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양평 살자
박경은(양서면 중동리)
아주 오래전. 마당은 잔디밭이었나 보다. 지금은 풀숲이다. 키 큰 풀 사이에 거친 잔디가 간혹 보인다. 정원에서 뱀이 나와도 놀랍지 않겠다. 배수로는 막힌 게 확실하다. 질척거리는 마당을 밟으면 양말까지 젖는다. 안방 천장에 물 샌 자국이 있다. 지붕이 새나 확인해 봐야겠다. 묵은내, 먼지 냄새가 집안 곳곳에 배어있다. 오랜 시간 돌봄을 받지 못한 집.
이 집은 엄마와 닮았다. 가족만 돌보느라 당신 몸이 큰 병 들 때까지 모른 울 엄마와 똑같다. 집을 바라보니 한숨이 나온다. 고개를 강하게 흔든다. 낙담을 떨쳐버리련다. ‘이제부터 시작하자. 어서 엄마를 모시고 오자. 한오백년 이 집에서 살아 보자.’ 스스로 마음을 추스른다. 눈도 못 뜨는 엄마 얼굴이 아른거린다. 서둘러 엄마에게 돌아가야 한다. 초행길에 좁다란 외길이다. 해 떨어지기 전에 서울로 출발해야 한다. 정원에 놓인 커다란 바위를 정성껏 쓰다듬는다. ‘얼른 엄마 모시고 올게. 울 엄마 살려 줘’ 바위에게 말한 건지, 세상 온 신(神)들에게 빈 건지 모를 일이다.
양평에 집을 샀다. 남편 표현을 빌리자면, 덜컥산거다. 사람이 10년 동안 살지 않았던 집이었다. 살 때 고려했던 점은 오직 한 가지다. 가장 빨리 입주할 수 있는 집이다. 계약한 집 외에 다른 집은 월세방이었다. 평생 가족 건사하고 희생한 엄마 집이 월세인 건 싫었다. 다른 집은 입주까지 시일이 오래 걸렸다. 엄마에게 시간이 없었다. 이 집은 산이 가까우면서 당장이라도 이사 가능한 곳이다. 집주인은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도 좋다. 청소를 안 해도 좋다. 무조건 일찍 집을 비워달라고만 했다. 집주인이 ‘본인도 어머니를 모신다.’며 집값에서 이백만 원을 깎아줬다. 계약을 진행한 부동산 사무소 정 실장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부동산 중개 30년 동안, 이런 바보는 처음’이라고 누군가에게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서 ‘이런 바보’는 십 년 비어있던 집을 흥정도 하지 않고 ‘감사하다’며 계약한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바보 맞다. 이보다 더한 바보가 되어도 좋다. 하루라도 빨리 양평으로 올 수 있다면 더한 짓도 하겠다. 흥정을 안 한 이유는 엄마를 살리는 일에 어떤 부정이나 흐트러짐도 끼어들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설명하기 힘들다. 그저 뭐든지 후하고 넉넉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엄마 생명이 이어질 것 같았다. 엄마는 양평을 좋아했다. 친구들 모임을 양평에서 자주 했다. 더 나이 들면 양평으로 이사하겠다고 자주 말했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던 엄마다. 사업 접고 은퇴할 날을 기다렸다. 이 년만 더 일하면 일 접고 양평으로 내려가겠다고 했다. 엄마와 같이 엄마 살 집을 고르고 싶었다. 끝내 이룰 수 없는 소망이 되고 말았지만
엄마는 중환자실에 있다. 명민하게 반짝이던 눈은 퉁퉁 부어 작아졌다. 흘린 눈물이 말라붙어 얼굴은 얼룩져 보였다. 온 몸은 압박 줄로 꽁꽁 묶여 있다. 엄마는 골수 검사한 이후 치료를 거부했다. 하루 종일 물도 마시지 않고, 곡기도 끊었다. 엄마가 유일하게 하는 말은“고맙습니다. 이 늙은이 때문에 고생 많으십니다” 뿐이다. 주로 병실에 드나드는 인턴, 레지던트 의사와 간호사에게 건네는 말이다. 하루 면회 시간은 한 번, 이십 분 동안이다. 엄마 병실에 들어서기 전에 이를 악문다. 눈에 힘을 준다. ‘난 엄마 딸이니까, 명랑하게. 어떻게든 엄마를 살릴 거니까 슬퍼할 필요 없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우리 강아지” 나지막이 엄마가 말한다. 팔을 뻗치려 한다. 이내 관둔다. 온몸이 묶인 걸 확인한다. 우리 둘 다 동시에 한숨을 쉰다. 엄마 얼굴에 잠시 돌았던 생기가 사라진다. 엄마에게 할 말이 너무 많다. 오늘 정 실장과 보기로 했던 집 여섯 채, 주말에 차가 막혀 바로 입주할 수 있는 집만 본 일, 그 집을 즉시 계약한 사건, 세 살배기 딸아이가 할머니를 찾는 이야기…. 이렇다저렇다 말이 없던 엄마. 빤히 나를 바라본다. 엄마 얼굴에 내 얼굴을 댄다. 엄마는 분명 내 말을 다 들었다. 엄마가 말한다. 고단해 보인다고, 말 그만하고 잠깐이라도 당신 옆에서 눈 붙이고 자란다. 울컥 뭐가 올라오려 한다. 엄마 목을 껴안는다. “엄마, 양평 가자, 양평 가서 살아나자. 우리 엄마가 어떤 엄만데, 우리 같이 양평 가자”
엄마는 하도 열심히 살아 세상에 미련이 없단다. 손꼽히던 한량, 남편에게 못 받은 사랑은 손자 · 손녀들이 채워줬으니 충분하단다.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 엄마의 까만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까운 내 엄마, 불쌍한 울 엄마, 미칠 것 같다. 벌써 면회 시간이 다 지났다. “강아지, 고마워. 족하다. 네 마음 다 알았으니 족하다. 내가 양평 간다고 살아나겠니?” 엄마는 끝까지 내 걱정만 한다. 아이들 어리니, 건강 관리하라고, 늙은 엄마는 이제 마음 쓰지 말라고 당부한다. 엄마를 병원에 두고, 혼자서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았다. ‘왜 엄마를 일찍 큰 병원으로 모시지 못했을까? 허리가 부러졌을 때, 그때 대학병원으로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혼하지 않을 거면 끝까지 하지 말고 엄마를 모실 걸. 어쩌자고 만혼에 어린아이를 둬서 엄마 마음을 부담스럽게 할까, 평생 소처럼 일만 한 엄마, 하필 그리 아프고 힘든 다발성 골수암에 걸렸을까. 왜 이제야 철이 들 것 같은데, 엄마가 저렇게 아픈 걸까, 엄마처럼 착하게 산 사람이 왜 고통스럽게 아파야 할까? 후회만 가득하다. 누구에게 따져 물어야 하나?
엄마가 감탄한다. 진짜 양수리를 지난다고. 정말로 두물머리 길을 거쳐 간다고. 당신 눈으로 지금 보고 있다고…. 그렇다. 엄마를 모시고 양평 가는 길이다. 갈비뼈 세 개가 여러 조각으로 다 부서지고, 움직이지도 못했던 엄마가 일어섰다. 마지막을 양평으로 보내려고 가는 길이다. 아들 같은 사위가 운전하고, 엄마 옆에 내가 앉았다. 아빠 옆에 앉은 큰아이는 왜 아파트가 안 보이냐며 연신 차창에 고개를 맞댄다. 작은 아이는 카시트에서 잠들었다.
조용히 미소 짓는 엄마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 모습을 다시 못 볼 수도 있다. 그런 마음으로 한없이 주시했다. 엄마 모습을 조각으로 새길 듯이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그렇게 엄마와 우리 가족은 양평으로 왔다. 엄마는 여기서 8년을 살았다. 의사들이 포기한 엄마를 이 집이 살렸다. 1년 6개월은 기적처럼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나머지 세월은 거동이 어려웠다. 암이 경추를 침범했다. 이 집은 끝까지 엄마를 지켰다. 엄마도 이 집을 떠나지 않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