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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을 때까지 3년여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 남북은 수백만 명의 사상자와 헤아릴 수 없는 재산피해 이외에 국토분단과 이산가족이라는 씻을 수 없는 민족문제를 남겨주었다.
전쟁 이후 60여년의 현대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 ‘국제시장’이 관객 1300만 명을 돌파하는 대 흥행기록 속에서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은 여전해서 매일 핵공격 위협을 듣고 사는 우리에게 전쟁은 치유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정전법(井田法)으로 백성을 다스린 주(周)나라를 가장 이상국가로 생각했던 공자(孔子; BC 551~BC 479)는 주의 역사를 이민족 격퇴를 위하여 제후들이 왕실을 중심으로 동맹을 맺고 다투던 시기를 춘추시대(春秋時代)라 하고, 제후들이 약육강식의 패권쟁탈전을 벌이던 후기를 전국시대(戰國時代)로 나누었는데, 전국시대에 벌어졌던 수많은 전쟁을 후대에 교훈으로 삼도록 세분하여 정의했다. 즉,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경우에도 그 나라에 죄가 있음을 밝히고 응징하는 것을 벌(伐)이라 하고, 정당한 명분 없이 군사를 일으켜 몰래 국경을 넘어 공격하는 것을 침(侵)이라고 한 것이다. 벌은 정당한 전쟁이고, 침은 불의의 전쟁이다.
우리가 반만년 역사를 지켜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침략을 당했으며, 또 이에 대한 정벌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전쟁은 적의 생명과 영토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의 안전과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수많은 전쟁에 관한 자료를 조망하고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생각하게 하는 국내 유일의 전쟁기념관이 서울 용산의 삼각지에 있다. 하지만, 동족상잔의 6·25전쟁기록과 자료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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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전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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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영웅들 흉상 |
삼각지에서 이태원 쪽으로 돌면 오른쪽이 국방부 청사이고, 왼쪽에 전쟁기념관이 있다. 전쟁기념관은 원래 육군본부가 있던 곳인데, 1988년 육군본부가 계룡산 남쪽으로 이전한 뒤 전쟁기념관을 세운 것이다. 사실 ‘기념’이란 사전적 의미는 뜻 깊은 일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기는 것이어서 전쟁기념관이란 명칭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아무튼 1989년부터 5년여의 공사 끝에 1994년 6월 10일 개관되었다.
전쟁기념관은 개관 후 14년만인 2008년 5월 관람객 1000만 명을 돌파했으며, 무료개관을 시작한 2010년부터 관람객이 크게 늘어서 6년만인 2014년 성탄절 연휴 때 누적관람객 2000만 명을 돌파했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주차비만 기본 2시간에 2000원을 받고 있다. 매주 월요일에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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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박과 거북선 모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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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갑옷 |
전쟁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은 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 12번 출구로 나가면 지척이다. 삼각지로터리로 유명한 이곳은 1906년 러일전쟁 직후 경부선 철도 부설로 생긴 한강에서 서울시내로 통하는 도로와 이태원 방면으로 통하는 세 갈래 길에 1939년 로터리가 생겼는데, 1967년에는 교통을 원활하게 하려고 국내 최초로 입체교차로를 만든 곳이다. 1974년 용산구청 방향에서 철도를 건너는 고가도로가 건설되면서 삼각지로터리는 사거리가 됐으나, 1994년에 철거되고 같은 해 전쟁기념관이 들어섰다.
전쟁기념관은 추모와 전시를 주요 기능으로 하는 ‘기념관이자 박물관’으로서 크게 옥외전시실과 옥내전시실로 나누는데, 소장하고 있는 3만여 점의 유물 중 B52 전투기처럼 커다란 중무장된 무기도 많다. 유물 중 40%는 시민들의 기증품으로 채워졌으며, ‘살아서 돌아오라’는 글귀가 적힌 태극기, 전쟁 중 병상에서 쓴 병사의 일기장 등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물품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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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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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사포 |
기념관 정문에 들어서면 전면의 원형 광장을 ‘평화의 광장’이라고 하고 그 좌우가 호국공원인데, 호국공원의 동문을 지나면 어린이박물관이 있다. 정문 좌우로 광개토대왕비의 실물 모형과 국군장교와 인민군 병사가 포옹하는 모습의 형제의 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선사시대 청동 검과 생명의 나무가 어우러지는 모습의 상징탑이 중앙으로 우뚝 서 있다. 뮤지엄 웨딩홀 앞에는 평화의 시계탑과 형제의 상이 있는데, 완전무장을 한 국군병사와 부둥켜안고 있는 북한군은 6·25당시 국군과 북한군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던 형제가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만난 실화를 조형화한 것으로서 민족의 분단과 통일의 염원을 나타낸 것이다.
평화의 광장을 지나 이어지는 건물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대형장비실, 기증실 등 7개 전시실로 나뉘는데, 지형에 맞춰서 2층 전시실에서 계단을 따라 1층 전시실로 내려갔다가 다시 2층, 3층으로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중앙 로비인 호국추모실은 창군 이후 전사한 17만 명의 명패를 봉안하고 있는 엄숙한 공간인데, 전쟁을 겪지 않은 신세대들에게 실감나도록 6·25전쟁을 전후한 장병들의 흉상을 전시실 양편에 길게 배치해둔 것도 매우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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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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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장비실 전시물 |
계단을 내려간 1층 전쟁역사실은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대외항쟁 자료를 비롯하여 무기와 장비들을 시기별로 한눈에 보여주는데,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과 고려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의 기록화 등은 물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모형도 전시하고 있다.
2층 한국전쟁실에서는 6·25전쟁 발발부터 휴전협정까지의 실상을 보여주는데, 특히 황해도 개성 송악산 육탄 10용사 동상, 중앙청 태극기 게양 및 중공군 인해전술 디오라마, 참전 16개국의 전투병 모형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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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상 |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눈에 익숙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모형을 중앙 로비에 전시해 둔 것이 시선을 끌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설계도도 없이 상상력에 의한 모형 거북선이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어필하지는 알 수 없다.
군 대형장비실에는 한국전에 동원되었던 항공기·전차·화포 등 전투장비는 물론 이후 국내 방위산업체에서 생산한 전차·유도탄·대공포·소총·탄약 등 소형 무기류를 볼 수 있고, 관람객이 실감하도록 전자오락을 연상케 하는 무기 체험시설들도 있다.
대형장비실을 지나 연결된 야외전시장에는 육·해·공군의 과거와 현재의 주요장비 실물을 전시하는 곳으로 장비들을 직접 체험하며 관람할 수 있다. 또 주말 오후와 기념일에 펼쳐지는 국군의장대의 사열과 군악대의 연주 등도 한나절 가족 나들이를 흥겹게 해준다.
한편, 3층 해외파병실에는 통일신라 때부터 베트남전, 1991년 9월 유엔에 가입한 이후 1993년부터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국제연합평화유지군(UNPF)에 이르기까지 총 12회의 해외파병 기록을, 국군발전실에는 한국군 창설에서부터 오늘날 국군으로 발전하기까지 군사제도·무기 및 장비·복식과 교육훈련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해외파병의 자료는 우리의 국방력과 전투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중 베트남전은 자칫 주체성 없이 침략군인 미국의 편에 섰다는 지탄을 받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특별전시실에서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서 전쟁을 겪은 세대들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돌아보고 북한의 핵위협 아래 자유와 평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전쟁기념관은 살아있는 교육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