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사람은 좋은데, 주위에서 무기력하고 능력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감성이 둔해서 이러한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
감성이 높아지면, 활력이 넘치고, 능력이 생긴다. 또한 감성을 높히면 매사에 감사함이 넘쳐나고 감동적 삶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다. 특히 지식은 많은데도, 얼굴이 잘 생겼는데도 얼굴이 미인인데도 이러한 소리를 주위에서 듣는 사람은 감성을 키우는데,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감성은 쉽게 말해, 감정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감정과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특히 정심경에서 저자는 부정적 감정을 배제한 긍정적 감정만을 감성이라고 한다. 정심경식 사고로는 감동도 감성의 일종이라고 보면 좋다.
긍정적 감정만을 감성이라 칭하는 것은 저자의 이론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정심경에서만 통용되는 정의이다. 즉, 정심경식 사고로는 사사로운 것에도, 어려운 환경에서도 긍정적 감정, 큰 감동을 느끼는 경우가 감성이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사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긍정적 감정 즉 감성을 갖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실제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회에는 정말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의해, 감사하며 생활하시는 훌륭한 분들이 있다.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신앙이 있으면, 어려운 환경도 기적적으로 극복된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곤경에 처할 때도, 시기적절하게 누군가 구원의 손길이 다가온다. 그것은 하느님이 다 지켜보고 있다가, 타이밍에 맞추어 구원자를 보내주는 것이다.
하느님은 정말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조건없이 순수하게 하느님을 사랑하는가를 테스트해보는 것이다.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들은 죽음에 이르는 환경에서도 순수하게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느님도 빛의 자녀들이 죽음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눈물을 많이 흘리신다.
그러나, 하느님은 하느님 자녀의 영혼을 순수하고 순결한 믿음으로 연단시키기 위해, 바로 구원을 주지 않고, 넘을 수 없는 한계상황에 왔을 때, 구원의 손길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시련뿐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감성이 높은 사람은 감사함과 감동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강하게 느끼고, 행복해한다.,
감성이 높은 사람이 항상 감사하는 체질인 것은 모든 것에서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감동 그 자체이다. 감성이 높은 사람은 혀로만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감동과 혀로 맛을 즐긴다. 꽃한송이를 보더라도, 그 아름다움에 감동을 한다. 맑은 푸른 하늘을 보더라도,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모습에 감동한다.
풀벌레 소리를 듣더라도, 자연의 소리에 감탄한다. 모든 것이 감동의 연속이기 때문에, 삶 전체가 감동의 삶이다. 당연히 삶에 활기가 넘쳐난다.
저자가 일상생활 중 사사로운 것에서 큰 감동을 느낀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저자가 있는 곳은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아키타현의 조그만 시에서 살고있다. 저자가 사는 마을은 선한 사람들이 살고있는 매우 평화로운 조그맣고 깨끗한 시이다.
시골의 일본집들은 정말로 아담하고 정원이 너무 깨끗하게 잘 손질되어있다, 그리고 집 앞에는 거의가 화단이 있다. 화단의 꽃 중에 일본어로 「마리 고울도」라는 꽃이 있다. 저자가 생각할 때에는 영어로 「marry gold」가 아닌가 싶다. 이 꽃은 약 25cm 정도의 작은 꽃이다.
꽃은 노랑색인데, 밝고 순도가 높은 노랑색이다. 즉, 노랑색 중에서도 명도와 채도가 매우 높은 노랑색의 꽃이다. 꽃은 앞으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마리 고울도」라는 꽃에 주목하는 일본인들이 거의 없다. 화단의 꽃들 중에서는 관심을 못받는 꽃이라 할 수가 있다. 꽃의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작고 아름다운 꽃을 볼 때, 하느님의 메세지가 그 안에 수없이 들어있는 것을 알고, 정말로 큰 감동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저자에게 큰 메세지를 준 하느님께 크게 감사한다.
「마리 고울도」안에 들어있는 수없이 많은 메세지를 저자가 적는다면, 책 한권을 써도 될 분량이기 때문에 중요한 핵심 메세지만 간략하게 쓰겠다.
지구문명은 바야흐로 새로운 빛문명권으로 들어선다. 이 새로운 빛문명권이 열리는 시대를 많은 성자들이 「황금시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저자가 「마리 고울도」라는 꽃을 보고 있으면, 이 꽃은 저자에게 속삭이며 하느님의 메세지를 저자에 가르쳐준다.
「앞으로 지구는 새빛문명시대인 황금시대가 열릴 것이예요. 노랑색 꽃과 gold라는 꽃 명이 바로 황금시대를 의미하는 거예요. 「마리 고울도」라는 꽃의 명도와 채도가 높은 노랑색이라는 것은 황금시대에 인류를 새로운 가치관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은 백인종인 서양인들이 아니라, 황인종 인 동양인들 중에서 마음이 밝고, 정화된 사람들이 하게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예요」.
「마리 고울도」라는 꽃이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만물 앞에 겸허한 자세를 영원히 가지라는 빛의 자녀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메세지예요. 「마리 고울도」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작은 꽃이지만, 하늘이 지구의 새로운 빛문명권의 발전에 적극 개입하는 황금시대가 되면, 기준이 땅이 아니라, 하늘이 되기 때문에, 땅을 기준으로 작은 것이 반대로 하늘을 기준으로 보면 더 큰 것이되는 거예요.
「이것은 바로 선천시대에서 후천시대로 넘어오면 작은 자가 큰 자가되고, 주목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던 준비된 빛의 자녀들이 주도하는 하느님의 역사가 지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등등 정말로 일본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도 모르고 ,화단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꽃이 오히려 저자에게는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만물이 정말로 하느님의 메신저로서, 저자에게는 큰스승이라는 것을 저자의 영혼에서 깨닫는 순간 큰 감동의 파도와 함께, 만물에 대한 큰 감사 그리고 영원히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만물과 하나가 되야함을 절실히 느끼곤 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꽃이 저자에게 하느님의 메세지를 전해준다는 것 자체에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어 거짓 이야기라고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을 수가 있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진실이다.
물론 안믿는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아니다. 저자는 모든 사람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삶의 선택을 매우 존중하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를 믿으라는 강요는 절대로 안한다.만물과의 대화를 믿지 않는 분들에게는 만물과 대화를 인간은 할 수가 없다가 정답이기 때문이다.
마치 스픈을 염력으로 구부릴 수가 있는 사람에게는 「염력으로 스픈은 구부려진다」가 정답이지만, 염력으로 스픈을 구부릴 수가 없는 사람에게는 「염력으로 스픈은 구부려진다」라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실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지 다음과 같다. 저자의 글에서 하느님의 메세지만 들으면 된다. 믿지 않는 사람은 학교 때 시를 해석한 것처럼 단지 꽃은 순수를 상징하고 꽃이 하느님의 메세지를 전해주었다는 것은 순수한 하느님의 메세지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 수단이었다라는 정도로 가볍게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독자들은 단지 저자가 무엇을 강조하려고 「꽃이 저자에게 하느님의 메세지를 전해주었다」라고 쓰는 가를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즉, 사사로운 것에서도 감성을 높히는 훈련을 하다보면 큰 감동을 받을 수 있고, 그러면 일상생활이 항상 감사와 행복으로 넘쳐난다는 메세지를 저자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감성을 높일까의 방법론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사실은 보다 감성을 높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만물보다 낮은 자리에서 만물을 생명체로 인식하고, 만물을 아름답게 보며, 만물을 사랑하고 만물과 대화를 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만물을 생명체로 여겨야, 만물이 하느님의 다양한 분신의 하나라는 것을 안다. 그래야, 만물이 빛이라는 것을 안다. 만물이 하느님의 분신이기 때문에,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만물과 대화를 하는 것은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인생에 어려움이 처할 때, 만물과 대화를 하면, 만물은 정답을 가르쳐준다. 이 원리를 깨닫고 실천한다면, 고독을 느끼지 않는다. 우울증은 걸리지 않는다. 만물이 친구이기 때문에 정말로 이 세상에 세상적 친구가 없더라도 외롭지가 않다.
그런데, 이와반대로 감성이 둔하게 되면, 즉, 늘 부정적 감정을 가지면 고독하며, 무기력하게 되고, 만물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 만물과의 대화는 거짓이라는 이성적 판단에 지배되어 영원히 만물로부터 얻는 지고의 기쁨, 지고의 행복, 지고의 감동 등을 느끼지 못한채 이 땅에서 사는 것이다.
만물이 살아았다는 것은 이성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감성으로 아는 것이다. 이성으로 우주의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성만으로 현대과학문명을 발전시키려면, 한계가 있다. 현대문명은 이성과 감성이 손잡고 발전시켜야한다.
그리고 한가지 꼭 필요한 것이 있다. 현대과학문명은 반드시 하느님의 사랑과 함께 가야한다. 즉, 현대문명은 하느님의 사랑을 중심축으로 발전시켜야한다. 지구가 미래에 우주의 중심행성이 될 수 있는 것은 지구성에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하느님 사랑 안에서 늘 사는 빛의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밖에 셀수 없이 많은 최첨단 과학문명권을 이룬 행성들이 있지만, 그런 곳에 사는 지적생명체들이 우주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적능력만 가지고는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능력이 없어도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하느님의 사랑과 늘 함께하는 생활을 해야, 하느님의 자녀이고, 우주의 중심적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정확하게 알려면, 만물이 하느님의 다양적 분신이라는 것을 감성적으로 개달아야한다. 그래야, 만물이 인간의 현대과학문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만물이 지지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지지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물론 감성만으로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이성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과 같은 3대 영양소라면, 감성은 비타민, 미네랄, 물, 효소, 섬유질에 해당한다. 3대 영양소와 비타민, 미네랄, 물, 효소, 섬유질이 조화를 이루어야 심신양면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듯이 우리도 꿈을 이루고 행복해지려면,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유지하여야한다.
첫댓글 글을 통해 오랫만에 생명수님 뵈니 반갑습니다. 사실 숫자 만으로는 하나님 한얼님의 사랑기운을 느끼고 표현하기는 어렵고 감성이 풍부해지지 않는데 정심경 말씀을 새기면 뭔가 부족함이 채워집니다. 순수나라님의 시에서도 사랑의 한기운, 자유로움, 평화, 신성을 느끼므로 조화로운 일치감과 공감의 미소가 지어져요. 전 일상생활에서 감정의 진폭이 큰 편이라 이렇게 좋은 영성의 말씀에서 힘을 얻고 있답니다.
폴라리아님 귀한 댓글을 통해 만나니 정말로 반갑네요. 숫자로 배우는 금척 과 정심경의 말씀 그리고 순수나라님의 시를 하나로 융합하면 정말로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군요. 저도 폴라리아님이 소개하시는 금척과 순수나라님의 시에서 저의 부족함을 많이 채우고 있답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복본시대는 순수시대이며 감성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폴라리아님께서 일상생활에서 감정의 진폭이 크다는 것은 감성이 풍부하시다는 증거이예요. 감성시대에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은 삶이 폴라리아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예요. 폴라리아님께서 저의 정심경 말씀을 높게 평가해주시는 데에 저의 영혼으로부터 폴라리아님께 큰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무한사랑과 므한감사를 폴라리아님께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