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이가 참, 신기하다
‘LYD’ 수업 중에 “동조 효과 실험”이라는 동영상을 보았다.
동영상 참조: 동조효과 실험
나는 ‘동영상 실험자 같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를 종종 느낀다.
그리고 이러함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나는 모른다.
그래선지 비슷한 환경이나 상황에 놓이게 되면 저 위 동영상을 속 실험자의 심리 상태가 되고 만다.
이 소화되지 않는 감정과 기억은 나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몸의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그 느낌은, 가슴 한 컨을 송곳으로 찌른 것 처럼, 깊은 숨을 쉴 수 없고, 담이 걸린 상태로 말이다.
섞이지 못한 상태를 느낌으로 설명하면…,
나만 이상한가 하는 느낌
나의 느낌과 주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상태가 다르다 ( 마치 한겨울과 한여름 처럼..., )
외톨이가 된 듯 한 느낌
왜 나는 저 속에 속하지 못할까?
왜 다르게 느껴지고, 왜 그렇지~? 하고, 이해 되지 않는다. ( 머..., 뭐지... !!! )
이러한 상황을 시간의 구성으로 다시 살펴본다.
관찰 1. 나는 가슴의 통증을 가끔 느낀다.
하지만 왜 이런 가슴의 통증이 있는지 몰랐다, 통증의 처음 기억은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관찰 2. 우연히 “동조 효과” 동영상을 보고 가슴 통증을 느끼고, 동영상 속 실험자의 상황과 사람들 속 관계에서 내가 느끼는 소외감과 비슷함을 알게 된다.
관찰 3. 나의 가슴 통증은 '관찰 1' 상황에 놓일 때, 몸의 기억처럼 머리는 인지 하지 못하지만 몸의 기억으로 나는 알아차릴 수 있다, “아~!, 가슴이 찌르듯 아프다.” 라고 나는 인지(알아차림) 하게 된다.
정리 1. 비로소 가슴의 원인 모를 아픔이(관찰 1), 외부와 나의 느낌 상태와 다름을 알아차릴 때( 관찰 2), 나는 지금까지 원인를 알지 못했지만 두 가지 관찰 내용을 알아차리고 관찰 3에서 그것을 종합하게 되어서 지금 까지 원인 몰랐던 통증에 대하여 알 수 있게 되었다.
음…,
가설을 세우고, 조건을 만들고, 실행할 수 있는 액션을 만들어 다시 이런 가슴 통증을 경험하기 싫다.
억지스럽게 극복 해보려 하지만 그렇게 세워본 가설들이 모두 생각들이고, 2~3개 아이디어가 나오다...,
해보고자 이겨내 보고자 하는 에너지를 잃고 만다.
이러한 상황으론 실천을 끌어 낼 수는 없다고 느껴진다.
어찌 보면, 아직은 이러한 관찰 내용을 더 들여다 보고, 더 깊은 수용 즉, 생각으로 판단 해석, 조절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반응할 수 있는 시간과 수용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라는 선택이 되어지고, 나에게 나의 몸에게 이러한 시간을 허락해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나의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여기에, 각종 두려움의 낱말들과 생각들이, 나의 판단이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올라 오기는 하지만 생각이라는 놈은 원래 시끄럽고 걱정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에 “정리 1”에서 알게된 내용을 상기하고, 그 현상만 인식하고 되뇌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의 낱말 들 과 생각들은 NVC하듯 공감하여 주고, 그러한 생각들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이기려 하는 순간 나의 생각의 늪에 빠지게 되다.
( 물론, 나의 생각과 '밀당'에서 언제나 실패와 좌절을 경험 하지만 "그렇구나"하고 나의 욕심과 생각에 한발 물러서고, 또 지켜보는 것이 나의 역할 인 듯 ㅠㅠ )
관찰되고 발견되는 현상에만 집중하고 올라오는 걱정과 생각엔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 (영화보 듯 하는 것)
무엇과 어떻게 구체적으로 연결 시키고 설명할 수 없지만, 'LYD'에서 말하는 승객의식 이,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한다.
나와 싸우지 않고, 왼쪽으로 치우치면 치우친 것을 알아 차리고, 오른쪽으로 치우치면 그렇구나 알아차리고, 내가 격게 되는 감정과 상황의 상태를 영화 보듯 보고, 듣고, 느끼듯 하는 것...,
이것이 디자인 대로 나 답게, ‘승객의식’으로 사는게 아닐지...!
‘LYD-동조효과 실험’ 과 ‘코치 더 코치-코칭 주제’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마치, 무엇인가 “너는 이제 내가 가슴이 아픔 이유를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만나봐~!” 라는 식의 해석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 선택된 시나리오 처럼 말이다.
이제 내가 스스로 이것을 풀어 볼 수 있을 만해서 사건이 나에게 주어진 것은 아닐까 라고
'LYD'와 '코치더코치'의 사건을 정리하여 본다.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하루 하루의 모든 사건 사고들이
나의 상황에 맞춰서 일어나게 되어지는 것(정해진 것)이 아닐까 라고 하는 생각에 접촉하게 된다.
단지 나의 mind가 수많은 이유와 핑계 그리고 욕심과 생각으로 이러한 인생의 펼쳐짐을 방해하고 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 라고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무엇이 나에게 맞는 길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단지 그 쓰는 법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미트라 원장님이 사용하는 예에서 찾아보면
비행기의 예를 들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이 비행기란 물건을 창고로 쓰고, 다른 사람이 바퀴가 있는 것을 알고 짐을 옮기는 데 쓰고, 날개와 터빈이 있는 것을 알고 날 수 있는 장치로 쓰일 수 있는 것 처럼
휴먼디자인에서 말하는 우리의 디자인은 이미 어떻게 살라고 내 몸에 콕 박혀 programming 되어 있다.
단지,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어떻게 해석 하는지 모르는 것이고, 또한 알려주는 이도 없고, 또 직관에 따라 사는 것이 마치 낙오된 삶을 사는 것 처럼 교육 받기 때문에 디자인 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의 먼지(에너지)들이 모여 만들어진 집합체 일 것이라는 ‘LYD’ 수업에 들었다.
그러면, 우주적 차원에서 그들은(에너지들은) 우리를 도울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 처럼,
당연하고 합당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도움을 간섭으로..,
또는, 어떻게 해석할지 몰라 직관대로 행동하지 않게 되고,
또는 나의 욕심에 가려서 듣고도 모른 척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미 디자인 대로, 평화(Manifestor)를 누리고, 성공(Projector)을 거두고, 만족(Genertor)을 얻고, 놀라움(Reflector)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미 길이 활짝 열려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실천하고 경험하고 나의 특징과 목적에 맞게 이 세상을 여행하면 되는 것이다.
잠시지만 정말 그러하다 라고 믿어 본다.
짧지만 몸의 이완 됨을 느낀다.
짧지만 행운이 가득함을 느끼고,
짧지만 기분이 좋아짐을 느낀다.
모두가 특징과 목적에 맞게 실현되고 발현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내 빛깔대로 살아보겠다 ( 3/ 3 )
첫댓글 모두가 특징과 목적에 맞게 실현되고 발현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에 저도 기도 보태요!!
내가 쓰고 다른 이들에게 기도해보지만
모두가 서로를 위해 기다한다는 말로 새로 해석되고 더 깊이 다가와서
누군가 해주는 나를 위한 기도를 내가 듣는 기분 입니다.
감사합니다.
두번째 글이 조금 힘에 버거웠나 봅니다.
글과 글 사이 사이, 부족하고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 부분들 살피고 다시 조정하여 봅니다.
이렇게 나의 글을 다시 조정하다 보니 아직 소화시키지 못한 욕구와 느낌들, 더 잘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 등등
쓰면서는 몰랐던 것들이 더 잘 이해가 되네요.
서툴게 표현된 문장과 이해되지 않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나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