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대둔산 –아름다운 동행
일시: 2015년 4월 25-26일
참석자: 김학분, 이경남, 이연숙, 김민지, 신연지 그리고 나(최지혜)
날씨: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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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중앙으로 1,2,3,4 피치가 보이고 그 직선상의 뒤로 독립봉처럼 보이는 곳이 7,8 피치랍니다.
1P: 20m, 5.9 - 페이스, 3번째 볼트부터 슬랩성 페이스, 클라이밍다운 or 하강
2P: 20m, 5.10b – 직상 크랙으로 반 침니 형태의 수직구간, 중간에 큰 촉스톤, 3m 하강
3P: 20m, 5.11a – 페이스, 가장 어려운 코스로 가파른 페이스와 슬랩, 크랙까지 등반해야 하는 종합선물세트
4P: 5m, 5.10b – 볼트 2개 직상 반침니, 볼트 1개 독립봉 (우회 가능), 20m 워킹
5P: 10m, 5.8 - 좌측으로 숲길을 직상하여 60m 워킹
6P: 20m, 5.10a – 날등
7P: 20m, 5.9
8P: 10m, 5.10b – 넓은 크랙
타기 앞에서 토요일 7시 30분에 모여 치킨과 족발을 배달받는 것으로 땡자의 4월 정기산행이 시작되었다. 처음 계획은 경남 언니와 연지의 차를 나눠 타고 모두 같이 출발하는 것이었으나 연지네 점장님의 묻지마 잠수로 인해 연지는 홀로 남겨져 추후 대둔산 야영지에서 합류하는 것으로 계획은 변경되었고, 우리는 세종시 시민인 연숙 언니를 청원 IC 근처에서 픽업하여 대둔산을 향해 출발.
대둔산 임시주차장에 도착하여 분이 언니의 지도하에 부지런히 쉘터를 세운 후 족발과 치킨을 펼치고 고픈 배를 조금 채우고 있으려니 연지가 도착했다.
참석인원 6명 완전 합체를 이룬 후 4월 정기산행 야영의 최다 인원 참석을 축하하며 케익에 불을 켜고, 불 켠 김에 생일이 가까운 나와 민지의 생일 축하 노래도 불렀다. 땡자에 가입한 이후 첫 산행인 나는 신입회원 선물로 “퍼스널 앵커 시스템”도 하사받는 영광스런 자리였다. 새터에 분이언니와 경남언니가 개발한 길에 빨강상상력이란 이름이 붙게 된 이유도 알게 되었는데 “빨강 상상력”이 필요한 길이 어떤 길인지 궁금한 마음에 이름만 수십 번은 들은 새터란 곳이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연속된 음주의 나날로 지친 경남언니가 일찍 자리가 끝나는 것을 용인해준 덕분에 적절한 시간에 아쉬운 자리를 파하고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 분이 언니가 빌려준 워머바지를 입은 덕분인지 나는 3계절 침낭만으로도 땀나도록 따듯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싸늘하다고는 해도 4월은 역시 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밤 새벽 “자연이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지 못하고 쉘터 밖으로 나와 긴급히 일을 해결한 후에 봤던 별로 가득한 대둔산의 밤하늘은 한동안 넋을 잃고 볼 정도로 정말 아름다웠다.
다음날 아침. 7시 기상 예정이었으나 이른 등반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인기척에 모두 예상보다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든든한 쌀밥과 민지 어머님이 준비해주신 콩나물 김치국으로 배를 채우고 출발.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탈 계획이었으나 뜻하지 않은 이른 기상으로 케이블카 시작점에 8시 20분경 도착해버린 우리. 하지만 케이블카는 9시부터 운행 시작. 40분을 기다리느니 걸어올라가자는 경남언니의 너무나 합리적인 말씀에 토를 달지 못하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내려올 때는 꼭 케이블카를 태워달라는 연숙 언니의 외침에 마음 속 깊이 지지를 보내며 열심히 발을 내디뎠다.
케이블카 도착 지점에 케이블카와 거의 동시에 도착. 민지 친구 떡배도 대둔산에 와서 케이블카를 탈거라는 말에 “떡배”가 궁금한 언니들은 케이블카 앞에서 떡배를 목 높여 불렀으나 접선 실패.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원래 목표였던 솔내음 릿지길을 향했다. 하지만 솔내음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인원이 붙어 있어서 솔내음을 뒤로 하고 구조대 4피치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그러나 날 좋은 4월의 마지막 주에 암벽을 타러 온 아름다운 인간들은 너무나 많았고 구조대 릿지에도 사람들은 바글거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 회장님의 선택은 “아름다운 동행”!!! 우측으로 등반길을 끼고 함께 해서 아름다운 동행인건가 온갖 고난을 함께 겪은 후에는 아름다운 동행이 된다는 의미인건가 하며 이름의 배경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자료를 조사하면서 보니 이 길은 2007년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산악회가 산악회 창립 10년을 기념하며 전 회원이 두 달간 온갖 고생을 하며 만든 길이란다.
그 글을 읽으며 땡자도 창립 10년째에 어느 곳인가에 “땡땡이 자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길을 만드는 상상을 해보았다. 특별히 애정하는 길이 될 텐데... 10년 후는 분이언니랑 경남언니가 너무 힘들래나. ^^ 그렇다면 5년 후로. 헤헷.
구조대 릿지를 포기하고 다시 왼쪽으로 내려와 아름다운 동행 릿지길 앞에 섰다. 조금 힘든 곳이 3-4군데 있지만 충분히 할 만하다는 분이 언니의 말에 힘입어 드디어 1피치 시작!!!
분이언니, 민지, 내가 한조가 되고 경남언니, 연숙언니, 연지가 한조가 되어 등반을 시작하였다. 분이언니와 경남언니가 처음부터 끝가지 선등을 섰고 1, 2, 3피치에서는 분이 언니가 먼저 시작해서 경남-나-연지-민지-연숙 순으로 등반을 진행했다.
등반 도중 민지가 ‘후등자는 지옥도 따라 갈 수 있다’ 고 했던가. 정말 이 길은 위대하신 “선등자님”들이 깔아주신 퀵드로와 슬링이 없었다면, 또한 분이 언니가 등반 내내 당겨주신 자일이 아니었다면 내게는 불가능한 길이었다. 분이 언니 & 경남 언니 최고!!!
더구나 분이언니는 아픈 어깨와 허리에도 불구하고 나의 곡소리가 얼마나 걸렸는지 2피치부터는 내 배낭을 메고 선등을 섰다. 그 배낭은 나의 몫이었지만 2피치 앞에 서서 올려다본 순간 내가 배낭을 메고 가겠다고 자신 있게 나설 수가 없었다. 나의 한계...인건지 내가 정한 한계...인건지. 하네스에 매단 두 짝의 트레킹화와 신발주머니의 무게도 버겁던 나는 배낭을 메고 그 길을 등반한 모든 땡자의 “선배님”들이 존경스럽다.
2피치에서는 배낭을 3피치 앞으로 옮겨 놓고 – 결국 분이 언니만 2피치에서 배낭을 메고 등반을 했다 – 등반을 한 후 3피치 앞에서 민지의 미인계로 등산하는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아 배낭을 끌어올렸다. 3피치도 정말 힘들었는데, 다음번에는 아예 3피치 끝까지 배낭을 옮겨 놓고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3피치 끝이 어딘지 알았더라면 이번에도 옮겨놓을 수 있었을 텐데...아쉽다.
회장님의 배려로 빡세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4피치는 패스. 5피치를 향해 길이 아닌 것 같은 길을 헤쳐 가며 간식을 먹을 장소를 물색 하던 중 제법 넓고 평평한 그늘진 바위를 찾아 짐을 풀었다. 여기서 분이 언니는 어디론가 사라져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큰 일을 치른 편안한 얼굴로 나타났다.
허기진 배를 간식으로 채우면서 가볍게 수다 타임. 내려갈 때는 반드시 케이블카를 태워달라는 요구도 잊지 않고 강조하면서 다시 5피치를 향해 출발.
5피치부터 8피치까지는 경남언니가 먼저 시작해서 분이-연지-나-연숙-민지 순으로 등반을 했다. 5피치를 오르며 ‘그래 릿지란 이래야지’ 라고 생각하며 이제 고난은 끝인가 했는데 나의 안이한 생각을 비웃듯 다시 하드한 6-7-8피치가 시작되었다. 7피치의 끝은 딱히 발붙일 곳도 없어서 모두 쌍볼트에 확보줄을 건채 매달려 있어야 했다. 허리가 아팠다. 나는 그 한 번도 허리가 아파서 허리를 접었다 폈다 했는데 분이 언니와 경남 언니는 등반 내내 확보를 봐주며 그렇게 매달려 있었다니. 다시 한 번 두 분께 무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경남 언니 왈 “뒤에서 쫒아오는 아저씨들만 없었으면 맡겼을 텐데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라고 하신다. 언니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먼저 가라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며 우리 뒤를 쫒아온 아저씨들께도 고마운 순간이었다.
8피치의 마지막 순간. 아무리 올려도 올라가지 않는 내 오른쪽 발끝을 향해 “제발, 제발, 제발”을 소리 내어 외치며 마침내 한 스텝을 내딛고 8피치의 끝을 향해 올라섰다. 정말 기쁘고 홀가분한 순간이었다.
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 끝까지 해낸 내가 대견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끝까지 오게 해준 언니들한테 등반 내내 궁시렁 댄 것이 부끄럽기도 한 순간이었다. 3피치 정상에서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길이 이래도 되는 거냐며 투덜대던 나에게 경남언니가 “여기를 언제 다시 오겠나며 이 순간을 즐기라”고 한 말에 앞으로 적어도 3년간은 여기 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다고 대답 했는데, 그 말도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항상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안 될 때가 많다. 다음에는 꼭 제대로 즐기기로 하자!
마지막 두덩이 정도의 바위를 워킹으로 넘어 등반로와 만나는 주능선에 도착. 모두 장비를 해체해서 배낭에 갈무리하고 기쁜 마음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하산길. 계속 배낭을 안 메고 등반을 한 나는 민망한 마음에 연숙 언니의 가방을 탐을 내었건만 굳이 사양한 연숙 언니의 배려로 결국 분이 언니의 배낭을 메게 되었다. 아...이렇게 무거울 수가!!! 배낭을 메고 일어선 순간 저절로 욕스러운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한걸음을 내딛는 순간 무릎에 전해지던 그 하중이란. 조금만 기우뚱해도 균형이 흩어져 넘어질 것만 같은 마음에 조금 겁이 났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으며 아니 김학분이란 인간은 어떤 여자 인간이길래 이런 걸 메고 산을 오르내린단 말인가, 사람이긴 한 건가, 대단하다, 그냥 사람이 아닌 건 아닐까, 그래도 대단하다...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머리가 멍해져 땀과 내 헉헉대는 숨소리만 가득한 무념무상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앞에 보이는 한 무더기의 사람들. 그들이 내게 사진을 찍어야 되니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빨리? 어떻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고,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숨소리 외에는 목소리가 나와 주지 않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웃고 싶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아침에 그렇게 언니들이 목 높여 외쳤던 떡배가, 토마스가 거기 있었다는데 인간들의 무더기만 기억날 뿐이라 아쉽다.
그 뒤로는 케이블카까지 이어지는 돌계단. 배낭은 다시 주인을 찾아 분이 언니의 등으로 돌아갔고 나를 무념무상의 상태로 몰아갔던 배낭을 멘 언니는 다른 배낭이라도 멘 것 마냥 날아갈 듯 가벼운 걸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역시 그냥 인간은 아니었던 것이야...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느릿느릿 내려가 언니들을 애타게 하였지만 다행히 케이블카 시간에는 맞춰 탑승할 수 있었다. 그 긴 돌계단을 나와 함께 해준 연지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후 경남언니에게 은혜롭게 하네스를 빌려주신 한밭식당에 가서 감사의 마음으로 쑥튀김, 메밀묵, 산나물전과 함께 맥주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계산은 나는 모르고 분이언니, 경남언니, 민지는 아는 오원님께서 해주셨다. 다시 저녁을 먹기 위해 차에 짐을 싣고 출발. 저녁을 먹은 곳은 흑돼지와 청국장이라는 맛집. 경남언니는 나름 길치답게 가볍게 식당 앞을 지나쳤고, 그 뒤 민지의 전화를 받고서야 길을 되돌려 우리는 계획대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은 고추장주물럭 2인분, 청국장 2인분, 비지장 2인분과 민들레대포 1병. 부른 배를 만족스럽게 두드리며 청주를 향해 출발. 경남언니는 앞에 가는 대전버스를 추월해야 하나 중얼거리며 그 버스를 따라 마을 안으로 같이 들어가 길을 돌아가는 남다른 감각을 보여줬다. 길치라면 그 정도는 돼야지.
마침내 타기 앞. 연숙언니는 픽업됐던 청원 IC에서 내렸고 나머지 다섯 명은 타기 앞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24시간여가 흘렀을 뿐인데 고밀도로 농축된 24시간이어서인지 엄청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산행후기를 쓰기 위해 모니터에 앉아 지난 산행을 되새겼을 때 계속해서 귓가를 맴도는 소리들이 있었다. “ 지혜언니 잘하고 있어요.” “지혜야 좋아, 그렇지.” 포기하고 싶고 더 이상은 안되나 하는 순간에 그 응원과 격려가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모두에게 감사한 하루였다.
첫댓글 아~~ 읽고 나니 또 산으로 가고 싶다~^^
땡땡이자일 이름으로 길 내는 거 좋은 생각 같어요ㅎㅎ
앞으로도 자주자주 함께 해용~~
자주자주 함께 해서 빨리빨리 내공을 쌓아야겠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
굉장한 등반 후기논문이 나왔네^^
생생해
공언한대로 10줄만 쓰려고 했는데 고맙고 미안하고 가슴에 품고 온 것들이 한가득이라 10줄로 끝낼수가 없었다는 ㅎㅎ 다음에도 잘 이끌어주세요. 회장님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를 데리고 가시면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오실 수도 있다는......ㅋㅋ 나중엔 후회하셔도 소용없어요. ㅎㅎ
별에 대한 무한 애정을 나타낼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정말 감성적이고 사실을 제대로 표현한 훌륭한 후기야..
넘 재밌다. 후기 읽으니 그날 있었떤 일들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른다야,, 마을버스 따라 마을까지 갔다가 돌아나온 작은 에피소드도~~ㅋㅋ
등반용어를 잘 몰라서...먼가 일기같은 느낌이지만 언니가 충고해주신대로 아는만큼만 성실하게 쓰자 생각했어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ㅎㅎ 나중엔 더욱더 등반후기 같은 후기를 쓸 수 있겠죠? ^^
경남이는 운전할때 말시키면 안돼
아는길도 돌아가는 신공을 발휘하지 ㅎㅎ
지혜의 후기를 읽고나니 얘는 더쎈데 데려가도 되겠어..
멘붕이 안왔어 ㅎㅎㅎ
아무리 그래도 천등산 묻지마는 한참동안 안가려구요. ㅋㅋ 햇빛 알러지도 극복하는 등반에 대한 욕구!!! 언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음에도 잘 부탁드릴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