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의 사회, 문화적 의미 - 구술 면접자료
민근홍 국어 논술교실
<붉은 악마와 길거리 응원>
" 이번 월드컵 경기의 초점은 축구 자체가 아니라 한국민들이었으며 그들은 승리를 거듭할수록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단결력을 과시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월드컵 폐막일인 지난 6월 30일자 뉴욕 타임즈 보도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가 놀란" 것은 4강 신화를 만들어낸 태극전사와 함께 12번째 선수 붉은 악마, 그리고 길거리 응원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열기이다. 한국민은 월트컵 대표팀의 기량과 선전뿐만 아니라 일거에 분출된 "질서잡힌 열광"에 스스로도 놀라워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해방 이후 최대의 경사라는 찬사와 함께 태극기 패션, 레드 열풍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붉은 악마의 문화적 의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붉은 악마 조직은 "지금까지의 한국 문화코드를 탈(脫)코드화한, 혹은 우리가 체험한 근대 서구문화의 코드를 변형, 해체시킨 것으로, 제3의 통합적인 새로운 코드 생성을 보여준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이러한 "탈코드"와 "반(反)코드"의 측면을 7가지로 든다.
우선 '붉은 색'으로써 붉은 악마의 붉은 색은 기존의 이미지들, 즉 금지, '피와 불'로 상징되는 전투성과 남성적 파워의 이미지, 홍위봉과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같은 기존 이미지들에서 벗어나 활동성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둘째, '악마'가 보여주는 서구 종교적 이분법에 반(反)하고 있다. 서구에서 악마는 비단 종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스포츠팀이나 재즈 그룹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며, 이 경우 "악마는 윤리적인 선악이 아니라 일상적인 세계를 뒤엎는 힘의 상징으로 바뀐다." 는 것. 또한 꼬리 달린 악마의 서구적 이미지라기보다는 단군신화와 관련된 "치우천왕"을 심볼로 삼음으로써 붉은 악마는 "마치 축구의 헤딩처럼 살짝 방향을 바꿔 한국적인 것"으로의 전환을 이뤄냈다. 셋째, '대~한민국'의 연호와 박자감에서의 코드변형으로서, 월드컵 기간 동안 수백 번 외쳤던 우리의 '대~한민국' 연호는 세 번째에 액센트를 주는 서구 리듬과 첫박자에 액센트를 주는 한국 전통의 삼박자가 합쳐져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거리 공간의 탈코드화로, '길거리 응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대화를 나누는 서구적 "광장"문화와 한극 특유의 골목 문화가 만나서 새로운 거리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런 거리 문화는 골목 문화의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섯 번째, 국기 상징의 탈코드로, 이것은 길거리의 태극기 패션이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권위적인 면만을 보여주었던 태극기가 친숙한 대상으로 탈바꿈 했다. 여섯째는 남방 코드 '페이스 페인팅' 문화의 변형이다. 즉 본래 남방문화인 바디페인팅이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란 말에서 보여지듯이, 몸에 대해 엄격했던 기존 문화를 변화시켰다. 마지막 일곱째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으로서, "종래의 지연, 학연, 혈연 집단에서 벗어나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생성된 네트워크 조직으로, 21세기의 조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조직화의 문화코드를 체현해냈다"는 것이다.
<길거리 응원의 사회적 의미>
붉은 악마의 문화적인 의미를 읽어내려는 시도와 함께, 길거리 응원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허상수 교수(성공회대, 사회학)는 우선 지난 6월 온 나라에 넘실거리던 붉은 물결을 두고 "한민족 특유의 자발적 신바람 문화의 연장"이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지난 시기 우리를 가두었던 '레드 콤플렉스'를 무장 해제시키거나 희석시키는 듯한 시각적 효과와 함께 자기 해방감을 극대화하며 사회통합에 일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레드 콤플렉스'는 강준만 교수(전북대)에 의하면, '공상주의의 위협에 대한 과장되고 왜곡된 공포심과 이에 터잡아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정당화하거나 용인하는 사회적 심리'이다.
유홍준 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는 신바람 문화와 비슷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속학에서 마을 공동체의 집단적 신명이 있었다. 농경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농번기에 들어가기 직전 집단적 신명으로 공동체 의식을 강화했다. 현대에는 그런 것이 다 무너지고 가능할까 싶었는데 공동체 차원의 집단적 신명이 거국적 행사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길거리 응원은 그 동안 부족했던 청년 문화의 인프라와 문화적 다양성의 결핍이 그대로 표출된 자리였다는 시각도 중론이다. 문화개혁시민연대 이원재 정책실장은 "태극기ㄱ로 옷을 만들어 입는 등 과거 금기시되던 것들을 허물어버린 이번 거리 응원은 우리 청년문화의 잠재성을 드러낸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그 동안 문화적 환경의 부족함과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즐길만한 문화가 없었다는 점, 문화적 다양성의 결핍 등이 이번 거리 응원에서 모두 표출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 '거대한 에너지'에 대한 섣부른 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종엽 교수(한신대 사회학과)는 "이번 거리 응원을 공동체 문화로 바라보는 것은 현상을 확대 해석한 것"이라며 "이들은 군중이 되는 경험을 한 것이고, '공동체적'인 경험을 한 것일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기성세대들은 젊은 층을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세대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들은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선택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며 "다만 세대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이들에게 이번 거리 응원은 이들만의 특수한 역사적 체험으로 남을 것이고, 이에 대한 해석은 개인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붉은 악마와 훌리건의 차이>김선업(고대 한국사회연구소)
대한민국 월드컵에 대한 외국의 놀라운 시선 중에 하나는 붉은 악마에 대한 것이었다. 거리 응원은 규모도 엄청났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의 평화적인 행동에 대해 충격을 받은 듯하다. 특히 이들은 유럽 홀리건의 폭력적인 행동양식과 크게 대비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붉은 악마와 홀리건의 행동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운동장을 찾은 동기에서 비롯한다. 홀리건들은 불만 해소의 동기에서 축구장을 찾기 때문에 경기에서 해소되지 못한 좌절은 바같에서 난동과 같은 공격적 해우이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붉은 악마들의 참여에는 표출(express)과 자기 표현, 공동체적 몰입과 같은 긍정적 동기가 압도적이었다. 같은 군중이라 하더라도 심리적 동기에 따라 난동을 부리는 '폭도'가 될 수 있고 적극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공중(公衆)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