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박물관 입장
일행은 박물관에 입장하여 시대의 처음부터 살펴보았습니다. 그 전에 전쟁의 원인, 기준과 규모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졌지요.
◎ 전쟁의 원인은?
전쟁은 왜 일어날까요? 왜 이런 질문이 중요할까요? 만일 원인을 알고, 그것이 ‘조절가능한 원인’이라면 사전에 해결해서 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할 만한 단서를 얻기 위해 많은 군사학자들이나 정치학자들은 전쟁의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실제 사회에서 전쟁은 수많은 변수가 개입되기 때문에 누구도 전쟁의 원인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나마 고대에서는 전쟁의 원인이 비교적 명확했지요. 농사가 되는 강 유역의 쓸만한 땅이 부족했고, 평화가 계속될수록 인구는 넘쳤으며 새로운 땅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부족 혹은 더 나아가 자기 나라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 부족을 침략하여 땅, 노동력, 여성을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더욱 부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데에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대는 기술인 관개가 발달하고 농업생산력이 인구 부양을 넘어서자 이러한 이유의 전쟁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심리적 본성 자체에서 나오는 공격적인 성격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폭력적인 심리가 있어서 전쟁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행동이라는 것이지요. 이른바 성악설에 기초한 사상입니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인간에게 평화 추구의 성향이 함께 있음을 간과할 수 있지요.
◎ 전쟁의 기준과 규모
이런저런 의견이 있지만 전쟁은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이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어느 정도 정규전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나 권리가 있는 집단이어야 가능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말이 정규군(正規軍)인데 정규군은 한 나라 정부에 제도적으로 소속되어 체계적인 군사 교육 훈련을 받아 이루어진 군대를 말하지요.
정규전(正規戰)은 이런 정규군이 규정된 전술과 전법에 따라 하는 전쟁을 말합니다. 최소한도 부족 단위 정도는 모여서 대결해야 전쟁이라 할 수 있지요. 참고로 부족은 ‘같은 조상ㆍ언어ㆍ종교 등을 가진 지역적 생활 공동체’이자, ‘성(姓)과 본(本: 본관)이 같은 겨레붙이’이며,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형 정치적 공동체입니다.
여러 씨족(clan)이 이룬 집단을 부족이라고도 합니다. 역사학, 사회학 및 일반 언중에서 통용되는 부족이란 국가라고 할 수준은 아닌데 씨족(혈연 집단)보다는 큰 중간 단계들을 대략 정리하여 부르는 용어라서 엄밀한 의미로 정의되어 있지는 않지요. 대강 정의하자면 부족(tribe)은 혈연을 중심으로 한 친족 중심 사회입니다.
한편 국가(state)는 이를 탈피하여 새롭게 재편된 지연 중심적 사회라 할 것입니다. 사실 이 개념도 혈통 범위를 어떻게 잡는지에 따라 좁게는 씨족에서, 넓게는 국민국가까지 부족이라 지칭할 수 있는지라 그리 엄밀하지는 못하지요. 여기서 나오게 되는 인물이 이른바 족장인데 부족이나 씨족 등의 생활 공동체를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족장은 구성원들이 혈연관계로 묶인 작은 공동체의 우두머리를 말합니다. 보통 씨족 단계를 벗어나 두 가문 이상을 통솔하게 되면 군장, 그 이상의 연합체 단계가 되면 왕이라고 부르지요. 다만 족장과 군장은 구분 없이 쓰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군장과 왕 사이 단계의 지도자로서 동맹이나 연합의 수장을 맹주라고 칭하지요.
명확한 인구수 기준이 있는 건 아니나,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에 따르면 한 개인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명수는 약 150명 남짓이라고 하며 이를 던바의 법칙(Dunbar's number)이라 합니다. 이에 따르면 보통 한 부족의 구성원 수는 140명 가량 되고 대략 그 정도 수가 족장이 가장 효율적인 통솔을 할 수 있는 인구수라는 말이지요.
⑴ 선사시대의 동향
이전 기행지인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도 살펴본 바 있지만, 동물들도 도구를 쓰는 경우가 드물게나마 있습니다. 다만 도구 쓰는 동물들은 어디까지나 있는 물건을 도구로 사용할 뿐이지요. 물건을 용도를 갖춘 도구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든다’는 개념은 없다시피 하지요.
① 석기시대(石器時代, Stone Age)
석기시대는 인간이 돌을 주요한 도구로 사용한 시대를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사용한 도구로는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 돌을 갈아서 만든 간석기가 있지요. 이 시기는 인간의 문명이 미약했던 시기이고,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이라는 뜻의 선사시대(先史時代, Prehistory)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입니다.
석기시대는 이름처럼 석기를 주로 이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뼈나 뿔, 상아 같이 단단한 물질도 제법 많이 사용되었지요. 해안가 지역에서는 넓적한 조개껍데기를 도구(또는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부수면 날카롭게 갈라지며,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하기 쉬운 흑요석은 주요한 무기 자원으로 거래되었던 것 같고요.
cf. 슴베찌르개
슴베찌르개는 슴베와 찌르개로 이루어진 합성어입니다. 칼, 괭이, 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을 가진 뗀석기를 나뭇가지 등에 박아 창 또는 화살을 만드는 목적으로 쓰였지요. 슴베찌르개는 선사시대 뗀석기의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몸돌에서 떼어 낸 돌 조각을 다듬어 만들었지요.
한쪽은 날카로운 찌르개 부위로, 다른 쪽은 자루나 꼬다리(슴베) 부위로 가공한 독특한 도구입니다. 대표 유적은 남양주시 호평동, 대전 용산동, 밀양 고례리, 진안 진그늘, 단양 수양개 등을 들 수 있지요. 슴베찌르개는 한강 유역에서 주로 발견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아직 발견 사례가 없다고 하지요.
슴베찌르개는 주로 동물의 가죽에 구멍을 뚫을 때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전 용산동 유적의 경우 대부분 부러지거나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하지요. 그런 연유로 아마도 찌르는 용도를 활용해서 사냥에 직접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