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수원교구 인산대리구에서
구역장을 상대로 신천지에 대처하는 교육을
한적이 있었다. 지료로 빋았는데 그안에는
신천지의 교리를 담았는데 그내용울 듣고
보았는데 상당히 웃길정도로 그 내용이
허접하다는 갓인데 아마도 길거리에서 민나던
신천지의 실제교리를 밝힌다면 아무도
그곳에 관심을 갖지않을것이 뻔하다는 것안데
이를 쉽게보면 안된다는 것인데
그들은 선의의 거짓말을 애기한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청년을 만나서 어떤 고충을 듣더라도
그 이야기를 듣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를 준비하기위해 팀을 형성해서, 대구의 경우에는 이들이 합숙훈련을 해가면서 준비하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무엇을 말하려고하는지 알고
있어서 피해가지만 지식은 많지만 체험이
없는사람은 쉽게 빠진다는 것인데요
이들은 영적으로 상처를 주기에 이런상황에서
벗어나서 회복하기위해 잘 훈련된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하고 그 사람이 빠진기간 이상의
노력을 해야하는데
대구교구만 하더라도 이에 대한 저문훈련된
사제나 수도자가 있다는 애기를 들어본적이
없다는 것인데
요즈음은 언론에 들어나지 않는 무수한
이단이 많다는 것이다
저는 이 상황을 바라보면서 어떤신자들이든
성령기도체험을 가지고 본인이 받은 은사를 찾고
끝임없이 가도하며 영적분별력을 얻고 신앙생활이
성장해야한다는 것인데
그런것이 필요하다는것은 단지 성당에서 바쁜생활을
하는 '발바닥신자'들만 양성학게 되는데
이런사람들이 늘어가면 자신도 나아가지
않으면서 다른사람도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어떤행위도
그리스도의길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교황은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없이는 사제 주교 교황은
될수 있어도 주님의 제자는 될수없다',라고 하십니다 고린토1서 13장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어떤권고나 예언까지도 부질없는 징의 소리가
깉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성장하면 어린이이때것을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본당에서 하는 다양한
충고도 그 수준을 예비자교리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그런것에 도달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사때하는 전례의 여러모양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우리나라 건물구조상 제약이 있지요
지금 앞자리에만 남아있는 장궤툴은 설치하면
지금보다 더 간격을 벌여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입장할때나 퇴장할때 동선도 그러합니다
성당에서 제대쪽을 향해 오른쪽 성가대가 았는데
봉헌하러 나갈때 봉헌바구니를 앞자리보다
뒤에 두기에 앞자리부분의 동선이 꼬이기도 한다
이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본당 제대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곳을 행해 깊은절을 하는것은 입구에서 히든
제자리에서 하든 별상관이 없다는 것인데 어떻게 하는것이 효과적이냐는 우리들이 서로 논의해서
좋은방법은 선택할수가 있어요
우리는 오래전에는 성당압구에서 자리를 안내하는
봉사자들이 있었지요 저처럼 거의 미사가 임박했을때 들어오게되면 뒷자리부터 차서 자리를 찾기
어려웠지요 지금은 그럴가능성이 낮지만 한때는
빈자리가 없어서 미사내내 서 있기도 했지요
그래서인지 때로는 저녁미사인 청년미사에 참석하기도 헙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성당내에서 너무 조급합니다
다만 남들보더 3분더 머물면서 성체함을 비라보고
묵상시간을 가져야한다
미사때 여러성가를 부르게되는데 간혹 절기에
맞는 성가를 고르는지는 몰라도 주로 평일미사에
그런 경우가 있는데 처음부른곡인지 부르는사람아
거의 없게되는데 가급적이면 잘 알려진 곡을
불렀으면 합니다
지난주에 영성체후에 불렀던 그리스도왕국은
작사자와 저작권문제로 한동안 성가책에
실리지 못했다고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1,2번 성가곡이나 외국곡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성가가 저작권문제가 미해결되었다고 하나
제생각으로 모두가 아는 가톨릭풍의 창작음악이
많이 성가책에 많이 실렸으면 합니다
간혹 미사직후에 갖는 자리대연습도 자리를 옮기면
점시 성당에 머물면서 성체조배나 묵상하는
사람들에게 큰편의을 줄것입니다
우리는 따로 상체조배실이 없기때문이다
미사시작전에 갖는 침묵시간도 어떤 기도보다
더 소중핳것입니다
점점 노령화로 노인층이 늘어납니다
할머니들을 제대앞줄에 지리잡게 하다보니
미사중에 화장실갈일이 생기면 너무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하면 분명
3층이고 화장실은 1층 마당끝에 있다는
것인데 좌우지간 자리를 효율적으로 잡기위해
자리안내하는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번미사때 길거리전도는 부작용이 많아서
각기 해보라고 하셨지요 천주교회가 개신교에
비해 대중인기도가 높을때가 있습니다
아는 길거리에서 상대방에게 복음을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블과 200여년전에 신앙선조들은 시제없이 오로지 기도만으로도 모여든
사람들로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수난과 박해를 통해 성장한다고
헙니다 지금 성당관할구역내에 잭개발로 인해
주민수가 늘어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복음을
알리기는 커녕 그곳에 사는 본당교우들에게조차
안내를 하지 못했어요 제가10여년전 대구에서
미사를 드릴때 제가 사는 삼익뉴타운이
내당4동이라서 당연히 본당이 내당성당으로
알고 걸어다녔지요 그곳에 가는 버스편도 없었고
이곳이 성당까지는 멀구나 하면서 간혹
버스를 타고 계산성당을 다녔었지요
처음 내당성당에 갔을때에는 재건축을 하는지
성당마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저는 5년전에 갑짜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된 아버지를 모시느라고 삼익뉴타운에
내려왔다 문경에 아들 홀로 두고 교적정리도
하지 못한채 내려왔다 다행히 문경성당에서
막 레디오단원선서를 한 탓으로 그곳의
도움으로 평리레지오팀으로 전입을 할수 있었다
즉 교적을 옮기기전에 레지오전출을 먼저 한것아다
시골 주일미사와 두군데 공소를 합해야
주일에 200여명이 채안되는 교우가 나와서
대부분 본당신부님이 해결해주셨다
집에서 2km걸어서 주일미사뿐만 아니라
레지오와 기도모임 평일미사를 참여하는것이
좋아보였든지 교적이동은 알아서 해줄터이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라고 하셨다
문경은 늦은저녁이 되고 문경읍입구에 시외버스
막차가 들어오면 어디에서도 택시를 잡을수가 없어서요 희미한 가로등길 저멀리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갑니다
이러한 수고도 다 하느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문경읍내 초입에 큰교회가 있습니다
외형으로 봐도 개신교회같지도 않는데
제가 교중미사하러 자나갈때에 그곳 교회에도
사람아 모입니다 때로 두명씩 제가 사는 이딴곳을
찾아오기도 합니다 밥으로 들여 시원한물헌잔을
대접합니다
그들은 성탄과 부활을 지내지 않기에 그날은
교회가 컴컴합니디 그들은 예의바르고 친절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몰몬교와 더불어 양대교회인
여호와의 증인들입나다 파수꾼이라는 잡지를
들고 다니면 배포합니다 영혼을 좀먹는 아단입니다
성경을 읽지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성적으로 교회를 다녀도 이런 이단에 쉽게 빠진다는데
잚음이들이 쉽게 교회를 떠나는 것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압니다. 만약 아이들이나
청년들에게 진학을 위해 시키는 교육열정의
일부라도 있으면 지금의 사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아 따로 았는것이
아닙니다 아를 분명히 갈라놓는 이중생활을 하기에 성당내에서의 신앙행위조차 형식적이고 신뢰를
받지 못하기에 하느님을 바라보가보다는 세상의
눈치를 보게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땅을적셔 풍요롭게 한후에야
하늘로 올라갑니다
신앙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건없이 이를 이웃과 나누어야합니다 이를 위하여서는 어떤조건이나 단서조항이
없다는 것을 성서는 말합니다
아집트를 탈출한 모세일행에게 바로 가나안땅으로 가라고 하느님은 마씀하십나다만 그들은 갈곳을 미리 알아보려고 정탐꾼을
보냅니다 가나안을 정복한후 요셉지파 즉 에프라임과 므나쎄지파는 땅을 배정받는데 하느남은
그지역의 아방인들을 몰아내려고 하시지만
이를 지켜내지 못했지요 하느님의사랑은 아무 조건이 붙지 얺지만 그때 유대인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유가 았고 변명이 있다는 것인데
우리는 하느님이라는 투명한곳에 내자신을 비춰보는 성찰이 필요하기에 이상한 곳에 영혼을 빠트리지 않게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