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의 매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지리산 아래 현존하는 우리 나라 최고(最古) 최대수(最大樹)인 정당매(政堂梅)라는 늙은 매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곳은 유명한 단속사(斷俗寺)지 삼층석탑이 남아 있어서 탑동으로 불리는 조용한 마을이다. 단속사는 원래 이름이 금계서(錦溪寺)로 신라 효성왕(737~741년) 대의 공신 신충(信忠)이 763년에 세운 절이다. 그 후 경덕왕(742~764년) 대의 직장 이순(直長 李純)이 748년에 중창하였다. 그리고 신라 말 신행선사(神行禪師)가 본격적인 대가람으로 중흥시켰다.
정당매는 고려 말 강회백(姜淮伯)이 심었다고 전한다. 강회백(1357~1402)은 호를 통정(通亭)이라 했으며 본관은 진주이다. 고려 우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공양왕 때는 세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대사헌에 올랐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정도전 등에 반대했다가 진양으로 귀양가기도 했다.
강회백은 처음 금계사에서 공부하다가 개성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때 친지들에게 자신이 애배(愛培)해 오던 매화나무의 관리를 부탁하고 떠났다. 후에 종2품 벼슬인 전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한 뒤 낙향하여 매화나무에 정당매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강회백 당시의 정당매는 100년 쯤 지나자 시름시름 죽어갔는데 그의 증손 강용휴(姜用休)가 곁에 어린 나무를 심고 그 뿌리를 정당매에 접붙여 살려냈다고 한다. 현재 지름 30~40㎝의 큰 줄기 세 개가 같은 그루터기에서 솟아올라 있으나 위쪽은 모두 죽은 것으로 보인다. 그루터기에서 어린 가지가 여럿 돌려나 있고, 매년 봄철이면 횐 꽃이 화사하게 핀다.
아래쪽 줄기의 둘레는 2m 정도나 된다.정당매 옆에는 정당매각이 있고, 그 안에 유래를 적은 비석이 있다. 경상남도 지정 보호수이다.
나무를 살려낸 강용휴는 후에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과 친하게 지냈는데 김일손은 《두류록(頭流錄)》에서 정당매를 이렇게 읊었다.
옛 산이 그리워 우연히 찾아왔더니
맑은 향기 가득한 매화 한 그루일세
物性 또한 옛 주인을 알아보는지
은근히 나를 향해 눈 속에 피어있네.
遇然還訪故山來
滿院淸香一樹梅
物性也能知舊意
慇懃更向雪中開
또 남명(南冥) 조식(趙植) 선생은 단속사의 정당매를 보고 이렇게 읊었다.
낡은 절의 중 야위었고, 산도 전 같지 않네
전왕(前王)이 이로부터 다시는 찾지 않으니
신(化工)도 매화 가꾸는 일을 잊어버렸나
어제도 꽃이더니 오늘 또 다시 피었네
寺破僧羸山不古
前王自是未堪家
化工正誤寒梅事
昨日開花今日花
조선 전기의 탁영이나 중기의 남명 같은 학자들이 모두 정당매를 찾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명산 절경을 찾고 명현들의 유적을 참배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정당매 같은 유서 깊은 나무라면 개화기에 많은 학자들에게 탐매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매화 명목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옛날에는 학문을 숭상하는 선비라면 향리에서 책을 읽는 틈틈이 갖가지 진귀한 화초를 가꾸며 한적한 삶을 누리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산업사회가 되면서 옛 선비문화가 사라지게 되었고, 명현들이 애배했던 매화 명목도 차츰 시들어갔다.
남부지방에 늙은 매화나무가 살아있는 것은 원래 매화가 중국의 강남지방 따뜻한 고장에서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이다.경남 산청지방에는 정당매 말고도 또 한 그루의 고매가 지금도 살아 있다. 지리산 찬황봉(天皇峰) 아래 산청군(山淸郡) 시천면(矢川面) 사리(絲里)의 산천재(山川齋)는 호남의 거유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지은 정사(精舍)이다. 남명 선생은 영남의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쌍벽을 이룰 만큼 호남학파의 수장(首長)이다.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지만 죽어서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에 이어 영의정(領議政)에 추서된 위인이다.
그가 61세 되던 신유년(1561)에 지은 산천재 뜰에는 당시에 손수 심었다는 고매 한 그루가 지금도 맑은 향을 주위에 퍼뜨린다. 산천재 건립 당시에 심었다면 440여 년이나 되는 셈이다. 이 고매는 연한 분홍빛이 도는 반겹꽃이며 향기가 지극히 맑다. 밑에서부터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진 줄기는 뒤틀려서 뻗어 올랐고 군데군데 벌레가 쓸어 구멍이 나 있지만 건강한 편이다. 가지도 섬세하게 자라 해마다 많은 꽃이 다투어 피는데 개화기는 3월 말이다.
남명이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운(韻)에 따라 지은 매화시 속에는 매화와 더불어 욕심 없이 사는 선비의 고매한 인품이 그대로 녹아있다.
달빛 아래 누워 시 읊조리니 절로 흥이 이네
뜰 앞에 선 저 매화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으면
한 가지 꺾어 멀리 떠난 임에게 보내련만
臥月吟詩興有神
待得庭梅開滿樹
一枝分寄遠遊人
절세의 명기 황진이(黃眞伊)도 꺾지 못한 화담, 그리고 남명은 매화만큼이나 청아한 삶을 살다간 겨레의 스승이었다. 400년이 지난 오늘날 역사의 주인공은 사라졌지만 매화는 살아서 그 무대를 증언하고 있다.
첫댓글 정당매란 얘기를 처음 접하면서 다른 분들도 이 글을 읽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 많이 했습니다.
이 매화도 주인의 벼슬을 함께했군요..강회백 자신의 마지막 벼슬을 나무의 이름으로 불러주다니. . . 정말 애배목이었군요. 그러고보니 이 매화는 종 2품 벼슬을 한 꽃나무로군요.
둘레에 어린 나무를 심어 고목을 살려낸 증손의 매화사랑 역시 대단한 일이네요.저 역시 새로운 공부 재밌게 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