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잔인한 유희 며칠 후 배는 진황도에(秦皇島) 도달했다. 그들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가 곧 북경에 들어갔다.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방법을 강구해서 황궁으로 들어가는 일은 언제쯤 성공할지 알 수 없는 일이외다. 그러니 모두들 시간을 보낼 거처를 반드시 마련해야 될 것이다.] 그 즉시 육고헌이 가서 한 채의 저택을 빌었다. 그 저택은 선무문(宣武 門) 옆에 있는 두발호동(頭髮胡同)이라는 골목길 안에 위치 하였는데 매우 조용했다. 일행은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살고 있는 사람 은 이미 찻잎을 파는 장사치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는 천지회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그는 첨수정(甛水井)호동에 있는 천지회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살고 있는 사람은 이미 찻잎을 파는 장사치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는 천지회에서 사용하는 암호로 몇마디 물었으나 그 사람은 눈만 멀 뚱멀뚱 볼뿐이었다. 아마도 천지회는 이미 다른 장소로 옮겨 간 모양이 었다. 그는 다시 천교로 갔다. 속으로 팔비원후 서천천이 설사 핍박을 받고 신룡교에 가입하게 되어 천교에 없다 하더라도, 어쩌면 천지회의 나머 지 형제들 가운데 고언초나 벌강, 전노본 등은 만날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교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했지만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즉시 그는 서직문(西直門)쪽으로 나아가서는 지난 번 머물 렀던 객점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세냥의 은자를 꺼내서는 계산대 위 에 던지며 좋은 방을 달라고 했다. 주인은 그의 돈 씀씀이가 큰 것을 보고는 매우 공손하게 접대를 했다. 위소보는 다시 다섯전의 은자를 꺼 내서는 점소이의 손에 건네 주었다. 그리고 지난 번 머물렀던 그 제3호 방을 달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 방에는 손님이 들어 있지 않아 점소 이는 공짜로 오 전의 은자를 번 셈이었다. 위소보는 차를 마시고 침대 위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 듬었다. 사방은 조용했다. 아무 기척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난 다음 그 는 비수를 뽑아 벽에 구멍을 다시 뚫었다. 순치황제가 그에게 준 경서 는 바로 그 구멍안에 있었다. 그는 기름을 먹인 베를 풀어 살펴보고 차 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벽돌로 다시 그 구멍을 막았다. 반두타는 이미 자기 부하가 되었으니 다시는 시위를 불러 경서를 호송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서를 품속에 집어넣고는 곧장 자금성으로 걸어들어 갔다. 궁밖 에 이르게 되었을 때 문을 지키던 시위는 한 젊은이가 평민의 차림으로 곧장 궁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호통을 내질렀다. [이 녀석, 무엇하는 놈이냐?]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는 나를 모르시오? 나는 궁안의 계공공이외다.] 그 시위는 그를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황상의 곁 에서 가장 총애를 받는 계공공인지라 재빨리 온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계공공, 그런 옷차림을 하고 계셔서... 헤헤헤] [황상께서 나에게 중요한 일을 시켰는데 빨리 돌아와 보고를 드려야 하 기 때문에 미처 옷을 바꿔입을 겨를이 없었구려.] [네네, 계공공의 얼굴이 불그레 하신 것을 보면 이번 일은 반드시 순조 롭게 처리된 것 같군요. 황상께서는 반드시 큰 상을 내리실 겁니다.] 위소보는 자기의 거처로 돌아가 태감의 복색으로 바꾸어 입고 경서를 헌 보따리에 싼 다음 곧장 서재로 황제를 만나러 갔다. 강희는 소계자가 뵙기를 청한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말했다. [빨리 들어와, 빨리 들어와.] 위소보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강희는 안쪽 서재로 통하는 문 입구 에 서서 기쁜 듯 말했다. [제기랄, 소계자, 빨리 기어들어와. 어째서 그토록 오래 나가 있었느 냐?] 위소보는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며 말했다. [황상에게 하늘처럼 기쁜 일이 생기셨으니 축하드립니다.] 강희는 그 말을 듣자 부황이 이 세상에 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챘 다. 그는 가슴이 크게 두근거리는 걸 느끼고 몸을 몇 번 휘청거렸다. 그는 손을 뻗쳐 문설주를 잡고 말했다. [들어와서 천천히 이야기 하자꾸나.] 위소보는 안쪽 서재로 들어가 방문을 닫아걸고 빗장마저 질렀다. 그리 고 서가의 사방을 한 번 돌아보았다. 달리 시중드는 태감이 없는 것을 보고 그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황상, 저는 오대산에서 노황야(老皇爺)를 만나뵈었습니다.] 강희는 그의 손을 꼭 쥐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부황... 정말 오대산에서 출가를 하셨더냐? 그분께서는...뭐라고 말씀 하시더냐?] 위소보는 청량사에서 어떻게 노황야를 만나게 되었고 서장의 라마들이 어떻게 해를 끼치려고 했으며, 자기가 어떻게 용감하게 나서서 죽어라 하고 노황야를 보호해 드리면서 지켰던가,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소림 십팔나한이 도움의 손길을 뻗쳐 무사했다는 일등을 일일이 이야기 했 다. 이 일은 본래 매우 아슬아슬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입으로 이야기 하면서 다시 삼푼쯤 보탰고 자기가 충성스럽고 용감하게 나섰던 사실에 대해서는 반쯤 거짓말을 보태어 이야기 했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자 강희는 손에 땀을 쥐며 연신 부르짖었 다. [정말 아슬아슬했구나.] 그리고 다시 말했다. [즉시 일 천명의 시위를 산 위로 보내 신경을 써서 지켜드려야 겠다.] 위소보는 고개을 가로저었다. [노황야께서는 십중팔구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순치황제가 했던 말을 일일이 이야기 했다. 강희는 부친이 자기보고'그는 훌륭한 황제이다. 먼저 조정의 일을 생각 하다니, 나를 닮지 않았구나....'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참을 수 없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반드시 가야겠다. 나는 반드시 가야지.] 위소보는 그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려 경서를 꺼내 두 손으로 바쳐들 고 말했다. [노황야께서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황상에게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천하의 일이란 반드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을 따라야 하 며 억지로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중원의 백성들을 위해 복을 베풀어 준다는 것은 가장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약 천하의 백성들 모두가 우 리더러 가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자연 온 곳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노황야는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해드리라고 했죠. "천하가 태평하도 록 하려면 영원히 세금을 증가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한 마디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바로 나에게 잘 대하는 것이고 나는 마음 속으로 기뻐할 것이다."] 강희는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리고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위소보가 내미는 보따리를 받아 들더니 보따리 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 한 권의 사십이장경을 펼쳤다. 그런데 첫 장 위에는 영원히 세금을 증가하지 말라는 뜻의 영부가부(永不加賦)라는 네 글자가 씌어 있었다. 필치는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것이 과연 부황 의 친필이 아닌가. 그는 흐느끼며 말했다. [부황의 글씨를 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더니 순치황제의 몸이 건강한지, 그리고 지금의 모 습은 어떠한지, 청량사에서 너무나 고달픈 생활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 지 등을 물었다. 위소보는 사실대로 일일이 이야기 했다. 강희는 그만 서글픔이 복받치 게 되어 다시 대성통곡을 했다. 위소보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제기랄, 내가 그와 함께 크게 울어 준다면, 그가 나에게 내려 줄 것이 반드시 더 많아질 것이다. 어쨌든 운다는 것은 돈 드는 것은 아니잖는 가?) 울려고 마음만 먹으면 정말 우는 그였다. 몇 번 흐느낀 끝에 눈물을 졸 졸 흘렸는데, 흐느끼는 것이 정말 구슬프기 이를데 없었다. 강희는 슬픔을 참을 수 없어 우는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그 자신이 신 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 로 감정을 억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위소보는 일부러 그렇게 하기로 작정하였는지라 훌륭히도 대성통곡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우는 것은 과거 그가 양주에 있을 때 특기로 삼았던 것이다. 어머 니가 대나무 판대기로 미처 볼기짝을 때리기도 전에 그는 하늘이 무너 지고 땅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울음을 터뜨렸었다. 결코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눈물을 쫙쫙 흘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진짜로 우 는 것인지 가짜로 우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강희는 한동안 울더니 울음을 거두고 물었다. [나는 부황이 그리워서 운다만 그대는 왜 나보다 더 슬피 우는가? 그 것은 무엇 때문이지?] [저는 황상께서 슬피 우는 것을 보고 다시 노황야의 부드럽고 인자한 태도와 나에게 연신 칭찬을 하시며 제가 목숨을 돌보지 않고 노황야를 지켜 주었다고 무척 저를 귀여워하시던 일을 상기하게 되어 그만 마음 속의 슬픔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흐느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황상께서 걱정을 하시고 또 빨리 돌아와 보고를 해야 한다는 사 실을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정말 오대산에서 노황야의 시중을 들며 노 황야께서 나쁜 사람들에게 업수히 여김을 당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입니 다." "소계자, 너는 정말 훌륭하구나. 내 반드시 크게 상을 내릴 것이니라." 위소보는 그래도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면서 말했다. "황상께서는 이미 저에게 잘 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아무런 상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노황야께서 편안하시기만 한다면 무척 기 쁘게 여길 것입니다." 그는 신룡도에 한 번 갔다 오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소리 높이 '교주 께서 선복을 영원히 누리고 수명은 하늘처럼 길 것입니다'라고 외치는 말을 하면서도 전혀 쑥스럽게 여기지 않는 광경을 본 이후로 더욱더 낯 가죽이 두텁게 되고 아첨을 떠는 재간도 크게 증진하였다. 그리하여 남 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더욱더 과장해서 아첨을 떨 수 있었다. 강희는 그 말을 정말로 알아듣고 말했다. "나도 정말 부황께서 돌보실 사람이 없는 게 걱정이 된다. 그대는 행전 화상이 집돼지같이 매우 조잡하고 우둔하다고 했지. 부황의 곁에 힘을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정말 나로 하여금 마음을 놓을 수 없게 하는구나. 소계자, 부황께서 그토록 그대를 좋아하셨다니......" 위소보는 이 같은 말을 듣게 되자 그만 입이 딱 벌어져 다물지를 못했 다. 그리고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어이구, 어이구, 이번에야말로 재수없게 걸리게 되었구나. 과장을 한 다는 것이 그만 너무 지나치고 말았구나.) 강희는 계속해서 말했다. "......본래 내 곁에서 그대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지. 하지만 아들 된 도리로 부친에게 효성을 다하자면 손 곁에 있는 물건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택해서 아버님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냐. 그대야말로 내게 가 장 도움이 되는 수하인이 아닌가? 나이는 어리지만 매우 재능이 있고 또 우리 부자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니......"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부르짖고 있었다. (아이구, 야단났구나! 엄마야, 오대산에 보내져서 노화상들과 함께 있 을 바엔 차라리 감옥속으로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이 낫겠다.) 강희는 말했다. "이렇게 하지. 그대는 오대산으로 가서 출가하여 화상이 된 다음 바로 청량사에서 보황을 돌보시도록 하게나." 위소보는 형세가 매우 다급해지는 것을 느끼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 다. 비단 노화상을 모셔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또 화상이 되어야 한 다면 그야말로 일이 크게 잘못되는 형편이 아닌가? 그리하여 강희황제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재빨리 말했다. "노황야를 모시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저보고 화상이 되 라고 하시는 것은...... 나는 하지 않겠소이다." 강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그대에게 영원히 화상이 되라는 것은 아닐세. 그저 부황께서 한마음 한뜻으로 도를 닦고 계시니까 그대가 화상이 되어 시중을 든다 면 좀더 편리할 게 아닌가 말일세. 장래...... 장래...... 그대가 환속 을 하고자 한다면 물론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지." 그 말은 이후 순치황제가 늙어서 극락세계로 가게 되었을 때 네가 화상 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막지 않으리라는 뜻이었다. 아무리 위소보의 임기응변이 뛰언나다고 하지만 이때만은 속수무책이었 다. 그는 황제가 자기에게 무척 잘 대해 주고 있으나 시킬 일을 이미 언급한 이상 고집을 피우고 응낙하지 않는다면 여지껏 쌓은 공이 수포 로 돌아가게 되고, 어쩌면 황제는 얼굴을 붉히며 즉시 자기의 머리를 자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위소보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저는...... 저는 황상의 곁을 떠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왁 하니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 진짜로 우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에 우는 것은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겠 다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화상이 되고 싶지 않아서 우는 것이었다. 강희는 크게 감동되어 가볍게 그의 어깨죽지를 두드리며 부드러운 어조 로 말했다. "이렇게 하도록 하지. 그대가 가서 몇 년 동안 화상이 되어 부황을 모 셔 주게. 그런 연후 내가 달리 사람을 보내 그대와 교대시켜 그대를 나 의 곁으로 불러오면 되지 않겠는가? 부황께서는 나보고 만나러 오지 말 라고 했다지만 나는 반드시 가야겠네. 그때 그대는 다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네. 소계자,그대는 순순히 나의 말을 들어. 그러면 장래에 그대 에게 나는 큰 벼슬을 내리도록 하지." 그런데도 위소보가 울음을 멈추지 않자 다시 위로의 말을 했다. "그대는 절에서 여가가 있으면 책을 읽고 글을 익혀 이후 커다란 벼슬 아치가 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장래 큰 벼슬아치가 되고 안 되고는 상관할 것이 없다. 그러나 당장 화상이 되는 것은 뻔한 일이로구나.) 그는 다시 생각을 돌렸다. (내가 오대산으로 가서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여 노황야로 하여금 나를 되돌려 보내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황제께서 나의 시중을 받지 못해 밥을 못 먹었으며 이번 한두 달 떠나 있는 사이에 살 이 쭉 빠졌다고 한다면 노황야께서는 아들을 사랑한 나머지 반드시 나 보고 궁으로 되돌아가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계책이 떠오르자 위소보는 천천히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황상께서 어떤 일을 시킨다 하더라도 저는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끓는 물 속이나 타는 불길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더라도 사양하지 않을 것입 니다. 화상이 되라는 것은 고사하고 후레자식이 되라 하더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황상께서는 안심하십시오. 나는 반드시 진심과 정성을 다 해 노황야를 모시겠으며 노황야께서 몸이 편안하여 백세까지 사시도록 하겠소이다...... 그리고...... 영원히 복을 누리고 수명이 하늘처럼 길도록 하겠소이다." 강희는 크게 기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서울을 떠난 지 몇 달 동안에 학문도 늘어서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구나. 그런데 오대산에서 어찌하여 이토록 지체했지? 좀처럼 노황야를 만날 수 없었던가 보군?" 위소보는 속으로 신룡도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청량사의 주지방장이나 또 그 옥림 노법사께서는 무슨 말 을 하더라도 그 절간에 노황야게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 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갈파할 수도 없어서 이 절에서 저 절로 왔 다갔다하며 법사를 하도록 했지요. 오늘은 현통사에 가서 불공을 드리 고 내일은 다시 불광사로 가서 시주를 하곤 했습니다. 오대산 위의 수 천 명이나 되는 크고 작은 화상들 가운데 나는 적으도 천 명은 알게 되 었죠. 만약 그 고약한 라마들이 노황야를 시끄럽게 하지 않았더라면 오 늘날까지도 승려들에게 시주를 하며 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강희는 웃었다. "이번에야말로 많은 돈을 썼겠군. 쓴 돈은 내무부(內務部)로 가서 모조 리 찾도록 하게나." 그는 액수를 묻지 않았다. 위소보가 이렇게 큰 공을 세웠고 또 화상 노 릇을 하고자 하니 그가 얼마만큼 돈을 크게 불려 이야기 하더라도 좋다 는 생각에서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에게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지난 번 황상께서 나를 보내 오배의 가산을 몰수하게 하셨을 때 소신은 득을 좀 보았습니다. 당시는 보고드 리기가 겸연쩍어 말씀을 드리지 않았지요. 그런에 이번에 오대산으로 가 노황야를 뵙게 되었을 때 그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아 황상에 대해서 는 어떤 나쁜 일을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번 얻은 은자를 모조리 절에다 시주를 했습니다.이는 소신이 황상 을 도와 음덕을 쌓자는 것이며 부처님이 보살피셔서 노황야와 황상 두 분께서 하루속히 만나게 해달라고 기원을 한 셈이죠. 그 돈은 본래 황 상의 것이니 다시 더 탈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속셈은 그대들 부자가 일찌감치 만나게 된다면 자 기 자신이 며칠이라도 화상 노릇을 덜하게 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 다. 동시에 그와 같은 말을 함으로써 이후 누가 위소보가 오배의 가산 을 몰수하게 되었을 때 거액의 액수를 집어 삼켰다고 고발을 한다 하더 라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준비를 해놓자는 것이었다. "나는 일찍이 황상을 대신해서 오대산 위에서 시주를 했는데 이제 와서 캐묻는다니 어찌 된 노릇입니까?" 강희는 그와 같은 위소보의 말을 듣고는 더욱 기뻐서 연신 고개를 끄덕 이며 물었다. "오대산은 놀기가 좋더냐?" 위소보는 즉시 오대산의 풍경을 이야기했다. 강희는 매우 흥미있게 듣 고 난 다음 말했다. "소계자, 그대가 먼저 가게. 그러면 나는 얼마 후 뒤따라가겠네. 우리 들은 방법을 강구해서 부황을 궁으로 모시도록 해야 하네. 그 어르신께 서 만약 굳이 환속을 하고 황제 자리에 오르시는 것을 마다한다면 궁에 서 도를 닦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그것은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재 밖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나면서 한 맑은 여인의 음성이 들렸다. "황제 오라버니, 황제 오라버니, 그대는 어째서 아직도 나와 무공을 겨 루지 않고 있죠?" 그러면서 쿵쿵 하니 힘주어 문을 열었다. 강희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문을 열어 주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누구일까? 설마하니 건녕공주(建寧公主)일까?) 그는 문가로 가서 빗장을 뽑고 서재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붉은 비단 옷을 입은 소녀가 일진의 바람처럼 달려들어오면서 말했다. "황제 오라 버니, 나는 한참 동안 기다렸단 말이에요. 여지껏 소식이 없는 것을 보 면 아마 내가 두려웠던 모양이죠? 그런가요?" 위소보는 이 소녀의 나이가 십 오륙 세 정도 되었으며 갸름한 얼굴에 엷은 입술을 하고 있고 눈썹과 눈동자가 민활하게 움직이는 것이 꽤나 깜찍하다고 생각했다.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누가 너를 두려워했다는 것이냐? 내가 보기에 너는 나의 제자조차 이 기지 못할 것 같은데 무슨 자격으로 나와 손을 쓰겠다는 것이냐?" 소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오라버니는 제자를 거두어들였나요? 그가 누구죠?" 강희는 왼쪽 눈을 위소보에게 찡긋해 보이며 말했다. "이 자는 바로 나의 제자 소게자이다. 그의 무공은 내게 배운 것이지. 빨리 사숙인 건녕공주에게 인사를 드려라."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건녕공주였군.) 그는 노황야에게 여섯 명의 딸이 있었는데 다섯 명의 딸은 일찍이 요절 을 하고 이 공주만이 남았으며 이 공주는 또한 황태후가 친히 낳은 딸 임을 알고 있었다. 위소보는 지극히 황태후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평소에는 자녕궁으로 가 까히 다가가지도 않는데다가 공주마저 황제의 서제로 잘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에야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는 강희의 말을 듣고 그 들 남매가 장난치는 것을 거들어 줄 겸 싱글벙글 웃으면서 앞으로 나가 문안을 드렸다. "사질 소계자가 사숙 어르신에게 인사 드립니다. 사숙께서는 만복을 누 리시기를......" 건녕공주는 히히 하고 웃더니 갑자기 한 발을 들어 위소보의 아래턱을 걷어찼다. 이 발길질은 사정을 전혀 두지 않았는데다가 위소보가 한 다 리를 꿇고 그녀의 발치에 몸을 구부리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피할 수 가 없었다. 그의 한 마디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아래턱이 갑자기 발길 에 걷어채여 위로 올려지는 바람에 그만 입이 다물어지게 되었고 대뜸 혓바닥을 깨물게 되었다. 아픔에 그는 아! 하는 소리를 크게 내질렀고 입을 벌리자마자 흘러나온 선혈로 앞섭자락은 피로 물들고 말았다. 강희는 놀라 부르짖었다. "너는...... 너는....." 건녕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 그대의 제자는 무공이 형편없군요. 나는 발길질로 한 번 그의 재간을 시험해 보았는데 그는 피하지도 못했잖아요. 내가 보기 에 그대 자신의 무공도 그 정도에 불과할 것 같네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 깔깔거리고 웃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분노가 치밀어올라 마음속으로 몇 수 십번이나 못난 계집 이라는 욕을 했다. 강희는 위소보에게 위로의 말을 던졌다. "어떤가? 혓바닥을 깨물었는가? 아프지 않을까?" 위소보는 쓰디쓰게 웃었다. "그런 대로 괜찮습니다. 그런 대로 괜찮아요." 혓바닥에 상처가 났기 때문에 말하는 것도 똑똑하지 못했다. 건녕공주는 그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했다. "그런 대로 괜찮아요, 그런 대로 괜찮아요." 그리고 다시 웃으며 강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자, 우리 무공을 겨루러 가요." 지나간 일이지만 공주는 황태후가 강희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재미있게 여거ㅕ다. 그래서 모친에게 자기에게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황태후는 그녀에게 약간의 무공을 가르쳐 주는 척 했다. 호기심이 강한 그녀는 어머니가 자기에게 얼렁뚱땅 하며 오라비를 가르 치는 만큼 마음을 전혀 쓰지 않는지라 궁중의 시위들에게 권법을 가르 쳐 달라고 청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몇수 배우고 저기에서 몇 식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와 같이 삼년 동안 연마하는 사이에 어느 정도 의 성과가 있었다. 며칠 전 몇 수의 금나수법을 배워 시위들과 시험을 하게 되었는데 모두들 양보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하나같이 소공주가 자신들을 내던지면 그럴싸하게 낙화유수처럼 나가떨어지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녀는 뭇시위들이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그런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재미없게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황제 오라버니에게 무공을 겨루자고 청을 하게 되었다. 강희는 오랫 동안 위소보와 무공을 겨루지 못했던 터라 손발이 근질근 질하던 참이었는데 누이동생의 그와 같은 청을 받고 한바탕 어울리게 되었다. 두 사람은 바로 그 조그만 전각에서 손을 썼다. 강희는 반은 진짜고 반 은 가짜로, 그리고 반은 양보하는 척했으나 반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상태로 그녀를 상대했다. 그리하여 다섯 번을 겨룬 결과 네 번을 이기 게 되었다. 건녕 공주는 화가 난 나머지 다시 모친에게 초식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 다. 황태후는 중상을 입은 이후 가까스로 치유되었으나 심기가 크게 불편해 져 있었으므로 이 말을 듣고는 대뜸 그녀를 내쫓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부득이 시위를 다시 찾아가 몇 수의 금나수를 배우고 이 날 다 시 강희와 싸우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위소보가 궁으로 돌아와 기다란 이야기를 늘어놓는 바람에 강희는 그만 그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부황의 소식을 접하게 되니 슬픔과 기쁨에 얽혀 정신이 오락가락 하게 되었는데 어찌 누이동생과 장난질을 할 흥미가 나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입을 열었다. "지금 나는 요긴한 일이 있어서 너와 놀 여가가 없다. 너는 다시 가서 연마를 해라. 며칠 후에 다시 겨루도록 하자." 건녕공주는 초승달 같은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우리의 약속은 강호에서 영훙호걸들이 무공을 겨루자는 약속과 다를 바 없어요. 그야말로 만나지 않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죽음의 약 속이에요. 그런데 그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천하의 영웅호걸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어요? 그대가 무공을 겨루러 오지 않는 것은 그거야 말로 졌다는 것을 시인하는 거예요." 이와 같은 강호의 말투는 시위들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이었다. "좋아, 내가 졌다고 인정하지. 건녕공주는 무공이 천하제일이지. 주먹 으로 남산의 호랑이를 후려치고 발로는 북해(北海)에 웅크리고 있는 고 룡(蛟龍)을 걷어찼다고 해두지." 건녕공주는 웃었다. "발로 북해에서 웅크리고 있는 털이 난 벌레를 찼다고나 해두죠." 그리고 그녀는 다시 발을 들어서는 위소보를 걷어차려고 했다. 위소보는 몸을 날려 옆으로 피했다. 그렇게 되자 그녀는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한 꼴이 되었다. 그녀는 황제가 오늘 자기와 무공을 겨루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시큰둥해졌다. 시위들은 체구가 우람해서 정말 싸우게 된다면 자기가 반드시 진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 태감은 나이나 키가 자기와 비슷하고 솜씨 또한 민활한지라 무공을 겨루는 상대로 삼으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대의 사부가 나를 두려워하여 감히 손을 쓸 수 없다면 그대가 나를 따라와요." 강희는 언제나 이 활발하고 영리한 누이동생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그녀의 흥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분부했다. "소계자, 그대가 공주를 상대로 놀아 줘. 그리고 내일 다시 와서 시중 을 들도록 하게나." 건녕공주는 갑자기 부르짖었다. "황제 오라버니, 이 일초를 받아요." 그리고 그녀는 희고 작은 주먹으로 종고제명(鐘 齊鳴)이라는 일초를 펼 쳐 강희의 양쪽 태양혈을 노리고 후려쳐 왔다. 강희는 소리쳤다. "훌륭하다!" 그는 팔을 들어 막으면서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동시에 추창망월(推 望月)이라는 초식으로 변화시켜 그녀의 등을 가볍게 밀쳤다. 그렇게 되자 공주는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고 바깥 쪽으로 몇걸음 밀려 나게 되었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쳇 하고 웃었다. 공주는 수치가 분노 로 변해 욕을 퍼부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왜 웃어!" 냅다 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귀를 잡고 서재에서 끌어내었다. 위소보가 만약 막거나 피하려고 했다면 공주는 그의 귀를 잡아당길 수 없었을 테 지만 감히 무례한 행동을 할 수가 없어 그녀가 붙잡고 비트는 대로 내 버려 둔 것이었다. 건녕공주는 그의 귀를 단단히 쥐고 기다란 낭하를 따라 걸어나갔다. 서 재밖에 서서 시중을 들고 있던 줄줄이 늘어선 시위들과 태감들은 이를 보고 모두 우스꽝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위소보의 권세를 염두에 두 고 어느 누구도 소리 내어 웃는 사람이 없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됐소. 이제 손을 놔주시오. 그대가 가자는 대로 내가 따라 갈테니까 말이오." "이 무법천지로 날뛰는 도적 두목을 오늘 내가 잡았는데 쉽게 놓아 줄 리가 있느냐? 내 먼저 그대의 혈도를 짚은 이후에 다시 말하기로 하 자." 그리고 그녀는 식지를 뻗쳐내더니 그의 가슴팍과 아랫배를 힘주어 몇 번 찔렀다. 그러나 그 몇 번의 수작은 그야말로 헛손질에 불과했ㄷ. 위소보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혈도를 짚혔다!" 그리고는 털썩 주저앉아 눈을 멍청하니 뜨고 입을 헤 벌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는 발끝으로 가볍게 그를 한 번 차 며 호통을 내질렀다. "일어나!" 위소보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공주는 자기가 어떻게 하다가 정말 로 그의 혈도를 짚은줄 알고 말했다. "내 그대의 혈도를 풀어 주지." 그리고는 발을 들어 위소보의 허리를 걷어찼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 했다. (이 계집애는 나의 혈도를 풀지 못하니까 또 걷어차려고 하는구나.) 그 즉시 그는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벌떡 뛰어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공주, 그대의 점혈수법이 정말로 고명하구려. 아마 황상까지도 그와 같은 점혈수법은 모를 것이외다." 공주는 말했다. "나이어린 태감이 정말 교활하기 이를 데 없군. 내가 언제 점혈수법을 배웠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녀는 위소보의 눈치가 빠른 것을 보고 역시 기뻐하며 말했다. "나를 따라와요." 위소보는 그녀를 따라 그와 강희가 무공을 겨루던 집으로 들어가게 되 었다. 공주는 말했다. "문을 걸어요. 남들이 와서 훔쳐 배우지 못하게." 위소보는 웃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까짓 얄팍한 무공을 누가 훔쳐 배운다는 것이야?)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문을 닫았다. 공주는 빗장을 들고서는 그에게 건네 주는 체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 다. 위소보는 정수리에 한 차례 격렬한 통증을 느끼면서 그만 인사불성 이 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공주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양손으로 허리를 짚고 버티어 선 채 이렇게 말했다. "밥통 같으니, 무공을 배우는 사람은 눈으로 여섯 갈래를 지켜보고 귀 로는 팔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그대 에게 한 대 후려치는데도 그대는 어찌하여 방비하지 못하는 것이냐? 그 래가지고 무슨 무공을 배우겠다는 것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나는......" 머리가 빠개지듯 아팠다. 갑자기 왼쪽 눈이 끈적끈적해지면서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코에는 피비린내가 풍겼다. 그제서야 그는 빗장에 얻어 맞어 머리가 깨져 피가 흘러내리고 있음을 알았다. 공주는 빗장을 흔들며 호통을 내질렀다. "사내라면 빨리 일어서서 다시 덤벼!" 그리고 휙 하니 다시 빗장으로 그의 어깻죽지를 때리려고 했다. 위소보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공주는 빗장을 휘 둘러 그의 발을 치려고 했다. 위소보는 몸을 돌려 피하는 동시에 손을 뻗쳐 빗장을 낚아채려 들었ㄷ. 공주는 부르짖었다. "훌륭하군!" 그리고는 빗장을 번쩍 쳐들더니 그의 가슴팍을 내지르려고 했다. 그런 데 그 빗장을 훽 뒤집어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힘주어 그의 오른쪽 뺨 을 때리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눈앞에 불똥이 마구 튀는 것을 느끼고 몇 걸음 휘청거렸다. 공주는 부르짖었다. "이 녹림의 도적놈 같으니! 내 너를 반드시 죽여야겠다." 그리고 빗장을 힘주어 옆으로 쓸어쳐왔다. 위소보는 철썩 땅바닥에 엎 드려 피했다. 공주는 크게 기쁜듯 빗장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맹렬히 후려쳤다. 위소 보는 뒤통수에서 바람소리가 세차게 이는 것을 느끼고 깜짝놀라 급히 몸을 뒹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빗장은 바닥을 치고 말았다. 공주는 큰소리로 부 르짖었다. "어이쿠!" 이번에는 너무 힘을 주었기 때문에 그녀의 손아귀에 격렬한 통증을 느 꼈던 것이다. 크게 노한 그녀는 위소보의 허리를 향해 힘주어 발길질을 해왔다. 위소 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투항이오! 투항! 싸우지 않겠소이다." 그러나 공주는 막무가내였다. 빗장을 들고 다시 내려치는데 이번에는 그의 아랫배를 퍽 하니 후려쳤다. 그런데 다행히 그의 품속에 숨기고 있는 오룡령 위를 때려서 아프지는 않았다. 막 일어나려고 하던 위소보 는 다시 그 바람에 쓰러지고 말았다. 공주는 빗장을 들어 다시 한 번 후려치는가 하면 또 내려치면서 욕을 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내가 때리고 있는데 감히 피해?" 공주의 힘은 그렇게 센 편이 아니었으나 손을 쓰는 데 있어서는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는 것이 금방이라도 그를 때려 죽일 것만 같았다. 위소 보는 놀람과 분노에 얽혀서는 힘주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공주는 빗장을 들고 곧장 후려쳐 왔다. 위소보는 왼손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그러자 우지끈 하는 소리가 나면서 팔뼈가 하마터면 분지러질 뻔 했다. 그는 급히 속으로 생각했다. (공주는 나와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어째서 나를 죽이려 고 하는 것일까? 아, 그렇다. 그녀는 황태후의 당부로 나의 목숨을 빼 앗으려고 하는구나.) 그와 같은 생각이 들자 결코 그녀가 마음대로 구타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오른손의 식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뻗쳐서는 쌍룡 창주(雙龍 珠)라는 일초를 펼쳐 공주의 눈을 찔러갔다. 공주는 어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한 걸음 물러섰다. 위소보는 왼발을 옆으로 걷어찼다. 공주는 털썩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정말 치기냐?" 위소보는 두 손으로 빗장을 비틀어 빼앗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공포와 분노의 빛이 떠오르는 것 이 아닌가! 그는 속으로 깜짝 놀라서 생각했다. (이곳은 황궁의 내원이다. 내가 이 빗장을 내려친다는 것은 대역무도한 짓이다. 그녀를 죽여서 화시분으로 녹여 버리지 않는 이상 후환이 따를 것이다.) 이와 같이 주저하는 바람에 손에 높이 쳐들었던 빗장을 끝내 내려치지 못했다. 공주가 소리쳤다. "이 죽일 태감같으니, 빨리 나를 붙잡아 일으키지 못해?"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정말 나를 죽이려 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즉시 왼손을 뻗쳐 그녀를 잡아 일으켜 주었다. 공주는 말했다. "그대의 무공은 나만 못해요. 나는 그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쓰러 졌을 뿐이에요. 조금 전 그대는 투항한다고 소리치고서 어째서 또 덤벼 든 거지? 사내대장부가 어째서 무림의 규칙을 지키지 않느냔 말이에 요?" 위소보는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바람에 눈마저 제대로 뜰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소맷자락으로 닦아내려고 했다. 공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졌어요. 형편없는 것 같으니. 자, 내가 그대의 피를 닦아주 지." 그리고 품속에서 한 조각의 하얀 손수건을 꺼내더니 몇 걸음 다가왔다. 위소보는 한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소신은 감당할 수 없소이다." 공주는 말했다. "우리들은 강호의 영웅호걸이니 응당 복이 있으면 함께 누리고 어려움 이 있으면 함께 당해야 하잖아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 주었다. 위소보는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기를 맡고 가슴이 크게 설레 이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이때 두 사람의 간격은 너무나 가까웠다. 위소보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하얀 피부를 대하게 되자 속으로 생 각했다. (이 나이어린 공주는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 공주는 말했다. "몸을 돌려봐요. 내 그대의 뒤통수의 상처가 어떤지 봐 드리겠어요." 위소보는 그 말대로 몸을 돌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에 나는 너무나 의심이 많았구나. 원래 이 공주는 정말 장난삼아 한 짓이었다. 다만 승부욕이 강해서 사정없이 손을 썼을 뿐이다.) 공주는 손을 뻗쳐 가볍게 그의 뒤통수의 상처를 어루만지더니 웃으면서 물었다. "매우 아픈가요?" 위소보는 대답했다. "괜찮은 편이오......" 별안간 위소보는 등에 격렬한 아픔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발로 거는 바람에 땅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본래 공주 는 살그머니 신발 속에 감추어 두었던 단도를 꺼내 느닷없이 암습을 가 해온 것이었다. 그리고 위소보가 엎어지자 왼발을 들어 그의 등을 밟고 는 단도를 들고서 그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각각 한 번씩 찌르 며 웃었다. "매우 아픈가요? 그대는 그런 대로 괜찮다고 했으니까 좀더 찔려 봐 요." 위소보는 그만 깜짝놀라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제야말로 나는 정말 죽게 되었구나.) 그런데 등에는 보의가 몸을 지켜 주고 있었기 때문에 단도가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의 두 곳 상처도 중상은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죽을 것처럼 아파왔다. 그는 홍부인이 가르쳐 준 제2초 소련횡진이라는 수법을 써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첫째로 먼저 상처를 입은데다가 기력이 없었고 둘째로는 그 일 초를 익숙하게 연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바둥거리면서 그녀의 사타구니 아래쪽으로 기어들어가 그녀의 등뒤에 가 서려고 했지만 행동이 너무 느려 몸을 움직이자마자 엉덩이가 다시 칼질을 당하게 되었다. 비수를 한 번 찌를 때마다 그녀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매우 아픈가요!" 위소보는 말했다. "매우 아프군요. 공주의 무공이 고강하여 소신은 결코 어르신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 강호의......호한이나 대영웅은 사람을 잡게 되었을 때 반드시 목숨을 살려 준답니다." 공주는 웃었다. "죽을 죄는 면할 수 있지만 살아서 당하는 고통은 용서받기 어렵지." 그리고 몸을 웅크리고 그의 엉덩이에 걸터 앉더니 호통을 내질렀다. "그대가 움직이기만 하면 나는 단칼에 그대를 죽이고 말겠어요." "소신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공주가 마침 앉은 곳이 바로 상처가 나 있는 곳이라 그는 아파 서 크게 신음을 내뱉게 되었다. 공주는 그의 허리띠를 풀더니 그의 두 발을 묶었다. 그리고 칼로 그의 옷자락을 찢어 내더니 다시 두 손을 뒤로 해서 묶으며 말했다. "그대는 나의 포로예요. 우리는 다시 일 초의 무공을 연마하도록 해요. 이것은...... 이것은 제갈량의 칠금맹획(七擒孟獲)이라는 거예요." 청나라 황종들은 모두 다 삼국고사에 대해서 익숙했다. 삼국연의를 그 녀는 이미 세 번이나 통독했던 것이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연극을 본 적이 있는지라 재빨리 말했다. "그렇죠. 그렇지요.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번 놓아 주 었지요. 그러나 건녕공주께서 이 소계자를 사로잡았으니 그저 한 번만 놓아 주시기만 하면 된답니다. 그대가 나를 놓아 준다면 나는 결코 배 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제갈량보다 일곱 배나 더 무서우니까 요." 공주는 말했다. "안돼요. 나 제갈량은 불로써 등갑병( 甲兵)을 불태우겠어요."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말했다. "소신은......등갑을 입지 않았소이다."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의 옷자락을 태워도 마찬가지에요." 위소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안돼오! 안돼오!" "뭐가 안 된다는 것이에요? 제갈량은 태우고자 할 때 태웠으며 등갑병 은 말이 많으면 못 써요." 그러다가 탁자 위 촛대 옆에 화도와 화석이 있는 것을 보고 즉시 화도 와 화석을 쳐서 촛불에 불을 당겼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제갈량은 맹획을 불태워 죽이지 않았소? 그대가 나를 태워 죽인다면 제갈량이 아니고 그대는 조조가 되는 것이오." 공주는 그의 옷자락을 들치고는 촛불을 가져가 불태우려고 했다. 그러 다가 그의 윤이 도는 새카맣게 딴 머리롤 보자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서 는 촛불로 그의 딴 머리 끝을 태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지극히 쉽게 불에 타들어가는 물체이다. 한 번 불을 당기자 마자 즉시 타오르기 시작했으며 찍찍 하는 소리와 함께 집안은 머리카 락 타는 냄새로 가득차게 되었다. 위소보는 혼비백산해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목숨만 살려주시오! 목숨만 살려주시오! 조조가 제갈량을 불태워 죽이 게 되었소." 공주는 끊임없이 낄낄 소리내어 웃었다. "호호호, 이것은 일종의 횃불이네. 정말 재미있군." 위소보는 삽시간에 온머리가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위급한 중에 힘이 크게 불어난 그는 몸을 퉁기듯하여 일어났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어 공주의 품속으로 부딪쳐 갔다. 공주는 어이쿠 하 는 소리를 지르며 미처 피하지 못하였고 위소보의 머리는 그녀의 아랫 배에 부딪쳤다. 그 바람에 머리에 붙었던 불길이 꺼지고 말았다. 공주는 두 손으로 옷 자락에 묻은 탄 재와 끊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털어냈다. 그런데 아랫 배가 몹시 아팠다.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발을 들어 위소보의 머리를 마구 걷어찼다. 몇 번 발길질을 하지 않아 위소 보는 기절하고 말았다. 흐릿한 상태 속에서 위소보는 전신의 상처가 격렬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자기는 눕혀져 있었고 가슴팍을 드 러낸 상태였다. 옷과 잠뱅이, 그리고 내의가 모두 끌어올려진 상태였 다. 그리고 공주는 왼손에 한 웅큼의 하얀가루를 들고 있었고 오른손의 단도로 그의 가슴팍에 한 가닥 삼사 푼 정도 길이의 상처를 내고는 그 하얀 가루같은 것을 상처에 뿌렸다. 위소보는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물었다. "무엇하는 것이오?" 공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시위들은 그들이 강도나 악적을 잡게 되었을 때 그 도적들이 제대로 실토를 하지 않으면 상처에다가 소금을 뿌린다고 했어요. 그러면 크게 아파 그들은 목숨을 살려 달라고 실토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렇기 때문 에 나는 전문적으로 그대와 같은 강호의 대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언제 나 몸에 소금을 지니고 다녔어요." 위소보는 상처가 난 곳으로부터 그야말로 온몸이 떨리는 듯한 아픔이 전해져 오자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목숨만 살려주시오. 목숨만 살려주시오. 실토를 하겠소" 공주는 히히덕거리고 웃었다. "이 밥통같으니. 이토록 빨리 실토를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그대 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해요. '나는 오늘 너의 손에 떨어졌으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눈살 한 번 찌푸린다면 나는 호한이 아니다.' 그러면 내가 다시 그대의 몸에 몇 가닥의 상처를 내고 소금을 좀더 많 이 뿌리게 될 거예요. 그럴 때 다시 그대가 용서를 빈다면 재미있게 되 지 않느냔 말이에요." 위소보는 대노하여 욕을 했다. "제기랄, 이 냄새나는 계집애...... 이봐요, 나는 그대를 욕하는 것이 아니오. 나는...... 나는 호한이 아니니 실토를 하겠소. 실토해요." 공주는 소금자루를 뿌리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고는 정색하 며 말했다. "나는 건녕파(建寧派)의 장문이다. 무공이 천하에 제일 가며 그대와 같 이 온갖 못된 짓을 하는 대도적을 사로잡았으니......"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좋아. 나는 강호의 대도적이오. 오늘 무예가 남만 못하여 천하에 서 무공이 제일가는 건녕파의 장문인에게 사로잡혔으니 죽어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불초가 승복했으니 더 따지지 맙시다." 공주는 그가 강호 사내들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하는 것을 듣고 장강년 등의 몇몇 시위가 그녀에게 들려준 것과 같은지라 속으로 재미있어서 칭찬의 말을 던졌다. "진작 이랬어야 했어요. 이왕 놀 바에야 좀 그럴싸하게 놀아야지 될 것 이 아니겠어요?" 위소보는 속으로 냄새나는 계집애니 썩어빠진 계집애니 하는 욕을 마구 하고 있었다. 그러나 뼈속에까지 스미는 아픔은 욕을 한다고 해서 경감 되지 않았다. 일시 그녀가 도대체 태후의 명으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강호의 호걸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 이 못난 계집애가 이토록 악랄하니 설사 자기를 상대로 해서 장난을 치는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한 목숨을 그녀의 손 아래에 서 사라지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옛날 목검병을 혼내 주었던 계책이 퍽이나 효험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나이어린 처녀애들은 모두 다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던가. 그는 즉시 고통을 억지로 참고는 말했다. "나는 갑자기 또 승복할 수가 없어졌구만. 장문인, 그대가 용기가 있다 면 나를 풀어 주시오. 우리 다시 한 번 겨루어 봅시다. 그대가 만약 나 의 무공이 고강하다고 생각하여 감히 손을 쓸 수 없다면 아예 나를 죽 이도록 하시오. 나는 죽어 원귀가 되어서 대낮에는 그대의 등뒤를 쫓아 다니고 밤에도 그대의 이부자리로 기어들어가서는 그대의 목을 움켜잡 고 피를 빨아 마실 테니......" 공주는 아! 하고 큰소리로 부르짖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왜 그대를 죽여야 하나요?" "그렇다면 빨리 나를 풀어 주시오." "풀어주지 않겠어요. 이 죽일 태감 같으니. 나를 놀라게 하다니!" 그리고 촛대를 들고서는 촛불로 그의 얼굴을 지지려 들었다. 촛불이 볼에 와닿자 찍 하는 소리가 났다. 위소보는 아파서 뒤로 고개 를 젖혔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로 그녀의 팔에 부딪쳐 갔다. 공주의 팔 이 충격을 받고 촛대가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촛불이 꺼지고 말았다. 그 녀는 대노하여 빗장을 들고서는 마구잡이로 위소보의 머리통을 치기 시 작했다. 위소보는 고통을 감당하기 어렵고 또 지독한 두려움에 휩싸여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살아남을 수 없겠구나.) 그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나는 죽었다!" 그리고 죽은 척하고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주는 노해 부르짖었다. "죽은 척하는군. 빨리 깨어나요. 나와 함께 놀아요." 위소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주는 가볍게 그를 한 번 찼다. 그러나 그가 꼼짝도 하지 않자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되었어요. 내 그대를 때리지 않을테니 죽지 말아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죽고 나면 끝장나는 것인데 어떻게 죽지 말라는 것인가? 사리에도 닿 지 않는 말을 하는구나.) 공주는 머리카락에 꽂아 둔 비녀를 뽑아서는 그의 얼굴과 목에대로 몇 번 찔렀다. 위소보는 고통을 꾹 참으며 꼼짝하지 않았다. 공주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제발 부탁이에요. 그대는...... 그대는...... 나를 놀라게 하지 말아 요. 나는...... 나는 그대를 때려 죽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그대와 무공을 겨루면서 놀려고 한 거예요. 그런데 그대가..... 그대가 이토록 밥통인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나를 이기지 못해 서......"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위소보의 코에서 경미한 숨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속으로 기뻐해서는 그의 심장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지 않는가. 그녀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죽일 태감같으니. 원래 죽지 않았군요. 이번엔 그대를 용서해 줄 테니 빨리 눈을 떠요." 위소보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공주는 다시 속아 넘어가지 않고 호통을 내질렀다. "나는 그대의 눈알을 뽑겠어요. 그리하여 죽은 후 눈먼 귀신이 되어 나 를 찾지 못하게 할 거예요." 그리고는 그녀는 단도를 들고 단도의 끝을 그의 오른쪽 눈꺼풀에 갖다 댔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몸을 굴려 피했다. 공주는 노해 부르짖었다. "이 나쁜 꼬마녀석 같으니, 또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나는...... 그대 의 눈을 반드시 찔러 눈을 멀게 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훌쩍 다가들며 발을 뻗쳐 그의 가슴팍을 밟고는 단도를 들어 그 의 오른쪽 눈을 노리고 재빨리 찔러갔다. 이것은 그야말로 찌르는 시늉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몸과 함께 단도를 내려찌르는데 그 단도의 기세가 너무나 세찼다. 비단 그의 눈뿐만 아니 라 찌른 단도가 골수를 뚫고는 뒤통수로 나올 지경이었다. 위소보는 두 다리를 급히 움츠렸다가 무릎으로 그녀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공주는 휘청하더니 맥없이 쓰러졌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는 몸을 웅크리고 손을 뻗쳐 신발 속에 감춰 둔 비수를 뽑았다. 그리고는 먼저 두 다리를 묶고 있는 허리띠를 잘랐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이어 공주의 머리를 힘주어 한번 걷어찼다. 일 시 그녀가 깨어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비수를 탁자 다리에 꽂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서는 두손을 묶고 있는 옷자락을 칼날 에 갖다 대고 가볍게 문질렀다. 두어 번 문지르자 묶였던 옷자락이 동강이 났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죽음에서 목숨을 건진 셈이라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러나 몸에는 상처투성이라 여간 아프지 않았다. (이 냄새나는 계집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로다. 그녀의 말투로 미루어 볼 때 정말 나와 장난을 치려고 했을 것 같은데, 만약에 태후의 명으로 나를 죽이려 했다면 내가 죽은 척하 자 왜 두려워했겠는가. 그러나 어린애들이 장난하는 것 치고 이토록 흉 악할 수가 있나? 그렇군! 그녀는 공주이다. 애시당초 태감이나 궁녀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태감이나 궁녀가 죽던 살던 갓에 그녀는 그저 한 마리의 개미를 눌러 죽이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그녀의 가슴팍에 다시한번 발길질 을 했다. 그런데 그 발길질에 그녀의 막혔던 숨통이 순조롭게 된 모양이었다. 공 주는 길게 신음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욕을 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위소보는 그렇잖아도 잔뜩 화가 나 있던 참이라 대뜸 손을 들어서는 철 썩 철썩 하고 그녀에게 두 대의 따귀를 갈겼다. 그리고는 가슴팍에 한 대의 주먹을 내지르고 오른발을 옆으로 쓸어찼다. 공주는 다시 쓰러졌 다. 그든 대뜸 달려 올라가서는 그녀의 등을 타고 눌렀다. 그리고 두 주먹으로 북치듯 그녀의 허벅지와 등, 볼기짝을 두들기며 부르짖었다. "이 죽일 계집애, 냄새나는 계집애. 갈보가 낳은 계집애 같으니라구! 내 너를 때려 죽이겠다." 공주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때리지 말아요. 때리지 말아. 그대는 예의도 모르는군요. 나는 태후에 게 말해서 그대를 죽이라고 할거예요. 그리고...... 황제로 하여금 그 대를 죽이라고 할 것이며 능...... 능지처참 시키겠어요." 위소보는 가슴이 서늘해져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이왕 손찌검을 한 것이니 아예 통쾌하게 때려 주자.) 그는 주먹을 쥐고 다시 몇 대를 때린 뒤 욕을 했다. "너의 십팔대 조상까지 때려 죽이고 말테다. 너 이 냄새나는 계집애를 때려 죽이고 말겠다." 몇번 후려치게 되었을 때 공주는 갑자기 쳇 하고 웃었다. 위소보는 매 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힘주어 때렸는데도 그녀는 울지 않고 오히려 웃어?) 그리고 그는 탁자 다리에 꽂혀 있는 비수를 뽑아서는 그녀의 목에 갖다 대고 왼손으로 그녀의 몸을 뒤집으며 호통을 내질렀다. "왜 웃지?" 그녀는 실눈을 가늘게 뜨고 온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정 말 기분이 매우 좋은 것 같았으며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토록 심하게 때리지 말아요. 그러나 너무 가볍게도 때리지 말아요." 위소보는 어리둥절했다. 혹시나 그녀가 갑자기 간계를 쓰는 것이 아닌 가 생각했다. 그리하여 힘주어 오른발로 그녀의 가슴팍을 밟고는 호통 을 내질렀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거야? 나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겠다." 공주는 몸을 바둥거렸다. 그리고 코로 음음 하더니 몸을 일으키려고 했 다. 위소보는 호통을 내질렀다. "꼼짝하지 마." 그리고 그녀의 이마를 힘주어 물었다. 공주는 다시 쓰러졌다. 위소보는 상처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노기가 다시 끓어올라 철썩 철썩 그녀의 양 쪽 따귀를 네 대나 갈겼다. 공주는 다시 음음 하는 소리를 내었으며 숨 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 표정은 여전히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는 빛으로 가득차 있지 않은가.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내 얼굴을 때리지 말아요. 상처를 입게되어 태 후가 묻는다면 속일 수 없잖아요." 위소보는 욕을 했다. "이 냄새나는 계집애. 이 천박한 것아! 너는 맞으면 맞을수록 기분이 좋은 모양이지?" 그리고 손을 뻗쳐 그녀의 왼팔을 힘주어 두 번 꼬집었다. 공주는 아이 쿠 아이쿠 하는 소리를 몇번 내지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눈동자 에는 여전히 웃음이 맴돌고 있었다. 위소보는 다시 물었다. "제기랄, 기분이 좋아?" 공주는 아무 대답도 않고 갑자기 눈을 감더니 갑자기 한발을 들어 위소 보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바로 그녀의 단도에 상처를 입은 곳이었다. 위소보는 아픔을 느끼는 순간 공주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양쪽 어깨를 눌렀다. 그리고 그녀의 팔과 어깻죽지, 가슴팍, 아랫배 등을 힘주어 꼬 집었다. 공주는 깔깔거리고 웃으며 부르짖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소태감 같으니, 좋아. 공공, 아니 오라버니, 나 를 용서해 줘요. 나는...... 나는...... 감당할 수 없어요." 그녀가 그와 같이 부드러운 어조로 부르짖자 위소보는 갑자기 가슴이 설레이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부르니 방소저가 배 안에서 나와 정이 가득 담긴 말을 주고받을 때의 모양과 흡사하구나.) 그는 대뜸 노기가 크게 사그러졌다. 그러나 그녀가 도대체 어떤 꿍꿍이 속을 가지고 있는지 실로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공주가 앞서 했던 것과 똑같이 그녀의 허리띠를 풀어서는 그녀의 두 다리와 두 손을 묶었다.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이 죽일 꼬마 같으니. 그대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야?"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로 하여금 나쁜 마음을 품고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 오." 그리고 몸을 일으키며 식식거렸다. 전신이 아파와서 금방이라도 곧 기 절할 것 같았다. 공주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계자, 오늘 정말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대는 또 나를 때릴거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나를 때리지 않는다면 내 어찌 감히 그대를 때리겠소?" "나는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대가 다시 나를 때린다 하더라도 난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위소보는 침을 뱉고 말했다. "그대는 공주가 아니오. 그대는 그야말로 천박한 계집이외다."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를 발로 한 번 찼다. 공주는 어이구 어이구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물었다. "다시 노는 거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장난에 내 목숨이 반쯤 달아나고 말았는데 놀기는 뭘 더 놀아? 이제 나는 제갈량이 되어 역시 등갑병을 불태우듯 그대의 머리카락과 옷을 모조리 태우겠소." 공주는 다급해져서 말했다. "머리카락을 태우면 안돼요......" 그리고 헤벌죽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나의 옷을 태우도록 하세요. 전신에 물집이 생긴다 하더라도 나는 두렵지 않아요." 위소보는 침을 탁 뱉었다. "쳇, 그대는 죽음이 두렵지 않겠지만 나는 그대와 더불어 실성한 짓은 하지 않겠소. 나는 가서 상처를 치료해야겠소. 상처에 소금이 뿌려져 있어서 따가와 죽을 지경이오. 정말 재미있는 줄 아시오?" 이제서야 그는 공주가 결코 자기를 살해할 뜻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손발에 묶었던 허리띠를 풀어 주었다. 공주는 말했다. "정말 놀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내일 다시 와요. 좋죠?" 그녀의 어조에는 애원하는 듯한 뜻이 서려 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만약 태후와 황상께서 아신다면 나의 목숨이 붙어 있겠소?" 공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태후와 황상께서 어떻게 아시겠어요? 내일 그대 는 나의 얼굴을 치지 말아요. 몸에는 상처가 아무리 많아도 상관이 없 어요." 위소보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일은 올 수 없을 것이오. 나는 그대에게 너무나 많이 맞아 한두 달 동안 상처를 조섭해야 할 것이오." 공주는 말했다. "흥, 그대가 내일 오지 않겠다구요? 조금 전 나에게 무슨 욕을 했죠? 우리 십팔대 조상까지 때려 죽이겠다고 했죠? 우리 십팔대 조상이라면 바로 황제오라버니의 십팔대 조상이고, 황제 아버지의 십칠대 조상이 며, 태종황제의 십육대 조상이고, 또 태조황제의 십오대 조상이 고......" 위소보는 그만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이 딱 벌어져서는 속으로 야단 났다고 생각했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