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여행 둘째 날.
관광버스는 잔인하게도 우리를 벌교역에 떨어뜨렸어요.
가고 싶은 곳 지명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순간 우왕좌왕하다가 벌교역에 가서 관광 가이드를 얻었습니다.
휴, 다행이다... 고맙게도 지도에는 반가운 지명이 나와 있네요.
벌교시장 입구 옆 2천원 짜리 식당.
몹시 배가 고파 주은이와 해주를 두고 먼저 점심을 먹었지요.
“앙... 분식 먹고 싶어요. ㅠㅠ”
고집을 피우는 두 아이를 데리고 빨리 식사를 마친 예찬 어머니께서
짜장면 집을 찾아가셨습니다.
“저희가 강원도 철암어린이도서관에서 모둠별로 여행을 왔는데요,
여기서 가볼 만한 곳을 좀 추천해 주시겠어요? ”
“음... 그 지도가 잘못 된 것이네요.
참, 요즘은 조정래 문학관을 짓고 있어요, 현부자집 근처에...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요.”
짜장면집 아저씨께서 전라도 억양으로 친절하게 알려 주십니다.
여기가 맞을까... 부지런히 걷다보니 조정래 문학관 공사현장.
야호, 찾았다!! 현부자집에 도착!!
술도가가 아이비 교복점 근처라고 알려주신 김동찬 통신원을 이어
왕언니께서 다른 모둠에 문자전송 완료 오바.
한국과 일본의 양식이 섞인 이층, 그 당시에
양변기가 있었다는 화려한 현 부자네를 나와
도래등에 있는 농민주유소에 들렀습니다.
석유차를 점검하고 있던 아저씨께서 나그네들을 알아보시고
『태백산맥』의 대목을 구체적으로 들여가며
회정리 교회와 김범우의 집을 꼭 가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다음에 소설을 읽고 오시면 보는 재미가 다를 거에요.^^ ”
일제 치하에 너른 논과 밭을 소작농에게 낮은 세로 빌려 주면서
어려운 시절, 집에서 음식물이 남지 않도록 돼지를 키웠던
지주 김사용의 집. 소박하고 의젓한 품위가 느껴져요...
“김범우가 살아있다면 그와 사랑에 빠졌을 지도 몰라요.”
예쁜 우정이... ^^
틀린 길이 아닐까 불안해서 한 아저씨를 붙잡아 여쭈었더니
김범우의 집까지 차로 태워주셨지요.
10분 동안 모두 고단한 다리를 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정리 교회를 들러 후원금으로 산 꿀떡을 먹고 수도가에서 목을 축였어요.
마트에서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사서 좀 쉬자며 배짱좋게 읍사무소로 들어갔어요.
어, 잠시만요 어머니!! 콩딱콩딱!!
관공서에서 이래도 될까?
주위의 이목에 얼굴 새빨간데 아이들은 간식을 풀고
왕언니는 공무원에게 벌교의 뜻과 소화다리의 위치를 물으셨습니다.
벌교 관광가이드 달랑 하나 들고 시작해 지역주민들께 여쭈어가며
우리들 스스로 가이드이자 관광객으로서 자유로운 여행을 즐겼습니다.
귀동냥으로 얻은 이미지를 맞추어가며 아저씨 아주머니의 손가락 이정표를 따라
태백산맥의 주인공이 먹고, 웃고, 울고, 고뇌하며 걸었던
역사적인 곳곳에서 영광과 쇠락을 읽고
한국의 아픈 옛 날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위로하였지요.
아이들에게 벌교 여행은 어떻게 기억될까?
이웃들, 가족과 함께한 이 여행은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로 남을까?
왕언니는 생전 처음으로 이렇게 많이 걸았다며 투정부리는 아이들을
토닥거리며 챙기셨습니다.
아침에 왕언니 헤어샵에서 아이들은 예쁘게 머리도 땋고
(후원금이 있는데도) 무언가 해 주려는 어미의 마음 덕분에
호떡과 오뎅을 대접받았어요.
짜장면 집에서 소원을 푼 해주와 주은이는
그 나이에 먹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라 이해하고 기다려 주신
규빈 어머니의 의중을 알게 될까?
생각이나 기호나 취향이 달라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기대해도 될까?
그들만의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여행이었습니다.
나, 다예, 해주, 우정선생님, 주은, 그리고 예찬 어머니.
여행오기 전부터 역할 분담하고 의논해서
회정리 교회, 김범우의 집, 현부자네, 소화다리, 홍교,
남도여관, 술도가... 계획한 곳을 모두 찾아갔지요.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준비하고 부딪히며 모험했어요.
타지에서도 묻고 또 여쭈며 용기와 배짱도 얻고
서로 경청하고 이해하고 관용하는 법도 배웠어요.
벌교 주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귀찮게 물어보는
철암 어린이들 덕분에 내 고장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우셨을 것입니다.
앞으로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를 더 공부하려 하실 거에요.
아동사업을 통해 아동의 인격을 기르자.
아동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의 바탕을 기르자.
가족, 옆집 어머니, 옆집 아이와 함께 했던 벌교여행.
즐거운 추억만 만든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어른들도, 광활팀도 모두 유익을 얻었노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주체가 살고, 지역사회가 사는 사회사업의 맛이 이런 것일까요?
꼬막처럼 쫄깃쫄깃한 맛...
그런데 꼬막은 어떤 맛일까?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