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중간 즈음에서, 옅은 초록빛 봄기운은 백두대간 능선길에도 멋진 선물을 마련하였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대간길을 스케치해 보았다. 규칙적인 대간길 산행은 업무에 지친 일상과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벗이 되며, 더군다나 긴 겨울의 터널과 코로나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모처럼 가벼운 산행에 대한 기대감도 나름 컸다.
토요일 근무가 겹쳐 퇴근 후 급히 시장보고, 고기반찬으로 든든히 저녁 먹고, 바쁘게 배낭을 꾸려 사당으로 향했다. 사당역에는 길게 늘어선 버스대열과 배낭을 메었다는 이유만으로 친숙한 산꾼들 간의 여유로움과 미지에 대한 동경심이 교감되고 있었다.
이번 구간은 겨울산행의 위험성 때문에 정기코스에서 건너뛴 곳으로서, 백두대간 제19구간인 하늘재-포암산-마골치(만수봉 갈림길)-꼭두바위봉-부리기재-대미산-문수봉 갈림길-새목재-백두대간 중간점-차갓재-작은차갓재-안생달의 약 21km 구간(접속구간 포함)의 월악산 권역이다.
산행은 2022년 4월 16일 밤 12시에 사당역을 출발하여 양재역과 죽전정류장을 경유한 후 새벽에 종주 들머리인 하늘재에 도착하여, 약 3시 반부터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행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배포된 산행지도를 분석했지만, 포암산과 대미산만 눈에 들어오고 나머진 비슷비슷한 봉우리와 고갯길로 구성되어 강한 인상을 주는 코스는 아니었다. 이런 구간이 으레 덜 힘들지만, 지칸대장님은 산행시 각오가 중요하기 때문에 결코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길 당부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지난주 대비 기온이 살짝 오르긴 했지만, 셔츠만 입기에는 쌀쌀하여 대부분의 산우님들이 자켓을 착용하였고, 비교적 미련한 나는 셔츠로 조금 더 견뎌보기로 했다. 간단한 준비체조 후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하늘샘 약수터가 나왔고, 졸졸 흐르는 물은 보기에도 깨끗하고 물맛이 좋아보였다.
포암산은 월악과 핏줄이 같은 화강암 산으로서 모암의 급경사도 위협적이지만, 곳곳에 풍화되고 붕적된 암반들이 불규칙하게 있어 우리의 걸음을 더디게 하였다. 중간중간에 위험한 구간이 나왔지만, 공단의 관리 덕택으로 데크계단을 통해 쉽게 올라갈 수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계단은 산꾼들을 배려한 시설은 맞지만 몸을 더 힘들게 하는 단점이 있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포암산 정상부에 이르렀는데, 낮이라면 이곳에서 지나온 조령구간과 월악산의 장관을 볼 수 있을 텐데, 좀 아쉬웠다. 포암산은 익히 들은 바대로 난이도가 있는 산이었지만, 야간산행의 덕으로 별로 어렵거나 위험성을 모른 채 올랐다. 포암산(해발 962m)은 우리말로 베바우산이라고 하는데, 이는 반듯한 암벽이 늘어서 있어 거대한 베 조각을 이어 붙여놓은 듯하여 붙여진 명칭으로서, 한자로 표기하면 포암산(베布, 바위岩)이다.
이곳에서 거의 모든 산우님들이 집결하여 잠깐의 휴식과 기념촬영을 하였다. 청송님은 청풍명월의 고장에 왔음을 직감하신 건지 보름달을 가리키며 시름에 잠긴 폼생폼사에 임하셨고, 지칸대장님은 산우님들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느라 세상 일 혼자 다하고 있었다. 포암산 이후부터는 고만고만한 순둥이 봉우리와 고개가 연차적으로 나타났으며, 가끔씩 찬바람이 휘몰아쳐 겨울산행을 떠올리게 하는가 하면, 어떤 구간은 바람 한 점 없이 온화한 새벽기온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내리막 걷던 중 뒤에서 아차산형님이 오두막님의 새 등산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셨는데, 알고보니 급히 나온다고 랜드로바형 구두를 그대로 신고 오셨다고 한다. 암편이 곳곳에 산재한 길이었는데 큰 불편 없이 걷고 있는 오두막님의 열정이 대단하였다. 나도 깔창을 놔두고 와서 급히 차에 있던 구두깔창 깔고 왔기 때문에 동병상련을 느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만수봉 이정표가 나타나 이곳이 마골치임을 알게 되었는데, 하늘재에서 출발한 대간길은 이곳에서부터 작은차갓재까지는 비탐구간이어서, 이정표에는 이곳에서 만수봉을 거쳐 만수탐방지원센터로 향하는 일반산행 코스만 안내하고 있었다. 만수봉은 월악산 최고의 조망터라 불릴 만큼 월악산 정상과 충주호까지 함께 볼 수 있어 유명세를 탄다고 한다.
이제 우측방향의 대간길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마골치에서 대간길을 가기 위해서 우리는 넘어서야 할 선을 넘고야 말았다.
여기서부터 대미산까지는 동진 산행을 이어갔는데, 시나브로 어둠이 퇴색되어 갈 무렵 으스스한 보름달과 찬 기온에 맞서기라도 하듯 자홍색 진달래가 자태를 드러내며 봄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으며, 겨울산에선 들을 수 없었던 새들의 지저귐도 봄이 되니 또다른 선물인양 풍요로움으로 다가왔다. 어느 정도 걸으니 주흘산 능선이 한 눈에 펼쳐지고 포암산 뒤쪽 완만한 능선도 이색적으로 보이는 첫 조망터가 나타나 산행에 재미가 붙기 시작하였다.
동이 트고 코스의 1/3 정도를 걸었을 때 쯤 본능적으로 허기가 느껴져, 우리는 괴성을 지르며 아침식사의 절실함을 서로에게 표현하였다. 이에 응답하듯 오르막을 조금 치고 가니 먼저 도착하신 선두조가 벌써 수증기를 잔뜩 뿜어내고 있었고, 우리는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침을 맞이한 장소는 정면에 주흘산 능선이 펼쳐지고 제법 넓게 진을 칠 수 있는 명당이었는데, 꼭두바위봉 근처로 추정되었다. 채 자리 세팅하기도 전에 주이누나가 고기 한 점을 집어주셔서 고맙게 잘 먹었고, 해가 나니 다들 우려했던 추위 부담은 없어져 쉘터 없이 간소하게 아침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일찍 마친 선두조가 먼저 출발하고 나머진 남은 술과 준비해온 음식으로 몇 탕을 해 먹은 후 포만감을 안고 출발하였다.
식사 장소에서 조금 가니 이번구간 유일한 줄타기 장소가 나타났으나, 여느 산의 그것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잠시 후 꽤 웅장하고 가파른 육산 봉우리가 앞에 나타나더니 뒷걸음치듯 계속 우리와의 간격을 유지하며 큰 산의 위엄을 과시하고 있었는데, 이 녀석을 뒷조사했더니 우리가 추정했던 대미산이 아닌 이름 모를 봉우리였다. 이름은 없었지만 멋지게 생긴 이 녀석을 넘었더니 이후론 조그만 고개와 봉우리가 오솔길 분위기를 연출해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어느덧 내리막으로 향하면서, 무릇 내리막 경사가 급하고 안부가 깊으며, 전방에 육중한 산이 버티고 있어 조만간 대미산이 등장할 것을 직감하였다. 잠시 후 대미산 1.2km 잔여 이정표가 나왔는데, 이곳이 바로 새의 부리를 닮았다는 부리기재였다.
여기서 잠깐 동안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대미산에 첫발을 내디뎠다. 개인적으로 대미산 같은 웅장한 육산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대미산 오름길은 길도 좋고 경사도 생각보다 급하지 않아 제법 여유도 부리고, 여기저기 돋아난 새순의 귀여움과 노란 생강나무꽃의 분위기를 즐기며 올랐다. 대미산도 정상부는 몇 겹의 변신술로 만만히 보지 말 것을 경고하였지만, 지난 코스 선달산에 비하면 평온한 수준이었다. 대미산 정상 직전의 조망터에서 우리가 걸어온 백화산-조령산-마패봉 등의 주요 구간이 한눈에 들어왔고, 하늘재 오르는 길의 아름다운 마을 풍경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상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정상석이 빈약하였는데, 여기서 우린 막걸리와 각종 과일, 떡으로 요기를 하고 하산길의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대미산(해발 1,115m)은 원래 산 정상부에 눈썹처럼 생긴 봉우리가 돋아있어 黛眉山으로 표기하다가, 퇴계 이황선생께서 크고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大美山으로 뜻을 바꾸면서 오늘날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다.
대미산 이후는 큰 봉우리가 세 개 있었는데, 특히 두 번째 봉우리는 대미산 수준에 버금가는 오르막과 변신술을 부려 이미 하산주 생각으로 잔뜩 느슨해진 가슴에 못을 박고 있었다.
백두대간 중간지점(일명 배꼽) 이정표를 보기 위해 계속 주시하다가 마침내 기념석을 찾았는데, 포항쉘파산장에서 50m 줄자로 연인원 379명의 대원이 실측한 거리의 중간지점이라고 하여 그 정성에 감복하였다.
대간길 배꼽을 보아서일까? 학원을 운영하시는 산들님은 코로나 기간 참석 못해 밀린 대간숙제 해결방법에 대해 하산길 내내 고민하셨고, 오두막님은 이번엔 새로운 트렌드의 등산화에 대한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쳐 향후 등산화 계에 미칠 일대 혼란을 예고하였다.
잠시 후 송전탑이 있는 차갓재에 도착하였는데, 대간길은 봉우리 하나 더 넘어 작은차갓재까지 가서 안생달로 빠져야 하지만, 지킴이 분들에게 민폐주기 싫어 이 지점에서 빠지기로 했다.우측 안생달 마을길로 내려가니 경사가 만만치 않았고 숲이 울창하여 한낮인데도 어두침침하였다. 하산길 내내 타박이 회장님과 산촌님의 대화는 위태위태하면서도 끈끈한 정을 나누고 계셨다. 인정 많은 두 분 항상 응원합니다. 그렇게 경사길를 치고 내려오니 드디어 마을 상단이 보이기 시작했고, 잠시 후 풍경화를 그려내고 싶은 마을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대간길과 대비되는 완연한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포장된 길을 걸어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바야흐로 잔치분위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주차장 한 켠에선 주부백단 욱이 아지매가 열심히 찌짐을 부치고 있었고, 세잔님은 정성들여 상을 차리고 계셨으며, 원두막 옆에는 한결님, 공허님이 마을분들과 술판을 벌려 잔치분위기를 극대화하고 있었다. 나도 잠시 숟가락 하나 얹는 기분으로 거들었는데, 두릅 안주가 너무 맛있어 남은 몇 조각 다 먹어버렸다.
씻을 새도 없이 바로 시산제 준비에 몰입하여, 예송고문님의 진행으로 우리는 절을 올렸는데, 산자에겐 1배, 사자에겐 2배, 신령에겐 3배, 성인에겐 4배를 한다는 것을 첨 배웠다. 역시 종친회 운영 경험이 많으신 고문님께 배울 게 많았다. 타박이 회장님을 주축으로 우리 산우회의 안전과 발전을 기원하며 엄숙하게 기원제를 마치고 본격적인 뒷풀이를 시작하였습니다.
몇 분들이 산행 중 채취하신 달래가 입맛을 돋우었고, 이베리코, 삼겹살, 대파구이 등을 구워내는 사이 세잔님은 부침개를 계속 내어주셔서 잔치 분위기를 이어갔다. 나만 그런건지 모르겠다. 봄날의 아름다움과 잔잔히 떨어지는 꽃잎을 보니 저절로 흥겨워 술잔에 진달래 동동 뛰운 분위기로 심취했던 것 같았다. 정딱님이 자연에서 채취한 갖은 재료로 맛나게 볶아주신 볶음밥까지 맛있게 먹고 난 후 버스에 올라 목적지까지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에 빠졌다.
이번에 욱이님이 인맥 발휘한 샤이가이님이 첫 참석하여 거뜬히 완주하셔서 축하드리며, 계속 함산하길 기대합니다. 유독 이번구간에선 백두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왠지 불안하고 서운했지만 목소리 힘을 주력으로 승화한 것인지 백두님이 빠르게 치고 나갔다. 오공대장님은 오늘도 마지막에서 고생 많았으며, 취한 모습 한번도 보여주지 않는 전설의 체력을 이번에도 보여주셨다. 산행에 참여하신 타박이회장님, 예송고문님, 여러 대장님 외 모든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길 안전운행에 애써 주신 기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다음 구간은 민족의 영산 태백산 구간입니다. 몇 번 올랐지만, 그래도 국립공원 승격이후 처음이라 태백산의 또 다른 면을 보는 기대감으로 담 산행을 기다려봅니다. 백두대간 산우회 여러분 많은 참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역쉬후기는 "짱" 앞으로 계속 부탁합니다.감상 잘 하고 갑니다.^^
회장님, 제가 회장님 때문에 후기 포기 못 합니다. ㅎㅎ 덕분에 시간 쪼개서 저도 부족한 공부도 합니다. 스렁해요 회장닝!
산행다시하는거 같아요 ㅎㅎㅎ 무산님
아따, 형님 같이 걸으시니 저도 위안이 많이 되었어라!
후기 한번 밀리시더니 원고량이 두배네요. ^^ 후기 쓰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우리 동생아, 미웃 짓 좀 해봐라.
후기에 혼이 담겼습니다
이런 필력은 정말이지 부럽습니다
세잔님, 상차리시는 모습 보면서 든든과 고마움! 말씀 많이 하셔서 분위기 뛰우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감사해요.
지난 고치령은 수많은 별들이 이번 하늘재에서는 밝은 달이, 오두막님의 랜드로버 신발은 산행을 행복하게 ~~ ㅍㅎㅎ
첨부터 끝까지 함께 걸었지요? 배불뚝이와 함께. 수수한 대장님, 언제나 고마워요.
무산님의 후기글은 풍성한 후식을 먹는 기분이며
산우들간의 단합과 우애를 돈독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대단한 필력의 소유자인 무산님이 있어
대간 8기의 후기는 1-7기 후기에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예송 고문 형님, 과찬이시고 무안합니다. 누가봐도 진정한 우리 가족의 어르신이자, 열정맨이신 고문님, 언제나 감사한 마음에 표현력 약한 무산도 감사 표현합니다.
마음 공간있어 너그러운
생각을 하네여~~
풍부한 감수성!!
뛰어난 필력자!!
바쁜 와 중에~~
책 한 권을 읽은듯 하네
후기 잘 읽엇습니닥!!
좋아하는 우리 누나, 말이 필요 없어요. 담 산행에선 선두에서 함께 걸어요.
무산형님표 후기는 감동 입니다
그리고 무산형님 표
노래 .춤. 정말 멋젔습니다
담에 또~
귀여운 스타일!!! ㅎㅎㅎ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동생님, 언제나 밝고 봉사하는 모습 고마워!
@예송 형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