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집이라고 느꼈던 최초의 집은 초가(草家)였습니다. 게다가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았으니 첩첩산중의 촌 아이가 보았음직한 풍경들이 내 기억의 가장 밑 바닥에 오룻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열 세 살까지 살았던 초가의 전경은 이상하게 아주 선명합니다. 내 고향에 대한 기억이라고 하면 거의 초가에 대한 기억입니다.
어릴 적 세수라도 하려면 100미터 쯤 떨어진 개울까지 걸어가야 했던 고향 초가를 떠나온지 48년, 세월은 그야말로 유수(流水)와 같았습니다 그려.
첫댓글 초가하면 정다운 느낌이 들지 않아요? 지금은 민속촌에 가야 볼 수 있지만 몌전에는 거의 모두 초가였습니다. 새마을 운동 덕에 많이 바뀌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