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영혼의 매개
1)사랑의 힘과 치유(Green)-나에 대한 사랑
우리의 정서적인 발달과 연결되어 있는 아나하타 차크라는 사랑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지와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사랑임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지에 대해 가르쳐주는 영적인 교훈을 담당한다(Myss, 1996/2019).
인간은 사랑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방법을 충분히 알지 못하여 일평생을 사랑하는 방법뿐 아니라 사랑받는 방법에도 서툰 경우가 많다. 자신은 물론 타인을 대가없이 사랑한다는 것이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나하타 차크라는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기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며 타인의 욕구에 관심을 기울인다. 아나하타의 사랑은 개인을 초월한 타인과의 관계를 인식하며 상대에게 주는 것을 곧 자신에게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박미라, 2020). 인간에게 최초로 연결되는 근본적인 사랑인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계가 깊은 아나하타 차크라는 양육의 센 터(the center of nurturance)로 불리기도 하며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유대감을 형성한다.
아나하타 차크라의 위치가 심장인 것은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으로 심장은 몸의 중심인 기관으로 생명을 유지시키며 제공한다. 심장은 정서와 감정의 상징으로 강렬한 정서를 느끼게 될 때 심장과 가슴부위에서 물리적인 감각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Ajaya(1976, 박미라, 2020, 재인용)에 의하면 자아에만 제한되었던 마니푸라의 열정적인 정서성이 아나하타 차크라에 이르러서는 따뜻한 공감능력으로 정화된다. 대지로부터 연결되는 세 개의 하위 차크라와 무한의 세계로 연결하는 상위의 세 차크라를 연결하는 교량이 되는 아나하타 차크라는 주고받기와 무조건적인 사랑과 감사함을 느끼고자 하는 것과 연약한 부분까지도 마음을 열어 개방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이 차크라가 활성화되면 만족감을 느끼며 평화로워지고 연민의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Deborah, 2009/2016).
Johnson(1987/2000)은 몸을 무시하던 서양의 주류철학에서 마음이 신체화되어 있다고 하였다. 몸은 마음속에 있고 마음은 몸속에 있으며 몸과 마음은 세계의 일부라고 하며 몸의 중심성을 회복하고 몸을 마음 안으로 되돌려 놓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것이 아니고 몸이 정보 처리하는 뇌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인지과학 분야에서도 연구가 시작되었고, 몸의 감각이나 행동이 마음의 인지기능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신체화된 인지이론이 등장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신체적인 경험과 감각운동 경험에 의해 형성되며 대부분의 인지는 무의식적이다. 또한 우리의 사고는 은유적인데 개념적 은유를 사용하여 생각하고 말한다. 이런 은유는 신체화된 경험에서 나오고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Varela, Thompson, & Rosch, 1991/2013).
심리치료적인 접근을 하면서 발견된 진실이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현실에서 겪어내야 하는 스트레스와 당면한 문제들이 인체에 질병이나 특별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별히 차크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색채의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비롯하여 내담자들이 일상의 경험과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마음의 소리가 몸으로 나타나는 것을 수 없이 목격한 까닭이다.
내면의 세계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사랑과 자비, 희망과 영감, 신뢰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치유하는 능력의 신성함을 가진 아나하타 차크라는 인간의 에너지 체계의 중심이 된다(Myss, 1996/2019). 감정과 정서와 밀접한 초록색 아나하타 차크라는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되고 자비한 마음을 가짐으로서 사랑받는 평온한 감정 속에 안정감과 행복감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의 이기심을 용서하며 사랑에 머물도록 한다.
다음 표 Ⅳ-4는 아나하타 차크라 색채명상의 치유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하나 모두 우주를 품어 안은 심연으로, 사랑은 그 심연에 대한 이해와 숙고의 과정이다. 상대의 인격과 감정과 신체적인 조건과 그 만의 내밀한 꿈과 동경, 세계관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이 없이는 사랑은 불가능하다. 삶은 완만한 흐름이고 사랑은 그 흐름을 뒤흔드는 소용돌이이며 운명의 창조이다. 관습이나 제도로도 통제할 수 없는 강렬한 생명의 충동이다(장석주, 2012). 그 어떤 것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 넘치는 희망을 잃어버린 지는 오래되었지만 훨훨 타는 열정적인 불꽃은 아니어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보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림 Ⅳ-17는 차크라 색채명상하기 전에 나의 마음속을 시각화한 것으로 나에게서 사랑을 찾아내고 싶었지만, 관계 속에서 거절하기 어려워하는 감정 에너지의 모호한 그림자만 각진 모습으로 들어나 보였다. 미술 창작은 본질적으로 영적이며 그 영성이 치료가 되며 전체적으로 하나가 되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이 된다(Hansen, 2001/2014). 그림 Ⅳ-18은 초록색 차크라 색채명상 후에 용서하기 어려운 옹졸한 마음이 활짝 펴지기를 소망하며 표현한 것이다. 가슴을 한껏 펴고 호흡을 하며 나의 가슴을 열기에는 너무나 좁은 새 가슴인 것이 놀랍지는 않았지만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아나하타 차크라를 활성화시키도록 도와주는 음악조차 나와 별개의 것으로 명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감정이 분산되기만 하였다. 정말 골짜기의 폭풍 속에 서 있는 느낌만이 강렬하였고 힘들게만 느껴졌으며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은 감각만이 호흡마저 답답하게 하였다. 마음에 날개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하게 마음속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림Ⅳ-19는 사랑 차크라 색채명상 후에 연상되는 이미지로 슬픈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아름답지만 슬픔이 많은 사랑이란 말은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이고 그 무엇보다 미지의 세계이며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우주적인 에너지이며 모든 삶의 근본이며 고통의 근원이 되기도 하는 것이 마치 영원한 시간 속에 깊이 존재하며 현현하는 신의 이름과 같기도 하다. 사랑의 묘약이란 말이 있지만 인간의 많은 고통은 사랑에서 시작되고 더욱 깊어지며 또 사랑으로 치유된다. 유기 불안을 가지고 있거나 사랑받지 못한 과거의 경험은 사랑의 에너지흐름을 방해한다. 마음이 아픈 상황은 사랑의 부재이거나 결핍에서 비롯되며 결국은 사랑과 자비가 치유의 강력한 힘이 되고, 몹시도 힘들지만 진정한 용서가 치유의 근원적 에너지인데 이것은 정답을 위해 바른 풀이를 해야 하는 주관식으로 나온 수학문제처럼 쉽지가 않다. 다음은 정호승(2011)시인의 수선화에게 라는 시(詩)이다.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마라
눈이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자기애'라는 꽃말을 가진 수선화에게 울지 말라며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라고 알려주는 것 같은 이 시를 기도처럼 되뇌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꿈에서 보는 수선화는 새로운 삶을 상징하며 잠재적인 개인의 성장과 갱신의 본질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Ackroyd, 1993/1997).
자신만을 바라보는 수선화는 물가에 자리 잡고 앉아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았을지, 아는 대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자신만의 세상에서 외로웠을지 생각이 많았었다. 공감해야하는 것이 사명인 것 같은 예술치료사로 일해 오는 동안에 항상 외로웠고 분명 혼자가 아님에도 외로웠고 그래서 더욱 외로웠다. 사랑받는 일에 실패하지 않을 존재이고 싶었고 사랑하는 일에도 부족함이 없고 싶었지만 언제나 미처 풀어내지 못한 수학 문제처럼 정답은 숨어있었다. 정석을 들여다봐도 풀리지 않던 그 답답한 가슴은 이제 나름 타당한 해답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어른의 마음이 되어가는 것 같기는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본질적인 외로움은 고질병으로 자리 잡혀 있다.
초록색을 명상하면서 아나하타 차크라에 집중하였는데 이유모를 울음이 목까지 차오르며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나의 몸과 마음 전체를 강렬하게 지배하는 듯하였다. 목까지 차오는 그 강한 중압감은 눈물을 내지는 않으며 가슴을 틀어막는 것처럼 퍽퍽한 느낌을 주어 몹시 고통스러웠다. 고통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호흡하는데 분노의 감정들이 결국에는 우울로 안내하였을 오래 전부터 골 깊게 갈등했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였다.
그림Ⅳ-20은 아나하타 차크라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동작으로 가슴을 크게 열고 두 손목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크게 숨을 쉬며 진행하는 동안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 개인으로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담아내는 용기(container)로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자기실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아나하타 차크라 색채명상을 하는 동안에 차를 나누어 마시는 머그잔을 만들고 싶어졌다. 생명력을 상징하는 숫자 3을 생각하며 세 개의 컵을 위한 밑그림을 전사용지에 그리고 프레스기계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나무는 수관이 발달된 여름나무와 연륜을 가진 가을나무를 한 그루씩 그렸고 세 번 째는 꽃이 핀 봄에 볼 수 있는 네 그루의 나무를 그렸다.
그림 Ⅳ-21은 전사지 위에 색연필로 나무를 그린 그림들이고, 그림 Ⅳ-22 는 프레스 기계를 이용해서 제작된 머그잔들이다. 나무는 신화와 종교, 전설과 무속 등에서 인생과 성장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은유로 사용되며 자신의 무의식적인 감정과 갈등을 반영한다(신민섭 외, 2002). 나무를 머그잔에 그려 넣으면서 실제 사용이 가능한 용기를 만든다는 것은 상한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해야하는 예술치료사로서 작은 실천을 한 것 같은 감정이 되었다.
따끈한 차를 나누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감정적인 정화를 경험하고 치유적인 경험을 나눈다는 것은 건강한 가슴 차크라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마음과 모든 인간의 정신적 산물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생각을 만들어낸 주인이 아니라 그 생각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다. 발명이나 예술가의 착상, 어떤 개념들은 의식에서 만들어낸 것이기보다는 그 관념이 나에게 온 것으로 이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객체정신(客體精神)이다.
Jung은 자아의 결단 없이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화하는 과정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며 다만, 자아의식을 넘어선 변함없는 정신세계의 특징을 지적함으로써 인간 정신의 전체성에 의미를 부여하였다(이부영, 2003b).
그림 Ⅳ- 23은 심장 차크라 색채명상 후에 사랑 없이는 인생이 의미가 없다는 인지적인 고백을 그림으로 한 것이다. 물에서 존재감을 만끽하는 물고기의 평범한 행복과 특별한 사랑 속에 사는 물고기를 시각화하였다. 물고기는 다산과 번식, 생명의 재생과 유지, 생명의 원천인 바다나 강의 힘을 상징하며 어머니인 태모(胎母)신의 모든 면과 연관되며 달과도 연관되는 원형이다(Cooper, 1978/1994).
사랑 그 자체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찬 아나하타 차크라 색채 명상을 여러 번하면서 서글픔과 아픔이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르며 힘들었었다. 반복될수록 생명의 원천인 어머니의 바다에서 마음껏 유영하는 물고기는 바로 나였으며 사랑받고 있음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게 되었을 때, 영원한 사랑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자유롭고 평안한 일상을 살고 싶은 꿈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나하타 차크라가 하위 차크라의 본능적 충동에 오염되면 생존이나 성적인 충동과 식욕 등과 관련되면서 강렬한 정서를 경험하게 되고, 반대로 에너지가 하위 차크라에 집중되면 차갑고 메마르고 타인에 관심이 없는 상태가 된다(박미라, 2020).
근본적인 사랑에 대해 안정을 찾고 나서는 최선을 다한 생존에의 의지로 조절하지 못한 분노와 용서하지 못하고 내재화되어버린 잠재적 분노를 볼 수 있었다. 노력을 하여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용서와 상처받지 않으려는 위축으로 비합리적인 자기보호로 무디어져 가던 모습을 재차 확인한 것이 아나하타 차크라 색채명상의 부산물인 것 같이 여겨진다.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분노하던 일들과 개인적인 감정들을 현실과 타협하고 억제시키며 선한 사람인 척 가면을 썼던 나의 모습을 먼저 용서해야 하는 그 앞에 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감하기보다는 분노에 가까운 감정들을 가지고 심리적인 부분을 만나고 있었음을 너무도 자명하게 확인하는 시간이었지만 개선의 여지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로 하였다.
아나하타 차크라 색채명상을 하면서 분명해진 것은 용서라는 큰 사랑의 형태를 내가 소유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사랑받고 있으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씨앗은 어느 봄날에 아름다운 고유한 색의 꽃을 피울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 나의 사랑도 열매가 되어 초록의 싱그러움이 나도 너도 담을 수 있는 사랑의 용기로 변환될 것이다. 이렇게 초록을 만나며 나의 심장은 이제 은율에 맞추어 사랑의 리듬을 타고 건강한 심장의 박동으로 사랑을 가르쳐준다.
<차크라 색채명상을 통한 예술치료사의 자기실현에 관한 자전적 내러티브 탐구/ 전진옥 건국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치료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