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관한 시모음 48)
4월과 5월 /박정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봄꽃보다 찬란하게 사라져간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너는 나를 그리며 더 큰 웃음을 웃고 있지만
네가 던진 함성도 돌멩이도 꿈 밖에 지고
모호한 안개, 모호한 슬픔 속으로
저 첫새벽의 단꿈도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사라진다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세월의 앙금처럼 가라앉아
그것이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되고
그 뿌리 속에 묻어 둔 불씨가 되는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파아란 보랏빛 얼굴로 웃고
5월, 푸르고 /곽춘진
하늘이 푸르고 맑은 날
우리 사랑하고 행복했었지
그때 네가 그랬지
우리 떨어져 있더라도
하늘이 푸르고 맑은 날
서로 부르며 만나자고
지금 하늘이 꼭 그렇게
푸르고 곱네
보느냐, 보이느냐
사랑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내 마음 같고 푸르고
그래서 만나고 사랑한다고
지금이 그런가 보네
보느냐 보이느냐 사랑하느냐
내가 아직도
너를 이리도 생각하고 있는데
너는 나를 생각느냐
생각하느냐.
이 5월의 고운 하늘 아래서.
오월에 시련 /龜岩(구암) 박윤종
하늘에서 꽃잎
지던 날
봄날은 한없이
울었지
겨울비 외로움에
방울 되어
가지끝에 피운 꽃
그 아름다움
오월이라 하리오
외로운 길 모퉁이
토해내는 이별을
지는 꽃잎에
시련이 없어서야
어찌 오월이라 할까
5월의 향기 /김현주
연둣빛
초록빛
물감을 타서 뿌려 놓았더니
숲은 힘찬 몸짓으로 춤을 춥니다.
온 산야 꽃들의 웃음소리
그늘이 넓어지는
초록빛 미소가
흐르는 신록의 아름다움에
아직도 사랑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흐트러지게 하얀 미소 짓는 이팝나무,
담장 넘어 뜨거운 사랑으로 고백하는
장미,
보랏빛 사랑 이야기 엮어놓은 등나무 꽃,
오월처럼만
사랑과 존경
넉넉한 마음으로
풋풋한 향기로 채우고 싶습니다.
오월 산책 /김지하
내 머리칼 속을
새들이 날고
온몸엔
북소리 들려라
먼저 간 이들
함께 거니는 오월 산책
아스팔트에 꽃들 피어나고
행상들 비닐 속에 물고기 뛰놀고
먼 곳 푸른 산 긴 한숨 소리
천지에 가득한
새 울음소리.
오월엔 /김대식
오월엔,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것만 같습니다.
왠지, 화사한 봄날처럼
사랑이 찾아올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만큼이나 또한
이별을 연습합니다.
또 하나의 이별을 준비하며
미리 마음을 비웁니다.
사랑은 항상
이별의 전주곡이니 말이 예요.
그러나 마음 비우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마음 비운 그 자리엔
또 하나의 그리움이 가득 찹니다.
비 오는 날,
창가에 흐르는 물줄기처럼
또 하나의 그리움은
내 가슴 가슴으로 흐르겠지요.
나는 또 홀로 여행을 떠나며
차 창가에 스치는
풍경이라도 바라보겠죠.
애써 또 하나의 그리움을
지우려 하면서
숨어 핀 들꽃이나 찾아
아름답다 하겠지요.
5월의 아름다운 꽃 /태안 임석순
드높은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이
돛단배처럼 고요히 흘러가는 5월에
함초롬한 푸른 꿈이 살아난다.
아침이슬 머금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새싹들의 앙증맞은 청아함에 매혹되어
입꼬리가 저절로 귀에 걸린다.
풍요가 싹이 트는 화사한 햇살에
저 너머 산들바람이 반가워하는데
시샘하던 아지랑이는 줄행랑친다.
온 누리 화창하고 완연한 봄의 들녘
싱그러운 5월에 초록 물결 넘실대며
넘노는 바닷물결 흘러넘친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5월은
그 꽃이 미래의 주인공으로 가슴에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길 소망한다.
오월 /김용택
연보랏빛 오동꽃 핀
저 화사한 산 하나를 들어다가
"이 산 너 다 가져"하고
네 가슴에 안겨주고 싶다.
오월이라고 /이은봉
오월이라고 오동꽃 벙글어진다
아카시꽃 하얗게 웃는다
새끼 제비들 벌써 빨랫줄 위에까지 날아와 앉는데
모란꽃 뚝뚝 떨어진다
한바탕 흙먼지를 날리며 회오리바람 분 뒤
타다다다, 여우비 쏟아진다
지난 1980년대 이후, 꽃 피고 지는 오월
함부로 노래하지 못했다
최루탄 가스로 가득 찬 역사에 들떠
꽃이나 나무 따위 들여다보지 못했다
오월이라고 눈 들어 숲 바라보니
반갑다고 오동꽃 눈 찡긋한다
어이없다고 아카시꽃 헛기침한다
이제는 꽃이며 나무와도 좀 친해져야겠다
저것들, 이승 밖에서부터 나를 키워준 것들
너무 오래 버려두어 많이 서럽겠다.
5월의 사랑노래 /정연복
춥지도 덥지도 않아
참 좋은
5월에는 너와 나
더 열심히 사랑하자.
초록 이파리들이 춤추는
들길이나 오솔길을 거닐며
우리의 사랑도
더욱 푸르게 물들어가자.
인생은 아름다운 것
사랑은 더욱 아름다운 것
우리의 삶 우리의 젊음을
사랑으로 충만케 하자.
오월의 아침 /김재진
풋내가 물씬 풍기는 오월의 아침이
사뿐사뿐 걸어옵니다.
어머니의 보릿고개를 견디어온
하얀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나부끼어
풍년이 다가섬을 넌지시 일러줍니다.
푸른 가지에
시리도록 매달린 하얀 눈꽃 송이가
늙은 여류 작가의 마음을
토닥입니다.
오월을 드립니다 /박희자
꽃 떨어진
자리에 잎이 돋아나
꽃보다
더 고운 연초록잎
산뜻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 오월입니다
피아노 소리에 맞춰서
노래 부르는 유치원 아이들의
똘똘한 음률 사이로
연보랏빛 등나무꽃
송이송이 하늘에 걸어놓고
사랑의 길 만드는 오월입니다
겨우내 터 싸움하던
까마귀는
끈기 있는 까치에게
자리 밀려나고
서둘러 둥지 틀어 드나드는
까치의 폴폴한 날개깃 속에서
곧 식구가 늘어 날 오월입니다
초록나뭇잎은 하늘을 가리고
장미 넝쿨은
텅 빈 담장에 꽃대를 엮어서
여왕의 계절에
선물로 준비한 오월입니다
움츠리고 있던
어깨를 펴고 담쟁이 넝쿨처럼
한걸음에
한 개의 초록희망을 심고
또 한걸음에
한 개의 사랑을 심어
더 기운차고
더 당당한 가슴으로
땅끝에서 하늘까지 닿는
오월의 초록향기 가득히 담아
사랑하는 내 그대에게 드립니다
가정의 달 /매향 도현영
초록이 넘실거리는 오월
가족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간절한 기도로
한 송이 카네이션이 아프게 다가서는
하해와 같은 그 사랑
자식에게 심어놓은 장미의 향기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끝없이
은혜와 축복으로 다가와
행복한 가족의 미래를 수놓는다
오월은 기쁘고도 아픈 기억이다.
어느새 오월 /운중 김재덕
화사하게 피어있는 꽃인 양
예쁘게도 차려입은 나들이 사랑꾼들
하나 둘 짝지어 사랑놀이 행복해하네
봄날 설레게 했던 아름답던 화사함 들
구름에 달 가듯 유유히 떠나는
유속 같은 흐름 속에
따사로운 햇살 가득 환영하여 반기니
새 생명 태어난 듯 생기나는
향긋한 싱그러움에
행복한 파랑새 노래하며 사랑을 하네
편안한 쉼터 같은 초록 빛깔 요정
님은 푸르름이 농후해가는데
내 청춘 반백 되어가는 안타까움 속에
야속한 사랑 그리움만 남기네
오월의 그리움 /최하정
임의 향기 닮은 꽃 너울이 나에게로 온다
산마루 너울 타고 중턱을 넘어
허물어 버리면 자꾸만 쌓이는 그리움
가루비 후루룩 떨어지는 빗방울에
켜켜이 쌓여 그리움이 운다
그 향기 한 꾸러미 꼭꼭 여미어
초록이 우거진 잎새 사이로
햇살처럼 내려와 가슴에 안긴다
녹음 짙은 오월에는 꽃보라 일렁이며
내게 오는 그 임이 참 많이도 그리워진다
아마도 널 사랑하나 보다
이렇게 네가 그리운 건 그 마음 그 향기가
아직도 숨결에 여울지기
때문일 거야
이젠 아파하지 말라고
그 향기 구름옷 접어 가슴에다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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