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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29.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기쁘고 안전한 삶을 살라 유백선 목사
시편 16: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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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비전교회 카페에는 삶의 행복과 깊은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더 많이 있습니다. 카페에 들어오셔서 함께 나누시고 예수님의 비전으로 복을 받고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시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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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인간이 ‘빅데이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빅데이터가 만국 청춘남녀에게 짝을 찾아줍니다. 창업과 성공의 비결, 인생을 즐겁게 사는 법과 행복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했던 사람이 새로운 사랑을 하고, 행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 구글 데이터과학자 출신의 경제학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Seth Stephens-Davidowitz)가 쓴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Don’t Trust Your Gut)>에서 말했습니다.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가? 부모는 아이들에게 DNA도 물려준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가 하는 모든 행동의 결과를 합쳐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작다. 부모들이 염려하는 문제에 관해 최선의 결정을 하더라도 아이의 장래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 좋은 환경을 가진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는 장래 소득이 약 12% 증가한다. 그 동네에 사는 성인이 어떤 본보기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아이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숨은 부자들이 누구인가? 부자는 가격경쟁에서 탈피한다. 그들이 부자인 이유가 있는가?... 특별히 운이 좋은 사람들의 비결이 무엇인가? 무엇을 보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예측할 수 있는가? 데이트 신청할 때 아름다운 외모가 가장 선호도가 높았다. 특이한 외모도 매력으로 여겼다. 소파를 박차고 일어날 때 인생이 바뀐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가?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 행복도가 높았다. 행복한 활동 순위 1위가 친밀한 이성 접촉이다. 기쁨과 고통에 관한 기억이 왜곡된다. 사람들은 수동적인 활동들이 마음에 더 큰 기쁨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현대인을 불행에 빠뜨리는 함정이 있다. 일, 친구와 애인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 소셜 미디어, 스포츠, 술, 자연 결핍의 함정이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면 누구도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이 만족해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빅데이터를 적절히 활용해서 자신을 더 잘 알고, 더 나은 삶을 살라.”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결정을 합니다. 자신이 내린 결정들이 인생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더 중요하고, 더 큰 결정이 늘 어렵습니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직관(감)으로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살려면 뛰어난 통찰력과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나은 결정이 삶의 만족도를 높여줍니다. 삶의 만족도가 더 커져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의존하고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을 하나같이 믿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믿음이 서로 공감하고, 사회적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은 서로 연결된 관계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기쁘고 영도 즐거워하라. 안전한 삶을 살라.’ 사람의 마음이 건강해야 언제나 기쁘고 즐겁습니다. 마음이 즐겁고 기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렘 15:16)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기쁨을 두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 큽니다.(시 4:7)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해야 기쁨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야 삶이 기쁘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하나님을 잘 섬깁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항상 기쁘고, 즐겁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이 풍족해도 기쁘지 않습니다. 인생이 즐겁지 않습니다.(신 28:47) 왜냐하면 기쁨과 즐거움을 상대적 가치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뭐든지 더 풍족하게 가졌다고 생각해서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의 빛을 뿌리십니다. 마음이 정직한 사람을 위해서 기쁨을 뿌리십니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통해서 기뻐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합니다.(시 97:10-12)
여러분! 사람의 마음이 기뻐야 행복합니다. 마음이 즐거운 것이 좋은 약입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천국입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남에게 베풉니다. 남에게 베풀 때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본문 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여기서 “마음(리비/יבל/libiy)”이 “속사람, 의지, 중심, 이해력, 편안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유쾌해야 기쁨이 있습니다. 속사람이 즐거워야 확실하게 살아갑니다. “기쁘다(싸마흐/חמשׂ/shamach)”는 말은 “쾌활하게 하다, 유쾌하다, 원기를 돋우다, 즐겁게 하다, 기쁘게 만들다, 환희하다.” 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기쁘면 세상에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마음이 유쾌해야 행복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모든 사물을 아름답게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쾌활해야 사는 것이 흥미가 있습니다. 속사람이 기뻐야 활기찬 인생을 삽니다. 속사람이 유쾌해야 영이 즐겁습니다. “영(케보디/ידובכ/kebodiy)”은 “무거움, 풍부함, 영화로운, 영광, 존귀, 명예, 영광스러운”이란 뜻입니다. 사람이 이해하는 만큼 살게 됩니다. 이해력이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이해력이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평안한 마음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합니다. “즐겁다(야겔/לגי/yagel)”는 말은 “맴돌다, 늘 기뻐하다, 두려워하다, 흥겨워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기쁘고, 영이 즐거워야 육체도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안전히 살다(이세콘 라베타흐/חסבל ןשׁי/yishekon labetach)”는 말은 “피난처에 거주하다, 안전하게 거주하다, 확실하게 놓다, 안전하게 설립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어디서 안전하게 사는 것입니까?
사람이 안전하게 인생을 살게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항상 하나님을 자기 앞에 모시며 사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모신다(솨바/הושׁ/shawah)”는 말은 “평평하게 하다, 동등하게 하다, 닮게 하다, 맞추다, 적당하게 하다, 조정하다, 배치하다, 행동하다, 비교하다, 동의하다, 매끄럽다, ~에 필적하다”라는 뜻입니다. “앞에(네게디/ידגנ/negediy)”라는 말은 “정면에, 대면하여, ~에 관하여, 눈 앞에, 가까이에, 면전에서” 라는 뜻입니다. 항상 여호와를 자기 앞에 모신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이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였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롬 8:14) 주의 영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가 됩니다.(고후 3:18)
여러분! 항상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면 하나님께서 나의 오른쪽에 계십니다. 여기서 “오른쪽(미미니/ינימימ/miymiyniy)”은 “오른손, 좀 더 강하고, 좀 더 재주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내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내가 좀 더 강해집니다. 여기서 “흔들리다(에모트/טומא/‘emot)”는 말은 “미끄러지다, 떨어지다, 운반되다, 탈선하다, 부패하다, 움직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내가 유혹에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좀 더 재주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우편에 계시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삶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더 강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앞에 모신 사람이 하나님께로 자기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이 존귀한 것이 하나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모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존귀한 사람이 이렇게 찬양합니다. ‘나를 존귀하게 하신 하나님께 나의 모든 즐거움이 있다.’(시 16:3) 항상 하나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신 것을 알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초대교회가 제자들이 많아지면서 구제와 접대하는 일에 너무 바빠졌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하는 일로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써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칭찬을 듣는 사람들 중에 일곱을 선택해서 구제와 접대하게 했습니다. 사도들이 기도하고 일곱 사람에게 안수했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큰 기사와 표적을 사람들에게 행했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할 때 민간인들이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교 율법주의자들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슬렀습니다. 복음을 듣고 마음에 찔림이 올 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를 갈았습니다. 스데반이 흔들리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이 보인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스데반이 고통 속에서 주께 부르짖으며 말했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리고 순교했습니다.(행 7:54-60) 내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주를 보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마음을 붙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심령이 기뻐하고 내적인 변화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우편에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11절)
여러분! 하나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십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나를 훈계하십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합니다. 본문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여기서 “훈계하다(야싸르/רסי/yasar)”는 말은 “교육하다, 징계하다, 고치다, 개심하다, 견책하다, 가르치다, 훈련시키다, 단련시키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훈계를 왜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훈계를 받으면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고, 젊은 사람에게 지식을 주고 근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듣고 학식이 더해집니다. 명철한 사람이 지략을 얻게 됩니다.(잠 1:2-5) 그래서 하나님의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훈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잠 4:13) 훈계의 책망이 생명의 길입니다.(잠 6:23) 하나님의 훈계를 들어야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잠 8:33) 지혜의 훈계를 듣고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겸손하여 존귀하게 됩니다.(잠 15:33) 훈계를 지키는 사람이 생명의 길로 행합니다. 징계를 버리는 사람이 그릇된 길을 갑니다.(잠 10:17) 아버지들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다.(엡 6:4) 하나님의 훈계를 받고,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여기서 “송축하다(아바레크/ךרבא/‘abarek)”는 말은 “은혜로 복을 주다, 축복하다, 무릎을 꿇다, 축하하다, 풍성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송축하는 사람에게 은혜로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송축한 사람에게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의 거룩한 사람을 멸망시키지 않습니다. 본문 1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여기서 “영혼(나페쉬/ישׁפנ/napeshiy)”은 “호흡하는 생명, 생명력, 신체, 숨, 혼령”이란 뜻입니다. 욥이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엘리후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건져주셔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신다. 내 생명이 빛을 보게 하시구나.”(욥 33:28) 욥이 고난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 여기에, 나와 함께 계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니다.”(욥 42:5) 내가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면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시 23:3)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지켜주셔서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주께 피합니다.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시 25:20)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음부(지옥)에서 끌어내셔서 살려주십니다.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하십니다.(시 30:3) “스올(쉐올/לואשׁ/she’ol)”은 “죽은 자의 세계, 무덤, 지옥, 구덩이, 돌아올 수 없는 곳”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사람을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내 영혼을 사망에서 건져주십니다. 기근이 들 때에도 살게 하십니다.(시 33:19) 존 후스(John Huss)가 말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영생할 수 있도록 불멸의 하나님이 오신 것을 기뻐하라.” 그래서 내 영혼이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곤고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듣고 기뻐합니다.(시 34:2) 내 영혼이 낙망하고 내 속에서 불안할 때 나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내가 찬송합니다.(시 42:5)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면 나의 소망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시 62:5)
셋째는 주께서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본문 1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여기서 “생명의 길(오라흐 하이임/םייח חר/‘orach chayiym)”은 “생명의 방법, 생명의 대상, 살아 있는 길”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의 생명이십니다.(민 27:16)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생명의 능력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시 27:1) 하나님의 말씀을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됩니다. 그 온 육체가 건강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지킵니다. 여기서 생명의 근원이 나기 때문입니다.(잠 4:22-23) 주께서 광명을 비춰주셔야 우리가 광명을 보게 됩니다.(시 36:9)
이란 여성 안나히타 파산(Annahita Parsan)이 간증했습니다. “나는 알라신을 믿는 무슬림 가정에서 자라나 16살에 결혼했다. 몇 년 후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아들의 양육권을 위해 법정 소송을 해서 승소했다. 2년 후에 아내와 사별한 남성과 재혼했다. 재혼한 그 남편이 아들을 때렸다. 견디다 못해 이혼을 원했지만 둘째 아이를 임신해서 불가능했다. 1984년에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난민이 되었다. 여권과 신분증이 없어서 터키 교도소에서 한 달간 수감되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덴마크에 정착하던 중에 한 여성이 우리 집에 와서 하나님에 대해 말했다. 정말 화가 나고 불행했는데 다음 날에 작은 성경책을 갖고 다시 왔다.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예수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느냐?“ 남편 모르게 성경을 읽으면서 믿음이 계속 자라났다. 남편의 폭력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병원에서 깨어나자 경찰이 찾아와서 내가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예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셨다고 믿었다. 그 후에 스웨덴으로 이민을 가서 세례를 받았다. 2006년에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내 생명을 살려주셨다. ‘하나님께서 무슬림 전도를 위해 내 생명을 살려주셨구나.’ 깨달았다. 2012년에 스웨덴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무슬림공동체 전도사역에 집중하여 무슬림들이 기독교신앙을 체험하도록 교회로 초대했다. 그러자 이슬람 세력들이 내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약 1,500명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도록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기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고 감사한다.”
여러분! 지금 내(우리)가 하는 일이 기쁘고 가치 있는 일입니까? 내가 사는 것이 기쁘고 가치 있는 삶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생명의 길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하나님)께 올 사람이 없다.”(요 14:6) 예수님을 믿음으로 부활의 참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고, 기쁨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내 주 예수님을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날마다 생명의 길로 나와서 새 일을 행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생명의 길에서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을 하나님께 맞추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기쁘고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생명의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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