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중에서
알베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관자놀이가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고동친다. 몸속 혈관들이 죄다 터져 버릴 기세다. 그는 세실을 부른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고 싶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꽉 조여지고 싶다. 하지만 세실의 모습은 그에게까지 와 닿지 못한다. 마치 너무 멀리 있어서 올 수 없는 것 같고, 이것이 그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한다. 지금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녀가 옆에 있지 않다는 것이. 이제는 그녀의 이름만이 남아 있다. 왜냐면 지금 그가 빠져드는 세계에는 몸이 없고, 다만 말들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에게 함께 가자고 애원하고 싶다. 죽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그는 그녀 없이 홀로 죽어야 한다.
그렇다면 안녕, 천국에서 다시 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안녕, 나의 세실.
(/ pp.37~38)
인근 도시의 사람들이 와서 병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량한 얼굴들이었다. 여자들은 아들을, 남편을 찾는다며 팔을 쭉 뻗어 사진들을 내밀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따로 없었다. 아비들은 뒤에 머물러 있었다. 몸부림을 치고, 질문하고, 조용한 투쟁을 계속해 가고, 또 아침마다 아직 남아 있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다시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여자들이었다. 사내들은 희망의 끈을 놓은 지 이미 오래였다. 질문을 받은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애매하게 대답했다. 사진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했다.
(/ p.146)
에두아르는 가족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마들렌을 많이 생각했다. 그녀에 대해선 꽤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 터지려는 폭소를 꾹 참던 것, 문가에서 보내던 미소, 그의 머리통을 긁어 주던 구부린 손가락들, 그리고 그들의 공모 의식.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웠다. 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누군가를 잃은 여자들이 다 그렇듯 그녀도 상심했으리라.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시간, 그 위대한 의사가 온다....... 사람들은 결국 누군가의 죽음에 익숙해지는 법이다.
(/ p.284)
그는 아침마다 지하철역 근처에서 이 나무로 된 광고판을 받아서 메고 다니다가, 간단히 요기만 하는 점심시간에 다른 걸로 바꿨다. 아직 정상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제대 군인들이 대부분인 직원들은 한 구(區)에 열 명 정도 됐으며, 여기에 감독관이 하나 있었는데, 항상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는, 어깨나 좀 주무르려고 잠시 멈춰 설라 치면 번개같이 튀어나와서는, 당장에 다시 움직이지 않으면 해고해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였다.
(...) 주머니 속의 모자를 꺼내기 위해 잠시 서는 것도 금지된 일이었다. 계속 걸어야 했다. [걷는 게 바로 자네들 일이야.] 감독관은 말하곤 했다. [자넨 군대에서 [땅개]였지 않았어? 이것도 마찬가지라고.]
(/ pp.391~392)
56세의 나이에 작가로 데뷔한 피에르 르메트르는 오늘날 프랑스에서 가장 빠르게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위 ‘대세’ 작가에 속한다. 추리소설 역사상 최단신인 145cm의 매력적인 형사반장 카미유가 등장하는 ‘베르호벤 3부작’(<이렌>, <알렉스>, <카미유>), <웨딩드레스>, <실업자> 등의 장르소설로 하나의 봉우리를 정복했다면, 2013년에는 <오르부아르>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타면서 또 다른 봉우리의 정상에 섰다.
Q <이렌> 도입부에 “작가는 따옴표 없는 여러 인용구들을 효율적으로 짜 맞추는 사람이다”라는 롤랑 바르트의 문장을 배치하셨죠. 이 문장이 작가님이 앞에서 말한 신념을 잘 대변해 주는 듯해요.
롤랑 바르트의 문장이 말하는 바는 작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저 역시도 작가는 이곳 저곳에서 많이 영향을 받는 사람이며, 소설 역시 다양한 인용구들의 합체라고 생각을 합니다.
Q <실업자> 등의 작품에서는 ‘일’이 주인공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실제로 삶에서 일에 많은 비중을 두는 타입인가요?
네. 저는 일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적어도 선택권이 있고, 즐거워서 일을 합니다. <실업자>는 일보다는 기업에 초점이 맞춘 작품으로 기업의 횡포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곧 일본에서 번역될 예정인데, 일본이야말로 기업의 횡포가 개인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나라이기 때문에 출간됐을 때 일본 독자들의 반응이 몹시 궁금합니다.
< 실업자>라는 책은 전 세계적으로 기업이 직원의 삶과 죽음에 대한 권리를 쥐고 있다는 전제 아래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책 속에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이 적어도 ‘열린’ 장면들이라면, 기업의 잔인성은 숨기고 은폐된 경향이 있습니다. 프랑스 기업에서도 5층 건물 창문으로 떨어져 자살한 직원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합니다. 즉 오늘날 기업이 내 책보다 훨씬 폭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책이 잔혹하다는 사람에게 저는 노동계를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오르부아르 그 두툼한 책을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처럼 앞에 펼쳐 놓고 <폭풍흡입>을 시작했는데.... 그 맛 또한 괜찮았다. 소설에서 바라는 요소들이 다 들어 있었다. 첫 페이지부터 독자의 멱살을 붙잡아 백 년 전 프랑스의 진흙탕 참호 속으로 홱 끌어들이는 강렬한 액션, 영화만큼이나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 역동적인 서사,복선과 반전, 개성 만 점의 캐릭터들, 그리고 깨알같은 유머와 감동까지...
이 작품의 만만치 않은 문학적 밀도를 처리하는게 문제였다. 어디서나 유머와 아이러니가 튀어나오는 작가 특유의 약간 < 삐딱한 >문체,호흡이 긴 문장, 상징과 은유와 함의들로 점철된 텍스트... 한 마디로 술술 읽히는 외관과는 달리, 씹을수록 가을철 꽃게처럼 속이 꽉
찬, 촘촘고도 묵직한 작품이었고, 이 문학적 뉴앙스와 무게를 포기하지 않으려니 한 문장 한 문장이 고민이요 가시밭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