 정부는 향후 5년간 종합토지세의 적용비율 부분을 매년 3%씩 높여서 5년 뒤에는 과세표준이 개별공시지가의 45%가 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어요. 하지만 과세표준 중 적용비율을 정하는 권한이 구청장이나 군수에게 주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 계획은 실효성이 부족한 것입니다. 구청장도 군수도 다음 자치단체장 선거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어떻게 쉽게 구민이나 군민을 상대로 과세표준을 올릴 수 있겠어요?
부동산 평가 체계를 정비하라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려면 결국 과표가 시가에 가깝게 조정되어야 하겠지요. 행자부에선 개별공시지가 발표하고, 국세청에선 따로 기준시가 발표하고, 건교부에선 또 지방세 과세시가표준액을 발표하다니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지 않으세요? 현재의 방식으로 과표현실화가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죠? 하나의 부동산에 대해 정부가 여러 가지 가격을 정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모순이고요. 장기적으로 토지의 경우에는 공시지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나 상가에 대해서는 토지와 건물을 통합한 국세청 기준시가, 그 이외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새로운 평가체계를 마련해서 세금을 매길 때는 세목이 무엇이든 단일한 기준에 의해 매겨야죠.
과표결정권은 실질적으로 중앙정부가 행사해야
종합토지세의 경우에는 중앙정부가 적용비율을 결정하고 재산세도 중앙정부가 강제적인 평가기준을 마련하되 지방자치단체장은 그 기준에 의해 세액을 부과ㆍ징수하도록 해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선거를 의식해서 과표현실화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을 막아야지요.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막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역시 다른 재산처럼 가진 만큼 세금이 부과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부동산의 소재지가 어디이든 간에 고가 부동산에 대해서는 그 가액만큼 세금이 부과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재산에 비해 부동산에 대해서는 오히려 세금이 낮은 이상한 현실이 해결되면 집 한칸도 마련하기 힘들여 마련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힘이 덜 빠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