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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은 실제로 이곳 뉴욕/뉴저지에서 크게화제가 되었던 이야기로 목사님들의 성함을 실명으로 올렸읍니다. 단 임형천 목사님께서는 교회 분란이 일어나기전에 이미 다른 개척교회로 떠나셨기에 여기에 기술한 교회 분란과는 전여 관계가 없음을 밝혀 드립니다. ***
49. 가슴아픈 교회의 분열
1989년 뉴저지로 이사를 오면서 다니기시작한교회는 우리집에서 자동차로 10분도 안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그당시 미주 한인 장로회(KPCA / 후에 “해외 한인 장로회”로 명칭 변경) 소속인 Palisde 장로교회 이었다. 한국 의 왕십리 무학교회에서 시무하셨던 정 인영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계셨고 부목사님으로는 현재 LA 영락교회에 시무하시는 임 형천 목사님이셧다.
나는 1989년에 LA에서 뉴저지 Closter 라는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이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우리내외는 원칙적으로 교회는 집에서 가까운곳, 장로교회, 또한 일단 등록을 하면 오래다니는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LA 에서 교회의 분열을 경험한 나로서 는 평화롭게 오래다니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교회에도 등록을 하자마자 찬양대봉사를 시작하였다. 내가 일본귀국후 대학시절 (1962년도) 부터 교회를 다닐때는 꼭 찬양대를 봉사하였으니 지금까지 40년넘어 찬양대원인 셈이된다.
이교회 찬양대는 기념일일때 마다 대체로 어려운 대곡들을 오래 연습하여 음악회를 개최하는 전통을 가지고있었다. 당회장이신 정인영목사님이 특히 음악회개최를 적극 권장 했었고 부목사님이신 임 형천목사님도 그자신이 아름다운 테너 목소리를 가지신 분 이셨다. 매해 성탄절에는 헨델의 메사야를 전곡 준비하여 동네 주민들을 초청하여 공연 하였었다. 이젠 우리내외는 영어로 부르는 메사야는 거의 외우다 시피 되었다.
이교회는 우리가 NJ 로 오기 5년전에 우리집 옆동네 Norwood 라는 곳에 창립 , 작은 미국교회를 빌려 미국인들 예배시간 앞뒤에 예배를 드렸고 나는 1부 예배에 참석하였다.나는 찬양대외에 구역장 , 선교회장 을 맡았었고 1991년도에 교회신축을 위해 조직된 새성전 건축위원회의 기술분과 위원을 맡았었다. 신축교회는 약 700만불의 예산이 소요되었으며 한인 건축업자로 하여금 시공이 되었다.
어느교회이든 성전건축을 할때 공사가 끝나고 금전적인 문제가 발생하는것같다. 우리교회도 그 예외는 아니였다. 건축의 재정을 담당하였던 집사가 자기 사업용으로 건축 헌금을 유용한것이 발각이 났었다. 또 건축중에 어느 장로가 그헌금중 일부를 차용 하였 다가 갚기는 갚았지만 그리 깨끗한 상황이 아니었던것같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자 당회 장 목사님은 그민집사의 선처를 바라는 행동을 하시면서 목사님에대한 의혹도 생기고 말았다. 나는 성전건축 부정 조사위원직을 의뢰받아 공정한 조사를 하고 그집사가 유용 한 돈을 어느기간동안 모두 반납하기로 하고 퇴교조치를 시크는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집사는 그이후로 목사안수를 받아 목회를 시작하였는데 나는 지금도 이해할수가 없다. 그런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준 미국의 사이비 신학대학도 문제이지만 본인의 신앙적 양심은 어디로 갔는지 말이다.
새성전으로 이사온 우리교회는 나날이 발전 해나갔으며 뉴저지에서도 이름난 교회로 성장 해 나갔다. 내일생에 교회봉사를 최고로 많이 했던것이 이교회에서 였다. 원래 교회 는 말없이 시킨데로 하면 무엇이든 맡겨버리는 것이 상례인것같다. 일반회사와같이 본인 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일을 맡기는것이 아니기때문에 NO 만아니면 닥치는데로(?) 일을 떠맡기는 추세인것같았다.
그상황에서 나는 남성중창단으로 가입되어 총무직을 맡아 행사주관, 곡선정과 악보준비 등 뒷바라지를 하면서 연습에 임했었다. 밤 12시 넘어까지 연습을 하였지만 그래도 보람되고 즐거웠었다.
찬양대,구역장,선교회장 ,친교부장,조사위원,편집위원,방송실 기술고문 등 한꺼번에 7가지를 맡은적도 있었다. 그당시는 내나이도 젊었고 할수있는한 최대한으로 봉사를 한것같았다. 제1회 새성전 입당기념 탁구대회, 마을 친선 바자회 등 내 생계를 뒤로한채 딸의 도움을 받아가며 열심히 뛰었다. 교회 행사는 남에게 강제로 시킬수가 없는고로 거의 혼자서 하게 마련이다.
건축비 비리사건의 미지근한 해결로 교회분위기가 그리 좋지않는가운데 담임목사님의 정년기가 되어 그당시 서울 광림교회 부목사로 계셨던 권 일연 목사님이 후임으로 오시게 되었다. 원래 목사님이 교체되면 새로오신목사님에게 아첨을 해가며 달라붙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교회역시 그런 족속의 무리들이 장로로 피택이되어 교회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나와 별로 교제(?)가 없었던 권일연목사는 나에게 예배부의 봉사를 의뢰해와서 1부 예배부, 3부 찬양대의 봉사를 계속 해왔다. 그후 나는 새가족부를 맡아 오래동안 그분야에서 봉사를 하였다. 나는 교회내부일에는 관심을 가지지를 않았는데 권목사님의 자질문제가 일어난것같았다. 정인영 원로목사는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고 멀리떠난다는것이 미국 서부(씨아틀)로 오셨는데 너무나도 알아주는(?)사람이 없어 적적 한 때에 그를 추종한 자들이 권목사님과의 갈등으로 다시 모셔오고자 시도를 하는것 같았다.
나는 찬양대장을 맡고 있었고 아무래도 목사님을 보호해야하겠다는 생각으로 찬양대원 들을 철저하게 관리를 하였다. 대원들 을 우리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접대하였고 지휘자 도 대화를 자주하여 내입장을 설명하였다. 교회는 순식간에 억망 진창이 되어버렸다. 주보가 두가지(목사파/장로파) 가 나오고 예배도 한건물 한시간에 두가지를 하고 권목사 가 설교를 하면 장로파(원로목사파) 들은 찬송을 하고 경찰들이 예배당에 배치되고 등등, 나는 이모든 상황을 12시간 이상의 분량으로 Camcorder 에 담아 놓았는데 참으로 공개 를 못하고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교회의 치부중 치부인 셈이다. 아마 MBC PD 수첩에 보내면 헐뜯기 좋와하는 그들은 “단독보도” 라고 떠들어 데면서 기독교를 비방 할것이다.
어떻든 목사파나 장로파나 만만치가 않아서 총회 법정에서 재판하기로 하고 사회법정 까지도 고소등으로 상정이 되어 그당시 뉴저지일대의 신문 방송등의 최대 뉴스가 되어 버렸다. 권일연목사(현재 당회장) 과 정인영목사(은퇴목사)의 싸움은 일보의 양보도 없이 진행이 되어갔다. 나는 목사님을 보호하는 입장이었지만 장로파쪽 사람을 법정에 고소하는 연장에는 일부 목사님편의 사람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싸인을 하지않았다.
총회에서도 의견이 양분되어 격론을 벌린끝에 판결이 나왔는데 재산을 양분 하는 것 으로 분란을 중지하도록 하였다. 즉 원로목사를 포함한 장로파들은 교회 건물을 갖고 권목사쪽은 350만불을 받고 교회를 다른곳으로 이전한다는 조건이었다. 보통 분란이 일어나면 어느 한쪽이 쫓겨나든지 조용히 물러나든지 하는데 참으로 특이한 케이스 였다. 권목사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고 모두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는것같았다.
남북한이 갈라지듯이 서로가 원수가 되며 비방하고 논쟁은 아마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것같다. 그후에 총회에 불만을 갖인 팰리세이드 장로교회는 해외(한인)장로교회 교단을 탈당하고 미국장로교회 교단으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 그리고도 그후 그교회는 세번정도 분렬이 생겨 분리된 또한두개의 교회가 새로 생겨났다.
나는 목사님을 따라 뉴욕,뉴저지 경계선에있는 자리에 넓은 전 제약공장 자리에 새워진 “하나님의 교회”로 왔다. 찬양부장을 맡아 교회 전찬양대를 관리하게 되었고 음악회도 개최하였다. 중립적이었던 지휘자도 나의 설득으로 함께 따라왔다.
(우리는 새로운 예배처의 입당이 늦어저 임시로 약 두달동안 동네의 고등교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렸다.)
내생각엔 권목사님이 너무 욕심을 부려 우리의 현실과 맞지않는 큰땅을 차지하여 언제 교회로서의 역활을 하게 되는지 걱정스러웠다. 교회 분립으로 들어온 예산을 적절하게 사용 하지않는것같아 불안 스러웠다. 그러나 항상 교회에는 Yes Man 이있어 목사님의 생각 데로 움직여주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수시로 목사님에게 교인들의 의견을 전달하므로 나를 별로 좋와하지를 안하신것같았다. 나는 LA 에서 집사 안수를 받고 10여년이 지난 상태로 이교회에서도 집사 취임식이 있어 취임을 받은바 있었다. 그런데 장로 공천에서 제일 끝자락에 명단이 올라 교인들 특히 찬양대원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목사님에게 전화를 많이 한것같았다. 경제적으로 미약하고 목사님에게 반항적(?) 이어서 그렇다는 뒷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나는 이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하게 되었다. 권목사님은 항상 교인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않고 자기의 뜻이 하나님의 게시라고 이야기를 하며 목회를 하셨다 . 아마 교회 분란을 겪은 목회자들의 공통된 행위인것같았다. 나는 교역자를 뺀 (당회장 지시에따라 투표) 대부분의 교인들의 지지로 교인 3분의 1이상의 득표로 목사님의 의지에맞지않게 장로 로 선출이 되었다. 3개월의 교육끝에 노회에서 치르는 고시에 합격하여 정식으로 장로로 봉사하게 되었다.
(2007 년 5월 6일 장로 장립)
당회의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대화의 광장이 아닌 명령 하달 기관이란 느낌이 들었다. 보통 당회원의 임기는 70세인데 우리교회만 65세로 내규로 정해버렸다. 권목사님의 아이디아라고 들었다. 나는 65세가 되면서 모든 봉사에서 손을 떼고 심장 수술후 교회거리문제를 이유로 그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찬양대원들과 교인들의 전화가 빛발치게 왔는데 권목사님은 한번도 전화를 하지안으셨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리라 생각이 되었다.
지금 나는 우리집에서 약 5분거리에 있는 한소망 교회라는 장로교(미국 장로교단) 에 조용히 다지고 있다. 서울 명성교회 부목사 출신인 이 승준목사님이 담임으로 계시는데 내가 등록할때쯤 이교회도 분란이 있어서 원로목사파들이 교회를 따로 차려서 나간 뒤였었다. 외들 그러는지 참으로 한심하다. 지금은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것이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고 있는시대라고 들었다. 그말이 실감이났다.나의 심장수술 담당의사는 한인 밀집지역 비교적 큰 교회의 장로인데 나에게 교회 스트레스가 나에게는 치명적이니 좀 빠저있으라는 권유가 있어 그데로 하였더니 건강이 아주 조와진것같은 느낌이 든다.
이민교회는 한국과달리 말이많은 사람들의 집합체인것같다. 한인 동포들이 제일로 많이 모이는 침목을 겸한 것이 이민교회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믿음이 깊지않는 과거 지식인들이 모이게 되고 또한 그들은 사회생활권에서 영어의 불편함과 이국의 서툴은 관습속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교회에 와서 풀어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때문에 자기를 내세울려고 하는 것이 현실로 보인다. 그러니 제일로 용서가 없고 겸손이 없는곳이 한인 교회이라고 말을 할수 있을 지경이다.
너희를 핍박하는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말라
즐거워하는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체 하지 말라 (로마서 12장 14-16)
미국이민교인들이 꼭 지켜야할 말씀인것 같다.
(다음에 계속/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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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50회로 마감 하려는가 보구나. 섭섭하기도 하고,
그동안 너무 수고가 많았다. 관심있게 읽었는데
동창들이 동감하고, 공감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복이의 적극적인 조직 생활이 이제는
Emock에서 발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장로님, 처음으로 이리 불러본다. 교회발전은 목사보다 위에 갈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문제의 책임은 목사에게 있다. 함량미달 인간이 그런 검증없이 남발하는 목사 인증서를 받고는 즉각 하나님 밑자리로 이동하고 인간이 아닌것처럼 행동하고있는 많은 군상들이 있다. 그 목회아래 장로도 같아 진다. 그래서 별석을 만들고, 명함에 장로라 찍고 그런 짓들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중하게 여기고 험한 세상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지금까지 그 걸음으로 살아온 그대에게 찬사를 보낸다. 믿음의 분량 그 이상을 넘지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상급을 준비하셨다.
특히 이민교회의 분란이 많은 것은 교회에 '친목'을 위하여 모여드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신앙이 중심이되고 믿음이 중심이 된 교회라면 절대로 그런 문제가 발생을 안했을거라고 생각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처럼 교회문제도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게 되있으니까 절대로 나설 일이 아니다.
내방법은 너희 방법과 다르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었인지 깊히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주님 만나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다고 말할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자기 죄는 직고하게될 것이다. 나의 나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할수 있는 많은 성도들이 이 땅에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귀한 글 고맙다.
한 교회에서 한꺼번에 7가지의 직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거 같은데
아마도 수복이의 능력이 특출했기때문이겠지만
그만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더욱 깊었기 때문이었겠지.
이글을 보면서 처음 듣는 말이 있다. 교회 스트레스?
무슨 스트레스든지 많이 받으면 건강이 깨지게 되어있다.
교회 스트레스에서 빠져나오길 바란다. 그러면 건강도 회복될테이니...
좋은 글 잘 봤다.
교회분란이야말로 사회에 본이 않되는데 왜들 그러는지.... 그래도 수복이는 믿음대로 살아온 것 같아 다행이다 싶구나. 글 잘 읽고 있다.
수복아 ~ 너의 삶의길을 우리가족 모두에게 보여주고 잇단다 ~ 참으로 자랑스럽다 친구야 !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 : 22 - 23 )
요즘 불법을 행하는 변질된 목회자들 피해 다니는거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전 청빙위원에 한명으로 면접얘기중 들은건데 우리3년 선배였던분이 자기가 현재섬기는 미국교회를 설명하며 " 80-90명에 적은교회지만 유아세례때부텀 현재까지 80여년 출석하는 할머니만 3분, 반세기이상을(50년) 출석하는분이 20여분 계십니다" 를 들은적이 있다. (이민교회=문제의 근원, 목자의능력=교회발전의 한계??).그럼 이 적은미국교회도 지난 100년간 문제가 없었을까? 그새 함량미달의 목회자는 없었을까? 미국교계통계에 #1 많이부른 찬송--Amaging grace, #1교인들 부르길 좋아하는 찬송--On the hill far away,갈보리산위에, 란 소릴듣고 혼자 상상했다. ,,갸들두 우리가 못보는 아픔을 품고 깊은강처럼 유유히 흘러왔구나,,
내가소장하고 있는 팰리세이드교회 분란의 모습을 찍은 Camcorder Tape (8mm) 약 6시간분
을 참고로 필요한 동문 목사있으면 알려다오 지금시점에 버릴려고 하는데 혹시라도 참고가 된다면
보내주도록 하겠다. 알려주기바란다. 언론공개는 사양한다. 아직 8년밖에 지나지를 안했기때문에
화제가 될수도있고 기독교 망신이니까 ----
수복 형 ! 그냥 조용히 없애버리시지요. 왜냐하면 그 현장에서 본 이형은 앞뒤가 구분되지만 지금 다른 사람이 보면 시간의 원근이 겹쳐저서 다른 학설(?)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80년후에 공개하시면 역사적인 자료는 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좋은 의도가 오히려 고발성 뉴앙스를 가지기 때문에 좋은 소리는 못들을 것같아서요. 참고하세요.
그당시의 자료들(회의 내용, 노회 공문서 사본, 불온문서 등등) 정리하는중에 Tape 는 내가 위험(떠밀림)을 당하면서 촬영한것이기에 혹시나해서 이야기를 올린것이었으나 역시 최목사의 말데로 없에버리는것이 제일 좋을것같다. 고맙다.
전, 아까운 생각이듭니다. 어쩌면 귀한 연구 자료가 될수있으리란 기대에서 입니다. time capsule-50년,해서 Princeton, Dallas Theo.Sem., 장신대, Trinity,,,, 교회행정학과 archives에 매껴 2060년대쯤 연구하는분에 도움이 돼쟎을까하는 바람입니다. 헛튼손에 전해졌을때의 risk도 있지만 필요한손에 전해졌을때의 값도 상당하리란 기대입니다. 6세기-15세기 까지에 Moore, Islam들에 연연한, 탄력있는 수학, 의학, 건축학 없이는 16, 17세기에 Renassance를 상상해볼쑤 없음처럼, 꼭 필요한 손에, 미주이민교회사 연구 팀에 전해줄쑤 있다면하는 전제가 보장된다면---. 엄청난 값어치가 있지않을까하는 기대에서,,, 멍구가 또 지낫쳤나????
갈릴리 호수의 뱃놈,어부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후 하루에 3 천명씩 전도하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됐는데,
성령을 받지 못하고 돈과 명예에 눈먼 날라리 목사 한테 바른 말하다가 수복이가 당햇구나,
의를 위해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주님께서 상처를 치유해 주시리라 믿고 잊어 버리길 바란다.
주님은 목사, 장로, 집사, 할거 없이 모두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성령 받지 못한 목사가 고집이 세고 사회성이 부족하면 교인들이 피곤하고, 얌체성이 강하고 지루한 목사는
교인들이 왜 도망을 가는지 모르고 잔꾀만 부리고 있으니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